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 문학관을 나와서 벌교 홍교를 찾았습니다. <답사여행의 길잡이> 전남 편에 홍교가 아주 자세히 나와있어 벌교에 가면 꼭 가봐야지 했거든요. 전 '홍교'가 부산의 '광안대교'나 '구포다리'처럼 다리 이름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홍교(虹橋)다리 밑이 무지개처럼 반원형으로 쌓은 다리를 말하는 보통명사입니다. 홍예교·아치교·무지개다리라고도 한답니다.
 

3칸 무지개 다리, 벌교 홍교


벌교 홍교는 벌교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교량으로 길이 27m, 높이 3m, 폭은 4.5m.지금까지 남아 있는 홍교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아름다워 보물 제304호로 지정되어 있다네요.

다리에서 바라본 벌교천. 여기 어디쯤에 뗏목다리가 걸려있었겠지요.


원래는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이곳에 뗏목다리가 있었는데 걸핏하면 홍수가 나 다리가 떠내려가는 바람에 영조 4년(1728년)에 선암사의 조안선사가 보시로 홍교를 건립했답니다. 그뒤 1737년에 다리를 다시 고치면서 지금 모습처럼 3칸의 무지개 다리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1981년부터 1984년까지 보수공사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하네요.

왼쪽이 홍교이고 옆으로 새 다리가 이어져 있습니다. 돌의 색깔로 새 다리와 옛 다리가 확연히 구분됩니다.


벌교사람들은 홍교를 '횡개다리'라고도 부른답니다. 다리 끝에 '홍교'를 설명하는 표지판이 서있습니다.

벌교(筏橋)라는 지명은 다름 아닌 '뗏목다리'로서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보통명사이다. 보통명사가 고유명사로 바뀌어 지명이 된 것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지 않을까 한다. 그러므로 뗏목다리를 대신하고 있는 이 홍교는 벌교의 상징이다. 소설에서도 이 근원성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하고, 여러 사건을 통해서 그 구체성을 은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김범우는 홍교를 건너다가 중간쯤에서 멈추어 섰다. 그러니까 낙안벌을 보듬듯이 하고 있는 징광산이나 금산은 태백산맥이란 거대한 나무의 맨 끝가지에 붙어 있는 하나씩의 잎사귀인 셈이었다.(태백산맥 1권 257쪽)


다리 위를 걸어보았습니다. 새 다리가 이어져 꽤 깁니다.


홍예의 높이는 약 3m정도.


아치 부분의 돌만 색깔이 많이 다르지요. 누리끼리하고 이끼도 끼어 있구요. '물의 시간'이 아니라 '돌의 시간'입니다. 저 누런 돌에는 세월의 흔적이 담겨 있습니다. 
다리를 들여다보고 있으니 도대체 이 다리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궁금했습니다. 오로지 사람의 손으로 크고 무거운 돌을 깎고 운반하여 반원형으로 동그랗게 쌓아 올린 옛사람들의 기술이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구조는 부채꼴 모양의 석재를 맞춰 홍예를 만들고 네모나게 가공한 석재로 홍예 사이의 면석을 쌓았으며 그 위에 밖으로 튀어나오게 멍엣돌을 걸치고 난간석을 얹은 후 판석을 깔아 다리 바닥을 만들었다. 홍예를 제외하고 각 홍예 사이의 면석과 난간의 축조 방식은 여러 차례 중수하면서 원형이 많이 훼손되었다. 예전에 찍은 사진과 요즘 다리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 특히 면석 부분이 많이 달라진 것을 볼 수 있는데, 예전에는 지금처럼 반듯반듯하게 가공한 돌이 아니라 막돌이 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답사여행의 길잡이 전남 편, 340쪽


"그런데 다리 아래 삐죽 달려 있는 저게 뭐지?" 남편이 물었습니다.
3칸 홍예마다 저 요상한 물건이 달려 있었거든요. 
"흠. 무식하긴. 저건 동물모양이 새겨진 돌인데 다리를 만들때 끼워 넣어 잡귀가 얼씬 못하도록 하는 일종의 부적같은 거지." 저는 조금 으시대며 얘기해주었습니다. 여행 오기 전 책에서 읽었거든요.ㅋㅋ

좀 더 확대해서 찍은 사진입니다. 그래도 다리 밑이 어두워서 어떤 형상이 조각되어 있는지 잘 안보이네요.


