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나마스테!] 시인 최영철·소설가 조명숙 부부

낙동강변 도요마을에 가랑비가 내렸다. 삼랑진역에 내렸을 때부터 비는 그치지 않았다. 시인 최영철과 소설가 조명숙 부부가 역까지 마중을 나왔다. 택시를 타고 들어가겠다고 만류했는데 굳이 도요마을에서 차를 끌고 나왔다. 이들은 5년 전 부산을 떠나 김해시 생림면 도요마을로 이주해 살고 있다. 도요마을에 도자기 굽는 가마나 도요새 군락지 같은 건 없다. 천태산과 무척산을 끼고 흐르는 낙동강 옆 평범한 농촌 마을이다. 삼한시대부터 주요 마을이라 하여 도읍 도(都)자에 중요하다는 맥락의 요(要)자가 붙어 도요마을로 명명된 것인데, 시적인 마을 이름처럼 풍광도 아름다운 건 사실이다. 이윤택 시인이 대표로 있는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창작스튜디오가 있고 그들의 주거지까지 자리 잡은 연극촌으로도 호가 높은 마을이다. 이윤택과 형제처럼 살아온 최영철 시인도 이 연극집단이 2009년 이곳에 자리 잡을 때 부산의 집을 내놓고 들어왔다.

경남 김해 도요마을 옆 낙동강에 선 시인 최영철, 소설가 조명숙 부부. 이들은 5년 전 부산을 떠나 도요마을로 들어와 변방에서 중심을 누리고 있다.

“도시 변두리에서만 살면서 그곳을 무대로 시를 캐낸 터라 이제 환경을 바꾸면 좋겠다 싶었어요. 저로서는 중심에서 조금 벗어나 별 볼일 없는 변방에서 새로 시작해보고 싶었던 거지요. 그 즈음 아버님도 돌아가시고 맥이 빠져 있던 때라 이윤택 선생의 제안을 두 번 생각 안 하고 바로 받아들였습니다.”

최영철(59) 시인은 198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중견시인으로 활약하면서 부산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각광받아온 인물이다. 올해는 부산에서 12년째 진행해온 책읽기운동 ‘원북원부산’의 책으로 그가 작년에 출간한 시집 ‘금정산을 보냈다’(산지니)가 뽑혀 명실상부한 부산의 상징 문인이 되었다. 전문가집단이 5권까지 후보를 압축해놓은 뒤 이를 온오프라인을 통해 부산시민들이 투표로 한 권을 선정하는 방식인데, 부산 출신 문인이 그것도 시인이 시집으로는 처음으로 1만3000여 표를 얻어 뽑힌 경우여서 의미가 각별하다. 이 시집을 놓고 올 10월까지 다양한 독서 프로그램이 이어질 예정인데 지자체에서 인문의 향연을 벌이는 돋보이는 모범적 사례로 평가할 만하다. 

“처음에는 진저리를 쳤어요. 성장기에 촌에서 자란 데다 바로 건너 마을이 친정 동네여서 한 다리만 건너면 전부 아는 사람인 처지라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을까 걱정한 거지요. 게다가 소설을 쓰는 공간이 저에게는 중요한데 이곳은 너무 평화로워서 오히려 집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여건이었어요. 처음 1년은 두 집 살림을 하다가 이곳에 정착했는데 지금은 중심에 있다고 착각하는 도시 사람들이 오히려 불쌍하게 여겨집니다.”

소설가 조명숙(57)은 1996년 진주신문 가을문예와 2001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해 장편과 소설집을 펴낸 중견작가다. 이달 초에는 네 번째 소설집 ‘조금씩 도둑’(산지니)을 펴내 건재를 과시했다(세계일보 4월17일자 참조). 개인이 안고 있는 작은 상처들의 내력을 핍진하게 되짚어온 조씨가 남편 최영철을 만난 건 1970년대 후반이었다. 부산에서 발행되는 동인지에 시를 발표했는데 이 작품을 보고 역시 문학청년이었던 최영철이 물어물어 그네를 김해까지 찾아간 것이다. 그들은 편지를 주고받고 당시만 해도 버스를 여러번 갈아타야 했던 김해와 부산을 번질나게 오가며 연애를 했던 것인데, 이를 안 양가 집안은 서로의 교제를 극렬하게 반대했던 모양이다. 이제 갓 스물 한두 살인 어린 사람들인 데다, 조명숙은 세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했고 최영철 또한 중학교 때 사고를 당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 처지였다. 이들의 사랑을 부모들은 불장난으로 치부했다.

이 ‘대책 없는’ 문학청년들은 먼저 ‘사고’부터 치고 결혼을 밀어붙였다. 혼전 임신과 출산을 거쳐 첫딸이 기어다닐 무렵 결혼식을 올렸다. 가난과 박대의 터널 속에서 이들의 결혼 생활은 시작됐다. 최영철 시인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잠시 서울에서 출판사 편집장 생활도 했지만 끝내 도시적 삶에 길들여지지 못한 그이는 가족들을 설득해 부산 변두리로 내려와 1990년대 중반 이후 전업시인으로 살아왔다. 전업작가 아내와 전업시인 남편이 꾸려온 생활의 가난이야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이들은 밝고 따스하게 아이들을 키웠고 두 자녀는 보란 듯이 서울과 부산의 국립대를 나와 딸은 박사과정에, 아들은 지금은 번듯한 직장에 다니고 있다. 6년 전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100여 곳에 취업 원서를 냈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하더니 어렵게 요르단 근무를 전제로 취직해서 떠나게 됐다. 이때 시인 아비는 아들을 멀리 보내는 아픔을 담아 ‘금정산을 보냈다’를 썼다. 부산의 상징적인 금정산을 아들에게 통째로 선물한 것이다. 아들은 무사히 돌아왔고 부산 시민들은 시인이 새로 쌓은 금정산을 따스하게 안아준 셈이다. 문인 부부로 사는 건 어떤 의미일까.

