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였죠?

3월 23일(화) 제71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이번의 책은 산지니 시인선 열두 번째 작품인 신정민 시집 『나이지리아의 모자』였는데요,

저자 신정민 시인과 문학평론가 구모룡 선생님의 대담으로 진행됐습니다.

 

 

오늘 행사의 포문을 열어주신 잠홍 편집자님!

『나이지리아의 모자』 중에서 <좋아한다는 말>을 읽고 식곤증을 이겨내셨다는데요.

'좋아한다'는 말이 '전어를 죽이고, 회 한 접시를 만들어낸다'라는 시를 보면서

제목과는 또 다른 반전이 숨어있는 시집이라고 이야기해주셨어요.

 

 

사실 이 날의 행사는 시인과 문학평론가의 '대담'이라기 보다

함께 시를 읽고, 시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는(혹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어요.

그래서 여러 편의 시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요,

그 중 기억에 남는(저의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주관으로~) 

시와 이야기들을 옮겨볼까 합니다.

 

<색깔빙고>

 

무지개의 본질은 흑백이므로

 

회색분자들이여

무지개를 그려보자

 

그림자가 우리를 속일 수 있게

 

옷장을 열어보자

새빨간 거짓말 코트를 입어보자

말만 번지르르한 헛소리 흰색으로 칠해보자

 

알래스카의 무지개는 삼원색으로

아프리타 인디언의 무지개는 스물하나 크레용으로

 

검은색은 현상일 뿐

검은 것 아닌 검은색 가까이 다가가 보자

 

가다 만난 회색으로

흰 것 아닌 흰색 멀리 도망쳐보자

도망치다 만난 무지개를 그려보자

 

모든 색을 다 쥐고 있는 태양

 

바다가 갖지 못한 푸른색으로

빨간색만 빼고 나머지 색을 다 감춰버린 원숭이 엉덩이로

익어버린 망고가 내놓지 않은 노란색으로

 

싸우는 자들의 본색이 드러나게

흉내 낼 수 없는 흑과 백 사이의 일탈을

 

구모룡 문학평론가(이하 구) : 눈으로 본다는 것은 문화입니다. 부시맨은 모래를 오십 가지를 구분하는데 호주사람들에게 모래는 딱 한 가지 밖에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것밖에 보지 않았다는 거거든요. 우리가 보는 눈이라는 감각이 그런 것이 아닐까 싶어요. <색깔빙고>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신정민 선생의 시를 보면 우리가 보는 것이 진실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이 시를 쓰실때 어떻게 착상을 했습니까?

 

신정민 시인(이하 신) : 우리는 보통 흰 것 아니면 검은 것으로 이분을 하잖아요. 이분된 것 안에는 수만 가지의 또다른 것들이 있는데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굉장히 복잡미묘한 무언가가 있을텐데, 우리는 그저 너는 너고 나는 나로 넘어가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저는 회색분자여서 검정도 흰 것도 아닌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는데, 아프리카 무지개가 24가지 색이라는 거예요. 저는 무지개가 12가지라고 생각했는데, 색과 색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다른 색이 존재하는 거죠.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아!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시는 그러한 지점에서 시작한 시입니다. 그런데 그것만 가지고는 시가 될 것 같지 않아서 빙고게임을 가지고 왔어요. 같은 색이 되어야 빙고!를 외칠 수 있는 게임인데, 이 시에서는 빙고가 되지 못하는 색깔빙고가 되겠네요.

 

: 시를 쓰실 때 어떤 방식으로 쓰시는지요? 예컨데 제목을 나중에 쓴다던가 한 문장 한 문장 고심을 해서 글로 옮긴다던가.

 

: 저는 생각은 오래하고, 쓰기 시작하면 득달같이 쓰는 타입이에요. <색깔빙고>도 평소에 했던 제 생각들이 불쑥 나온 작품이라 할 수 있겠네요.  