홍예마다 아래쪽 가운데에 이무기돌이 박혀 물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처럼 다리 천장이나 멍엣돌 마구리 등에 동물이나 도깨비의 모양을 새겨 놓는 것은 재앙이나 잡귀를 물리친다는 의미를 지닌다. 옛날에는 벌교 홍교의 이무기돌 코끝에 풍경이 달려 있었다고 한다. -답사여행의 길잡이 전남 편, 340쪽 


다리 밑에는 오리떼가 한가롭게 놀구 있습니다. 다리 밑에는 바닷물이 드나드는데, 썰물 때에는 다리 밑바닥이 거의 드러나고, 밀물 때에는 다리 대부분이 물속에 잠긴다고 하네요. 벌교에 와도 홍교를 찾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태백산맥문학관은 북적였지만 다리에는 저희밖에 없었거든요. '벌교 사람들은 60년마다 한 번씩 이 다리에서 환갑잔치를 해주었는데 1959년에 6주갑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과거엔 이 다리가 사람들에게 참 소중한 다리였을겁니다. 2019년에 또 잔치가 열릴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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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 벌교홍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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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산지니북

남도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돌베개에서 나온 <답사여행의 길잡이 5-전남>을 가이드북 삼아, 벌교 강진 해남을 거쳐 그동안 가보고 싶었던 한반도의 남서쪽 끝 진도까지.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순천IC에서 내렸는데 갈대축제 때문인지 혼잡한 순천을 빠져나와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벌교. 조정래 소설 <태백산맥>과 꼬막으로 유명한 곳이지요. 벌교를 무대로 한 설경구, 나문희 주연의 영화 <열혈남아>도 인상깊게 본 기억이 납니다.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

문학관 건물 전면에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는 의미심장한 문구가 검은 대리석 위에 흰 글씨로 새겨져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서니 어른 키만한 태백산맥 전집이 사람들을 맞이합니다. 왠지 이 커다란 책 앞에서 사진을 찍어야 할 것 같아서 돌아가면서 포즈를 취하고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전시관은 1, 2층으로 나뉘어 있는데, 1층에는  소설가의 집필 원고부터 시작해서 작가 노트, 집필 누계표, 글을 쓸 때 사용한 필기구 등 갖가지 소품들, 초판본, 영화 포스터, 출간 당시 언론 기사 등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탄생사를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대하소설을 쓰는 것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중노동이다. 하루라도 마음이 해이해지면 그 긴 소설을 써낼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채찍을 가하듯 이런 집필 누계표를 만들어 놓고 매일 확인하고 점검한다.'

집필 누계표

집필누계표에는 날짜와 그날그날 집필한 매수가 적혀 있습니다. 위에 있는 숫자는 하루 집필량이고, 아래에 있는 숫자는 매일매일의 누계입니다. 소설을 쓰느라 아버지의 임종도 못지켰다고 하시네요. 그 심정이 어땠을지...  

이야기 전개에 필요한 것들을 적어둔 노트입니다. 상황이나 정경들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런 노트가 여러 권입니다.

때로는 이렇게 그림으로 묘사하기도 하구요. 마을 근처에 빨치산이 숨어지내던 은신처를 묘사한 것 같습니다.

어른 키만큼 쌓인 원고뭉치

집필 원고의 높이가 어른 키를 훌쩍 넘겼습니다.
이만치 방대한 분량을 써내기까지 필기구가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었겠지요. 

'태백산맥'을 써낸 만년필.


'처음엔 볼펜으로 썼으나, 볼펜은 오래 쓸수록 볼펜 잉크 찌꺼기가 지저분하게 묻어날 뿐만 아니라 볼펜대가 가늘어 손가락과 손목의 피로를 더했다. 만년필은 그 두 가지 문제를 거뜬히 해결해 주었다. 아무 탈 없이 그 많은 글씨들을 술술 만들어간 만년필의 노고가 컸다.'

인지

저자와 출판사 간에 책의 발행부수를 명확히 하기 위해 저자의 도장을 찍어 제본소에서 책마다 붙이는 것을 '인지'라고 합니다. 번거로우므로 요즘은 인지를 잘 붙이지 않지만, 옛날 책들을 보면 종종 붙어 있습니다. 도장 하나로 20만 번쯤 찍으면 닳아서 새 것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합니다.

200쇄까지 바꾼 36개의 도장



태백산맥이 외국어로도 번역된 걸 문학관에서 보고 알았습니다.

