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화재 경보기의 특별한 감지 기능, 대단하다
[서평] 이준수 교사 지음 '선생님의 보글보글'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쌍둥이 아이들은 선생님 복이 많았다. 첫 사회생활이었던 4세반 어린이집 선생님부터 초등학생으로 지낸 6년 내내 아이들과 선생님은 궁합이 잘 맞았다. 특히 초등학교에 다닐 때 그 귀하다는 남자 선생님을 2번이나 담임선생님으로 만났다.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남자 선생님이었다. 학부모 상담 주간일 때 나는 내심 긴장했다. 아무 이유도 없이 여자 선생님보다 조금 불편했다. 기우였다. 직접 만나 본 선생님은 선이 굵은 인상과 대비되는 섬세한 분이었다.
선생님은 자신이 체격이 크고 목소리도 걸걸해서 아이들과 친근해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런 이유로 아이들과 대화할 때 반드시 자세를 낮추어 눈을 맞추고 이야기한다고 했다. 그런데 재밌게도 아이들과 유대감을 쌓기 위해 했다는 이 행동에 아이들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엄마, 선생님이 내 눈을 보면서 말할 때 칭찬하시는데도 꼭 혼나는 기분이 들어서 긴장돼. 오늘도 교장실로 상장 받으러 가라고 말하시는데 혼나는 줄 알고 깜짝 놀랐어."
학기 초반에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선생님의 마음이 전달되었는지 이 말을 하는 아이의 목소리와 표정에서 나는 어떤 경계심이나 공포심도 느낄 수 없었다.
이 '보글보글'의 주체는 누구일까
책 <선생님의 보글보글>을 읽으면서 나는 아이들의 선생님을 떠올렸다. 책에 나오는 이준수 선생님의 체격 때문이었다. 182센티미터에 몸무게 79킬로그램 내외. 만나보지도 않은 타인의 키와 몸무게만으로 외모를 상상하는 건 커다란 실례지만 나는 이 선생님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나 혼자서만. 오마이뉴스와 브런치에 '로또교실'을 연재하는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이 선생님이 있는 교실을 상상해보곤 했었다.
책으로 만난 교실은 또 다른 세상이었다. 보글보글. 사전적 의미로는 '적은 양의 액체가 계속 야단스럽게 끓어오르는 소리를 나타내는 말'. 책을 읽으면서 나는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교실의 주체가 누구인지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가르치는 게 좋아서 교사가 되었다. 학교밥 먹은 지 십년이 지났지만 수업하는 게 지겹지 않다."
"우리 반 학생에게 신뢰를 잃고 싶지 않다."
"내가 시골에서 교사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공벌레 쥐고 지각하는 보미를 만날 수 있었을까."
"교사는 매년 이별하는 사람이다. 주기적으로 아이들을 떠나보내고, 근무지도 일정치 않다. 나는 차라리 이별 기념 선물을 남기는 쪽을 택한다. 우리 반은 방학을 하루 이틀 남기고 요리 수업을 한다."
"사람은 저마다 한 가지 이상의 재주를 타고난다. 본인은 잘 모를지라도."
"우리 이번 학기 너~어무 좋았지 않냐?"
"맞아요. 카나페도 먹고."
"담임 선생님도 좋았지? 그치?"
"예, 맞아요."
내가 책을 읽으며 마음에 쏙 들었던 구절들이다. 보글보글의 주체는 선생님과 반 아이들 모두였다. 학생 한 명 한 명에 대한 선생님의 애정이 느껴졌고 그 애정을 듬뿍 받고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특히, 공룡지우개가 분실되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선생님의 현명한 대처 방법이 좋았다. 아이들이 물건을 분실하는 일은 흔하게 일어난다. 미숙한 아이들의 부주의가 대부분이지만 이번 사건은 달랐다.
"공룡지우개가 없어졌어요"라는 말에 선생님마저 어떤 물건인지 단박에 기억해내는 특별한 지우개. 분명 누군가가 가져갔다는 느낌이 들었다. 선생님은 고전적인 방법을 이용했다.
"모두 눈 감으세요.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요. 순간적으로 욕심이 나서 지우개를 가져간 아이는 조용히 손 들어주세요. 지금 진실을 밝혀주면 혼내지 않고 넘어가겠습니다."
