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일본의 역사인식
책 소개
▶ 한일 간 정치와 외교를 가로지르는 논쟁적 주제,
역사인식 문제를 들여다보다
오늘날 일본의 역사인식 문제는 동아시아에서 매우 중요한 외교 현안이 되고 있으며 한일관계를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사회의 혐한 분위기, 거듭되는 정치인들의 망언, 한국 사회의 반일 감정 등도 모두 역사인식 문제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2023년 3월, 윤석열 대통령은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총리와 한일관계의 개선을 위한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를 계기로 2019년부터 이어진 양국 사이의 무역분쟁이 일단락되고, 기시다 총리는 정상회담 두 달 만에 방한하며 ‘셔틀외교’가 재개되었다. 이는 몇 년 전과는 매우 다른 양상이다. 2019년 당시 문재인 정부는 일본의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규제 조치에 항의하며 WTO에 제소했고, 이후 정치·외교·사회·경제 전 분야에서 한일관계는 얼어붙었다. 당시 일본의 수출규제는 대한민국 대법원의 일본제철 강제징용 소송 배상 판결에 대한 조치였다. 이처럼 역사인식 문제는 정치·외교 관계, 더 나아가 경제와 사회 분야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 책 『전후일본의 역사인식』은 2015년 8월 14일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가 ‘아베 담화’를 발표함에 따라 심각해진 한일관계와 중일관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던 역사인식 문제를 정치외교사적 관점에서 재검증할 목적으로 간행된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전후 일본의 역사인식이 전전기(戰前期) 승자의 역사인식과는 다르게 “승자로서가 아니라, 가해자, 피해자, 패자로서의 인식”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일본의 역사인식에 대한 이해는 “이 세 가지 인식의 관계가 파악될 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역사인식 문제가 국가 관계와 세계 정치를 움직이는 주요 역학으로 작용하고 있는 현실에서 각국의 역사인식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특히 한국과 일본 사이에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배상 문제 등 역사를 바라보는 역사인식의 문제는 지금 양국의 관계와 앞으로의 행보를 예측하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이 책은 일본의 정치외교검증연구회가 10년간 진행한 학술 연구의 결과물로, 일본 내에서도 여전히 논쟁이 진행되고 있는 민감한 역사 문제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책에서 제시하는 전후 일본이 밟아온 역사인식의 변화 과정은 앞으로의 한일관계, 더 나아가 동아시아 정세를 예측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 제2차 세계대전 이후 70년,
일본 역사인식의 역사는 어떻게 변천하였나
서장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일본의 역사인식은 어떠했는가를 다룬다. 막부 말기와 메이지 유신 사이의 동란, 청일전쟁, 러일전쟁이 그 시기의 대표적인 전쟁이다. 이 전쟁들에서 일본은 승자였으며, 자연스럽게 승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역사인식을 형성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일본은 비로소 ‘가해자, 피해자, 패자’로서 역사를 인식하게 된다. 패배에서의 회복, 피해자로서의 반전 감정, 가해자로서의 반성이라는 세 가지 요인이 각각 복잡하게 작용하면서 성립된 역사인식인 것이다.
1부에서는 시대를 나누어 패전 이후 일본의 역사인식이 어떤 과정으로 변모했는지 살핀다. 1장은 일본의 패전 전후부터 1950년대까지, 요시다 시게루가 전후 외교의 기조를 설정한 시대를 다룬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도쿄재판을 거치며 일본이 전쟁범죄를 일으켰으며 죄를 책임져야 한다는 ‘도쿄재판 사관’이 형성되었다. 요시다 시게루는 국제적 신뢰 회복을 무엇보다 중요시했는데, 과거를 반성하며 과오를 인정하는 것을 외교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이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조인하면서 일본은 이를 국제적인 공약으로 삼아 주권을 회복하고 국제사회에 복귀한다.
2장에서는 1960년대 초반부터 1970년대 후반의 사토 에이사쿠 시대를 다룬다. 일본은 먼저 냉전을 배경으로 한 미국, 서유럽 국가들과의 관계 강화를 추진함과 동시에 전후처리 문제에 지속적으로 대응했다. 이 시기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며 일본의 자기 성찰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연합국이 추진한 전범재판을 받아들였지만, ‘대동아전쟁 긍정론’을 바탕으로 식민지 제국으로서의 길을 부정하는 논의도 등장했다. 전몰자 위령의 중심 시설이었던 야스쿠니신사에 대해서도 관습적인 시설로 여기는 시선과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보는 시선이 엇갈렸다. 야스쿠니신사는 전범 합사와 함께 종교 법인으로서 독자적인 길을 걷기 시작했다.
