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의 저자 김비 작가님의 이야기가 9월 20일 경향신문에 실렸습니다!

 


 

서로의 상처를 있는 그대로 끌어안는…‘남다른 부부’가 사는 법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 펴낸 박조건형·김비

▲ 일상을 드로잉하는 박조건형과 소설가 김비 부부가 함께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를 펴냈다. 우울증 환자와 성소수자인 부부는 서로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끌어안는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만나기 전에는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드로잉 작가와 소설가 부부, 페미니스트와 성소수자 부부, 만성 우울증 환자와 트랜스젠더 부부. 두 사람에겐 다양한 수식이 가능하다. 실제 만난 두 사람은 이 모든 것을 넘어서, 그저 ‘박조건형’과 ‘김비’ 부부였다. 세상이 어떻든, 누가 뭐라든 서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하고 사랑해서, 함께 있을 때 더 빛날 수 있는 사람. ‘상대방의 있는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란 사랑의 교과서적 정의를 이들에게서 봤다.

 
박조건형(41)과 김비(47) 부부가 그리고 쓴 책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 #일상, 그리고 쓰다>(김영사)를 펴냈다. 25년간 앓은 우울증, 성소수자의 삶, 열악한 노동의 현장, 알콩달콩한 사랑 이야기와 소소한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엮은 책이다. 슬플 수도, 비장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담백하고 유쾌하게 털어놓는 두 사람이 궁금해졌다. 부부를 지난 17일 서울 중구 정동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 예술과 인생의 조력자 


시작은 박조건형의 책이었다. 박조건형이 그린 그림을 책으로 낼 예정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그의 발목을 잡았던 우울증은 이번에도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책을 준비하면서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던 그는 책을 포기하려 했다.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김비였다. 박조건형의 그림에 김비가 글을 보탰다. 그렇게 두 사람이 함께 만든 첫 책이 출간됐다.


맞잡은 두 사람의 왼손 약지엔 각자 건(建)과 비(飛)가 한자로 새겨져 있었다. 결혼반지 대신 새긴 서로의 이름 글자다.


“짝지가 공저로 참여한 책 <다르게 사는 사람들>을 보고 관심이 생겼어요. 소설가란 걸 알게 됐고, 홈페이지에 글을 남기곤 했죠. 김비 작가의 팬으로 시작된 관계죠. 그러다가 서울에 올라와 처음 만난 뒤 호감을 갖고 사귀게 됐어요.” 김비는 “처음엔 이 사람도 다른 사람들처럼 호기심에 만나다가 또 헤어지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이 사람은 나를 숨기지 않았다. 처음 느껴보는 귀한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서로의 상처는 두 사람을 이어주는 강한 끈이다. 박조건형은 “우울증 때문에 삶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 미래에 대해서도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데, 옆에서 지켜봐주는 최고의 사람”이라고 말했다. 김비는 “있는 그대로 나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겨준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림과 소설을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일으켜 준 것도 서로였다. 박조건형은 대학 만화예술학과에 진학했지만 우울증 때문에 학업을 포기했다. 어머니가 있는 경상남도 양산으로 내려가 정유공장에 생산직 노동자로 취직하면서 그림을 손에서 놓았다. 하지만 데이트 도중 그려준 그림을 보고 김비가 너무 좋아했다. “만나면 자꾸 그림을 그려달라고 하니 억지로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보니 계속 그려볼까라는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비는 2007년 <플라스틱 여인>으로 여성동아 장편소설상을 탔지만, 그 이후에 잘 풀리지 않았다. 함부로 보관해 깨져버린 상패를 집 구석에서 찾아 정성껏 붙인 건 박조건형이었다. 박조건형은 ‘영업이사’를 자처하며 출판사에 투고를 했고, 그 결과 <빠스정류장>이 출간됐다. 김비는 “신랑이 없었다면 지금도 소설을 안 쓰고 잊혀졌을 것 같아요. 이 사람이 저를 끄집어내줬어요. 서로가 서로를 끄집어내고 일으키는 과정들이 쌓여 신뢰가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 우울증을 끌어안고 사는 법


두 사람에겐 우기와 건기가 있다. 박조건형이 우울증에 빠져 무기력한 시기가 우기, 우울에서 빠져나와 활기차게 보내는 때는 건기다. 김비는 “우기일 땐 힘들어 하지만 건기일 땐 누구보다 경쾌한 삶을 산다. 보이지 않는 밧줄에 옥죄어 있다가 풀려난 사람 같다”고 말했다.