 

: 참 재밌는 착상이고, 재밌는 시네요. 우리는 빙고라고 외칠 수 없는데 빙고라고 외치고 있진 않나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방추상회>*

 

내 머릿속에는 얼굴을 지워주는 가게가 있다

 

배꼽 근처의 타투를 지우듯

당신이 누구였는지 알아볼 수 없게

생전 처음 보는 얼굴로 바꿔주는 곳

 

놀러오세요

구경만 하고 가셔도 됩니다

불편한 호객 따위 하지 않는 곳

 

그래서 나는 언제나 당신을 처음 보고

 

두부 대신 사 온 커다란 양배추 주머니의 속의 붉은 두더지들

 

스물일곱 번의 꿈을 꾸고서도 단 하나의 꿈도 생각나지 않는

잔인한 농담을 처리해주는 곳

 

당신이 버린 얼굴들의 매립지

버린 것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게

 

조금 전까지 읽고 있었던 책을

감쪽같이 보관해주는 곳

 

아름다운 건 늘 처음 보는 것

 

생각날 듯 끝내 생각나지 않는

화이트 아웃 혹은 블랙아웃을 포장해주는 집

 

다양한 이목구비

헤어지면서 잊어버릴 수 있게

부위별 깜짝 구매가 가능한 곳

 

방바닥에 귀를 대고 아래층 소리를 엿듣는

목요일이었던 남자를 읽는 깊은 바까지

기어이 잊어주는 곳이 있다

 

(* 뇌 중에 얼굴을 알아보는 기능을 하는 곳)

 

: 제가 기억력이 정말 없어요. 점점 더 기억력이 약해지는 것 같아서 백과사전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백과사전에 방추상회라는 것을 보는 순간, '아! 참 재밌겠다'란 생각을 하게 됐죠. 그때 마침 <목요일의 남자>라는 소설도 읽었어요. 사람의 이름을 목요일이라고 명명하는 게 참 재밌는 거예요. 그게 방추상회와 만난 게 이 시가 아닐까 싶어요. 나는 잊어버리지만, 그 기억들은 어딘가에 저장이 되고 있지 않을까라는 상상에서 시작해서 방추상회라는 시가 완성됐죠. 착상이 참 재밌었던 시입니다.

 

: 의식이나 기억들이 지워지고, 오히려 최초의 기억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면서도 의미있는 말인 것 같아요. 시에서 '아름다운 건 늘 처음 보는 것'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것이 이러한 의미를 잘 보여주지 않나 싶습니다.

 

 

 

<나이지리아의 모자>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모자를 뜬다

빈곤이 만들어낸 심연과 굴욕에 씌워줄

빼앗긴 대지에 씌워줄 무늬 없는 모자

뉴욕만큼 비싼 물가와

사하라 사막에서 날아온 모래먼지의 나라

노예가 되기 위해 태어나는 아이들

강제 노역과 매질에 필요한

강한 바람과 우기의 천둘에게 씌워질 모자

회색의 열풍

나무에 매달린 채로 발아하는

맹그로브 숲의 씨앗들에게 씌워줄 모자를 뜬다

시만 있고 사랑이 없다면

단어들만 있고 그리움이 없다면

내일은 오겠지만 당신이 없다면

어머니가 되기 좋은 나라에서 온 편지

답자 대신 모자를 뜬다

시는 사랑이 쓰는 거라서

그리움만이 단어를 찾아 떠나고

당신이 없다면 내일도 없다고

손끝에서 태어나는 모자

생명과 두려움

그 둥근 실타래를 풀어 뜬다

태어난 날 사망하는 나이지리아의 체온

작고 검은 얼굴에 어울리는 푸른 햇살로

모자를 뜬다

한여름 나이지리아의 고무단이 촘촘하다

 

표제작인 <나이지리아의 모자>에 대해 이야기해봐야 겠죠?  이 시에서의 지향점은 인류애, 타자에 대한 이해인데 이는 시인들의 지향점이라고도 보입니다. 

 

: 우리 딸아이가 아프리카로 보낼 모자를 항상 만들어요. 시집도 안 간 이 친구에게는 13살짜리 아들이 아프리카에 있고 그래요. 그걸 보면서 생각했어요. 이렇게 멀리서도 사랑을 줄 수 있는거구나.  이 아이가 뜬 모자를 통해 한 생명이 살 수도 있는거구나. 시집의 제목을 정할 때,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이 시가 가장 편하고 솔직하다고 생각했어요. 먼 곳에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하나쯤 나올 수 있다고도 생각했고요.

