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자본에 맞서 지역 상권을 지킨

중소상공인살리기 운동, 13년의 기록

 

 2006, 중소기업을 보호하던 고유업종제도가 폐지되면서 대기업들이 무차별적으로 중소기업 분야에 진출했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중소기업을 대기업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제도인 사업조정제도에서 빠져나가려고 했고, 결국 그해 말부터 기업형 슈퍼마켓(SSM:Super SuperMarket)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개인 슈퍼마켓이 거대 자본과 조직을 가진 대기업 슈퍼마켓에 혼자 맞설 수 없기에, 지역 상인들은 다 같이 힘을 모아 자신들의 상권을 지키기 위해 생업까지 뒤로하고 맞섰다.

 

  이 책은 그 상인들이 자신들의 상권을 지키기 위해 싸워왔던 내용과 결과뿐만 아니라, 전국 주요 도시들의 자영업자들이 겪고 있는 사연, 이들이 법과 공무원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는지, 정치와의 관계 등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대자본에 중소 상인과 자영업자의 삶이 난도질당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 식품대리점을 운영하다 중소상공인 살리기 협회를 만들어 회장을 맡았다. 또한 부산시 중소기업 사업 사전조정협의회와 부산시 유통업상생발전협의회 위원을 맡아 골목 상인의 입장을 반영하고자 노력했다. 전국유통상인 연합회 공동회장을 맡아 골목상권 보호 입법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현재 부산도소매 유통 생활 사업협동조합 이사장직을 맡아 협동조합 사업과 사업조정제도를 활용한 상권 보호에 힘쓰고 있다.

 

 『골목상인 분투기의 내용은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만은 할 수 없다. 회사에 다니다가 퇴직을 한 후에 부족했던 노후를 준비하기 위해 도전할 수 있는 가장 진입 장벽이 낮은 게 자영업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책에서는 우리나라 자영업자 수는 OECD 주요 회원국 중 매우 높은 편이다. 전체 취업자 중에서 자영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88월 기준, 25.5%OECD 평균인 15.9%에 비해 월등히 높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번듯하면서도 리스크가 낮다는 판단에 대기업이 하는 가맹사업에 불나방처럼 뛰어들었고, 오로지 가맹점만 늘리려고 혈안이 된 가맹 본사 탓에 한국은 편의점과 치킨집이 포함된 가맹점 수가 전국에 22만 개가 넘는 가맹점 대국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물론 자영업을 해서 많은 수입을 얻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대기업의 가맹점으로 가게를 차렸지만 무분별한 가맹사업으로 적자를 보거나, 비싸게 기계를 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업그레이드된 새 기계가 출시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대기업이 아니라도 자본이 없는 개인이 하는 사업자는 사업이 잘돼도 문제였다. 장사가 잘되니 입점해 있던 마트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재건축으로 인해 몇 년간 노력했던 게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당할 수밖에 없었던 자영업자들의 모습을 이 책에서는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많은 자영업자들이 늘어나는 적자를 뻔히 알면서도 왜 문을 닫지 못하는지 아십니까?”  많은 자영업자들이 신용보증재단의 보증서를 받은 뒤 은행 대출금으로 모자라는 사업자금을 보태거나 긴급자금을 수혈합니다. 그런데 폐업을 하면 사업자등록증이 말소되니 은행 대출금을 일시에 상환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출금 상환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합니다.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주변의 자금을 모두 끌어다 썼기 때문입니다.” (p.100)

 

  이처럼 자영업을 여윳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한번 자영업을 시작한 이상 어쩔 수 없이 맞이하게 되는 현실을 적어놓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지레 겁먹고 절대 자영업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SNS나 유튜브, 다른 서적을 보면 실패나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한 사례들과 사업에 대해 밝은 점도 충분히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자영업을 가벼운 마음으로 쉽게 여기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준비하고 치열하게 준비를 한다면 성공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공을 하기 위해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하지 않고 이익만 챙기려고 하고, 사람보다 돈을 더 중요하게 여기면서 성공을 한다면 그 또한 대기업과 다름없는 것이다. 결국 서로서로 '상도(常道)의 정신'을 가지고 잘 살기 위한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골목상인 분투기 - 10점
이정식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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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에디터날개 2020.01.10 13: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목상인 분투기』의 내용은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만은 할 수 없다.' 이 문구에 공감이 가네요. 맞아요. 이 책에 담긴 이야기가 당장에 나와는 상관 없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언젠가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흔히 '카페나 차려볼까? 하고 말하기도 하고 ㅎㅎ), 내 가족이나 친척, 지인 중에 자영업자는 분명 있을테니까요.


