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마을 추억과 공동체에 대한 애정

자신만의 우아한 수필세계를 펼치다

 

경남 김해에서 활발하게 문단 활동을 펼치고 있는 수필가 양민주 작가의 두 번째 수필집. 육친에 대한 그리움,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삶, 세계를 바라보는 유연한 태도를 담은 아버지의 구두는 성장기의 추억과 고향의 향기를 담아 베이비붐 시대에 태어나 격변을 겪은 중년의 독자들에게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이 작품은 제11회 원종린 수풀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번 책 나뭇잎 칼은 고향마을에 대한 아련한 추억과 가족과 도시라는 공동체에 대한 애정, 자연을 품은 넉넉한 마음을 담았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무장된 도시에서 저자가 전하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고향의 이야기는 팍팍한 마음이 절로 넉넉해진다. 여기에 범지 박정식 서예가의 아름다운 그림이 더해져 글의 멋을 더 살려준다.

 

 

 

 

 

이 시대의 평범한 아버지의 마음을 담담하게 담아내다

 

부모가 자식을 키웠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 어색하고 서먹하게 지내는 경우가 많다. 책에는 평소 살갑게 표현하지 못했지만 딸에 대한 아버지의 정을 담담하게 읽을 수 있다. 양주는 딸이 중국에 어학연수를 가서 용돈을 아껴서 아버지에게 술을 사 온 일화가 담겨 있다. 저자는 딸의 마음도 모르고 외삼촌 집에 술을 가져가서는 함께 먹지 않고 두고 온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딸은 아버지가 자신의 마음도 모르고 친척에게 술을 준 것이 슬퍼 운다. 서툴지만 아버지를 생각하는 딸의 마음이 먹먹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자신 역시 아버지에게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을 떠올리며 부모와 자식 간의 아름다운 정을 읽을 수 있다.

 

반면에 뒷좌석에 탄 딸아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고까워 보였다. 묻는 말에 대답도 없이 아예 말문을 닫아 버렸다. 아내가 조용히 왜 그러느냐고 달래자 나직이 이야기를 한다. “중국에서 연수하면서 배가 고파도 먹고 싶은 것을 참고, 사고 싶은 것도 사지 않고, 추위에 고생하며 아껴 둔 돈으로 연수를 보내준 아빠 드리려고 양주를 샀는데 아빠는 드시지 못하고 외삼촌 집에 놓고 온 게 싫다며 눈물을 뚝뚝 흘린다. -양주중에서

 

 

 

 

 

 

아련한 고향의 정서를 전하다

 

이번 수필집은 고향집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집은 인간이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생활의 터전이다. 우리의 모든 활동은 집에서 나와서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의 반복이다. 집에서는 여러 가지 사건이 발생한다. 책에는 집이라는 공간과 그곳에 함께 사는 가족들 간에 일어나는 일들을 담아냈다. 발문을 쓴 김찬 시인은 이번 수필집에서 고향을 테마로 한 것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을 그리운 늑대로 꼽는다. 책에는 야성과 인간이 어울려 살았던 그때를 그리워하며 아려한 고향의 정서를 전한다.

 

늑대가 농부의 아이를 물어 죽이는 사건은 끔찍하지만 양민주는 늑대가 인간과 공존하던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그 시절은 인간이 야성을 지닌 대상에 대한 두려움을 지니고 있었던, 지금은 되돌아가기 어려운 시절인 셈이다. -나뭇잎 칼에 덧붙여 중에서

 

 

 

 

연륜으로 읽어내는 자연의 이치

 

제목 나뭇잎 칼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 나뭇잎 칼은 저자가 삼랑진에 있는 절 만어사를 향해 올라가는 가파른 길에 잠시 쉬기 위해 앉은 벤치에서 만난 나뭇잎 칼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절에 올라가는 이 고행의 길에서 나뭇잎 칼을 발견하게 된다. 아무도 헤치지 않은 나뭇잎 칼을 보면서, 자연의 변화와 순환의 이치를 받아들이는 나무를 보면서 무욕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반성한다. 무심코 지날 수 있는 나뭇잎 칼에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바쁜 일상에 여유를 찾는다. 주변을 바라보는 섬세한 시선이 없었다면, 자연을 품은 넉넉한 마음이 없었다면 느낄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첫 문장

시골집 마루 위에는 시렁이 있다.

