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 ‘최초’, ‘순간’ 제목을 대충 읽은 다음 나의 유년기 최초의 기억을 생각했다. 여름날 거실에서 다리미질을 하시던 어머니와 옆에서 춤을 추던 내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렇게 내가 가진 가장 나이가 많은 기억을 살피고 책을 읽으며 든 질문은 ‘인류가 마주했던 최초의 순간은 하나일까?’였다. 『인류 최초의 순간들』은 결론을 한 가지로 제시하지 않는다. 고고학적 진단은 수백만 년에 이르는 방대한 시간은 물론이고 방사성 탄소를 통한 연대 측정과 한계, 단백질 FOXP2가 관여하는 뇌의 발화 과정을 통한 언어 유전자 분석,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에 이르는 다양한 기술적 검증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가 제시하는 다양한 키워드와 질문을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상상력을 허락하지만 상상력의 범위는 엄격하게 규정하는 고고학의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경험은 분명 고고학에 관심 있는 독자가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는 큰 즐거움 중 하나일 것이다.
특히 고고학은 일시적인 학문이며, 각각의 증거는 진화의 법칙에 따른 우연성뿐만 아니라 비밀로 가득한 보존과정에서의 우연성의 영향도 크게 받기 때문이다.
『인류 최초의 순간들』, 49쪽
증거는 고고학적 사료와 과학기술을 거쳐 과거 인류의 생활을 증언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지만 실은 그것이 증거가 하는 역할 전부이다. 법칙에 따른 우연성과 비밀로 가득한 우연성을 모두 가진 증거는 고고학아래 결국 문장이 아닌 증거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독자에게 꾸준하게 질문을 던진다. ‘인간다움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이 질문은 고고학적 발견을 일반적이고 철학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증거와 증거를 엮어 문장으로 만들려는 시도로 보인다. ‘정말 도구는 인간만의 것인가?’라는 초기 기술철학적인 질문부터 ‘고고학을 통해 종교를 해석하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종교철학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는 제목이 암시하듯 ‘최초’라는 태그가 반영된 결과이다. 비록 자세한 철학적 논의로 이어지진 않지만 고고학적 검토를 바탕으로 분석한 사건이 다양한 철학적 질문으로 이어지는 전개는 여전히 고고학이 많은 이들을 끌어당기는 이유를 뒷받침한다.
이는 마치 건초 더미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인류 최초의 순간들』, 181쪽

저자에 따르면 후기 구석기시대에 사용하던 바늘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적어도 2만 5천 년 전의 바늘이다. 오늘날 바늘과 다른 점은 재료가 뼈에서 쇠로 변했다는 것과 바늘이 재봉틀에 붙었다는 것뿐이다. 섬세한 바느질을 요구하는 게 인류의 오랜 관행일지 모른다는 사실도, 구석기시대에 사용한 바늘이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또 다른 질문들이 꼬리를 물었다. 현재 기술이 정말 역사에서 정점일까? 고고학은 수만 년 전 세상 역시 나름 세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기술과 질서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저자가 인간의 기원을 유일한 출발점이 아니라 여러 개의 ‘최초’로 분해하는 방식 때문이다. ‘흔적의 최초’, ‘교환의 최초’, ‘지도자의 최초’, 심지어 ‘개를 길들인 최초’까지 저자는 인류를 서른 가지 키워드로 나누어 살핀다. 기승전결이 명확한 직선적인 구성이 아니라 장면 30개가 이 책을 구성한다. 각 장은 비교적 짧고 각각 하나의 ‘최초’를 다루는 구성은 마치 옴니버스 다큐멘터리를 보는 인상을 남긴다. 그럼에도 ‘최초’라는 공동 해시태그가 있는 각 장은 결국 ‘인류’라는 긴 서사를 형성하고 이러한 구성은 독자들이 부담을 덜 느끼며 책을 읽을 수 있는 방식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마지막 장 ‘최초의 수술’을 지나 책을 덮으면 독자는 또 다른 최초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고고학을 통해 마주한 과거가 마치 현재처럼 익숙해지는 경험이다. 수십만 년 전 인간이 이야기를 나누고, 애도하고, 사랑하고, 교환하는 장면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저자는 우리가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비슷한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해 왔는지 묻는다. 그 의지는 책 마지막 두 문단에 오롯이 담긴 듯하다.
우리는 ‘최초’라는 단어의 임의성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특정 행위들이 반복되며 잘 자리 잡은 후에야 ‘최초의 행위’가 포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선사)시대 역사의 흐름을 계속해서 따라가도록 하자.
『인류 최초의 순간들』, 2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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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순간들 | 니콜라 테상디에 - 교보문고
인류 최초의 순간들 | ▶ 인류의 대서사시 속 모두가 궁금해했을 처음의 순간 그 최초의 사건을 찾아 고대로 모험을 떠나다인류의 역사는 거대한 서사시와 같다.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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