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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순창고추장과 남근석 - 전라북도 여행(1)

by 산지니북 2011. 7. 21.

1박 2일의 전라북도 여행. 짧은 여행이었지만 이번에도 '답사여행의 길잡이' 가 우리의 소박한 여행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동학농민전쟁의 주무대였던 정읍과 변산반도 국립공원으로 유명한 부안 일대를 주로 둘러볼 계획이었습니다. 순창이 정읍 가는 길목에 있어 잠깐 들러 점심이나 먹고 갈 요량이었는데, 막상 순창읍에 오고 보니 점심 먹긴 좀 이르고 또 언제 이곳에 다시 올까 하는 마음에 읍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돌장승이라도 찾아보기로 하였습니다.

돌장승 찾아 가는 길에 만난 개천.(남계리 양지천)

 도시에서는 이런 맑은 물이 흐르는 개천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데, 읍의 규모가 크지 않고 오염원이 적어서 그런지 물이 무척 깨끗했습니다.
 

돌장승이 있어야 할 자리에 전봇대만 뎅그러니...
근처 가겟집에 물어보니 돌장승이 이사갔다고 합니다. 이유는 지주들의 민원때문. 문화유산이 자리잡고 있는 땅이라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지주들의 불만이 많았나봅니다. 제아무리 중요민속자료 제00호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어 있은들, 관광 수입원이 되는 이름난 볼거리도 아니고 누군가에게는 그저 자리만 차지하고 앉은 구박뎅이 돌덩어리에 불과했겠지요.

장승은 보통 마을 입구에 남녀장승을 마주보도록 세워 길목을 지키는 역할을 하는데, 순창읍의 경우엔 풍수상 북방이 허하다 하여 장승 두 기가 북쪽을 바라보도록 세웠졌다고 합니다. 원래는 남계리와 충신리에 각각 한 개씩 있었는데, 지금 자리로 옮기면서 두 장승이 상봉했습니다.

원래 자리에서 200여미터 떨어진 군청 옆 공원에 자리잡은 남계리 돌장승. 중요민속자료 제 102호.

장승이 웃고 있습니다. 일반 장승과 다르게 손도 달려 있어 더 귀여운 모습입니다.

충신리 돌장승. 중요민속자료 제101호.

남계리 장승과 다르게 좀 상한 모습입니다. 만들 때부터 원석 자체가 이랬는지도 모르구요. 얕게 조각되어 있지만 눈, 코, 입 윤곽은 알아볼 수 있겠네요. 턱 아래에 작은 동그라미 두개 보이시나요. 젖무덤을 새겨 여장승임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옛 조상님들의 유머감각이 돋보입니다.

경제적 가치의 잣대를 들이대 본래 자리에서 쫓겨나 지금은 체육공원 구석에 철봉대랑 나란히 서있지만, 과거엔 마을을 지키는 지킴이로 귀한 대접을 받았을 두 장승의 모습이 좀 처량해 보였습니다. 없애지 않고 이나마 보존되고 있는 것이 다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읍내에서 먹은 쌈밥 정식

여행에서는 먹는 즐거움을 빼놓을 수 없죠.
순창읍내를 둘러보니 한정식집이 많았는데 점심으로 먹기엔 좀 부담스러워 그냥 '가정식 백반' 집을 찾았습니다. 겉은 허름했지만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어요.
찬은 별 특별할 게 없어 보이지만 하나같이 맛있었구요, 특히 순창고추장으로 맛을 낸 제육볶음이 일품이었습니다. 양도 어찌나 푸짐한지요.  

순창을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순창고추장이다. 달큰하다, 알싸하다 등등 외국어로는 번역하기 어려울 형용사들을 동원해야 표현되는 이 고추장의 독특한 맛은 예전부터도 유명해서, 조선 시대에는 왕에게 진상되었고 지금도 순창이라는 지명과 늘 붙어다닐 만큼 명성을 누리고 있다. 이 지방의 토양과 기후에서 자란 콩과 특유의 수질이 그 맛의 비결이라서 다른 곳에서는 아무리 해도 같은 맛을 낼 수 없다고 한다.
-답사여행의 길잡이(전북 편)

마을 사람들의 쉼터

농촌에는 마을마다 이런 모정이 있어 마을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하지요. 모정 그늘에서 다리쉼을 하던 중 당산나무를 보러 왔다고 하니 한 어르신께서 '따라오라'며 선뜻 나무까지 안내를 해주셨습니다.

입석마을 당산나무(팔덕면 구룡리)

입석마을 앞 너른 논 한가운데 서 있는 이 나무는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입니다. 멀리서 볼때부터 포스가 느껴졌는데 가까이 가보니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높이 22.6미터, 둘레 4.6미터의 350살 먹은 거대한 느티나무입니다.

나무를 구경하고 더위를 식히느라 또 모정에서 쉬고 있는데, 지나가던 어르신이 이방인 행색의 우리를 보고 "어데서 왔냐"고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부산서 왔고 순창을 여행중이라고 하니 갑자기 목소리톤이 높아지시며 5분 가량 순창 자랑으로 입에 침이 마르셨습니다. 여까지 왔으니 딴 건 몰라도 이건 꼭 보고 가야 한다며, 이 고장 사람 아니면 잘 모른다는 산동리와 창덕리의 남근석을 소개해주셨습니다.

창덕리 남근석(전라북도 민속자료 제 15호)

크기는 약간 작지만 산동리 남근석과 생김새가 거의 비슷해 같은 사람이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고 합니다.

산동리 남근석(전라북도 민속자료 제 14호) 매우 정교하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500여 년 전에 한 여장부가 남근석을 두 개 깎아서 치마에 싸가지고 오다가 무거워서 하나는 창덕리에 놓고 하나는 산동리까지 가지고 와서 세웠다는 전설이 있지만, 실제로 언제 누가 세웠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요즘 사람들에게는 조금 남사스럽게도 보이는 이런 물건을 이토록 진지하게 만들어 세운 사람들의 삶 속에서 이것이 가졌을 의미를 가늠해볼 뿐이다. 한때 마을 청년들이 상스럽다고 이 바위를 넘어뜨린 적이 있는데 마을의 샘이 말라버려 다시 세웠다고 한다. 
-답사여행의 길잡이(전북 편)

겨울에도 마르지 않는 '찬물샘'

발을 담궜는데 10초도 못견딜 만큼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샘솟는 '찬물샘'입니다. 모정에서 만난 동네아주머니들이 얘기해준 곳인데 옛날에 빨래터로 쓰이던 곳이랍니다. 이 찬물샘은 도로에서 한참 아랫쪽에 있어서 모르고 지나치기 쉬운데 인심 좋은 동네분들 덕분에 발이 호강했습니다.

강천산 맨발산책로

순창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강천산의 '맨발 산책로'.
여기도 입석마을 어르신의 강력추천으로 가게 되었는데 안가보면 후회할뻔했습니다.

강천산은 순창의 군립공원으로 울창한 숲과 맑은 물로 가득 찬 수십 리 계곡을 안고 있어 근방에선 꽤 이름난 곳이라고 합니다. 

걸어보니 이곳이 왜 인기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왕복 5km정도의 꽤 긴 거린데 맨발로 걸으니 전혀 피곤하지 않고, 서늘한 흙의 감촉이 정말 시원하고 좋았습니다.

가끔씩 뒷산을 맨발로 오르는데 사람들 시선이 따갑거든요.
이곳은 오히려 신발 신고 걷는 사람이 시선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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