사춘기 시절 정서적 돌봄을 받지 못했던 박조건형은 오랫동안 우울증으로 고생했다. 박조건형은 “우울증에 시달리다 빠져나오고를 반복하다보면 절망감도 크고 지친다. 하지만 나처럼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힘들게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다른 사람에게도 위로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비는 성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이 자신의 일부인 것처럼, 우울증 또한 박조건형의 일부로 받아들이면 된다고 말한다. 김비는 “제 정체성과도 똑같다. 나도 그걸 바꿀 수 없다. 그래서 신랑을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비가 박조건형에게 말했다. “승리하지 않아도 돼, 극복하지 않아도 돼. 버티고 있는 스스로를 칭찬하고 쓰다듬으면서 살아가는 것도 멋진 삶이야.”


■ 성소수자로서 “내 꿈은 자연사”


박조건형은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말한다. 박조건형은 “페미니즘은 약자들의 존재를 긍정하는 철학인 것 같다. 내게도 우울증이 있으니 약자로서의 정체성이 있다. 양성 쓰기를 하면 차별적 행동이나 발언을 조심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김비는 성소수자로서 누구보다 삶과 치열하게 싸워온 사람이다. 김비는 “차별이나 편견을 많이 겪었지만 애써 기억하고 살진 않는다. 제 삶에 소중한 사람들만 생각하고 살아도 정말 바쁘다”며 “성소수자로서 일상을 지켜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역할 같다. 농담으로 내 꿈은 자연사라고 말한다”고 말했다.

 

이번 책을 시작으로 두 사람은 앞으로 공동작업을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 지난해 42일간 다녀온 유럽 여행기도 함께 책으로 엮어낼 계획이다. “우울증을 겪으며 비를 맞았다가 해가 쨍쨍 났다는 기록을 남기고, 성소수자로서 삶의 기록을 함께 남긴다면 귀한 기록이 되지 않을까요.” 김비가 말했다.

 

경향신문 이영경 기자 

 

기사원문 보러가기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 10점
김비 지음/산지니

 

 

책 주문하기 >> https://goo.gl/cUJW3o

*산지니 출판사에서 직접 구매할 수 있습니다.

(10% 할인, 3권 이상 주문시 택배비 무료)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3월 11일 저녁, 

부산 남산동의 작은 도서관에서 세상에 하나뿐인 자리가 열렸습니다. 



바로 '아름다운 낭독회'.

남산역 근처에 있는 금샘마을도서관에서 매달 열고 있는 행사인데요. 

평소에는 도서관 식구들이 오손도손 모여 서로 책을 읽어주신다고 하는데

이번 낭독회는 작가님과 함께한 자리라 더욱 특별했습니다.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의 김비 작가님께서 함께해주셨어요. 

소리내어 작품을 읽다 보면 눈으로는 휙휙 지나갔던 단어들이 새롭게 다가오기도 하고 

목소리로 전해지는 말은 정말 그 자리, 그 시간에만 있으니 세상에 하나뿐 아닐까요.

그래서! 저 잠홍 편집자 이 자리를 놓칠 수 없었습니다ㅎㅎ 



길치인 나머지 약간 길을 헤메다 도서관에 들어서자 

작가님과 몇몇 독자분들께서 담소 나누고 계셨습니다. 도서관 구경 조금 하다가 

낭독 시작하기 전에 와인 한 잔! 


왼쪽이 김비 작가님이세요.


그러면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의 세계로 들어가 볼까요.



문이 닫히자, 세 사람이 섰던 좁은 공간은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진흙 같은 빛이었고 이상한 암흑이었다. 그들을 뒤덮은 묵직한 어둠은 지독히도 끈적거렸다. 늪에 몸을 빠트린 듯 버둥거리기라도 하면,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더욱 깊은 곳으로 침잠할 듯했다. 

(...) 

