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이크, 부산

 

 

부산을 무대로 불러오다

로컬에 시선을 둔 여섯 작가의 부산 이야기

 

부산의 역사와 현재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테마소설집 모자이크, 부산이 출간되었다. 김민혜, 박영해, 조미형, 오영이, 장미영, 안지숙 여섯 명의 작가가 부산을 배경으로 쓴 이 테마소설집에는 로컬이 아니라면 알기 힘든 부산의 공간을 소환해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섬세한 눈으로 미시적인 분석을 할 때, 우리가 사는 도시의 도처는 매우 새롭고 두껍게 서술될 수 있다. 어느 마을에 살든지 그 삶의 구체를 이해하려는 섬세한 정신의 작가가 있다면 멋진 소설 작품을 인양하는 일은 언제나 가능하다. _구모룡(문학평론가)

 

각 소설은 부산시민공원, 증산공원, 임랑 바닷가, 센텀시티, 문현동 돌산마을, 거제리의 풍경을 배경으로 부산의 정경을 담는 것은 물론이고, 각각의 장소가 지닌 슬픔을 조명하기도, 아름다움 속에 숨겨진 폭력을 서술하기도 한다. 대한민국 제2의 도시 부산은 항상 아름다운 바다를 연상시키는 관광도시로 기억되어 왔다. 이 여섯 명의 작가가 풀어내는 이야기들을 통해 부산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흩어진 조각들을 모아 새로운 부산을 만들다

 

김민혜의 <다락방의 상자>는 우연히 발견된 상자로 하여금 하야리아 부대가 주둔했던 부산의 모습을 그려낸다. 진교는 시민공원 인근 주택으로 이사해 집수리를 하던 중 다락방에서 정체 모를 상자를 발견한다. 상자 속에는 90년대에 한국 여성과 미군이 주고받은 러브레터, 사진 등이 들어 있었고, 그는 소중한 물건을 되찾아 주고 싶다는 생각과 상자에 얽힌 사연에 대해 알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힌다. 진교는 상자를 둘러싼 역사를 추적하며 시민공원을 배회한다.

 

박영애의 <콘도르 우리 곁에서>는 부산진성이 있었던 증산공원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LA에 살던 나는 고국에 들러 예전에 살던 동네에 있는 증산공원으로 간다. 부산진성이 있었던 그곳은 임진왜란 후 공동묘지로 변했고, 동물원 공사가 시작되자 무덤들이 이장되었다. 완성 단계에 있었으나 개원하지 못한 동물원 우리에는 집 없는 사람들이 들어가 살았고,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경계에서 나는 오래도록 힘들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지금 희미하게나마 그들의 말이 들리기 시작한다.

 

조미형의 <귀부인은 옥수수밭에> 주인공 모자이크 아티스트 나백은 부산 임랑 바닷가의 엔진 없는 낚싯배 귀부인에서 홀로 생활한다. 말미잘 매운탕 가게를 하는 우봉과 서핑 샵을 하는 도욱은 예술을 하는 나백에게 SNS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나백에게 말미잘 매운탕을 먹을 것을 강요하고, 그들의 요구는 날이 갈수록 더해간다. 광란의 밤이 흐르고 아침이 밝아오자, 나백은 자신만의 기이하고 파괴적인 작품 창작을 시작한다.

 

오영이의 <아무도 모른다>는 폭력 중독을 이야기하며, 양모의 폭력에 희생된 다섯 살 여자아이의 죽음을 다룬다. 해운대 바다를 안마당으로 거느린 초고층 아파트 안에서였다. 태어나 한 번도 친구를 만들어보지 못한 양모는 폭염이 심한 날 아이를 차에 방치하고 벽에 머리를 박는다. 병아리처럼 유약한 아이는 이유도 모른 채 피투성이가 되어 숨을 거두고 만다. 폭력이란, 이유 따위 없이도 시작될 수 있고 그렇게 중독되기도 한다. 아무도 모르게.

 

장미영의 <끝나지 않은 약속>은 오래전 죽은 엄마에 대한 아이의 애착을 다룬다. 아내인 수진이 뇌종양으로 죽은 뒤 나는 이끌리듯 돌산마을로 오게 된다. 돌산마을은 수진과 내가 함께 자란 곳이다. 어느 날 딸 채영이 배가 불룩한 아줌마가 집 앞에 서 있다 갔다는 말을 한다. 그날 저녁 채영이는 아줌마와 대화를 나누었다고 말하며 아줌마랑 돌산마을에도 간다거나 말없이 사라지는 일이 연이어 발생한다. 나는 수진의 집, 벽화 앞에서 실체 없는 아줌마와 전화 통화를 하고 있는 채영을 발견하고, 채영이의 생일날 수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기로 결심한다.

