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발굴 현장 동행 르포,

무고한 죽음 증언하듯 고무신 옆 탄피…“이런 곳 아직 수두룩”

 

 

땅 밑의 ‘70년 원혼’…8년째 손놓은 정부
진실화해위 발굴 10곳에 그쳐…해산 후 국가 차원 조사는 ‘0’
공동조사단 “전국이 공동묘지”

 

 

▲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관계자들이 지난 10월 10일 세종시 연기면 산울리 야산의 은고개 지역에서 진행한 ‘연기 국민보도연맹 사건’ 유해 매장지에서 시신 1구를 발굴하고 있다. 이후 진행된 유해 분석에서 이 시신은 30~35세 남성으로 확인됐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68년 만에 땅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두개골 안은 나무 잔뿌리로 가득했다. 뇌 신경망 이미지처럼 보였다. 두개골 밑으로 바싹 마른 상반신과 하반신이 뒤틀린 채 누워 있다. 키는 약 158㎝. 뒤통수 부위의 골격 형태 등을 보아 남성이었다. 치아의 마모도로 추정한 나이는 30~35세. 발밑에서 발견된 고무신은 잿빛으로 말랐다. 딱딱하게 굳은 흙 속에 파묻힌 바스라진 발가락뼈는 화석처럼 보였다. 시신 주변에 탄피도 흩어졌다. 이 남자가 총에 맞아 죽었다는 증거였다.


“참혹하네.”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가 두개골 사이로 나온 잔뿌리를 잘라내며 탄식했다. 그는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단장이다. 지난 10월10일 세종시 연기면 산울리 야산의 은고개 지역 발굴 현장을 찾았다. 조사단은 7구의 유해를 땅속에서 파냈다. 한국전쟁 시기 국군과 경찰이 사용하던 M1과 카빈 소총의 총탄(탄피와 탄두 등) 59점이 나왔다. 신발류 81점도 찾았다.

 

▲ 208명의 시신이 발견된 충남 아산시 배방읍 설화산 폐금광에서 나온 어린아이의 치아(왼쪽)와 부위별 유해 사진.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제공


매장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도로 공사 현장의 한가운데 있었다. 1950년 7월 ‘연기 국민보도연맹 사건’이 벌어진 곳이다. 2008년 12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서 “연기지역 주민 100여명이 국민보도연맹원으로 예비검속돼 조치원경찰서에 불법 구금된 후 이곳으로 끌려와 국군과 경찰에 의해 집단총살된 유해 매장 추정지”라며 이곳에 표지판을 세웠다. 10년 만에 대규모 공사 진행을 위해 발굴이 시작됐다. 유해는 발굴되지 않았다면 도로 공사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질 뻔했다.


한국전쟁 전후 벌어진 민간인 학살 매장지는 전국에 퍼져 있다. 2007년 6월 진실화해위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 관련 유해 매장 추정지 조사용역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용역 조사를 한 168곳의 매장 추정지 중 유해발굴이 가능한 곳으로 59곳이 꼽혔다.


2010년 6월 해산한 1기 진실화해위는 10개 지역 13개 지점에서 발굴 작업을 진행했다. 이곳에서만 1617구의 유해와 5600여점의 유품이 발견됐다. 이후 국가 차원의 발굴 조사는 8년간 없었다. 억울한 죽임을 당한 유해들이 학살 자행 70년이 되도록 땅속 어딘가에 묻혀 있다는 말이다.

 

▲ 지난 10월10일 세종시 연기면 산울리 야산의 은고개에서 발굴된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의 고무신. 이곳은 1950년 7월 ‘연기 국민보도연맹 사건’으로 학살된 민간인들이 집단으로 매장된 곳이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공동조사단에 참여하는 안경호 4·9통일평화재단 사무국장은 “한국 땅 전체가 공동묘지”라고 표현했다. 땅을 파면 어김없이 참혹한 학살 현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지난 2월부터 약 한 달간 진행된 충남 아산시 배방읍 설화산 폐금광의 유해발굴 현장에서는 유독 여성과 어린이의 유해가 많이 나왔다.


1950년 9월부터 1951년 1·4후퇴 시기까지, 온양읍과 아산군 일대에서 군과 경찰이 좌익 관련자나 부역 혐의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감금했다가 끌고 와 총살했다. 시신이 넘쳐났다. 마을 주민들은 개들이 사람 뼈를 물고 돌아다녔고, 아이들이 두개골을 발로 차며 놀았다고 증언했다.


