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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현대적인 불교 시의 탄생_『룸비니 보리수나무 아래서 부처를 묻다』 윤동재 시인 북토크 후기

by 2raon 2025. 8. 27.

 

 

 

불교가 낯설지 않은 언어로 다가올 때, 시는 수행이 됩니다.윤동재 시인의 시집 <룸비니 보리수나무 아래서 부처를 묻다>는 절집을 유영하듯 거니는 시인의 시선과 상상력이 녹아든, ‘절집 몽유기행시’들로 가득합니다. 서울 진관사, 영주 부석사, 영암 도갑사 등 한국의 절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70편의 시는 마치 한 권의 시적인 템플스테이와도 같습니다.

지난 8월 21일, 산지니x공간에서는 <룸비니 보리수나무 아래서 부처를 묻다> 출간을 기념하여 윤동재 시인과 정천구 박사님의 북토크가 열렸습니다. 웃음 가득했던 그 현장 지금 바로 공유드립니다.

 


 

정천구 박사
반갑습니다. 저는 제가 쓴 책으로 북토크를 할 일은 종종 있었는데, 다른 작가님을 위해 북토크를 진행하는 건 처음입니다. 윤동재 시인과는 오랜 인연이 있습니다. 그덕에 시인께서 산지니출판사에 시집을 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드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오늘 문득 생각해 보니 선생님 뵌 지가 벌써 30년이 됐어요. 제가 대학원 다닐 때 뵙기 시작해서 벌써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사실은 제가 윤동재 선생님 뵙기 전에 다른 거의 모든 시인들의 시집은 다 읽어봤습니다. 그리고 그 시집들을 부산대 대학 도서관에 다 넘겨줬어요. 그래서 이제 제 수중에 있는 시집은 윤동재 시인 시집밖에 없습니다. 제 집에 선생님 시집이 8권 있습니다. 제일 처음에 나온 선생님 동시집 <재운이>부터, 그다음에 <날마다 좋은 날> 하고 쭈욱 꼼꼼하게 다 읽었습니다. 왜 제가 윤동재 선생님 시를 좋아했는가 하는 거는 아주 간단합니다. 일단 쉽고 재미있어요. 그리고 또 읽어도 재미있어요. 그래서 유독 제가 즐겨 읽었는데 어떻게든 선생님 시가 많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항상 있었지만 제가 별 도움은 못 돼드리다가 이 <룸비니 보리수나무 아래서 부처를 묻다> 이 시집을 내는 데에는 제가 서평이라는 걸 처음으로 덧붙였습니다. 이 시집에 비하면 서평이 그렇게 잘 됐다고 할 수는 없는데 그냥 제 데뷔작으로서 의미를 크게 두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시집과 그다음에 윤동재 시인의 시에 대해서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으로 하겠습니다.
선생님 반갑습니다.

윤동재 시인
예 반갑습니다.

정천구 박사
선생님 분당에 사시는데 멀리서 내려오셨습니다. 오늘 또 특히 날씨도 더운데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윤동재 시인
괜찮습니다. 산지니의 고마움을 생각하니까 분당과 이 산지니까지의 거리가 1초도 안 되는 것 같아요.

정천구 박사
시인의 거짓말이 이렇습니다.

윤동재 시인
저는 지금까지 거짓말을 해본 적이 없는 지구상의 유일한 사람입니다.

 

 

정천구 박사
이 시집 맨 앞머리에 선생님께서 '몽유기행시' 이렇게 해놓으셨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아마 대한민국에서 절을 제일 많이 다니신 분이 아닌가 싶은데 선생님 혹시 그런 생각해 보신 적 없습니까?

윤동재 시인
저는 몇 개만 다녔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분들은 좀 많이 다녔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제가 봉화에 어느 절에 갔더니 모 스님께서 저하고 같이 절의 중건기 현판을 쭉 해석하다가 서로 잘 풀리지 않았는데, 그분 말씀이 저보고 절에 좀 많이 다녔느냐, 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절에 다니긴 조금 다녔습니다, 하니까 정해둔 절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없습니다, 하니 "이제는 절을 정해 놓고 다니라"고 하셨습니다.

정천구 박사
그랬으면 이런 시집이 안 나오죠. 이 시집 말고 이전에 나온 시집에서 봐도 절간을 다닌 흔적이 많습니다. 절과 관련해서 쓴 시들이 꽤 시집마다 다 있어요.

