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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만남 | 이벤트

우리 시대의 소설과 소설가의 일 - 정광모 작가와 함께하는 월요일에 만나는 문학과 비평 3회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9. 8. 7.

지난 7월 28일에 열린 ‘월요일에 만나는 문학과 비평’ 3회 시간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 김대성 평론가, 두 번째 이정모 시인에 이어 세 번째 시간에는 정광모 소설가를 모셨는데요,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함께 보시죠.

 

월문비 3회 주인공, 정광모 소설가

 

정광모 소설가는 부산대와 한국외대 정책과학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2010년 『한국소설』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첫 소설집 『작화증 사내』(2013)로 부산 작가상을 수상했고, 장편소설 『토스쿠』(2016)로 아르코 창작기금을 받았습니다. 그 밖에 소설집으로 『존슨 기억 판매회사』, 『나는 장성택입니다』, 『마지막 감식』과 서평집 『작가의 드론 독서 1, 2』가 있습니다.

구모룡 평론가는 정광모 작가를 소개하며 2010년에 등단해서 소설집 3권, 장편 2권으로 약 9년여 만에 다섯 권의 소설을 낸 굉장히 '문제적'인 소설가로 평했습니다. 또 끊임없이 공부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평론가로서는 물어보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작가라고 말했습니다.

 

 

구모룡 평론가는 오늘 행사의 제목을 ‘우리 시대 소설과 소설가의 일’로 정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습니다.

구모룡 평론가: 정광모 선생님의 소설을 읽으면 현실과 소설, 허구 혹은 진실의 문제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소설이든 현실이든 과연 진실이 무엇인가를 탐문해야 하는데 정광모 선생이 이 문제를 그야말로 진지하고 집요하게 탐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광모 소설가의 소설을 읽으면 우리 시대의 소설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해 볼 필요가 있고 소설가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물어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월요일에 만나는 문학과 비평 행사에서는 평론가의 발제문을 같이 공유하고,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질의응답을 하는 순서로 진행합니다. 발제문 중 한 부분을 공유합니다.

 

“정광모는 우리 시대의 소설과 소설가의 노동에 대하여 깊이 고민하며 글을 쓴다. 소설은 근대의 영웅 이야기(헤겔, 문제적 개인-루카치)로부터 일상 속의 범인에 이르기까지 그 진폭을 보여 왔다. 총체적인 역사적 진실을 말하기도 하고 과거의 기억과 연관한 의식의 흐름을 서술하거나 현재의 자아에 충실하기도 했다. 피카소를 거친 미술사가 그러하듯 소설사도 거의 모든 방법과 실험을 소진한 듯하다. 밀란 쿤데라가 말했듯이 이젠 ‘소설사 이후의 소설’을 쓸 수밖에 없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만큼 소설은 그 죽음이 예견될 정도로 축소되었다. 하지만 소설은 모든 이야기, 모든 장르, 모든 화행을 다 쓸어 담을 수 있는 열린 매체(바흐친)이다. 그러하기에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는 무한하다.

 

 

구모룡 평론가: 오늘 행사 제목이 '우리 시대의 소설과 소설가의 일'입니다. 정광모 소설가가 생각하는 "소설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궁금합니다. 

정광모 소설가: 저는 소설가라는 직업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창조주.

