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장의 페미니즘
책소개
충돌하는 노동자성과 여성성 사이에서 갈등하며
남성 중심 작업장과 노동조합에서 분투하는 여성들을 만나다
건설, 철도, 물류, 자동차 공장… 모두 남성 노동자의 수가 여성 노동자의 수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남초’ 사업장이다. 이러한 사업장은 일반적으로 거칠고 위험한, 남성의 공간으로 인식되기 쉽다. 그러나 이곳에도 여성들이 있다. 소수이지만 남성 중심 작업장에도 여성 노동자들이 존재하고, 현장에서 더 나은 조건 아래 일하기 위해 권리를 외치는 여성활동가들이 존재한다.
남성 노동자들은 여성이 자신들의 사업장에 들어오는 것을 ‘침입’으로 여긴다. 남성 중심적으로 짜인 노동 환경 속에서 여성은 보조적 역할을 부여받기 쉽고, 여성을 위한 작업복이나 휴게 공간조차 충분하지 않다. 여성 노동자들은 열악한 조건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여성성을 부정하고 외면하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남초 작업장과 노동조합에서 구체적으로 여성들은 어떤 조건에 놓여 있을까. 여성 노동자이자 활동가들은 어떤 갈등과 충돌을 극복하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을까.
저자는 남성 다수 사업장에서 일하는 열 명의 여성활동가와 대표적인 여성 사업장인 교육과 의료현장에서 일하는 여성활동가 두 명을 만났다. 그리고 이들이 자신의 현장에서 어떤 갈등을 겪고 불화하면서 저항하고 있는지, 이들이 마침내 쟁취한 것은 무엇인지, 여성이라는 소수자성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실천을 지속하면서 다른 여성활동가를 재생산하고 있는지 그 이야기를 들었다. 또한 남성 다수 사업장과 여성 다수 사업장이라는 서로 다른 조건에 있는 여성 노동자들이 경험하는 일과 활동을 비교하여 살폈다.
이 책은 곧 저자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자 이현경은 20년 넘는 시간 동안 남성 중심 사업장에서 여성 노동자로서, 노동조합의 여성활동가로서 활동했다. 그는 자신과 동료 여성활동가들이 노동 현장의 가부장적 구조를 인식하고, 그 속에서 여성으로서 자신의 경험을 해석해나가는 과정을 책에 담았다. 『작업장의 페미니즘』은 이러한 여성활동가들의 투쟁과 실천을 기록한 결과물이다.
여성 노동자가 속한 공간은 여성을 어떻게 규정하고 억압하는가
여성활동가들이 주로 활동하는 공간은 작업장, 노동조합, 그리고 가정이다. 이 세 영역은 공통적으로 성별 분업구조가 작동하며, 여성에게 특정한 성역할을 부여하고 요구한다. 시대가 변화하고 있음에도 남초 사업장과 남초 사업장의 노동조합에는 여전히 가부장적 질서와 남성 중심의 문화가 깊이 뿌리내려 있다.
여성활동가들은 가족 밖에서는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지만 가족 내에서는 여전히 전통적인 성역할 수행을 요구받는다. 가사와 돌봄 노동을 둘러싼 갈등은 계속되며 가족 내부에서 계속 협상해야 한다. 작업장에서 여성 노동자는 남성을 보조하는 2차적 존재로 취급된다. 핵심적인 업무는 남성이 맡고, 여성은 부수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선로 유지 보수하는 데 있잖아요… 기계화되기도 했지만, 곡괭이질 하고 여전히 흙 고르고 이거 세 명이 줄 잡고 고르고 하는 일도 똑같이 하거든요. 근데 여성들이 막 들어온 거예요… 너무 그거는 좀 위험하니까 일을 아예 안 시키는 거죠. 아예 옆에도 못 오게 하고 그냥 열차 감시 같은 것만 시키고._본문 인터뷰 중에서
이러한 남성 중심적 질서는 노동조합에도 동일하게 반영된다. 노동조합의 권력구조, 운영 방식, 문화 전반에서 여성의 자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작업장에서 부차적인 존재였던 여성 노동자는 노동조합에서도 희소한 존재가 되며, 대개 ‘여성 사업’이라는 제한된 역할만을 맡는다. 여성 다수가 종사하는 산업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노동조합의 권력은 여전히 남성이 장악하고 있으며, 여성 대표들은 남성과 같은 방식의 리더십을 발휘할 것을 기대받는다. 결국, 여성활동가들은 작업장, 노동조합, 가정이라는 세 공간에서 모두 ‘젠더화된 분업구조’에 갇힌다.