윤동재 시인
제가 40년 전에 서울에 있는 종교재단에서 설립한 여학교에 근무했습니다. 그때는 종교재단 여학교에 근무하는 남자 선생님이 참 드물었어요. 제가 가니까 20대이고 남자 선생이고 하니 여학생들이 관심과 주목과 사랑을 해준 그럴 때인데 그때 제가 동시집 <재운이>라는 걸 냈습니다. 학생들이 막 찾아보고는 제가 사라고 얘기한 적도 없는데, 서울 시내 큰 서점에 가서 윤동재 시집을 달라고 했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랬더니 그 서점 주인 아저씨가 너 학교 다니냐고 묻더래요. 네, 중학교 2학년입니다, 그랬더니 "야 이놈아 윤동주도 모르고 윤동재가 뭐냐!"고 했다고 그러더라고요. 윤동재 시집을 달라고 그랬더니 윤동주 시집이 있지 세상에 윤동재 시집이 어디 있냐고 야단을 맞고 왔다 그래요. 그래서 제가 그 학생한테 늘 마음의 빚이 있었어요.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윤동재 시집을 달라고 그랬을 때 서점 주인에게서 "윤동주지 어떻게 윤동재냐" 하는 이야기가 안 나오도록 해야 될 텐데, 이 생각을 늘 하고 있었는데, 지금 제가 윤동주 선생이 돌아가실 때 나이보다 2배가 넘는 나이가 됐습니다. 윤동주보다 좋은 시를 썼는가 하는 생각은 가끔 해보게 되지만, 세 가지 점에서는 내가 윤동주만큼은 된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첫째는 윤동주 시인은 산지니에서 시집을 못 냈습니다. 그다음에 윤동주의 첫 시집에 보면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된 시가 모두 31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산지니에서 나온 <룸비니 보리수나무 아래서 부처를 묻다> 이 시집은 그 배도 더 됩니다.
그러니까 제가 윤동주 보다가 양으로 많고 그다음에 산지니에서 냈고 세 번째는 윤동주는 절에 다니면서 떠오른 생각을 시로 옮긴 적은 없습니다. 그 점에서 제가 이제 다시 그 학생을 만나면 산지니에서 나온  <룸비니 보리수나무 아래서 부처를 묻다> 이 책을 그 당시 서점 주인에게 보여줘라 그러면 너한테 윤동주지 어떻게 윤동재냐고 이런 반문하지 않을 거 아니냐 이 생각을 하고 다시금 산지니의 고마움을 느낍니다.

정천구 박사
참 고마워할 만합니다. 왜냐하면 요즘 시집을 잘 안 내주잖아요. 서울의 큰 출판사들도 시집은 잘 안 내주려는 그런 분위기가 됐습니다. 제가 대학 한창 다닐 때 90년대만 하더라도 시집이 잘 팔리기도 했는데 이제는 시집이 팔리는 건 둘째 치고 출판조차도 잘 안 해주려고 하는 시절이 됐어요.

 

 

정천구 박사
이 시집은 절간을 다니면서 보고 느낀 걸 시로 풀어낸 시집인데 크게 보면 이제 불교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단 시인이 출가한 승려가 아니고 그다음에 불교 교리 같은 아주 관념적이고 딱딱한 그런 내용을 담은 것도 사실은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불교시 역사상 가장 불교시답지 않은 불교시일 수 있고 그다음에 또 가장 현대적인 시인데 문제는 현대시를 하시는 분들, 평론을 하시는 분들은 이걸 그렇게 고깝게 보는 것 같지 않아요. 왜냐하면 현대시 아마 제가 본 것만 해도 불교와 관련된 시를 쓰신 분은 만해 한용운 이후로는 거의 없어요. 그리고 이렇게 시집 한 권이 다 불교와 관련된 시를 써서 엮어낸 분도 안 계세요. 그래서 현대시를 하시는 분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닌가 보다 이런 생각을 가끔 해요.
왜냐하면 불교시는 우리 동아시아에서는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시 형태 중에 하나거든요. 그런 생각을 하면 윤동재 시인의 이 시집은 과거에서 현재로 넘어오는 가장 중요한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또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그런 시들을 담고 있어서 굉장히 큰 의미가 있는데.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런 평론가들이나 현대시를 하시는 분들이 못 알아봤기 때문에 제가 서평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윤동주 시인보다 나은 게 저의 서평을 받아본 적이 없어요.

