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돌베개에서 나온 <답사여행의 길잡이 5-전남>을 가이드북 삼아, 벌교 강진 해남을 거쳐 그동안 가보고 싶었던 한반도의 남서쪽 끝 진도까지.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순천IC에서 내렸는데 갈대축제 때문인지 혼잡한 순천을 빠져나와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벌교. 조정래 소설 <태백산맥>과 꼬막으로 유명한 곳이지요. 벌교를 무대로 한 설경구, 나문희 주연의 영화 <열혈남아>도 인상깊게 본 기억이 납니다.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
안으로 들어서니 어른 키만한 태백산맥 전집이 사람들을 맞이합니다. 왠지 이 커다란 책 앞에서 사진을 찍어야 할 것 같아서 돌아가면서 포즈를 취하고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전시관은 1, 2층으로 나뉘어 있는데, 1층에는 소설가의 집필 원고부터 시작해서 작가 노트, 집필 누계표, 글을 쓸 때 사용한 필기구 등 갖가지 소품들, 초판본, 영화 포스터, 출간 당시 언론 기사 등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탄생사를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대하소설을 쓰는 것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중노동이다. 하루라도 마음이 해이해지면 그 긴 소설을 써낼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채찍을 가하듯 이런 집필 누계표를 만들어 놓고 매일 확인하고 점검한다.'
집필 누계표
이야기 전개에 필요한 것들을 적어둔 노트입니다. 상황이나 정경들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런 노트가 여러 권입니다.
때로는 이렇게 그림으로 묘사하기도 하구요. 마을 근처에 빨치산이 숨어지내던 은신처를 묘사한 것 같습니다.
어른 키만큼 쌓인 원고뭉치
이만치 방대한 분량을 써내기까지 필기구가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었겠지요.
'태백산맥'을 써낸 만년필.
'처음엔 볼펜으로 썼으나, 볼펜은 오래 쓸수록 볼펜 잉크 찌꺼기가 지저분하게 묻어날 뿐만 아니라 볼펜대가 가늘어 손가락과 손목의 피로를 더했다. 만년필은 그 두 가지 문제를 거뜬히 해결해 주었다. 아무 탈 없이 그 많은 글씨들을 술술 만들어간 만년필의 노고가 컸다.'
인지
200쇄까지 바꾼 36개의 도장
태백산맥이 외국어로도 번역된 걸 문학관에서 보고 알았습니다.
프랑스어판 '태백산맥'
일어판 '태백산맥'
'숄로호프나 솔제니친의 작품처럼 세계적으로 인정된 대하소설들은 일본에서 많이 번역되었지만, 한국의 대하소설을 완역하는 것은 '태백산맥'이 최초의 일이다.'-슈에이샤
등장인물의 목소리가 나오는 오디오 장치
헤드폰을 끼고 버튼을 누르면 등장인물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 중 소화, 염상구, 정하섭 등 주요 인물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용자가 너무 많아서인지 헤드폰의 스폰지가 너덜너덜 닳았습니다. 저도 들어봤는데 '소화'의 목소리는 더빙영화를 보는 것처럼 조금 생동감이 덜했지만, '염상구'의 질박한 남도사투리는 정말 생생했습니다. 사투리가 어찌나 리얼한지, 십몇년 전 <태백산맥>을 처음 읽을 때 '염상구'란 인물에게서 느꼈던 포악하고 무서운 느낌이 되살아났습니다.
옹석벽화 '백두대간의 염원'
"<태백산맥>이랑 <아리랑><한강>을 쓰고 났을 때 독자들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게 공통적인 독후감이었어요. 작가의 큰 기쁨이지. 역사의 진실을 보여주려고 의도했던 건데 바람직한 결과로 나타났으니까요. 마흔에 시작해서 대하소설 3편 끝내고 나니 60이에요. 내 중년이 어디론가 증발한 듯 허무함도 있었지만 그래도 보람이 있었지요."
얼마 전 경향신문에 난 조정래 소설가의 인터뷰 기사 중 일부입니다. 중년에 시작해서 글 3편 쓰고 나니 노년이라는 말에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작가들은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짧은 블로그 글 한편 쓰면서도 이렇게 끙끙대고 있으니 말입니다.
태백산맥 세트 - 전10권 - 조정래 지음/해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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