이곳에서 최소 208명의 유해가 발견됐다. 유해발굴 자리를 다시 파면 또 다른 유골이 나왔다. 총으로 쏘아 죽인 시신 위에 다시 사람들을 끌고 와 죽였기 때문이다. 성인 여성으로 확인된 것은 68구로, 남성(19구)보다 많았다. 12세 미만 어린아이는 58구였고, 6세 미만도 9구가 나왔다. 설화산 매장지(아산시 배방읍 중리 산86-1번지 일대)에선 아이의 갈비뼈가 많이 발굴됐다. 훼손이 잘 되는 어린아이의 뼈가 형체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엄마가 두꺼운 옷이나 포대기로 아이를 꼭 끌어안은 채 죽었기 때문이다. 유해 주변에서 발견된 군경의 총탄은 범인을 분명하게 가리켰다.


아파트 단지·도로 등 공사
묻힐 뻔한 추정지 추가 조사


진실화해위에서 유해발굴을 담당한 노용석 부경대 교수는 “전국에 매장지가 없는 곳이 없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실제 민간인 학살 매장지는 3배 이상 많다”고 말했다. 노 교수는 “진실화해위에서 한 유해발굴 추정지 조사용역은 수집된 증언을 기초로 꼽은 전국의 168곳 매장 추정지에 대해 지표조사를 벌인 것뿐”이라며 “1억원도 안되는 사업비로 6개월가량의 짧은 기간 동안 진행해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조사를 마친 뒤 새로 발견한 매장 추정지만 20곳이 넘는다”고 말했다. 실제 매장지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란 얘기다.

 


학살 규명 신청만 7900여건
“국가가 나서 유골 수습해야”


1기 진실화해위가 활동한 기간 동안 7900여건의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신청이 들어왔고, 1만6000여명이 희생자로 확인됐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최소치다. 유족회는 100만명의 민간인이 희생당했다고 주장한다.


학살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국가 폭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제대로 된 매장 절차 없이 맞은 비정상적인 죽음이 대부분이다.


노 교수는 가해자였던 국가가 나서 전국에 묻힌 학살 피해자들의 유골을 수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가에 의해 죽임당한 이들을 발굴하는 것도, 국가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운 사람들을 찾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며 “유해발굴은 이 죽음을 정상적으로 되돌려 놓는 작업이고, 단순히 유가족을 위한 것이 아닌 사회적인 위령과 화해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그는 “세계적으로 아무리 민주적인 정부라도 국가 폭력에 의해 죽은 사람을 국가가 나서서 발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국이 이런 일에 솔선수범한다는 것은 인권 국가로 도약하고 그 위상을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이 산이 전부 아버지 무덤이라 여겨요”

     김장호 아산유족회장

 

▲ 김장호 유족회장이 충남 아산시 탕정면 용두리의 한 야산에서 유해가 매장된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현진 기자

 


 

아버지 끌려가고 집안 몰락
‘부역 혐의자’ 자식 꼬리표
유골 찾아 장례 치르기 소원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전국유족회 김장호 아산유족회장(76)은 2012년 4월 등산가방을 메고 야산에 올랐다. 충남 아산시 탕정면 용두리 농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야트막한 산이다. 이곳에 오른 건 처음이었다. 가방엔 소주와 호미가 하나씩 들어있었다.

 

1950년 10월9일 김 회장의 아버지는 인민군에 부역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의해 이 야산으로 끌려와 총에 맞아 숨졌다. 아버지 나이 39세 때였다. 김 회장은 매장 추정지를 호미로 파헤쳐 보다가 소주를 뿌리고 바닥에 절했다. 이 산이 전부 아버지 무덤이라고 여겼다.
 
김 회장의 아버지는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갔다. 김 회장은 “다음날 탕정 지서(파출소)에 삼촌이 면회를 갔는데 아버지가 많이 맞아서 한쪽 눈알이 빠져 나올 것처럼 부어있었다고 했다”고 전했다. 면회를 하고 온 날 밤 지서 뒤편 야산에서 총성이 울렸다. 10살도 채 안된 어린 나이였지만, 김 회장은 68년 전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통곡하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지난달 8일에도 김 회장은 나뭇가지를 헤치며 길 없는 야산을 다시 올랐다. 김 회장은 사전조사를 위해 찾은 유해발굴 공동조사단과 아산시 관계자를 마을 주민이 지목한 유해 매장 추정지로 안내했다. 김 회장은 낙엽이 떨어지고 잎사귀가 무성해져 혹시라도 흔적을 찾지 못할까봐 공사장에서 쓰는 띠를 구해다 ‘주변’이라고 크게 적어둔 나무에 묶어뒀다.

