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20 [내일신문]-[신간]『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유럽무대에서 조선독립을 알리다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이한 2019년 우리사회 곳곳에서 독립유공자에 대한 발굴과 재조명이 이뤄지고 있다. 독립운동에 대한 일반적 생각은 혹독한 추위 속에서 만주벌판을 넘나들며 항일투쟁을 벌이거나 일제의 수뇌부를 향해 총이나 폭탄을 던지는 모습이 먼저 연상되곤 한다. 정상천이 지은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는 이런 인식을 바꿔주고 있다. 독립운동의 길은 너무나 다양하고, 각계각층에서 수많은 이들이 보이지 않게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서영해라는 이름도 마찬가지다. 부산에서 태어난 서영해는 17세 때 3.1독립운동에 참가했고 수배자 신분으로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의 막내가 됐다. 이후 임시정부의 권유로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고 어렵게 학업을 마친다. 임시정부 외무부의 지시로 고려통.. 2019. 2. 25. [서울신문]-[그 책속 이미지] 펜을 든 동양 소년, 독립을 외치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정상천 지음/산지니/316쪽/1만 6000원 빛바랜 흑백사진, 서양 소년들 사이로 익숙한 외모의 동양 소년이 앉아 있다. 다부진 입매가 돋보이는 소년은 일제강점기, 임시정부의 권유로 프랑스로 유학 간 서영해(원 안)다. 우리 중고등학교에 해당되는 보베시의 ‘리세’에서 파란 눈의 축구부 급우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엄혹했던 시절, 일제에 저항해 어떤 이는 총과 폭탄을 들었지만 어떤 이는 펜을 들고 낯선 땅에 갔다. 외교관이자 언론인, 소설가였던 서영해는 일생을 서방세계에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알리는 데 힘썼다. “미국에 이승만이 있다면 유럽에는 서영해가 있다”고 할 정도로 임시정부의 공식적인 양대 외교 축이었지만, 안타깝게 역사에 오랫동안 묻혀 있었다. 책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 2019. 2. 22. [매일신문]-[서평]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정상천 지음/산지니 펴냄 독립운동가 서영해가 파리 보베시 리쎄 고등중학교 졸업반 때의 모습. 앞줄 오른쪽 두 번째가 서영해. 외교관이자 언론인이자 소설가였던 서영해는 펜을 들고 조선 독립에 앞장선 독립운동가다. 일생을 조선독립에 바쳤고 서방 세계에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알리는 데 힘썼다. '미국에 이승만이 있다면 유럽에는 서영해가 있다'고 할 정도다. 서영해는 임시정부의 공식적인 양대축 이었지만 안타깝게 역사에 오랫동안 묻혀 있었다. 이 책은 그동안 숨겨진 서영해의 삶과 사상을 발굴해 정리했다.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정부수립시기까지 세계사와 현대사의 굴곡이 서영해의 삶에 투영돼 있다. 또 책에는 서영해가 쓴 유고 글과 프랑스 현지 언론에 기고한 글, 인터뷰 등을 모아 번역해 실었다. 지은이는 부족한 서영해의 자료를 직접 발굴하고.. 2019. 2. 22. [한국일보] ‘잊어진 독립운동가’ 파리의 서영해 외교ㆍ저술활동으로 독립운동 일대기 ‘파리…’ 출간 이어 90년前 불어로 쓴 소설 번역 1930년 2월 이집트 월간지 ‘이집트 여인’에 실린 서영해의 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Autour d'une vie Coreene)의 소개 글. “그는 (중략) 지칠 줄 모르는 대단한 이상주의자, 평화 수호자, 반파시스트주의자, 그리고 섬세한 예술적 감각을 지닌 애국자였다.”(‘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일제 강점기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한 유럽에서 외교, 저술 활동으로 대한 독립의 정당성을 널리 알린 독립운동가 서영해(1902~?). 1956년 실종된 이후 60여 년간 역사에서 잊혀졌던 그 이름이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한국과 프랑스에서 뒤늦게 호명됐다. 그의 일생을 다룬 최초의 전기 ‘파.. 2019. 2. 19. [뉴시스] 100주년, 책으로 되새기는 3·1운동 정상천 지음, 316쪽, 1만6000원, 산지니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펜을 들고 조선 독립에 앞장선 독립운동가 서영해의 삶과 사상을 정리했다. 서영해의 가족과 친척을 만나 그의 삶을 짚었다. 서영해의 유고, 프랑스 현지언론 기고, 인터뷰를 번역해 부록에 실었다. 서영해는 1902년 부산에서 태어나 17세 때 3·1운동에 참가했다. 수배대상자가 된 그는 중국 상하이로 가 임시정부에서 활동했다. 유창한 외국어 실력을 가진 인재가 필요한 임시정부의 권유로 1920년 12월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이후 임시정부 외무부 지시로 설립한 고려통신사를 통해 일본의 한반도 침략상을 유럽에 알리면서 일본이 왜곡한 한국 이미지 바로잡기에 주력한다. 오스트리아인 엘리자와 결혼했고 유일한 혈육인 아들 스테판이 있었다. .. 2019. 2. 18. 임시정부 대표 외교독립론자,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선생은_<이데일리> 임시정부 대표 외교독립론자,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선생은 [3.1정신 잇는 사람들]①이승만과 외교독립론 양축 임시정부 프랑스 유학생…졸업후 외교·기자·작가 등 활약 전쟁 소용돌이에 두 차례 결혼도 잇달아 불행한 결말로 1956년까지 中서 교사…중국 실종, 월북 사망 등 說 분분 서영해 선생 (사진=부산박물관 제공)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파리의 독립운동가`라고 불렸던 서영해 선생은 당시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무장투쟁론과 양대 축을 이뤘던 외교독립론을 대표한 인물이었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전역을 무대로 활약하면서 임시정부의 외교 및 선전활동에 주력했다. 본명이 서희수였던 그는 1902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7세에 불과했던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수배되는 처지가 되자 아예 상하이 .. 2019. 2. 15.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