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1일부터 사흘간 필리핀 마닐라에서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에서 한·아세한 협력 강화 및 한반도 정세 등을 논의하는데요. 인공지능과 문화창조산업·온라인 스캠 범죄 대응을 위한 경찰 협력 방안, 중동 정세에 따른 식량·에너지 협력 방안도 논의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스캠 사기 소식이 기사로 무수히 쏟아지는 오늘날 스캠은 더이상 동남아시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경향신문>에서 『스캠』을 소개했습니다.
경향신문
“마시는 공기도 돈 내라”···한국인 청년 목숨 앗아간 ‘스캠 단지’ 지옥도, 탈출자 96명의 증언
피해자이자 가해자된 이들
인터뷰 바탕으로 스캠 구조 파헤쳐
폭력과 빚으로로 설계된 감옥
지역 공동체, 국가까지 공모자로

스캠
이반 프란체스키니·링 리·마크 보 지음 | 이정우 옮김
산지니 | 2만5000원
지난해 캄보디아에서 한국인을 유인해 납치, 감금하고 이들에게 온라인 사기 범죄인 ‘스캠’에 가담할 것을 종용한 사건이 주목받았다. 당시 범죄 단지에서 강제로 일하다 결국 목숨을 잃은 한국인 청년의 사연이 알려지며 사건은 국민적 공분을 샀다. 대대적인 범죄 소탕 작전이 이어졌고, 한국 정부는 현지에서 범죄에 참여했던 한국 국적 피의자를 대거 국내 송환했다. 올해 1월 캄보디아 범죄 단지의 배후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프린스그룹의 중국계 캄보디아인 천즈 회장이 중국에서 구속됐다. 한국 외교부는 이달 9일 스캠 피해가 감소하고 있다며 캄보디아 보코산 등 일부 지역에 발령했던 여행금지를 해제하기도 했다.
한국에선 지난해 말에야 공론화가 된 사건이지만 스캠 범죄의 역사는 길다. 1990년대 중화권에서 비롯된 이 같은 사기 범죄는 동남아시아 일대로 퍼져나가며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했다. <스캠>은 이제 국경을 넘나들며 세계인을 범죄 대상으로 삼는 사이버 범죄의 작동 방식을 파헤친다. 책의 자료 상당수는 범죄 단지에서 활동하다 풀려난 96명과의 인터뷰가 원천이다. 저자들이 수년간의 연구 끝에 책의 집필을 마친 때가 2024년이었으니, 지난해 한국은 이미 성장할 대로 성장한 범죄 조직이 만들어낸 새로운 표적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책은 스캠 단지의 기원을 1990년대 대만으로 본다. 당시 인터넷 보급망의 확대로 이를 이용한 온라인 범죄가 늘었다. 2000년대 초에 들어 대만 당국이 단속을 강화하자 사기범들은 활동 무대를 중국 본토로 돌렸고, 이들 범죄 산업은 2010년대를 전후로 크게 성장한다. 중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국내 사기 행각이 극성을 부렸던 것도 이즈음이다. 이번엔 대만과 중국이 합동으로 단속을 강화했고, 범죄 조직은 최근 우리가 목격했듯 캄보디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로 활동 거점을 옮겼다.
범죄 조직의 초기 표적은 중국어권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판도가 변한다. 봉쇄 조치로 고립된 이들의 처지를 이용한 범죄로 사기 수익은 크게 늘었으나, 여행 제한 조치에 따라 그동안 안정적으로 공급되던 중국 출신 범죄 가담자들을 확보하기 어려워졌다. 범죄 조직은 오히려 이를 계기로 중국어권을 넘어서 활동 범위를 확대한다. 최근 조사 결과를 보면 이들 범죄 단지에 묶여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는 이들의 국적은 최소 40개국 이상이다. 저자들은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제 한국 역시 이 분야의 중요한 행위자이면서 주된 표적이 되었다고 말한다.

범죄 단지는 주로 4~5층 큰 건물이 여럿 모인 형태로 구성된다. 내부 거주자들의 이동을 통제하기 위해 공동 식당, 진료소, 매춘 업소 등을 유치한 자급자족형 복합 공동체로 만들어진다. 철조망이 설치된 높은 담장과 이동을 통제하는 무장한 경비원은 공통적인 특징이다. 범죄 단지의 노동력은 자발적으로 찾아왔든 비자발적으로 붙잡혀 왔든 결국엔 강압적 노동을 수행하게 된다. 범죄 조직은 이들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갖은 명목으로 빚을 지운다. 물건과 음식, 숙박 공간을 넘어 이들이 호흡하는 “해변의 공기”에까지 요금을 매겨 일을 할수록 빚이 늘어나는 구조로 설계한다.
스캠에 가담하지 않는 등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구타, 성폭행 등 범죄에 노출된다. 인터뷰에 응한 대만 여성은 범죄 단지에 납치된 후 사기 행각에 참여하기를 거절하자 성폭행 당하고 다른 곳으로 인신매매됐다. 이 여성 외에도 범죄 단지에 있던 다수는 자신들의 활동이 불법인 줄 알면서도 목숨을 구하기 위해 범죄에 가담했다. 스캠 단지에서 일했던 이들은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라는 모호한 정체성을 가지는 이유다.
캄보디아 당국은 이 같은 상황을 이용해 “범죄 단지에서 빠져나온 이들을 피해자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서사를 적극적으로 피력”해 왔다. 범죄 단지가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지역에 주로 들어선다는 점에서 지역 공동체도 범죄에 가담하는 경향을 보인다. 근처의 소규모 상점 주인, 청소부, 경비원, 건설, 유지보수, 배달 노동자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은 암묵적으로 스캠 산업에 동조하게 된다.
이제는 스캠이 하나의 산업이라 불릴 만큼 성장하고, 해외 각국에 그 피해가 널리 알려지면서 범죄 조직이 노리는 목표도 달라지고 있다. 책은 “더 어린 연령대가 이 산업의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최근 한국에서도 스캠과 관련한 다수의 특집 프로그램, 분석 기사가 나왔다. 책은 스캠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나 분석을 제시한다기보단 과거부터 이어져 온 이 범죄의 구조를 체계화한다. 일종의 범죄동향보고서 같다는 느낌도 든다.

출처 : 고희진 기자, 2026년 7월 17일, <경향신문>
[책과 삶]“마시는 공기도 돈 내라”···한국인 청년 목숨 앗아간 ‘스캠 단지’ 지옥도, 탈출자
스캠 이반 프란체스키니·링 리·마크 보 지음 | 이정우 옮김 산지니 | 2만5000원 지난해 캄보디아에서 한국인을 유인해 납치, 감금하고 이들에게 온라인 사기 범죄인 ‘스캠’에 가담할 것을 종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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