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니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편집자 진야입니다. 여러분은 ‘불교’라는 단어를 들을 때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저는 등산을 즐기는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 사찰에 많이 들르곤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불교는 친숙하면서도 막상 이야기하려고 하면 조금 아리송한 주제이기도 합니다.
지난 4월 19일, 산지니X공간에서 책 『불이문을 넘어 붓다의 세계로』를 중심으로 저자와의 만남을 가졌는데요. 이찬훈 교수의 탐구와 고민의 결실을 통해 ‘불이사상’의 관점에서 불교의 역사를 살펴보고 더 나아가 사회 속에서 불교의 역할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현장을 지금 공개합니다.
이찬훈 교수의 자기소개와 인사로 본격적인 저자와의 만남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다양한 관심분야와 오랜 연구경험을 통해 책의 깊이를 떠올려 볼 수 있었습니다.
이찬훈 교수 : 저는 인제대학교 인문문화학부에 근무하고 있는 이찬훈이라고 합니다. 저는 철학을 전공하고 있고요. 또 여러 분야의 철학을 공부를 해왔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제가 가장 힘을 기울여서 공부를 해온 분야는 불교철학 분야입니다. 벌써 몇십 년 동안 불교철학을 공부해 왔지만 그동안 공부한 내용을 한 번 정리해 내야 되겠다, 이런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기회가 없었는데 산지니 출판사에서 이번에 『불이문을 넘어 붓다의 세계로』라고 하는 이 책을 내게 됨으로써 제 바람을 이루게 됐습니다.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또 산지니 출판사 식구들한테 대단히 고맙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고 오늘 또 이렇게 여러 선생님들과 책에 대해서 얘기를 나눌 수 있게 돼서 더 기쁩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함께해주셔서.
제목에 등장하는 단어인 ‘불이문(不二門)’은 실제 사찰에 가면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문입니다. ‘불이문’을 제목에 넣게 된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책의 방향과 주장에 대해 전반적으로 가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찬훈 교수 : 이 불이문을 넘어서게 되면 바로 대웅전이 있는 절집 마당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그래서 이 불이문을 넘어서면 이제 그야말로 부처의 세계, 불교 세계의 불국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불이문은 진리의 세계와 속세의 세계를 가르는 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재미난 것은, 이 문이 진리와 속세의 세계를 가르면서도 그 이름을 보면 속세와 진리의 세계가 둘이 아니라는 말인 겁니다. 그래서 이 문을 들어서면 붓다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것처럼 불이의 깨달음을 얻을 때 진리의 세계, 붓다의 세계로 들어설 수 있다는 의미에서 제 책의 제목을 『불이문을 넘어 붓다의 세계로』라고 정했습니다.
이찬훈 교수는 불이사상을 크게 ‘일다불이(一多不二)’와 ‘유무불이(有無不二)’로 나누어 그 의미를 살폈습니다. 쉽게 의미를 짐작하기 어려웠던 네 글자의 단어들이 차츰 다가와 뚜렷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일다불이’에 대해, 저자는 쉽게 접할 수 있는 자연의 예시를 들었습니다.
이찬훈 교수 : 일다불이는 ‘하나와 여럿이 둘이 아니다’라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하나를 잡으면 그 나머지 것,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을 여럿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랬을 때 그 하나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여럿은 둘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 우주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은 그 자신 속에 온 우주를 담고 있습니다.
저는 봄이 되면 우리 산하 벚꽃에 피는 꽃 속에서 온 우주가 들어 있음을 종종 봅니다. 강원도 동강 강가에 가면 할미꽃이 핍니다. 이 꽃이 이런 꽃의 모습으로 있으려면 무엇이 있어야 합니까? 예를 들어서, 이 꽃이 뿌리를 내리는 땅이 있어야 합니다. 땅속의 자양분이 이 꽃 속으로 들어와서 영양을 공급해 주지 않으면 이 꽃이 이런 꽃으로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정말로 글자 그대로 땅이 흙이 이 꽃 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땅과 이 꽃은 둘이 아니지요. 또, 햇빛이 있어야 됩니다.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는 저 해 없이는 꽃이 꽃으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저 해가 꽃 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해와 꽃은 둘이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다’라고 하면 될 걸 왜 ‘둘이 아님’이라 하냐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는 아닙니다. 만약에 하나라고 하면 어째서 하나인데 꽃은 꽃으로, 태양은 태양으로 있을 수가 있습니까? 따라서 꽃과 태양은 하나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둘입니까? 둘이라고 하면 전혀 상관없이 따로 독립적으로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말씀드렸듯이 이 꽃 속에는 태양도 들어와 있고 물도 들어와 있고 흙도 들어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역시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니, 둘은 아닙니다.
