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추바이 선집 

― 『신아국유기』, 『적도심사』

 

 

▶ 신생 소비에트러시아에서 전망을 찾고자 했던

중국공산당 초기 지도자 취추바이의 여정

 

취추바이(瞿秋白, 구추백)는 중국 공산당의 초기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러시아어 번역가이자 중국의 좌익 작가, 공산주의 혁명가이다. 중국근현대사상총서 열 번째 책으로 출간하는 이 선집에는 취추바이의 저술 가운데 신아국유기(新俄國遊記)적도심사(赤都心史)를 번역하여 실었다.

1920년 가을, 갓 스물을 넘긴 나이에 취추바이는 새로운 기회의 땅, 붉은 물결의 소비에트러시아로 향한다. 신아국유기는 저자가 중국에서 출발해 19211, 모스크바에 도착할 때까지의 여정을 기록한 것이다. 베이징에서 출발해 하얼빈을 거쳐 모스크바로 들어가는 일정이었는데, 여러 가지 국내외 정치적인 상황으로 인해 하얼빈에서 50일 이상 발이 묶이고, 이후에도 기차가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바람에 2021125일이 되어서야 취추바이 일행은 모스크바의 야로슬라브스키역에 도착한다. 이어 모스크바에 머물던 1년여의 기록이 적도심사(赤都心史)이다.

 

상하이에서 좌련(左聯)을 이끌던 1930년대 초 취추바이와 루쉰

 

몰락한 신사집안을 뒤로하고

새로운 사회에서 주체로 서기를 희망하다

 

1899년 장쑤성 창저우에서 태어난 취추바이의 집안은 대대로 서생과 관리를 배출했던 신사집안이었다. 그의 아버지 취스웨이는 전통 지식과 예능에 재주가 있었지만, 생활을 꾸려나가는 재주는 없었다. 몰락한 집안에서 생계를 걱정해야만 했던 취추바이는 학비를 내지 않아도 되었던 러시아어 전수관에 들어가 러시아어를 배우게 되는데, 이때 5.4운동이 일어나면서 러시아어 전수관의 학생대표로 학생운동을 지도하고, 이후 리다자오가 발기한 마르크스연구회에 참여해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를 공부하게 된다.

5·4운동이 퇴조기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전망을 찾던 취추바이는 1917년 혁명으로 탄생한 신생 소비에트러시아에 눈길을 돌리고, 신보(晨報)의 특파원으로 모스크바에 가게 되는데 이때의 여정이 이번 선집에 실린 것이다. 모스크바에서 그는 햇수로 4년을 머물면서 이론을 공부하고, 현실을 관찰하여, 실천에 참여할 기회를 갖는다. 이후 1923년 소비에트러시아를 방문한 천두슈(陳獨秀)를 따라 귀국하여 공산당의 선전업무를 담당하면서 신청년(新青年), 선봉(前鋒), 향도(嚮導)등의 간행물 발행에 참여한다.

사회구조의 변화 속에서 신사 계급의 몰락은 필연적이었고 이에 따라 취추바이 자신 또한 존재를 상실하고 세계에서 부재하게 될 운명이었다. 그러나 취추바이는 왕조가 붕괴되고 새로이 나타난 사회에서 그 자신이 변화한다면, 자신은 옛 체제와 더불어 소멸할 존재였을지언정 새로운 사회에서는 존재를 유지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주체로서 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분투하다가 공산주의 혁명가로 생을 마감한다.

 

하얼빈을 출발하여 극동공화국을 거쳐 붉은 빛의 나라로

 

취추바이는 신보의 특파원으로 동지 2명과 함께 러시아로 떠나게 되는데, 신아국유기에는 출국을 결정하고 신변을 정리하면서 갖게 된 회한과 미래의 전망에 대한 불안감 등 자신의 심리적 변화와 더불어 중국 국내에서부터 극동공화국을 거쳐 모스크바로 진입하기 직전까지, 이동하는 도중에 보게 된 중국과 러시아 양국의 사회상이나 인간의 심리가 기록되어 있다.

192010월에 베이징을 떠난 취추바이는 하얼빈에서 발이 묶이면서 이 유기(遊記)’를 쓰기 시작하는데, 단순하게 보면 중국에서 러시아까지의 노정을 기록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저자의 사상적 경험이자 마음의 여정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192111월이 되어서야 탈고한 신아국유기에는 길 위에서 겪었던 모든 견문과 경험, 구체적인 사실, 마음의 여정 속 동요와 기복, 사상과 이론 전부가 들어 있다.

신아국유기의 서두에서 밝혔듯이 그는 저 멀리서 가냘픈 한 줄기로 빛나던 붉은 빛의 세계로 들어가 깨닫고, 그렇게 해서 얻어낸 빛을 다시 중국으로 가지고 와 단잠에 빠져 있던 중국의 인민들을 돕고자 했다.

나는 어쨌든 모두를 위해 광명의 길을 열고 싶다. 나는 가고자 하며, 또 나는 가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지금 일떠섰다. 나는 아향(소비에트러시아)으로 떠난다.(1920. 11. 4. 하얼빈)

 

혁명과 내전을 겪은 이론의 실험장 모스크바에서

다양한 계급과 계층의 사람을 만나다

 

적도심사는 저자가 모스크바에 머물던 1년간의 기록으로서 신아국유기에 이어서 쓴 글이다. 두 책 모두 무미건조한 기행문이 아니고 여행안내서도 아니며, 하나의 문학 작품으로서 그 수준이 상당하다. 저자는 한 나라의 사회생활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법률이나 법령 몇 조항에 근거할 수는 없으며, 그 사회의 영혼을 보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게다가 문학작품의 형식을 취해서야, 작자의 개성이나마 훑어볼 수 있는 법이다.”라고 말하면서 이 책을 문학성 있는 시와 산문으로 채웠다.

혁명에 성공한 소비에트러시아와 볼셰비키는 백군의 반란을 빌미로 전시공산주의(戰時共産主義)라는 급진적 사회주의경제정책을 시행했다. 취추바이가 소비에트러시아로 들어갔을 때는 이러한 전시공산주의에서 벗어나 막 신경제정책(NEP)을 시작하던 단계였다. 혁명과 내전을 겪은 소비에트러시아는 이론의 실험장이었다. 당과 국가 차원에서 다양한 국가적·사회적 실험을 전개하고 있었고, 소비에트러시아 사회의 다양한 계급과 계층의 인간들은 이에 반응하여 실천하고 생각하며 삶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개혁과 변화의 현장, 그리고 그곳을 살아가던 사람들을 접하고 관찰한 취추바이는 이를 기록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기록했다.

