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
오늘은 지난 화요일, 산지니X공간에서 진행되었던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 - 『모자이크, 부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지난 10월 말에 출간된 따끈따끈한 신간이죠. 『모자이크, 부산』은 김민혜, 박영해, 조미형, 오영이, 장미영, 안지숙 여섯 명의 작가가 부산을 배경으로 쓴 테마 소설집 입니다.
'부산'이라는 도시는 아름다운 바다를 연상시키는 관광도시로 많은 이에게 인식되며 기억되고 있는데요, 이 책의 각 소설은 부산의 정경을 담는 것은 물론이고 각각의 장소가 지닌 슬픔을 조명하기도, 아름다움 속에 숨겨진 폭력을 서술하기도 합니다.
작품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흘러 간 만큼 작가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전, 아직 책을 읽어보지 못하신 분들을 위해 각 작가님의 소설에 대해 짧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의 더보기를 눌러주세요!
김민혜 작가님의 <다락방의 상자>는 우연히 발견된 상자로 하여금 하야리아 부대가 주둔했던 부산의 모습을 그려냅니다. 주인공 진교는 시민공원 인근 주택으로 이사해 집수리를 하던 중 다락방에서 정체 모를 상자를 발견합니다. 상자 속에는 90년대에 한국 여성과 미군이 주고받은 러브레터, 사진 등이 들어 있었고, 그는 소중한 물건을 되찾아 주고 싶다는 생각과 상자에 얽힌 사연에 대해 알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힙니다. 과연 상자를 어떤 역사를 머금고 있을까요?
박영해 작가님의 <콘도르 우리 곁에서>는 부산진성이 있었던 증산공원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LA에 살던 나는 고국에 들러 예전에 살던 동네에 있는 증산공원으로 갑니다. 부산진성이 있었던 그곳은 임진왜란 후 공동묘지로 변했고, 동물원 공사가 시작되자 무덤들이 이장되었습니다. 완성 단계에 있었으나 개원하지 못한 동물원 우리에는 집 없는 사람들이 들어가 살았고,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경계에서 나는 오래도록 힘들어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지금 희미하게나마 그들의 말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조미형 작가님의 <귀부인은 옥수수밭에> 주인공 모자이크 아티스트 나백은 부산 임랑 바닷가의 엔진 없는 낚싯배 ‘귀부인’에서 홀로 생활합니다. 말미잘 매운탕 가게를 하는 우봉과 서핑 샵을 하는 도욱은 예술을 하는 나백에게 SNS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나백에게 말미잘 매운탕을 먹을 것을 강요하고, 그들의 요구는 날이 갈수록 더해갑니다. 광란의 밤이 흐르고 아침이 밝아오자, 나백은 자신만의 기이하고 파괴적인 작품 창작을 시작합니다.
오영이 작가님의 <아무도 모른다>는 폭력 중독을 이야기하며, 양모의 폭력에 희생된 다섯 살 여자아이의 죽음을 다룹니다. 해운대 바다를 안마당으로 거느린 초고층 아파트 안에서였습니다. 태어나 한 번도 친구를 만들어보지 못한 양모는 폭염이 심한 날 아이를 차에 방치하고 벽에 머리를 박습니다. 병아리처럼 유약한 아이는 이유도 모른 채 피투성이가 되어갑니다. 폭력이란, 이유 따위 없이도 시작될 수 있고 그렇게 중독되기도 합니다. 아무도 모르게.
장미영 작가님의 <끝나지 않은 약속>은 오래전 죽은 엄마에 대한 아이의 애착을 다룹니다. 아내인 수진이 뇌종양으로 죽은 뒤 나는 이끌리듯 돌산마을로 오게 되는데요 돌산마을은 수진과 내가 함께 자란 곳입니다. 어느 날 딸 채영이 배가 불룩한 아줌마가 집 앞에 서 있다 갔다는 말을 합니다. 그날 저녁 채영이는 아줌마와 대화를 나누었다고 말하며 아줌마랑 돌산마을에도 간다거나 말없이 사라지는 일이 연이어 발생합니다. 나는 수진의 집, 벽화 앞에서 실체 없는 아줌마와 전화 통화를 하고 있는 채영을 발견하고, 채영이의 생일날 수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기로 결심합니다.