 

김 회장은 이날 경향신문과 만나 “아산 지역에서 부역 혐의로 숨진 피해자가 적어도 800명이 넘는다. 돌도 채 안된 아이도 죽였다”고 말했다. 1950년 9월28일 서울을 수복한 국군은 인민군이 점령했던 전국의 마을 곳곳에서 ‘부역 혐의자’라는 이유로 아무런 절차 없이 학살을 벌였다. 당시 민간인 학살의 피해자는 정확한 숫자를 헤아리기 불가능할 정도로 많다. 그때 어린 소년, 소녀였던 유족들은 이제 학살당한 부모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고령의 노인이 되었다.

 

김 회장의 증조할아버지는 중국 만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주원이다. 집을 판 돈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댔고, 이 공로로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대한제국 정객의 후손이었기 때문에 김 회장은 풍족하진 않지만 부족하지 않은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학살로, 어머니는 지병으로 돌아가신 뒤 집안은 완전히 몰락했다. 조부모 밑에서 힘겹게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어릴 적 꿈을 묻자 김 회장은 “아버지가 나를 육사에 보내고 싶어 하셨던 기억이 난다”며 눈물을 닦았다.

 

김 회장이 진상규명에 나선 건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출범하면서부터다. 그에게는 ‘부역 혐의자’의 자식이라는 꼬리표가 계속 따라다녔고 회사생활을 할 때도 신원조사를 당했다. 진실화해위에 진상규명을 신청한 뒤에야 억울한 죽음과 잔혹한 학살의 피해자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제서야 김 회장은 가족들에게 아버지 이야기를 할 용기가 생겼다. 수십년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건, 가족들에게도 피해가 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제 소원은 아버지 유골을 찾아 제대로 된 장례를 치르는 것이다. 올해 초에는 아버지의 유해를 찾는 심정으로 아산시 배방면 설화산 폐광의 유해발굴 작업에 손을 보탰다. 발굴 기간 내내 직접 땅을 파고 유골이 나오면 솔을 이용해 조심스레 흙을 털어냈다. 귀가 먹먹했다. 어린아이의 뼈가 나올 때는 울컥했다. 가해자들이 살아있다면 어떻게든 끌고 나와 보여주고 싶은 장면이었다.

 

 

경향신문 전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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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에 의해 발생했던 아우슈비츠의 민간인 대량학살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며 느꼈던 분노와 슬픔이 생생합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나라에 있었던 민간인 학살의 역사에 관심을 기울여 본 적 있으신가요? 88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은 우리나라 학살의 현장 중심에서 노력하고 계신 노용석 작가님과 함께했습니다.

 

 

노용석 작가님은 국가폭력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수 대부분이 독일의 아우슈비츠는 주목하면서, 우리나라에 있었던 학살에 대해선 외면하고 무지한 것이 모순적이라 느꼈다고 합니다. 교수님은 오늘 강연은 왜 내가 망자에 집착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라 설명하시며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교수님은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진상규명조사 단장을 역임하시며 경북 경산에 있는 코발트탄광 학살사건에 대해 알게 되셨다고 합니다. 이곳은 예전 교수님 집과 직선거리로 2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고 합니다. 내가 살았던 동네에 이런 일이 있었는데, 이걸 몰랐구나.”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고 하십니다.

 

▲ 탄광의 구조를 마이크로 설명해주셨던 노용석 교수님. 고작 마이크인데도 설명이 쏙쏙 잘 들어왔습니다

 

산 코발트탄광 학살사건은 6.25 전쟁 기간 중 경북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보도연맹 회원들을 학살한 사건입니다. 주민 증언에 의하면 19507월경부터 9월경까지 두 달간 학살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수천 명의 사람을 55m 수직갱도에 밀어 넣어 총살하거나 생매장해 죽였습니다. 60일이란 시간 동안 55m의 갱도가 시체로 꽉 찼다고 합니다.