“서로 격려할 것 같지만 반대예요. 피차 아는 처지에 글 때문에 괴로워하는 건 어차피 겪기로 한 이상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지요. 상대방의 작품에 대해서는 날 선 감시자 역할을 하는 편입니다. 남보다 더 인정사정없이 비판해요. 이런 게 외려 좋았던 것 같아요. 제가 균형감각을 잃지 않도록 남편이 스승 역할을 한 건 확실합니다.”

낙동강에서 사진을 찍고 도요마을 흰 집으로 들어와 식탁을 마주 보고 앉았을 때 소설가 아내 조명숙은 시인 남편과 사는 소회를 말했다. 사실 시는 조명숙이 먼저 문청 시절 시작했지만 남편에게 ‘양보’를 한 셈이다. 결혼해서 양육하느라 10여년을 글쓰기와 멀어져 있다가 소설로 다시 문학을 경작해왔다. 최 시인은 “지금이라도 내가 시를 포기하고 산문을 쓸 테니 시로 돌아가라”고 농을 건네자 아내는 “이젠 솔직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시도 많고 소설이 더 낫다”고 받아쳤다. 최영철은 “나는 눈물이 더 잦아졌다. 망치를 들고 세상을 깨부수고 싶은 날이 있다. 시는 더 절박하고 절실해야 할 것이다”고 시집 후기 대담에서 언급했거니와 “세상은 미궁 속으로 추락하는데 다른 소리만 하는 시가 너무 많아져 걱정된다”면서 “시로 이야기할 때 무엇이 더 중요한지 인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명숙도 “시와 소설의 역할이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동시대를 반영하는 소설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시인 남편과 문학을 대하는 기본 자세가 같음을 확인했다. 

조명숙은 부산 여성소설가들 중에서 맏언니 격에 속한다. 부산에는 등단 작가만 80여명,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들도 반이 넘는다. 그네는 인터넷과 교통수단이 발달한 이즈음에 중앙과 지방문단의 구별은 더 이상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도시에 있는 이들은 자신들이 중심에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 같다고, 비켜서보니 그런 모습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고 시인 남편이 옆에서 덧붙였다. 특히 상부, 하부 조직으로 체계화된 문인단체의 구성 때문에 중앙, 지방이 구분될 따름인데 이제 이런 단체들도 해산될 때가 됐다고 그는 강조했다. 사실 작금의 문학 환경은 어디에 머무느냐보다 ‘의식’이 더 큰 요인일 수 있다. 끊임없이 변방으로 내려가 자신을 낮추어 중심을 제대로 관찰하고 반성하는 자세야말로 문학의 기본 덕목 중 하나일 것이다. 

나오는 길, 도요마을 하얀 집 대문 문패에 아내가 심었다는 인동초 덩굴이 드리워져 있다. 35년 넘게 서로 마음의 다리가 되어 문학이라는 지팡이를 짚고 애틋하게 낮은 변방까지 걸어온 이들 부부의 이름 위로 곧 아름다운 ‘금은화’(金銀花)가 피어날 절기다.

조용호ㅣ세계일보ㅣ2015-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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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도둑 - 10점
조명숙 지음/산지니


금정산을 보냈다 - 10점
최영철 지음/산지니


댄싱 맘 - 10점
조명숙 지음/산지니

어중씨 이야기 - 10점
최영철 지음, 이가영 그림/산지니


동백꽃, 붉고 시린 눈물 - 10점
최영철 지음, 박경효 그림/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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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권디자이너 2015.04.30 14: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두 분 포즈가 참 고전적이네요.(두 번째 사진)
    사진 찍을 때 꽤 어색하셨을 듯.^^

조명숙 소설집


조금씩 도둑






상처 입은 여성들의 마음을 살피는 공감의 태도

2012년 소설집 『댄싱 맘』 이후 3년 만에 중견소설가 조명숙이 네 번째 소설집을 출간했다. 어둠을 식별하는 감각적 문체와 정주하지 않고 유목하는 글쓰기 행보를 보였던 그가, 이번 소설집에서는 상처 입은 여성들의 세심한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들로 돌아왔다. 특히 『조금씩 도둑』에서는 ‘세월호 사건’을 소재로 한 최근작 「점심의 종류」가 수록되어 있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우리 사회와 현대인의 상실감을 엿볼 수 있다. 소설에 나타나는 다양한 소품들인 가정과 국가 폭력, 친구와 연인, 그리고 예술 안에서 조명숙 소설 속 인물들의 어두운 삶의 파편이 조각조각 드러난다.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 속, 우물물 길어올리듯 상처의 흔적들을 포근하게 감싸 안아주는 듯한 태도가 엿보이는 작품집 『조금씩 도둑』에서 독자들은 작가 조명숙이 들려주는 생의 기쁨과 슬픔들을 마주하며 따스한 위로를 받게 될 것이다.