프랑스어판 '태백산맥'

일어판 '태백산맥'

7년 동안의 번역 작업 끝에 태백산맥 일본어판이 일본의 3대 출판사 중 하나인 슈에이샤에서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한번에 10권이 모두 나온 건 아니구요, 1999년 10월부터 총 8개월에 걸쳐 완간되었다구요.
'숄로호프나 솔제니친의 작품처럼 세계적으로 인정된 대하소설들은 일본에서 많이 번역되었지만, 한국의 대하소설을 완역하는 것은 '태백산맥'이 최초의 일이다.'-슈에이샤

등장인물의 목소리가 나오는 오디오 장치


헤드폰을 끼고 버튼을 누르면 등장인물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 중 소화, 염상구, 정하섭 등 주요 인물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용자가 너무 많아서인지 헤드폰의 스폰지가 너덜너덜 닳았습니다. 저도 들어봤는데 '소화'의 목소리는 더빙영화를 보는 것처럼 조금 생동감이 덜했지만, '염상구'의 질박한 남도사투리는 정말 생생했습니다. 사투리가 어찌나 리얼한지, 십몇년 전 <태백산맥>을 처음 읽을 때 '염상구'란 인물에게서 느꼈던 포악하고 무서운 느낌이  되살아났습니다.

옹석벽화 '백두대간의 염원'

전시관 한쪽 벽면은 유리로 되어 있어 밖에 있는 벽화와 하늘이 훤히 보입니다.


"<태백산맥>이랑 <아리랑><한강>을 쓰고 났을 때 독자들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게 공통적인 독후감이었어요. 작가의 큰 기쁨이지. 역사의 진실을 보여주려고 의도했던 건데 바람직한 결과로 나타났으니까요. 마흔에 시작해서 대하소설 3편 끝내고 나니 60이에요. 내 중년이 어디론가 증발한 듯 허무함도 있었지만 그래도 보람이 있었지요."

얼마 전 경향신문에 난 조정래 소설가의 인터뷰 기사 중 일부입니다. 중년에 시작해서 글 3편 쓰고 나니 노년이라는 말에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작가들은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짧은 블로그 글 한편 쓰면서도 이렇게 끙끙대고 있으니 말입니다.


태백산맥 세트 - 전10권 - 10점
조정래 지음/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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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 태백산맥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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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산지니북

얼마 전 조정래 소설가의 <황홀한 글감옥>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을 읽고는 태백산맥문학관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어졌습니다.
이번 남도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벌교에 들렀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7-8년 전에도 벌교에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그냥 소화다리 앞에서 사진 한 장만을 찍고 지나갔을 뿐이었지요. 태백산맥의 배경이 되는 곳이라서 와보긴 했지만 그땐 딱히 볼 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태백산맥문학관이 생기니 좋더군요. 볼 게 많아서 좋았습니다. 안에서 두세 시간은 후딱 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책에서 읽었던 내용대로 아들과 며느리가 필사했던 원고가 나란히 서 있었습니다. 그 옆엔 독자들이 필사한 원고입니다. 선생님의 아들과 며느리가 원고를 필사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태백산맥의 애독자들이 나도 필사해보겠노라고 나섰답니다. 맨 오른쪽에 서 있는 원고뭉치입니다. 독자들은 혼자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했기 때문에 원고지 색깔이 제각각입니다.
며느리는 임신중에 이 원고를 필사한 덕으로 이후 낳은 아들이 머리가 좋아졌나보다고 자랑했다는데,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그 정성만은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선생님께서 쓰신 원고도 옆에 전시되어 있었는데, 사진을 찍지는 못했습니다.

문학관에는 이 외에도 여러 가지 볼거리들이 많았습니다. 취재수첩부터 시작해서 벌교 인근을 직접 그린 지도라든가, 하도 대출을 많이 해가서 표지가 너덜너덜해진 도서관용 태백산맥 책들, 여러 신문 기사들 등등...
그 가운데 인상적인 것은 태백산맥 주인공들의 대사를 헤드폰을 끼면 그대로 들을 수 있게 만든 장치였는데, 염상구의 대사와 소화의 대사를 들어보았습니다. 염상구의 대사가 정말로 리얼했습니다. 전라도 사투리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2층에 올라가니 작은 도서실이 있었습니다. 관람객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인데요, 앉아서 책도 보고 쉬어가라는 의미인 것 같았습다. 생각보다 책들이 많았는데, 우리 산지니 책들도 보여서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태백산맥이 만화로도 나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초등학생 아들 녀석은 이 만화에 빠져서 시간 가는 줄 모르더군요. 앞부분을 조금 펼쳐 보았는데, 제가 봐도 재미있었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한 번 제대로 읽어보아야겠습니다.

벌교를 왔다 가는데 꼬막정식을 놓칠 순 없지요. 벌교 시장 입구에 있는 식당엘 갔습니다. 벌교 시장은 정말 꼬막 판이더군요. 그렇게 많은 꼬막은 처음 봤습니다. 이 사진 보니 또 배가 고파집니다.

Posted by 아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