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후기

집 떠나면 다 고생이라는 법 있나?_『나는 킬리만자로 정상에 오른 시각장애인입니다』

by leecy120 2026. 3. 11.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훌쩍 여행이나 떠나면 좋겠다.’ 누구나 이런 상상을 한 번쯤 한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현대인의 여행은 마치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상을 벗어나 색다른 세계로 떠나는 탈출구가 된 듯하다. 여행사들도 앞다투어 이 심리를 이용한 홍보 문구를 쓴다. ‘낭만 가득한’, ‘꿈에 그리던’, ‘지상 최대의 낙원으로’. 마음을 굳게 먹고 떠나는 여행자들은 홍보 문구에 나온 것처럼 멋진 풍경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야경, 산경, 넓게 펼쳐진 바다나 빽빽한 마천루. 여행은 사진으로만 보던 그 광경을 내 눈으로 직접 마주하는 과정이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행자가 생각하는 둘러보기나는 킬리만자로 정상에 오른 시각장애인입니다의 저자 차오성캉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여덟 살 때 사고로 시각장애인이 된 그는 사람들이 입에 침을 바르며 칭찬하는 풍경을 볼 수 없다. 대신 차오성캉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세상을 볼 수 없지만, 세상에 나를 내보이고 싶다.’ 나는 킬리만자로 정상에 오른 시각장애인입니다는 시각장애인 여행자 차오성캉이 나를 누군가의 풍경에 위치시키기 위한 도전이라는 자신만의 여행을 실현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량 선생은 탄식을 내뱉었다. “아깝다! 눈이 보였다면 큰 성과가 났을 텐데!”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내가 앞이 안 보여서 지금처럼 사는지도 모르죠.”

나는 킬리만자로 정상에 오른 시각장애인입니다198p.

 

상식에 사로잡히지 마

이 책의 중국어 원제는 不和世界讲道理, ‘세상의 이치를 논하지 않다’라는 뜻이다. 제목처럼 저자 차오성캉은 자신을 막아서는 온갖 세상의 이치에 맞선다.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가며 저자에게 반복적으로 날아드는 이치는 바로 앞도 안 보이는데 가만히 집에 있지 않고 무얼 하느냐라는 말이다. 어린 저자를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은 가족, 장애인을 고용하는 일자리는 드물다며 멋대로 임금을 깎는 고용주, 여행 중 만난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듣게 되는 이 말은 마치 저자에게 고집을 부리며 규범에서 벗어나려 하다니 불손하다’라는 수치심의 꼬리표를 붙이려는 것처럼 들린다. 물리적인 공간 또한 저자를 어려움에 빠트린다. 사람이 우글거리는 광장이나 차가 빠르게 달리는 도로, 혼자 걷는 길에 있는 도랑. 시각장애인의 존재를 염두에 두지 않은 공간이 저자가 밖으로 나가 여행하는 일을 방해한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타지에 나가, 숙소에서 물건을 도둑 맞거나 지인을 사칭하는 사기꾼을 만나 여비를 뜯기기도 한다. 이런 고생담을 들으면 왜 사서 고생을 하는 거냐고 저자에게 되묻고 싶어 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같은 저항심을 타고난 저자는 자기 뜻을 굽히지 않는다. 좌절할 시간에 도랑을 빠져나와 무릎의 상처를 치료하고 다음 여행지로 떠난다.

 

이동에 대해 탐구한 철학서 제자리에 있다는 것에서 프랑스 철학자 클레르 마랭은 세상의 관습을 벗어나 이동하려 하는 불손한 사람들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틈새로 끼어들고, 여백에 글을 쓰고, 틀 바깥으로 빠져나온다. 규칙을 벗어나고, 경계선을 넘나들고, 땅에 그어진 표시들을 비웃으며 하늘을 향해 눈을 돌린다.”나는 킬리만자로 정상에 오른 시각장애인입니다의 저자 차오성캉 역시 불손한 사람이라 불린다. 남이 정해주는 제자리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제자리를 찾으려 한다는 이유로. 장애인으로서 여행길에서 마주하는 어려움을 모두 겪으면서도 티베트로, 태국으로, 호주와 미국으로, 마침내 킬리만자로에까지 향하는 저자의 존재는 사회 속 내 자리도 여행의 정의도 반드시 남들과 같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고 외치는 듯하다.

클레르 마랭『제자리에 있다는 것』, 에디투스, 2025, 76쪽.