어떤 허구보다도 더 극적인 현실,

일상에 잠복해 있는 현실의 그 ‘리얼’한 재생

글은 기교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혼신으로부터 만들어진다는 것, 아마도 이 작가는 그렇게 굳게 믿고 있을 것이다. _전성욱(문학평론가)

「작가의 말」에서 “소설이란 것이 어느 시점에 착상해서 언제 썼는지는 중요하지 않지만, (…) 2005년의 사건과 5개월이 되기 전에 써 버린 2014년의 사건이 뒤섞여 있다.”라고 밝힌 것처럼 이번 작품집에서는 실로 다양한 시대적 배경과 서사를 이끌고 있는 여럿 인물들이 나온다. 2014년 세월호 사건이 있고 나서 10년 이후의 유가족의 슬픔을 재현한 「점심의 종류」에서부터, 2008년 당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앞두고 촛불시위를 벌이는 애인을 찾는 여자의 우울한 일상을 그린 「거기 없는 당신」, 2005년 APEC정상회의를 둘러싼 어떤 사회적 기미를 ‘가가’의 하루를 통해 풀어낸 「가가의 토요일」까지 조명숙 소설이 갖고 있는 시대의 스펙트럼은 꽤 넓은 편이다. 소설이 현재를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할 때, 현대사회의 병리를 짚는 것도 소설이어야 할 것이다. 그 점이 더욱 잘 드러나는 소설은 수록작 「하하네이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작가 지망생 ‘유’의 일상을 통해 우리 삶의 부조리와 글쓰기의 문제의식을 잘 드러내고 있다. ‘유’는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서 ‘사물과 사람과 시간 같은 것’에 예민하려 했지만 결국 그가 거주하는 오피스텔인 ‘하하네이션’ 내에 있는 현실의 비극에 둔감했던 자신을 뒤돌아보고 “장차 작가가 되려고 했지만, 결코 작가가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떤 소설이 현실보다 리얼하겠어?”라고 되묻는다. 




딸을 잃은 세월호 그 사건 이후, 십 년

“우리가 뭘 인생이란 걸 살았다고. 그런 거 없었다.”

지금 여기 있지만 십 년 전의 그것이 아닌 리모컨, 지금 여기 있지만 십 년 전의 그 사람이 아닌 영애, 지금 여기 있지만 십 년 전의 영미가 아닌 영미, 매일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는 유미. 그렇기 때문에 영애는 살아 있어야 했다. 내 속에서도 점점 희미해지는 유미를 누가 기억해 줄까? 질문을 담은 눈으로 영미를 본다. 영미에게 유미가 겹쳐진다. 잠 어린 눈을 비비며 식탁에 앉던 유미, 책가방을 메고 팔짝팔짝 뛰어서 목에 매달리던 유미, 젖은 머리카락으로 물을 뿌리며 환히 웃던 유미…가 영미처럼 있다. _「점심의 종류」 중에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의 그 통탄할 사건은 이제 사건이 발생한 지 1주기가 된다. 끝나지 않은 유족의 아픔과 보상금 논란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세월호 문제는, 인양을 해서라도 남은 실종자를 찾기 위해 끝까지 노력해달라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의 공식 요청과 더불어 진상규명을 요청하는 국민여론을 통해 세월호 인양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이 발표된 시점이다. 조명숙의 단편 「점심의 종류」은 사건 이후 십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세월호 사건으로 딸을 잃은 그 상실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엄마 ‘영애’의 삶을 다루고 있다. 소설은 기억과 회상의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병치하며 서술되는데, ‘영애’는 6·25 전쟁으로 평화롭던 가족의 균열을 보이는 영화 속에서 자신의 삶을 발견하며 다시금 고통을 받고 영화라는 ‘환상’ 속에서도 도피할 수 없음을 발견한다. 결국 ‘영애’의 동생 ‘영미’마저 이민을 떠나고, 대한민국의 지독한 현실 속에서 유가족들이 슬픔을 위로받고 구원을 받기란 불가능함을 역설하고 있는 소설이다.



끝내 어른이 되지 못한 채

조금씩, 아주 조금씩 훔쳐낸 네 마음

서른두셋쯤의 나이, 띠띠와 피융이 지나온 나이의 그들이 거기 있었다. 워커를 신은 피융이 손을 내밀었고, 스카프를 두른 띠띠가 그 손을 잡았다. 탁자 아래서 그들의 무릎이 어깨처럼 조심스럽게 부딪쳤다.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온몸에 퍼지는 것을 띠띠는 분명히 느꼈다.

“피융과 나도 저렇게 앉아 있었어.”

