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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사랑에 관한 새로운 선택지_ 『폴리아모리』 서평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25. 8. 28.

 


0. 읽기 전 

어릴 때부터 아이돌을 좋아해 온 내게 '여러 명을 동시에 좋아한다'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이 멤버는 이래서 좋고, 저 멤버는 이래서 좋고. 또 덕통사고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무릇 덕질이란 내가 누굴 좋아하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우연히, 생각지도 못한 때에 에잇 톤 트럭을 밀고 내 삶을 박살 내러 오는 일인 것을! 폴리아모리도 비슷한 것이라 생각했다.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막는 것. 내 마음에 들어오는 사람에게 문을 활짝 열어주는 것. 두 명이랑 사랑하면 사랑도 두 배 아닐까? 따라서 나는 사랑이 넘칠 것만 같은 이 책을 아주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펼쳤다. 

 

1. 폴리아모리란? 

폴리아모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와 다른 개념 두 가지를 이해해야 했다. 바로 모노가미와 폴리가미다. 

a. 모노가미 일부일처제. 혹은 1:1 성애 관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b. 폴리가미 일부다처제, 일처다부제를 뜻함. 혹은 1: 다수의 성애 관계를 지칭하기도 한다. 
c. 폴리아모리 자신의 교제를 공개하고 합의한 후에 만들어가는 복수의 사랑, 사랑의 무한성을 믿는다. 

그러니까 폴리아모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당신 말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요" 혹은 "당신 말고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날지도 몰라요"라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고백한 후에 시작하는 사랑이다. 이런 고백이 없이 연인 관계를 시작한 후에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고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면, 그건 우리 사회에서 흔히 지칭하는 불륜이나 바람, 양다리가 되는 것이다. 

폴리아모리는 결혼을 하고도 할 수 있고,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하는 형태로도 할 수 있다. 재산과 육아를 공유하는 제1파트너, 주거와 재산등은 별도로 관리하는 제2파트너, 데이트는 하지만 일상생활을 하는 제3파트너처럼 친밀도로 파트너를 구분할 수도 있다. 이처럼 폴리아모리의 형태는 다양하다. 궁금하시다면 책을 읽어보시라. 

 

 

책을 읽으며 폴리아모리스트(폴리아모리를 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양심적이고 솔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노가미 사회에서 이미 애인이 있는데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사람들은 마음을 접으려고 노력하거나 혹은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이별을 고한다. 폴리아모리스트들은 누구도 떠나보내지 않고 여러 명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것도 떳떳하고 솔직하게. 언뜻 보면 욕심이 많은 것처럼도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상처받는 사람이 없다는 점, 그리고 더 풍부한 사랑을 살면서 경험한다는 점에서는 모노가미보다 마음도 편하고 즐거울 것 같기도 하다. 

신기했던 것은 SF소설을 통해 폴리아모리를 알게 된 사람이 꽤 있다는 것이었다. SF소설은 아무래도 현재와 다른 설정이 주력인 소설이라서 그런 걸까? 이 책에서는 두 소설을 소개한다. 로버트 하인라인의 <낯선 땅 이방인>(이 책은 현재 절판되었다)과 로버트 리머의 <하라드 실험>이다. 내가 만약 SF소설을 쓴다면, 어떤 새로운 사랑의 형태를 배경으로 쓰게 될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다. 

 

2. 내가 폴리아모리스트가 된 이유

이 책의 저자 후카미 기쿠에는 폴리아모리스트가 된 사람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폴리아모리를 선택한 사람들의 이유는 다양했다. 

a.사랑이 삶을 충실하게 해 준다고 믿고, 그 가능성을 한 명에게만 한정할 필요는 없어서.
b.사랑을 하면서 많은 걸 배울 수 있기에 사랑의 경험을 소중히 하고 싶은 마음.
c.누군가를 좋아하는 자신의 욕망을 억누른 채 살아가는 것은 남편에게도 나에게도 "불성실" 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d.인생을 자신답고 정직하게 살고 싶어서.
e.사랑하면 안 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이상해서.
f.소유당하기 싫어서. 

이보다 더 다양한 사례들도 책에 많이 제시되어 있다. 나는 그중 '소유당하기 싫어서'가 눈에 띄었다. 전남편의 과도한 구속과 가정 폭력에 시달렸던 여자는 '속박하지 않는 사랑', '소유하지 않는 사랑'이라는 폴리아모리의 이념에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폴리아모리는 조금 더 헐겁고 느슨한 사랑도 사랑이라고 말한다는 점이 뭉클했다. 당신과 내가 영원히 손을 잡고 백년해로해서 한날한시 같은 무덤에만 묻히는 것만 사랑이라고 하지 않는구나. 한 톨의 애정으로도 사랑을 느낄 수 있다는 것, 누군가는 그 정도의 사랑으로도 충분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과연 나에게는 얼마만큼의 사랑이 필요한가? 먹방 하는 사람 중에도 소식가와 대식가가 있듯이 사랑도 사람마다 총량이 다른 것은 아닐까. 나는 현재 밴드를 덕질 중인데 그들이 낸 음원과 자컨만으로도 꽤나 행복한 삶을 유지하고 있다. 

