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의 만남 - <미얀마, 깊고 푸른 밤> 전성호 작가 인터뷰]
안녕하세요 여러분! 지난 11월에 발간된 산지니의 시간 <미얀마, 깊고 푸른 밤>은 읽어보셨나요?
읽은 독자라면 미얀마에서 엠마웅과 파고다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을 거라 생각하는데요, 전성호 작가님께서 다음날 바로 미얀마로 출국함에도 불구하고 저의 인터뷰 요청을 흔쾌히 받아주셨습니다.
지난 월요일 산지니 사무실에서 직접 만나 인터뷰 영상 촬영도 진행했는데요, 작가님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함께 보러 가실까요?
Q1. 반갑습니다 전성호 작가님! <미얀마, 깊고 푸른 밤>을 정말 흥미롭게 읽었는데요, 먼저 이 책의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번 산문집은 21여 년 동안 미얀마에서 살아온 시간을 정리한 것입니다. 이곳에서 4권의 시집을 써오면서 부딪힌 이야기들을 시가 아닌 에세이로 나 자신에게 소명한 셈입니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국을 떠나 다른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가야 하는 지구촌 디아스포라들 모두가 느낄 수밖에 없는 고민과 갈등, 문화적 충돌과 경이로움 등을 하나씩 되새겨 본 셈입니다. 모국어를 자신의 숙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시인이 타자의 언어로 '지금 이곳'이라는 현실을 살아온 기억을 보고하는 글이라 할까요.
Q2. 네 권의 시집 이후로 (시집이 아닌) 첫 산문집을 발간한 소감 부탁드립니다.
노래 부르기와 말하기가 다르듯 시와 에세이의 ‘다름’은 내겐 일종의 피하고 싶지 않은 욕구 같은 것이었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것이 내 언어의 형식이라고 하더라도 때론 말도 하고 싶은 거죠. 예를 들자면 미얀마의 대표적인 꽃 이름인 ‘싹구빤’이나 물고기 이름인 ‘응아밋칭’ 같은 것들을 아무 설명 없이 그냥 노래하기에는 우리 말로는 불가능한 것이 있듯이 미얀마 사람들에게 진달래, 각시붕어를 노랫말만으로 전달하기는 어려운 것과 같지요. 시의 모티브가 되어 준 사물이나 풍경, 특수한 정치 사회적 환경 등에서 파생된 것들을 에세이에 담을 수밖에 없었어요.
Q3. 외국에서 삶을 살아가겠다는 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미얀마에서 살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많은 나라 중 미얀마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미얀마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어떤 곳인지도 궁금합니다.
저는 원래 의류 무역업에 종사하는 상사맨이었습니다. 대우실업에서 몬디알(C&A), 개인 의류 동유럽 무역까지 두루 거치고 IMF 이후에 미얀마를 여행하다가 이곳이 내가 찾는 나라라고 무릎을 쳤지요. 그 당시 미얀마를 볼 때 목가적인 풍경에 전 국민 86%가 불교인으로 샤머니즘 속에 빠져있는 나라였습니다. 여기가 기독교(선교) 복음을 전해야 할 땅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옷을 만들어 팔며 자비량 선교차 양곤이라는 수도에 안착하게 되었지요. 또한 저는 늦깎이로 등단하고 2000년도에 미얀마 땅으로 왔어요. 무역 비즈니스와 시인이란 기묘한 이중성이 나를 미얀마에 눌러살게 된 동기의 한 몫을 차지하고 있었지요. 신비로운 미얀마 땅에 매료되어 여러 곳을 여행했습니다. 내가 시를 쓰지 않았다면 미얀마에 그다지 깊게 매료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Q4. 한국에서 미얀마로 거처를 옮겼을 때 적응하기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먹는 것이 문제였어요. 지금은 한국 식당도 많고 한국 상품 마켓도 있지만 20년 전만 해도 식당이 몇 군데 밖에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갖고 온 반찬들은 금방 변해서 오래 먹지도 못했어요. 전깃불도 자주 끊기는 상황에 냉장고는 아예 쓸모가 없었지요.
김치, 된장국이 제일 먹고 싶었어요. 한때 미얀마 모힝가(여러 가지 생선과 채소가 들어간) 죽을 즐겨 사 먹었는데 길거리 음식이라 그릇 수저 탁자의 청결 상태가 불결할 뿐 아니라 대장균이 들끓는 모힝가를 먹었는지 배가 아파 설사를 며칠하고 지금껏 모힝가를 먹지 않아요.
도로에서 자주 부딪히는 검문 경찰들이나 군인들도 불편했고 가는 곳마다 외국인이라고 씌우는 바가지요금도 신경 쓰였어요.
Q5. 저자의 말 마지막에 언급된 ‘인간이란 과연 선한 것인가? 살 만한 가치란 정말 존재하는 것인가?’에 대한 답은 찾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답 찾기가 어렵지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니까요. 다만 사랑만이 답을 찾기에 지름길인지 모르지요. 인간이란 처음부터 선하지 않다고 봐요. 삶은 고통 그 자체이니까요. 불교가 고통을 없애는 종교라고 하잖아요. 저 자신을 고통 속에서 인내하며 자신을 풀잎처럼 최대한 낮추고 사회의 물체로서가 아닌 쓰임 받는 물질로 살아낼 때 살만한 가치라고 봅니다.
Q6. 인레호수의 다민족, 다종족의 어우러진 풍경(장터)을 인류의 미래로 동경하고 계시는데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도 듣고 싶습니다.
