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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한 사람의 역사를 읽다, 『사다보면 끝이 있겠지요』

by 2raon 2022. 4. 11.

 

우리는 매일 역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 각자의 삶이 모두 하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사다보면 끝이 있겠지요』는 김두리 할머니의 삶, 그의 역사를 담은 책이다. 그가 살아온 삶을 천천히 따라가 보면 자연스레 한국의 역사적 사건들을 마주하게 된다.

일제강점기, 6·25 전쟁, 보도연맹 사건 등. 역사 교과서에서 그리고 미디어에서 숱하게 들어온 이름들이다. 그러한 사건들이 있었고, 큰일이었고,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정도에 그쳐 왔다. 뭉뚱그려 전체적으로만 바라보았지 그 속의 개인에 초점을 맞추려고 해본 적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사다보면 끝이 있겠지요』는 의미가 깊다.

 

"할머니의 생애를 기록하는 것은 할머니처럼 이름 없이 살아온 모든 사람들의 삶에 역사적 지위를 부여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현대사 연표에 한 줄 사건으로 기록된 일들이 한 사람의 인생에는 어떤 모습의 '현실'로 존재했는지, 그 잔인하고 혹독했던 시절의 리얼리티를 당사자의 육성으로 생생하게 담고자 애썼다."   9쪽

 

김두리 할머니는 지금의 포항시인 경북 영일군에서 태어나셨다. 그런고로 사투리를 쓰신다. 그의 손자이자 구술 기록자인 최규화 작가는 김두리 할머니의 사투리를 생생하게 활자로 옮기는 데 성공했다. '망글다', '옇다', '괌' 자주 들어와 익숙하면서도 활자로 보니 조금은 낯선 사투리는 이야기에 생생함을 더해준다. 더불어 잘 옮겨 담았기에 사라져 가고 있는 포항 사투리의 사료집 역할도 톡톡히 해낸다.

사투리로 생생하게 들려주는 김두리 저자의 삶은 생각보다 더 처절하고 참혹하다. 일제강점기 때 위안부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결혼해야 했던 일, 시동생이 인민군에 끌려가 그 일을 빌미로 후에 경찰에게 시동생이 학살당한 일 등 사건 속에 있었던 개인의 삶으로 들어가서 본다면 그 무게감이 달리 느껴진다.

 

가서 얼매 안 있으니까, 경찰서 온느라 했잖아. 그래 불려 가가지고, 창고에 가 갇해서 ... ... . 한 달이나 있었는강 반 달이나 있었는강 모르겠다. 그래서..... . 앤 죽었나.  84쪽

 

김두리 저자의 시동생 이야기는 얼마 전에 읽은 조갑상 소설가의 『밤의 눈』을 떠올리게 한다. '보도연맹 사건'을 다룬 소설 속 이야기는 한 치의 과장도 없이 모두 현실이었음을 이 책이 확인해 준다. 그저 삶을 이어가는 것도 벅찼던 보통 사람들에게 '이념'과 '사상'은 무겁게 짓눌러 오며 매 순간 선택을 강요한다. 그리고 이 선택은 자신뿐 아니라 가족의 목숨까지 위협한다.

"내가 군대[국군] 안 갈라 했으면 그때 빠질 수도 있었다. 빠질 수도 있었는데 우예(어째서) 갔노 하면은, 내가 이판에[전쟁 중에] 군대에 가서 산다는 보장은 없고, 내가 죽디라도 내인데 따른(딸린) 식구들이라도 기 피고 살아라 싶어가지고 갔다."  86쪽

 

사건의 이야기가 아닌 개인의 이야기이므로, 저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친밀함과 함께 웃음을 터뜨리게 되기도 하고 같이 울게 되기도 한다. 솔직한 표현과 심정이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아득한 과거의 일, 특별한 사람이 겪었을 일이 아닌, 내 주변의 사람이 겪은 일처럼 느껴져서일 테다.

 

느그 할아버지 내제(나중에) 휴가 와서 그라더라고. 나는 있는 줄로 생각 안 했다[죽은 줄 알았다], 이란다, 낸장(젠장). 자기 엄마도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니까 그래 편지나 한 장 해보자 싶어가지고 그래 편지를 했댄다.  114쪽

 

"니가 진짜 상회[남편 이름]가? 상회가? 니가 진짜 살아 왔나? 살아 왔나?"
그래 나는 이제 겉밖에(조금 떨어져서) 서 있으이 눈물이, 누가 때린 듯이 나더라꼬.  125쪽

 

책을 다 듣고 나면(이 책은 읽은 게 아니라 들은 것 같다) 나의, 그리고 주위의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진다. 왜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가 그렇게도 공산당을 두려워 하는지 왜 항상 견고한 정치적 입장을 보이셨는지 등 그분들의 삶을 간접 체험하고 나서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갈수록 심화되는 세대 갈등을 해소하려면 이렇듯 우리는 역사를 개인의 시점에서 바라보려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분들이 얼마나 죽음을 코앞에 두고 살아오셨는지, 빨갱이 우익 좌익 이란 단어들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고 나면 한층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을 테다.

자신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진 이들에게 한 권의 책을 추천한다. 은정아 작가의 『할머니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다.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방법을 담은 책으로, 『사다보면 끝이 있겠지요』 같은 개인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을 때 필요한 방법을 가르쳐 준다.

모든 세대의 개인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기록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서로를 이해하는 우리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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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 보면 끝이 있겠지요

포항 사투리로 자신의 생애를 풀어내는 29년생 김두리 할머니의 이야기. 다년간 기자 생활을 해온 손자가 할머니의 삶을 기록하였다. 그녀의 이야기 속에는 위안부와 강제징병, 해방 후 좌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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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눈

그동안 섬세한 통찰로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의 속살을 들여다보게 만든 중견작가 조갑상이 전작장편소설을 내놓았다. 6.25전쟁 당시 가상의 공간 대진읍을 배경으로 국민보도연맹과 관련한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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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방법을 담은 인터뷰 글쓰기 책이다. 사람마다 걸어온 길이 다르지만 인터뷰를 할 때 공통으로 챙기고 반드시 해야 할 기본이 있다. 이 책에서는 사전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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