 

 

: 시를 함께 읽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니 신정민 시인의 창작 방법이 궁금해요. 저는 이 시집을 보면서 제목을 먼저 보고, 시를 읽고 다시 제목을 보게 되더라고요. 그만큼 제목이 참 재밌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수께끼 문제를 푸는 것 같은 느낌도 있고.

 

: 이 시집에는 시를 먼저 쓰고 제목을 붙인 것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대부분은 제목부터 정하고 시를 썼는데요. 가령 <헝그리 복서>, <새로운 신앙>과 같은 작품은 시부터 쓰고 제목을 붙였어요.

 

: <선글라스 선글라스>, <라면은 슬프다>, <뿔> 이런 작품들을 보면 이미지들을 결합하여 하나의 시로 완성했더라고요.

 

: 연상에서 비롯되어 의미를 만드는 시들이 많죠. <마리오네뜨>라는 시는 경험에서 시작해서 여러 연상을 통해 완성한 시인데요. 버스 기사 아저씨가 동전 떨어지는 소리만 듣고 저 승객이 돈을 덜 냈는지 아는 거예요. 그래서 막 소리를 치시는데, 이 승객은 돈이 모자랐는지 어쨌는지 버스 손잡이를 잡고 흔들리며 서 있는데 그 모습이 마리오네뜨 인형처럼 느껴졌어요. 우리는 바삐 어디론가 움직이고 있지만, 그것이 어쩌면 누군가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쓴 시죠.

 

 

 

끝으로 구모룡 평론가 님께서 <중심>이라는 시를 낭독해주셨습니다.

 

<중심>

 

귀앓이 때에는 귀가

치질 도졌을 떈 똥구멍이

사랑니 솟구칠 떈 잇몸 가장 깉은 곳이

가장 아픈 곳이

 

가장 아픈 곳이 '중심'이라는 이 시의 말처럼

현재 우리를 지치고 힘들게 하는 부분들의 삶의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날 봄이라는 계절이 무색할 만큼 날이 많이 추웠는데요,

그래도 많은 분들이 참석하셔서,

함께 시를 읽을 수 있어서 뜻깊은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신정민 시인, 구모룡 문학평론가 님을 비롯하여

참석해주신 모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제72회 저자와의 만남에서 또 만나요 : )

 

 

나이지리아의 모자 - 10점
신정민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햇살이 따뜻한 오후입니다.

생동하는 생명이 이끄는 기운에 맞추어 좋은 시 한 편을 소개해드릴까 해요.


시만 있고 사랑이 없다면

단어들만 있고 그리움이 없다면

내일은 오겠지만 당신이 없다면

어머니가 되기 좋은 나라에서 온 편지

답장 대신 모자를 뜬다

시는 사랑이 쓰는 거라서

그리움만이 단어를 찾아 떠나고

당신이 없다면 내일도 없다고

손끝에서 태어나는 모자

생명과 두려움

그 둥근 실타래를 풀어 뜬다

              ― 「나이지리아의 모자」, 부분


바로 신정민 시인의 「나이지리아의 모자」입니다.

한 NGO단체의 신생아 살리기 모자 뜨기 캠페인을 바라보면서 시인이 느꼈던 먹먹한 감정을 풀어내고 있는 시입니다. 

따스한 봄날에 맞추어 서정을 자극하는 시가 아닐까 하네요.


신생아 모자뜨기 사업이란 ..?

매년 전 세계에서는 태어나는 날 100만 명의 신생아가 사망하고, 한 달 안에 290만 명의 아기가 목숨을 잃고 있다고 하네요. NGO단체에서 제공하는 신생아 모자뜨기 키트를 통해 모자를 제작한 뒤, 아프리카와 아시아 일대의 신생아들에게 NGO단체로 보내온 모자를 전달하는 사업이라고 합니다. 저체중, 영양부족으로 면역성이 떨어지는 신생아들에게 털모자를 씌우고 포대기로 감싼 후 안고 있으면 아기는 엄마의 따뜻한 체온과 심장박동 소리에 맞추어 호흡하며, 안정감을 얻고 생명의 힘을 키워나간다고 합니다. (세이브더칠드런 소개 참조)


부조리한 현실을 향한 시인의 인간적 유대와 연민이 담긴 이 시 외에도

시집 『나이지리아의 모자』안에는 일상 속에서 미학을 발견해내고, 

문학을 통해 일상의 다양성을 그려내고 있는 시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구모룡 평론가와 함께하는 이번 저자와의 만남에서

신정민 시인과 함께 봄날의 시를 온전히 느끼고

다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많은 참석 부탁드려요.