 

3. 질투

'질투'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있는가? (중략) 나카야마 노리코에 따르면 분노와 질투 등의 감정은 온전히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에 의해 구성된다. 또한 분노와 질투에 대한 가치 판단은 해당 사회의 문화적 특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_131p

 

이 챕터는 이렇게 시작한다.  터키어로 '질투하다'에 해당하는 단어 '쿠스칸마크kiskanmak'에는 누군가를 소중히 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고대 일본에서 질투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힘을 가진 두려운 감정'이었다.  이처럼 사회의 문화적 분위기에 따라 질투의 의미는 다양하다. 바로 이 질투가 폴리아모리스트에게 난적이다. 대부분의 폴리아모리스트들은 질투를 경험했다고 고백한다. 그렇다면 폴리아모리스트들은 '질투'라는 감정을 어떻게 대할까? 

그들은 '연인이 되는 것과 소유하는 것은 같은 뜻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폴리아모리스트는 자기/타자에 대한 집착을 부정하고 서로 소유하지 않는 사랑을 이상으로 상정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에리히 프롬이 한 말을 언급한다. "소유하는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을 구속하고 감금하고 지배하는 것을 뜻한다. 사랑의 대상을 압박하고 약하게 만들고 질식시켜서 죽이는 것으로, 생명을 주지 않는다." 나는 이 챕터를 읽으며 사랑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좋아하는 것? 그 사람에게 무한한 자유를 주는 것? 내 파트너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는 건강한 상태에 기뻐하는 것? 챕터를 넘기면서 폴리아모리스트들은 자신의 마음을 1순위로 두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솔직함, 반듯함, 자기 인정. 우리 삶에서 필요한 것들은 오히려 그런 것이 아닐까.

 

4.폴리패밀리

폴리패밀리는 폴리아모리스트가 구성하는 가족을 뜻하고 성인 세 명을 최소 단위로 삼는다. 우리가 흔히 아는 피가 섞인, 혼인을 통해 이루어지는 가족이 아닌, 새로운 개념의 가족을 소개한다. 크게는 동거형과 별거형으로 나뉘고 육아할 아이가 있는지 없는지, 서로의 신체적 자유가 얼마만큼인지에 따라서도 또 나뉜다. 책에는 그들이 육아를 어떻게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가족을 '만들어'나가는지 자세히 적혀 있다. 나는 그들이 마치 지구에서 화성으로 이주한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들이 주류 가족과 너무나 다른 이야기라는 소리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들은 화성에서도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계속 먹고, 입고, 일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삶의 새로운 패턴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읽으면서 나의 삶은 어떻게 구성되어있나 생각하는 시간을 잠시 가졌다. 나는 내가 원하는 방식을 밀어붙이고 있는가. 어떤 것 때문에 나는 화성에 가지 못하고, 지구에 남게 되었지. 나에게 동료가 있었다면 해결될 문제였을까. 

동거형 폴리패밀리에서 종종 발생하는 문제는 금전 및 양육 문제다. 차를 사는 타이밍, 아이들을 사립 학교와 공립 학교 중 어디에 보낼 것인가 하는 문제, 어떤 공부를 시킬 것인가에 대한 의견 차이로 가족 구성원 간 충돌이 일어난다. 보통 이런 문제는 가족 회의에서 의논한다. 같이 살고 있어도 일부러 정기적으로 가족 회의를 열어 모두 모이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다. _191p
시에라는 에세이와 블로그에 "우리의 생활은 아이가 있는 모노가미 가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모노가미 가족과 다른 점은 단지 배우자 이외의 연인이 있다는 점과 육아에 관여하는 어른이 많다는 것뿐이다. 내가 인터뷰했던 별거형 폴리패밀리 중에도 유연하게 교대 양욱을 하는 가족이 있었다. 이런 경우, 휴대전화와 메일로 자주 연락을 주고받고 각자 비상 열쇠를 만들어두는 등 다양한 노력이 이루어진다._198p

 

 

5.  역자의 말

세상과 맞지 않는 내가 자라나려 할 때, 이따금 나는 그들에게 물을 주지 않았다. 말려 죽였다. 자라봤자 피차 골치가 아프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게 더 강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나를 잘 관리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무엇이 진정 자신을 위한 것일까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 자신을 긍정하는 것, 옳고 그른 것을 끝까지 따져보고 그른 것이 아니라면 밀고 나가보는 것. 나의 윤리와 세계관을 만들 수 있는 개인으로 성장하는 것이 오히려 더 중요한 것 아니었을까? 폴리아모리에 대한 책이지만, 이 책은 세상이 정해놓은 규칙의 테두리를 넓히려는 투쟁의 기록과 가깝다. 새로운 규칙을 만들고, 실험하고, 개선해 나가는 사람들이 담겨 있다.  

하지만 폴리아모리 역시 어렵다. 힘들고 지친다. 대부분의 '사랑과 삶'이 그러하듯이. (중략) 폴리아모리를 단지 근대 이전의 '정열적인 사랑'으로 회귀하자는 현상으로만 정의할 수 없다. 오히려 치열한 노력과 생의 충돌을 통해 빚어지는 사랑을 직시하고 유지하는 현장에 가깝다. _228p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받지 못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인정받지 못한다.'
'아무리 호소해도 존중받지 못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위 세 문장은 끈질기고 강력하다. 저 문장에 해당하는 일들은 영역과 심도를 불문하고 사회적 삶의 어디에선가 혹은 어디에서도 터져 나온다. 비단 이 책이 소개하는 폴리아모리뿐 아니라 성소수자 문제, 노동자 문제, 인권 문제, 이념 문제, 정치 문제, 공간 문제, 또 무슨무슨 문제들. 나아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_226p

 

『폴리아모리』책은 2018년에 발행되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2025년 지금도 역자의 말은 우리 시대를 관통한다. (개인적으로 전문이 정말 좋으니 독자분들은 꼭 역자의 말까지 읽어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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