 

책 속으로 / 밑줄 긋기

 

P.13 세월이 지나 전쟁의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었을 때 장손인 아버지는 고모들과 삼촌의 도움을 받아 안채를 다시 지었다. 나는 터를 고르고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우고 상량을 올리고 서까래를 다듬고 짚을 잘게 썰어 넣어 진흙을 이겨 벽을 세우고 기와를 올리는 과정을 보면서 자랐다.

 

P.19 세상에 무소유라는 것은 나에게 있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진다. 소유에서 사유재인 물질인가 공공재인 정신인가의 차이로 여겨질 뿐이다. 여기에서 사람들은 물질을 버리고 공공재를 소유하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물질 대신 정신의 풍요를 추구하는 삶과 두 개는 많다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 정신은 나눔을 실행하게도 한다.

 

P.33 지난날 김해 들판에 나가 도심을 바라보면 시가지가 아늑하게 다가왔는데 이젠 이 아름다운 풍광을 볼 수 없어 안타깝다. 북쪽에도 아파트가 들어서 있는데 또 지으려고 한다. 아파트를 짓는 것은 나무랄 수 없다. 하지만 아파트를 짓는 모든 기업은 이익을 추구하기에 앞서 입지적으로 집을 지어 마땅한가를 고려해 주었으면 좋겠다. 가락국의 도읍지 찬란한 김해의 공간 입지에 맞지 않는 아파트는 흉물이 될 게 불 보듯 빤함을 염두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

 

P.139 여름의 무더운 날씨에는 물을 두레박으로 퍼 올려 뒤집어쓰기도 하고 붉은 고무통에 물을 퍼 담아 물놀이도 하면서 여름을 보냈다. 그러다가 권태로우면 가만히 들여다보기도 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쌓아 올린 돌의 표면에 푸른 이끼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고 이끼 끝을 타고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그 아래로 내 얼굴이 물에 비치고 있었다.

 

 

저자 소개

글쓴이 양민주

1961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났다. 인제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2006시와 수필을 통해 수필로, 2015문학청춘을 통해 시로 등단하였다. 수필집으로 아버지의 구두, 시집으로 아버지의 늪이 있으며 원종린수필문학작품상과 김해문학우수작품집상을 받았다. 현재 인제대학교 교무처 교무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cbe@inje.ac.kr

 

제호 및 그림 범지 박정식

1994년 대한민국서예대전 대상을 수상하였고 12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대한민국서예대전 초대작가이다.

 

 

 

 

 

 

 

 




 

나뭇잎 칼


양민주 지음 | 신국판 변형 15,000

9788965456001 03810


이번 책 나뭇잎 칼은 고향마을에 대한 아련한 추억과 가족과 도시라는 공동체에 대한 애정, 자연을 품은 넉넉한 마음을 담았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무장된 도시에서 저자가 전하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고향의 이야기는 팍팍한 마음이 절로 넉넉해진다. 여기에 범지 박정식 서예가의 아름다운 그림이 더해져 글의 멋을 더 살려준다.

 

 


 

 

 

 

 

 

 

 

 

나뭇잎 칼 - 10점
양민주 지음, 박정식 그림/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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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양민주 2019.06.11 16: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맙습니다.
    너무 훌륭하게, 너무 예쁘게 소개를 잘 해주셨네요.
    올리신 분의 건강과 산지니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2. BlogIcon 손 영순 2019.06.14 18: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필집 나뭇잎 칼 책 소개를 잘하신 윤 주희 선생님과 저자 양 민주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저승길을 물어서 간다 

 

 

 

▶ 50여 년 동안 철학을 연구해온 박선목 박사,

그의 팔십 평생에 녹아 있는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을 짚어보다.