윤동재 시인
윤동주는 우리 정천구 교수님의 서평을 받아본 적이 없죠. 그것도 추가를 해야 됩니다.

 

정천구 박사
흥미롭게도이 시를 시인을 모르고 읽으면 불교에 대해서 굉장히 높은 식견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할 법하거든요. 그래서 저도 여쭤본 적이 없는데 궁금해요. 혹시 불교 공부를 따로 하셨는지.

윤동재 시인
불교 공부를 제가 따로 한 건 없고요. 지난번에 산지니에서 북토크를 하자고 말씀하셔가지고 제가 말씀드렸어요.
불교에 대한 알음알이를 얘기하라 하면 정천구 교수님은 꼭 모셔야 된다. 저로서는 거기에 대해서 말할 길이 없다. 그리고 아까도 제가 말씀드렸지만 제가 생각하는 시는, 물론 시에 대한 정의는 시인마다 다 다르겠고 또 학자마다도 좀 달리 생각하겠지만 저는 그래요.
저는 시라는 것은 '시시한 사람이 시시한 내용을 시시껄렁하게 하는 것'이 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시시한 내용을, 시시껄렁하게 하는 이야기를 따라 듣다 보면 반문이 생깁니다. '저 얘기 시시한 줄 알았는데 시시껄렁한 얘기가 아니네' 하는 것이 시인 거죠. 그 '아니네'가 없으면 그냥 시시껄렁한 얘기로 끝나버리는데, 시시껄렁한 이야기가 아니네 하는 그 대목에서 딱 시라는 것이 탄생한다.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제가 이제 불교 공부를 우리 정천구 교수님 앞에서 조금 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요즘 문자로 포크레인 앞에서 삽질하는 거고 산삼 앞에서 더덕 냄새 피우는 거죠. 저도 조금이야 안 했겠습니까? 조금은 했습니다.

정천구 박사
조금은 했는데 아주 깊이 하신 것 같아요. 깊게. 저도 이제 불교 공부는 오래 한다고 했는데 하면 할수록 의심스러운 때가 많아요. 왜냐하면 자꾸 산으로 가요. 스님들도 산으로 가지만 공부하는 사람들도 정말 산으로만 가고 세속과는 멀어져요. 그래서 자꾸 언어가 어려워져요. 그래서 이렇게 어려운 말을 하면 누가 알아듣고 누가 한 소식 할까 싶은데 이 윤동재 선생님 시를 읽다 보면 그런 게 불교가 아니다라고 깨닫습니다. 그럼 불교가 뭐냐 그냥 시인하고 똑같아요. 그냥 일상에서 깨달음을 얻는 거예요.
아주 사소하고 정말 조금 전에 말씀하신 것처럼 시시하게 보이는 것들 속에서 뭔가를 찾아내는 거 알아차리는 거 그래서 느끼고 깨닫는 거. 그래서 오히려 옛날에도 승려들이 불교시를 그렇게 썼던 것 같아요. 왜냐면 불교 경전이나 이론서나 이런 너무 어려운 말들이 많거든요. 생동감이 넘치는 표현들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자기가 느끼고 깨닫고 공부한 것을 시로 쓰지 않았나 싶어요. 어떻게 보면 출가한 승려한테는 시 쓰는 게 여기고 잡기로 느껴질 수 있지만 돌이켜보면 가장 대중들한테 가까이 갈 수 있는 방식을 찾아낸 게 아닌가 싶어요.

그걸 생각하면 윤동재 선생이 오늘날 조계종 출가 스님들이 한 2만 명이 넘는데 그중에 제일 나아요. 왜냐하면 그분들은 누가 읽어도 모르는 내용을 써요. 그리고 모르는 걸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근데 모르는 거는 그냥 모르는 거지 불교도 아니고 깨달음도 아닌데 윤동재 시인의 시는 모를 수가 없어요. 아주 쉽게 썼기 때문에. 그래서 한편으로는 이게 불교하고 무슨 관련이 있을까 싶기도 해요. 왜냐하면 너무 쉬워서 또 재미있어서. 근데 초기에 불교 경전을 읽으면 아함경이라든지 이렇게 초기 붓다가 가르친 걸 보면 다 쉬워요.
그리고 시적이거든요.

