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이 던진 화두, 노회찬의 답변
2018년 7월 23일 이후, 어디까지 왔나
노회찬 의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후 2년여가 지나갔다. 그의 마지막이 동화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그가 걸어온 길을 본 이들이라면 그의 부재를 슬퍼했고 죄책감을 느꼈다. 특히나 진보정치가 지나온 길을 아는 이들이라면 그의 부재에 대해 깊은 고통마저 느꼈다. 그가 걸어온 길 자체가 진보정치 역사 그 자체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떠나고 2년, 현재 진보정치는 어디에 있을까. 진보정당의 흥망성쇠를 잘 보여주는 총선 정당명부 비례대표 선거에서 진보정당의 득표율을 보면 2004년 17대 총선 때의 지지율을 복구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21대 총선에선 비례대표 배분 방식이 바뀌었지만 정의당의 정당 득표율은 9.67%에 그쳤다.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 전략으로 의석도 5석만 얻었다. 정의당은 지역구에서 심상정 의원 한 명만 승리했다. 기대를 모았던 창원 성산, 안양 동안, 인천 연수 등의 지역구에서 패배했다.
노회찬이 떠난 이후 진보정치는 더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어느 지점이 문제이며, 어디서 대안을 찾아야 할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진보정치의 상징이었던 노회찬이 걸어온 길, 진보정당이 걸어온 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적당한 책이 올해 출간됐다.
▲ 전태일에서 노회찬까지 청년들에게 들려주는 한국 진보정치사 | |
ⓒ 산지니 |
책의 시작점은 박정희와 전태일이다. 저자는 박정희 정부 당시의 경제성장은 박정희 대통령의 영도력이 아니라 착취당했던 노동자들의 성과임을 지적한다. 그 당시 착취당해온 역사 속에서 단지 법을 지켜달라고 절규하며 스스로 분신한 이가 있는데, 그가 바로 전태일이었다. 저자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노동자를 위한 세력이 필요하다'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이후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더욱 커졌고 1983년 구로공단에서는 대우 어패럴를 중심으로 가리봉전자, 선일섬유, 효성물산 4개 노조가 동시 파업을 결행한다. 구로동맹파업으로 불리는 이 움직임을 전두환 정권은 강하게 탄압했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구로동맹파업을 통해 노동자들도 독재정권과 싸워야 한다는 점을 자각했고, 노동자들은 서울지역노동운동연합(서노련)을 결성하여 정치적 노동운동 조직으로 나아갔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노동계도 폭발하던 사회개혁 욕구를 기반으로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투쟁에 나서게 된다. 87년 현대엔진을 시작으로 노조들이 빠르게 결성되었고 현대그룹 11개 계열사 모두에서 노조가 형성되기에 이른다. 현대는 이를 이유로 휴업을 선언했으나 노조는 울산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이같은 움직임은 전국으로 퍼져 약 122만 명이 노동자 투쟁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87년 7~9월 동안 열렸던 노동자대투쟁의 시작이었다.
▲ 1987년 울산노동자대투쟁 당시 남목고개를 넘은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울산 시내로 진출하기 위해 지게차 등 중장비를 앞세워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앞을 지나고 있다. | |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노동세력이 정치적 힘을 가져야 한다고 결심하게 되는 사건이 또 발생한다. 1991년 보수정당인 신한국당의 노동법 개정안이 날치기로 처리됐다. 이 법안엔 정리해고에 대한 내용도 들어있었다. 당시 민주노총 노동세력은 연인원 약 350만 명이 참가한 노동법개정투쟁 총파업에 돌입했지만, 이를 막아내지 못했다. 이때부터 노동자의 정당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구체적 움직임이 시작 되었다.
