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로운 건 눈물로 씻었다
산지니시인선 030
정유미 시집
넉넉한 황강을 품은 합천을 시로 노래하다
2011년 『경남문학』 공모전 시 부문에 당선되어 문학 활동을 시작한 정유미 시인이 첫 시집을 출간한다. 정유미 시인의 첫 시집 『해로운 건 눈물로 씻었다』에는 시인의 고향인 경남 합천의 삶과 풍경을 그려낸 85편의 시가 수록되었다. 합천은 20세기 초반 한때 인구 12만에서 현재 4만 아래로 줄어든, 이향 인구와 역내 소멸이 잦았던 지역임을 고려하면 시문학 사회에서 여자 시인의 등장은 합천 지역에서 이루어진 의미 있는 성과이다.
좋은 시인을 많이 지닌 지역은 그만큼 시인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정유미 시인은 앞선 여성 시인들이 노래한, 여자로서 겪어야 했던 삶의 경험과 풍경을 이 시집에 담아내었다. 그리고 사람답게 살아가는 데 대한 방법적 성찰과 여성 주체가 겪는 삶의 굴곡을 독특한 표현으로 독자에게 전한다.
예순을 내다보는 여성의 굴곡을 담은 시의 속살
부산 영도에서 태어나 서울과 대구, 합천으로 이어진 시인의 삶은 여느 소녀나 청소년이 겪었을 법한 삶을 뛰어넘는, 어려웠을 역정을 암시한다. 때문에 시인의 시 속 여성 주체는 길 위에서 딸로서, 여자로서 겪었던 삶의 굴곡을 드러낸다.
아버지 집이 나왔는데예/이백만 원만 빌려주이소/출가외인 돈 없다/밤샘 뜬눈 싹둑 잘리고/야속한 콧물에 눈물 쭈그려 앉았으니//보내주이소/가스나가 무슨 대학/제 학력고사 잘 봤어예//입학금 한 번만 내주이소/여자는 시집 잘 가면 된다/보내주이소 작은방 자물쇠 걸어 (「그 겨울 사흘」 중)
저기/함박웃음 팔 걸고 가는/아버지와 딸//내 아이에게/메타세쿼이아 너를 주어 높이/무등 태우고 싶었다/소풍이고 싶었다 (「메타세쿼이아」 중)
시인은 한 사람이면서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아버지를 그린다. 「그 겨울 사흘」에서는 어린 딸의 대학 진학을 주저앉힐 수밖에 없는 무능한 아버지, 딸을 매몰차게 ‘출가외인’으로 만드는 아버지이다. 하지만 「메타세쿼이아」에서는 세월이 지나고 관으로 변한 아버지와 함께 나이든 딸이 아버지의 부재를 온몸에 아로새기며 길을 걷는다.
정유미 시에서 중요한 흐름은 여성이 자라며 겪는 가족 갈등이다. 특히 부모와의 위아래 관계가 중심이며, 형제처럼 옆으로 이어지는 관계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시 속에서 가장 크게 드러나는 문제는 무기력한 아버지와의 어긋남이다. 그 때문에 집안을 책임졌던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집착은 더 커지고, 그만큼 아버지에 대한 서운함과 분노도 쌓인다. 결국 이런 감정들은 우리 시대 많은 딸들이 느끼는 아버지에 대한 상실감과 슬픔을 떠올리게 한다.
정유미 시인은 주저하거나 꾸미는 듯한 전형적인 여성적 목소리와 달리, 더 솔직하고 때로는 날카로운 표현을 사용하며 문장을 일부러 비틀어 쓰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런 파격을 지나치게 밀어붙이지 않아, 독자가 생각을 곱씹고 상상할 여유를 가질 수 있다. 또 여성 주체가 사회 안팎에서 겪는 성공과 실패, 칭찬과 무시, 개인적 갈등과 사회적 소외 같은 다양한 경험을 넓게 담아내며 큰 울림을 만들어낸다.
추천사
정유미 시는 여성적 경험 가치와 그것을 품어 안은 다양한 표현 가치라는, 두 가지 가치 정향이 어울려 맥놀이 치는 독특한 개성을 겨냥한다. 무엇보다 시는 짱뚱어처럼 뛰어오르는 생물이어야 한다는 듯이 톡톡 쏘며 생기발랄하다. 그 안쪽을 여성 주체가 겪는, 가족과 사회 관계의 부조화와 갈등, 그로 말미암은 격정으로 채웠다. 그것을 성공적으로 담기 위해 창작 방법으로 비창작적인 역설까지 즐긴다. 문화시적 방식이나 날것 직설, 언어적 일탈과 같은 이질적인 방식이 그것이다. 거짓 화해와 봉합을 거부하며 여성 주체의 자기 개방을 위한 글쓰기 전략이다. 몸담기는 쉬우나 골몰하기는 쉽지 않고, 골몰하나 지속하기는 더 힘들 뿐 아니라, 지속하나 이루기는 참으로 어려운 길이 문학이다. 우리 여성시의 독특한 개성이자 지역 푯대 시인으로서 지닐바 무거운 책무를 정유미 시인은 즐겁게 떠맡으리라.