레닌과 트로츠키를 만났던 일, 러시아 귀족문화의 잔재를 경험한 일, 러시아식 사회주의, 러시아의 종교, ‘노동자에 대한 상념, 시베리아 유배 경험자와의 만남 등 취추바이의 글쓰기는 모스크바에서 그가 보고 들었던 모든 분야를 가로지른다. 그러면서도 중국인으로서의 의 존재에 대한 고민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톨스토이 생가, 야스나야 폴리아나 방문

 

취추바이는 모스크바에서 톨스토이의 손녀와 교류하면서 톨스토이 생가를 방문하는 여행단에 합류하게 되는데, 적도심사에서는 이때의 여행기를 제법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30여 명의 여행단은 기차를 타고 툴라로 가서 야스나야 폴리아나를 방문한다. 여행에 동행하는 다양한 사람들과 혁명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생가에서는 또 톨스토이의 친척들을 여럿 만나 톨스토이의 생전 모습을 들어본다. 톨스토이파들이 꾸리고 있는 코뮌에도 들른다. 혁명 후에도 톨스토이의 유적이 보존되고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야스나야 폴리아나에 혁명의 파도가 거세게 밀려왔을 때, 소장파 농민들은 들고 일어나 톨스토이의 재산을 나눠 가지려 했지만, 노인들은 톨스토이의 됨됨이를 기억하고는 차마 그렇게 하지를 못했었다. 나중에 중앙정부가 인력을 파견하여 이 역사의 유적을 지킨 것이다.

 

러시아에서 병을 얻어 힘든 생활을 하고 있던 취추바이에게 야스나야 폴리아나 여행은 답답했던 마음을 확 풀어주는 일이었다. 그 시골에는 세계적인 위대한 대문호의 흔적과 향기가 아직 남아 있었고, 구시대의 러시아, 즉 귀족적 풍모가 아직도 풍광에 남아 있었고, 사람들의 꿈에 서려 있었다. 취추바이는 평민 농민과 지식계급의 감정에는 사회문제가 여전히 선명하고 깊게 뿌리 박혀 있었지만 지식계급 문제와 농민 문제는 노도와 같은 10월혁명에 힘입어 그 뿌리가 흔들렸고, 이제 점차 해결되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보면서 그날의 감동을 기술한다.

 

직접적인 경험과 사고에 바탕을 둔 취추바이의 고민을

지금 다시 검토하는 일의 의미

 

취추바이가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당시 소비에트러시아는 중국과 같은 농업국가 상태에서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고 있었다. 취추바이는 여기서 소비에트의 사회를 보려 했다. 그가 행했던 사회의 관찰은 곧 사회 성원들의 다양한 삶과 그들의 심리를 보는 것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심리를 기록하는 것에 자기 글의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소비에트 사회를 형성하고 있던 사람들노동자, 농민을 포함한 피지배층의 심리 기록을 통해 어떻게 사회적 주체가 형성되는지를 살핀 것이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취추바이는 초기 중국공산당의 실천을 조직하고 중국 사회주의 혁명운동의 기초를 다졌다. 그러나 중국 혁명의 진행 과정에서 좌익모험주의로 비판받고 실권을 빼앗겼으며, 정치적으로 실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직접적인 경험과 사고에 바탕을 둔 취추바이의 고민을 지금 다시 검토하는 일은 오늘날 중국의 사회주의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드러내고 방향을 모색하는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소비에트러시아가 막 건설되고 나서의 사회상과 이념적으로 교조화되기 전 중국 사회주의 운동의 실상과 그에 대한 대응을 알아보고, 그 가운데 간과되고 있는 지점, 놓치고 있는 지점이 무엇인지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첫 문장 

북풍이 살을 에고 온갖 더러움과 추악함이 얽혀있는, 음침하고 어두운 곳, 나는 그곳에서 태어난 이래 빛 한 줄기를 보지 못했다지금까지 햇빛이란 것이 어떻게 생겨먹은 녀석인지 알지도 못한다.

 

 책속으로 / 밑줄긋기 

📌 P.79 화는 천부적인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중국인들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할 것인가?

📌 P.153 이 두 책은 모두 저자의 문학 작품으로 그 수준이 유치하기는 하지만 결코 무미건조한 기행문도 아니며, 여행안내서도 아니다! 한 나라의 사회생활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법률이나 법령 몇 조항에 근거할 수는 없으며, 그 사회의 영혼을 보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게다가 문학작품의 형식을 취해서야, 작자의 개성이나마 훑어볼 수 있는 법이다.

📌 P.158 무거운 어둠이 평화롭고 고요히 대지를 감싸고 있었다. 높이서 타들던, 은촛대의 양초는 이제는 짧아져 흐릿한 빛을 낼 뿐이고, 부끄럼 많은 항아姮娥는 이미 저녁 화장을 지운 뒤였다. 주흥도 다하고 피곤에 전 무희는 허리에 힘이 빠져 흐느적대고 있었다.

📌 P.180 톨스토이 전시관은 우리 아파트에서 멀지 않았다. 전시관은 청결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소피아는 갖가지 그림과 사진을 설명해주었다. 톨스토이가 직접 그린 작은 그림에는 조랑말 한 마리와 성인 한 명이 있었다. 소피아는 말은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그녀에게 주었던 장난감이라고 말했다.

📌 P.217 레닌은 대회에 출석하여 서너 번 발언을 하였다. 그는 독어와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발언이 침착하면서도 과단성이 있었지만, 절대 대학교수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대신 진지하고 과감한 정치가의 모습이 더 자연스럽게 보였다. 한 번은 복도에서 우연히 그를 만나 몇 마디를 나눌 수 있었다.

📌 P.278 이처럼, 나의 사명은 분명하다. “나는 장차 무엇이 되려는가?” 나는 가 인류 신문화의 배아가 되길 바란다. 신문화의 기초는 본래 역사적으로는 대치해왔으나 지금 시대의 초입에 이르러 서로를 보조하는 두 문화, 즉 동방과 서방을 연결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저자 

취추바이(瞿秋白, 1899–1935)

현대 중국의 정치가, 혁명가, 언론인, 문학가, 학자이다. 러시아어 전수관의 학생대표로 5.4운동에 참여하면서, 혁명가이자 정치가로서의 길로 들어섰고, 소비에트러시아 여행 이후,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여 혁명가로 살아갔다. 중국공산당 당 장정의 초안을 작성하기도 했고, 중국공산당 중앙위원, 정치국 위원에 선출되었으며, 중앙위원회 총서기로서 무장봉기를 지도하는 등 혁명운동의 최고 지도자로서 활약했다. 언론인으로서 공산당의 선전업무를 담당하고 신청년新青年, 선봉前鋒, 향도嚮導등의 간행물 발행에 참여했다. 문인으로서 본서와 같은 문학성 짙은 글을 다수 발표하는 한편 중국좌익작가연맹中國左翼作家聯盟에 참여하면서, 마르크스주의문예이론의 보급과 좌익문학 건설에 공헌했다. 학자이자 교육자로서 상하이대학上海大學에서 사회학과 교수로 교편을 잡았으며, 중국어의 라틴화 방안 등 중국언어문자의 개혁과 대중화를 연구하고 실천하려고 했다.