  2. BlogIcon 실버_ 2020.01.10 15: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처음에 대형마트가 등장했을 때 여러 이야기가 많았었지요... 지금은 너무나 당연시되어버렸네요. <골목상인 분투기>는 그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의 어두운 면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인 것 같습니다.

김민주 작가의 에세이 나는 개성공단으로 출근합니다를 읽고

김민주 저산지니2019.12.20222



[저자소개]


 90년대 수많은 아사자를 낳은 북한의 식량난은 그녀에게 체제와 이념을 넘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의 저자인 김민주 작가는 통일부 사회문화교류 과와 유엔세계식량계획(UNWFP) 민간협력 분야의 경험을 바탕으로 고난의 행군시절 성장기를 보낸 북한 주민들의 영양결핍에 대한 논문을 썼고, 개성공단 영양사 구인공고를 본 그녀는 석사를 졸업한 그달 휴전선을 넘어 개성 땅으로 향한다.

개성공단의 누리미 공장동 외에 공단 내 버스사업소 등 북한 노동자 3,000여 명을 위한 급식 식자재 반·출입 및 북한 직원 관리 총괄 업무 등을 하며 그들의 점장 선생으로 사계절을 함께 보냈다. 개성공단의 급작스러운 폐쇄 이후에도, 그녀는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에서 정착지원 업무를 하며 다양한 지역에서 온 각계각층의 북한 이탈 주민을 만나 북한에 대한 시야를 넓혔다.



[책 소개]


 『나는 개성공단으로 출근합니다에는 2016년 개성공단이 폐쇄되기 전, 저자가 1년간 개성공단 공장동에서 영양사로 일을 하며 만난 북한과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저자는 봉사활동을 위해 찾아간 파키스탄에서 무너진 건물들 사이로 밥을 얻으러 다니는 아이들을 만난 기억이 있다. 그 모습에서 분단된 조국과 그 땅에서 일어났던 한국전쟁을 떠올리고는 북한과 통일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가지게 된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기아 문제로 고통받는 북한의 어린이들을 위해 일하기로 하고, 영양전문가가 되기 위한 공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 북한 사람 혼자 있으면 순박하게 웃으며 함께 고개를 꾸벅하고 인사를 하고, 북한 사람 둘 이상이 있으면 눈을 내리깔고 무표정으로 지나친다. 북한 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혼자일 때는 입을 손으로 가리며 수줍게 웃으며 부끄러워했지만, 여럿이 있을 때는 무표정으로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이들 체제에서 공화국에서 정해둔 규정을 어기게 되면 남한에서 상상할 수 있는 징계와는 차원이 다른 처벌이 뒤따를 테니까. 누가 곁에 있든 마음껏 반가워하고 웃을 수도 있는 자유가 빨리 오기를 바란다. " (91)

  개성공단에서 북측사람들과 4계절을 함께 지내면서 글쓴이가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을 이 책에 녹여 놓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1층 여자 화장실에 가니 그 도도한 면세점 직원이 남한 사람들이 쓰고 버린 페트병에 면세점에서 팔던 샴푸, 린스, 트리트먼트를 담아 와서 세면대에서 머리를 감고 있었다. 고개를 들던 그녀와 눈이 딱 마주쳤다." (178)

  이처럼 북한인들이 남한사람들에게 겉으로는 도도하고 북한의 상품이 우수하다고 광고하지만, 본인들은 우수한 품질의 남한 물건들을 사용하며 서로 곤란했던 에피소드도 담겨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북한에 대해 호기심을 가져왔다.


 6·25전쟁, 도끼만행사건, 핵 도발과 같은 우리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지만 100년도 안 된 시간일 뿐, 오랫동안 우리말을 같이 사용하고 역사를 같이 써 내려왔다. 이념을 달리한 채 반세기 조금 넘게 분단되어 사는 상황이다.