 

수필집 『저승길을 물어서 간다』는 철학박사 박선목 부산대학교 명예교수가 팔십 평생을 살아오면서 마주한 삶의 모습과 죽음에 대한 생각, 그리고 삶과 사회를 지탱하는 철학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1980년부터 2000년까지 20여 년간 대학 강단에서 칸트, 윤리학, 가치론 등을 강의했고 정년 이후 글을 쓰고, 여행을 다니며 정리한 자신의 삶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했다. 이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유년시절의 기억부터 평생을 연구해온 철학과 삶에 대한 고뇌, 저자를 계몽으로 이끈 철학자, 여행 속에 만난 세계 각국의 문화와 자연 등 박선목 박사의 팔십 평생을 채운 이야기와 생각들로 가득 차 있다. 특히 한국 현대사를 겪어온 저자의 삶을 통해 후회 없는 삶, 부끄럽지 않은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노년, 인생의 끝자락과 가까워지는 그 시간 앞에서 저자는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누군가를 위한 생활이 아니라 나 자신을 되찾는 반성의 생활이었기에 언제나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 “삶의 시간은 책장 넘기는 소리” 박선목 박사의 삶을 채운 책과 철학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은 무엇일까? 유한한 삶에서 오롯이 나를 위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람의 삶’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단순히 생명만을 연명한 채 흐르는 시간 위에 서 있는 것은 ‘살아가는 것’이라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사람은 정신과 육체를 가진 이중적 존재”라 이야기하며, 특히 정신은 사고활동의 총체로서 인지, 정서, 의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즉,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적, 정서적, 도덕적 학습과 활동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번 수필집을 통해 지적 행위의 중요성과 여러 철학자의 학문적 성과들을 고스란히 전한다.

 

 

희랍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덕은 앎이라 했다. 아주 단조로운 정의이다. 거창하고 지키기 힘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무지함을 아는 것이 덕이라 했다. 왜 하필 자신에 대한 앎이라고 했을까? 그것은 자신에 대한 앎이 앎의 제1원리이기 때문이다. 만일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하면 다른 모든 앎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무지 여부를 아는 것, 다른사람에 대해 아는 것, 그리고 자연에 대해 지식을 얻어가는 것이 덕을 늘려가는 것이다. _ P.109

 

저자는 스스로를 ‘책의 주인’이라고 이야기한다. 누구보다 책을 사랑하기에 책은 저절로 벗이 되었고 평생을 함께 살아왔다는 것이다. 삶을 살아가며 마주하는 무수히 많은 질문 앞에서 저자는 늘 책을 펼쳐 들었다고 술회한다. 책은 생각을 성장시키고 자신만의 삶을 성숙시킨다. 생각대로 살아가는 것과 살아가는 대로 생각하는 것. 이 두 가지의 삶은 언뜻 서로 비슷한 듯하지만, 서로 다른 인생의 방향을 가리킨다. 저자는 책에 대해 “참으로 자비로운 존재”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사랑하고 삶의 길을 개척해가는 데 책의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보여준다.

  

 

 

▶ 앞산을 넘다 세계 일주를! 국내외 살아 있는 자연과 문화를 만나다

 

저자 박선목 박사에게 자연이란 어떤 의미일까? 그는 서문을 통해 “삶의 공간은 책과 대화하는 서재와 나의 생명의 기를 살려주는 자연이었다.”고 전하며 행복한 삶을 꾸려나가는 요소 중 하나로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정년 이후, 17년이라는 시간 동안 시간과 공간의 제한 없이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고 전하며 그 시간 동안 자신을 되찾는 반성의 생활을 하며 건강의 재보를 자연으로 돌린다.

 

 