 

 역자 

이현복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청말 新政時期 문학담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강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서 중국현대문학과 문화를 가르치고 있으며, 중국 사회주의운동과 좌익문학, 華人文學 등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있다. 논문으로 1920년대 중국 공산주의의 인간화와 혁명-瞿秋白의 이념의 현실화와 변용, 陳映眞 초기 소설에서 좌절과 절망의 의미-서사구조분석을 중심으로등이 있으며 역서로 혁명과 역사-중국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기원 1919-1937, 무중풍경(공역), 타이완신문학사(공역), 저서로 길 없는 길에서 꾸는 꿈 중국 신문학 100년의 작가를 말하다(공저)가 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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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국유기(아향기정)

서언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발跋

적도심사

프롤로그

1 여명
2 무정부주의의 조국
3 전쟁과 노래
4 가을빛
5 코뮌公社
6 혁명의 반동
7 사회생활
8 「번민……」
9 하얀 달
10 러시아식 사회주의
11 종교적인 러시아
12 노동자의 부활
13 ‘노동자’
14 「사자死者의 집」의 환향인
15 Angel
16 귀족의 보금자리
17 모스크바의 붉은 물결
18 레닌과 트로츠키
19 남국 『혼이나마 돌아오시오, 강남은 애달프오.魂兮歸來哀江南』 유신庾信
20 관료문제
21 신新 자산계급
22 기아飢餓
23 영혼의 감상
24 민족성
25 “동방월”(중추절에 짓다)
26 돌아가세
27 지식노동
28 야스나야 폴리아나 여행기
29 “뭐!”
30 붉은 10월
31 중국인
32 집에서 온 편지
33 ‘나’
34 생존
35 중국의 ‘잉여 인간’
36 ‘자연’
37 이별
38 일순간
39 적막
40 새벽놀
41 표트르Pyotr의 성
42 러시아의 눈
43 미인의 소리
44 아미타불
45 신촌新村
46 바다
47 야우자Yauza강
48 새로운 현실
49 생활
미주

해제

 

 

 취추바이 선집 ― 『신아국유기』, 『적도심사』 

취추바이 지음|이현복 옮김|336쪽|148*212 

 978-89-6545-727-5 94820|28,000원

취추바이(瞿秋白, 구추백)는 중국 공산당의 초기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러시아어 번역가이자 중국의 좌익 작가, 공산주의 혁명가이다. 중국근현대사상총서 열 번째 책으로 출간하는 이 선집에는 취추바이의 저술 가운데 『신아국유기(新俄國遊記)』와 『적도심사(赤都心史)』를 번역하여 실었다.

 

알라딘: 취추바이 선집 (aladin.co.kr)

 

취추바이 선집

취추바이는 중국 공산당의 초기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러시아어 번역가이자 중국의 좌익 작가, 공산주의 혁명가이다. 중국근현대사상총서 열 번째 책으로 출간하는 이 선집에는 취추바이

www.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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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부산에서 책 만드는 이야기 : 산지니출판사 블로그 제나wp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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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파이채굴러 2021.05.17 16: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파이채굴러입니다.
    요기조기 구경다니다가 들어왔는데,
    포스팅 진짜 잘하시는거 같아요.😉😉
    저도 배워갑니다.
    시간되실때 제 블로그도 한번
    들려주세요.🤗🤗🤗🤗

저는 근대 시기 중국, 일본, 러시아에서 펼쳐지는 서사를 다룬 소설로 공간과 삶을 상상하는 일을 즐기는데요, 이번 휴가에는 산지니가 2017년 재출간한 이규정의 사할린으로 방구석 여행을 가보려 합니다.

1996년 출간된 먼 땅 가까운 하늘을 새롭게 편집하여 선보인 장편소설 사할린은 작가의 신념에 따라, 오랜 현장 취재 끝에 탄생한 작품입니다. 소설은 최숙경과 이문근 부부를 중심으로 경남 함안에서 일본, 러시아라는 공간을 넘나들며 1930년대, 사할린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어 굴곡진 한국 근대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탄광노동자들이 거주하던 탄광촌 모습

▶ 사진 출처: https://news.naver.com/main/read.nhn?oid=022&aid=0002428864


태평양전쟁 패전 직전 사할린에 끌려가 벌목장에서 강제노역을 하던 조선인 노동자들의 모습

▶ 사진 출처사할린주 기록보존소 소장. 2014년 이연식 촬영, 채륜 제공

 https://blog.naver.com/woorikangsan/221267984922


이정식 교수는 저서 21세기에 다시보는 해방후사에서 주변 국가에 영향을 받은 한국을 연구하는 것은, 한국 자료는 물론이고 중국, 일본, 미국, 러사아 자료까지 독해할 수 있어야 하기에 어렵다고 했죠. 이는 20세기 한반도는 다양한 국가의 영향을 받았으며, 당시 조선인은 국제 정세의 소용돌이 속에서 저마다의 이유로 중국, 일본, 소련 등지에 흩어져 족적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해외에 정착한 조선인들의 운명은 해당 국가와 국제 정세에 따라서 질곡을 겪었지요. 그중에도 사할린은 조선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소련, 일본, 미국 등의 주변 국가의 이해가 얽히면서 귀환 자체가 봉쇄되었던 곳입니다. 그런 점에서 사할린 한인들의 이주와 정착은 특별한 역사와 성격을 갖습니다

그동안 일본, 중국 동포의 삶을 그린 소설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러시아, 사할린 한인들의 삶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죠. 올여름, 일제강점기에 사할린 한인의 고된 삶과 조국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담은 소설 사할린으로 머나먼 동토의 땅으로 방구석 역사 여행을 떠나보시는 건 어떠세요?


