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 시대의 뇌와 정신


현대 뇌과학과 스피노자 철학, 영화 <매트릭스>를 넘나들며

뇌와 정신의 상관성을 해명한다

‘의식의 요람’이라 불리는 뇌, 그리고 ‘의식의 지향점’인 정신. 이 둘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 인간을 동물과 구별해주는 결정적 요소로 여겨져온 정신은 신경세포들의 전기화학적 활동만으로 설명되는가? 이러한 근원적 질문에 도전하는 이 책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물질과 정신의 긴장된 관계 속에서 축적된 여러 담론을 융합한다.

『가상현실 시대의 뇌와 정신』은 현대 뇌과학은 물론 플라톤, 데카르트, 헤겔, 스피노자 철학, 그리고 고전문학과 영화 <매트릭스>까지 넘나들며 뇌와 정신에 대한 세기에 걸친 사유를 독자의 삶 가까이로 끌어오는 연구서이다. 이 책은 뇌과학 연구를 풀어쓰는 데 그치지 않고 학문의 역사적 변화를 추적하며, 정신에 대한 철학 이론을 과학적 발견과 연관해 새롭게 해석한다. 저자 서요성 교수는 철학적 망설임과 과학적 실증을 아우르는 새로운 뇌 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인공지능과 스마트 기기가 생활 속으로 들어온 ‘가상현실 시대’,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인간의 자유의지와 뇌라는 물질에 대한 필수 지식을 축적하고 이에 대한 신선한 사유를 만나게 될 것이다.


이미지: Russell Shorto. Descartes' Bones 출처: 위키피디아


정신과 물질의 이분법 거부하는 뇌를 인지하고

‘이원론자 데카르트’ 편견 깨는 융합적 함의를 발견하다

만물을 정신이나 물질, 두 가지 중 하나로 환원하려는 시도는 세기에 걸쳐 이루어져왔다. 정신은 불가분하고 그 정체가 무한한 반면, 물질은 세포나 미립자 등의 요소들로 쪼개지면서 결정론적인 성향을 띤다. 이러한 이분법의 틈에서 의식 활동과 관련된 물질로 지목되어온 뇌는 사유와 지성의 장소로 여겨지고, 심지어 정신과 동일시되었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뇌 담론을 종합하며, 저자는 뇌는 의식과 물질의 중간적 존재, 아니 정신의 자율성과 물질의 결정성의 특징을 모두 포함한 제3의 존재로 가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주장은 데카르트 철학의 재발견으로 이어진다. 데카르트는 이원론의 대표적 철학자로 비판받아왔지만, 저자는 데카르트가 영혼(정신)을 물질과 구분하면서도 정신과 신체를 연결하는 뇌의 송과선과 같은 매개 기관을 중요시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데카르트 철학을 평가할 때 항상 거론하는 이분법적 특징이란 세밀하지 않은 편의주의적인 틀일 수 있다. 왜냐하면 그의 저서에서 이분법적 언급은 일관성을 띠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물질은 의식과 대립하지만, 이성과 신체(심장과 같은 기관), 정신과 뇌의 구분은 선명하지 않다. (…) 본 연구자는 신체와 뇌를 대립적인 정신이나 물질 범주로부터 따로 떼어냄으로써 이분법에 대한 성찰에 도달하려고 한다. 이를테면 만물을 영혼(정신), 물질, 신체(심장), 뇌로 구분해볼 수 있다. 여기서 신체(심장)와 뇌는 영혼과 물질 사이를 매개하는 항으로 보면 된다. 그러므로 데카르트 철학은 뉴턴 물리학보다 의식을 강조한 양자이론과 관련시킬 필요가 있다. (65~66쪽)

저자는 섬세한 독해를 통해 데카르트 철학이 현대 뇌과학에 가지는 함의를 발굴하고, 복합적 성격을 가진 뇌를 일원론 또는 이원론에 끼워 맞추기보다 새로운 사고방식을 통해 인지하고 있다.