어머니가 되기 좋은 나라에서 온 편지-『나이지리아의 모자』




일시 : 2016년 3월 23일(월) 오후 6시 30분
장소 : 러닝스퀘어 서면점 (동보플라자 맞은편 모닝글로리 3층)

대담자: 구모룡 (문학평론가)

문의 : 러닝스퀘어 051-816-9610



 

저자: 신정민

1961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2003년 부산일보 신춘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꽃들이 딸꾹』, 『뱀이 된 피아노』, 『티벳 만행』이 있다.


 

산지니 출판그룹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sanzini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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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지리아의 모자 - 10점
신정민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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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모자를 뜬다/빈곤이 만들어낸 심연과 굴욕에 씌워줄/ 빼앗긴 대지에 씌워줄 무늬 없는 모자….'

시집 '나이지리아의 모자'(산지니)를 펴낸 신정민(55) 시인은 삶을 미화하지 않는다. 표제작을 비롯한 시 58편에는 일상이 오롯이 담겼다.

신정민 시인 새 시집 
'나이지리아의 모자' 
중얼거림 대신 날 선 목청


TV 옆 어항 속의 열대어들('우는 물고기'), 이부자리 옆에 두는 자리끼('자리끼'), 온 집 안에 흩어져 있는 작은 퍼즐 조각들('직소퍼즐'), 재떨이('재떨이가 있는 방'), 고장 난 냉장고('새로운 신앙') 등 스쳐 지날 법한 주변 사물은 신 시인을 거치면서 새로운 시어(詩語)를 입었다. 하지만 이 같은 일상은 낯익음에 머물지 않는다. 신 시인의 시는 익숙한 일상을 낯선 시선으로 읽어냈다는 점에서 시선을 사로잡는다.

시집 '나이지리아의 모자'


표제작도 마찬가지. 빈곤의 허덕임에서 태어날 아기들에 대한 '연민'이라는 익숙한 감정에서 문학에 대한 그리움을 찾아낸다. 신 시인은 "앞서 발간한 시집과 달리 이번 시집에선 감정에서 다소 자유로웠다. 일상에서 존재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신 시인은 낯선 관념을 익숙한 일상으로 풀어내는 시도도 함께 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은 더 이상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상 처음 본 것이라는 의도를 친숙하게 표현한 것이다. 뇌 중에 얼굴을 알아보는 기능을 하는 방추상회를 가게('방추상회')에 빗대기도 하고, 잊힌 기억을('베로니카')을 실감 나게 묘사하기도 한다. '무지개의 본질은 흑백'('색깔빙고')이라며 검은색, 흰색, 빨간색 등 다양한 색깔을 가져다 쓴 것도 한 예다.

이뿐 아니다. 세상을 향한 날 선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서로 속이는 현대사회의 민낯('붉은 얼굴의 차력사')을 드러내고 거짓말을 일삼는, 아무런 의문 없이 달리기만 하는 현대인의 비루한 삶('달리는 계절')을 지적한다. 늙지 않는 부자들을 위해 죽어가는 사람들을 애도('Time Zone')하는가 하면 동네 주민센터에서 쓰는 '센터'라는 말을 꼬집기도('센터') 한다. "시인의 내적 중얼거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신 시인의 바람이 실현된 대목이다.

윤여진 | 부산일보 | 2016-02-05

원문 읽기

나이지리아의 모자 - 10점
신정민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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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니 시인선 시리즈의 열두 번째 시집 나이지리아의 모자가 출간되었습니다.