냉전 시대의 특수성과 김일성 일가를 필두로 한 독재, 그리고 공산당원 간부들의 체제적 모순이 남한과 북한의 사이를 갈라놓았다고 생각할 뿐, 그 안에서 사는 일반 시민들은 이 책에 나와 있는 바와 같이 자식들을 사랑하고, 남을 위하려고 하며, 같이 기뻐해 주는. 남한 사람들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궁금해하는 매우 순수한 사람들이다. 다만 체제의 감시 속에 있어 표현의 자유가 없을 뿐이다.


비슷하지만 너무나 다른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우리와 다른 점은 무엇인지, 어떻게 지내왔는지 그들과 대화하고 싶은 나에게 조금이나마 그런 갈증들을 해소해 주는 단비 같은 책이다. 

 


나는 개성공단으로 출근합니다 - 10점
김민주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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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에디터날개 2020.01.10 13: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이 책을 읽으며 통일이 정치적인 측면에서야 복잡한 문제라 저도 잘 모르겠긴 하지만, 경제적으로라도 서로 자유롭게 오가고 교류한다면 답답한 현실을 살고 있는 청년들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많이 열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2. BlogIcon 실버_ 2020.01.10 15: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점점 드라마, 영화 분야에서도 북한 관련 콘텐츠가 많이 나오고 있는 것 같아요. 우철 씨 말대로 <나는 개성공단으로 출근합니다>는 비슷하지만 너무 다른 그들의 이야기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아닌가 싶네요^^

 

『팔팔 끓고 나서 4분간』은 정우련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빈집』 이후 16년 만에 나온 소설집으로, 정우련 작가의 발자취가 차곡차곡 담겨있다. 총 7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끓는점으로부터 서있는 지점이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채롭게 그려냈다.

 

「통증」은 베트남전 참전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조각가 그와, 무명 소설가 그녀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두 사람은 새집 지어 사는 것보다 헌집 고쳐 사는 게 몇 배나 골치 아프다는 소리를 듣는 재혼 부부이다. 중년 부부인 이들은 통증을 앓으며 뒤틀려 어긋나기도, 공감하며 다시 맞춰지기도 한다.

그녀는 난생처음, 가슴을 찌르는 듯한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몸속에 전쟁의 기억을 새겨놓은 사람의 40년 삶이란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죽음이 아니면 잊을 수 없는 상처란 바로 이런 거구나. 그녀는 비로소 그가 건너야 할 망각의 강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33p

 

「까마귀 길들이기」는 친구라고는 길들인 까마귀 하나뿐인 왕따 ‘나’가 별아를 친구로 사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나’는 한때 자신이 질투했던 수정을 우연히 만나게 되고, 별아의 이야기가 나오자 ‘나’는 도망친다. 그러면서 까마귀 까미처럼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별아를 좋아하게 된 과거의 사춘기 때를 회상한다. ‘나’는 회상 끝에 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려 별아 엄마를 찾아가려 하는 것으로 작품은 끝을 맺는다.

“…죽이나 인생이나 다 끓었다고 방심하면 클난다.” 할머니가 혀를 끌끌 찼다. 놓친 주걱을 건지고 불을 조금 줄였다. 그러고는 다시 젓기 시작했다. 죽은 여전히 분화구를 만들면서 한동안 뜨겁게 끓었다. 마치 사춘기 적의 펄펄 끓던 우리들 마음 같았다. 죽에 덴 팔목 부분이 쓰리고 아파왔다. 53p

 

「우리들」은 시인 ‘나’의 출신학교, B여상 3-1반의 반창회가 열리는 이야기다. ‘나’의 동창 중에서는 B여상을 상반되게 바라보는 친구들이 있다. 사과농장을 운영하는 미경은 모교를 자랑스러워하는 반면에, 보험영업을 하는 둘이는 첫사랑에게조차 출신학교를 밝히지 못하고 부끄럽게 여긴다. 이렇듯 생각도, 직업도, 살아온 시간도 다른 인물들은 B여상 3-1반이라는 공통점 하에 ‘우리들’로 묶인다. ‘우리들’은 부재의 시간이 무색하게도 졸업 37주년 반창회에 모여 마치 3-1반으로 돌아간 듯, 학교 쉬는 시간인양 수다를 떨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걸 당당히 밝히면 자존심이 안 상하지. 여상 나온 게 무슨 죄가. 너는 네 엄마가 문둥이면 꽁꽁 숨길 년이네. 진짜 자존심은 문둥이 엄마지만 내 엄마라고 당당히 내보이는 용기 아이가. 86P