살아남은 여성 노동자들, 페미니즘을 만나다
저자가 만난 여성활동가들은 페미니즘을 통해 노동 현장의 가부장적 구조를 깨닫고, 여성 노동자로서의 주체성을 자각하게 되었다. 이들은 페미니즘 학습을 통해 자신의 여성성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이를 성찰하는 과정 속에서 더욱 단단해졌다. 노동조합 내부에서 조직적인 여성주의 실천이 확산되고, 사회적으로도 페미니즘이 대중화되면서 여성활동가들의 페미니즘 인식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여성활동가들은 모든 여성이 원하는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남성 중심 사업장에 여성 노동자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돕고, 다른 여성 노동자에게 버팀목이 되어주며 여성 노동자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 또한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참여하고 활동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여성활동가의 재생산에도 힘쓰고 있다. 남성성이 지배적인 노동조합, 가부장적 노동조합의 기득권을 부수기 위해 여성 노동자와 여성활동가의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지금 이렇게 의욕 넘치는 친구들이, 이런 제도적인 문제나 사람들이 기존에 갖고 있던 활동가들에 대한 고정관념 이런 것 때문에 제풀에 지가 쓰러져가지고 활동 안 한다고 해버릴까 봐, 그게 제일 걱정이죠. 그래서 맨날 다독이잖아, 지치면 안 된다고. “우리가 먼저 진짜 포기하면 우리가 지는 거다, 절대 포기하지 말자. 같이 가자, 같이 가자” 이런 거죠._본문 인터뷰 중에서
여성활동가는 여성 노동자의 불평등한 노동조건과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서 능동적으로 행동해왔고, 노동 현장의 민주주의와 노동조합 내 성평등을 확대하기 위하여 실천해왔다. 이들이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여성인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고 작업장의 성평등과 성별 분업구조의 해체를 목표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은 페미니즘 학습을 통해서였다. 여성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노동 현장에서 여성 노동자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것은 여성 노동자, 여성활동가가 생존하기 위한 절박하고도 필수적인 실천이다.
책속으로
p40 IMF 이전부터 단순노무직, 판매, 서비스업에 주로 종사했던 여성들은 IMF 경제 위기와 2008년의 경제 위기 이후 한국 사회에 증가한 ‘나쁜 일자리’에 주로 고용되어 일하다가 여전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일자리를 잃었다. 코로나19 위기 국면에 처하자 여성 노동자는 셧다운된 사회와 시장을 대신하여 돌봄노동을 떠맡아 가장 먼저 가정으로 되돌아가거나 실업, 해고 상태에 놓였다. 다른 한편에서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요구에 따라 여성 또한 ‘개별화’와 ‘경쟁’의 주체가 되어 남성과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링을 스스로 요구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렇게 시대의 변화에도 여전히 성별 분업구조는 견고하고 여성 노동자의 주변적, 보조적 위치에는 변화가 없다.
p85-86 남초 사업장의 여성활동가는 매우 드문 존재이다. 노동조합 간부는 압도적으로 남성이 다수다. 노동조합 주요 업무는 대부분 남성들이 한다. 여성에게는 주어진 역할도 제한적이고 극단적으로는 여성이 노동조합 안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아도 노동조합은 ‘정상적’으로 유지된다. 여성 노동자에게(사실, 많은 남성 노동자에게도) 현장은 생계의 공간이고 노동자 삶의 주요한 공간은 현장 밖, 대개의 경우 ‘가족’이다. 따라서 남초 사업장의 남성 노동자들은 여성활동가를 개인적이고 특수한 경우에 해당하는 존재, 또는 매우 우연적이고 돌출한 존재로 인식한다.