서늘하고 메마른 혼잣말이 피융이라는 이름이 뚫어 놓은 구멍을 빠져나갔다. 잔영만 남은 여러 순간들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분명 저런 때가 있었다. 한 번이었는지 두 번이었는지, 세 번이었는지 네 번이었는지…. 조바심을 내며 기다리다 마침내 피융이 오면 띠띠는 달려가 얼싸안았다. 손을 잡고 그 눈을 들여다보았다. 피융의 눈은 얼마나 까맣고 초롱했던지. 띠띠는 재생하고 싶은 그 순간을 붙잡으려 애썼다. _「조금씩 도둑」 중에서

열여섯 무렵, 용희, 선경, 영미 대신에 피융, 바바, 띠띠라는 이름으로 우정을 다짐하던 세 소녀가 마흔을 전후로 한 나이가 되기까지의 상처 입은 마음과 서로를 향한 위로를 담고 있는 표제작 「조금씩 도둑」은 과장된 시선이 아닌 담담한 문체로 그들의 이야기를 조근조근 풀어냈다. 꿈 많던 청년기를 보내고 중절수술에 후유증까지 서로의 고단한 삶을 알고 있는 셋의 우정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렇기에 더욱 빛이 난다. 더욱이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결국 친구였던 ‘피융’에게 조금씩 마음을 주고 만 ‘띠띠’의 마음이 애달프다. 남들과 다른 “자신의 취향을 거부할 것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수긍하기로” 하면서 띠띠는 끝내 어른이 되지 못한 채 성장하지 않은 여자로 버텨냈다. 자궁을 축출한 여자가 매번 해바라기 씨를 주문하며 오지 않는 택배기사를 기다리는 이야기 「사월」과, 남자의 충격적인 죽음을 이겨나가며 고통스러운 삶을 견디는 여자의 이야기가 담긴 「나비의 저녁」 또한 상실을 겪은 여성의 삶과, 상실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살아나가야 하는 생의 고단함을 그리고 있는 소설들이다. 



환상의 기록으로서의 소설

“이 모두는 사실이 아니다.”

달리는 아버지와 함께 그 집에서 옴짝도 하지 않은 채로 여섯 달에서 두 달을 더 산 막내는 숨을 거두기 사흘 전 병원에 옮겨졌다. 막내가 숨을 거두던 날에도, 세 오빠들이 침울함을 가누지 못한 채로 화장장에 다녀오던 날에도 아버지는 새벽을 달렸다. 아버지의 달리기는 막내가 죽은 뒤 몇 해가 지나도록 계속되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아니, 이 모두는 사실이 아니다. 막내가 폐암이라는 말을 꺼낸 날 갑작스럽게 달리기 시작한 아버지는 집에서 두 블록 지난 파출소에서 발견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식들의 희망사항이었을 뿐, 그렇게 달려 나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막내가 한사코 병원을 마다하고 집에서 비명을 삼킨 것도 그날 밤 그렇게 달려 나간 아버지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아니다. 아버지는 아직 달리고… 있다. _「러닝 맨」 중에서

특유의 감수성으로 환상적인 이야기를 펼치고 있는 조명숙의 소설은 「이치로와 한나절」과 「러닝 맨」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간결하고도 속도감 있는 문체에 덧붙여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모호성이 긴 여운을 남기고 있다. 작가는 사건의 장면들을 독자에게 묘사한 뒤, 이를 일종의 환상으로 만들어버리는 기발함을 보인다. 자기를 버려두고 떠나버린 엄마와, 자살을 해버린 친구 청수, 그리고 눈과 귀와 기억이 희미해져가는 할아버지를 생각해내는 ‘나’의 삶은 비참하기 그지없다. 그런 주인공에게 나타난 원숭이와 보낸 한나절의 기록을 조명숙은 소설 속에 담았다. 소설 속에 나온 원숭이는 환각이나 환상일 테지만 결국 엄마와 청수와 할아버지를 생각하는 갸륵한 ‘나’의 마음이 담긴 ‘일상’의 한 부분일 것이다. 가족사의 곡절과 함께 배다른 막내 여동생의 죽음을 그려낸 「러닝 맨」 또한, 자식의 환상 속에서 달리는 아버지의 서사이다. 이처럼 작가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놓은 불가능한 환상의 서사들 속에서, 독자는 조명숙 소설이 드러내는 삶의 보편적 진실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를 발견할 것이다.


조금씩 도둑 

조명숙 소설집

조명숙 지음 | 문학 | 국판 변형 | 244쪽 | 13,000원

2015년 4월 6일 출간 | ISBN : 978-89-6545-286-7 03810

2012년 소설집 <댄싱 맘> 이후 3년 만에 소설가 조명숙이 네 번째 소설집을 출간했다. 어둠을 식별하는 감각적 문체와 정주하지 않고 유목하는 글쓰기 행보를 보였던 그가, 이번 소설집에서는 상처 입은 여성들의 세심한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들로 돌아왔다. 특히 세월호 사건을 소재로 한 '점심의 종류'가 수록되어 있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우리 사회와 현대인의 상실감을 엿볼 수 있다.




글쓴이 : 조명숙

1958년 김해에서 태어나 부산대학교 국어국문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1996년 『진주가을문예』와 2001년 『문학사상』을 통해 문단에 나왔다. 창작집 『헬로우 할로윈』, 『나의 얄미운 발렌타인』, 『댄싱 맘』(2012 향파문학상 수상)과 장편소설 『바보 이랑』, 『농담이 사는 집』 등을 썼다. 2006년 장편동화 「누가 그랬지?」로 14회 MBC창작동화대상을 받았으며, 그림동화책 『샘바리 악바리』, 『아기뱀 꼬물이』를 냈다. 그 외에 산문집 『우리 동네 좀머씨』가 있고, 아내들을 위한 연시집 『하늘 연인』을 엮었다.