1960년도 시작부터 학창시절과 일상생활에서 쉽게 할 수 있었던 취미생활은 등산이었고 등산을 하고 자연을 찾는 즐거움이 대학 연구생활과 연결되었다. 철학연구를 발표하는 봄, 가을에 전국 대학 철학과에서 세미나가 개최되었으며 그곳의 아름다운 산천과 절간에서 인자와 지자의 담론이 밤새 이루어졌다. (…) 나의 연구 활동은 해외 발표로 연결되었고 세계인들의 생활터전과 문화유산 및 자연유산을 체험하면서 더 높은 곳, 더 넓은 곳, 더 먼 곳의 세계 여행을 꿈꾸지 않을 수 없었다. _P.198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바쁜 연구 활동 중에도 틈틈이 등산을 즐겼다고 밝힌다. 그 결과 1000m가 넘는 전국의 모든 산을 올랐고, 해외 원정 등산도 여러 번 할 수 있었다. 그가 산과 자연을 가까이하며 걸어온 시간들은 자연스레 여행에 대한 꿈을 키우게 했다. 제4부에 수록된 글의 제목(「앞산을 넘다가 세계여행으로」)처럼 취미와 연구 생활에서부터 시작된 여행을 통해 저자는 각국의 자연, 문화를 경험하며 마음의 문을 열고 세상의 견문을 넓혔다. 50여 년 동안 다녔던 국내외 여행, 이를 통해 저자의 삶이 얼마나 풍요로워졌는지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다.

 

 

 

▶ "남은 인생 아무것도 감추지 않고 노인답게 살아갈 뿐이다"

 

삶과 죽음은 모순된 개념이지만 한편으로는 삶 자체가 죽음에 의한 존재이고, 죽음 역시 삶 속에 들어 있다. 하이데거의 주장처럼 사람은 죽음으로 가는 존재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을 직접 경험할 수 없기에 타인의 죽음을 통해 삶의 유한함을 깨닫고 죽음의 공포를 느낀다. 생의 활력이 가라앉고 삶의 끝과 가까워지는 노년의 시간. 저자는 자신에게 다가온 그 시간 앞에 서서 담담하게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견해를 밝힌다.

 

죽는다는 것은 단순히 생명의 끊어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개인적 욕망을 성취시키는 것, 자신이 희망하는 행복을 얻기 위해 창의력을 발휘하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죽는다는 것 속에 있는 것이다. 만약 내가 죽는다는 전제에서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즉 죽음에의 삶이며 삶의 방법, 목적 자체가 죽는다는 의미의 자기 모습이다. _p.242

 

이 책은 어느 학자의 개인적인 삶의 기록이자, 삶이라는 물음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며, 죽음의 길에 대한 질문이다. 박선목 박사는 삶에 대한 물음이 곧 저승길을 묻는 것이라 말하며 창조적 존재, 도덕적 의식의 주체, 미감적 활동의 주체로서 자신의 삶을 자문한다. 그리고 그 해답은 본인의 저승길에서 주어지는 것이라 전한다. 죽음 앞의 시간에서도 자신의 모습을 잃지 않으며, 지금껏 걸어온 길을 따라 자유롭게 걸어가는 것. 『저승길을 물어서 간다』 속에서 보여주는 박선목 박사의 삶에 대한 철학적 태도는 읽는 이로 하여금 큰 울림을 줄 것이다.

 

 

저승길을 물어서 간다

 

박선목 수필 | 320 판 | 20,000원 | 978-89-6545-383-3 03810

 

수필집 『저승길을 물어서 간다』는 철학박사 박선목 부산대학교 명예교수가 팔십 평생을 살아오면서 마주한 삶의 모습과 죽음에 대한 생각, 그리고 삶과 사회를 지탱하는 철학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유년시절의 기억부터 평생을 연구해온 철학과 삶에 대한 고뇌, 저자를 계몽으로 이끈 철학자, 여행 속에 만난 세계 각국의 문화와 자연 등 박선목 박사의 팔십 평생을 채운 이야기와 생각들로 가득 차 있다.

특히 한국 현대사를 겪어온 저자의 삶을 통해 후회 없는 삶, 부끄럽지 않은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노년, 인생의 끝자락과 가까워지는 그 시간 앞에서 저자는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누군가를 위한 생활이 아니라 나 자신을 되찾는 반성의 생활이었기에 언제나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저승길을 물어서 간다 - 10점
박선목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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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권디자이너 2016.12.12 21: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초록 배경이 산뜻하네요.^^
    공간이 바뀌니 느낌도 다른 듯.

  2. BlogIcon 별과우물 2016.12.14 10: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로 와주신 편집자님의 글이었군요! 환영합니다. ^^
    앞으로도 좋은 책 소개 부탁드릴게요~

  3. BlogIcon 단디SJ 2016.12.14 12: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낑 편집자님~ 반가워요! 신간 <저승길을 물어서 가다>도 반가워요!!!