정신의 순수성에 도전한 19세기 생리학, 심리학

자유의지를 인정한 20세기 양자물리학

물질 결정론이 지배적이었던 17세기를 지나, 19세기에 생리학과 심리학은 철학적 이원론과 과학적 일원론 사이에 가교를 놓는다. 정신과 물질은 이제 고립된 실체가 아닌 상호관계에서 이해되기 시작한다. 생리학은 정신을 신체(물질)의 기능으로 이해한다. 심리학은 인간 행동에 대한 과학적 해명을 표방하며 행위의 근원이 영혼인지 무의식인지에 대한 논쟁을 일으킨다. 생리학자들이 신경학적 관점에서 뇌를 ‘영혼이 없는 기계’로 여기게 되면서, 인간의 행동은 신경계의 상호작용 결과뿐이라는 설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20세기에 새로운 과학 분야가 등장하면서 뇌와 정신에 대한 분석은 좀 더 섬세해진다. 예를 들어, 양자물리학은 자연에 연속성이 아닌 불연속성이 있음을 발견하고, 실재를 객관적인 존재가 아니라 주관과 상호작용하는 존재로 설정한다. 그렇다면 뇌의 심리 과정을 물리적 메커니즘으로 연구하더라도, 정신 활동의 주관적 성질이 있기 때문에 이를 물리학적 법칙 내에서 완전히 파악할 수 없다. 인과적 틀을 넘어서 물질과 의식의 관계를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이 밖에도 저자는 뉴런·인지·감정 신경과학과 같은 새로운 학문의 성과들을 서술하는데, 과학과 문학을 함께 다뤄 전문적 지식이 없는 독자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통해 정신질환에 대한 논의를,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와 감정 신경과학 연구를 엮어 자칫 딱딱할 수 있는 과학적 성과들을 흥미진진하게 서술한다.



출처: 영화 <매트릭스>


컴퓨터가 인간을 지배하는 시대가 올까?

물질을 초월하는 ‘정신’을 되새기다

블록버스터 영화 <매트릭스>는 인간의 뇌가 컴퓨터를 통해 조작되는 미래를 상상하고 있다. 결정론과 자유의지론의 교차 지점을 다룬 이 영화는, 뇌의 원리를 이해하면 인간 의식이나 외부 세계를 지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제한다. 이제 인공지능, 유전자 조작, 로봇 등의 기술 발전은 공상을 실제로 만들고 있다. 컴퓨터 과학기술은 생물학적이고 시공간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인류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저자는 헤겔 철학의 ‘정신’ 개념을 되새긴다. 뇌에는 신경세포 40억 개가 모여 있고 이 세포들 사이에서는 물리학 법칙이 적용되지만, 헤겔에 따르면 뉴런 활동은 ‘의식’이지 ‘정신’은 아니다. 의식이 감각과 학습 활동을 지칭한다면 정신이란 자의식, 이성, 절대지라는 비물질적 영역이다.

뇌에 대한 연구는 갈수록 전문화되어 해당 학계 밖에서는 접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운 수준에 다다르고 있다. 인문학과 뇌과학의 융합에 기여하는 『가상현실 시대의 뇌와 정신』이 더욱 가치 있는 연구서인 이유이다. 그동안 단순 인용 정도에서 그쳤던 학문 간 교류에 깊이가 더해진다면, 우리는 뇌와 정신의 실체에 접근함으로써 비로소 자유나 평등의 조건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 서요성

한양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동대학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에 유학하여 빌레펠트 대학교(Universität Bielefeld) 언어문예학과에서 독일현대연극 논문으로 박사학위(Ph.D)를 취득하였다. 귀국 후 2007년 9월부터 대구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15년 독일 마인츠대학 독일연구소(Deutsches Institut) 객원을 역임했고, 한국브레히트학회 편집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공연예술의 초대』, 공저로는 『하이너 뮐러의 연극세계』 등이 있고, 주요 역서로는 『도축장의 성 요한나』가 있다. 그밖에 연극과 문예학, 문화비평, 모더니티, 과학과 인문학의 상관성 등 학문의 통합적 이해와 관련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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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 시대의 뇌와 정신:

의식세계에 개입하는 과학과 새로운 인문학적 사유

서요성 지음 | 학술 인문 | 신국판 384 | 28,000

2015년 12월 15일 출간 | 978-89-6545-323-9 93100

‘의식의 요람’이라 불리는 뇌, 그리고 ‘의식의 지향점’인 정신. 이 둘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 인간을 동물과 구별해주는 결정적 요소로 여겨져온 정신은 신경세포들의 전기화학적 활동만으로 설명되는가? 저자는 현대 뇌과학은 물론 스피노자 철학, 고전문학과 영화 <매트릭스>까지 넘나들며 뇌와 정신의 상관성을 해명한다.

가상현실 시대의 뇌와 정신 - 10점
서요성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지겨운 연애, 그리고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연애의 온도>




     벚꽃이 떨어지는 토요일 하루를 하릴없이 보내고 난 저는, 누군가와의 통화가 끝나자 곧장 영화를 봐야겠다는 결심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어떤 영화를 보는 게 좋을까. 주중 내내 원고를 보고 타이핑 작업에 여념이 없었던 지라, 주말만큼은 책을 읽고 싶진 않았거든요.(그렇게 말은 했지만, 영화가 끝나고 또 까페에 틀어박혀 소설책 한 권을 읽기도 하였지요.) 어제 새벽부터 주르륵주르륵 내리는 봄비는 때마침 제가 영화관에 나설 때 즈음이었던 세 시를 기점으로 거짓말처럼 그쳤답니다. 영화관에 가서 문화충전 좀 하고 오라는 신의 계시였던가요. 글쎄요. 후후.


