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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산지니안 월드

맹자독설을 읽고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7. 24.

 

  맹자 호통(孟子號筒)

  - 맹자독설을 읽고 - 

 

 

 

 

언론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때, 필자는 모든 ‘그릇된 것’들을 향해 온 몸을 내던져 맹렬하게 퍼붓는다. 부패와 부정에 무기력해지고 일상의 굴레에 갇힌 현대인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일편 통쾌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내 필자의 독설이 자신을 겨냥하고 있다는 내용을 보게 되면 이내 깊은 배신감에 몸서리치게 되는 것도 책을 읽으면서 겪는 일 중 하나다.

  그렇다. 이 책은 어느 누구도 무사히 살아남지(?) 못하는 책이다. 맹자의 이론 아래, 한 점의 부끄럼도 없는 이가 아닌 이상, 모두 독설의 대상이 되고 만다. 마치 부활한 맹자가 어리석은 중생들에게 치는 호통과 같다는 느낌도 든다. 독설은 모질고 악독한 말인데 반해, 책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급한 성미로 인해 하게 되는 말 같기 때문이다. 필자의 이야기 대부분은 이성적인 접근과 논리로 독설한다기보다 귀청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정신을 쏙 빼놓기 바쁘다. 때문에 논리보다 감정이 앞선 듯 보여 다소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하지만 필자가 분통이 터져 호통 치지 않고는 못 베기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한 편씩 수록된 독설은 각각 다른 시사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특이한 점은 말미에 가면 누구든지 일반적으로 세우게 되는 서둘러 현재를 바꾸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이나 미래에 대한 계획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필자의 말을 빌리자면 이러한 독설의 작업은 고작 ‘시작’이기 때문이다. 밟아도 자꾸 일어나는 잡초처럼, 끊임없는 비판과 독설을 통해 현재의 문제들을 깨우치게 만들어야하며, 독자 중 아주 작은 변화라도 겪은 이가 있다면 그걸로 이 한 권의 책의 임무는 완수했다는 것이다. 혁명이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필자의 이런 생각에 동의하며, 급한 마음에 책을 집어든 독자가 있다면 일부러라도 쉬어가는 것이 좋을 듯싶다.

 물론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아쉬웠던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런 맹렬한 맹자의 호통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읽는 힘있는 이들에겐 이 책은 그저 ‘소귀에 경읽기’만도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무서울 것이 없는 그들에게 유일한 신은 자본일 게 틀림없는데 이런 호통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사람이 되기 전에, 도인이 되기 전에 돈맛부터 알아버린 이들에게 이 책은 어쩌면 너무나 교과서적인 이야기만 해대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런 아쉬움은 한 독설로 무장한 필자의 다음 책에서 달래기를 기대해본다.

맹자의 이론은 전래동화나 설화 속에 살아 숨 쉬는 현인의 말처럼, 세속적인 것에 찌든 우리들에게는 신비감과 청량감을 주는 동시에 절망감도 안겨준다. 너무나 이뤄내고 싶은 세상이지만, 과연 그러한 세상이 언제 구현될 것인가 하는 막연함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이 책을 읽으나 마나 한 꼴이 된다. 계속해서 맹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부정한 모든 것들과 맞설 수 있어야 한다.

 제상 앞에서도 당당히 자신의 목소리를 높여 말했던 맹자처럼 우리도 우리의 목소리를 스스로 낼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를, 우리 모두 아는 것을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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