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제, 파도로 깎은 시
산지니시인선 028
신명자 시집
거제 사람의 삶과 곡절을 품어 안은 장소시
2024년 『장소시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문학 활동을 시작한 신명자 시인이 첫 시집을 출간한다. 신명자 시인의 첫 시집 『거제, 파도로 깎은 시』에는 시인의 고향인 경남 거제를 무대로 써 내려간 96편의 시가 수록되었다. 우리 땅에서 제주 다음으로 큰 섬 거제를 고향으로 둔 시인은 거제의 풍속과 거제 사람이 겪은 갖가지 사연, 거제가 품어 안은 삶의 곡절을 시에 담았다.
그간 거제 지역의 자연과 삶을 깊이 담아낸 시는 드물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신명자 시인은 고향인 거제 남부면 다포항의 삶과 풍속, 거제 사람이 겪은 다양한 사연을 본격적으로 담아내며 거제 장소시의 새로운 출발점을 마련한다. 일흔둘에 펴낸 첫 시집 『거제, 파도로 깎은 시』는 거제의 자연과 역사, 삶의 기쁨과 고난을 깊이 있게 기록하고 있다.
연륜이 담은 지역의 가치와 장소 경험
신명자 시인의 시는 시간적으로 1950년 전후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른다. 공간적으로는 거제를 중심으로 잠시 머물렀던 통영과 부산을 건너 마산, 창원, 고성으로 넓혀 나간다. 그의 시는 연륜에 걸맞게 넓고도 깊은 정서를 보여준다.
저구 만데이를 사람들은 도토지재/할머니는 도톨구지재 도톨구지재 하셨다/그곳에 올라서서 동쪽 바라보면 다포/등 뒤엔 면소재지 저구/뜨는 해도 지는 해도 붉었다/(줄임)/어느 날 아버지 같은 남편과 아이 셋 데리고/도토지재 나타난 여자/소나무 쉼터 위 얼기설기 집 지어 술밥집 차리니/뽀얀 살결 인물 받쳐 줘/들고 나는 사람들 붙여준 이름/곱다이, 곱다이//어른들도 곱다이 고개/아이들도 곱다이 고개. (「곱다이 고개」 중)
「곱다이 고개」는 다포에서 학동으로 가는 길 노자산 아래에 지금은 흔적 없이 사라진 내외가 사는 집을 그렸다. “산꼭대기 해 걸리자 마자/줄줄이 아이들 골라 눕히기 바쁜” 내외를 윗동네 사람들이 놀리는 모습에서 그들이 일군 삶과 노자산 아랫마을의 원경을 웃음과 함께 독자들에게 선물한다. 또 “대마도에서 건너오는 중이었을까/건너가는 중이었을까”(「누리」)라며 거제에서 오랜 세월 이어진 독특한 어업으로 알려진 멸치잡이를 떠올리며 거제 바다를 온몸으로 겪은 이의 시선을 보여준다.
추억으로 전하는 낙관주의 전망과 웃음의 힘
시인은 구체적이고 꼼꼼한 경험 재구성과 표현으로 추억을 생생하게 회고한다. 때문에 단순히 거제 풍경시와는 다르다. 그의 거제 장소시가 소박한 장소 경험을 뛰어넘은 넉넉한 울림을 안겨 주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가라산 아래 관음사 법당/어머니 영정 앞에 엎드려 금강경 펼치는데/대웅전 앞 키 큰 소나무 가지에/두 까마귀 울음 주고받는다//해거름이면 장수 묏가에서도/우리 집 빈 마당 내려다보며 울어주던 낯익은 소리/그 시간 기우뚱 다리가 다리를 밀고/마당을 들어섰을 어머니/경로당 오가며 먹이 챙겨 주었다고/극락왕생 빌어주는 걸까/나보다 어머니 안부 더 챙겨주던 울음소리. (「삼재일」 중)
시인은 어머니 삼재일에 법당 밖에서 울어주는 까마귀를 두고 자신보다 “어머니 안부 더 챙겨”주는 “울음소리”라고 표현한다. 이는 신명자 시를 단순한 특정 지역 거제의 장소 경험이나 풍속 재현에 머물지 않는 새로운 시선을 보여준다.
신명자 시인은 거제의 산과 바다, 사람들의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내며 개인의 기억을 공동의 지역 자산으로 되돌려 놓는 새로운 장소시의 지평을 열었다. 그의 시는 거제의 과거와 오늘, 삶의 사연과 상징을 깊이 있게 재창조하며 지역문학을 되살린다. 금성산성의 싸움돌처럼 단단한 울림을 지닌 그의 문학은 거제를 시로 울려 퍼지게 하는 아름다운 변화의 신호이며, 독자에게 거제 지역의 시간과 풍경을 오래도록 감상하는 시간을 마련한다.
추천사
신명자 시는 근대 100년, 거제가 쏘아올린 첫 본격 장소시다. 시간으로는 1950년대 전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공간으로는 노자산과 가라산이 내려다보는 다포항을 중심으로, 거제 전역과 그 너머로 물메아리 치듯 웅숭깊은 장소 상상력을 펼친다. 거제의 산과 바다, 사람들이 겪은 갖가지 사연이 회고 서정을 뛰어넘는 구체적인 장소 경험과 지역 가치로 역동하는 자리다. 그것을 슬픔, 고통조차 웃음으로 돌려 세우는 신명자 특유의 낙관주의 전망과 현실 긍정의 목소리가 뒷받침한다. 거제는 신명자를 낳았으나 신명자로 말미암아 거제가 거듭나는 아름답고도 놀라운 연금술을 얻은 셈이다. 세상을 바꾸지는 못할지라도 도탑게 가꾸는 길에서 시는 무엇에도 밀리지 않는다. 그러한 참을 거제의 딸, 늦깎이 시인 신명자가 넉넉하게 증명한다.