     최근 보았던 영화는 워쇼스키 남매의 <클라우드 아틀라스>,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 스티븐 스필버그의 <링컨> 정도입니다. 대중영화를 꺼려하는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제가 선택하는 영화들은 모조리 흥행에 실패하더군요. 하지만! 이번만큼은 사유를 좀 덜어낼 수 있는 발랄하고 경쾌한 영화를 봐야겠어, 라는 결심을 갖고 <연애의 온도>를 예매하곤 발권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제 손엔 영화표 한 장이 달랑 떨어졌지요. 혼자서 영화 보러가는 데 민망하기도 하고 연인들 옆에 치이기도 싫어서 일부러 구석자리를 선택하기도 했습니다. 네...하하.


     그러나 이 영화도 만만치 않더군요. ‘사유’를 없앨 수 있는 영화란 어떤 종류의 걸까요. 사실 상업영화라고 싸잡아 비판해 온 조폭영화에도 어쩌면 한국사회의 단면이 들어있는 셈이니, 이러한 연애영화야말로 인간의 미묘한 심리를 잘 묘사하고 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득,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의미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오늘 아침에 모바일용 이북으로 읽었던 『심리학, 아픈 사랑에 답하다』라는 책에 대해 잠시 언급하고자 합니다. <연애의 온도>도 어쩌면 이 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셈이거든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이는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어머니라는 존재가 ‘어린 나’의 생명줄이었다면 사랑하는 상대는 ‘지금의 나’의 심리적 생명줄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상대에게 실망스러운 점이 눈에 띄는 것도, 사랑이 시들해지는 것도 결국에 그가 나의 텅 빈 곳을 온전히 채워 줄 상대가 아닌 탓이다.

―그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안다고 가정하는 그를 사랑한다. (…)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보다 잘 알고 이해하려면 우리 자신이 가정하고 있는 상대에 대한 생각을 지워버려야 한다. (…) 우리가 그에 대해 생각하고 가정하는 것을 줄이면 줄일수록 그의 본 모습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심리학, 아픈 사랑에 답하다


     이 책의 요는 이렇습니다. 사회화의 과정 속에 만나게 되는 혈육이 아닌 가장 가까운 ‘타인’인 존재가 바로 연인임을 상정하고 하는 말일 텐데요. 우리가 사랑을 하고 실패하고 또다시 이런 행위들을 반복하는 이유가 심리학적 용어와 함께 사례 중심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책을 읽고 나서 보게 된 영화 <연애의 온도>, 역시나 책과 비슷한 온도의 애잔한 느낌을 안겨 주더군요.

 

 

두렵고 무서운 롤러코스터지만, 그래도 타야겠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두 주인공은 롤러코스터를 타기로 합니다. 두 주인공이 스릴을 즐기는 걸 딱히 좋아하는 것도 아닌 데 말입니다. 의미는 간명했습니다. 두 주인공이 치고 박고 싸우고 서로를 환멸하며 헐뜯고 비난하는 행위 자체가 결국 모두 치졸한 행위들에 불과할지언정, 남는 것은 ‘사랑’을 했다는 진실과 그 '사랑'의 진정성에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 괴롭고 아프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롤러코스터와 같은 '사랑'을 겪어 보지 않았더라면 타면서 겪는 통쾌한 ‘스릴’마저도 겪을 수 없었을 테니까요. 이처럼, 대부분의 사랑은 두렵습니다. 내 행동으로 인해 그 사람의 감정에 생채기를 내면 어떠할까 전전긍긍해 하면서도, 이 영화처럼 그 배려하는 행동마저도 갈등으로 남는 거겠죠.


     벚꽃은 피었다지고, 이 비가 그치고 나면 봄날의 해사한 분홍빛 무드도 곧 사라지고 없어질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아쉬워할 일만은 아닙니다. 곧 여름이 올테니까요. 조금 쓸쓸해질지도, 많이 아파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꽃은 매년 봄마다 핀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그닥 감상에 젖어 있을 일만도 아닌 것 같습니다. 꽃이 져서 가슴이 매우 쓰라리지만,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연인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다정했던 사람과 소원해지게 된다는 점―인간사 모두가 그러한 것 같습니다. 이것이 다만 필연적인 일이기 때문에 슬퍼할 일만은 아니라는 거겠죠? 여튼 저는 영화 <연애의 온도>를 보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4월인데 비가 그치고 나니 봄도 끝나 버린 것 같아 마음이 뒤숭숭하네요. 그래도 삶은 계속되고, 우리는 또 사람을 만납니다. 사랑을 합니다.


 그럼, 모두들 좋은 주말되세요 :-D


심리학, 아픈 사랑에 답하다 - 10점
이규환 지음/왕의서재


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