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 나그네 연길 안까이’라는 제목이 가리키는 것처럼 연변에 오랜시간 터를 두고 살아온 나그네(남편)와 안까이(아내), 즉 연변 땅의 평범하고도 소박한 사람들의 일상을 따스한 시선으로 포착한 박태일 시인의 시집 『연변 나그네 연길 안까이』.
이 시집에는 연변 사람들의 일상뿐만 아니라 연변으로의 이민 후 서럽고 낯선 삶을 지속해야 했던 연변 조선족의 고투 역시 여러 편의 시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연변에서의 전쟁과 전염병, 항왜투쟁, 이민사 등 눈물 마를 날 없던 아픈 역사의 줄기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춥고 고된 연변살이의 울림이 켜켜이 실린 『연변 나그네 연길 안까이』의 이야기가 <부산일보>에 소개되었습니다.
“연변은 슬픔이 호두알처럼 갇혀 뒹구는 땅”
박태일 시인 일곱 번째 시집
‘연변 나그네 연길 안까이’ 출간
항일 투쟁 상흔 ‘비극의 성지’
‘한국 바람’에 빈 껍데기 전락
“연변은 그리움과 슬픔이 호두알처럼 갇혀 뒹구는 땅이에요.”
일곱 번째 시집 <연변 나그네 연길 안까이>(산지니)를 낸 경남대 명예교수 박태일 시인의 말이다. ‘옌볜’이 아닌 ‘연변’이라는 발음은 우리 식으로 부르는 것인데, 요컨대 연변에는 우리 겨레의 그리움과 슬픔이 ‘울퉁불퉁한 딱딱한 외피’ 안에 여전히 갇혀 뒹굴고 있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200만 명이 만주 땅으로 갔는데 그중 절반이 그 땅에 여전히 살고 있기 때문이다. 200만 명의 주축은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사람이었다. 이제 국적이 달라졌으니 ‘슬픈 경계’에 놓인 이들이 그들이다. ‘조선족 한족 핏줄기 경계가 있기는 한 것인가/나라가 무릎을 꿇을 때마다 변강으로 월경으로/흐르다 밟혀 찢겼던 울음’.
‘아, 연변!’이라는 아득한 감탄사를 토하게 하는 이번 시집은 애잔한 연변 실록이다. 연변을 하나의 시집으로 오롯이 묶은 매우 특이하고 귀한 시집이다. 나그네는 남편, 안까이는 아내란 뜻이다. 연변 사람들의 현재와, 일제강점기 항일의 상흔이 101편 시에 ‘하나의 기록’처럼 담겨 있다. 두만강에 붙어 있는 연변(조선족자치주)에는 연길 룡정 화룡 왕청 도문 안도 돈화 훈춘에 이르는 여덟 ‘고을’이 있는데, 그 지명 표기에 첫소리의 아름다움을 살린 연변·북한 쪽 표기를 따랐다고 한다.
시인은 한·중 수교 전인 1991년 연변에 처음 갔고, 2015년 한 해 동안 연변에 머물렀으며, 2016~2019년 방학 때마다 연변을 찾았다. 북한 문학 관련 사료를 모으고, 연변 시를 쓰기 위해서였다. 머릿속이 아니라 지상 위에서 세계와 충돌하고, 세계를 포섭·내화하면서 쓰는 이런 것이 시 쓰기요, 시여야 한다는 방식이 시집에 가득 고여있다.
먼저 연변은 항일 투쟁, 독립운동의 성지다. 비극의 성지다. 1931년 일제에 의해 수천 명이 학살당한 신미해란강참변은 참혹했다(‘잠자리 날아 나온 곳’). ‘이를 뽑아도 투항하지 않은 아들 입안에 대고 총을 쏘아 죽’이고 ‘큰 돌덩이로 몸을 눌러 놓고 가죽 채찍으로 살을 뜯’는 학살을 자행했는데 그 뒤부터 해란강은 더욱 붉었다는 것이다.
청산리전투의 김좌진 장군이 암살당했을 때 세 살이던 딸 ‘산조’는 지금도 목단강 인근에 산다(‘산조 저 김좌진의 딸’). 뒤를 밟던 밀정들에 의해 잔혹하게 난도질당한 어머니 옆에 ‘발가벗은 갓난애가 바둥바둥’하고 있었다는데 그 산속에서 태어난 갓난애가 산조다. 산조의 삶도, 찢어진 조국처럼 고난과 파란 자체였다.
시인은 화룡에 있는 대종교 삼종사(나철 서일 김교헌)의 방치된 무덤을 찾아, 검지 물집이 터지도록 손벌초를 했다(‘손벌초’). ‘배달겨레 흰옷 겨레 길이길이 모여 살자’ 했으나 남과 북, 만주, 곳곳으로 갈라지고 찢어져 ‘슬픔은 깊어도 아주 멀리 깊은 것인데’…. 대종교의 나철기념관이 전남 벌교에 있는데 ‘연변에서 먼 전라도 땅까지 와/한나절 통곡하고 갔다는 한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그 연변 사람은 ‘오가는 이 없는 뜰에 서서’ 통곡을 했다고 한다. 그 통곡이 우리의 찢어진 아픈 역사를 상징한다.
시집 해설을 쓴 평론가 김관웅 전 연변대 교수에 따르면 연변에는 ‘조선 바람’과 ‘한국 바람’이 각각 불었다. 조선족이 북한과 남한으로 건너가거나 진출한 것을 일컫는다. 해방 직후 북한에 건너간 조선인 부대는 한국전에 참전하기도 했으며, 특히 모택동 대약진운동으로 아사자가 속출할 때부터 1980년대 초까지 그런대로 살았던 북한으로 사람들이 많이도 진출했다. 세차게 분 ‘조선 바람’으로 10만 명이 북한에 나갔다고 한다.
하지만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에는 중국 조선족 사회의 풍향은 완전히 바뀌어 초강풍의 ‘한국 바람’이 불었다. 조선족 인구 총 190만 명 중 70만 명을 웃도는 숫자가 한국에 돈 벌러 갔다는 것이다. 연변은 현재 조선족 문화의 기반인 농촌공동체가 뿌리 뽑혀 ‘빈 껍데기’처럼 변했다. 곳곳의 사람 없는 집 ‘굴뚝은/연기를 끊었’으니 ‘몃이 업소 다 한국 갓소’라는 소리가 황량하게 뒹구는 곳으로 전락했다. ‘격변도 이런 대격변이 없다고/이제는 돌아온 연길이 낯설다고’. 벌교를 찾아와 그토록 통곡한 연변 사람처럼 연변 자체가 통곡하고 있는 양상이다.
박태일은 북방 리듬의 시인 백석을 공부한 합천 문림 출신 시인이다. 시에는 북방 리듬이, 연변을 감싸고 있는 이도백하, 부르하통하의 물길처럼 흐르고 있다. ‘아다다는 아다다 답하라 떠밀지만/(중략)/아다다는 아다다 노래는 날을 새는데/(중략)/아다다는 아다다/울먹울먹 검은 눈에/홀로 걷는 연길 밤.’(‘연길 아다다’) 나타샤 대신 아다다가 아다다, 라는 짧은 외마디를 공굴리며 애처롭게 울먹이고 있다.
↓ <부산일보> 기사 전문 (2023. 12. 25. 최학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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