 

이 갱도는 폐쇄된 상태였으나, 2005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설치되며, 유해발굴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노용석 교수님이 계셨습니다.

 

▲ 국과수 소장님께서 새로 산 기게로 만들어 주신 탄광의 구조도.

 

유해발굴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처음 조사팀장으로 부임했을 때, 팀원이 오직 교수님 혼자였다고 합니다. 맨땅에 헤딩인 셈이죠. 그러나 교수님 곁에는 유해발굴에 도움을 주신 친구들이 계셨습니다. 갱도를 막은 콘크리트를 뚫기 위해 다이너마이트 허가를 대신 받아준 방송국 PD, 경산 코발트 탄광의 3D 구조도를 만들어준 국과수 소장님이 대표적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인간의 죽음은 정상적 죽음과 비정상적 죽음으로 나눠지고, 비정상적 죽음을 해결하지 못한 나라는 아무리 경제발전을 한들 더 나은 시민사회로 나아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원혼이 가득한 거리에 어떻게 국가발전이 이루어지겠냐는 것입니다. (해당 내용은 인상깊어 영상으로 따로 제작했습니다. 아래 영상 첨부하니 시청하시길 부탁드립니다.)

 

 

 

경제부흥이라는 대의를 위해 피해자의 입을 막은 국가가 발전할 수 있을까요? 오늘날에도 민간인 학살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총살’, ‘생매장등 현대사회와 거리가 먼형태가 아니더라도, 나도 국가의 권력에 의한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우리가 국가폭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과거 일로 치부해버리고 제대로 역사를 청산하지 않는다면, 국가를 위한 희생에 암묵적 동의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도 과거 청산을 위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교수님은 강연 마지막에 유족 중심의 해결이 아닌 좀 더 큰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조심스레 언급하셨습니다. 유해발굴이 개인의 슬픔과 억울함을 달래는 데 그친다면, 국가 비극의 재발 방지라는 목적까지는 도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강연을 들으며 당신이 죽은 뒤 장례를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라는 한강의 소설 한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많은 피해자 가족들이 여전히 어두운 저녁을 걷고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듭니다. 유해발굴은 비정상적 죽음을 맞이했던 피해자를 위한 마지막 의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강연은 60분 남짓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집에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계속 생각이 날 정도로 여운이 길었습니다. 이날 강연에 참석하지 못했던 분들은 꼭 한번 교수님의 저서 <국가폭력과 유해발굴의 사회문화사>를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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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8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은 <국가폭력과 유해발굴의 사회문화사>의 저자 노용석 작가님과 함께합니다.


노용석 작가님은 2006년 출범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한국전쟁 당시 학살 피해자의 유해발굴사업을 총괄하셨습니다. 공동체 발전을 위해선 구성원이 가지고 있는 아픔을 직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해발굴의 재정의는 더 나은 우리를 위한 첫걸음입니다.

이날 행사는 쉽게 들을 수 없었던 우리의 과거와, 아픔이 회복된 미래를 도모하는 시간이 될 것같습니다. 11월 22일 목요일 산지니X공간에서 진행하는 노용석 작가님과의 만남에 많은 참석바랍니다.

일시 : 2018년 11월 22일 목요일 늦은 6시
장소 : 산지니X공간 
         (부산 해운대구 센텀중앙로 97, 센텀 스카이비즈 A동 710호)

국가폭력과 유해발굴의 사회문화사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연구와 유해발굴 사업을 주도해온 노용석 교수가 <국가폭력과 유해발굴의 사회문화사>를 출간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국전쟁 전후기 국가폭력 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의 전개과정을 밝히고, 더불어 피학살자들의 유해발굴 과정과 그 상징적 의미에 대해 고찰한다.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국가폭력의 기원과 과정을 '뼈'와 '발굴'이라는 요소를 통해 접근한다는 것이다. 유해발굴은 법의학적 기술을 동원해 땅속에 묻혀 있던 유해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는 것 이상으로, 한 사회의 기억과 기념 정치의 상징성을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표상이 된다. 유해발굴의 주체와 구체적 방법이 국가폭력 사건의 본질과 위상을 해당 사회에서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가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유해발굴의 과정을 현장에서 얻게 된 풍부한 사례와 자료에 이론을 더해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시대순으로 정리했다. 더불어 유해발굴의 의미를 단순히 가족의 시신을 발견하는 '좁은 단위'에서 국가와 인간의 보편적 인권을 이야기하는 '넓은 단위'로 확장하고, 나아가 한국 현대사에서 잊혔던 '비정상적 죽음'을 정치의 상징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표상으로서 나타낸다.

