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청산유수인데 글발이 약하거나, 글재주는 좋으나 눌변인 사람들이 있다. 보통 문인들은 후자에 속한다고들 한다. 그런데 최영철 시인은 다르다. 글과 말, 두 가지 재주를 모두 갖고 계시다. 상냥한 유머감각과 소탈함도 시인의 매력을 더해준다. 얼마 전, 금정도서관에서 ‘최영철 시인과 함께하는 책 낭독회’가 열렸는데, 이후 선생님의 시집 『호루라기』를 찾는 주부 독자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저자의 ‘말’에 반해 ‘글’까지 읽게 된 독자들이 많아졌다니, 흐뭇한 소식이다.

  9월 29일(화) 저녁에 『동백꽃, 붉고 시린 눈물』 를 펴낸 최영철 시인의 저자 간담회가 <백년어 서원>에서 열렸다. 100년 전통을 이어온 남선창고에 이어 영도다리의 운명마저 위태한 시험대에 오른 요즘, 옛 부산의 풍경들은 우리들에게 어떤 감상과 의미를 전해줄까? 최영철 시인께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인은 부산을 ‘많은 이들을 먹여 살린 도시’라고 이야기한다. 많은 이들이 빈손으로 부산에 들어와 터를 잡고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최영철 시인 또한 어린 시절, ‘반 칸 방’에서 시작해 평생을 부산에서 살고 있다. 근 30년간 편집자로, 또 전업시인으로 살아오면서 종종 산문을 쓰기도 하셨는데, 특히 ‘부산 이야기’를 많이 쓰셨다. 부산을 딱히 사랑해서라기보다, 먹고 살기 위해 쓰다 보니 부산을 사랑하게 됐다는 시인의 대답에 인생의 깊은 묘리가 담겨 있다. 순수한 사랑, 자연발생적인 사랑도 중요하지만, ‘필요에 의한 사랑’도 가꾸어가기 나름이라는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름난 장소들도 소중하지만, 틈새를 잘 들여다보는 시인의 눈에는 ‘계단’ 또한 부산의 명소로 들어온다. 부산(釜山)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산도 많고 산동네도 많은 부산에서 계단은 굴곡과 애환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는 지형물이다. 최영철 시인은 “계단을 잘 보세요, 참 예쁜 계단들이 많아요.”라신다. ‘계단이 예쁘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시인의 말뜻을 곰곰 헤아려보게 된다.

              (위) 사십계단위 옛 모습, (아래) 최근 풍경

       최영철 시인은, 부산을 사랑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 지역출판과 문화활동에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는 부탁도 거듭 하셨다. 그것은 자기 존재감과 자신감을 회복하는 길이기도 하다는 말씀과 함께. ‘지역’과 ‘나’의 관계를 다시금 떠올려보게 한 이 자리에 보다 많은 분들과 함께하지 못한 것이 이날의 유일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선생님은 조만간 김해 도요마을로 들어가신다고 하는데, 그곳에서 또 어떤 '예쁨'을 발견하실지, 궁금해진다. 
 


● 다음 저자간담회는 10여년 만의 신작 소설집 『테하차피의 달』을 출간하신 조갑상 선생님과 함께합니다. 소중한 자리, 주변 분들께 널리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일시 : 10월 27일(화)  장소 : 중앙동 <백년어서원>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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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권문경 2009.10.05 14: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앗! 저 계단은...20대 때 첫 직장이 40계단 아래 허름한 5층 건물의 5층에 세들어 있었거든요. 사무실 계단과 40계단을 하루에도 열댓번씩 오르내렸던 기억이 납니다. 40계단 위아래가 인쇄출판 관련 제작업체들이 모여 있는 동광동 인쇄골목이거든요. 그때는 계단만 보면 다리가 후들거렸는데, 사진으로 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다시 올라가 보고 싶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