 사할린과 한인 이주?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사할린에 대한 지배권을 획득한다. 러시아와 일본이 북위 50도를 경계로 하여 양도 협정을 맺으면서 사할린은 남북으로 분단됐다. 일본은 남부 사할린, 러시아는 북부 사할린을 점유했다. 일본이 남부 사할린을 점령했을 당시 이 지역에 한국인은 24명이었으나, 1920년 남부 사할린 거주 한국인 수는 934명으로 증가했다. 19204월 이후로 북부 사할린 지역의 한인 수도 609명에서 1,431명으로 증가한다. 1937, 소련의 강제이주정책에 의해 한국인 1,155명이 북부 사할린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다. 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한국인들이 남부 사할린으로 강제 노동자로 끌려왔다. 전쟁 말기에는 전체 사할린에 한인 43,0005만 명이 거주했다.

사할린 한인들은 대부분 일본에 의한 강제이주 정책과 복잡한 국제정치적인 상황에 의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강제동원, 강제억류됐다.

2020430일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82년만에 사할린 동포를 지원하는데 근거가 될 사할린동포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참고: 이재혁, 일제강점기 사할린의 한국인 이주, 한국 시베리아연구 제15권 제1(2011); 

       <연합뉴스>, 2020430.



사할린 1 - 10점
이규정 지음/산지니

사할린 2 - 1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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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3 - 1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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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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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은『소비에트 러시아의 신체문화와 스포츠』

박원용 저자님과 함께했습니다.

스포츠를 통해 러시아 현대사를 알기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주셨습니다.

 

 

 

 

 

 

 

 

 

강연은 북한과 소련의 문화적 유사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북한의 퍼레이드 장면을 통해 현재 북한 사회의 문화의 생성 방식, 지금 현재 북한의 정신적인 가치 기준을 알 수 있습니다. 소련의 신체문화 퍼레이드와 비슷한 이 모습은 북한이 소련의 문화적인 영향력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요?

 

 

 

 

 

 

 

 

소련은 혁명 후 인민 전체의 평등과 사회주의 의식을 일상에서 구현하기 위해 지도 원리로서 신체문화를 만들어 냅니다. 사회주의 권력 수호하기 위해서는 정신뿐 아니라 육체단련도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회주의 체제에 봉사하고 발전할 수 있는 새로운 이념체제 신체문화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소련의 만들어진 신체문화는 체제의 가치 이념 수호가 목표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소련은 스포츠에서 경쟁문화를 배척하였습니다. 체제 전체의 가치와 단결을 중시하는 신체문화 이념과 경쟁을 강조하는 스포츠 문화는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920년대 초반에는 스포츠는 자본주의 체제의 타락한 문화라는 인식을 퍼뜨렸고, 스포츠가 아닌 다른 형태의 여가 생활을 만들어냈습니다. 작업장의 도구를 이용하는 노동 체조, 매스게임, 정치적 색채가 가미된 놀이가 개발되었습니다. 이런 놀이에서는 당연히 재미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스포츠가 여가 활동이라기보다 하나의 이념 교육화 된 것입니다.

 

 

 

 

 

 

 

 

 

 

 

소련의 통치권을 가지게 된 스탈린은 당시 사회주의 체제의 소련을 자본주의 국가와의 경쟁에서 뒤지지 않는 강력한 사회주의 체제의 국가로 만들어야 한다는 청사진을 구상합니다. 그런 청사진을 실현하기 위하여 스탈린이 강조한 것은 러시아는 소련은 더는 과거와 같이 농민을 위주 정책으로는 강력한 국가로 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빠른 시일 내에 산업화 공업화를 시도하여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노동자들의 적극적인 생산의욕을 고취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생산력에 따라 차등의 임금을 지급하고 사회적인 혜택 또한 차등화하는 차별적인 정책을 시도합니다. 소련의 평등주의적 이념이 스탈린 시대에 와서 후퇴한 것입니다. 그러한 정책 기조가 확산되면서 스포츠 분야에서도 경쟁적인 요소가 용인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포츠 영역에서 경쟁은 전국적 축구대회인 스탈린 컵대회, 레닌 컵대회 등이 만들어지며 본격화 되었습니다. 당시 축구가 일반 대중들에게 인기 있는 경쟁 스포츠 중 하나였기 때문에 경쟁적인 스포츠 문화가 소련 문화 전반에서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축구팀이 지나모 스파르탁입니다. 이 두 팀이 가장 경쟁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축구팀이었습니다. 지나모는 스탈린 공포정치의 중추 기관이었던 비밀경찰의 후원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스파르탁은 상공 협동조합, 강압적인 국가권력과 영향을 받지 않는 단체들의 지원을 받아 만들어졌습니다. 대부분의 관중은 공포의 대상인 비밀경찰의 후원을 받는 지나모보다 스파르탁을 응원했고, 스파르탁에 우수한 자질의 선수들 많이 들어갔습니다. 컵대회 결승전의 승자는 스파르탁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스파르탁의 지속적인 우승을 보다못한 비밀경찰의 수장 배리아는 경기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재경기를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재경기에서도 스파르탁이 승리하자 배리아는 경기 도중 자리를 떴습니다. 지도자의 심기를 거스른 승리의 주역들은 시베리아로 유배를 가기도 하였습니다. 국가권력에 의해 운동선수들이 자신들의 기량을 마음대로 펼치지 못하는 우스운 상황이 종종 나타났습니다.

 

 

 

 

 

 

 

 

1930년대에 스포츠 경쟁문화가 두드러지기는 했지만 이념적인 신체문화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사회주의 존속체제와 인민 단결을 위해서는 신체문화가 굉장히 중요한 이념적 동기였기 때문에 공식적인 차원에서는 계속 재개되었습니다. 육체의 단련을 통해 강인한 체력을 지니는 것이 사회주의 국가 체제 속 삶의 지침으로 제시되었습니다.

 

 

 

 

 

 

 

 

소련 정부는 인민들에게 종교단체의 불규칙적인 행사 모습과 사회주의 체제 행사의 정돈된 이미지를 대비해 보여줌으로써 사회주의 이념과 체제의 우월함을 강조했습니다.