‘일다불이’의 연장선상에서 ‘유무불이’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두 가지가 완전히 별개의 개념이 아니라는 점이 흥미로웠고, ‘불이’라는 단어가 동시에 가지는 깊음과 단순함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찬훈 교수 : 일다불이를 이해하게 되면 유무불이는 쉽습니다. 일다불이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들과의 상호 의존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그 자체로 독립적인 실체가 아닙니다. 다 다른 것들과의 연관성 속에서, 즉 인연 속에서 만들어진 것일 뿐입니다. 불교에서는 그것을 ‘자성이 없다’라고 표현합니다. 한마디로는 ‘공하다’라고 하죠. 그러니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공한 것입니다. 공하다는 것을 다른 말로 하면 제가 말씀드리는 ‘유무불이’입니다.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요, 있으면서 없는 그런 것입니다.
세상 만물은 고정된 자성이 없고 여러 가지 관계, 불교식으로 말하면 인연에 따라 일시적으로 성립된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것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동시에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그런 것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유무불이가 의미하는 바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이찬훈 교수는 초기 불교에서 대승불교까지의 많은 사상들이 근원적으로는 불이의 통찰을 근본으로 하고 있지만, 각자 어떤 측면을 너무 강조하고 다른 측면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면서 때로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저자는 화엄사상(華嚴思想)의 가능성에 주목합니다.
이찬훈 교수 : 불이사상의 관점을 기반으로 하면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쳤던 이런 편향성을 가졌던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더 넓은 경지로 나아간 것을 저는 화엄사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특히 저는 이 화엄사상이 불이사상 가운데 그동안 충분히 주목을 받지 못한 일다불이의 사상적 의미를 잘 밝혀주고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다불이를 알고 나면 유무불이는 어떻게 보면 자동적으로 따라온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실제로 초기 불교부터 대승불교 기신론까지 이르는 사상을 보면 끊임없이 논쟁하고 계속 따지는 것이 거의 유무불이 문제입니다. 물론 유무불이 문제는 아주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더 나아가서 일다불이에 잘 천착하면 이 세상에서 생겨나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현대 불교에 대한 비판과 반성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경전과 사상가들뿐만 아니라 현실 종교로서의 불교에 대한 성찰을 접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이찬훈 교수 : 저도 불교 공부하는 사람이지만, 불교는 그동안 ‘내 마음’과 같은 것들을 굉장히 강조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개인의 내면적인 변혁에 치중합니다. 물론 종교이니 내면적인 깨달음을 중시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그것만 중시하기에는 현대 사회가 만들어내고 또 조장하는 여러 가지 삶의 문제들이 있거든요. 그런 것들은 사회적인 겁니다. 그런 사회적인 인식과 실천에 대해서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실제로 우리 삶의 문제들은 해결될 수가 없거든요. 그런 관점에서 저는 우리의 깨달음이 우리의 현실 속에서, 구체적인 사회 속에서 실천되고 구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현대 사회 속에서 마주하고 있는 여러 가지 중요한 문제들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이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 메커니즘 시스템을 이해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를 이해할 수 없고, 이 사회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또 이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해서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세계가 바로 이 세계화 시대입니다. 자본주의와 세계화로 인해 우리 인류가 마주하고 있는 최고의 문제, 가장 큰 문제는 인류가 절멸에 이를지도 모르는 이 생태계의 파괴 문제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불이와 화엄사상의 관점에서 어떻게 봐야 될 것인가,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될 것인가에 대해 책에서 상세하게 논의했습니다.
열띤 분위기 가운데 관객 질문과 답변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다양하고 풍부한 질문을 통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떠올리고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참석자 : 원래 사회철학을 공부하셨다가 불교로 사상적 전회를 하셨다고 했는데, 불교의 어떤 부분이 감명깊으셔서 그렇게 연구분야를 바꾸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이찬훈 교수 : 불교 쪽에 감명을 받았다기보다는, 저는 제가 살고 있는 이 자본주의 사회가 도대체 어떤 사회냐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회 속에서 저나 또 이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행복하게 여겨지지 않는 겁니다. 그러면 이 사회를 어떻게 바꿔나가야 될 것인가, 이런 것에 관심이 많았죠. 그런데 아시다시피, 역사적으로 이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 건 사회주의 아닙니까? 그래서 사회주의 쪽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80년대 말이 되어 사회주의권이 우르르 무너지지 않았습니까? 그러면서 이제 저는 사회철학을 하던 사람으로서, 자본주의 사회가 행복한 사회는 아닌데, 그럼 바꿔 나가야 되는데 사회 위기가 대안일까, 이렇게도 생각해 봐도 그게 아니었습니다.