안지숙 작가님의 <거제리역에서 도깨비를 만나>는 용서와 화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중년에 이른 나는 이혼 위기에 맞닥뜨리고, 노모가 고관절 부상을 당하자 간병을 핑계로 부산 집으로 내려옵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오로지 걷는 것으로 삶을 버텨온 나는 매일 온천천변을 걷는데요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동해선 둘레길을 걷게 됩니다. 동해선 둘레길은 철도원이었던 아버지와 인연이 깊은 장소입니다. 그리고 둘레길에 들어선 나는 고슴도치 가죽을 덮어쓴 도깨비를 만나게 됩니다.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 당일에 대한 이야기를 드리겠습니다.
저희 산지니도 부산에 자리잡고 있는 지역 출판사이기 때문에 '부산'을 테마로 하는 책이 출간되는 것은 정말 의미 있는 일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도 부산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쭉 살고 있는 부산 토박이인데요, 그래서인지 작가님들과 함께 나눌 '부산' 이야기가 정말 기대되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제가 아는 부산의 지역이 비치면 참 들뜨더라구요. 문학에 있어서도 서울이 중심이 되어가는 현재에, 제가 익히 잘 아는 시민공원, 센텀시티, 온천천 등이 소설의 배경이 되니 굉장히 반갑기도 하구요.
이런 의미 깊은 자리인 만큼 여섯 작가님을 모두 모시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거제리역에서 도깨비를 만나」를 집필하신 안지숙 작가님께서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불참하셨고(작가님 언젠가 꼭 뵈어요!) 저희는 다섯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행사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북토크에 가까웠는데요, 이 책을 누구보다 잘 아는! 담당 편집자 제나님께서 질의응답 형식으로 이끌어주셨습니다.
오늘 저는, 소설만큼 개성이 뚜렷한 다섯 작가님들의 진중하기도 유쾌하기도 했던 답변들 중 몇 가지를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특히 저는 '부산'에 대해 전해드리고 싶어요.
Q. 이 소설 속 배경지들은 널리 알려진 부산의 모습보다는 '삶의 터전'으로서의 장소인 부산에 집중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작가님들은 어떤 생각으로 각각의 장소를 택하게 되셨나요?
장미영(문현동 돌산마을): 이 곳은 제가 출퇴근을 하면서 늘 지나치는 곳입니다. 한 때는 벽화마을로 유명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재개발로 인해 그 마을이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애착과 그리움에 대한 중독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조미형(임랑 바닷가): 제가 살고 있는 곳이 기장이기 때문에 근처의 일광, 임랑 바닷가를 염두에 두고 있었어요. 제가 정관에서 3년을 살았는데 그 곳에 살다가 일광으로 다시 돌아오니 바다가 주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바닷가에서 사는 사람들만의 독특한 정서가 있을 것이다, 바다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바다에 중독된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박영해(증산공원): 마음에 품은지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어렸을 적 증산공원 아래에 산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곳에 대한 중독 때문에 삶이 좀 편해지고 난 후에 자주 그곳에 가고는 했습니다. 어느 날은 일본인 기자들을 마주쳤는데, 그들은 청소년의 역사의식 재고를 위해 취재를 왔다고 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첫 패전지였던 이곳에 대해 우리는 잊고 싶어 하는 역사이기도 하죠. 우리도 패전지라고 해서 망각의 터로 버려두어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오영이(센텀시티): 장소를 선정하기에 앞서 작가가 왜 글을 쓰는지에 대해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정인이 사건이 일어났어요. 최소한의 자기표현도 하지 못하는 존재의 마음을 대변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거죠. 그리고 제가 살고 있는 부산, 고층건물이 들어선 화려한 센텀시티 속에서는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생각했습니다.