최근에 한강 작가가 소설을 아주 시적으로 표현했다는 걸로 대단한데 저는 윤동재 시인의 시는 시를 산문처럼 잘 표현했다고 느껴요. 그래서 제가 이야기시라고 했는데 그래서 쉽고 재미있고 그런데 한편으로는 갸우뚱하거나 또는 뭔가 슬쩍 이 폐부를 찌르는 것들이 있어요. 윤동재 시인이 불교를 체계적으로 공부하거나 또는 절간에서 수행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시인의 삶이 출가 승려의 수행과 비슷해서 그런가 이런 생각을 해봤거든요.

윤동재 시인
예전에 제가 20대 때는 우리 집사람이 짐을 지고 저는 옛날 어른들처럼 맨몸으로 걸어갔어요. 그래서 강남 고속터미널에서 밤에 우리 집사람은 그 무거운 짐을 양손에 들고 저는 앞에서 그냥 걸어가는 걸 보고 같이 근무하던 학교에 여선생님들께서 엄청 욕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그때는 그 욕을 얻어먹는 것이 자랑이었어요. 경상도 남자들은 저렇게 해야 되는구나 이렇게 생각했는데 불교에 대해서 조금 관심을 갖고 어깨 너머 조금 동냥으로, 귀동냥을 좀 하고 이러면서 제가 생각하기로 내가 절에는 열심히 다니지 않지만 내 마음속으로는 우리 집사람이 부처님이고 보살이다. 그래서 이제 고속도로 휴게소에 가면은 라면을 주문하잖아요. "170번 라면 나왔어요" 하면 우리 집사람이 가려고 하면 지금은 이제 말려요. 제가 딱 뛰어가서 마음속으로 '우리 집사람이 부처님인데 내가 공양해야지' 절에 가지고 쌀 올리는 것보다 이게 더 공양이죠. 또 다 먹고 나면은 잔반통에다 갖다 넣어야 하잖아요. 그럼 딱 들고 가서 내가 갖다 놓고. 

이렇게 하면서 수처작주, 가는 곳마다 내가 주인이 된다는 것은 다른 뜻이 아니고 내가 우리 집사람을 부처님으로 섬기는 거. 집사람이 성당에 다니지만 부처님으로 또 보살님으로 큰 스님으로 섬기는 것이 내가 불교를 좋아하고 절에 여행 가기를 좋아하는 그 소임을 다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이렇게 바꿨어요. 그러니 갑자기 저보고 공처가가 됐냐고 하는데, 제가 70이 다 돼 가는데 지금 공처가가 안 되면 집에서 어떻게 붙어 살 수 있습니까?

그런데 공처가 이전에 저는 산지니 오늘 이 공간도 저는 법당이라 생각하고 또 이 자리가 바로 부처님이 앉아 계신 자리다. 제가 지금 드리는 말씀도 여러분한테 드리는 게 아니라 부처님한테 산지니 부처님께 드리는 말씀이다. 그렇게 이제 생각하죠.
또 시골에 가서 농사 지을 때 만나는 할아버지 할머니도 그런 마음으로 대하죠.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저만 가면 이야기기하고 싶어 하시는데, 그래서 그분들이 지나갈 때쯤 몇 시쯤 지나간다는 걸 이제 알고 제가 보온병에다가 따뜻한 물을 미리 끓여가지고 준비해 놨다가, 바로 즉석에서 커피를 타 드립니다. 그분들이 말씀하면은 제가 마음속으로 부처님이 사르나트에서 초전 법률을 이렇게 하셨는데, 이분이 부처님이라고 나는 사르나트에 아직 불교의 이야기를 전혀 접해보지 못한 초심자라고 아이고 고맙습니다. 막 그렇게 하면서 대하니까 그분들도 농사 짓는 비법을 가르쳐주더라고요. 시골에 가면은 농사 짓는 거 이런 거 안 가르쳐주거든요. 그런데 제가 부처님 덕에 비법을 알게 되고 또 우리 집사람도 저를 예전에는 별로 안 좋아했어요. 고생만 시키고 뭐 저런 남자가 다 있느냐고. 요새는 제가 부처님 라면 맛있게 드세요 이러고 하면 좋아합니다.


