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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니 책/문학

반복 속에서 피어난 생의 서사를 그린 하근찬의 미완성 장편_『하근찬 전집 21 은장도 이야기/직녀기』:: 책 소개

by euk 2025. 11. 4.

 

하근찬 전집 21

은장도 이야기/직녀기

 

★2021년 작가 탄생 90주년 기념 <하근찬 전집> 최초 출간★
★2025년 하근찬 전집 5차분 발간★

반복 속에서 피어난 생의 서사를 그린 하근찬의 미완성 장편
제21권 『은장도 이야기/직녀기』

 

단편적으로 알려졌던 소설가 하근찬,
그의 문학세계를 새롭게 조명하다
한국 단편미학의 빛나는 작가 하근찬의 문학세계를 전체적으로 복원하기 위해 ‘하근찬문학전집간행위원회’에서 작가 탄생 90주년을 맞아 <하근찬 문학 전집>을 전 24권으로 간행한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소설의 백미로 꼽히는 하근찬의 소설 세계는 단편적으로만 알려져 있다. 하근찬의 등단작 「수난이대」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이어져온 민중의 상처를 상징적으로 치유한 수작이기는 하나, 그의 문학세계는 「수난이대」로만 수렴되는 경향이 있다. 하근찬은 「수난이대」 이후에도 2002년까지 집필 활동을 하며 단편집 7권과 장편소설 14편을 창작했고 미완의 장편소설 2편과 산문집 1편을 남겼다. 하근찬은 45년 동안 문업(文業)을 이어온 큰 작가였다. ‘하근찬문학전집간행위원회’는 하근찬의 작품 총 24권을 간행함으로써, 초기의 하근찬 문학에 국한되지 않는 전체적 복원을 기획했다.

원본과 연보에 집중한 충실한 작업,
하근찬 문업을 조망하다
하근찬 문학세계의 체계적 정리, 원본에 충실한 편집, 발굴 작품 수록, 작가연보와 작품 연보에 대한 실증적 작업을 통해 하근찬 문학의 자료적 가치를 확보하고 연구사적 가치를 높여, 문학연구에서 겪을 수 있는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하근찬 문학전집은 ‘중단편 전집’과 ‘장편 전집’으로 구분되어 있다. ‘중단편전집’은 단행본 발표 순서인 『수난이대』, 『흰 종이수염』, 『일본도』, 『서울 개구리』, 『화가 남궁 씨의 수염』을 저본으로 삼았고, 단행본에 수록되지 않은 알려지지 않은 하근찬의 작품들도 발굴하여 별도로 엮어내어 전집의 자료적 가치를 높였다. ‘장편 전집’의 경우 하근찬 작가의 대표작인 『야호』, 『달섬 이야기』, 『월례소전』, 『산에 들에』뿐만 아니라, 미완으로 남아 있는 「직녀기」, 「산중 눈보라」, 「은장도 이야기」까지 간행하여 하근찬의 전체 문학세계를 조망한다. 