p137 여성 조합원이 노동조합 활동과 실천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시대적 상황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여성 노동자가 투쟁하지 않은 시대는 한순간도 없다. 여성 노동자의 결연한 역사적 투쟁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노동자의 계급성이 터져 나오는 시대의 특정한 조건은 여성 노동자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계급성과 여성성의 관계, 대립과 모순은 역사적, 현실적 조건 속에서 제약받을 수밖에 없다. 그 모순을 해결할 방법과 수단은 무엇인가? 여성은 여성으로서의 노동자, 노동자로서의 여성이라는 이중적 존재이다. 여성의 이중적 정체성이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 여성 노동자는 여성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확립해야 하고 노동자로서의 여성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성에게 강요된 이중적 굴레를 인식하고 극복하기 위한 학습과 실천, 노동자로서의 위치와 주체성을 정립할 수 있는 실천이 중요하다. 여성과 노동이 함께 재인식되어야 한다.
p172 여성활동가는 의식적으로 노동조합으로부터 자율성과 독자성을 확보해야 한다. 노동조합 내부에서의 활동과 동시에 독자적인 페미니즘적 사고와 실천이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여성활동가들이 현장에서 노동조합이라는 토대 없이 조직적으로 활동하고 실천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관료주의 혁신, 가부장성 타파, 위계와 서열을 벗어난 수평적 구조의 추구, 기득권의 포기 등 현재 노동조합이 보여주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극복해나갈 주체는 바로 여성활동가들이다. 여성활동가 실천의 목표는 여성을 노동조합 안에 양적으로만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다. 관료화된 현재의 노동조합에 숨을 불어넣어 유지하고 재생산을 원활하게 하는 것만이 여성활동가의 목표일 수는 없다.
p221 여성 노동자는 더 이상 위기 때마다 속수무책으로 희생당하던 일을 다시 또 겪지는 않을 것이다. 위기 상황마다 반복되었던 여성 노동자 퇴출과 배제, 독박의 경험 속에서 여성 노동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계급적 위치를 인식했고, 성별 분업을 전제하는 체제에서 여성 노동이 어떻게 착취당하고 가격이 정해지는지 확인했다. 그것은 페미니즘 학습과 페미니스트로의 정체화를 통해서 가능했다.
추천사
저자 이현경은 1996년부터 현재까지 지하철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노동자이다. 안전모에 작업화, 커다란 공구를 든 여성 노동자를 떠올리는 것은 쉽지 않지만 철도와 자동차, 건설 대형사업장에 이런 여성 노동자들이 소수 존재한다. 남성 동료와 같은 침실을 쓰고 여자화장실이 없는 현장에서 24시간 맞교대를 하던 ‘명예 남성’ 철도 여성 노동자, 국적을 넘는 가부장제하에서 5순위로 고용되는 건설 여성 노동자(한국 남성-중국인-탈북민-이주 남성 노동자-한국 여성). 남성 중심 사업장에서 이 ‘낯설고’,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들이 어떻게 살아남아 오늘에 이르렀는가를 이 책은 증언한다. 중국 사회주의는 ‘남성과 여성은 같다’는 전제하에 ‘강철같은 여성’ 노동자를 배출하였으나 1980년대 글로벌 자본 유입으로 단절과 급속한 성역할 이분화를 겪었다. 이와 달리 한국 사회는 노동조합을 통해, 미투운동을 계기로, 지식을 통해 비로소 ‘페미니스트 노동자’ 집단을 탄생시켰으며, 그 한가운데 단아하고 금강석같이 견고한 ‘여성’ 노동자 이현경이 존재한다._김미란(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HK교수)