그래서 제 시집에 여러 시가 있지만 '절집'이라는 시를 제가 맨 앞에 넣었어요. 편집자께서 책을 만들면서 시가 조금 기니까 다음 페이지로 넘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전체 디자인이 깔끔하게 넘어갑니다.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제가 아이고 안 됩니다. '절집'을 맨 앞에 넣어야 됩니다, 라고 했습니다. 왜 그러냐면 시집 목차를 한번 보시면은 나머지는 전부 절 이름이 앞에 나와 있습니다.
고유 명사죠. '절집'만 보통 명사로 돼 있어요. 그러니까 절집이 전체 70편의 시를 총괄하면서 대표하면서, 윤동재를 알려준 거예요.

불교의 도리 스님들 큰 스님들이 하시는 말씀을 그 시골 할머니가 그랬잖아요. 별거 아니야 사람이 착하게 살고 겸손하고 남 괴롭히지 않고 겁 주지 않고 어디 어디 안 믿으면 어디 어디 간다 이렇게 겁주지 않고 겸손하게 살면 된다. 착하게 살면 된다. 넉넉하고 따뜻하게 살면 되지. 별거 있냐 이 절에 가보니 콩나물이 맛있고 저 절에 가보니 물이 맛 좋고 저 절에 밥이 맛있더라 그런 얘기이죠.
더 중요한 건 할머니가 말씀하시죠. 좋은 얘기가 없어서 세상에 이렇게 엉망이냐고. 좋은 얘기는 책에 차고 넘치고, 훌륭하신 분들이 좋은 얘기 말씀을 많이 하셨고 지금도 하시잖아요. 중요한 거는 겸손하고 따뜻한 것을 우리 이웃, 집사람, 집사람 친구, 동네 사람 또 여러분, 처음 만나는 분, 오래 만나는 분한테 하시는 것. 그대로 대해주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제가 이 시집의 맨 앞에다가 한국 불교시의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절집과 같은 시다 이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한용운, 조지훈 등 한국에 예전에 불교 시가 많았습니다. 아까 우리 정 교수님 말씀하셨듯이 불교의 교리, 경전에 있는 이야기 그다음에 특유의 틀 이걸로 불교시를 썼는데 이 시집은 교리가 아니고 딱딱한 불교 용어가 아니고 삶 속에서 길어 올린 삶의 영역, 토박이의 정감과 따스함이 묻어 있는 말로 시인 듯 시가 아닌 듯, 불교인 듯 불교가 아닌 듯한 말로 썼기 때문에 한국 현대시 가운데 새로운 현대시를 개척하고 조금 범위를 좁히면 불교시를 개척했다. 그렇게 하도록 해 준 것은 산지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되겠습니다.

윤동재 시인
아니 제가 왜 이런 말씀을 드리냐면요. 제가 이제 문단에서 나온 지가 한 40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에는 시집을 내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최근에는 참 어려웠는데요. 산지니는 받자마자 바로 내자고 하셔서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정천구 박사
노벨 문학상을 한 번 받아야지 그래야 쉽게 내줄 것 같아요.

윤동재 시인
제가요 노벨 문학상은 아니지만은 2015년에 창비에서 <영이의 비닐 우산>이라는 책을 2005년에 냈는데요. 2015년에 브라질의 초청을 받았어요. 제가 당황해서 이거 나를 초청한 거 맞느냐 물어봤어요. 또 이제 초청했다고 가야 되느냐 그러니까 주변 사람들이 가야지 이래요. 그래서 상파울루 문학축제준비위원회에서 비행기 표도 해주었는데, 한국에서 LA까지 거의 거의 12시간 가까이 되고 LA에서 상파울로까지 한 13시간 정도 돼요. 그 길을 가서 행사장에 도착해서 나를 왜 초청했습니까? 하고 물어봤습니다. 한국에도 나를 아는 사람이 나밖에 없거든요

아무도 모르는데 왜 한국의 유명한 문인을 초청하지 왜 나를 초청했냐 이랬더니 상파울루 대학의 한국어과 교수님이 뭐라고 그러냐면 브라질에 우리나라의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이 많이 번역 소개 됐는데 대부분이 도서관 서고에 먼지를 덮어쓰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지만 <영이의 비닐 우산>은 브라질 교육부의 우수 도서로 선정돼 가지고 브라질 초중고등학교 도서관에, 공공기관에 다 들어갔다고 하더라고요. 또 그 책에 대해 평론가가 쓴 책도 한 권 받았습니다. 저는 포루투갈어 까막 눈인데 그래도 고마워 가지고 그걸 잘 챙겨가지고 가져왔어요.