차례



조금씩 도둑 - 10점
조명숙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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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지나가는 온수 2015.04.10 14: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보고 싶은 조명숙 선생님! 책 사볼게요:-) 제목과 표지 너무 잘 어울려요

  2. BlogIcon 지나가는 온수 2015.04.10 14: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보고 싶은 조명숙 선생님! 책 사볼게요:-) 제목과 표지 너무 잘 어울려요




국 도서관 협회에서 매분기 발간되는 국내 신간 문학도서를 대상으로 엄선된 우수문학도서를 마을문고, 어린이도서관, 사회복지시설, 작은도서관, 아동청소년센터, 대안학교, 교정시설, 고아원 등에 무료로 보내주는 정부 사업인 문학나눔.


이번 문학나눔 사업의 소설부문에 조명숙 선생님의 『댄싱 맘』이 선정되었습니다.

그림을 보러 다니기 시작하면서 만남 감동과 감흥을 시작으로 '소설로 그림 읽기'라는 새로운 형식의 단편을 그려낸 조명숙 선생님의 소설집이 이주홍 문학상 수상에 이어 문학나눔 선정이라는 쾌거(?)를 이루어 좋은일이 계속 일어나네요^^.

문학나눔 소설부문 심의위원은 구효서, 강영숙, 전성태 소설가와 안인자 동원대 교수(시민평가단)이 참여한 가운데 총 14종의 소설이 선정되었습니다.

강영숙 소설가는 『댄싱 맘』 작품을 두고 "소설 속 주인공들의 현재적 시간은 이런저런 이유로 해서 깨져 있고, 몸은 죽었고, 마음은 불행하지만 그들의 불행은 이상하게도 자꾸만 어디선가 끌어당기는 희미하지만 끈질긴 끈에 의해 견딜 만한 것이 된다. 그것은 모두가 과거의 꿈, 공동체에 대한 희미한 기억인지도 모르는데, 그 희미함 한쪽에 프리다 칼로의 그림 [버스]의 승객들을 배치해놓고 보면 독서의 즐거움이 배가되는 것 같아서 매우 즐겁다"라고 평했습니다.

바로 이 그림을 두고 하는 말이겠죠?


프리다 칼로, bus


 저또한,「거꾸로 가는 버스」 속의 내용과 묘하게 밀접되어 있는 이 그림을 찾아보며 다시 소설을 읽다가 처음 소설을 읽었을 때와 또다른 감흥을 느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그런데 말야, 참 이상했어.”
그녀의 뼈를 강물에 뿌리고 돌아오는 장의차 안에서 그녀의 첫 번째 자식이 나란히 앉은 순규에게 말했다.
“뒤주 속에 엄마가 앉아 있는데, 하나도 무섭지 않았어. 팔꿈치를 겨드랑이에 착 붙이고 상체를 구부려 입으로 뭘 집으려는 자세였는데, 그게 꼭 새 같았다니까.”
그녀의 첫 번째 자식은 그녀의 자세를 잘 보여줘야 되겠다는 듯이 두 팔꿈치를 겨드랑이에 착 붙이고 상체를 구부린 다음 입을 쑥 내밀었다.
그 자세가 어느 날 꿈에 보았던 그 날개 접은 새 같다고, 순규는 콧물이 멈추지 않는 그녀의 세 번째 자식을 돌아보면서 생각했다.(「댄싱맘」에서)

그때 영주의 어깨는 참 자주 빠졌다. 길을 가다가도 문득, 체조를 하다가도 문득. 어깨가 빠지면 영주는 재빨리 그것을 끼워 넣었다. 남들에게는 없는 자신만의 특징을 강조하려는 듯, 혹은 엄숙한 의식을 거행하기라도 하듯, 허옇게 눈을 까뒤집고 고개를 외로 꼬면서 말이다. 흰자위만 남은 눈으로 허공을 보면서 어깨를 고치는 그 광경은 몹시 불쾌하고 난처했다.(「어깨의 발견」에서)


문학나눔에 선정된 『댄싱 맘』은 오는 8월 말부터 전국 각지의 도서보급처로 보급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성인이 된 지금에서야 책을 한달에 몇권씩 꼬박 구입하여 읽곤 하지만, 어렸을때 책을 접하는 유일한 창구는 도서관이었습니다.

학교도서관이었기도 하고 마을도서관이었던 그곳에서 만난 수많은 책들이 지금의 나를 이룬 밑거름이 되었다고 아직도 생각하곤 하는데요.

이번 문학나눔사업으로 인해 문학을 접하기 힘든 문화소외지역에 위치한 많은 이들이 『댄싱 맘』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길 기대해 봅니다.


문학나눔 공지사항 바로가기>>

http://www.for-munhak.or.kr/idx.html?Qy=notice&nid=313


댄싱맘 관련 포스팅>>

2012/06/09 조명숙 작가『댄싱 맘』, 이주홍문학상 수상

2012/05/11 축하합니다. 조명숙 소설가 『댄싱 맘』, 향파 이주홍 문학상 수상!