이병순 소설집 『끌』

불안 허공 탈주




 『끌』은 제가 인턴을 시작할 때부터 줄곧 책상 위에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당시 방금 막 나온 신간도 아니었고, 사무실의 누군가가 읽다 잠시 위에 올려두신 것 같았습니다. 누가 제게 읽으라고 한 적도,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도 없었지만, 왠지 시간이 날 때마다 눈이 가게 됐습니다. 그렇게 4주째 『끌』은 자리를 지키게 되었습니다. 






「명사」

 망치로 한쪽 끝을 때려서 나무에 구멍을 뚫거나 겉면을 깎고 다듬는 데 쓰는 연장.


 끌은 끊임없이 가구를 다듬습니다. 까슬한 겉을 깎고 다듬어야 죽은 나무는 비로소 공간에 놓일 수 있습니다. 『끌』은 불안하고, 텅 빈 공간에서 계속해서 끌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인질


 볼라와 언감생심, 개죽, 인질 주인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은 비어 있다. 연한 하늘색 바탕에 사람의 두상 그림만 연회색으로 희멀겋게 파여 있다. 파인 부분은 마치 두상을 도려낸 흔적 같다. 인질 주인의 카카오톡은 누구와도 대화를 주고받지 않았다. (12쪽.)


 '인질'은 택시기사 동수와 인질 주인의 연결고리입니다. 동수는 인질을 통해 인질 주인에게 푼돈을 뜯어내 보려 하지만, 인질 주인은 연락도 인질을 구하려는 의지도 없어 보이죠. 어쩌면 인질 주인의 텅 빈 삶에서 인질은 그다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 않나 봅니다. 인질의 '현대인의 필수품'이라는 별명에도 불과하고 말입니다. 주변 인물과 동수의 통화를 생각해 보면 인질 주인은 그닥 행복한 생활을 한 것 같아 보이진 않습니다. 욕설이 가득한 지칭으로 인질 주인을 부르는 개죽의 말에서 오히려 인질을 찾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텅 빈 삶 속에서 인질 주인은 인질로부터 탈주하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인질 주인은 '누구와도 대화를 주고받지 않았'고, 프로필의 두상은 마치 '도려낸 흔적' 같습니다. 



에볼라 출혈열 [ ebola hemorrhagic fever ]

: 에볼라 바이러스에 의해 발열과 전신성 출혈 증상이 발생하며 치사율이 매우 높은 질환

焉敢生心 [ 언감생심 ]

: ‘어찌 감(敢)히 그런 마음을 먹을 수 있으랴’







 놋그릇


  씨는 흙바닥에 담배를 비벼 끄고 손자 손에 이끌려 쪽마루에 올라선다. 맵싸한 향내가 코를 파고든다. 교자상 너머 병풍은 산처럼 우뚝하다. 영정 속의 얼굴은 모두 다 같아 보인다. 남편은 시아버지 같기도 하고 친정아버지 같기도 하다. 희로애락에 치이고 부대낀 흔적은 어디에도 비치지 않는다. 이승에서 겯고튼 흔적은 죽으면 바람이 다 걷어가 버리는 것일까. (49쪽.)


 손 씨에게 담배와 제사는 옛사람을 마주하는 기회이자 현재를 잊는 시간입니다. 언제나 생각에 붙잡혀 사는 손 씨는 놓을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제사, 아들, 큰 며느리, 남편. 향불 앞에서 그녀는 꽉 막힌 현재를 벗어납니다. 손 씨는 "그저 향불 앞에 오래오래 엎드려 있고 싶"습니다.



서름-하다

「형용사」

「1」【(…과)】((‘…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는 여럿임을 뜻하는 말이 주어로 온다)) 남과 가깝지 못하고 사이가 조금 서먹하다.

「2」【…에】사물 따위에 익숙하지 못하고 서툴다.