또 작년에 고려대학교 한국문학 세계학회인가에서 오라 해서 갔었습니다. 논문을 발표하고 아동 문학잡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인사말도 하고 그랬습니다.

 

정천구 박사
그 이야기하시니까 생각나는데, 그 인사말을 저한테 보내주셔서 제가 읽었어요. 윤동재 선생님이 산문도 정말 잘 쓰신다, 명문장이라고 저는 생각했거든요. 선생님 혹시 산문은 써놓으신 게 없으신가요?

윤동재 시인
없습니다. 저는 시를 쓰길 잘했다고 요즘 생각하는 게요, 이번 여름 참 무더웠는데 선풍기 없이 지냈어요. 왜냐하면 제가 동시와 시 습작을 열심히 하는데 우리 집사람이 찾아오더니 아니 에어컨 선풍기도 없이 어떻게 이렇게 지내느냐 밥도 안 먹고 약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왜 이러냐 했어요. 그래서 시를 좀 쓰다 보니 이렇게 됐다고 했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그렇게 썼고, 산문은 제가 원래 못 쓰고요. 또 잘 쓰려고 노력도 안 하고요.

정천구 박사
시인이 쓰는 산문이 좀 남다른 것 같기도 해요. 저는 시를 쓸 엄두를 젊을 때는 냈다가 접었어요. 나는 시는 안 되겠다 그래서 결국은 그냥 연구해서 그냥 산문이라도 좀 괜찮게 쓰자 이랬는데 시인의 산문은 또 달라요. 훨씬 더 예리하고 그러면서도 따뜻하고 그래서 이 시와 산문이 같이 가는가 이런 생각을 했어요. 제 생각에는 시집이 요즘 잘 안 내주기도 하고 안 팔리니까 산문을 써보는 게 어떤가.

윤동재 시인
왜냐하면 산문을 또 오래 앉아서 써야 되잖아요. 근데 시는 특히 동시는 짧잖아요.
그러니까 제 스타일 제 습성에 딱 맞는 것 같아요. 길게 오래 뭘 진득이 못하는데 짧게 깔짝깔짝 거리면 끝나고 그래서 시를 쓰고 동시를 쓰고 특히 또 쉽게 쓰는 거는 저는 제 스스로 알음알이가 짧아가지고요. 학문적 깊이가 있는 글이라든지 아니면 어려운 용어가 많이 나오는 글을 이해를 못해요. 근데 저도 해보니까 제가 잘 모르는 걸 쓰게 될 때는 글이 공연히 어려워지고 또 쓸데없는 어려운 용어를 끌어들이게 돼요. 그런데 제가 잘 알고 또 자신 있다고 생각하는 거는 단숨에 이렇게 써버려요. 그래서 모든 글은 어느 순간 단숨에 쓰여지는 글이 명문이라기보다 글다운 글이 되는구나. 시도 어려운 시는 그 시를 쓴 시인이 알고 썼을까 하는 제 나름의 의심병이 생더라고요. 그분을 비난하고자 하는 게 아니고 그분은 틀림없이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어렵게 쓰셨을 테지만 저처럼 어렵게 못 쓰고 괴롭게도 쉽게만 쓰는 사람은 쉽게 쓰는 것이 참 좋다. 지금도 쉬운 시를 쓰자 쉬운 산문을 쓰자 이런 생각이 제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정천구 박사
선생님 시를 언제부터 쓰셨습니까?

