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인문학자,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
▶ 40여 년간 학계에 몸담은 인문학자
가감 없는 내부비판을 통해 인문학의 과거, 현재, 미래를 이야기하다
인문학을 업으로 삼기 쉽지 않은 시대이다. 인문학의 중요성이 감소되고 대학의 입학정원이 축소되어 관련학과는 통폐합의 바람을 맞고 있으며, 인문학 전공 교수의 채용 기피와 학문 후속세대의 격감은 이미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렇듯 위축하는 인문학의 현실을 극복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저자 하세봉 해양대학교 동아시아학과 교수는 이 물음에 대해 인문학 내부로부터의 진단이라는 답을 내놓는다.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목소리는 늘 존재했지만, 다만 그것은 국가에 대한 요구가 주를 이뤘을 뿐이다. 내부 성찰이 결여된 채, 국가에 의해 실시되는 사업만으로는 그 근본적 원인을 해결할 수 없다. 지난 40여 년간 학계에 몸담으며 인문학자로 살아온 저자는 인문학의 빠른 쇠락이라는 시대의 흐름에 당사자로 존재했고, 그렇기에 학계 내부의 성찰 부족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그런 저자가 한국학계와 대학사회를 보는 시선의 기록이자, 인문학자로서의 삶에 대한 자가진단이다.
▶ 지방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문학회와 공동연구
이 책은 1부와 2부로 나뉘며, 1부에서는 크게 학회와 공동연구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서울공화국’이라는 말이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존재이듯, 서울중심주의는 우리 생활 전반의 영역에서 드러나고 있는 문제이다. 학계 역시 이를 피해 갈 수 없다. 그러한 현실 속에서 저자는 자신이 속한 ‘지방’학회를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1장에서 저자는 부산에서 연구활동을 펼친 지방학자의 시각에서 지방 사학회의 현장을 보고한다. 그가 몸소 느낀 지방학회의 실상과 바람직한 운영 방식에 대한 골몰은, 여전히 수도권과 지방의 이원화가 현재진행형인 현 학계의 현실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던진다.
2장과 3장에서는 저자가 공동연구에 직접 참여하며 느낀 점을 바탕으로, 공동연구가 앞으로 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선 2장에서는 저자가 부산대학교 인문학연구소의 공동연구를 수행하던 당시의 시점에서, 한국 인문학의 위기가 어떻게 전개되어왔는지 그 과정을 소개한다. 또 동시에 공동연구의 정체성, 즉 무엇을 어떻게 공동으로 연구할 것인가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드러낸다. 3장에서는 저자가 한국해양대학교에서 전임교수로서 공동연구에 참여했던 당시의 시점에서 인문한국(HK)사업에 관한 내부비판을 펼친다. 인문학에 대한 정부의 대표 지원사업인 HK사업은 방대한 규모의 조직과 성과의 산출로 인문 연구의 생산방식에 상당한 변화를 초래하였는데, 저자는 과연 이 성과가 정말 의미 있는 것인지에 대해 내부의 시선으로 질문을 던진다.
▶ 사학의 현장에서 인문학을 반성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다
2부에서는 전공영역의 현실과 그 전망을 소개한다. 오랜 시간 사학자로서 살아온 저자는, 1장에서 한국의 역사학 가운데서도 동양사라는 분과학문의 연구성과가 얼마나 어떻게 유통되고 소비되고 있는가를 점검한다. 유통의 측면에서 비평의 기피와 부재를 문제로 지적하고, 소비의 측면에서 역사교육의 대안을 모색하는 저자의 서술을 통해 한국사학계의 큰 맥락을 짚어볼 수 있으며, 동시에 비단 사학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닐 ‘학문의 유통과 소비’ 과정의 문제를 생각해보게 한다.
2장에서는 저자의 오랜 연구영역이었던 중국 근현대사 연구를 한국사회의 정치와 세대, 연구조건의 변화를 축으로 그 상호관계를 짚어낸다. 저자는 이를 통해 기득권자가 된 진보주의 학자들의 제도화된 안주를 읽어낸다.
3장에서는 새로운 문명사적 전환기의 지표가 된 코로나19 이후, 전통적인 인문학도 근본적 전환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저자의 고민과 함께, ‘해양사’라는 분야가 그 전환의 소재가 될 가능성에 대해 언급한다.