_박태일(시인·경남대 명예교수)
연관 키워드
#합천 #여성 #가족 #관계 #지역문학 #지역 #시인선
저자 소개
정유미
경남 합천 출신. 2011년 『경남문학』 공모전 시 부문 당선. 2022년 『장소시학』 신인상을 받음. 경남시인회 회원. hayandoeun@hanmail.net

책 속으로
튀김 감자 두 개 주먹밥 한 알 돈까스 접시 앞에 앉아 울었다
막아보려 했지만 찍어내도 자꾸 올라왔다
그러니까 우리 집은 매실아지메 아래채였어예
그 집 큰오빠는 중학교 졸업하고 우체부가 됐는데예
어제는 등기 배달 와서 지지난 가실에 엄마도 가고 인자 우리 집 빈집 됐다
혼잣말인지 내 들으란 소린지
아지메는 몸띠가 소만 한 딸이 있었어예 눈만 뜨면
안산 논배미 얼라들 돌 떤지고 눈알 뻘거이 고래고
래 질러 쌓더마는 정신병원 뚤 맞아 죽었단 소리도 있고
열 살 땐가 서울서 기차 타고 내려왔어예
한덴지 방인지
다후다 이불 밑에 까망까망 오디 눈
빨간 다라이 엄마를 기다렸어예
겨울바람 찬바람 오복골 먼당 내천 물알 황강 자꾸 불기만 하데예
해로운 건 눈물로 씻었다.
_「해로운 건 눈물로」 전문
요술램프 지하 헌책방
귀퉁이 헐렁한 시집 코너 둘러보다
문지나 창비에서 나온 건 없나요
낮빛 뽀오얀 직원에게 묻는다
문제집은 저쪽에 있고
참고서는 건너편에 있다며
따라오라는데
다디단 시집 하나 못 건지고
터덜터덜
소설은 신간도 금방인데 시집이 없다는 건
질리지 않는 치아바타
씹을수록 고소한 빵
한 번 꽂히면 잊지 못한다는
평생을 파먹을 파니니
팔지 않을 시를 써야지
팔려 가지 않을 시를 쓸 거야
수리수리
알라딘.
_「알라딘 문고」 전문
아버지, 어느 새벽 툭
안개 속에 던지고 돌아오지 않았다
가누지 못한 몸이거나
관이 되어버린 이름
저기
함박웃음 팔 걸고 가는
아버지와 딸
내 아이에게
메타세쿼이아 너를 주어 높이
무등 태우고 싶었다
소풍이고 싶었다
알아
지금 나 아프고
열나는 까닭.
_「메타세쿼이아」 전문
차례
시인의 말 하나
제1부
우수 | 카페 고도 520 | 노란 잠수함 | 우리 나비, 인자 다 울었나? | 아침 달 | 시 짓기 | 알라딘 문고 | 로즈 와일리 | 엘승 타사르해 | 오베라는 남자 | 그려라 목요일 | 남정강 갈마산 | 자꾸 어딘가 누르는 | 경계선 | 날씨를 쓰지 말고 비를 살아라
제2부
뚱뚱한 말 | 내 사랑 | 블라인드 | 삼월 | 숨박꼭집 | 동안거 | 아파트 달 | 69세 | 아무도 없었다 | 부드러움에 대하여 | 다식 | 백일장 | 사월에는 | 남정탕 | 새로 산 구두에 뒤꿈치가 벗겨져
제3부
홍매 숲에서 | 드문드문 당신 | 육교 밑 취한 남자 | 장마 | 메슥거린다 | 복실이 생각 | 장마와 연탄 | 금목서 | 해로운 건 눈물로 | 채송화 봉숭아 | 추석 소리 | 가리목 와리 | 백마산성 | 메타세쿼이아 | 우리동네 1 | 왼 어깨 륙색 | 우리동네 2
제4부
그해 여름 | 오복골 먼당 | 쳉헤르 | 비닐막 못 이기는 눈꺼풀 | 끝물 | 떠도는 집 | 태희 | 외갓집 | 조복순 여사 스무 장 | 삼월 삼일
제5부
유미카페 1 | 소라아파트 | 그 겨울 사흘 | 수국이 피었다 | 자주달개비 | 뒹구르르 갱년 | 무릉 | 내곡리 | 물집 | 따라오지 마 | 유미카페 2 | 교촌양반 | 겨울 정류장 | 시화전 | 황강가에서 1 | 웃자라면 싹둑 | 긁어주는 여자 | 예쁘니요
제6부
맨드라미 | 유미카페 3 | 대야성 | 황강가에서 2 | 불면증 | 순구 | 쉼 없는 계절 | 세 번 결심하고 네 번째 날 | 유미카페 4 | 다정
해설: 몰라 몰라 요놈 시_박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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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정유미 쪽 수 : 208쪽 판 형 : 125*210 / 무선 ISBN : 979-11-6861-551-9 03810 가 격 : 15,000원 발행일 : 2025년 12월 16일 분 류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해로운 건 눈물로 씻었다> 구매하기
해로운 건 눈물로 씻었다 | 산지니시인선 30 | 정유미
합천의 삶과 여성 주체의 굴곡을 85편의 시로 담아낸 정유미 시인의 첫 시집이다. 가족 갈등과 상실, 시대의 정서를 솔직한 언어로 포착해 깊은 울림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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