21권 『은장도 이야기/직녀기』
폭력의 시대를 건너는 여성의 정동(情動)
하근찬 전집 제21권 『은장도 이야기/직녀기』는 작가가 평생을 다뤄온 주제―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기의 폭력 속에서 살아낸 민중의 삶―을 여성의 시선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은장도 이야기」는 1986년부터 1987년까지 월간 《2000년》에 연재된 미완성 장편이다. 고희를 맞은 주인공 송 노인이 수몰된 고향을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자신의 젊은 시절과 일제 말기, 전쟁의 시간을 회고한다. 친정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은장도’는 그녀의 삶을 관통하는 상징이자, 가부장제와 폭력의 시대를 버텨낸 여성의 생존과 정조의 표징으로 등장한다.
함께 수록된 중편 「직녀기」는 1974년 9월부터 12월, 그리고 1974년 5월 등, 총 5회에 걸쳐 《현대문학》에 연재된 작품으로, 「은장도 이야기」의 자매편이다. 혼례를 앞둔 여성이 어머니에게 은장도를 물려받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두 작품은 서로의 서사를 반사하며, 전통적 여성의 운명과 그 안에서 움튼 생의 욕망, 시대의 폭력에 대한 하근찬 특유의 사실적 시선을 드러낸다.
두 작품은 가부장제 사회 속 여성의 수난과 정조관념을 상징하는 ‘은장도’를 중심으로 여성의 내면화된 억압과 수동적 삶을 형상화하고 있는데, 이는 남성의 집요한 욕망과 대비된다. 그러나 작가는 여성 인물들의 내면에 숨은 성적 생명력과 욕망, 생의 충동을 묘사함으로써 가부장제의 억압 속에서도 인간의 본능적 생명력을 드러낸다. 하근찬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들은 폭력적 역사와 억압된 공동체 속에서도 삶과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 존재로 그려지며, 하근찬은 이들을 통해 역사적 비극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인간의 생명력과 정동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비록 미완으로 남았지만, 『은장도 이야기』와 『직녀기』는 작가의 말년에 이른 시선이 담긴 ‘기억과 증언의 문학’으로서, 전쟁과 이데올로기를 넘어 인간의 삶을 복원하려는 그의 문학적 집념을 보여준다. 또한 수몰된 마을과 고향 방문이라는 외부 서사를 통해 사라진 공동체와 생의 정동을 되살리며, 폭력적 운명을 가로지른 인간의 생명력과 사랑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수난이대」에서 시작된 하근찬의 반전문학은 이 작품에서 다시 ‘은장도’를 든 여성의 손끝으로 이어진다. 전쟁과 가부장의 질서를 통과한 이들의 기억 속에서, 작가는 여전히 생의 불빛을 찾아 나선다.

 


첫 문장

전기가 나갔다. 송말선 노파는 부스스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더듬더듬 머리맡의 성냥을 찾는다.


연관 키워드 

#하근찬 #한국소설 #근현대사 #한국전쟁 #전집 #혼례 #개화 #열녀

 

책 속으로

p.51
신방 안이 캄캄해지자, 첫선이는 절로 후유— 가볍게 숨이 내쉬어졌다. 이제 됐다는, 큰언니로서의 안도의 숨이었다. 그놈의 동팔이 녀석 때문에 하마터면 큰 낭패를 볼 뻔했는데, 용케 잘 넘기지 않았는가 말이다. 첫선이는 자신의 능청스러운 구변이 자기가 생각해도 새삼 대견하기만 했다.
그리고 상객 어른을 딴 집에 모신 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서너 집 건너에 있는 당숙네 사랑채에 모셨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 만일 집의 사랑방에 모셨더라면 어쩔 뻔했는가 말이다. 동팔이 녀석의 그 소동을 상객이 직접 보았다면 딸을 출가시키는 집으로서 그런 낭패와 망신이 어디 있겠는가. 어떻게 변명을 하며, 변명을 한들 곧이듣겠는가 말이다. 생각하면 정말 아찔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p.70-71
그날 잔치가 끝나고, 저녁에 세 남매가 상의를 했었다. 먼저 어머니의 고향인 평촌과 시집간 마을인 각싯골을 훈규가 모시고 찾아가기로 했고, 다음은 대구로 가서 이번에는 정애가 이어받아 어머니가 원하는 대로 그 후에 살았던 몇 군데를 안내해 드리기로 했다. 둘은 다 차를 손수 운전하는 터이라 편리했다. 장남인 훈식은 스케줄에서 빠진 셈인데 차가 없어서 불편한 점도 있고, 또 평소에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터이고 해서 훈규와 정애가 이번 일은 둘이서 나누어 맡기로 했던 것이다.
그때도 평촌이 수몰되어 댐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찾아가도 옛 마을을 볼 수가 없는데 뭣 하러…… 하고 훈석과 정애는 별로 신통찮은 표정이었으나, 호수로 변한 옛 고향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아니겠느냐고, 훈규는 오히려 더 흥미가 동하는 것 같았다. 송 노파 역시,
“마을은 물에 잠겨도, 산은 남아 있을 거 앙이가.”
하고 말했다.
그래서 훈규는 연휴를 택해서 명수도 데리고 서울을 떠났던 것이다.