새로운 감각으로 여러분을 안내할 신정민 시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검은색은 현상일 뿐

검은 것 아닌 검은색 가까이 다가가 보자

                            ― 「색깔빙고」 부분


익숙함에서 새로운 면모를 발견해내는 신정민 시인의 네 번째 시집 『나이지리아의 모자』가 산지니에서 출간되었다. 신정민 시인은 2003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시 「돌 속의 길이 환하다」로 당선되어 “상상력을 현실적으로 구체화시키는 개성적 힘”이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등단했다. 시집 『나이지리아의 모자』는 시인의 최근 작품 58편을 만날 수 있는데, 무엇보다 이번 시집에서 주목할 것은 시인이 일상의 소재들을 통해 현실에 밀착된 시어들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현실의 세계를 현실 그 자체가 아닌 마치 추상미술을 그리듯 “현실의 탈(脫)현실화를 지시하는 비유적 표현”(고봉준 평론가)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문학이 문학일 수 있는 것, 바로 일상을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인만의 감식안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신정민 시인은 이러한 직관의 눈으로 자신을 둘러싼 일상을 균열하여 세계 안의 미세한 틈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번 시집은 시인의 언어로 만들어낸 세계의 균열을 표현해낸 결과물인 셈이다.


처음 보는 얼굴처럼

익숙함을 거부하는 일상의 비(非)일상화


내 머릿속에는 얼굴을 지워주는 가게가 있다


배꼽 근처의 타투를 지우듯

당신이 누구였는지 알아볼 수 없게

생전 처음 보는 얼굴로 바꿔주는 곳


(…)


아름다운 건 늘 처음 보는 것


생각날 듯 끝내 생각나지 않는

화이트 아웃 혹은 블랙아웃을 포장해주는 집


다양한 이목구비

헤어지면서 잊어버릴 수 있게

부위별 깜짝 구매가 가능한 곳


방바닥에 귀를 대고 아래층 소리를 엿듣는

목요일이었던 남자를 읽는 깊은 밤까지

기어이 잊어주는 곳이 있다

                               ― 「방추상회」 부분


이번 시집에서는 시인의 미학적 태도가 분명하게 견지되는 시편이 더러 있다. 대표적인 시가 「방추상회」이다. 뇌에서 얼굴에 대한 정보 처리 역할을 담당하는 ‘방추상회’라는 이름에서 시인은 ‘가게’라는 발상을 이끌어내고, “아름다운 건 늘 처음 보는 것”이라는 진술을 통해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드는 예술의 기능을 도찰해낸다. 이는 개성적인 시선을 통해 비일상적 맥락을 발견해내는 시인의 “일상의 비(非)일상화 전략”으로서, 이질적인 시어와 일상 속에서 아름다움을 이끌어내는 시인의 문법이 주목되는 구절이다. 한편 「색깔빙고」에서는 “흑백”, “회색”, “새빨간”, “검은색”, “흰색” 등의 색상을 통해 놀이하듯 시어들을 풀어내고 있는데, 어떠한 논리적 연관 없이 낯선 문법을 통해 독자들을 새로운 감각의 세계에 초대하고 있다.


어머니가 되기 좋은 나라에서 온 편지

답장 대신 모자를 뜬다

시만 있고 사랑이 없다면

단어들만 있고 그리움이 없다면

내일은 오겠지만 당신이 없다면

어머니가 되기 좋은 나라에서 온 편지

답장 대신 모자를 뜬다

시는 사랑이 쓰는 거라서

그리움만이 단어를 찾아 떠나고

당신이 없다면 내일도 없다고

손끝에서 태어나는 모자

생명과 두려움

그 둥근 실타래를 풀어 뜬다

              ― 「나이지리아의 모자」, 부분


표제작 「나이지리아의 모자」는 열악한 조건에서 살아갈 운명을 지니고 태어나는 나이지리아 아이들에 대한 시인의 인간적 유대와 연민의 정서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일상의 비(非)일상화 전략”이 관통하는 이번 시집에서 다소 이질적인 작품이나, ‘벽화마을’의 모순적 풍경을 비판적으로 바라본 「여우의 빛」, 언어적 표현법에 대한 자의식을 담고 있는 「좋아한다는 것」과 함께 “빈곤”과 “굴욕”이라는 부조리한 현실을 향한 시인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한 NGO단체에서 진행하고 있는 아프리카의 신생아 살리기 모자 뜨기 캠페인을 바라보면서 느꼈던 먹먹한 감정을 풀어내고 있는 시이다. 이처럼 시인은 나이지리아의 아이들을 상상하며 문학과 삶, 언어와 세계 사이의 간절한 연결선을 시어로 “풀어 뜬다”. 문학과 삶이 동떨어지지 않는 시인의 태도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표제작이다.