 

 

 

 

 

 

 

 

스탈린에 대한 숭배도 소련의 빼놓을 수 없는 문화적 모습입니다. 이것은 스탈린 집권 통치 기간에 빠질 수 없는 통치의 한 기술이었습니다. 거의 똑같은 형태의 구도를 가지고 있는 신체문화 행사 장면입니다. 원래의 모습은 레닌이었지만 스탈린 개인숭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스탈린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스탈린을 레닌을 능가하는 위대한 지도자로 격상시킨 것입니다. 실제로 스탈린이 정말 레닌보다 통치력이 뛰어나서 그렇게 한 것일까요? 혁명을 완성한 레닌보다 당 지도자 스탈린을 높이는 것은 체제의 절대적인 단결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만큼 소련의 영향력도 지대했습니다. 소련이 동부전선에서 막대한 희생을 하면서 히틀러의 진격을 저지하지 않았다면 2차 세계대전의 결과가 바뀌었을지도 모릅니다. 스탈린과 소련 공산당 지도자들은 승전국으로서의 자신감을 스포츠를 통해서 다시 한 번 표시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기록들은 소비에트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포스터의 문구는 세계적인 강국으로서의 지위를 널리 알리자는 소련의 생각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소련은 이전까지 자국의 선수들이 자본주의 국가의 선수들과 어울리면 이념적으로 타락한다고 생각하여 올림픽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세계 스포츠 무대에 진출하면서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안드리아노프가 서방의 IOC 의원들에게 호감을 주며 소련 올림픽 위원회가 승인되었습니다. 마침내 1950년 헬싱키 올림픽부터 소련이 참가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반대 세력도 존재했습니다. 정치에 의해 올림픽위원회가 좌지우지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각 국가의 올림픽 위원회는 정부와 독립된 기관이어야 했습니다. 소련 올림픽 위원회는 정부에 꼭두각시에 불과하기 때문에 소련의 올림픽 참가는 절대로 허용되어서는 안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당시 IOC 4,5대 의장은 사회주의 이념을 반대했기 때문에 소련의 올림픽 참가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소련은 우호적인 국가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해 올림픽 관련자들에게 자신들의 신체문화 퍼레이드를 적절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영국의 버글 리는 자신을 환대한 소련 정부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IOC 4대 의장 에즈트롬은 자신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헬싱키 올림픽을 사회주의 국가도 참가하는 진정한 올림픽으로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국제 정세로는 소련의 원자폭탄 실험, 중국 사회주의 체제 출범, 동유럽 사회주의 블록, 한국전쟁 등 평화를 위협하는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소련이 52년 올림픽에 참가한다면 평화적인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는 생각이 널리 퍼졌고, 마침내 이런 조건을 통해 소련이 올림픽에 참가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올림픽에서의 냉전이 시작된 것입니다.

 

 

 

 

 

 

 

 

 

 

 

소련 선수들의 기량이 뛰어나자 미국은 대표적인 스포츠 일간지에 소련 선수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 양성할 수 있는 기사를 집중적으로 게시하였습니다. 소련 선수들은 우승을 위해서 스포츠의 즐거움을 전혀 모르고, 다른 나라 선수들과 우호적인 교류를 하지 않으며 올림픽을 전투와 같이 임한다고 비판하였습니다.

 

소련은 그에 대항하여 소련의 선수들은 개인의 영광이 아닌 조국의 영광을 위해 경쟁한다는 이미지를 생성하였습니다. 소련 선수들은 선수이자 학생이기 때문에 물질적 혜택만을 중시하지 않으며 국가를 위한 선수로서 사명과 학생으로서 배움의 자세를 충실하게 지켜나가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소련은 세계의 선수들을 불러들여 소련 체제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자는 생각으로 모스크바 올림픽을 개최하고자 하였습니다. 미국은 모스크바 올림픽을 부정적으로 생각했고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이유로 모스크바 올림픽은 세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선전을 했습니다. 결국 모스크바 올림픽은 반쪽의 대회로 끝나게 되었고, 84LA올림픽 또한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다음 열린 88년 서울 올림픽은 냉전 시대의 분열을 해소한 성공적인 올림픽으로 이야기됩니다.

 

 

 

 

 

 

 

 

 

 

소련의 스포츠 정책의 전개는 국가권력의 방향, 당시 냉전시대 미국 세력과의 역학관계와 긴밀하게 연결될 수 있습니다. 또한 스포츠를 통한 소련의 현대사는 단순히 스포츠라는 문화 현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당시의 국제 상황, 소련의 당시 정책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하나의 문화 요소였습니다.

 

 

 

 

 

 

 

 

 

 

 

 

 

스포츠가 단지 문화 영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한 나라의 역사, 정치 체제와 밀접하게 관계 맺고 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고, 스포츠와 신체문화를 바라보는 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좋은 강연 들려주신 박원용 교수님과

직접 오셔서 들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스포츠라는 거울을 통해

격동의 러시아 현대사를 들여다보다!

소비에트 러시아의 신체문화와 스포츠

 

 

박원용 지음 | 판 |  25,000원 | 

978-89-6545-581-3 93920

 

혁명 이후 러시아 사회의 변화를 이미지, 일상의 경험과 관련지어 연구해온 박원용 교수가 소비에트 러시아의 신체문화와 스포츠를 출간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스포츠라는 소재를 활용해 1920년대 이후 소련 사회의 변화 과정을 설명하고, 동시에 올림픽 무대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소련과 미국의 열전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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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동글동글봄 2019.04.10 1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후기 잘 읽었습니다:) 러시아의 스포츠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 책으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네요. 러시아 스포츠가 국가체제와 이데올리기와 맞물려 있네요. 더불어 포스터를 보는 즐거움도 있구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2. BlogIcon 에디터날개 2019.04.10 12: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만에 학창시절로 돌아가 교수님의 수업을 듣는 듯한 시간이었어요 ^^

 

95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은

 

『소비에트 러시아의 신체문화와 스포츠』의 저자

 

박원용 교수님과 함께합니다.

 

 

 

 

 

러시아 현대사의 굴곡이 스포츠에서는 어떻게 나타났을까요?

박원용 저자는 '스포츠'라는 소재를 통해

혁명 이후 러시아 사회의 변화를 흥미롭게 풀어냈습니다.

이번 만남에 꼭 참석하셔서 함께 격동의 러시아 현대사로 들어가 보아요!

 

 

 

 

 

 

 

 

 

 

 


 

 

『소비에트 러시아의 신체문화와 스포츠


저자는 기존의 접근법에서 벗어나 조금은 '부드러운' 스포츠라는 소재를 통해 러시아 현대사를 소개한다.

