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인이 본 한반도의 지정학적 운명은?

외교관이 쓴 ‘벽이 없는 세계’… 권력·지리학·정체성 관점서 국제정치 해석

말레이시아 외교관 아이만 라쉬단 웡이 쓴 지정학 전략서 ‘벽이 없는 세계’를 역시 외교관인 정상천 박사(왼쪽)가 번역 출간했다.

“2018년에 국제관계 학자들과 대외정책 결정자들 사이에 철저하게 논의되고 논쟁되었던 한 가지 이슈는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의 붕괴였다. 결론적으로, 오늘날 강자의 부상은 국민에게 혜택을 준다고 알려진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시스템에 대해 국민들이 느끼는 좌절감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민주주의가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할 때, 독재주의가 대안으로 부상한다.”

 

말레이시아 외교관이 펴낸 ‘벽이 없는 세계: 국경 없는 세계에 필요한 지정학 전략’(산지니, 정상천 역)이 번역 출간됐다.

 

저자 아이만 라쉬단 웡은 말레이시아 외교관이자 지정학 연구자로 서구의 시각에서 벗어난 새로운 측면에서 미국 중국 터키 러시아 등 세계 주요국의 지정학 전략을 통한 국제정세를 분석했다. 특히, 강국에 둘러싸인 한반도의 정세와 지정학에 관해서 언급한 부분은 한국 독자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주고 있다.

책은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의 붕괴와 포퓰리즘 부상을 필두로 한 50개의 이슈를 통해 국제 정치 현안을 다룬다. 현재 국제정치는 중국과 미국의 무역 분쟁과 기술 패권 다툼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양국의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거대한 전쟁으로 치닫고 있으며,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가 점점 벽을 쌓아가는 상황이다.

 

책은 이러한 복잡다단한 국제정치 현상을 심도 깊게 분석하고 지정학의 세 가지 주요 열쇠인 권력, 지정학, 그리고 정체성을 오늘날 국제정치의 주요 현안과 관련시켜 풀어낸다.

 

책은 우선 권력의 축과 이동, 힘의 균형에 대해 설명한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국제법이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강대국의 이익을 옹호하는 데 흔히 사용된다. 예를 들어,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을 때 전 세계가 이 사건을 비난했고 일부 국가는 더 폭력적인 수단으로 이라크를 징벌했지만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는 모든 나라가 침묵했다는 것. 강자만이 살아남는 국제정치에서는 자국을 보호하기 위해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친구도 없듯”이, 권력과 힘의 이동을 파악하고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두 번째는, “지리는 운명이다”라고 할 정도로 각국의 지리적 요건을 이해하는 것이다. 모든 국가는 지리적 배경이 있다. 인접 국가들은 비인접 국가보다 더 위협적이고, 종종 내륙의 이웃 국가들이 해상의 이웃 국가들보다 더 위협적이기도 하다. 지리적 근접성으로 인해 프랑스와 독일은 서로에게 매우 적대적이었고, 결국 이로 인해 두 번의 세계대전이 발발하였다. 즉, 외교 정책과 전략을 수립에 있어서는 가치뿐만이 아니라 지정학적인 요소까지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 번째는 정체성이다. 정체성은 지정학에도 영향을 미친다. 유럽 국가의 일원이 되고자 했다가 이슬람 의식을 가진 국가로 바뀐 터키의 정체성 변화는 그들의 정치적 나침판을 유럽에서 중동으로 바꿈으로써 전략의 변화를 가져왔다. 미국은 서방문화의 핵심국가이고, 러시아는 동방정교, 중국은 중화문화, 인도는 힌두의 핵심국가이다. 반면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이슬람들의 국가는 그들 문화권에 중심 국가가 없어 중심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분쟁을 하고 있다. 앞으로 국제정치는 각 문화권의 중심 국가들의 정체성 확립과 핵심국가가 되기 위한 투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한다.

 

책에서는 또한 강국에 둘러싸여 있는 한반도의 정세에 관해서도 언급한다. 특히 ‘트럼프식 정치’, ‘바람직하지 않은 한국의 통일’, ‘김정은과 핵 벼랑끝 전술’, ‘일본 되찾기’ 등은 한반도의 미래와 동북아 정세를 가늠해볼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다.

 

저자는 김대중정부부터 문재인정부까지 북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해서도 짚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만남에 대해 분석하면서 둘의 만남으로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조급한 기대이며, 김정은은 서방 국가들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결코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벽이 없는 세계’에는 강대국들뿐만 아니라 필리핀, 싱가포르, 베트남 등 비교적 조명 받지 못한 아시아의 여러 나라도 포함된다. 책을 보다보면 필리핀은 왜 중국에 적대적인 지, 베트남은 왜 중국과 애증의 관계인지, 북극 주변국가로 구성된 북극이사회에 왜 적도 근처에 있는 싱가포르가 참여하는지 쉽게 이해가 된다.

 

역자 정상천 박사는 프랑스 파리제1대학에서 공부한 외교관 출신 학자이다. ‘아시아적 관점에서 바라본 한불통상관계’, ‘불교 신자가 쓴 어느 프랑스 신부의 삶’, ‘나폴레옹도 모르는 한-프랑스 이야기’, ‘한국과 프랑스, 130년간의 교류’,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등의 저서가 있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원문기사바로가기


벽이 없는 세계 - 10점
아이만 라쉬단 웡 지음, 정상천 옮김/산지니


Posted by _열무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