남초 사업장의 여성 노동자, 작업장에 잘못 들어온 아줌마. 공기업, 형식상 임금표와 직급체계에서는 남녀 차등 적용이 없지만, 기본급표의 호봉이 다르고 진급이 다른 회사. 그래서 남성 동기 대비 가장 늦게 여성이 진급하는 회사. 무궁화호의 객차를 뗐다 붙였다 하는 근력이 필요한 회사에서 좌절을 느끼기도 하지만, “여성 노동자에게 좋은 것은 남성 노동자에게도 좋다”는 설득과 함께 장비를 바꾸고 일터를 바꾸어온 사람. 성별분업의 축소판인 노동조합에서 활동가가 되고 노동조합의 남성카르텔에 맞선 사람. 이현경은 조용히 그리고 씩씩하게 이런 일들을 해왔다. 페미니즘은 읽히지만 노동자 이야기는 잘 읽히지 않는 현실에서 쓱쓱 읽히는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를 써낸 것을 보면 그녀의 글솜씨 또한 예사롭지 않다. 분노와 슬픔이 몰아치지만 위로와 연대의 힘을 불쑥 솟게 만드는, 한 사람의 생애를 만나고 페미니즘을 엿보고 나 자신을 발견한다._신경아(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참 반가운 책이다. ‘여성 문제와 노동 문제’를 같이 걸머지고 분투하는 여성 노동자 페미니스트들의 이야기. 이 책은 남성 다수 사업장에서 20년 넘게 일해온 필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남성 다수 사업장 여성 노동자들의 경험을 ‘여성 노동자의 시각’으로 연구한 책이다. 이 책은 작업장, 노동조합, 가정이라는 공간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위치를 돌아보며, 특히 작업장에서 여성 노동자의 저항과 페미니즘의 만남을 주시하였다. 여성 문제나 페미니즘 관련한 많은 책이 출판되었지만, 이 책은 처음으로 작업장에서의 여성 노동자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그 때문에 여성주의와 노동운동의 결합문제를 고민하는 이들이, 아니 여성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하는 이들도, 꼭 읽어야 할 책이다._유경순(한국여성노동사 연구자)
저자 소개
이현경
노동현장의 여성활동가이다. 지하철 현장에서 30여 년 가까이 일하고 있다. 오랜 시간 페미니즘을 의식적으로 외면하고 살았지만 자기 삶을 해석하고 대안을 찾는 고통스런 통과의례 끝에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머리칼 희끗해져서 여성학을 공부하고 성공회대학교 실천여성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페미니즘은 여성이 노동하는, 사랑하고 투쟁하는, 낳고 기르고 돌보는, 늙고 아프면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삶으로 실천해야 완성되는 이론이라고 주장한다. 함께 공부하고 뜻 맞춰온 동지들 덕분에 소심하고 예민한 개인이 조금 나은 사람이고자 부단히 노력하며 살아올 수 있었다. 앞으로 노동현장의 페미니즘, 여성 노동자의 페미니즘을 예리하게 갈고 단단하게 쌓아나가고 싶다.
차례
들어가며
1부 남초 사업장의 여성 노동자
내가 만난 여성활동가들
나는 어떻게 남초 사업장에 들어오게 되었나
생애 주기에 따라 남초 사업장에 진입하다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남초 사업장에 진입하다
2부 여성 노동자의 장소
작업장: 남성에 맞춘 노동, 여성이 대상인 차별
작업장에 잘못 들어온 ‘아줌마’
여성은 집으로, 남성은 승진을
‘밥하는’ 여성 노동자
노동조합: 성별 분업구조의 축소판
노동조합 진입의 계기
성별 분업구조의 축소판, 노동조합
가족: 활동가 정체성의 ‘시험장’
협상과 타협, 진행 중인 갈등
지지하고 지원하는 가족
연대와 돌봄으로 확장하는 새로운 관계
3부 살아남은 여성활동가들
보이지 않는 여성 노동자, 튀는 여성활동가
보이지 않는 여성 노동자
튀는 여성활동가
고통과 상처를 안고 살아남기
‘살아남은’ 여성활동가, 페미니즘을 만나다
스스로 공부하며 만난 페미니즘
교육을 통해 만난 페미니즘
그리고 ‘페미니즘 리부트’와 ‘미투 운동’
“나는 페미니스트다” 선언과 실천
“나는 페미니스트다”
노동조합의 여성활동가, ‘페미니즘 실천가’
페미니스트 여성활동가가 만든 성과
4부 지속 가능한 활동을 위하여
여성활동가 재생산의 조건
여성, 여성의 길잡이
여성의 노동조합 참여
여성할당제
여성 노동자 페미니즘의 실천
페미니즘 이론과 실천의 결합
시대의 요구, 페미니즘
마치며
주
참고문헌
작업장의 페미니즘
지은이 : 이현경
쪽 수 : 240쪽
판 형 : 145*220
ISBN : 9979-11-6861-418-5 03330
가 격 : 20,000원
발행일 : 2025년 2월 17일
분 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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