 

 그렇다고 소련 현대사의 전체적 조망을 포기하고 스포츠와 같은 미시적 영역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소련사회 구조의 특성상 스포츠와 같은 문화영역은 전반적인 통치 이념이나 정책의 방향과 분리하여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스포츠를 통해 러시아의 정치사회적 변화를 살피며, 1920년대와 스탈린 시대, 냉전 시대로 이어지는 러시아사를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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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츠로 본 러시아 현대사소비에트 러시아의 신체문화와 스포츠 - 박원용 지음/산지니/2만5000원

 

 

건조한 책 제목과 딴판으로, 이 책 속의 세상은 ‘고온다습’ ‘흥미 상승’ 요소를 두루 갖췄다. 왜냐? 스포츠 세계를 다루기 때문이다. 그것도 ‘소비에트 러시아의 신체문화와 스포츠’라는 제목으로 옛 소련의 ‘스포츠 월드’를 비춘다. 일단 먼저 든 생각은 ‘이런 주제로 책을 쓸 국내 필자가 몇이나 될까’였다. 적어도 역사, 정치, 옛 소련, 스포츠를 두루 알아야 엄두를 낼 책이지 않은가. 역사학자 박원용(부경대 사학과) 교수는 관련 분야를 전공했고 연구해왔다. 스포츠가 정치 체제에 의해 어떻게 ‘활용·변형’되는지, 미국과 소련의 스포츠 경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등 다채롭다.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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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트 러시아의 신체문화와 스포츠 -


박원용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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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트 러시아의 신체문화와 스포츠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 이후 소련 정부는 새로운 지도 원리로 ‘신체문화’를 내세웠다. 육체를 단련할 뿐 아니라 음주·도박 등 타락한 생활방식을 일소하기 위함이었다. 박원용 부경대 사학과 교수는 신체문화와 올림픽이 미-소 냉전 시기 치열한 선전무대로 활용된 역사를 재조명한다. /산지니·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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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트 러시아의 신체문화와 스포츠

저자는 기존의 접근법에서 벗어나 조금은 '부드러운' 스포츠라는 소재를 통해 러시아 현대사를 소개한다. 그렇다고 소련 현대사의 전체적 조망을 포기하고 스포츠와 같은 미시적 영역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소련사회 구조의 특성상 스포츠와 같은 문화영역은 전반적인 통치 이념이나 정책의 방향과 분리하여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저자는 스포츠를 통해 러시아의 정치사회적 변화를 살피며, 1920년대와 스탈린 시대, 냉전 시대로 이어지는 러시아사를 들여다본다.

 

 

 

소비에트 러시아의 신체문화와 스포츠 -


박원용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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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트 러시아의 신체문화와 스포츠

 

 

 

 

 

 

 

 

 

 

스포츠라는 거울을 통해 격동의 러시아 현대사를 들여다보다

 

혁명 이후 러시아 사회의 변화를 이미지, 일상의 경험과 관련지어 연구해온 박원용 교수가 소비에트 러시아의 신체문화와 스포츠를 출간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스포츠라는 소재를 활용해 1920년대 이후 소련 사회의 변화 과정을 설명하고, 동시에 올림픽 무대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소련과 미국의 열전을 소개한다.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혁명 이후 러시아 현대사를 스포츠라는 요소를 통해 접근한다는 것이다. 소련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질서의 한 축을 담당했다. 스탈린 체제는 그 소련의 기본 골격을 형성했던 시기이다. 그러나 기존의 정치와 사회구조적 접근은 러시아 현대사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기존의 접근법에서 벗어나 조금은 부드러운스포츠라는 소재를 통해 러시아 현대사를 소개한다. 그렇다고 소련 현대사의 전체적 조망을 포기하고 스포츠와 같은 미시적 영역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소련사회 구조의 특성상 스포츠와 같은 문화영역은 전반적인 통치 이념이나 정책의 방향과 분리하여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스포츠를 통해 러시아의 정치사회적 변화를 살피며, 1920년대와 스탈린 시대, 냉전 시대로 이어지는 러시아사를 들여다본다.

 

 

 


 

 

 

 

 

 

이념 수호와 발전을 위한 러시아의 노력

    소비에트 인간형-호모 소비에티쿠스 창출에서 신체문화의 보급으로!

 

러시아 혁명 직후 볼셰비키 권력은 전제정 시대의 관습과 가치를 버리고 새로운 이념을 체득한 인민의 창조가 필요했다. 볼셰비키 정권은 1920년대 교육을 통해 체제의 이념을 흡수한 호모 소비에티쿠스를 창출했고, 체제를 이끌어 갈 신엘리트층을 어느 정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인민의 절대다수가 소비에트 인간형으로 재탄생한 것은 아니었다.

 

 

러시아 정부는 한정적 효용가치를 초월하여 지속적으로 체제 내의 성원들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보다 포괄적인 지도원리가 필요했다. ‘신체문화(физическая культура)’의 이념이 이러한 배경에서 출현했다. 신체문화는 용어의 일차적 어감이 연상시키는 체육이나 스포츠 등의 육체활동에만 한정할 수 없고 보다 포괄적인 삶의 지도 원리로서 제시되었다. 즉 그것은 위생, 스포츠를 통한 건강 증진, 국방 및 노동에 대한 관심, 여가, 교육, 그리고 전반적 문화계몽 등에 이르기까지 실로 광범위한 영역을 포괄하는 개념이었다.

 

 

 


 

 

 

 

 

 

1920년대와 스탈린 시대의 불안한 동거

    그 속의 신체문화와 스포츠

 

박원용 교수는 혁명 이후 러시아의 고등교육 체제 개편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혁명 이후 러시아 사회의 변화를 시각 이미지, 일상의 경험과 관련지어 논의한 다수의 논문을 쓰며 러시아 현대사를 연구해왔다. 이 책은 그의 첫 단독 저서로, 한국에는 소개되지 않은 러시아의 신체문화와 스포츠를 소개한다는 학술적 의의가 있다.

 

이 책은 크게 2부로 나누어진다. 1스포츠와 신체문화: 소비에트 신인간형 창조과정의 긴장에서는 스포츠 정책을 중심으로 소련 사회의 이념적 원칙과 현실 사이의 갈등을 다룬다. 스포츠는 경쟁을 바탕으로 승패를 확정하는 문화적 양태이다. 사회주의 체제 러시아는 체제의 수호를 위해 개인을 중시하는 스포츠의 경쟁문화보다는 집단적 가치와 이념을 습득하는 여가의 양식으로서 신체문화의 형태를 확립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이념적 방향은 소비에트 체제 수립 초기였던 1920년대는 물론 1930년대 현실적 상황과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1부에서는 소련의 지도부가 바로 그러한 현실적 상황과 타협하면서도 어떻게 이념적 원칙을 지켜나가려 했는지의 과정을 서술한다.