윤동재 시인
시는 제가 고등학교 때 공책에다가 이렇게 몇 자 적긴 했지만 백일장에 나가서 상을 받거나, 학교 대표로 뽑혀 나간 적은 없습니다. 그냥 저 혼자 좋아가지고 책에 좋은 시 있으면 한 구철, 두 구절 따라 써보고 하다가 대학에 들어가서 문학 잡지를 한 권 사가지고 읽어보고 했습니다. 또 집사람이 잡지사에 제가 쓴 시를 투고도 해주고 그랬습니다.  4학년 때 투고를 했는데 가을에 <현대문학> 잡지에 추천이 됐어요. 제대로 수정도 안 되고 난 뒤에 추첨 과정을 마쳤기 때문에 그걸 두고 후회를 하고 있습니다.
만 50이나 적어도 한 지금보다 한 1년 전쯤 제가 문단에 등단을 했다면 충분히 익어가지고 좋은 글을 쓸 텐데 소년 등과 하면 폐단이 있다고 그랬잖아요. 자기의 내공을 닦을 길이 없다고, 제가 그 꼴이었어요. 그래서 두고 두고 후회를 하고 책 없을 때 괜히 투고했다.
그냥 연습 좀 하고 제 좋아서 계속 쓰다가 한 70만 이틀 정도 남겨놓고 그때 시인이 되더라도 내가 제대로 될 수 있을 건데.

정천구 박사
그때 쓴 시 제목이 혹시 '원효'.

윤동재 시인
'원효'인데요. 제가 그때 그 <현대문학>의 8010월호에 이제 '원효'를 썼는데 또 갑자기 또 칭찬을 해주는 거예요. 제가 늘 열심히 가르침을 받던 국문학 교수님께서 지금 생각하면 좀 과하게 칭찬해 주셨다고 할까 그래서 용기를 더 얻었죠. 그래서 '원효'라는 작품으로 추천을 받고 산지니 이 책에도 원효에 대한 이야기가 세 편이 실렸습니다.

정천구 박사
출발부터가 불교 시였네요. 윤동재 선생님께서 북토크할 기회가 별로 없었어요. 이때까지 내신 거 보면 다 좋은 작품들이 가득가득하고 좋은데 북토크 할 기회가 좀처럼 없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그동안 못하신 말씀을 이 기회에 다 쏟아내신 것 같습니다. 뒤늦게 나마 시집 내기 어려운 시절에 참 좋은 곳에서 내면서, 북토크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앞으로도 또 이렇게 북토크할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북토크 하려면은 시집을 또 내야 할 텐데...

 

윤동재 시인
산지니에서 좀 많이 내주시면 물론 저의 영광이기도 하지만 한국 현대 시사가 알차지고 그다음에 시를 사랑하는 대부분에게도 좋고 말입니다. 요즘은 만인 시인 시대, 모두가 시인이 아닙니까?  만인이 시인이면 그야말로 우리나라가 시인공화국이고 시인공화국이 되었을 때 특검이 필요 없는 나라가 된다. 맞습니다. 맞죠? 그러니까 산지니에서 시집을 또 내주세요. 그래야 이제 시인 공화국이 되어 특검이 없는 좋은 나라가 되는 거예요.

제가 뭐 시집 한 번 더 내서 돈을 벌겠다는 뜻도 아니고, 여전히 서점에서 찾아도 윤동재가 아니라 윤동주라고 할 거예요. 그러니까 산지니가 시집을 내가지고 여러 사람을 사랑하고 또 시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시의 나라가 완성될 수 있도록 산지니가 힘써주셔야 된다는 이 엄숙한 말씀을 드립니다.

정천구 박사
저한테 부탁을 생전 안 하시는 분인데 제가 산지니에서 쭉 책을 내니까 여쭤보셨거든요. 저도 시집 내는 게 쉽지 않은 시절이라는 것도 알고 그러긴 한데 그래도 제가 선생님 시를 추천한 이유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를 제일 많이 쓰시는 분이에요. 그리고 한국 문학에서 천재적인 조동일 선생님이 제일 좋아하는 시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늘 조동일 선생님이 평가를 하세요. 그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제가 한 십몇 년 전부터 시민 강좌를 할 때 윤동재 시인의 시를 소개하고 했었거든요. 그러면 개중에 찾아서 읽어보신 분들은 늘 좋아하셨어요. 윤동재 선생님 시집을 소개해서 실망하신 분은 아직 없거든요. 물론 실망하신 분이 실망했다고 저한테 말 안 했을지도 모르지만 대부분 다 좋아하셨어요. 그래서 이번에 나온 시들도 반응을 보니까 다들 좋은 시들로 돼 있다, 재미있고 감명도 받았다, 이렇게 말씀들을 하셔서 이런 시들이 계속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저도 간절합니다.