 
노용석

2005년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연구를 통해 박사학위(논문 제목「민간인학살을 통해 본 지역민의 국가인식과 국가권력의 형성」)를 취득하였다. 이후 2006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유해발굴 사업을 총괄하였다. 2018년 현재 부경대학교 국제지역학부 교수에 재직 중이다. 저서로 『라틴아메리카의 과거청산과 민주주의』『폭력과 소통』(공저)『트랜스내셔널 노동이주와 한국』(공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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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말말

기억과 사회적 기념

 

 

▲ 국가폭력과 유해발굴의 사회문화사ㅣ노용석 지음ㅣ산지니ㅣ320쪽

 

 

 

유해발굴의 사회적 기억회복 역할은 기억과 기념이라는 연구 주제와 맥을 같이한다. 역사를 서술함에 있어서 기억과의 연관성은 매우 중요하다. 많은 과거의 사실 중 어떤 것은 필요에 의해 망각되고, 또 어떤 것은 사회에 의해 기억되어 역사화된다. 이른바 기억투쟁의 과정을 거치면서 사회는 자신의 모습을 정형화시키는 것이다.기억되는 과거는 치열한 기억투쟁을 거쳐 선택된 것들이며, 선택된 과거를 기억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국가는 기념사업과 의례를 국가적 혹은 사회적으로 추진하는 방법을 구상한다(정호기 2007: 19-35). 이것은 근대국민국가가 국가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서, 기억의 정치는 냉전 이후 전세계 역사에서 근대국민국가를 건설함에 있어서 상당히 유용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기억을 사회적으로 항구화시키는 것은 기념의 영역이다. 기념은 개인적 영역과 사회적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사회적 영역의 기념은 주로 공공영역의 기억이 사회구성원들에게 오랫동안 남아 있어야 할 경우 사용된다. 개인적 기념은 가족과 공동체 등의 영역에서 주로 이루어지고, 개별적 의례 요소라 할 수 있는 제사와 같은 것들이다. 보편적으로 개인적 의례는 그 목표나 주요 대상이 ‘조상’ 등의 불변하는 객체로 구성되지만, 사회적 기념은 특정 시기마다 객체의 대상이 변화할 수 있다. 현혜경은 4.3기념의례가 공산폭동론과 민중항쟁론, 그리고 양민학살론 등에 의해 영향을 받으면서 역사적으로 그 성격과 정체성이 변화하였다고 분석하고 있다(현혜경 2008). 하지만 이렇게 사회적 기념은 시기마다 그 특질과 객체가 변화할 수는 있어도, 공공의 영역을 지향한다는 것은 대체로 유지된다. 공공의 영역을 추구하는 사회적 기념은 사회구성원의 기억을 재조정하여 집단적인 일체감과 통일성을 지향하기도 하지만, 개별적 영역에서 인식할 수 없었던 새로운 관점의 인식을 제공하기도한다. 예를 들어 민간인 피학살자의 죽음이 개별적 관계의 영역에머물지 않고 인권의 강화나 국가폭력의 부당성을 말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기념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개별 주체, 즉 유족의 기억이 피학살자 개인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표상으로서 그 죽음을 인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용석 부경대 교수(국제지역학부), 『국가폭력과 유해발굴의 사회문화사』(산지니, 2018.7) 중에서

 

 

 

교수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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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노용석 부경대 국제지역학부 교수가 썼다. 노 교수는 2006년부터 진실화해위원회가주관한 13개 유해발굴을 주도했고, 2011년부터는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에 참여해 한국전쟁기 국가폭력의 진상 파악을 위해 노력했다. 한국전쟁 전후기 국가폭력 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의 전개과정을 밝히고, 피학살자들의 유해발굴 과정과 그 상징적 의미에 대해 고찰한 책이다. 유해발굴의 과정을 현장에서 얻게 된 사례와 자료에 이론을 더해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시대순으로 정리했다. "정치적 변화와 무관하게 과거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되었던 피해자들의 유해가 아직까지 방치되어 있다"며 "그 가족들은 심리적으로 상당한 고통을 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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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과 유해발굴의 사회문화사