p.263
옥련이 목을 매달아 죽자, 마을은 온통 술렁거렸다. 점박이란 놈이 죽인 거나 마찬가지라는 것이었다. 그놈에게 강제로 당했기 때문에 목을 매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놈을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점박이는 그게 아니라고 우겼다. 그러나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답답하고, 정말 알 수가 없는 노릇이기도 했다. 마을이 흉흉해지자 결국 점박이는 어디론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리하여, 옥련은 마을 사람들의 대단한 추앙을 받게 되었다. 만고의 열녀라는 것이었다. 일부종신을 하려다가 불한당 같은 놈에게 몸을 더럽히자, 죽음으로써 그 허물을 씻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여자의 귀감으로서 후세에 길이 남겨야 할 일이라면서, 동네 들머리 도토리나무 숲가에 그녀의 순절을 기리는 비각을 세웠던 것이다.

p.301
소스라치게 놀란 선이네는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상고머리는 단념하려 하지 않았다. 희뿌연 달빛에서도 그 두 눈이 무섭게 이글거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선이네는 얼른 품속에서 장도를 꺼냈다. 그리고,
“방에서 썩 나갈 끼가, 안 나갈 끼가?”
나직하나, 매서운 목소리로 쏘아붙이며, 쑥, 칼을 뽑았다. 희뿌연 달빛에도 번쩍 칼날은 빛났다.
“안 나가만 찌른다!”
선이네는 이를 악 물며 정말 찌를 자세를 취했다.
그제야 덜컥 겁이 난 듯 상고머리는 후닥닥 문 밖으로 튀어나가 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위기를 모면했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하녀는 쿨쿨 돼지처럼 잠만 자고 있었다.

 


작가 소개

하근찬(河瑾燦, 1931~2007)
1931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전주사범학교와 동아대학교 토목과를 중퇴했다. 195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수난이대」가 당선되었다. 6.25를 전후로 전북 장수와 경북 영천에서 4년간의 교사생활, 1959년부터 서울에서 10여 년간의 잡지사 기자생활 후 전업 작가로 돌아섰다. 단편집으로 『수난이대』 『흰 종이수염』 『일본도』 『서울 개구리』 『화가 남궁 씨의 수염』과 중편집 『여제자』, 장편소설 『야호』 『달섬 이야기』 『월례소전』 『제복의 상처』 『사랑은 풍선처럼』 『산에 들에』 『작은 용』 『징깽맨이』 『검은 자화상』 『제국의 칼』 등이 있다. 한국문학상, 조연현문학상, 요산문학상, 유주현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98년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07년 11월 25일 타계, 충청북도 충주시 진달래공원에 안장되었다.


차례 

발간사

은장도 이야기 
송 노파의 칼 
봄 뻐꾸기 
비(碑)가 있는 마을 
그해의 저녁놀 

직녀기 
제1장 
제2장 

해설 | 폭력적 운명을 가로지르는 존재의 정동(情動)-김문주

 

 

쪽 수 : 384
판 형 : 152*225
ISBN : 979-11-6861-527-4 04810
가 격 : 27,000
발행일 : 20251024
분 류 : 국내도서 > 소설//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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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근찬 전집 21 : 은장도 이야기/직녀기 | 하근찬 전집 21 | 하근찬

하근찬 전집 제21권 『은장도 이야기/직녀기』는 작가가 평생을 다뤄온 주제―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기의 폭력 속에서 살아낸 민중의 삶―을 여성의 시선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은장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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