나이지리아의 모자

신정민 지음 | 문학 | 국판 | 144쪽 | 10,000원

2015년 12월 31일 출간 | ISBN : 978-89-6545-328-4 03810

익숙함에서 새로운 면모를 발견해내는 신정민 시인의 네 번째 시집.시집 『나이지리아의 모자』는 시인의 최근 작품 58편을 만날 수 있는데, 무엇보다 이번 시집에서 주목할 것은 시인이 일상의 소재들을 통해 현실에 밀착된 시어들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현실의 세계를 현실 그 자체가 아닌 마치 추상미술을 그리듯 "현실의 탈(脫)현실화를 지시하는 비유적 표현"(고봉준 평론가)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글쓴이 : 신정민

1961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2003년 부산일보 신춘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꽃들이 딸꾹』, 『뱀이 된 피아노』, 『티벳 만행』이 있다.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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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가 움직이는 곳,<시민과 함께하는 문학콘서트>






“우연히 아이와 공원에 갔는데, 그곳에서 백일장이 열리고 있었다. 시와 연애만 했지 시인이 되겠다고 생각 해본 적은 없다. 백일장 당선작으로 내 이름이 불렸다. 그때 내가 신정민인 줄 알았다.”

<시민과 함께하는 문학 콘서트>신정민 시인과 대담 중



30일 월요일, 부산작가회의에서 주관하고 가마골극장에서 열린 제 3회 <시민과 함께하는 문학콘서트>에서 『뱀이 된 피아노』를 출간한 신정민 시인을 만나고 왔습니다.


문학콘서트라고 해서 어떻게 진행될까 궁금했는데 문학을 단순히 읽는데 그치지 않고 오감을 자극하며 풍부하게 느낄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먼저 시인 소개 후 신정민 시인의 시를 김요아킴 시인 「지퍼」를, 김나원 시인은「빨간구두연출법」을 낭송을, 신정민 시인은「나는 도대체 그대의 몇 번째 고르바쵸프일까」로 각자의 어감대로 시어에 생기를 불어줬습니다. 

이어 가마골 연희단 거리패 배우들이 시극을 선보였습니다.

시와 연극이 만났을 때를 상상하지 못했는데 마치 3D안경을 끼고 시를 읽는 것 같았습니다. 그만큼 시어가 입체감 있고 감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시 역시 다른 장르와 결합해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볼 수 있었습니다.


상상해볼까요.

시와 지금부터 일어날 무대를 보고



( ...중략...)



티슈를 한 장 뽑아

코를 풀었다

꽃들이 구겨졌다

켜켜이 접혀 있는 희고

반듯한 시간들

잠이 오지 않는 새벽으로

방바닥의 얼룩을 닦았다

더러워진 일요일과 월요일 사이가

깨끗해졌다 뽑아 쓰기 좋은

아침 한 장

『뱀이 된 피아노』중「부드러운 정원」신정민



신정민 시인과 문선영 평론가와 대담이 있었습니다. 문학은 다른 문화와 다르게 개인이 혼자 읽고 느끼는 시간이 많습니다. 자신의 방에서 쓰고 읽고 분석했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느낀 걸 자유롭게 말하는 자리는 흥미로웠습니다. 평론가는 오해할 수 있습니다. 해석은 때론 오해에서부터 시작하니까요. 작가들은 분석적으로 다가온 자신의 시가 벅찰 수도 있습니다. 이날의 대담은 이처럼 다르게 느꼈던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시가 한 곳에서 머무르지 않고 통통 튀어다는 시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민들레를 노래하려면 내가 민들레가 되어야 한다. 민들레처럼 낮은 자세로 민들레를 보지 않는데 어떻게 민들레를 노래할 수 있을까...시도 대부분 내 안의 경험담에서 나온 것이다


나에게 시집은 나의 죽음이고 무덤이다. 죽어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곧 출간될 세 번째 시집도 그러하다. 그러면서 시가 내 안에서 머무르지 않고 계속 움직였으면 좋겠다 

<시민과 함께하는 문학 콘서트>신정민 시인과 대담 



수줍게 웃으신 신정민 시인


곧 3번째 시집을 준비하는 신정민 시인의 무덤을 나는 기대해본다. 