순간 어둠에 갇힌 사방이 몸을 떠는가 싶더니, 그들의 머리 위에서 파팍 불꽃이 튀었다. 비상등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붉은 빛이었다. 침이 고이는 주홍색 불빛은 순식간에 작은 공간을 삼켜버렸다. 두려움에 떨고 있던 세 사람은 이제 빛의 피를뒤집어썼다. 시뻘건 불빛 아래 겁에 질린 아내의 모습이 어쩐지 사자(使者)를 닮았다고 남수는 생각했다.

_프롤로그 '벌레' 중에서


소설의 도입부를 읽어주시고 작가님께서는 『붉 닫 출』의 배경으로 착안하게 된 실제 공간에 대해 이야기해주셨습니다. 

부산 도심부에 있는 *** 영화관은 겉은 휘황찬란하지만 내부는 오래된 건물입니다. 

그곳의 비상계단을 올라가면서 작가님께서는 

'어쩌면 나갈 수 없는 공간을 그저 앞에 가는 사람의 뒤꿈치만 보며 걷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셨다고 해요. 그 느낌이 우리의 삶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셨고 

그렇게 소설의 공간적 배경인 '초호화 백화점의 비상계단'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독자분들과 『붉 닫 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소설의 주인공 남수는 사실 좋아하기 힘든 인물이라는 말을 듣게 되는데요. 

저도 동의합니다. 남수는 공장의 생산직, 택배기사 일 등을 전전하다가 

아무리 노력해도 줄지 않는 빚 때문에 가족과 동반자살을 결심한 가장입니다. 불신과 열패감으로 가득한 남수는 결코 순수하거나 정의로 똘똘 뭉친 멋진 주인공이 아니죠. 

그런 남수에 대해 제가 연민이랄까 공감을 느끼게 된 지점은 바로 아버지와의 관계입니다. 아버지는 남수에게 어떤 의자로 기억되는데요. 작가님께서 읽어주신 부분을 옮겨 볼게요.


이미지 출처: http://alamode.news/user/nopynalda

남수의 어린 시절 기억 속엔 언제나 그 의자가 있었다. 나이가 들고 시간이 지나며 판잣집에 대한 기억은 거의 대부분 사라졌는데, 유독 그 의자의 모습은 항상 기억 속에 선명했다.

아버지 때문이었다. 그 의자엔 언제나 그의 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도망가버린 엄마를 찾아오라며 술에 취해 어린 남수에게 주먹질을 해대고 온 집안의 물건들을 엉망진창을 만들어놓고 나면, 그는 언제나 이백 원짜리 청자 담배를 물고 그 의자에 앉았다. 한쪽 다리가 부러져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데, 벽에 기대어선지 그 의자는 용케도 아버지의 몸뚱이를 버티고 서 있었다. 아버지는 그 의자에 앉아 담배 연기를 뿜으며 공장 벽을 타고 오르는 시커먼 흙먼지와 곰팡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술에 취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남수는 더욱 더 자주 그 의자에 앉아만 있는 아버지를 바라보아야 했다.

-'의자' 중에서


이 부분을 읽고 나니 어느 독자분께서 '아버지의 의자' 라는 노래도 있다고 알려주시더라구요.



"아버지는 의자 하나 남겨 놓은 채 / 지금 그 어디로 떠나셨나요" 

라는 가사는 남수가 할 것 같은 말이네요. 


혐오스럽지만 그리워할 수 밖에 없는 아버지의 기억을 떨치려 애쓰며, 

남수는 끊임없이 계단을 오릅니다. 

그리고 얼마나 올라왔는지 알 수 없고 다리가 무감각해졌을 때쯤, 이상한 것을 발견합니다.

붉은색 벽 위에 쓰인 두 글자.


'다시'


너의 구구절절한 투정 따위 알겠으니까,

처음부터 '다시'.

_'의자' 중에서


김비 작가님이 말하시길, 

'다시'는 누군가를 길어올리기도, 농락하기도 하는 말입니다.


'다시 시작해보자', '다시 일어나자'.

희망의 언어로 자주 쓰이지만 때로는 칼날처럼 날카롭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책의 표지에도 '다시'가 여러 번 적혀 있는데요. 


 

가운데 부분에 연한 회색 글씨로 쓰여진 '다시'들. 보이시나요? 

참고로 표지에는 작가님께서 직접 그리신 일러스트와 캘리그라피가 쓰였습니다.