 

「말례 언니」어린아이인 ‘나’가 이웃집 문맹 말례 언니의 연애편지를 대필해주며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나’는 말례 언니에게 대필을 해줄 뿐만 아니라, 한글을 가르쳐주는 스승이 되기도 하고, 쪽지를 전달하는 심부름꾼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불행의 씨앗이라는 역할조차 하게 된다. 말례 언니는 비극을 겪고,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고향으로 쫓겨나듯 떠나며 ‘나’에게 쪽지를 건넨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이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흘러가네요.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이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흘러가네요…….”
똑같은 구절이 쪽지 한바닥에 빼곡이 적혀 있었다. 참았던 울음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144P

 

표제작인 「팔팔 끓고 나서 4분간」은 새내기였던 ‘나’가 대학 교양 작문 수업의 담당 강사인 그를 만나 뜨겁게 끓어올랐다가, 식어가는 사랑의 과정을 담은 이야기이다. 불가항력에 이끌려 팽팽하게 조이던 뜨거운 줄은 끓고 나서 4분 후면 끊어지고 만다. 영화 <엘비라 마디간>에 나오는 장면처럼, 그들은 팔팔 끓고 나서 4분간이었다.

물이 끓기 시작해서 4분 후면 계란이 알맞게 익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끓고 나서 4분 후면 끝이라는 거. 그다음은 잡지의 부록처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아무 의미 없는 시간이란 생각이 들더라. 그저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또 내일과 같은 그런 반복이거나 연명에 지나지 않는 삶이잖아. 176p

 

「처음이라는 매혹」젊었을 적에는 청상과부로, 나이가 든 지금은 독거노인으로 살아가는 엄마와 요양보호사 ‘나’의 이야기이다. ‘나’는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지만, 친엄마는 아니다. 새엄마라든가 출생의 비밀 같은 것도 아니다. 엄마는 요양보호사가 돌보는 여성 노인을 부르는 호칭이다. 엄마는 채 1년도 함께하지 못한 남편을 그리워하고 죽음을 ‘생전 처음’ 겪는 매혹적인 순간으로 여기며 죽음을 준비한다. 평소 ‘생전 처음’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엄마를 의아해하던 ‘나’는 엄마의 덤덤한 모습에 눈물을 삼킨다.

“나는 인자 죽음이 기대가 된대이. 간혹 가다 어찌된 판인지 하나하나가 낯설고 생전 처음인 거 같을 때가 있거든. 그러다가 금방 내 아이가 인자 여든여덟이지, 하고는 깜짝 놀래. 인자 내가 처음 겪을 일이 죽음밖에 더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들거든. 죽음이야말로 내가 세상에 나서 생전 처음 겪는 진짜로 매혹적인 순간이 아이겠나 싶어서 은근히 기대가 된다니까.” 203p

 

「만선」은 영광 87호 선장이 공산화된 베트남을 탈출한 보트피플 96명을 해상에서 구조하는 이야기이다. 선장은 표류하던 배에서 구출한 생명들을 참치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만선’이라며 희열을 느끼지만, 회사에서는 해고를 들먹이며 난민들을 들여오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다. 선장은 수많은 고뇌 끝에 회사의 지시를 거부하고 선원의 의무를 지킨다. 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1985년 베트남 난민을 구출한 전재용 선장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정우련 작가가 이를 장편으로 쓰던 중에 단편 청탁이 와서 주제 부분만 떼 단편으로만 썼다고 한다. 그 장편 소설이 나온다면 바로 읽어보고 싶을 정도로 전후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정우련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그날 밤, 보름달이 밤바다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바람 한 점 물결 한 점 없었다. 그런 바다를 선원들은 장판선 바다라고 불렀다. 자칫 땅으로 착각하고 무심코 발을 내디뎠다가는 빠져버릴 수도 있는, 세이렌의 노래처럼 아름답고도 위험한 바다였다. 232p

 