2012/05/02 <34회 저자와의 만남> 조명숙 선생님의 댄싱맘

2012/03/23 너무 환한 세상은 잊어요, 엄마 『댄싱 맘』


댄싱 맘 - 10점
조명숙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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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복라면 2012.07.30 16: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림까지 구해 링크해주시는 엘편집자의 센스! 상을 타서 너무 좋지만 어쩐지 상복은 일복과 비례하는 것 같아요

  2. BlogIcon 동글동글봄 2012.07.31 09: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깨으 발견, 저도 너무 공감가요^^

  3. 박형준 2012.07.31 15: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축하드립니닷!^^

  4. BlogIcon 라몽. 2012.08.01 08: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산지니 만세!

▲5월의 끝자락, 조명숙 작가에게 기분 좋은 일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산지니가 이주홍문학관을 찾았습니다.

 

지난달 25일, '제32회 이주홍문학상 시상식'이 동래구에 위치한 이주홍문학관 내 향파문학당에서 열렸습니다.

저녁 6시 30분부터 진행된 시상식에는 수상자들을 축하하기 위한 사람들도 북적였습니다. 저희 산지니도 일반문학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조명숙 작가님을 축하하러 그 현장을 찾았습니다.

본격적인 시상에 앞서 류종렬 이주홍문학재단 이사장은 "수상자 선정을 위해 애써주신 심사위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함과 동시에 수상자분들에게도 진심으로 축하의 말씀을 전합니다" 라며 본격적인 시상식의 포문을 열었습니다.

이주홍문학상은 총 세 부문으로, 아동문학부문에는 박지현 동시인(『아이들이 떠난 교실 안 풍경』), 일반문학 부문에는 조명숙 소설가(『댄싱 맘』), 문학연구 부문으로는 조명기 교수(『이주홍 소설에 나타난 부산의 공간 위상』)가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환한 미소가 아름다운 조명숙 작가의 기쁨의 순간을 담아봤습니다. (왼쪽부터 류종렬 이사, 조명숙 작가)


이상 세 명의 수상자가 차례로 수상을 한 뒤 시상식 내내 쑥스러운 표정을 짓던 조명숙 작가는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책이 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에 이렇게 상을 받게 되어 놀랍고 기쁩니다."라며 수상에 대한 감회를 전했습니다.

▲축하공연으로 진행된 가야금 연주의 한 장면입니다.

 

또한 시상식 말미에는 축하공연으로 사랑가 등 우리의 가락을 선보인 가야금 연주가 이어져 시상식을 찾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모든 식이 끝난 후 만난 조명숙 작가님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온화한 미소로 저희 산지니를 맞아주셨습니다. 간단한 축하 인사를 드리고 기념촬영과 식사를 끝으로 일정은 마무리되었습니다.

▲수상자들과 함께 수상자들을 축하하기 위해 자리한 모든 이가 함께 모여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뒤줄에는 산지니 대표님도 보이네요.)

 

*『댄싱 맘』에 대한 심사평

-몸과 마음이 망가진 채 주변부로 밀려난 인물을 즐겨 다루고, 낮고 어두운 곳에 있는 존재의 상처를 보듬어 온 조명숙 작가는 이번 수상작 『댄싱 맘』에서 역시 상처를 주목하며 기왕의 문학적 경향과 일관된 연속성을 보여주었다.

주변부 인간의 상처를 보듬고, 서사의 영역을 확장하면서 새로운 문체로 고도의 상징성을 확보한 점에서 문학성을 중시하는 이주홍문학상의 취지에 부합하는 바 『댄싱 맘』을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 『댄싱 맘』은?

-2001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래 장편소설 『농담이 사는 집』, 『바보 이랑』을 비롯해 소설집 『헬로우 할로윈』과 『나의 얄미운 발렌타인』 등을 집필한 중견작가 조명숙의 신작 소설집. 변화를 시도함에 있어 늘 주저함이 없는 소설가 조명숙은 이 책에서도 ‘소설로 그림 읽기’라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그림을 보고 느낀 감흥을 소설로 표현한 것인데, 프리다 칼로의 <버스> 등 7점의 그림에 7편의 소설작품이 조우하는 형식이다.「어깨의 발견」, 「거꾸로 가는 버스」, 「댄싱 맘」, 「바람꽃」, 「나쁜 취미」, 「까마득」, 「비비」 등 총 7편을 수록했다.

 

댄싱 맘 - 10점
조명숙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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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박변덕 2012.06.11 10: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가고싶었는데 ^^ 자세한 리뷰 감사합니다.



2012년 4월 <저자와의 만남>은 조명숙 소설가와 함께 합니다.


『댄싱 맘』으로 다시 독자를 찾아온 조명숙 소설가는 이번 소설에서 "소설로 그림 읽기라는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었습니다. "결코 투명해지지 않는 생의 진리와 바투 한판 붙는 도전"을 끝낸 조명숙 소설가의 소감을 이번 행사에서 들어보고자 합니다. 어둠, 절말, 불행의 자리에 한 번이라도 자신의 돌을 놓아본 적이 있는 분들의 많은 참석 바랍니다.


2012년 4월 26일 목요일 저녁 7시

백년어서원



》『댄싱 맘』책 소개

2012/03/23 너무 환한 세상은 잊어요, 엄마 『댄싱 맘』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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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코 투명해지지 않는 생의 진리와 바투 한판 붙는 도전.
                                                                          
"
단지 이것만이 '조명숙스러운' 것이며, 내가 아는 한 조명숙은 이 만만치 않은 조명숙스러움의 수행을 포기한 적이 없다. 이번 소설집 『댄싱 맘』역시 이 조명숙스러움 가운데 있으며, 늘 그래왔듯이 예의 별스러운 시도를 하고 있다. 소설로 그림을 독해하는 것이다.