길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보니 사회주의 사상, 특히 이제 시조인 마르크스라든지 이런 사람들이 가진 사상은 조금 협소하고 좁다, 어떤 면에서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점을 잘 제시해 주고 훌륭한 부분이 있지만 근원적으로 이 우주와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으로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암중모색을 하다 보니 불교를 포함해서 이 불이사상이라고 하는 걸 제가 깨닫게 된 겁니다. 그래서 그때 더 큰, 더 넓은 어떤 사상의 지평으로 나아가야겠다고 한 것이 불교 쪽으로 전회한 이유입니다.
참석자 : 좀 있으면 부처님 오신 날이 돌아오고, 꼭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절에도 많이 가는데 혹시 부처님 오신 날 어떤 마음으로 절에 가서 어떤 걸 빌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찬훈 교수 : 저는 사실은 한국불교가 안고 있는 문제점 중에 하나가 너무 기복에 치우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부처님이 이야기한 것은 일다불이입니다. 온 세상 만물과 내가 둘이 아니라는 것이죠. 또 나라고 하는 존재를 포함해서 모든 것들은 유무불이, 사실은 공하다는 것을 끊임없이 얘기했습니다. 기본적으로 복을 빈다고 할 때 그 복은 내 복, 나 잘 되고 또 내 가족이 잘 되고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복이라도 나보다는 가족들 복을 많이 빌기도 합니다만은 자칫 잘못하면 이것이, 울타리를 쳐서 나와 가까운 것들만이 잘 되기를 바랄 위험이 있습니다.
물론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기 삶이 중요하고 또 자기 주변에 있는 가족들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당연히 중요하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런 것도 좋지만 그것에 조금 하나 더 얹어서, 조금 더 크게, 어쩌면 거창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세계 평화도 한번 빌어보고 우리 민족의 통일도 한번 빌어보고 저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전쟁도 좀 없어졌으면 하는 그런 바람도 빌어보고 하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찬훈 교수는 불교의 근본 가르침을 알리면서도, 이것을 기초 삼아 우리가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더 행복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데 참고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전했습니다. 불이사상이 우리의 현실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헤아려 보았습니다. 배움과 실천이 함께하는 삶을 다시 그려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저자 소개 불이당(不二堂) 이찬훈 인제대학교 인문문화학부 교수. 불교철학, 사회철학, 동양철학 및 동양미학 전공으로 부산대학교 철학과 및 동 대학원 철학박사. 저서: 『둘이 아닌 세상』(이후), 『불이사상으로 읽는 노자』(예문서원), 『불교의 미를 찾아서』(담앤북스), 『서양의 정의론, 동양의 정의론』(예문서원) 역서: 『사회적 실천, 자연 그리고 변증법』(공역, 동녘), 『소크라테스에서 사르트르까지』(공역, 동녘), 『한 권으로 읽는 동양미학』(이학사) |
『불이문을 넘어 붓다의 세계로』 저자와의 만남은 유튜브 '채널산지니'에서 다시보기 할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live/mJf0KLhSDvM?si=l2AJnjG16zDd4q69
▶ 『불이문을 넘어 붓다의 세계로』 책 소개
『 불이문(不二門)을 넘어 붓다의 세계로 』 - 초기불교에서 화엄까지, 불이사상으로 꿰뚫어 본 불교
이찬훈 지음 / 2024-02-26 / 554쪽 / 38,000원
불이사상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만물의 관계를 불이(不二) 관계로 설명한다. 세상의 모든 현상과 사건은 서로 관계를 맺는 데서 생겨난다. 하나와 나머지 여럿의 관계는 근원적으로 둘이 아니며 관계의 그물망 속에 존재한다. 저자는 불이사상을 불교의 핵심사상이라 보고 불교 전체를 불이사상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이 책을 통해 불이사상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 나, 나의 것, 나의 생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무애의 경지에서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1부는 니까야에 담긴 연기론, 사법인, 사성제 등 초기불교의 핵심적인 사상을 설명하고 불이사상을 논한다. 2부는 『아비달마구사론』을 중심으로 부파불교를 논하고 대승불교의 반야 공사상과 유식사상, 대승기신론사상을 다룬다. 3부에서는 『화엄경』과 화엄사상을 불타관, 법계관, 보살관을 중점으로 서술하여 불이사상의 심화 과정을 밝힌다. 끝으로 4부는 불이와 화엄사상의 관점에서 현대사회의 여러 문제점을 다룬다.
▶ 『불이문을 넘어 붓다의 세계로』 구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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