 

 

 


 

 

 

 

냉전기 열전의 무대였던 올림픽에서에서의 긴장

 

2올림픽 열전의 실제: 소련의 올림픽 참가부터 개최까지에서는 냉전시대 열전의 무대로서 올림픽에서 나타났던 체제 경쟁의 구체적 모습을 서술한다. 냉전시대 소련은 올림픽 참가 과정에서부터 미국과의 대립을 피할 수 없었다. 소련이 국제올림픽위원회의 회원국 자격을 획득한 이후에는 소련과 미국의 메달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책에서는 메달 획득의 수를 늘리기 위한 미국과 소련의 구체적 방법, 즉 선수 양성과 선발 과정, 금지 약물의 사용 등을 구체적으로 기술한다. 마지막 장에는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을 소개하며 냉전기 올림픽 무대에서의 열전의 마지막 순간을 정리하였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냉전기 올림픽이 어떻게 두 강대국의 치열한 선전무대로 활용되었는지, 또한 냉전이 종식된 현재적 시점에서 올림픽을 국제정치 질서와 무관한 순수한 인류의 제전이라고 말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또 다른 각도에서 조명할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으로

 

 

 

p.21

 인민의 일상생활 가운데서 체제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내재화할 수 있는 삶의 지도원리의 모색은 교육만을 통한 새로운 인간형 창출의 한계를 보완하려는 시도였다. 우리말의 어감상 어색한 용어 신체문화(физическая культура)’는 이러한 맥락에서 등장했다.

 신체문화는 육체 단련을 위한 체육, 스포츠 등의 활동은 물론 사회주의적 가치에 부합하는 생활방식을 일상에서 구현하기 위해 제기된 이념이었다. 육체를 단련하기 위한 활동뿐만 아니라 음주도박 등의 타락한 생활방식을 일소하기 위한 삶의 포괄적 지도원리였다.

 새로운 인간형 창출을 여가활동의 영역까지 확대하고 그를 통해 일상적 삶의 세세한 방식을 변화시켜 나간다는 원대한 구상이었다. 이러한 구상은 우리에게 소비에트 체제의 인간관을 되돌아보게 한다.

 

p.49

보건 인민위원부의 수장 세마쉬코(Николай Семашко)는 신체문화를 일상적 삶의 총체적 지도원리라는 의미에서 하루 24시간의 신체문화라는 구호로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하루를 노동, 수면, 휴식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 각각의 부분에 가능한 한 균등하게 시간을 배분한다.

 노동이나 운동 어느 한 부분에만 치우치는 생활방식은 육체와 정신 모두를 피폐하게 만들 뿐이다. 노동과 휴식의 적절한 조화를 통해 육체와 심신이 모두 건강한 소비에트의 인민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며 이러한 인민의 창출이 체제의 안정성을 강화할 수 있다.

 결국 세마쉬코는 신체문화를 삶의 방식, 태도, 행동양식 모두를 포괄하는 이념으로 제시함으로써 체제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인간형을 만들어 내고 싶었던 것이다.

 

p.89

 스탈린의 권력 장악은 스포츠 정책 분야에서 변화를 초래했다. 이미 지적한 바 있듯이 1920년대의 스포츠 정책은 이념적 원칙을 강조 하는 원론적 입장과 스포츠에 대한 인민 대중의 선호를 포용하는 입장 간의 긴장관계 위에 서 있었다.

 1930년대에 들어와 스포츠 정책은 이념보다는 현실을 강조하는 경향이 우세했다. 이념성을 드러내는 신체문화의 내용을 스포츠 정책이 포함시키려고 하기보다는 우수한 기량의 선수들 경기를 관람하는 관중문화, 경기의 승패를 좌우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스포츠 영웅을 부각시키는 정책을 채택하였다는 의미이다. 그렇다고 해서 1930년대 소련의 스포츠 문화를 자본주의 체제의 그것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

 소련은 스포츠에서 신체문화의 개념을 버리고 개인의 여가 영역으로 간주하여 국가권력의 개입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스포츠의 영역확대를 허용은 하되 이러한 영역확대를 신체문화의 중요한 목표 중의 하나였던 새로운 인간형 창출과 어떻게 연결시킬지를 여전히 고민하였던 것이다.

 

 

p.133

우리팀이라는 인식을 가능케 만든 스파르탁을 응원하기 위해 모인 관중의 집단적 정체성을 규정하기란 어렵다. 그렇지만 발리 닭싸움의 관중을 일시적 동질성의 집단(focused gathering)”이라고 묘사한 기어츠의 표현 에서 하나의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즉 그들은 아무런 연관이 없는 군중은 아니고 그렇다고 조직화된 집단도 아니었다.

 적어도 경기가 진행되는 스타디움 내에서 스파르탁의 승리를 위해 응원하는 동안 그들은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러한 유대감을 경기장 밖에서까지 지속해 나가지는 않았다. 경기장 내에서 흥분하며 단합하였던 관중들은 경기가 끝나자 다시 일상에서 원자화된 개인으로 돌아갔다. 그렇다고 스타디움의 경험이 그들에게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스포츠사 연구에 사회학적 이론을 도입하여 연구의 지평을 넓힌 더닝(Dunning)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더닝에 따르면 관중의 정서적 유대는 일시적이었지만 경기장 안에서 그들은 서로에 대한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면서 자신들을 통제하려고 하는 권력자들의 의도를 회피하여 자율의 외딴 섬을 창조해 내었다고 한다. 일상의 공개적 장소에서 자발적으로 모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 힘들었던 스탈린 시대의 인민에게 스타디움은 잠시나마 권력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감정을 분출할 수 있는 기회로 다가왔다.

 

 

p.174

 냉전 시대의 미국과 소련의 경쟁은 쿠바 미사일 위기, 전략무기 확산경쟁과 같이 양 체제 군사력의 직접적 충돌의 양상을 보일 때도 있었지만 총성 없는 전쟁이었다. 경쟁의 분야는 실로 광범위했다. 스푸트니크(Sputnik)로 소련이 우주 진출의 선두주자로 나서자 미국은 대대적인 교육개혁을 통해 충격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했다. 영화, 미술, 음악 등의 예술 영역에서도 경쟁이 뜨거웠다.예술의 교류를 통해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힌다는 수사보다는 체제의 가치와 우수성을 과시하기 위한 선전의 도구로 이들 문화매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가 양 체제 모두에게 중요했다.

 올림픽은 이러한 경쟁의 의지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그 결과를 빠른 시간 안에 확인할 수 있는 장이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까지를 기준으로 하계 올림픽에서 소련이 메달 획득 수에 따른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하지 못한 해는 올림픽 참가 첫해인 1952년 헬싱키 올림픽, 1964년 도쿄 올림픽, 1968년 멕시코 올림픽의 세 차례에 불과했다. 소련의 정체로서 마지막으로 참여한 1988년까지의 하계 올림픽을 기준으로 할 때 소련은 미국을 압도했다. 이때까지의 올림픽으로 한정해서 말한다면 소련은 미국과의 문화전쟁에서 승리했다.