 


 는 아내를 잡을 언턱거리가 없었다. 그러나 아내에게 품었던 고마움과 미안함은 내 분노와는 결코 맞먹지 못했다. 아내의 남자는 수필 쓰는 사람이라 했다. 수필 쓰는 사람, 그 소리가 내 귀에는 숫돌 가는 사람으로 들렸다. (67-68쪽.)


 '나'는 끌질을 하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아내를 떠올립니다. '나'는 아내를 잘 알고 있지만, 아내는 어디선가에서 계속 때를 묻혀 오죠. 익숙한 아내가 낯설어지는 순간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과거와 지금의 아내를 되짚어 보고 있습니다. 옛 찻집 주인의 내연녀를 통해서도 아내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내연녀 영란에게, 아내에게 그랬던 것처럼, 서랍장을 남기는 것은 끊임없이 떠오르는 아내의 모습에서 벗어나기 위함일지도 모릅니다. 



수필 (隨筆)

「명사」『문학』

 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고 인생이나 자연 또는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이나 체험을 생각나는 대로 쓴 산문 형식의 글. 보통 경수필과 중수필로 나뉘는데, 작가의 개성이나 인간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유머, 위트, 기지가 들어 있다. 


숫-돌

「명사」

 칼이나 낫 따위의 연장을 갈아 날을 세우는 데 쓰는 돌. 

숫돌이 저 닳는 줄 모른다

 숫돌에 무엇을 갈 때마다 숫돌 자신이 닳는 것은 알지 못한 채 점차 닳아서 패게 된다는 뜻으로, 조금씩 줄어드는 것은 잘 느끼지 못하나 그것도 쌓이면 무시할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부벽완월


 식이 왕명을 어기면서까지 지상을 죽인 것을 두고 그를 향한 시기심 때문이라는 말들이 떠돌았다. 변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기심에 사로잡혀 지상을 죽였다는 말은 틀렸다. (중략) 지상을 향했던 순정한 동경과 그를 품었던 절절한 마음을 욕되게 하지 않으려면 어떤 소문에도 의연해야 했다. (85쪽.)


 부식은 지상의 시적 감각과 능력을 몹시 사랑하고, 동경합니다. 윤언이 '글 동냥'을 한다며 조롱을 할 정도로 그는 시에 대한 애착이 깊고, 지상의 시를 좋아했습니다. 부식의 눈에 비친 지상은 고고하고, 고매합니다. 또 그에 대한 시기심은 부식을 더욱 안달하게 합니다. 그러나 지상은 부식과 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부식은 정치적인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자 자신보다 관직에서 높은 성취를 이룬 인물입니다. 부식은 지상과 시에 대에 말을 나누고 싶지만, 지상은 날카로운 정치 이야기만을 늘어놓습니다. 오히려 시에 회의적인 모습도 보입니다. 높은 관직의 부식은 다른 의미로 지상에게 열등감을 주는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벽완월」은 부식의 눈으로 부식의 소리로 지상의 감정을 보여줍니다.



雨歇長堤草色多(우헐장제초색다)  비 갠 긴 언덕에 봄빛은 푸른데

送君南浦動悲歌(송군남포동비가)  남포에서 임 보내는 구슬픈 노래

大同江水何時盡(대동강수하시진)  대동강 물은 어느 때 마르려는지

別淚年年添綠波(별루년년첨록파)  해마다 이별의 눈물을 푸른 강에 보태고.

<대동강, 정지상>   







 슬리퍼


  나이 때는 인생의 무게가 제 발밑에 있을 때였다. 또한, 발돋움하지 않으면 세상이 보이지 않을 것같이 초조함이 깃든 나이였다. 찰칵찰칵. 학생들이 카메라에 담기는 소리는 경쾌했다. K에게 부재중 전화가 마흔여섯 통이 와 있었다. (125쪽.)