 

안지숙의 <거제리역에서 도깨비를 만나>는 용서와 화해에 대한 이야기다. 중년에 이른 나는 이혼 위기에 맞닥뜨리고, 노모가 고관절 부상을 당하자 간병을 핑계로 부산 집으로 내려온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오로지 걷는 것으로 삶을 버텨온 나는 매일 온천천변을 걷는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동해선 둘레길을 걷게 된다. 동해선 둘레길은 철도원이었던 아버지와 인연이 깊은 장소다. 둘레길에 들어선 나는 고슴도치 가죽을 덮어쓴 도깨비를 만나게 된다.

 

부산을 머금고 새롭게 나아가는 문학적 공간

 

잠깐 머무는 곳으로의 부산과 살아가는 삶의 터전으로서의 부산은 다른 의미를 지닌다. 거주지라는 것은 그곳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지역의 분위기를 머금게 된다. 그 지역의 과거를 알든 알지 못하든 우리는 지역의 역사를 발 디디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지역의 역사를 새로이 만들어 나간다. 여기 세상으로 뻗어나가는 부산에 관한 여섯 개의 소설이 있다. 부산의 과거를, 또는 현재를 그리며 로컬로서의 부산을 표현한 이 소설들이 부산의 분위기와 역사를 머금고 부산이라는 문학적 공간의 새로운 장을 만들어나갈 수 있길 바란다.

 

 

💙 첫 문장

진교는 집 마당의 화단 턱에 걸터앉았다.

 

💙 책 속으로

p.9 다락방 도배하는데 이게 나왔어예. 버릴까예그는 의아스런 눈빛으로 상자를 받아 들었다. 상자는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박 소장이 목장갑 낀 손으로 먼지를 털어내자 회색 먼지들이 소르르 일어나 햇살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밝은 햇살에 섞인 먼지 입자들이 기묘한 색으로 반짝이며 조금씩 퍼지며 날아갔다. 상자 위에는 ‘Made in U.S.A.’ 라는 글자가 찍혀 있었고 잠금 고리를 열어 보니 사진, 편지, 손목시계, 향수, 카세트테이프, 전자기기 등 잡다한것들이 들어 있었다.

p.50 나는 밤마다 꿈속에서 움찔대는 검붉은 입술을 보는 것이 두려웠다. 그러나 공동묘지 아랫동네에 살면서 겪은 일이나 부산진성 부근의 유령에 대해서는 자신에게조차 섣불리 발설하고 싶지 않았다. 표현하기 힘든 내밀한 감정을 말로 내뱉으면 내가 뜻한 것과 다른, 유치한 무엇으로 변해버릴 것 같았다. 그럴 때면 내가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경계에 고립된 채 홀로 서 있는 것 같았다.

p.91 ‘귀부인이 정박해 있는 옥수수 밭 땅주인이 도욱이다. 밭에 쑥쑥 자라고 있는 옥수수는 말미잘 매운탕 가게를 하는 전우봉 소유다. 가게 앞에 가마솥을 걸어 놓고 옥수수를 삶아 팔고 있다. 무슨 일인지 우봉이 이른 아침부터 밥 먹자고 가게로 불렀다. 나백은 찜찜했지만, 마땅히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우봉이 하는 매운탕 가게에서 바닷가 쪽으로 쳐다보면 귀부인이 한눈에 보인다. 낡은 배에서 하루 종일 배 안팎을 돌면서 뜯었다 부쉈다가 접착제를 바르고 조각을 붙이는 작업만 하는 나백의 일상을 주변 사람들은 다 안다.

p.136 그러다 어느 날인가부터 나를 올려다보는 아이의 그 말간 눈이 싫어 배를 걷어차거나 머리를 벽에 처박았다. 커갈수록 제 엄마를 닮아가는 그 눈이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기라도 한 것 같아 화를 주체할 수 없어지면 나도 나를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럴 땐 눈앞이 하얗게 표백되면서 뇌 속에 주파수 높은 소음이 가득 찼다.