소설가는 아담과 이브를 만들고 아담과 이브는 빵이나 밥이 아니라, 이야기를 먹고 사는 인물입니다. 아담과 이브를 만들고 그와 함께 붙은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소설가입니다. 그래서 『존슨 기억 판매회사』라는 소설집에 수용소라는 단편이 나오는데 이런 이야기입니다. 소설가를 수용소에 가둬서 6개월 동안 단편 두 편, 아니면 장편 한 편을 쓰도록 강요합니다. 그 안에서 소설가들이 죽어 나가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소설 속 수용소의 선배가 이런 말을 합니다. ‘바깥에서의 명성이나 필력도 여기선 아무런 소용이 없어 그냥 꾸준히 끈질기게 버티는 수밖에 없어.’ 그런데 나중에 이 소설 주인공이 수용소의 소장을 만나보니까 자필본으로 되어있는 책을 읽고 있는 거예요. 소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 책을 읽고 있지, 유일한 정수를 모은 딱 하나의 자필본 말이야.’ 소장은 당신이 뭐냐는 물음에 유일한 책을 읽는 유일한 독자라고 대답합니다. 단 한 명이 읽더라도 소설을 써야 한다는 그런 정신으로써 살아야 하는 게 아니겠나 생각합니다. 수용소장은 ‘딱 한 권인데 내용이 괜찮아서 밖에서 돌리면 100만 권 금방 찍어. 한 권이라고 우습게 보지마.’ 이런 말을 합니다. 그러고는 고쳐야 할 부분에 줄을 그어 돌려줍니다. 그래서 저는 소설가의 첫 번째 직무에 대해 ‘창조자’라고 생각합니다.

또 소설가란 지식인이 되어야 하지 않겠냐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 알파고, 아베와의 갈등, 영화 기생충 등등 인터뷰를 하면 작가는 바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작가들은 그렇게 못합니다. 폭이 엄청나게 좁아졌습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 인공지능 알파고 같은 것은 신경과학자나 뇌과학자와 인터뷰를 합니다. 아베와의 갈등은 당연히 정치 외교 교수, 영화는 영화평론가와 인터뷰합니다. 예전의 전문적인 작가의 폭넓은 지식이나 사회에 미치는 통찰력, 선구안 같은 것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 소설이 좁아지고, 사라지고,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원인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평론가와 소설가의 질문과 답변이 끝나고 청중과의 질문과 답변 시간을 가졌습니다.

질문자: ‘결국 한 작가에게는 한 작품만 남는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대표작을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그동안 죽어라 써나간 것이 아름답고 완성도 있는 작품 하나를 남기기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로도 저는 해석을 합니다. 그런데 광모 선생님처럼 이렇게 소재가 다양하면 이 작가의 방향성은 뭘까. 이 작가가 추구하는 최후의 한 편은 뭘까 하는 회의를 하게 됩니다.

정광모 소설가: ‘한 작품만 남는다.’라…. 남을지 안 남을지는 결국 독자나 시대가 결정해 주는 것 같습니다. 수많은 작가, 심지어 황석영 씨 같은 사람도 ‘삼포 가는 길’ 하나만 남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러니까 그거는 훗날에 알 거고.

다음으로 무방향성을 말씀하셨는데 저는 기본적으로 제 소설은 무방향성이 방향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온갖 종류의 소재나 이런 것들이 발상만 괜찮으면 다 쓴다는 생각입니다. 제 다음 장편이 지금 1000매 정도 되는 초고를 썼는데요, 꿈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예전부터 꿈에 관련된 이야기를 꼭 쓰고 싶었거든요. 그다음에 네 번째 장편은 아마 경장편이 될 건데 그건 영화에 관련된 이야기에요. 이것도 초고는 써놨습니다. 그래서 이걸 다시 밀고 나가야 하는데,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지금까지 썼던 단편, 그리고 특히 장편에서 여러 가지 부족하거나 미흡한 부분을 조금 더 보완해서 조금 더 한 계단, 두 계단 위에 올라선 작품을 쓰도록 노력해야겠다. 인물이나, 아까 지적해주신 부분들… 이런 생각이 있는데 뭐 소설 쓰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참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항상 고민입니다. 하여튼 그다음 작품은 조금 더 나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근대를 지난 현대에 소설의 역할이라는 것이 필요한지, 있다면 무엇인지 고민을 한 적이 있었는데요. 이번 시간을 통해 소설가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며 조금이나마 그 궁금증을 해결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셨나요? 댓글로 의견 남겨주셔요.

 

‘월요일에 만나는 문학과 비평’, 8월은 잠시 쉬어가려고 합니다.

모두 시원한 여름 보내시고 9월 만나요 :)

 

나는 장성택입니다 - 10점
정광모 지음/산지니

 

 

 

작화증 사내 - 10점
정광모 지음/산지니

토스쿠 - 10점
정광모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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