 정우련 작가는 7편의 이야기 곳곳에 통증을 느끼는 인물들을 배치했다. 사소한 갈등에서부터, 속을 긁는 큰 다툼까지 끓는점으로부터 서있는 지점이 다른 인물들인 만큼 통증을 주고받는 대상도 다양하다. 마땅히 미워했던 친구에게, 사랑이 영원할 것만 같았던 연인에게,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사람에게, 심지어 타인이 아닌 자신에게도 통증을 선사한다. 홧김에 혹은 의도적으로 생채기를 낸 이들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통증은 고통만을 주니 피하며 살자와 같은 의미는 전혀 아닐 것이다. 우리는 통증을 느끼고 살아가야 한다. 통증이 없다면 고통을 느끼지 못해 위험을 알아채지 못하고, 인간으로서 성장할 수 없으며, 살아갈 수 없다. 하나의 크고 작은 통증을 유발하는 『팔팔 끓고 나서 4분간』은 독자에게 질문한다. 통증이 필요한 삶 속 당신은 지금, 끓는점으로부터 어디에 있나요?


 

팔팔 끓고 나서 4분간 - 10점
정우련 지음/산지니

-산지니 인턴 김다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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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실버_ 2020.01.09 17: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각 수록작마다 대표하는 구절들을 센스 있게 뽑아주셨네요.
    다연 씨가 정우련 작가님이 7편 이야기 곳곳에 통증을 느끼는 인물들을 배치했다고 하셨는데, 실제로 그래서 통증도 제목 후보에 있었답니다.
    작가님이 보시면 의도를 알아챘다고 좋아하실 것 같네요! 서평 잘 읽었습니다. : )

  2. 날개 2020.01.10 08: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양한 소재의 이야기가 담겨 있네요. 정우련 작가님이 앞으로 풀어놓을 이야기가 더욱 기대됩니다! 서평 잘 읽었어요 :)

 

 