교실은 여전히 적막했고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선생님은 미동도 하지 않는 아이들이 순간 미웠지만 동시에 이해도 되었다. 좁은 탄광촌 동네에서 스스로 도둑놈 낙인을 찍을 아이가 있을까. 선생님은 감정을 담아 연기를 시작했다.
"CCTV를 확인하겠습니다. 여러분을 믿었는데 무척 아쉽습니다. 제자의 범죄 현장을 봐야만 하는 고통을 아시나요? 솔직히 말하면 실망스럽네요. 내일 봅시다."
사생활과 인권 보호를 위해 교실 내부는 CCTV가 없다.
'설마 아이들이 교실 천장에 달린 게 화재경보기라는 걸 알까? 만일 그랬다면 내 터무니없는 협박에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겠지?'
하지만 역시 아이들은 순수했다. 다음날 트리케라톱스 지우개는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도 상처받지 않고 사건은 종결되었다. 진실은 트리케라톱스 지우개만 알고 있다.
나도 같은 경험이 있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소중한 물건을 분실했고 그 당시 담임선생님의 현명한 대처로 잘 해결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 아이와 물건을 가져갔던 친구가 동시에 걱정되었다.
그 사건으로 아이들이 친구라는 개념을 어떻게 기억할지도 우려되었고, 친구의 나머지 학교생활도 염려스러웠다. 담임선생님은 사과하는 내용의 손편지를 물건과 함께 전달해 주었고 아이들은 그 후로도 친구로 지낼 수 있었다. 그때도 화재경보기가 CCTV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화재경보기는 연기만 감지하는 게 아니라 잃어버린 물건을 찾고 싶은 아이들의 불타는 마음도 감지해주는 고마운 물건임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선생님에게 받은 따뜻한 위로의 한마디
보글보글거리는 교실에서는 코로나19를 비웃듯 언택트 연극수업이 한창이었다. 선생님의 여러 회유로 투명 가림막 안에서, 목소리만으로, '강아지똥'을 연기하는 아이들.
보름에 걸친 언택트 연극 단원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을 때 우리 반은 예전에 알던 그 반이 아니었다. 먼 곳으로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의젓한 표정이 얼굴에 남았다.
나는 그 의젓한 표정의 아이들이 보고 싶어졌다. 그러다 느닷없이 눈이 따가워졌다.
합계 출산율이 1도 안 되는 시대에 아이를 낳아 든든하게 먹이고, 깨끗하게 입혀 학교 보내는 것만으로도 부모들께 감사드린다. 너무 자식에게 미안해하지 말기를…. 충분이 잘하고 있다고 교사로서 꼭 말씀드리고 싶다.
초등학교의 마지막 학년, 코로나19로 활동의 제약이 많았던 쌍둥이들의 지난 2020년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갔다. 쌍둥이들은 초등학생의 마지막 학년이 6학년을 도둑맞은 것 같다고 자주 말했다. 학교에 매일 등교도 못하지만 막상 등교해도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어른인 나도 처음으로 겪는 힘듦이었다. 아이들은 오죽했을까. 어른으로서 부모로서 항상 미안했다. 그 감정은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쌓여 있었다. 선생님의 담담한 말은 마음속에 쌓여 있던 미안함을 따스하게 씻어주었다.
제빵사가 되려면 수학을 잘 해야 되냐고 묻는 아이에게 밀가루랑 우유 비율 정도만 맞출 정도면 충분하다고 대답해주는 선생님. 수년째 나머지 공부를 하는 아이가 오답 노트 걱정 없이 치아바타를 구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소금 몇 그램, 우유 몇 밀리미터에 주눅 들지 않고 거침없이 오븐 전원을 누를 수 있기를, 코로나37, 코로나44가 찾아와도 아이의 가게만은 영업 제한 조치에 걸리지 않고 양껏 빵을 팔 수 있기를. 아이의 가게에서 산 빵을 나머지 공부하는 어린 후배들에게 간식으로 줄 수 있기를 바라는 선생님.
책을 읽는 내내, 아이들을 향한 이준수 선생님의 이해와 배려와 따뜻함을 느꼈다. 모든 교실이 보글보글해지길 바라며 나는 이 선생님에게 무한한 감사를 보내고 싶다. 꾸벅.
출처: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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