위 인용문의 '다시'는 탈출구를 찾아 고통을 견디며 계단을 오른 남수를 무너뜨리는 말이지만

소설의 후반부에서는 또 다른 모양으로, 체온으로 다가옵니다.

'다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람 중 하나는 장애가 있는 남수의 아들 환이 이구요. 


작은 테이블 여럿을 이어붙여 만든 낭독의 장. 하나둘 독자분들이 모여 테이블 주위를 꽉 채웠습니다.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의 아름다운 낭독회에 참석하신 어느 독자분께서는 

"작가님이 낭독해주시고 이야기해주시는 것 들으면서 책을 읽으니 

소설인데 에세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고 하셨어요. 

작가님이 책을 직접 읽고 그 맥락을 나눠 주시고,

독자분들이 스스로의 배경을 모아 책을 이야기해주시니 

저도 몇 번 읽은 이 작품이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낭독회가 마무리될 즈음, 노란 공책 하나가 테이블 주위를 돌았습니다. 

공책에는 한 사람 한 사람 돌아가며 그 날의 감상을 적었어요. 


+

저는 집 근처에 시립도서관이 있어서 큰 공립도서관을 이용하는 편이라

마을도서관 방문이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금샘마을도서관처럼 작은 도서관들은 책을 읽고 빌리는 공간뿐만이 아니라 

마을의 사랑방 역할도 하고 있지요.

사진출처: 금샘마을도서관


'아름다운 낭독회'에서 저에게 놀라웠던 건 

작은 공간에 예상보다 많은 분들께서 찾아와주시고 

각자의 목소리를 내며 함께해 주셨다는 점이었어요. 

구비하고 있는 도서가 많고 다양한 것도 중요하겠지만, 

에 대한 어떤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지야말로 

책과, 공간과 관계를 맺고 이어나가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어느 독자분께서 말씀하셨듯, "밤에 언어를 나누는 즐거움"을 만들어주신 

금샘마을도서관 활동가 여러분, 그리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금샘마을도서관 찾아가는 길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 10점
김비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온수 2016.03.29 16: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봄 같은 글이네요. 도서관이 책에 대해 어떤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지 중요하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경험이 점점 귀해지는 시대 같아요. 김비 작가님도 든든했겠어요ㅎㅎ

    • BlogIcon 잠홍 2016.03.30 10: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핫, 네 저도 다시 할 수 없는 경험을 하고 왔네요. 다시 떠올려도 봄 기운이 살살 느껴지는 아름다운 낭독이었어요 :)

  2. BlogIcon 단디SJ 2016.03.30 09: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시'라는 말이 저렇게 날카롭게 들리다니... 그리고 표지에 '다시'라는 단어가 저렇게 여러 번 쓰였는지 몰랐네요. +_+

    • BlogIcon 잠홍 2016.03.30 10: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양날의 검 같은 '다시' ;) 표지에도 그렇고 본문 내에서도 여러 번 나오는 키워드에요. 총 몇 번 나오나 괜히 찾아보고 싶은 욕구가...(숫자로 보는 산지니의 후유증일까요)

  여러분은 서점에 가면 어떤 책들이 눈에 들어오시나요? 저는 표지가 예쁘거나, 주위에서 많이 들어, 제목이 친근한 책들을 주로 구매한답니다. 지난 일요일에도 그렇게, 책 한 권을 구입했습니다. 서점에서 익숙한 책이 눈에 들어왔는데요. 산지니 도서『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이었습니다. 마침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라 바로 구입했습니다. 




  표지가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표지 일러스트와 캘리그라피를 작가님께서 직접 하셨더라구요. 더욱『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이 궁금해지지 않나요? 

  이 책은 김비 작가님의 장편소설입니다. 160층 백화점, 정확하게는 비상계단에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 탈출하기 위해 끊임없이 위, 아래의 층으로 오르내리지만 그들에게 나타난 것은 또 다른 계단과 ‘다시’라는 절망입니다.