진보정당의 개막과 몰락
노동계는 국민승리21이라는 정당을 창당했고 1997년 대선, 1998년 지방선거에서 나름대로 성과를 보였다. 그리고 2000년 1월 노동자 세력은 민주노총, 전국연합, 전빈련까지 연합해 민주노동당을 창당하게 된다. 민주노동당은 2002년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를 내세워 약 95만 표를 획득했고 2004년에는 정당명부 비례대표 선거 정당득표율 13.1%를 기록한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선전할 수 있었던 데는 노회찬 사무총장의 방송 출연 영향이 컸다. 기존의 정치 문법을 무너뜨리고, 약자를 유쾌하게 대변하던 그의 모습에 사람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그렇게 민주노동당은 많은 지지를 받게 되었고, 이에 힘입어 노회찬 사무총장은 새벽까지 가는 경쟁 끝에 자유민주연합 비례대표 후보 1번 김종필 후보를 누르고 의회에 입성하게 된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안에서는 평등파와 자주파의 갈등이 내재되어 있었다. 또 일심회 사건과 2007년 대선 패배에 대한 혁신안이 부결되면서 분열의 시기를 겪게 된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으로 분열된 직후 치러진 2008년 총선에서 진보정당들은 합계 8.61%의 지지율만을 얻었다. 진보정치의 스타였던 노회찬과 심상정은 진보신당 소속으로 선거에 참여했으나 패배했다.
이후 진보정당의 역사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노회찬 후보는 서울시장에 나갔으나 민주-진보진영 표 분할로 인해 보수정당이 승리하도록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경기도지사 선거에서는 심상정 후보가 나섰으나 당시 국민참여당 후보였던 유시민 전 장관을 지지한 후 사퇴해 당내 비판을 받게 되었다.
진보진영은 위기에 빠졌다. MB 정부를 심판하자는 국민적 열망 속에서 2011년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을 탈당파로 구성된 새진보통합연대, 국민참여당이 합세하여 통합진보당을 결성한다. 2012년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은 정당명부 비례대표 투표에서 10.3%를 획득한다. 민주통합당과의 연합공천으로 지역구 7석을 얻고, 비례대표로 6석을 얻으며 나름대로의 성과를 얻었으나 여전히 원내 교섭단체 의석 기준인 20석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성과도 잠시였다. 선거 이후 당내 경선에서 총체적 문제가 발견되면서 당권파인 자주파와 비당권파인 평등파, 국민참여계는 분열했고 또다시 분당의 길을 걷게 된다. 게다가 노회찬 의원은 삼성과 검찰의 관계를 폭로한 사건으로 의원직을 상실하게 된다. 당시 노회찬 의원은 '본인의 행동은 정의로운 행동이기에 그때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며, 진정한 판결은 국민들이 해줄 것'이라는 요지의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다.
평등파와 자주파 일부, 국민참여당 계파가 연합하여 창당한 정의당은 2016년 총선에서 7.23%의 득표를 하게 된다. 또한 노회찬과 심상정 모두 지역구에서 당선되며 6석 의석을 유지, 정치적 상수로 진보정당이 자리를 잡았음을 보여주었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정의당은 존재감을 보여주었고 2017년 대선 후보였던 심상정 후보는 진보적 색채를 분명히 해 약 201만 표를 얻었다. 진보정당 후보 역사상 가장 많은 득표였다.
▲ 노회찬 없는 국회...흐느끼는 심상정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 2018년 7월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현관 앞에서 열린 고 노회찬 의원 국회 영결식에서 조사를 한 후 돌아서며 흐느끼고 있다. | |
ⓒ 남소연 |
노회찬, 그 이후
2018년 7월 23일, 노회찬 의원은 스스로 삶을 마감하게 된다. 특검에 따르면, 당시 드루킹은 노회찬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줬다고 진술했다.
노회찬 의원의 장례식에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추모를 할 수 있었다. 모두가 차별 없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겠다던 노회찬 의원의 유지가 재현된 현상이었다.
전태일이 질문을 던지고, 수많은 노동자와 노조가 답을 구했으며, 노회찬은 진보정치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그 처절하고도 고된 과정이 노회찬이 걸어온 길이었음을 알았기에 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에 눈물을 흘렸다. 노회찬 의원이 떠난 이후의 진보정치는 지금 어디쯤 와있을까.
<전태일에서 노회찬까지>는 진보정치가 걸어온 수많은 사건 사고 속에서 조금씩 발전해온 궤적을 보여준다. 이제는 '노회찬 이후의 진보정치가 가능하냐'는 질문에 진보정치가 스스로 답해야 한다. 그래야만 진보정치가 발전해온 궤적을 이어나갈 수 있다. 이것이 노회찬이라는 상징이 마지막으로 진보정치에 주고 간 과제일 것이다.
전태일에서 노회찬까지 - 이창우 지음/산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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