-김경연(문학평론가) 
  




▶ 조명숙 소설집 『댄싱 맘』 출간 

2001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래 장편소설 『농담이 사는 집』, 『바보 이랑』을 비롯해 소설집 『헬로우 할로윈』과 『나의 얄미운 발렌타인』 등을 집필한 중견작가 조명숙의 신작 소설집. 변화를 시도함에 있어 늘 주저함이 없는 소설가 조명숙은 이 책에서도 ‘소설로 그림 읽기’라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그림을 보고 느낀 감흥을 소설로 표현한 것인데, 프리다 칼로의 <버스> 등 7점의 그림에 7편의 소설작품이 조우하는 형식이다.「어깨의 발견」, 「거꾸로 가는 버스」, 「댄싱 맘」, 「바람꽃」, 「나쁜 취미」, 「까마득」, 「비비」 등 총 7편을 수록했다.






▶ 소설로 그림 읽기

저자는 그림을 보러 다니기 시작하면서 만난 감동과 감흥을 마냥 버려두고 싶지 않다는 욕심에 이끌려 ‘소설로 그림 읽기’라는 새로운 형식을 시도했다고 한다. 화가나 소설가나 근본적으로 창작자라는 원칙에 동의한다면, 매순간 항하사처럼 많은 일이 일어나는 생활세계에서 마주친 딱 하나의 장면, 그 단면을 통해 삶의 전체적 풍경을 포착한다는 점에서 그리기와 쓰기는 접점을 가진다고 믿고 시작한 일이었다. 소설에 참조한 그림은 모두 여성 화가의 작품으로, 파울라 모더존 베커(Paula M. Becker)의 <자작나무 숲에서 고양이를 안고 있는 소녀>, 프리다 칼로(Frida Kahlo)의 <버스>, 김원숙의 <Dance On a Bridge>, 추지영의 <바람꽃>, 가브리엘레 뮌터(Gabriele Munter)의 <Black Mask with Rose>, 노은님의 <새>, 황주리의 <추억제> 등이다. 그림의 모티브와 이미지를 참조하기도 하고(「거꾸로 가는 버스」,「바람꽃」,「댄싱 맘」,「어깨의 발견」,「비비」), 소설적 장치가 끝난 다음에 맞춤한 그림을 물색해 주제와 대치시키면서 쓰기도 했다(「까마득」,「나쁜 취미」)고 한다.

 



▶ 어둠을 식별하는 동시대성의 감각

조명숙은 어둠을 식별하는 데 유독 민감한 작가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집과 직장과 국가, 가족과 동료로부터 떨어져 나온 ‘탈구된 인간들’의 벌거벗은 삶을 응시하며, 잊히고 찢겨나간 이들의 잔해 같은 서사를 복원하는 데 진력한다. 예를 들면, 표제작이기도 한 「댄싱 맘」에서는 기억을 잃어가는 한 노인의 실종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로 성장의 신화에 붙들린 문명독재의 현실을 응시하고, 「어깨의 발견」에서는 알바와 비정규직으로 겨우 생존하는, 아이도 어른도 아닌 스무 살 문턱의 인간들에게 주목한다. 그러나 스물여섯 두 여자의 죽음 결행기라 할 수 있는 「나쁜 취미」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듯이, 조명숙의 소설은 여릿한 가운데서도 언제나 희망의 기미를 품고 있으며, 절망이 때로 죽음에 이를 만큼 치명적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언제나 삶을 향한 열망을 내장한다.




 1. 어깨의 발견

 

파울라 모더존 베커(Paula M. Becker)의

<자작나무 숲에서 고양이를 안고 있는 소녀>

 

여대생 케리의 부름을 받고 모여든 고등학교 동창들이 친구 영주를 기억한다. 대학을 포기하고 학교생활에 흥미가 없던 그들에게 보육원 출신의 겁 많고 소심한 영주는 바로 표적이 되었다. 장님 아버지에 정신지체 어머니를 둔 영주는 그들이 시키는 대로 앵벌이, 도둑질 등도 서슴지 않았는데, 그때 영주의 어깨는 참 잘도 빠지곤 했다. 탈구된 영주의 어깨는 세상으로부터 탈락한 비인간의 표지이다.






2. 거꾸로 가는 버스
 

프리다 칼로(Frida Kahlo)의 <버스>


스무 살 무렵 만났던 친구들은 십여 년이 지나 친구 에이의 갑작스러운 부고를 받고 재회한다. 친구들에게 무한한 영감을 주었던 에이는 사고로 휠체어를 타는 신세가 되고, 두 번의 결혼을 거쳐 삶을 마감하게 된다. 삶에 지친 서른셋의 나이로 만난 친구들에게 에이의 부고는 망각했던/하고자 했던 에이에 관한, 혹은 일찌감치 탕진한 그들의 젊음에 관한 기억을 느닷없이 소환한다. 