  이 소설의 시작은 남수네 가족이 비상계단에 갇히면서부터 시작됩니다. 택배기사인 남수, 무기력한 삶을 살아 온 아내 지애, 뇌 손상을 가지고 태어나 팔과 다리도 불편한 어린 아들 환이. 이들은 가난한 현실에 동반 자살을 계획하며 마지막 만찬을 위해 호화스러운 백화점에 갔다가 갇혀버리게 됩니다. 몇 층인지 알 수 없는 계단, 일반적인 색과는 다른 붉은색 비상등, 그리고 굳게 닫혀버린 문은 그들을 혼란스럽게 하지요. 남수는 자신의 삶을 본인의 의지로 끝내고 싶어 합니다. 이대로 알 수 없는 존재에 농락당할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비상계단의 출구를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처럼 비상계단에 갇혀 출구를 찾으려 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지요.

여기 이 세계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다가 어디든 몸을 눕히고 싶은 곳이 나타나면, 그곳에 작은 집을 삼고 추억을 만들며,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면서 살겠다고 말했다.  p233


  저는 그 중 ‘수현’이란 인물과 ‘정화’라는 인물이 인상 깊었습니다. 수현은 가슴이 달린 20대 청년이고, 정화는 아픈 엄마와 함께 사는 가난한 집의 가장이었습니다. 두 인물은 남수네 가족과 가장 오래 함께하는 인물이기도 하고, 가장 선한 인물이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정말 그들이 인상 깊었던 것은 암흑과 같은 상황에서도 둘이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며 새로운 꿈을 찾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삶을 응원하며 짙은 색 크레파스를 건네는 환이도 귀여웠습니다. 환이는 크레파스로 그들이 원하는 집을 그리라고 했고, 수현이 남수에게 건네는 칼을 보며 상어가 나타날지도 모르니 그냥 수현이 가져가라고 합니다. 붉은 등이 파란 등으로 변할 때, 바다 속이라며 유일하게 좋아하는 인물이기도 하지요.

  인물들은 같은 상황 속에서도 각자의 해답을 찾기 위해 계단 위로, 아래로 떠납니다. 결국 남수네 가족만 남고, 그들은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계단 위를 올라갑니다. 

  비상계단은 우리의 삶과 닮아있는 또 다른 세계입니다. 자의와 타의에 의해 오르락 내리락 거리지요. 갇힌 이유도, 탈출의 이유도 모른채 우리는 그저 탈출구를 찾을 뿐입니다.

과연 진정한 삶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어떻게 비상계단에서 탈출해야할까요.  


 벌써 마지막이라니 아쉬움이 남네요. 하지만 인턴 활동을 하며 평소에 바쁘다는 핑계로 소홀히 했던 글쓰기와 독서를 다시 시작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조미형 작가님과 최은영 작가님을 인터뷰하며 소설과 희곡. 두 장르에 대해 좀 더 고민해 볼 수 있어 저에게는 의미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저의 인턴일기를 읽어 주신 분들과 산지니에 감사드립니다^^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 10점
김비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단디SJ 2016.01.27 16: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지막 인턴 일기 잘 읽었습니다~ 붉닫출 사셨다면서 이야기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글이 올라오고, 글찌님의 인턴 생활의 마지막 날이 왔네요ㅜ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어요, 남은 방학 잘 보내고요~ 종종 산지니 블로그에도 놀러와주세요 : )

  2. BlogIcon 잠홍 2016.01.27 17: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길지 않은 인턴기간 중에 <붉닫출>을 골라 읽어 주셔서 기뻐요 :) 저도 수현 캐릭터에 애착이 있는데, 자신을 믿는다는 말이 와닿더라고요. 그동안 출근하면 글찌씨와 인사하고 하루 시작하는 게 습관이 됐는데 아쉽네요. 시간날 때 놀러오세요!

  3. 권디자이너 2016.01.28 21: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들 만하니 이별이네요. 그동안 수고 많았어요.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동반자살을 결심한 가족, 비상계단에 갇히다

“희망이라고 다 옳은 게 아냐. 어떤 희망은 후련한 절망만도 못해.” (98쪽)

노력하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희망이 간절한 시대지만, 어느새 희망은 ‘고문’으로 변질되기도 했다. 어두운 현실을 견디는 데 이야기가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고통스러운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것을 통해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편소설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의 방식은 정면 돌파다. 이 소설은 우리를 둘러싼 암흑으로 몸을 던져, 희망이 아닌 다른 언어로 삶을 비춘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트랜스젠더 여성 소설가인 김비 작가는 장편소설 『빠스정류장』, 에세이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 등을 통해 꾸준히 위태로운 삶 속에서 반짝이는 힘에 주목해 왔다. 신작『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은, 가난의 쳇바퀴를 도는 데 지쳐 동반자살을 택하지만, 자살이라는 출구조차 막혔음을 깨닫는 한 가족의 ‘후련한 절망’에서 시작한다.