3장은 1980년대, 나카소네 야스히로 시대의 역사인식 문제를 다룬다. 1980년대 일본 정부는 중국과의 사이에 분쟁의 씨앗을 남기지 않기 위해, 역사인식 문제에 자제하면서 대처했다. 1982년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에 중국 침략이 ‘진출’로 표기되자 중국 정부는 일본에 강력하게 항의한다. 한국에서도 거센 반발이 일어난다. 나카소네 총리는 취임 후 한국에 특사를 파견하는 등 한국의 반일 감정을 완화하고자 했으며 한국과 중국의 경제발전에 기여함으로써 당시 역사인식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1985년 나카소네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공식 참배는 아시아 국가들과의 사이에서 커다란 외교 문제가 되었다. 나카소네 총리는 이에 재임 기간 동안 참배를 자제하고 외교적인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더불어 4장에서는 일본 본토와 다른 전후를 걸어온 오키나와의 역사인식 문제를 다룬다. 1950년대 오키나와에 유입된 ‘보혁 대립’이라는 정치적 틀이 1990년대 냉전 종결 이후 어떻게 변모했는지, 자기 결정권과 자치를 요구하는 오키나와의 움직임이 어떤 역사적 흐름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살핀다.
▶ 동아시아의 역사화해는 가능한가
2부에는 역사인식 문제를 놓고 진행된 좌담회를 실었다. 2015년 아베 신조 총리가 전후 70년 담화를 발표하기 직전에 이루어졌던 좌담회가 5장을 이룬다. “역사화해는 가능한가”를 주제로 2015년 진행된 좌담회에 모인 중국, 한국, 미국, 유럽의 전문가들은 대전에 대한 반성을 어떻게 총괄할 것인지 살핀다. 이후 전후 70년 일본은 어떠한 길을 걸어왔는가, 일본은 어떻게 역사인식 문제를 극복하려 하고 화해를 추진해왔는가, 지금부터 어떠한 정책을 펼쳐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6장에는 아베 담화 발표 1년 후에 동일한 구성원들이 참가한 좌담회 기록을 실었다. 아베 담화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담화 속 키워드를 분석하고, 각국은 아베 담화를 어떻게 보았는지, 아베 담화는 역대 1995년 무라야마 담화, 2005년 고이즈미 담화와 어떤 차이를 지니는지 살핀다. 마지막으로 일본과 아시아의 역사인식을 유럽의 역사인식 문제와 비교하고, 그 위에서 이후의 국제정치를 전망한다.
여전히 역사인식을 둘러싼 문제들이 국제사회에서 전개되고 있다. 강제징용이 이루어졌던 장소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문제뿐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인권 문제, 영토 문제로 이어지는 역사인식 문제 등 특히 동아시아에는 아직 풀어나가야 할 역사인식 문제가 산재해 있다. 앞으로도 동아시아 국가의 관계는 역사인식 문제로 인해 지속해서 변화를 맞을 것이다. 그렇기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역사인식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그 과정을 알고 이해하는 것은 여전히 의미 있다. 왜 2015년 이루어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합의를 받아들이는 양국 국민의 입장이 다른지, 이 문제를 매듭짓고 양국의 공통 이익을 추구해 나가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할지, 일본 역사인식의 흐름을 이해함으로써 아직 남아 있는 한일관계의 과제를 풀어나가고 중장기적인 협력을 위한 양국의 태도와 방식을 마련하는 데 이 책은 하나의 작은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다.
