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어 서원>에 갈 때마다 ‘숨은 물고기 찾기’ 놀이를 하게 됩니다. 탁자 위에, 책꽃이 구석에, 커튼 자락에 못 보던 물고기들이 하나둘 늘어나 있기 때문이지요. 물고기만 보면 백년어 생각이 난다는 사람들이 가져다 놓았다고 하네요. 재료도 모양도 가지각색인 물고기들을 구석구석에서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오늘따라 나리와 국화꽃이 그윽한 향을 뿜어내고 있어 공간은 더욱 농밀한 느낌을 줍니다.
조갑상 선생님께서 10여 년 만에 새 작품집을 출간하셨기 때문일까요? 독자들과 언론관계자, 동료 작가 선생님들과 제자들께서 자리를 가득 채워주셨습니다. 자리가 없어 돌아가신 분도 계셨을 정도니, 이날의 뜨거운 열기를 짐작할 만합니다.
물고기와 꽃, 그리고 사람들로 빽빽이 들어찬 가운데 『테하차피의 달』의 저자이신 조갑상 선생님과의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 작가가 직접 들려주는 작품 이야기들은 흥미진진하였습니다. 이러한 얘기들은 소설책 행간을 아무리 꼼꼼히 들여다보아도 알 수 없는, 오로지 작가의 육성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는 ‘진짜배기’지요.
<누군들 잊히지 못하는 곳이 없으랴>는 일제시대 때 발생한 ‘마리아 살인사건’에서 착안하여, 부산의 가장 오래된 근대식 벽돌건물인 ‘남선창고’를 배경으로 그려낸 작품이라고 합니다. 거기다가 ‘죽은 사람에게 꼭 한 번 말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슨 얘기를 하게 될까?’라는 아이디어가 결합되어 한 편의 독백체 소설이 탄생했다고 하네요. 죽은 사람이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한때를 떠올린다는 점에서 더없이 애잔한 느낌을 줍니다.
그 밖에 사별, 종교, 직업, 연애, 오어사, 국민보도연맹, 아버지의 죽음, 구제금융, 무량스님, 태고사, 한인교포, 묏자리 등이 『테하차피의 달』을 이루고 있는 키워드입니다. 각종 사건과 장소, 인생의 국면들, 선생님의 직간접 경험이 어우려져 한 편의 소설로 탄생되는 과정을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작가의 이야기에 이어, 독자들의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섬세하고, 때로는 도발적인 질문들 속에서 『테하차피의 달』은 또 다른 속내를 드러내 보였습니다.
독자와의 一問一答
(問 <겨울 오어사>와 <통문당> 두 편 모두, 연애에 실패한 남자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직접 겪지 않지 않고는 쓸 수 없겠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선생님의 경험이 어느 정도 반영 되어 있는지요?
答) 대학시절엔 술도 많이 마시고, 연애도 하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술자리에서 장난으로 약혼식을 올리기도 하고……. 작가는 합법적으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지요. 자신의 경험을 감추고 또 드러내는 것은 작가만이 알 수 있는, 그야말로 미묘한 문제라 생각합니다.
(問 문학평론가 김윤식 선생께서 <아내를 두고>에 대해 “심도 있는 노인성 소설”이라고 평하셨다는데…선생님의 작품을 ‘노년 문학’으로 규정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答) ‘노년 문학’이라는 용어는 일종의 ‘테두리’ 혹은 편의적 구분이라 생각합니다. 노인이 등장한다고 혹은 나이 많은 작가가 소설을 썼다고 그것을 꼭 ‘노년 문학’으로 부를 필요는 없겠지요. <아내를 두고>의 경우, 주인공들이 5~60대이고,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살아 가리라던 생각에 균열을 겪는다는 점에서 ‘노년 문학’이라 불러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問 선생님께서는 요산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하셨는데, 같은 부산 출신 작가로서 김정한 선생님의 영향을 얼마나 받으셨는지요?
答) 김정한 선생님은 나라 잃은 시대에 문학의 역할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신 분이시지요. 문체나 스타일 면에서 어떠한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문학이 담당해야 할 ‘모가치(몫)’에 대해 늘 고민하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테하차피의 달 - 조갑상 지음/산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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