▶ 인문학은 앞으로 어떠한 길을 가야 할 것인가
저자는 40여 년의 연구생활을 되돌아보며 묻는다. 과연 내 공부는 무엇이었던가. 스스로의 공부를 되짚으며 자신이 몸담았던 학계 내부를 고찰하고 객관적으로 비판하는 저자의 태도는, 당사자이기에 더욱 정확히 짚어낼 수 있는 내부의 문제를 읽는 이로 하여금 절감하게 한다. 현재 인문학계에 종사하고 있는 학인들은 물론 인문학을 좋아하는 일반인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공감할 만한 주제들을 언급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위축하는 인문학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저자가 내놓았던 열쇠, ‘내부로부터의 진단’을 따라가다 보면 저자의 공부가 미래의 인문학을 위해 남긴 여러 시사점이 드러난다.
인문학의 위기를 세간이 언급해온 지도 한참이 지났지만 그 상황이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코로나19로 모든 분야에서 ‘전환기’를 논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각 분야가 가야 할 길에 대한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 때이다. 인문학 역시 마찬가지다. 선학이 남겼고 남기고 있는 현장의 목소리를 되새기며 앞으로의 가야 할 길을 모색하는 태도가, 인문학의 미래를 위해 가장 필요한 자세 중 하나가 아닐까.
책속으로
P. 24 어쩌면 지적 유희가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실천적인 지식이 될지도 모른다. 현실과는 딱히 상관없지만 새로운 이야기,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들을 청중을 필요로 하는 것이 인문학이다. 인문학의 위기, 역사학의 위기 앞에서 역사학자들은 우선 동업자들의 생산물이 자신들에게 즐길 거리가 되어야 한다.
P. 67-68 인문학 그 가운데서도 순수인문학 거기다 지방의 인문학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인문학의 새로운 출구를 찾기 위한 출발점의 하나는 바로 이 현실, 다름 아닌 3중으로 겹치는 인문학의 위기이다. 지방에서 외국문화를 연구하는, 인문학이라는 현실을 외면하거나 덮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 현실을 직시하는, 바로 이 현실을 우리는 연구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P. 114-115 그런데 대중역사서의 저자 박은봉은 이러한 역사의 대중화에 대하여 “독자를 교화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사고방식”이라고 지적했다. 그의 지적은 이 한 마디로 그치고 있지만, 이 한 마디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군자(君子)’를 ‘소인(小人)’과 대립시키며 천하에 대한 책임의식의 유산을 계승한 동아시아의 지식인들은 19세기 말 이래로 문명개화를 위하여 대중을 계몽시키는 역할을 시대가 부과한 사명으로 떠안았다.
P. 177 인문학적 역사학이 담아야 할 내용은 끊임없이 ‘지금 여기’를 화두로 잡는 문제의식이다. ‘지금 여기’의 출발점은 몸에 배어버려 당연하게 여기는 제도와 시장, 프로젝트, 글쓰기 등 학문이라는 지식생산의 현장을 낯설게 보고 문제 삼는 곳에 있다.
P. 261-262 특별한 재능과 열의를 가진 이들의 그러한 노후 역작은 충분히 상찬할 일이다. 그러나 평범한 노인이 되어가는 우리 모두에게 그런 사례를 들먹이며, 늙은 척하지 말라고 하는 건 하나의 희망고문이기도 하다. (…) 자기 그릇의 크기를 알고, 손을 놓을 줄 알고, 장삼이사(張三李四)에 만족할 줄 아는 것도 하나의 지혜일 터이다. 게을러서는 안 된다는, 뭐든 머리에 채워 넣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쫓겨 허겁지겁 허둥지둥 줄달음쳐온 육십여 년의 세월이었다. 자의 반 타의 반 옭아맨 굴레에서 해방되는 것도 좋은 일이다.