 

 


 

 

저자 소개

 

 

사진 출처 바로가기

 

박원용

서울대학교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인디애나 대학교에서 혁명 이후 러시아의 고등교육 체제 개편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혁명 이후 러시아 사회의 변화를 시각적 이미지, 일상의 경험과 관련지어 논의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현재 부경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생들에게 인류역사의 흐름을 전지구적 차원에서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역서로는 E.H. 카 평전(삼천리, 2012), 10월 혁명: 볼셰비키 혁명의 기억과 형성(책세상, 2008) 이 있으며 근대 서구의 충격과 동아시아의 군주제(공저), 스포츠가 역사를 말하다: 정치, 계급, 젠더(공저), 소련형 대학의 형성과 해체(공저) 등의 저서가 있다.

 

 

 


 

 

 

 

 

 

목차

 

 

들어가며

프롤로그

 

1부 스포츠와 신체문화: 소비에트 신인간형 창조과정의 긴장

 

1장 호모 소비에티쿠스

1. 교육 체제 개혁을 통한 호모소비에티쿠스 창출

2. 신체문화와 호모 소비에티쿠스: 이념의 계보와 이론적 논의

 

21920년대의 신체문화와 스포츠

1. 신체문화 이념의 구체적 적용

2. 네프기 신체문화 이념과 스포츠의 공존

 

3장 이미지로 본 스탈린 체제의 신체문화와 스포츠

1. 스포츠에 대한 인식 변화

2. 스탈린 체제 스포츠 문화의 개인이미지

3. 스탈린 체제 신체문화의 이념을 유지하기 위한 집단이미지

4. 대립적 이미지의 완화 - 지도자 이미지

 

4장 스탈린 체제의 스포츠 관람문화

1. 스포츠 관람문화의 생산주체 - 국가권력과 스포츠 스타

2. 스포츠 관람문화의 소비주체 - 관중

3. 스포츠 관람문화의 공간 - 스타디움

 

2부 올림픽 열전의 실제: 소련의 올림픽 참가부터 개최까지

 

5장 소련의 1952년 하계 올림픽 참가

1. 소련의 국내 스포츠 제전

2. 소련의 올림픽 참가 - 내부의 선결과제

3. 소련 올림픽 참가를 반대하는 외부의 명분

 

6장 냉전기(1950~1975) 올림픽에서 미국과 소련의 이미지 경쟁

1. 미국언론에 투영된 소련 선수의 이미지

2. 자국 선수들의 우호적 이미지 조성을 위한 소련의 대응

 

7장 올림픽 속에서의 열전- 우승 아니면 죽음을!

1. 우승확보를 위한 선수 양성 체제

2. 우승 아니면 죽음을! - 금지약물의 복용

 

8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1. 올림픽 유치전쟁의 1라운드

2. 올림픽 유치전쟁의 2라운드

3. 모스크바 올림픽 보이콧과 소련의 대응

 

에필로그

참고문헌

찾아보기

 

 

 

 

 


 

 

 

 

 


 

『소비에트 러시아의 신체문화와 스포츠


저자는 기존의 접근법에서 벗어나 조금은 '부드러운' 스포츠라는 소재를 통해 러시아 현대사를 소개한다.

 

 그렇다고 소련 현대사의 전체적 조망을 포기하고 스포츠와 같은 미시적 영역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소련사회 구조의 특성상 스포츠와 같은 문화영역은 전반적인 통치 이념이나 정책의 방향과 분리하여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스포츠를 통해 러시아의 정치사회적 변화를 살피며, 1920년대와 스탈린 시대, 냉전 시대로 이어지는 러시아사를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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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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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3국에 숨겨진 아름다움과 슬픔

발트3국은 우리에게는 생소한 나라이지요.
북유럽, 아니 북동유럽에 있는 나라입니다. 유럽 북쪽에 있는 발트해를 끼고 있는 나라로 구소련연방으로부터 독립한 세 나라, 바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라를 말합니다.
이 세 나라의 운명이 참 기구합니다.
강대국들 사이에 끼어 있는 약소민족의 운명이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와 닮은 점이 많습니다.
중세 이후로 독일의 지배를 받아왔고, 스웨덴, 폴란드, 덴마트 등의 각축장이었으며 20세기에는 강제로 소비에트연방이 되지요.

1939년 8월 23일, 히틀러와 스탈린은 비밀 협약을 맺습니다. 사이좋게 동부유럽을 나누어 갖자는 협약이었지요. 이로 인해 발트국 세 나라는 소련에 합병됩니다.
그러나 이후 50년 동안 그들은 스스로의 언어와 문화를 지켜냈고, 마침내 독립을 쟁취하기에 이릅니다.

이들이 독립을 쟁취하는 과정이 바로 세계를 놀라게 한 인간띠입니다.

인간사슬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


남쪽에 있는 리투아니아의 빌뉴스에서부터 시작하여 라트비아의 리가를 거쳐 에스토니아 탈린에 이르는 620km 기나긴 인간사슬을 만든 겁니다. 바로 독일과 러시아가 비밀협약을 맺었던 날로부터 딱 50년 후인 1989년 8월 23일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손에 손을 잡고 하루 종일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어린이나 어른, 나이 많은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습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여기에 집중되었고, 마침내 소련은 그들의 독립을 허용하기에 이릅니다.
바로 노래하는 민족의 무혈혁명이었습니다.

그 발트의 길 620km 여정을 따라 발트전문가 이상금 교수가 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짚어보는 게 바로 이 책입니다. 저자는 그들의 역사를 따라가며 우리의 역사를 돌아봅니다. 옛 한자도시의 명성을 간직하고 있는 도시는 중세 건축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저자는 그 아름다움 속에 스며 있는 슬픔을 찾아냅니다.

강 이쪽저쪽에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도시 리가 전경



북동유럽의 발트3국은 유럽이나 러시아와는 다른 생소한 풍광을 보여줍니다. 유럽인들에게 최고의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는 페르누 해변은 의외로 소박하기만 합니다. 에스토니아는 전 국토가 국립공원과 자연공원으로 덮여 있습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숲과 숲, 호수와 평원, 신비의 아름다움을 지닌 땅을 가졌기에 오히려 더 지난한 역사를 겪어왔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억센 역사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심성은 가없이 순정합니다. 세 나라 모두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지켜온 것은 바로 이런 사람들의 힘일 것입니다.

소박한 페르누 해변



발트3국에 숨겨진 아름다움과 슬픔 - 10점
이상금 지음/산지니

Posted by 아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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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람 2010.09.10 15: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간띠로 독립을 이루어내다니... 감동적이네요.
    620km면 부산에서 서울까지보다 긴 거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