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후기

잊을 수 없는, 잊어서는 안되는 이야기 『작별하지 않는다』서평

by _Sun__ 2022. 4. 1.

 제주 4.3사건 추념일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제주 4.3사건을 추모하며 김유철 작가의 『레드 아일랜드』에 이어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었습니다. 작별하지 않는다이후 5년 만에 출간된 한강 작가의 신작이자 제주4.3사건을 그린 장편소설입니다. 이번 서평은 줄거리 소개, 두드러지는 소재와 그 의미 그리고 제가 책을 읽으며 느낀 점 순서로 얘기하고자 합니다.

 

한강, 『 작별하지 않는다 』 눈꽃 에디션

 

 먼저 줄거리입니다. 학살에 대한 책을 쓴 후 유서 쓰는 일을 반복하던 경하는 병원으로 와달라는 인선의 문자를 받습니다. 병원으로 간 경하는 손가락이 잘려 봉합수술을 한 인선을 보게 됩니다. 인선은 경하의 꿈을 재현해 보자는 중단된 프로젝트를 홀로 진행하다 손가락이 잘리고 말았습니다. 인선은 경하에게 제주도로 가 자신이 기르던 앵무새 아마에게 밥을 줄 것을 부탁합니다.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 조금만 더 지체하면 새가 죽을 거란 소리를 들은 경하는 곧바로 제주도로 향합니다. 제주도에서 폭설로 인해 겨우 인선의 집에 도착하지만 새는 이미 죽어있었습니다. 그리고 경하는 살아있는 새와 서울 병원에 있어야 할 인선의 환영을 봅니다. 인선은 경하에게 자신의 어머니가 제주 4.3사건에 연루된 오빠를 찾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자신이 찾은 4.3사건의 자료를 보며 얘기해 줍니다.

 

 

 다음으로 이야기할 두드러지는 소재는 눈입니다. 책을 읽다 보면 휘몰아치는 눈에 압도당하곤 합니다. 눈은 많은 문학 작품에서 고통의 상징물로 쓰였습니다. 이 소설은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합니다. 과거와 현재의 연결입니다. 인선의 어머니와 인선의 이모는 학살 당한 부모의 시체를 찾기 위해 시체 얼굴을 덮은 눈을 치웁니다. 눈길에서 쓰러진 경하의 얼굴에도 눈이 떨어집니다.

 

인선의 어머니가 보았다던 학교 운동장의 사람이 이어 떠올라 나는 무릎을 안고 있던 팔을 푼다. 무딘 콧날과 눈꺼풀에 쌀인 눈을 닦아낸다. 그들의 얼굴에 쌓였던 눈과 지금 내 손에 묻은 눈이 같은 것이 아니란 법이 없다. p133

 

 또한 눈은 경하를 고립된 상태로 만들어 4.3사건 당시 육지로 도움을 청할 수 없었던 제주도민과 비슷한 상황에 두게 합니다. 눈을 통해 경하는 과거 제주 4.3사건의 피해자와 연결되고 뒤이어 인선의 환영이 등장해 제주 4.3사건의 이야기를 하는 사건은 인과성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환영과의 대화라는 비현실적 시공간은 오히려 현실을 날카롭게 바라보게 하며 현실의 부조리와 비극성을 강조시킵니다.

 과거와 이어지는 인물이 경하라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꿈은 한강 작가가 소년이 온다집필 후 직접 꾼 꿈이라고 밝혔습니다. 작가는 자신의 꿈을 경하의 꿈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작품 속 경하는 2014년 도시 학살에 관한 책을 썼습니다. 한강 작가의 광주민주항쟁을 다룬 『소년이 온다』도 2014년 출간되었습니다. 따라서 경하는 작가가 투영된 캐릭터로 보이며 경하가 책 발간 이후 고통스러워했다는 것은 작가 자신이 겪은 일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다시 한번 학살의 이야기를 써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제주 4.3사건이 과거에서 끝난 불행한 사건이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우리들의 이야기임을 알려 주기 위해서라고 생각됩니다. 제주 4.3사건은 피해자와 그 유가족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이를 보여주기 위해 피해자도, 유가족도, 제주도민도 아닌 경하가 과거와 연결되었습니다.

 

이 소설은 제주4.3사건을 넘어 베트남 전쟁 한국군 성폭력 피해자, 만주 독립군, 보도연맹사건을 말하며 제노사이드와 살아남은 자들의 얘기하고 있습니다. 악몽을 꾸지 않기 위해 녹슨 톱을 베개 밑에 두고 잠드는, 치매에 걸려 그날로 돌아가 살려달라고 하는 인선의 어머니는 살아남은 사람입니다. 인선의 어머니는 박완서 작가의 엄마의 말뚝 2의 어머니를 연상시킵니다. 엄마의 말뚝 2에는 다리 수술 후 부작용으로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에게 죽은 아들을 떠올리며 고통스러워하는 어머니가 등장합니다. 수십 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운 좋게 살아남았지만 그들은 그날의 기억을 잊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이별은 오지 않았습니다. 다른 제노사이드 생존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 이후로 엄마가 모은 자료가 없어. 삼십사년 동안.
인선의 말을 나는 입속으로 되풀이 한다. 삼십사년
…… 군부가 물러나고 민간인이 대통령이 될 때까지.
p281

 

 한강 작가가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면서 특히 도움을 받은 책 중 하나로 밝힌 국가폭력과 유해발굴의 사회문화사에서는 정치적 변화와 무관하게 과거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되었던 피해자들의 유해가 아직까지 방치되어 있으며, 그 가족들은 심리적으로 상당한 고통을 받고 있다. 이러한 원한을 사회에 그대로 남겨둔 채 우리는 공동체를 발전시킬 수 있을까?’라고 말합니다. 이념에 의해 정당화된 학살은 아직까지 수습되지 않았습니다. 정치에 희생당한 이들은 여전히 정치적 사안으로 땅속에 있습니다.

 이 소설의 제목이 작별하지 않는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손가락 봉합수술 이후 3주 동안 3분에 한 번씩 바늘에 찔리는 고통을 느껴야만 손가락이 썩지 않듯이 우리는 고통을 느껴야 합니다. 그날의 고통과 죽음, 안타까움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잘린 손가락을 봉합시키지 않으면 평생 동안 환상통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은 손가락이 잘린 것처럼, 그러한 사건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지냈고 70여 년 동안 통증에 시달렸습니다. 올바른 진상 규명을 바라는 목소리와 그것을 막는 자들 사이의 갈등의 골은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졌습니다. 이제는 메워야합니다. 손가락을 찔러야 합니다. 국가의 폭력으로 갈라졌던 한반도를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는 아픈 역사를 되짚어내는 고통과 그 고통을 기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기억과 영원히 작별하지 않아야합니다. 이것은 피해자를 위함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갈등에서 벗어나 공동체를 달성해야하는 우리를 위해서 입니다.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한국 사회 안에서만 국한된 것아 아닙니다. 앞서 말했듯 이 소설은 베트남 전쟁 한국군 성폭력 피해자와 만주 독립군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제노사이드 피해자이자 가해자입니다. 두 가지의 위치에 맞는 역할을 수행해야만 모두를 위한 공동체를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제주 4.3을 다룬 다른 책 서평 ▼

레드 아일랜드 폭력 속의 인간애, 제주 4.3사건을 다룬 김유철의 『레드 아일랜드』서평 (tistory.com)

댓글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