 



3. 댄싱 맘
 

김원숙의 <Dance On a Bridge>


표제작이기도 한 「댄싱 맘」은 기억을 잃어가는 한 노인(엄마)의 실종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대한민국의 보편적인 할머니 세대이며, 네 명의 자식을 둔 엄마는 지나가는 말 한마디도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성격 탓에 자식들과도 소원해져 외롭게 늙어간다. 어느 날 그녀의 네 번째 자식이 엄마의 전화를 받고 집을 찾아가지만, 집에 있어야 할 그녀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석 달 후 그 집에서 주검으로 발견된다. 




4. 바람꽃

추지영의 <바람꽃>


군인에서 고등학교 교련선생으로 다시 실업자로 전전해가며 남루한 퇴역군인의 생을 살았던 아버지의 호루라기 소리는 나에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금기 영역이다. 그러나 몸도 정신도 온전치 못한 아버지를 구해주고 아버지와 함께 호루라기를 불어준 상희는 나에게 이 오래된 호루라기 소리의 의미를 바꿔놓는다. 갑자기 나타난 상희는 내가 준수해온 삶의 원칙들을 깨뜨리며, 경험으로 축적해온 삶의 의미들을 재정의하도록 종용한다.

 


5. 나쁜 취미

 가브리엘레 뮌터(Gabriele Munter)의 <Black Mask with Rose>

 

스물여섯 두 여자의 죽음 결행기. 세상을 살아가는 데 제대로 된 몸을 가꾸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어머니에 이끌려 성형외과에 들락거리던 나의 몸은 한없이 망가져간다. 한 번도 자가용을 타보지 못하고 퉁퉁 부은 다리로 편의점에 서 있거나 우유를 배달해야만 했던 제이는 사랑이라 믿었던 남자가 게임중독에 빠져 자신을 내팽개치자 함께 죽을 사람을 찾아 사이버공간을 떠돈다.





6.까마득
 

노은님의 <새>


외국인 결혼 이주여성의 삶을 조명한 소설. 삼촌 집에 얹혀사는 소녀 유리는 스물둘 꽃다운 나이에 마흔두 살 곰배팔 삼촌한테 시집온 베트남 신부 흐엉에게 한글을 가르쳐준다. 아이를 가진 흐엉은 이를 무기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잠도 같이 잔 대가를 당당하게 삼촌한테 요구한다. 하지만 이렇게 모은 돈을 악의적으로 접근한 동네 사람한테 모두 떼이고 만다. 



7.비비
 

황주리의 <추억제>


직원들의 평균 재직기간이 고작 3년에 불과한 생존 정글의 세계에 매몰되어 있는 나. 어느 날, 나의 생존을 담보로 야성을 길들여온 회사에 검은 정장 차림으로 비비탄을 난사하는 4인조 콰르텟이 등장하고, 이 검은 정장들의 출몰은 내 삶을 전혀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이동시킨다.

 




  글쓴이 : 조명숙 


1958년 김해 출생. 부산대학교 국어국문과 석사과정을 졸업했고, 2001년 《문학사상》을 통해 문단에 나왔다. 창작집 『헬로우 할로윈』(문학과경계사, 2003),『나의 얄미운 발렌타인』(문학사상사, 2005)과 장편소설 『바보 이랑』(화남, 2008), 『농담이 사는 집』(문학과지성사, 2010) 등을 썼다. 2006년 장편동화 「누가 그랬지?」로 14회 mbc창작동화대상을 받았으며, 그림동화책 『샘바리 악바리』(가교, 2011)를 냈다. 외에 산문집 『우리 동네 좀머씨』(당그래, 2005), 『영철이하고 농사짓기』(도요, 2010, 공저)가 있고, 아내들을 위한 연시집 『하늘 연인』(열음사, 2006)을 엮었다.  



" 가끔씩 나는 
조명숙이 이 벌거벗은 생명들의 삶에 그토록 강하게 붙들리지 않았다면, 그의 말마따나 그저 대충 소설가 흉내나 내며 살았더라면, 지금보단 훨씬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상상을 해보곤 한다. 달리 말해 
그것은 이들의 어둠을 함께 사는 것, 이들의 절망을 감당하고, 이들의 불행에 동참하는 일일 텐데, 행복과 멀찌감치 거리를 둔 이 작가는 기어코 그 어둠, 절망, 불행의 자리에 매번 자신의 마지막 돌을 놓는 악수를 두고야 만다."

 
                                                                   -김경연(문학평론가)  






▶ 차례 
 

어깨의 발견

거꾸로 가는 버스

댄싱 맘

바람꽃

나쁜 취미

까마득

비비
 

해설: 보이지 않는 지도를 읽어가는 유목민의 글쓰기_김경연

작가의 말

 



『댄싱 맘』


지은이 : 조명숙

쪽수 : 260쪽

판형 : 신국판

ISBN : 978-89-6545-173-0 03810

값 : 12,000원

발행일 : 2012년 3월 26일

십진분류 : 813.7-KDC5

895.735-DDC21






댄싱 맘 - 10점
조명숙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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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샛별♬ 2012.04.06 11: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난 겨울 인턴했던 샛별이랍니다!ㅋㅋ
    인터넷 서점을 뒤적거리다가 댄싱맘을 발견하고,
    제가 구글을 헤매며 찾았던 그림을 발견했네요..ㅋㅋ
    책이 생각보다 훨씬 예쁘네요~! 잘들 지내고 계신거죠??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