위선의 세계에서 만난 사람들

정정화의 실금 하나를 읽고


정정화 작가의 소설집 실금 하나에는 총 8편의 단편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하나의 제목으로 묶인 단편 소설집이라고 하더라도 소설 하나하나에서 일관된 공통점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정정화 작가의 실금 하나는 어렵지 않게 8편의 소설 모두를 관통하는 주제를 찾을 수 있었다. 그건 곧 부조리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201호 병실은 가족관계의 불화, 돌탑 쌓는 남자실금 하나는 부부 관계의 불화, 가면, , 괜찮니?,크로스 드레서학교와 회사에서의 불화, 빈집은 친구 관계의 불화를 내세운다. 불화와 갈등은 소설에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주인공이 세상과 불화하여 만들어 내는 것이 갈등이며 그러한 갈등 속에서 사건이 발생하기 때문에 불화하지 않는 세계에서는 소설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불화나 갈등은 소설에서 전제조건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가느냐,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정정화 작가의 소설에서 인물은 대부분 순수하고 정직한 주인공과 그와 대립하여 위선적인 세계와 영합한 이들의 대립구조로 볼 수 있다. 이는 너무나 선명한 선악의 대립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이러한 갈등이 현실 세계에 너무나 밀접하게 다가와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을 쉽게 읽고 넘어갈 수 없도록 만든다.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에서는 요양병원에 입원한 어머니와 그의 재산을 둘러싸고 가족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이와 유사한 이야기인 201호 병실에서 역시 아픈 노인들이 가득한 201호 병실의 침대를 의인화해 서술하고 있다. 그는 병실에 입원한 노인들의 이야기와 욕망, 그리고 한때 자신의 위에서 입원 생활을 했던 설아 씨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돌탑 쌓는 남자실금 하나는 모두 부부 관계를 이야기하는 소설이었는데 이 두 편의 소설에서는 모두 가부장적인 남편이 등장한다는데서 인상적이었다. 특히 실금 하나는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떠오를 만큼 강렬한 부분이 있었다. 가면은 보험사에 취직한 정민 씨의 이야기이다. 그런 정민 씨의 팀장인 가희는 자신이 지점에서 가장 실적이 높은 명인이 되면 같은 조인 정민에게도 보상이 있을 것.”이라며 정민의 실적을 가로채지만 정작 정민은 실적이 가장 낮아 회사에서 무시를 당하기 일쑤이다. 반대로 가희는 지점장과 불륜관계를 유지하고 고객들과 성적인 관계를 맺으며 지점에서 가장 높은 위치를 잡게 된다. 그런 가희를 축하하기 위해 연 가면무도회에서 정민과 가희에게 피해를 입은 동료들은 가면을 벗으며 진실을 폭로하기에 이른다. 이렇듯 가면은 부당한 권력에 맞서 싸우는, 이 소설집에서는 흔치 않은 소설이다. 이와 비슷한 유의 소설인 , 괜찮니?크로스 드레서는 마찬가지로 학교’라고 하는 직장에서 기간제 교사로 근무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 괜찮니?는 학부모들에게 부당한 선물을 받고 미술 대회 성적을 조작하려는 염 선생과 그에 동조하는 선생님들에 대해 반기를 들고 상장을 찢어버리지만 결국 물의를 일으켰다는 죄목으로 해고를 당한다. 크로스 드레서에 등장하는 기간제 교사 역시 기간제 교사로 학교 업무에 쉬이 적응하지 못하던 찰나 그녀를 살갑게 도와주는 사회 선생과 점점 친해져, 육체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 그는 그녀에게 사랑한다.”라고 말하지만, 그녀가 기간제 교사의 업무를 끝내자마자 연락이 소원해지더니 결국에는 같은 학교의 염 선생과 결혼을 한다고 한다. 그에게 배신감을 느낀 그녀는 그들이 자주 가던 카페의 바리스타처럼 반대 성별이 입는 것으로 인식되는 옷을 입는 행위인 크로스 드레싱을 하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이처럼 가면을 제외한 정정화의 소설은 모두 순수한 삶은 지향하는 사람들의 패배로 그려진다. 빈집은 이러한 비극성이 절정에 달하는 소설이다. 외딴 섬에 어머니와 함께 살고있는 현수는 얼른 돈을 벌고 장가를 가라는 어머니의 독촉에 섬 밖으로 나와 일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간판 사업을 하던 기태와 만나 같이 사업을 시작한다. 현수와 기태, 그리고 기태의 경리인 미영까지 3명이 일을 하면서 현수와 미영은 사랑에 빠지고 둘은 멀리 가서 같이 살 계획을 짜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뒤, 기태와 미영이 현수에게 줄 돈과 계약서를 가지고 야반도주를 하게 되고 현수는 절망에 빠진다. 설상가상으로 방마저 빼야 하는 상황에 부딪히자 현수는 어머니를 두고 온 외딴 섬을 떠올린다. 그는 결국 외딴 섬으로 돌아가지만, 거기에는 이미 썩어버린 어머니의 시신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이 소설은 독자들로 하여금 불편하게 하고, 분노케 한다. 이러한 불편함과 분노는 부조리한 세상과 그것에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주인공들에게서 기인한다. 주인공들은 영악한 인물들에게 속절없이 당하지만, 그런 인물들 역시 구조의 피해자이며 구조에 영합할 수밖에 없었던 인물들이 대부분 여성으로 묘사되고 있는 점까지 생각해보면 이 소설이 드러내고 있는 현실은 더욱 서늘하다. 하지만 비뚤어진 세상에서는 똑바로 서 있는 자가 비뚤어진 것.’이라는 말처럼 그들은 똑바로 서 있기에 비뚤어져 있다. 그런 이들의 순박함과 올바름에 대한 감각은 작가가 반드시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것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가 던지는 정의와 올바름에 대한 지향은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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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실버_ 2020.01.09 17: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평 잘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언젠가부터 부조리한 현실을 다룬 소설을 읽기가 힘들었어요. 현실을 마주하면 할수록 버겁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하지만 경민 씨가 쓰신 것처럼 그 역시 소설의 역할이므로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오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2. 날개 2020.01.10 08: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정화 작가님의 이번 작품을 설명하는 단어 중 '위선'과 '부조리'라는 말이 자주 나오곤 합니다. 어떤 명쾌한 답을 내려주진 않지만, 내가 서 있는 현실은 어떠한가 생각을 해보게 하는 작품이었어요.

 

 작지만 따뜻한 삶의 위안, 『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서평

『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는 여러 단편 에세이가 묶인 총 4부로 구성된 에세이집이다. 저자는 삶과 예술, 사람과의 관계, 책과 독서에 대해 이야기함을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한다.

 

 책과 문학, 독서와 비평 등. 나는 현재 재학하는 한국어문학과 특성상 다양한 방면으로 많은 작품을 만나고 수학한다. 그럼에도 지금의 나는 책 속에서 가치를 찾기보다, 과제와 성적을 위해 수동적으로 작품을 바라볼 뿐이었다. 책과 글이 좋아서 진학한 학교이지만 오히려 그와 더 멀어져버렸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그 동안의 대학생활이 허망해졌고, 그렇게 나는 학교생활에 대한 권태감에 빠져버렸다. 그 시기에 만난 『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는 그런 내게 공감과 힘이 되어주었다.