윤동재 시인
인터넷에 '한국 신명나라'라고 조동일 선생님 카페가 있습니다. 그동안 좀 게을리하다가 최근에는 거기다가 시를 거의 날마다 올립니다. 몽유기행시라는 이름도 사실 조동일 선생님이 명명을 해주셨거든요. 그 카페에 보면 우리 국문학에서 몽유라는 말이 어떻게 쓰였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문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그리고 오늘 현대 문학에서는 그 몽유라는 말을 어떻게 우리가 재활용 할 수 있는가가 잘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든 참고하시면 되고요. 혹시 궁금하시면 인터넷에 윤동재만 쳐도 그 카페를 들어갈 수 있습니다. 회원 가입하시면 더 좋고요. 제가 쓴 작품들이 다 있습니다. 조동일 선생님의 댓글도 볼 수 있고요. 
시집 머릿말에 첫마디가 이렇게 시작하잖아요. "우리 문명은 유불문명이다." 조동일 선생님도 늘 말씀하시길 유교와 불교 그 가운데 불교가 우리 역사와 문화와 예술 속에 결국 우리 삶 속에 든든한 자연과 힘이 돼 주었다. 그러니까 절집을 가는 것은 결국 우리의 역사와 문화와 예술을 이해하고 공부하고 찾아가는 길이다. 이것을 빼놓고 어떻게 현대 시를 쓴다고 할 수 있겠는가. 기본적으로 불교를 포함해서 이슬람교, 기독교, 한국의 원불교, 무슨 종교든. 종교가 주는 치유의 힘, 위안의 힘 이런 것들이 이런 시를 쓰게 하는 큰 힘입니다. 시를 한번 보시면은 여러분들이 어떤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위안만 얻고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잖아요.사마천도 물었지요. 악한 사람은 잘 먹고 잘 사는데, 착하고 선한 사람은 왜 일찍 죽는가, 천도가 있느냐고. 착한 사람들이 왜 이렇게 고통받고 눌림을 받는가, 그 질문이 바로 비판과 성찰의 시작입니다. 제 시에도 그런 문제의식이 담겨 있습니다.세 번째로, 제가 룸비니에 가서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저도 부처 아닙니까? 부처님만 부처입니까? 저도 부처죠.” 그렇게 물으니, 부처님이 정 교수 해설에서 나무잎을 살랑살랑 흔들며 해준 그게 다 답인데 왜 못 알아듣느냐 하고 말씀하시더군요. 마지막으로, 자기 속에 충분히 체화되고 육화되고 자기 것이 된 글은 산문이든 시든 남이 읽었을 때 쉽게 다가옵니다. 어렵게만 느껴지는 글은 결국 자기 것으로 소화되지 못한 글입니다. 그래서 제 소망은, 누군가 제 시를 읽고 “이건 내 얘기네, 내 생각이네, 어렵지 않네. 나도 시인이 돼야겠다” 하고 공감해 주는 것입니다. 실제로 제 시집을 보고 “나도 쓸 수 있겠다”라고 하는 분들이 있었는데, 저는 그걸 무시나 폄하로 듣지 않고, 오히려 시집을 낸 보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이 시집도 많은 분들이 그럴 거예요. 이딴 불교시는 나도 쓴다. 그러면 그렇게 쓰시면 됩니다. 저보다 더 열심히 절에도 가시고, 가는 길에 산도 보고 관광도 하시면서, 더 좋은 불교시와 더 좋은 질문을 부처님께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그 마음으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며 이 책을 냈습니다.

정천구 박사
윤동재 선생님 마무리를 잘 해주셨습니다.
벌써 1시간이 훌쩍 넘었습니다. 오랜만의 북토크인데 더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건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고 오늘 이렇게 더운 날 참석해 주셔서 귀 기울여 주시고 또 호응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윤동재 시인
고맙습니다.

 

 


불교적 언어와 일상의 풍경을 잇는 시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평범한 순간들이 사실은 깊은 깨달음과 울림을 품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렵지 않으면서도 마음을 머물게 하는 시의 힘을 가까이에서 경험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음에도 또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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