삶을 향해 꿈틀거리는 이상한 절망

우리의 현실을 빼닮은 비상계단과 등장인물들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의 주인공 남수는 달동네에서 자랐고 여전히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 가장이다. 택배기사로 매일 수백 개의 계단을 오르지만 생활은 나아지지 않고, 비관으로 가득 찬 그는 무기력에 빠진 아내 지애, 그리고 뇌 손상을 가지고 태어난 여섯 살 아들 환이와 동반자살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마지막 만찬을 위해 들른 160층 초호화 백화점 건물의 비상계단에 갇혀버리고 만다. 아무리 두드려도 문은 열리지 않고, 위아래로 끝없이 이어진 계단만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자살시도마저 실패로 끝나나 싶지만, 남수는 오히려 꼭 살아서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고 느낀다. 생에 대한 그의 의지는 더 나은 삶에 대한 꿈이 아니라, 절망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시커멓게 끈적거리기만 했던 생각의 늪 속에서, 남수는 한 가지 확신이 생겼다. 남루하기만 했던 생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떠올랐다. (…) 기필코 여기에서 탈출하는 것. 그리하여 나를 억압했던 생을 농락하며, 망설임 없이 내 손으로 내 삶의 마지막을 선택하는 것. (18쪽)

남수 가족 외에도 계단에 갇힌 이들은 여럿이다. 비정규직으로 취직하면서 기초수급대상에서 탈락한 20대 여성 가장 정화, 명예퇴직 압박에 시달리는 명식, ‘일류대학 교수님 사모’이지만 남모를 아픔을 가진 해숙 등, 소설의 인물들은 모두 우리와 비슷하거나 우리가 일상에서 스쳐지나갔을 법한 사람들이다.

남수와 이들 일행은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좌절하지만, 더 위쪽에 있는 공중통로로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누군가의 말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 계단을 오른다. 그러다 아래에서 구조가 진행되고 있으니 내려오라는 구조대의 방송 소리를 듣게 된다. 하지만 계단을 내려가는 사람들을 맞이하는 것은 오히려 지진처럼 사방을 뒤흔드는 진동과 불길이다. 아직도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여러 재난들의 메아리이다.



“비상등이었다. 그런데, 붉은 색이었다”

한 편의 영화처럼, 강렬한 이미지와 빠른 전개를 갖춘 소설

비상계단이라는 한정된 장소 내에서 장편을 풀어가는 것은 난관이 될 수 있으나, 작가는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과 남수 가족 이외의 인물들을 적절히 등장시켜 이야기를 빠르게 전개한다. 문이 열릴 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남수 일행이 버렸을 때 공중통로의 가능성이 제시되고, 새로운 인물들이 제시하는 비상계단에 대한 정보는 서스펜스를 끌어올린다.

색과 이미지가 중요한 상징으로 쓰이기 때문에 소설은 한편의 영화처럼 읽히기도 한다. 예를 들어, 붉은 빛으로 계단 안 모든 것을 물들이는 비상등이 파란 바다색으로 바뀌면서 이야기의 반전이 시작된다. 또한, 소설 속 인물들이 각자 어떻게 이 계단에 갇히게 되었는지 털어놓으면서 모두가 붉은 띠로 가로막힌 문을 통해 이곳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정확히 몇 층에서 비상계단으로 들어왔는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설의 기본 설정에 대한 의문들과 이에 대한 힌트가 곳곳에 배치되어 재미를 더한다.




트랜스젠더 여성 작가가 쓴 소수자 문학

몸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 돋보여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의 저자 김비 작가는 트랜스젠더 여성으로,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를 만드는 데에도 참여한 바가 있다.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약자, 여성 등 마이너리티의 삶에 꾸준히 주목하면서 김비 작가는 작품 속에 소수자로 살아오며 쌓은 통찰을 담아왔다. 이 소설에서는 희망에 대한 관점뿐만 아니라, ‘몸’에 대한 작가의 사유가 특별히 눈에 띈다.