 '여자'에게 신발은 구속입니다. 그녀가 앓고 있는 무지외반증은 그녀를 신발의 틀에 오래 잡혀있을 수 없게 합니다. 그런 '여자'에게 K는 계속해서 슬리퍼 대신 플랫슈즈를 권합니다. 마치 신발로 '여자'의 삶을 붙잡으려는 것처럼 말입니다. 신발은 언뜻 우리의 발을 보호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래 신고 있다 보면 발에 땀이 차기도 하고, 속에 날카로운 것이 있으면 오히려 우리 발을 해치기도 합니다. 보온성이 그렇게 뛰어나지는 않아서 때로 한겨울 거리의 한기를 발에 전하기도 합니다. 발을 감싸는 듯하지만 어떻게 보면 발을 꽉 안아 붙잡고 있죠. '여자'에게 삶은, K는 신발입니다. 신발은 '여자'를 꽉 안아 그녀의 삶을 떠날 수 없게 만듭니다. 그래서 '여자'는 항상 슬리퍼를 착용합니다.



슬리퍼 (slipper)

「명사」

 실내에서 신는 신. 뒤축이 없이 발끝만 꿰게 되어 있다.

「참고 어휘」끌신.


간헐-천 (間歇泉)

「명사」『지리』

 일정한 간격을 두고 뜨거운 물이나 수증기를 뿜었다가 멎었다가 하는 온천. 화산 활동이 있는 곳에서 많이 나타난다.







 창(窓)


 게 창은 알맞은 양분의 햇빛을 관통시키는 프리즘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창은 프리즘도 사탕 빛 정서도 아닌 틀과 유리로 이루어진 건축 구조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깨달았다. (137쪽.) 


 '창'은 흔히 소통의 소재로 등장합니다. 열리는 투명한 벽은 바깥 공기를 들이기도, 풍경을 보여주기도, 날씨를 알려주기도 하는 세상과의 연결고리입니다. 여자는 1층의 방범창이 마치 감옥 같습니다. 그녀는 계속해서 창을 흠집 내고, 깨고, 부수지만 결국 다시 창을 필요로 합니다. '덜 마른 옷을 입은 것처럼' 기분 나쁜 이곳에서 창은 외부로 통하는 공간이자 바깥세상을 막아주는 벽입니다. 반면 '나'에게 창은 양분을 통과시키는 프리즘이었습니다. 그리고 빛을 들여오는 통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은 '나'에게 무겁기만 합니다. "넌 우리의 빛이다."가 "우린 너의 빚이다."가 되는 것처럼. 현실 속 창은 '틀과 유리로 이루어진 건축 구조물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빚에서, 젖은 습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와 '여자'에게는 창이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窓)

「명사」

「1」=창문(窓門).

「2」『컴퓨터』모니터 화면에서 독립적인 환경을 나타내는 사각형 모양의 영역. 흔히, ‘윈도’라 한다.


창문 (窓門)

「명사」

 공기나 햇빛을 받을 수 있고, 밖을 내다볼 수 있도록 벽이나 지붕에 낸 문.











 닭발


 린 시절, 엄마는 언도가 거짓말을 할 때마다 닭발을 입에 물렸다. 닭발을 채찍으로 삼아 입안을 후려치려는 의도였다. 티끌만큼의 선처도 없었고 예외도 없었다. 닭발을 물지 않으려고 도리질을 쳤던 어느 날, 발가벗겨진 채 마당에 내쫓긴 기억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것 중의 하나였다. (166-167쪽.)

 슨 말인가 묻고 싶었지만, 혀는 움직이지 않았다. 언도는 전화기에 거친 숨만 내보냈을 뿐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아교풀을 잔뜩 삼킨 것 같았다. (174쪽.)


 언도에게 '말'은 거짓말과 눌언이었습니다. '엄마'의 죽음 이후 자진해서 닭발을 씹는 언도는 그 거짓말과 눌언을 스스로 채찍질하는 걸지도 모릅니다. 언도는 말문이 트이자 오히려 군말이 줄었습니다. 헛말이 없는 입속은 빈 꽈리처럼 홀가분하고 유연합니다. 그런 언도에게 다시금 거짓말을 유도하는 사람은 언도의 눌언을 교정했던 '공'과 '선배'입니다. 그래서 언도는 오늘 다시 닭발을 씹습니다. 오도독하고 닭발을 물면 헛말은 목구멍으로 넘어갈 것입니다.



