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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외교관들의 회고록과는 다르다_『나는 매일 새로운 항해를 시작한다』외교지 서평

by _Sun__ 2023. 11. 21.

항해사, 모스크바 유학생을 거쳐 외교관이 된 한성진 저자의 끝없는 모험을 담은 <나는 매일 새로운 항해를 시작한다>의 서평이 외교지에 실렸습니다.

<나는 매일 새로운 항해를 시작한다>는 다른 외교관의 에세이와는 살짜쿵 결이 다릅니다. 항해사, 소련 유학생을 거쳐 외교관이 된 저자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이야기 들려주듯 담담히 말합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만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기를 바라면서요.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일단 도전하는 그의 인생 항해를 따라가다보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겨날 것입니다.

 

1998년 정부조직 개편으로 외무부에 통상교섭본부가 설치되어 외교통상부로 바뀌면서 통상산업부와 재정경제원의 통상담당 공무원들이 이동해 왔다. 이들 가운데 ‘인사성 밝고, 씩씩하고, 표준 한국인 체형은 아닌’ 장롱다리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이 책의 저자인 그는 자신의 바른 인사성이 어린 시절 할머니께서 하루 열 번 같은 사람을 만나도 열 번 인사하는 것이 예의라고 가르친 덕분이라고 썼다. 저자가 근무 중인 시베리아 한가운데 이르쿠츠크에서 출판 소식을 알려왔을 때, 필자는 함께 근무하던 시절 구수한 사투리로 풀어내던 그의 입담을 떠올렸다. 주로 큰 배를 타던 시절의 이야기였는데, 필자에게는 생소하고 신기한 내용들이었다. 과연 그의 책도 입담만큼이나 재미있을까 기다려졌다.

저자의 경험은 지금까지 자서전이나 회고록을 펴낸 전형적인 외교관들의 그것과는 분명 차별성이 있다. 그는 해양대학교를 나와 외국계 해운회사 항해사로서 큰 배를 타고 대양을 누빈 색다른 경험의 소유자이다. 우리 북방외교가 동유럽을 거쳐 소련과 외교관계의 물꼬를 트던 무렵, 그는 그 길을 따라 고된 유학길에 나선다. 유학 후 경제부처 공무원을 택하였으나, 조직개편의 물결을 따라 어느 날 외교관이 된다. 마침내 특명전권대사가 되고 총영사가 되었으니, 그의 인생 역정이 벌써 남다르지 않은가! 과연 그의 저서는 공무원이 되기 전 이야기가 절반 넘게 차지하고 있어, 출판 의도가 자신의 외교적 업적을 기록하거나 학문적 가치를 내세우기보다는 자신이 살아온 모습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한다.

‘롤링, 피칭, 라이터링, 무어링 로프, 윈치 ...’ 항해사 한성진 이야기에 등장하는 내용은 우선 그 용어가 생소하고, 그러기에 또 빨려든다. 내가 그의 육성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면, 필자도 그의 친구처럼 “성진아, 밤에도 배가 가나?”하고 물을 것이다. 그는 대답한다. “그래!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도 배는 간다. 태풍, 허리케인, 사이클론으로 집채 같은 파도가 삼킬 듯이 덮쳐도 배는 간다.”라고. 또 자신의 경험에 바탕을 둔 묘사도 그의 외모처럼 가식이나 꾸밈이 없어서 쉽게 읽히면서도 현장 모습을 눈앞에 보듯 실감이 난다. “우리 배는 스모 선수처럼 무거운 상태로 입항하여 2박 3일 기간의 하역작업을 마치고 다시 나는 새처럼 가벼워진 몸으로 중남미의 어느 산유국 항을 향해 출항하였다.” 경험에서 배운 교훈을 전하는 일도 잊지 않는다. 엄청난 저기압의 태풍 속에서 천신만고 끝에 빠져나온 뒤에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언제 어디서 어느 방향으로 불지 모를 바람을 자신과 공동체를 위해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한다.”라고 썼다.

현직 외교관의 자전적 수필이지만 기술된 외교적 경험은 기라성 같은 선배 외교관들의 자서전이나 회고록에 비하면 조촐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항해사를 단칼에 그만두고, 그때까지 한국인으로는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공산권 유학을 떠나는 모습에서는 저돌적인 용기가 엿보인다. 분명 북방외교가 자신의 미래 설계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헝가리의 한 지방대학을 경유하지만 본래 유학 목적지인 모스크바로 돌진하고, ‘여기서 가장 좋은 대학’을 찾아 모스크바 국립대학에 입학한다. 모스크바 유학생 1세대 한국인으로서 자리를 잡은 후에는 유학생회를 조직하고 초대 회장이 되어 주변을 이끌고 도와가는 모습도 그 인간성의 바탕을 엿보게 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그가 보여주는 과단성과 결심한 것을 이루기 전에는 물러서지 않는 실행력을 눈여겨보게 된다.

이런 그의 품성이나 삶을 대하는 태도가 외교통상부 전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린 딸이 불치에 가까운 질병 선고를 받고 힘들어할 때, 아직 그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던 동료들과 그 가족들까지 나서서 작은 힘이나마 보태게 하였던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 본인은 물론 가족들의 장래까지 좌우하는 외교부의 인사, 그 잔인한 인사를 담당하는 사람들도 그의 자녀 치료를 위해 가능한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해주고자 하였고, 주변에서 그의 사람됨을 아는 동료들은 그러한 ‘불공정 인사’를 기꺼이 양해하였다. 보답하듯 그는 오랜 세월 주변 사람들에게 늘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며 지내온 것을 기억한다. 그 자녀는 지금 자신이 치료받았던 캐나다에서 남들을 치료하기 위한 공부를 마치고 직업인으로 지내고 있다니 가슴 뭉클한 소식이다.

후반부의 외교관 경험을 소개한 내용은 대부분 러시아, 카자흐스탄, 라트비아 근무 시절을 배경으로 한다. 그는 한국과 소련이 공식 수교도 하기 전에 모스크바 국립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소련의 해체과정을 현장에서 목격한 사람이다. 그 후 외교관이 되어 주러시아대사관에 여러 차례 근무하면서 정무와 경제업무를 섭렵하면서, 병행하여 모스크바 국립대 야간과정에서 박사 학위를 마무리하였다. 이런 그의 소중한 경험을 감안할 때, 저서에서 통찰력 있는 러시아 관찰 기록이 조금 더 포함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하지만, 저자 자신도 좀 더 학문적이고 깊이 있는 내용은 다음번 저술에서 다룰 것을 기약하고 있으니 기다려보기로 한다. 모스크바뿐 아니라, 발트 3국의 중심국인 라트비아에서 초대 대사를 역임한 남다른 경험도 현대 국제정치에서 소련과 러시아의 위상을 살펴보는 데 가치 있는 자원이 될 것이다. 첫 저서에서 자신의 인간성과 러시아 전문 외교관으로서 배경을 풀어내 독자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으니, 조만간 러시아 전문가로서 학구적인 면모를 과시할 그의 다음 저서가 기대된다.

출처: 「나는 매일 새로운 항해를 한다」, 『외교』 147호, 이시형 한국외교협회 부회장, 전 주OECD 대사

 

 

 

 

나는 매일 새로운 항해를 시작한다 | 한성진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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