책 속으로
p86 올드 리버럴리스트의 언동에는 ‘보수적’, ‘구시대적’이라고 단순화할 수 없는 다양성과 깊이가 있다. 본 장의 시선에서 볼 때, 중요한 점은 그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전전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대외침략에 대해 일종의 반성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이 도쿄재판과 샌프란시스코 강화체제를 통해 역사에 대한 반성을 ‘강요받았다’는 이미지는 사실과 다르며, 도쿄재판과도 샌프란시스코 강화체제와도 다른 길을 통해 일본인이 자주적으로 전쟁을 총괄하고, 스스로의 잘못을 규명할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는 것도 명백하다._「제1장 요시다 시게루의 시대」
p132 일본에서는 종종 ‘전후 70년’이라고 말한다. 패전 이후 70년, 일본이 전쟁으로 복수를 하기는커녕 또 다른 전쟁을 주체적으로 일으키지 않고 지내왔다는 사실은 일본은 물론 지역과 세계에게도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 말은 ‘전후’가 마치 단조로운 하나의 시대라도 되는 것 같은, 마치 그렇게 있어야만 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시대마다 환경이나 문제의 변화는 분명하며, 또 국제사회와 사람들의 의식도 시대와 함께 변화한다. 일본 안에도 지역이나 입장에 따라 상이한 ‘전후’가 존재하며, 같은 동아시아 지역에서조차 ‘전후’라는 시간의 흐름은 서로 다르다._「제2장 사토 에이사쿠의 시대」
p155 전면적인 해결을 전망할 수 없다면 정상 간 외교도 하지 않겠다는 태도로는 미래가 없다. 만일 몇 퍼센트 정도라도 관계 개선이 가능하고 그로 인해 중기적인 우호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면 ‘나카소네 야스히로 시대’를 본받아 관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여론의 압력을 진정시키면서 자기 억제적인 외교를 전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_「제3장 나카소네 야스히로의 시대」
p157-158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 유일하게 주민까지 휩쓸린 극도로 치열한 지상전을 경험했고, 그 후 일본에서 분리되어 27년간 미군의 통치를 받았으며 일본 복귀 후에도 광대한 미군기지가 집중되어 있는 오키나와는 분명 본토와는 별개의 전후를 걸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일개 현의 지사가 이 정도 발언을 할 정도로 양자 간 감정의 골이 깊다는 사실이다. 오키나와 측에서 보면, 앞서 언급한 전후 오키나와가 걸어온 발자취에 대한 정부와 본토 측의 몰이해, 무관심에 대한 탄식이지만 정부를 비롯한 본토 측에서는 그러한 오키나와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현재의 상황일 것이다._「제4장 오키나와와 본토의 간극」
저자 소개
편자
이오키베 가오루(五百旗頭薫) 도쿄대학 대학원 법학정치학연구과 교수
고미야 가즈오(小宮一夫) 아오야마가쿠인대학·고마자와대학·센슈대학 비상근강사
호소야 유이치(細谷雄一) 게이오대학 법학부 교수
미야기 다이조(宮城大蔵) 조치대학 종합글로벌학부 교수
도쿄재단정치외교검증연구회
감수
신정화 동서대학교 캠퍼스아시아학과 교수, 일본연구센터 소장
역자
엄태봉 대진대학교 국제지역학부 강의 교수
석주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윤석정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 연구교수
권연이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전문연구원
차례
책을 펴내며
한국어판 서문
시작하며
서장 역사인식의 역사를 향해
Ⅰ. 전후 역사인식의 변천
제1장 요시다 시게루의 시대―‘역사인식 문제’의 자주적 총괄을 둘러싸고
제2장 사토 에이사쿠의 시대―고도 경제성장기의 역사인식 문제
제3장 나카소네 야스히로의 시대―외교 문제화하는 역사인식
제4장 오키나와와 본토의 간극―정치 공간의 변천과 역사인식
Ⅱ. 역사인식과의 화해를 향해
제5장 역사화해는 가능한가―중일·한일·미일의 시각에서
제6장 동아시아의 역사인식과 국제관계―‘아베 담화’를 돌아보며
Ⅲ. 역사인식을 생각하기 위해
제7장 역사인식 문제를 고찰하는 서적
제8장 전후 70년 고찰에 도움이 되는 문헌
마치며
참고문헌
전후일본의 역사인식지은이 : 이오키베 가오루 외 옮긴이 : 엄태봉, 석주희, 윤석정, 권연이 쪽수 : 352쪽 판형 : 130*200 ISBN : 979-11-6861-171-9 93340 가격 : 28,000원 발행일 : 2023년 9월 26일 분류 : 사회과학 > 정치학/외교학 > 외교정책/외교학 역사 > 일본사 > 일본근현대사 역사 > 아시아사 > 동아시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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