삶은 언제나 불확실하며, 그 불확실성 속에서도 견고하게 자신의 한 생애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교육이다. 오늘날 대학이 취업의 최전선에 서게 되면서 기능적 지식에 매몰된 편협한 인재를 양산할 위험은 늘 있어 왔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결국, 그 어떤 변화에도 두려움 없이 맞설 수 있는, 깊이 있는 지성을 갖추는 일이 대학생의 가장 중요한 책무라고 나는 믿는다.

(독서, 인간의 으뜸가는 일 中 p.83~84)

저자는 배움·교육에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오늘날의 대학이 단지 취업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됨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저자의 대학 제도에 대한 비판은 대학 생활의 권태감에 빠진 나에게 큰 공감이 되었다. 또한 저자는 대학생들이 대학 제도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배움·지성을 쌓아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저 권태감에 빠져 무기력했던 나는 이를 통해 다시금 책을 펼치고, 다시 일어서는 힘을 얻었다.

 

 집이란 것이 편해야 하는 것인데 나는 그렇지가 못했다. 우리 집 자체가 워낙에 개방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 내 방에 있다고 해서 혼자인 느낌을 받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까. 인간관계에 있어 여러 사람과 함께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즐거웠다. 그러나 고독을 안쓰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독을 즐긴다고 자부하는 나에게도 그들의 시선은 고역이었다. 동정어린 시선이 느껴질 때, 나는 순간 혼자 보내는 시간이 불쌍한 건가? 하는 고민을 했었다. 그래서 억지로 사람들 사이에 나를 끼워 넣기도 했다. 그런 고민이 들 때 이 책은 이렇게 말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인간을 단단하게 만든다. 일고일고(一孤一高), 한 번 고독할 때마다 우리는 조금씩 나아간다. 우리는 고독을 거쳐 더 나은 자신이 되고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맺고 살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잃어버린 고독을 찾아서 中 p56~57 )

저자는 고독은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사람은 고독을 거쳐 성정한다고 말하며, 고독을 통해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즉, 혼자만의 시간은 불쌍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만의 시간을 통해 삶을 돌아보고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게 만든다. 나는 이 글을 읽고 더 이상 혼자 보내는 시간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는다. 그저 남들의 시선을 버려두고 온전히 그 시간을 즐길 뿐이다.

 

 이처럼『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의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철학적이고 예술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이 책을 읽음으로 내 삶과 스스로를 돌아보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또한 소소하지만 가치 있는 삶의 의미와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세계는 의미로 가득 차 있다. 삶의 의미는 내가 애써 걸어 도달하는 지점에 있지 않고 걸어가는 길 곳곳에 존재한다. 단지 스스로 이를 발견하지 못할 뿐이다. 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 성실하게 산 하루하루가 모여 인생이 된다. 불안하지 않은 삶은 이미 죽은 삶이다. 불안을 끌어안고 우리는 뚜벅뚜벅 나아가야 한다. 그 불안 속에 삶의 의미는 어두운 터널 끝의 빛처럼 또렷하게 나타날 것이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는가 中 p132)

삶의 지치고 모든 것에 권태로울 가? 일상이 버겁고 무기력한 가? 『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는 그런 이들에게 작지만 따뜻한 위안과 원동력이 되어준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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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실버_ 2020.01.09 17: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책에서 일고일고(一孤一高)라는 말이 와닿았는데, 경희씨에게도 와닿은 구절이었나 보네요. 따뜻한 서평 잘 읽었습니다 : )

  2. 날개 2020.01.10 08: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학생들이 대학 제도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배움·지성을 쌓아가기를 바란다'라는 교수님의 글귀가 인상적이네요. 바뀔 수 없는 시스템 속에서 무기력하게 있기 보다는 그 속에서도 '나다움'을 찾는 게 어렵지만 중요한 것 같네요.

  3. BlogIcon 동글동글봄 2020.01.13 11: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평 잘 읽었어요. 저도 책에서 "일고일고(一孤一高), 한 번 고독할 때마다 우리는 조금씩 나아간다." 문장이 가장 감명 깊게 와닿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