p.174 책꽂이에서 미니 앨범을 꺼냈다. 채영이 아기 때 사진을 몇 장 넘기니 나와 수진이 얼굴을 맞댄 채 찍은 사진 한 장이 보였다. 달랑 한 장 남은 사진이 기억의 조각들을 수집한다. 배가 둥근 달처럼 불룩한 것만 빼면 긴 머리에 안경, 큰 키, 보조개, 수진의 모습이 그림 속 여자의 모습과도 비슷했다. 채영이 그림을 보고 난 뒤의 후유증일까, 제대로 설명되는 게 없었다. 지금 상태로 봐서는 내가 병원 상담을 받아야 할 것 같았다.

p.216 기억이 났다. 세상의 끝을 지나 걸어가던 그곳. 주변이 마을이었는지 논밭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옆으로 하천이 흐르던 길에서 아버지를 만난 일이 또렷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나를 덥석 안았다. 아부지. 울음을 터뜨린 건 내가 아니었다. 젖은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은 아버지가 허엉 울음을 터뜨렸다. 아버지가 우는 바람에 놀라서 나도 따라 울었다. 아버지가 축축한 손수건을 꺼내 내 얼굴을 닦고 코를 풀어주었다. 그날 아버지 손을 잡고 비를 맞으며 걸어간 곳이 거제리 시장통이었다. 시장통에서 아버지와 나는 국밥을 먹었다. 국밥 냄새에 체리 세이지의 초콜릿 향이 섞여들었다.

 

💙 작가 소개

 

김민혜

2015월간문학』 『동리목월문예지로 등단. 금샘문학상 수상, 소설집 명랑한 외출, 장편소설 너의 우산2021년 청소년 북토큰도서 선정

박영해

1996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2008년 부산소설문학상, 2009년 들소리문학상 수상. 소설집 네 사람이 누운 침대, 우리가 그리는 벽화, 종이꽃 한 송이

조미형

2006국제신문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씽푸춘, 새벽4, 장편동화 해오리 바다의 비밀. 2019년 현진건문학상 추천작 각설탕선정. 2021해오리 바다의 비밀중국 청광출판사 판권 계약

오영이

2009문예운동, 2012한국소설, 2015동리목월신인문학상 수상. 2019년 성호문학상(본상) 수상. 소설집 별들은 이제 섬으로 간다,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 현재 경성대학교, 동명대학교, 해양대학교 외래 교수.

장미영

2012년 천강문학상 우수상, 2019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안지숙

2005년 신라문학상 수상, 소설집 내게 없는 미홍의 밝음(나눔도서 선정), 장편소설 데린쿠유. 2019년 아르코 창작기금 수혜

 

💙 차례

더보기

 

다락방의 상자 - 김민혜

콘도르 우리 곁에서 - 박영해

귀부인은 옥수수 밭에 - 조미형

아무도 모른다 - 오영이

끝나지 않은 약속 - 장미영

거제리역에서 도깨비를 만나 - 안지숙

 

후기: 비대면 시대의 호출

 

 

 

모자이크, 부산

김민혜, 박영해, 조미형, 오영이, 장미영, 안지숙 | 232쪽 | 135*200 | 978-89-6545-756-5 03810 | 15,000원 | 20211021

국내도서 > 소설//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김민혜, 박영해, 조미형, 오영이, 장미영, 안지숙 여섯 명의 작가가 부산을 배경으로 쓴 테마소설집. 각 소설은 부산시민공원, 증산공원, 임랑 바닷가, 센텀시티, 문현동 돌산마을, 거제리의 풍경을 배경으로 부산의 정경을 담는 것은 물론이고, 각각의 장소가 지닌 슬픔을 조명하기도, 아름다움 속에 숨겨진 폭력을 서술하기도 한다. 대한민국 제2의 도시 부산은 항상 아름다운 바다를 연상시키는 관광도시로 기억되어 왔다. 이 여섯 명의 작가가 풀어내는 이야기들을 통해 부산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모자이크, 부산

부산의 역사와 현재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테마소설집 『모자이크, 부산』이 출간되었다. 김민혜, 박영해, 조미형, 오영이, 장미영, 안지숙 여섯 명의 작가가 부산을 배경으로 쓴 이 테마소

www.aladin.co.kr

 

Posted by 제나wp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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