 

 

커먼즈를 향해, 받으면 갚아 주는 여행

눈으로 보는 대신 다른 감각을 통해 앞에 놓인 것을 느끼는 저자의 여행은 미각이나 후각, 촉각과 관련한 경험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무엇보다 그의 여행에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여행지에서 저자를 만난 사람들은 그에게 풍경을 묘사해 주거나 길을 알려주고, 때로는 저렴한 숙소를 찾아 주거나 일자리를 소개해 주기도 한다. 악의를 가지고 저자를 골탕 먹이려 다가오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가 남들보다 어려운 여행을 하고 있다고 여겨 도우려 한다.

 

다만 저자는 마냥 낯선 사람의 친절에 기대어 여행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가 그런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고향을 떠나 기술을 배우고 사업을 벌여 직접 여행 자금을 모으지도 않았을 테다. 저자는 여행길에서 숙소를 제공하거나 도움을 준 이들에게 자신이 가진 안마 기술을 제공해 보답하려 한다. 도움을 받으면 내가 가진 것으로 돌려준다. 이 간단한 규칙에서 발생하는 주고받기라는 경제 활동은 저자의 여정 전체를 설명하는 중대한 요소이다. 차오성캉의 여행은 타인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내가 일방적으로 값을 지불하는 모습도 누군가가 나를 선의로 도와주는 마찬가지로 일방적인 모습도 아닌, 교환 경제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새로운 형태로 거듭난다. 은인들에게 안마 서비스를 제공해 상대와 윈윈(win-win)’ 관계를 맺는다. 그 인연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을 소개받아 또 다른 장소로 여행하거나 사람들과 여행담을 나눌 강연 기회를 얻는다. 시작할 때는 혼자였지만, 모르는 이와도 금세 친구가 되는 용기를 바탕으로 저자는 세계 각지에 퍼져 있는 화교 공동체에 파고든다. 이러한 과정에서 쌓이고 쌓인 인맥은 여행자이자 안마사로서 저자가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식을 지속해 나가는 도구가 된다.

 

홍콩에서 탄자니아 출신 이민자 사업가들의 공동체를 연구한 인류학자 오가와 사야카의 책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는 차오성캉이 구축한 것과 유사한 교환 경제 형태를 겸사겸사의 논리로 설명한다. 곤경에 처한 사람에게는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는 도덕적 책무가 아니라, ‘내가 줄 수 있는 것상대가 줄 수 있는 것의 차이에서 발견하는 이익의 주고받음이 서로를 돕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가와 사야카,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갈라파고스, 2025, 95~96.

 

물론 겸사겸사 남을 도와주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남에게 속거나 손해를 입을 수도 있다. 차오성캉에게도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 소개 받아 찾아간 안마원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돈을 제대로 받지 못하기도 하고,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과 동행하고 보니 피곤한 일만 잔뜩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불행에 낙심하거나 여행을 포기하지 않고, 다음 주고받음에는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는 마음가짐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이렇듯 좋건 나쁘건 여행지에서 만난 타인의 인생에 걸어 들어가 안마 기술과 그동안의 여행 이야기를 펼치며 흔적을 남기는 저자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그가 가진 풍경을 직접 볼 수는 없다면 내가 남이 보는 풍경이 되자’라는 소망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돌아올 곳도 정하지 않고, 충동적으로 다음 목적지를 결정하거나 여행 도중에 경비를 마련하는 차오성캉의 방식을 누군가는 여행이 아니라 방랑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현대인은 여행을 돌아가야 하는 장소인 집에서 벗어나는 특별한 행위로 여기고 있기 때문일 테다. 그러나 마구잡이, 막무가내처럼 보이는 차오성캉의 여행은 혹 우리가 여행지와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을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보지 않을 풍경으로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보게 한다. 남들이 평가하는 화려한 SNS 게시물이나 꼭 가야 한다는 명소로 정의되는 여행이 아닌, 내가 원하는 여행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저 눈앞을 관망하는 대신, 한 걸음 다가가서 풍경의 일부가 되어볼 수 있지 않을까? 집 떠나면 고생한다는 옛말과 바캉스를 찾아 떠돌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우리에게 나는 킬리만자로 정상에 오른 시각장애인입니다는 묻는다.

 


🧭 『나는 킬리만자로 정상에 오른 시각장애인입니다』구매하기

 

나는 킬리만자로 정상에 오른 시각장애인입니다 | 차오성캉

시각을 잃고도 6대륙 35개 도시를 여행한 중국 최초 시각장애인 여행가의 여정으로, 감각으로 세계를 만나는 기록과 킬리만자로 정상에 이른 도전의 의미를 담았다.

www.aladin.co.kr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