그곳에서 낮은 민들레가 보는 광활한 시의 우주도.


저도 뽑아 쓰기 좋은 아침 한 장을 위해

월요일과 화요일 사이의 얼룩을 닦으며 집으로 귀가했습니다.


뱀이 된 피아노 - 10점
신정민 지음/천년의시작


 



***지난번 산지니가 야유회로 갔던 도요마을에서 18,19일 도요강변축제를 합니다.

      모두 무료라고 하니 문학과 연극있는 밤을.





Posted by 동글동글봄

콘서트 하면 으례 음악콘서트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3월 19일 저녁 7시 가마골소극장에서 열린 콘서트는 문학콘서트였습니다. 문학, 연극, 음악의 만남이었죠.

가마골 소극장 입구. 저희 출판사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습니다.


작가 1명을 초청하여 그의 문학과 삶을 살짝 들여다보고 관객들이 궁금한 것을 묻기도 하구요, 사이사이 초청 연주를 듣고 문학 작품을 각색한 연극을 보다 보니 어느새 2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이 달의 초청작가는 송유미 시인.

송유미 시인은 93년 부산일보(시조), 200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전태일 문학상, 수주문학상, 한국해양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시집으로 ‘살찐 슬픔으로 돌아다니다’ ‘당나귀와 베토벤’이 있습니다.

송유미 시인이 '유리에 맺힌 눈물'과 '차를 몰다가 슬픔을 주유하고 싶다'를 낭송했습니다.



시인이 된 계기와 시를 처음 쓴 게 언제였는지요? 라는 한 청중의 질문에 시인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시를 처음 쓴 건 초등학교 4학년 때였습니다. 담임선생님이 시인이셔서 그랬는지 저희에게 시를 많이 쓰게 하셨습니다. 창밖의 구름, 가을 단풍, 비오는 날 등등 시도 때도 없이 시쓰기를 시키셨습니다.
하루는 숙제로 써간 시를 선생님께서 보시더니 이거 니가 쓴거 맞냐고 물으시기에 제가 쓴 시라고 대답했더니 선생님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어요. 참 잘 썼다는 칭찬과 함께요.

'코스모스'라는 제목이었는데 내용은 기억이 잘 안나지만 하늘거리는 코스모스를 물속에서 노니는 피라미떼에 비유해서 썼던 시입니다.
그때는 마냥 고달픈 시쓰기였는데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가 저를 시인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궤도'를 낭송하는 신정민 시인.

 고명자, 신정민 시인이 송유미 시인의 시 <닥종이로 만든 여자>와 <궤도>를 낭송했습니다.

시를 상황극으로 만들어 공연하는 장면입니다.
연희단 거리패 배우들이 열연했습니다.

초청연주

국악퓨전그룹 '아비오'가 기타와 피리를 연주했습니다.
아비오는 해금, 대금, 피리, 기타, 베이스기타 등 6인으로 이루어진 그룹이라고 합니다. 피리 연주를 직접 듣기는 처음이었는데 아주 가느다란 관에서 절절하면서도 힘있는 소리가 흘러 나왔습니다.

김필남 문학평론가, 송유미 시인, 정훈 문학평론가(오늘 사회를 보셨죠)

작가와 평론가와의 대담. 

초청연주

송용창 음악가가 아코디언을 연주했습니다.

오늘 문학콘서트는 부산작가회의가 매달 주최하는 월례문학토론회의 새로운 시도였습니다. 작가와 관계자들만이 참여했던 기존 토론회의 형식을 벗고 시민에게 좀더 다가가려는 노력이 엿보였습니다. 앞으로 매달 행사가 열린다고 하니 널리 알려져 더 많은 시민들이 같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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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1동 | 가마골 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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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산지니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