_박태일(시인·경남대 명예교수)
연관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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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신명자
1953년 경남 거제 출생. 2024년 『장소시학』 신인상을 받아 문학사회에 나섰다. 경남시인회 회원. chim6808@gmail.com

책 속으로
여차 너머 항개 백 씨, 갈곶리 양 씨,
다포 우리 아부지 아들 낳기 달리기
다섯째 막내딸 고추밭에 터 팔아 남동생 태어나니
아부지 일찌감치 결승점에 깃대 꽂으시고
백 씨 양 씨 계속 달린다
백 씨 여섯 번째 딸 낳으면 양 씨 따라 여섯 번째 딸
양 씨 일곱 번째 딸 낳으면 백 씨 따라 일곱 번째 딸
숭어 망재비 양 씨
숭어 떼는 맞추면서 아들 물때는 못 맞춰
여덟 아홉 번째도 딸딸
백 씨도 뒤질세라 아홉 번째 따라 잡는데
드디어 결승점에 먼저 도착한 양 씨
두 손 번쩍 들어 올리며
내 아들 불알이
하늘 댕구만 하요.
_「달리기」 전문
어디서 날아온 민들레 홀씨였을까
우리 집 담장에서 내려다 보면 둥천 건너
첫 빨간 양철지붕에 뫼똥만 한 집
흘러내린 담장 너머 손바닥만 한 마루 끝엔
망부석처럼 서 있던 지팡이 하나
동네 사람들은 백 살이 넘었다고 했고
할머니께 나이를 물으면
사람이 백 살 넘으면 나이가 없다며 손사레 치셨다
명주실 같이 가는 흰머리에 뽀얀 얼굴
선거 날이면 새벽같이 면사무소 지프차
할머니 모시려 오고 포구나무 가지처럼 휜 허리는
지팡이가 모시고 나왔다
할머이 오늘은 꼭 한 사람한테만 꾸우욱 찍으이소
이장님 신신 당부해도
이 보시게 인심이 그리 야박해서 쓰시겠는가.
_「박산 할메」 전문
통영에서 왔다 갔다 뒤목 넘 어장막 주인은
사철 머리가 하얗다
봄부터 여름까지 몽돌밭 미수리에 널린 멸치도 하얗게 빛났다
그해는 어장막에도 흉년 들어 탄식하듯 아내에게 흘린
어엽다 종철네야 보리죽도 못 먹겠다
한번 태어난 말은 죽는 일 없어
이집 저집 건너뛰다가 넘어져
어엽다 동철네야 보리죽도 못 먹겠다
새벽 우물가 말 퍼 나르기 선수 동철이 각시도
어엽다 동철네야 노래 부르고 다녔다
아침 밥 굶은 사람도
보리 죽 먹은 사람도
품앗이 하듯
어엽다 동철네야 보리죽도 못 먹겠다.
_「새피 영감」 전문
차례
시인의 말 하나
제1부
낮달 | 할머니는 박 보살 | 벚꽃 피면 | 낮잠 | 수채화 | 작은할메 | 아버지와 바다 | 거미줄 | 대장나무 둘째 가지 | 아버지의 봄 | 무명용사 | 진을수 여사 | 보리방아 찧는 날 | 계묘년 | 공양 | 빨래 | 서귀포에서 | 달구싯개비 | 곱다이 고개 | 상현달
제2부
뿔 | 새피 영감 | 누리 | 멸치 | 갈곶리 | 빽 | 아들과 딸 | 달리기 | 무시와 고메 | 통장님 | 분재 | 빨대 | 통영댁 | 젖소 부인 토끼 부인 | 구망 | 선이 할메 | 박산 할메 | 문 목수 | 어머니의 자장가 | 봄날 | 한우산 | 뱃고동 | 장닭
제3부
아미동 | 코스모스 피는 길 | 홍역 | 선물 | 당산역 | 율리우스 | 노란 민들레 | 스위스 별들 | 말금이 | 부스럼 | 입원 | 그 할머니 | 양촌 온천 | 벽화 | 감자에 싹이 | 갓 | 반딧불
제4부
동백꽃 | 아오자이 | 이화 | 홍이 엄마 | 포구나무집 | 루비 반지 | 몽돌 | 아침에 눈 뜨니 | 이혼 서약서 | 염밭 | 다듬이 소리 | 갈비탕 | 기차를 기다리며 | 전설의 고향 | 다포항 | 벌초 길 | 전쟁놀이 | 제비 | 호박
제5부
꽃 | 냉이 | 구절산 | 가을 | 보물가방 | 삼재일 | 은어 | 서대장 | 어시장 | 삼복 | 층간소음 | 깡통 | 파업 | 누수 | 겨울의 길목 | 69새 | 그날
해설: 신명자의 거제 장소시와 낙관주의의 아름다움_박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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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신명자 쪽 수 : 176쪽 판 형 : 125*210 / 무선 ISBN : 979-11-6861-549-6 03810 가 격 : 15,000원 발행일 : 2025년 12월 16일 분 류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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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파도로 깎은 시 | 산지니시인선 28 | 신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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