공중통로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주요인물 ‘수현’은 성전환 수술비용을 마련하려는 스무 살 트랜스젠더 남성이다. 성별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남수는 그를 괴물 취급한다. “인생 망치는 수술이나 하려고” 한다며 남수가 그를 비난하자, 수현은 ‘아저씨는 자신이 아닌 다른 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지만 나는 나를 믿는다’며 이렇게 말한다.

난 아저씨가 부럽지 않아요. 그렇게 간단하게 살 수 있는 삶이라도… 태어나보니 그 어떤 혼란도 없이, 그저 돈 벌면 행복하고 나쁜 짓만 하지 않으면 괜찮은 그런 삶이라도 (…) 아저씨한테는 그게 전부인지 모르지만, 나한테는 먹고 사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게 있거든요. (85쪽)

한편, 남수의 아들 ‘환’이는 기형적인 팔다리를 가진 아이다. 남수는 한때 환이의 탄생에서 희망을 보았지만, 환이는 남수가 동반자살을 결심하게 된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지애 또한 환이가 “족쇄” 같은 몸에 갇혀 살고 있다며 마음 아파한다. 하지만 환이는 오히려 “나… 안 이상한데? (…) 나, 지금처럼 예쁜… 내가 좋은데?”라고 말하며 웃는다.

‘비정상’의 몸을 가지고 있는 수현과 환은, ‘비정상’의 몸이란 본질이 그러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정상’을 만들어내고 유지하기 위해 부여한 의미 때문에 만들어진다는 것을 나타낸다.



삶과 죽음을 가로질러

암흑 속으로 또 다른 발걸음을 내디딘다

절망의 바닥에 가닿은 상황에서, 남수를 일으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불신’이다. 남수는 열리지 않는 문이 끝을 의미한다는 것을 의심하고, 그가 딛고 선 현실을 비관하며 삶을 꿈꾼다. 소설의 말미에서, 그의 아내 지애는 “당신이 나를 믿지 않든 (…) 지금 우린 당신이 필요해”라고 말한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서로가 필요하다는 고백, 그곳에 이 이야기의 핵심이 있다.

“나의 불안과 두려움은 부끄러운 것일까. 희망을 꿈꾸지 못하는 내게 미래로 나아갈 자격은 없는 걸까.” 김비 작가는 이런 질문에서부터 이 소설의 집필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찬란한 희망이 아니라, 어두움과 위험이 깃든 희망을 이야기하는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지금 암흑 속으로 발걸음을 디디려는, 디뎌야만 하는 독자라면, ‘우리는 같은 곳에 있다’ 말하며 내민 이 손을 기꺼이 잡아도 좋을 것이다. 


지은이: 김비

1971년 남과 북의 경계 위, 삶과 죽음의 경계 위,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경계 위에서 태어났다. 2000년 서른 살의 나이에 ‘여자’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고, 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플라스틱 여인」이 당선되어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2012년 세계문학웹진 『국경없는문학』www.wordswithoutborders.org의 세계 퀴어문학을 소개하는 자리에 단편소설 「입술나무」의 영어판을 게재하였고, 에세이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를 출간했다. 부끄러운 기억 같은 책 몇 권을 썼으며,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를 만드는 데 함께했다.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김비 지음 | 문학 | 국판 268쪽 | 13,000원 

| 2015년 10월 20일 | 978-89-6545-319-2 03810


동반자살을 결심한 가족, 비상계단에 갇히다. 
희망이 '고문'이 된 시대, 이 장편소설은 우리를 둘러싼 암흑으로 몸을 던져 희망이 아닌 '후련한 절망'에서 첫발을 내딛는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트랜스젠더 여성 소설가인 김비 작가의 네 번째 장편소설. 



차례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의 표지 일러스트와 캘리그라피,

그리고 본문 내 각 장의 제목에 쓰인 캘리그라피는 모두 김비 작가의 작품입니다.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 10점
김비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온수 2015.10.22 10: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이랑 책 소개랑 너무 잘 어울려요^^ 저도 얼른 읽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