지구촌의 다양한 민족과 언어, 풍습과 종교, 정치와 사회, 전통과 현대성, 빈부의 격차, 기회의 불평등, 기후와 환경 재앙, 새로운 내셔널리즘과 신냉전의 징후 등등... 거의 하나가 되어가는 지구촌은 어느 세기보다 극대화된 생산력과 첨단 문명의 광휘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적어도 눈에 보이는, 아니 미디어에 비추어진 세계는 그렇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이런 인류세라 불리는 세계에 대한 경고가 그 어느 세기보다 강력합니다. 자본의 척도와 첨단 문명의 정점에서 세계는 종말과 디스토피아에 대한 불안을 예감하는 전망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대안적 미래에 대한 모델이 제시되거나 토론되고 있지 않습니다. 경제적 이익을 기반으로 한 군산복합체의 자본주의 시스템과 신종 내셔널리즘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습니다. 소위 초강대국들의 경쟁과 기득권 유지 싸움은 주변부 국가들에 고통과 절망을 가증시키고 있습니다. 미얀마 군사 쿠데타 뒤엔 중국과 미국의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시리아, 아프카니스탄, 남중국해와 아프리카 콩고 수단, 동북아의 한반도에 이르기까지 이런 문제들은 한 치의 빈틈 없이 관찰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매일 그런 현상들을 개별적인 뉴스로 전해 듣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을 위한 담론의 중심도 대안적 성찰의 중심도 없습니다. 다들 불안한 미래에 대한 예언적 발언만을 반복할 뿐이죠.
나는 치열한 자본주의 최전선에서 물건을 사고팔면서 전 세계를 누비고 다녔습니다. 내가 전 생애를 통해 만나고 겪었던 세계는 바로 자본으로 대표되는 ‘이기적인’ 세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것을 현실이라 불렀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 이기적인 세상으로부터 벗어난 자신만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세계를 발견했습니다. 미얀마의 ‘인레’를 비롯한 대부분의 시골과 소수민족이 살아가는 오지에서 아직 악마적인 자본의 이기주의와 탐욕에 잠식당하지 않는 세계를 보았습니다. 언어도 종족도 역사도 문화와 종교도 다른 그곳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처한 환경 안에서 의식주를 해결하면서 자기 완결형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내가 발견한 미래였습니다. 물론 지나치게 그곳을 이상화하거나 과장하는 주관적인 시선일 수 있습니다. 이곳 역시 자본의 물결과 파도는 거세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모델을 깊이 들여다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Q7. 표지 그림의 쉐다곤 파고다, 뒤표지와 장 도비라로 쓰인 엠마웅(도마뱀)의 부엉이 소리에 대한 추억(책에 실리지 않은)이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엠마웅은 귀엽고 사랑스런 도마뱀 종류입니다.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 동남아 어디를 가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양서류죠. 초록색의 보호색을 가지고 있지만 때론 온몸이 투명한 종들도 있습니다. 온몸이 투명한데 작은 눈만 토끼 눈처럼 빨갛게 반짝이는 도마뱀이 내 책상 위 커피잔이나 스마트폰 위에 올라앉아 있는 것을 볼 때면 정말 신기하기만 합니다. 모기 같은 해충을 잡아먹고 사는데 형광등 뒤나 냉장고 뒤 등 주로 어두운 틈새에서 삽니다. 비가 총탄처럼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밤, 벽이나 커튼 위를 기어 다니는 엠마웅의 네발에 씌어진 둥근 글러브를 보면 앙증맞기 짝이 없습니다. 엠마웅 한 마리 키워보세요. 미얀마 민주주의를 응원하면서요.
Q8. 구모룡 평론가의 추천사 중 "그 어느 인류학자보다 더욱 섬세한 눈길로 미얀마의 겉과 속을 기술하는 시인의 눈"이라 평했는데, 상인의 눈, 시인의 마음으로 본 인류의 미래, 자본주의의 대안은 무엇이라 보시나요?
더 잘 먹고 더 잘 입고 더 폼나게 살고자 하는 인류의 욕망을 탓할 수도 절제하라고 요구할 수도 없습니다. 인구 폭발을 막기 위해서 사랑하는 젊은 부부에게 아이를 낳지 말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에너지를 과다하게 사용하는 문명을 되돌릴 수 없는 일이고요. 어디에도 자본주의화 된 인류 문명을 구원할 수 있는 대안은 안보입니다.
더구나 시 쓰고 장사하고 선교하는 사람에게 그런 거대한 질문은 가당찮습니다. 어쩜 내가 지닌 이런 가당치 않은 측면 때문에 ‘한번 네가 꿈꾸는 미래를 이야기해봐’라고 말하는 거겠지요. 하지만 저는 그런 꿈 대신 매일 내가 하는 일조차 하나씩 줄여가고 있습니다. 너무 바쁘고 할 일 많은 나 자신에게 ‘스톱’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Q9. 코로나의 맹위, 군부쿠데타의 암울한 상황에서 미얀마로 출국하시는데 부담은 없으신지. 앞으로 또 한국 방문 계획이 있을까요? (암울한 상황 속의 미얀마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는 미얀마인들이 가진 ‘느림’과 ‘이타심’ 그리고 사람에 대한 존중을 믿습니다. 그것들을 바탕으로 한 미얀마 사람들의 용기와 열정을 배우기 위해 저는 다시 내일 미얀마로 들어갑니다.
Q10. 마지막으로 <미얀마, 깊고 푸른 밤>을 읽은, 읽을 독자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미얀마를 향해 한 걸음 더 가까워지는 작은 기회가 되시길...
인터뷰를 끝내고 작가님께서 산지니 편집자들을 위해 사오신 맛있는 빵도 함께 나누어 먹었답니다:) 지금쯤 무사히 미얀마로 도착하셨을지 모르겠네요. 그곳에서도 건강히 잘 지내시길 바라는 마음을 이 글에 담아봅니다. 언젠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신다면 또 만날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네요😊
후에 인터뷰 영상도 채널산지니에 업로드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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