저자 소개
하세봉
부산대학교에서 사학과 학부, 석사를 거쳐 「1910~30년대 上海3대기업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부산대, 동의대, 부경대 등에서 강사 혹은 연구원으로 활동했고, 현재 한국해양대학교 동아시아학과에 재직하고 있다. 東京대학 동양문화연구소 외국인 연구원, 臺灣 중앙연구원 대만사연구소, 中山대학 아태연구소, 復旦대학 역사지리연구소 등에서 방문학자로서 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
박사과정에서 중국 근현대 경제사를 연구하다가, 이후 중국에서 동아시아 근현대사로 연구영역을 확장했다. '동아시아'라는 틀 속에서 박람회, 박물관을 소재로 연구하는 한편, 근래에는 해양사에 관심을 쏟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학계에서 생산되는 역사학 지식 자체에 대하여도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저서로 『동아시아 엑스포의 역사』, 『동아시아 역사학의 생산과 유통』, 『역사지식의 시각적 조형: 동아시아 박물관의 역사와 전시』, 공저로 『인류에게 왜 박물관이 필요했을까』, 『동아시아사의 인물과 라이벌』, 『東亞漢文化圈與中國關係』, 『海洋, 港口城市, 復地』, 『日本の植民地支配の實態と過去の淸算』가 있다. 역서로 『중국사의 시스템이론적 분석』, 『미국은 동아시아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홍콩』 등과 다수의 논문이 있다.
목차
책을 묶으며
1부: 인문학의 현장
1장. 지방 사학회의 현장
지방 사학회의 출범과 풍경
지적 유희의 장
70년대 학번(40대)론
‘지역’과 ‘경계’의 패러다임을 향하여
2장. 한국인문학의 좌표와 중심/주변 연구
‘인문학의 위기’와 그 이후
인문학의 변신
인문학에서 ‘주변’의 발견
새로운 출구를 찾아서-중심/주변 연구
연구소와 공동연구
3장. 인문한국(HK)사업, 갈 길은 어디인가-‘해항도시의 문화교섭학’을 예로
공개적인 내부비판을 위하여
첨삭되어야 할 어젠다
공동연구의 포장과 내실
공생을 위한 연구조직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2부: 역사학의 변모와 ‘코로나19’에의 인문학적 대응
1장. 한국에서 동양사의 유통과 소비
역사: ‘대중화’에서 ‘소비’로
제도적 유통과 소비
시장 속의 유통과 소비
역사의 소비를 위하여
시장의 유혹
2장. 우리들의 자화상-한국의 중국근현대사 연구
자화상의 스케치
반독재와 2세대 학자
급진주의 시대와 3세대 학자
‘진보’의 위상
연구의 표준모델과 한국연구재단
인문정신의 역사학으로
3장. 새로운 상상의 가능성-해양사 연구
해양사에 대한 관심의 증대
어디에서 배를 탈 것인가
교차점으로서의 해양사
어디로 항해할 것인가
덧붙이는 글. 도대체 내 공부는 무엇이었던가-40년 연구생활을 접으며
열등감의 외톨이와 지식인
급진주의 사상으로의 경도
지방학자라는 정체성
잔학비재 독학자의 불운과 행운
제3의 길과 체념의 미학
유행을 따라서, 역사학자에서 인문학자로
하세봉 지음ㅣ264쪽ㅣ148*225ㅣ978-89-6545-765-7 03040ㅣ20,000원ㅣ2021년 11월 22일
인문학을 업으로 삼기 쉽지 않은 시대이다. 인문학의 중요성이 감소되고 대학의 입학정원이 축소되어 관련학과는 통폐합의 바람을 맞고 있으며, 인문학 전공 교수의 채용 기피와 학문 후속세대의 격감은 이미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렇듯 위축하는 인문학의 현실을 극복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저자 하세봉 해양대학교 동아시아학과 교수는 이 물음에 대해 인문학 내부로부터의 진단이라는 답을 내놓는다.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목소리는 늘 존재했지만, 다만 그것은 국가에 대한 요구가 주를 이뤘을 뿐이다. 내부 성찰이 결여된 채, 국가에 의해 실시되는 사업만으로는 그 근본적 원인을 해결할 수 없다. 지난 40여 년간 학계에 몸담으며 인문학자로 살아온 저자는 인문학의 빠른 쇠락이라는 시대의 흐름에 당사자로 존재했고, 그렇기에 학계 내부의 성찰 부족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그런 저자가 한국학계와 대학사회를 보는 시선의 기록이자, 인문학자로서의 삶에 대한 자가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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