아교- (阿膠-)

「명사」

 짐승의 가죽, 힘줄, 뼈 따위를 진하게 고아서 굳힌 끈끈한 것. 풀로도 쓰고 지혈제로도 쓴다.







 비문(蚊)


飛 [날 비]

蚊 [모기 문]


 엌의 선반과 살강을 달그락거리는 쥐가 아침의 적막을 깨뜨린다. 수리는 사과 소쿠리를 들고 툇마루에 나간다. 사과를 차례차례 헛간 옆으로 던진다. 물컹한 사과들을 만지자 쉬파리들이 후르르 날아오른다. 쉬파리 떼들이 후룩 수리의 얼굴을 덮치다 이내 허공으로 치솟는다. 손에 묻은 사과의 농액은 추깃물 같다. (183쪽.)


 비문증을 앓고 있는 수리에게 안유백은 썩은 사과입니다. 썩은 것만 보면 쉬파리가 들끓는 것처럼 보인다는 수리는 양반인 안유백에게 억압받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수리가 그린 안유백의 초상화는 탈주를 위한 열쇠입니다. 파과에 모여있던 쉬파리가 후룩 날아가 버리듯 수리는 도망치고 싶습니다. '바람이 휩쓸고 지나가면' 수리는 이제 그곳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파과 (破果)

「명사」

 흠집이 난 과실


추깃-물

「명사」

송장이 썩어서 흐르는 물. 








 끌은 끊임없이 가구를 다듬습니다. 꺼슬한 겉을 깎고 다듬어야 죽은 나무는 비로소 빈 공간에 놓일 수 있습니다. 『끌』불안하고, 텅 빈 공간에서 벗어나기 위해 계속해서 끌질을 하고 있습니다. 








 - 10점
이병순 지음/산지니

(단어뜻 출처-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http://stdweb2.korean.go.kr/main.jsp)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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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단디SJ 2016.02.23 17: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설의 제목인 단어들과 그 외 소설 속 단어들을 이렇게 정리해보니, 제목의 의미가 또렷히 다가오는 것 같아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직접 책을 읽고 포스팅까지 하시다니!! 엄지척!! (『끌』은 제가 정말 애정하는 소설집인데...! 소근소근~)

  2. BlogIcon 잠홍 2016.02.24 15: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어들이 조각보처럼 모여서 시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서평이네요. 책을 읽는 이런 방법도 있구나, 이 단어는 이런 말이었구나 하며 읽었습니다 :)

 

양민주 『아버지의 구두』

제11회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지난 12일(토) 대전에서 열린 원종린 수필문학상 시상식에서

양민주 선생님의 『아버지의 구두』가 작품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번 제11회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을 수상한

양민주 선생님의 『아버지의 구두』는

 

  양민주 수필가의 첫 번째 수필집으로 생을 바라보는 조화로운 시선과 같은 통찰로 자신이 경험한 삶의 조각들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저자는 육친에 대한 강렬한 그리움, 평상심을 잃지 않고 자연의 이법을 따르는 삶, 타인의 입장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유연한 태도 등 자신만의 고아한 수필 세계를 이 책에서 마음껏 펼치고 있습니다.

  양민주의 수필 세계에서 아버지는 자신을 지배하는 존재가 아니라 성장기의 추억과 고향의 향기를 간직하고 있는 감성적인 존재로 저자의 감수성을 길러주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이렇게 길러진 따뜻한 감수성은 책 곳곳에 섬세한 문장으로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제 11회 원종린 수필문학상 수상작

대   상 -  장정식 (시가 있는 피서지』 )

작품상 -  양민주 (아버지의 구두』)

              강근숙 (흑백사진』),       

              양정숙 (마음 밭에 뛰노는 빗소리』) 

  

 

아버지의 구두 - 10점
양민주 지음, 박정식 그림/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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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양민주 2015.09.21 12: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산지니에 감사드리며, 수고했다고 자신에게 말합니다.

  2. BlogIcon 아니카 2015.09.23 11: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한테 화환 보내주어 감사하다는 메일이 왔었는데 제가 말을 안 했군요. ^^;; 사진 맨 오른쪽이 저희가 보낸 화환입니다. 아주 예뻐요. ㅎㅎ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