김민혜(시민공원): 제가 부산진구에 살고 있는데 항상 보는 시민공원에 대해 써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야리야 부대에서 시민공원으로 변하기 전 임시개장 시기에 출근하며 그 거리를 지나다니기도 했어요. 역사를 일깨워주고 의미가 와닿는 장소라 언젠가 소설화해보고 싶었어요.
작가님들의 답변에는 '나의 삶'이라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역시 작가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삶의 터전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쩐지 저도 제가 살아가는 장소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더라구요. 같은 부산이라도 모두가 살아가는 곳이 다르니까 이렇게 다양한 배경의 작품들이 나왔던 것 같아요. 저에게는 조금 생소한 증산공원이나 돌산마을이라는 새로운 장소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서 뜻깊었습니다. 또한 제가 자주 다니는 센텀시티나 시민공원이 가지는 장소성이나 역사성에 대해서도 곱씹게 되었습니다.
박영해 작가님이 '이 곳에 대해 절실하게 쓸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모든 장소에는 역사가 있고 저마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소에 대한 기억은 로컬의 노력 없이는 쉽게 사라져 버리죠. 그 기억이 잊히지 않게 글을 써주시는 지역 작가님들에게 감사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Q. 부산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쓰시고, 지역의 역사와 현재를 기록하시는 만큼 작가님들의 부산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람들에게 '부산'이 어떻게 기억되었으면 하시나요?
김민혜: 부산하면 외지인들에게는 바다와 관광지로서 기억되고 있잖아요. 이제 부산을 고유성과 역사성, 문화가 있는 도시로 기억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문학적으로도 좋은 작가들이 많은 도시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오영이: 책의 제목이 『모자이크 부산』인데, 모자이크라는 것이 다 같이 모였을 때 새로운 그림이 나올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부산의 특징 중 하나가 피라미드의 도시라는 것, 그야말로 모자이크 상황인거죠. 저는 이 부산이라는 곳이 예기치 않게 모인, 피라미드의 도시라는 것을 도시의 상징으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박영해: 저는 부산이 역사의 도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산에는 패전의 역사도 있지만 우리 경제성장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도시거든요. 성장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요즘, 우리 과거의 어두운 역사에도 관심을 가지고 그 어둠이 어떻게 성장의 배경이 되었는지에 대해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미형: 저는 개인적으로 부산을 자유와 치유, 행복한 새로운 시작의 도시로 느끼고 있어요. 제가 바다를 그렇게 생각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에요. 어떤 상처를 가진 사람이 해운대 바닷가에서 밤을 꼬박 새우고 일출을 보게 된다면, 상처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날 것이다. 그래서 부산은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힘을 주는 도시라고 생각을 합니다.
장미영: 역사성이나 이야기, 문화적 콘텐츠가 풍부한 도시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문화적인 것뿐만 아니라 문학적인 면에서도 부산의 지역성과 다양성이 공존하는 문학의 도시라고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작가님들의 답변에서 부산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죠. 내가 살아가는 도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기록을 남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지역민으로서 정말 기쁜 일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지역 문학인들의 활동이 더욱 주목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작가님들의 바람처럼 부산이 문학의 도시로 기억될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이상, 저는 작가님들과의 자리에서 오간 담화의 일부분을 짧게 전해드렸지만 사실 저희는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인연으로 모이게 되신건지, 지역성과 더불어 메인 키워드로 '중독성'이 나온 계기, 집필 도중 가장 신경을 쓴 부분, 책 속의 작가님들이 직접 찍으신 사진에 대한 에피소드까지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했으니까요,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의 유튜브 채널 산지니에 업로드된 풀영상을 확인해주세요!
영상 보시면서 꼭 부산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해서, 그리고 지역의 문화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은 또 찾아올테니까요, 다음 행사도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저희 금방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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