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세상 눈물 다 모이는, 부모처럼 넓고 위대한 곳”
2007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출신의 김부상(68) 소설가가 장편 해양소설 〈아버지의 바다〉(산지니)를 출간했다. 그의 바다는 자못 다르다. 인간과 역사,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와 겸손한 성찰에 이르는 바다인 것이다. 그곳이 아버지의 바다이며, 또한 어머니의 바다라는 것이다. 본원의 바다라는 것이다. 정형남 소설가는 “우리나라 해양소설의 수작”이라고 발문에 썼다. 깊이 있는 문장, 전개, 주제로 해양소설의 전환점을 내다볼 수 있을 것인가. 작가는 “그런 의도로 썼다”고 했다.
이 장편의 소재는 1963년 12월 30일 남태평양에서 발생한 ‘지남2호’의 조난사고다. 23명의 선원 중 21명이 목숨을 잃은 한국 원양어업 최초의 대형 해난사고였다. 당시 단 두 명의 생존자 중 한 사람인 문인리(81) 씨가 소설 주인공 ‘일수’의 모델이다.
김부상 해양소설 ‘아버지의 바다’
1963년 원양어업 개척 중 조난
지남2호 대형 해난사고 소재
인간·역사·자연 깊은 성찰 담아
그러나 소설은 해난사고만을 그린 게 아니다. 소설의 바다는 징용으로 끌려간 수많은 조선인이 죽은 남양군도의 아픈 역사를 되짚으며 극일(克日)로 나아가는 바다이면서, 생사의 경계에서 이미 작고한 아버지의 삶과 화해하는 바다이며, 우연과 필연이 교직하는 세상사를 뜨겁게 껴안는 바다이다. 작가의 삶과 통찰이 묻어나는 바다이다.
지남2호가 부산항에서 출발해 참치를 잡으러 가는 남양군도는 일제에 의해 끌려간 숱한 조선인들의 피가 서린 곳이다. 일본군에 동원된 이들만 40만 명이며,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이들은 얼마이며, 위안부와 보국대로 끌려간 이들은 또 얼마인가라는 것이다. ‘전쟁 통에 죽었거나 원주민들 틈으로 자취를 감추었거나 저들의 생사여부를 제대로 밝힌 사람이 여지껏 아무도 없다는 것’(90쪽)이다. 남양군도가 태평한 바다가 아니라 우리 아픔이 그득한 대해라는 것이다. 그 바다를 우리는 몰랐다는 것이다.
그 바다를 극복할 기상은 무엇인가. 소설에서는 표류를 이기고 43명의 목숨을 모두 구한, 15세기 〈표해록〉의 ‘영롱한’ 조선 선비 최부를 계속 불러낸다. 바닷사람들을 바른길로 이끄는 밤하늘의 별자리 같은 이라는 거다. 같은 맥락에서 절묘한 전략으로 일본의 아성을 깨뜨리고 우리나라 원양어업을 처음 개척한 ‘심상준’도 불러낸다.
소설을 쓰기 위해 작가는 2년 전 사모아 현지 취재를 다녀왔다. 4000~1000년 전 폴리네시아인들이 카누를 타고 태평양 곳곳의 섬을 개척하면서 대자연을 몸으로 터득한 감각은 경탄스럽다고 한다. 그들은 별자리, 구름 모양과 색깔, 새들의 종류에 따라 바다를 읽었으며, 심지어 수평선 너머에서 밀려오는 너울의 굴절과 반동까지 몸으로 느끼면서 향로를 정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바다를 읽고 느꼈다는 것이다.
다시 바다는 뭔가. 심해의 찬물은 천년을 주기로 전 지구를 순환하면서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저 푸른 바다가 겉으로 태평한 것 같겠지만 저 속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수많은 생명체들의 세계인 것이다’(111쪽). 깊고 깊은 것이 바다라는 거다.
한국 원양어업 개척에 나선 지남2호는 고작 102톤급에 불과했다. 단 3회 조업 만에 예기치 못한 삼각파도에 휩쓸려 순식간에 침몰하면서 23명 전원은 망망대해에 빠졌다. 구조 요청하러 섬을 향해 수영한 4명 중 2명이 살아남았으며 그중 1명이 주인공이다. 무명(無明)의 바다 속에서 희미해져 가는 의식을 마지막까지 붙드는 것은 미워했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다. 그게 삶의 역설인데 생사의 고투 속에서 그는 아버지의 모질었던 삶을 수긍하게 된다. ‘일일이 말 못하고 산 아버지의 고달팠던 삶이 불쌍했’(251쪽)으며 ‘아버지의 바다는 음모와 계략이 통하지 않는 천연의 세계’(225쪽)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살아돌아온 주인공은 얼키설키한 자신의 가족사를 다 받아들이는데 소설 말미의 문학적 장치가 ‘우연과 필연이 결합한 세상일’을 놀랍게 드러낸다. 아픈 가족사를 묵묵히 견뎠던 어머니. ‘과연 어머니는 세상의 눈물이 다 모이는 넓고 위대한 바다였다’(255쪽). 주인공은 다시 항해에 나서는데 그것은 바다로 떠나는 게 아니라 위대한 바다로 돌아가는 거라고 한다. 작가는 “꼭 쓰고 싶었던 소설”이라고 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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