노용석 지음 | 320쪽 | 25,000원 | 2018년 7월 31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연구와 유해발굴 사업을 주도해온 노용석 교수가 『국가폭력과 유해발굴의 사회문화사』를 출간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국전쟁 전후기 국가폭력 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의 전개과정을 밝히고, 더불어 피학살자들의 유해발굴 과정과 그 상징적 의미에 대해 고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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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 과정에서 발생한 피학살자 유해발굴을 통해

한국 현대사를 재조명하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연구와 유해발굴 사업을 주도해온 노용석 교수가 『국가폭력과 유해발굴의 사회문화사』를 출간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국전쟁 전후기 국가폭력 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의 전개과정을 밝히고, 더불어 피학살자들의 유해발굴 과정과 그 상징적 의미에 대해 고찰한다.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국가폭력의 기원과 과정을 ‘뼈’와 ‘발굴’이라는 요소를 통해 접근한다는 것이다. 유해발굴은 법의학적 기술을 동원해 땅속에 묻혀 있던 유해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는 것 이상으로, 한 사회의 기억과 기념 정치의 상징성을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표상이 된다. 유해발굴의 주체와 구체적 방법이 국가폭력 사건의 본질과 위상을 해당 사회에서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가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유해발굴의 과정을 현장에서 얻게 된 풍부한 사례와 자료에 이론을 더해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시대순으로 정리했다. 더불어 유해발굴의 의미를 단순히 가족의 시신을 발견하는 ‘좁은 단위’에서 국가와 인간의 보편적 인권을 이야기하는 ‘넓은 단위’로 확장하고, 나아가 한국 현대사에서 잊혔던 ‘비정상적 죽음’을 정치의 상징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표상으로서 나타낸다.









민간인 학살의 개념과 과거사 청산의 의의부터

풍부한 피학살자 유족들의 증언, 생생한 유해발굴 과정까지…

발로 뛴 지식인의 기록


  노용석 교수는 2006년부터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주관한 13개 유해발굴을 주도했고, 2011년부터는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에 참여해 한국전쟁기 국가폭력의 진상 파악을 위해 노력했다. 또한 연구범위를 한국 사회로부터 라틴아메리카 사회까지 확장하여 세계적 차원에서 국가폭력의 치유와 상징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저자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간다. 「서론」에서는 죽음, 의례의 정의부터 과거사 청산의 의의와 유해발굴이 성행하는 이유까지 과거사 청산과 유해발굴에 대한 배경 지식을 소개한다. 1장「시체를 찾는 ‘귀신들’」에서는 한국전쟁기의 민간인 학살 개요와 규모, 형태에 대해 상세히 밝힌다.  2장 「유해의 수습과 새로운 공포」와 3장 「약화된 ‘공공의 비밀’과 유해발굴의 다양화」에서는 민간인 학살 이후 이념의 대립으로 쉽지 않았던 유해발굴의 과정과 4.19 혁명 이후에 간헐적으로 일어났던 유해발굴의 과정을 다룬다. 4장 「국가와 유해발굴」, 5장 「사회적 기념으로의 전환」, 6장「위계화된 죽음과 사회적 기념의 국가주의화」에서는 노무현 정부 이후 국가 주도하에 이루어졌던 유해발굴과 유해발굴이 사회적인 행위로서 전환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마지막 보론 「라틴아메리카 과거사 청산과 유해발굴」에서는 라틴아메리카의 유해발굴 사례를 들며 고민의 범위를 넓힌다.









왜 지금, 국가폭력과 유해발굴이

다시 정의되어야 하는가?


 

 

 

 

   정치적 변화와 무관하게 과거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되었던 피해자들의 유해가 아직까지 방치되어 있으며, 그 가족들은 심리적으로 상당한 고통을 받고 있다. 이러한 ‘원한’을 사회에 그대로 남겨둔 채 우리는 공동체를 발전시킬 수 있을까? 또한 사회의 ‘원한’을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항상 새로운 법적 장치의 보완과 같은 활동일까? 

_ p.13 「머리말」에서

 

 

 

 




  노무현 정부 이후 ‘과거사 청산’ 법 개정이 본격화되었고, 2005년 설립된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공권력의 남용으로 민간인들이 억울하게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규명하였다. 이후 유해발굴 작업은 몇 년 동안 멈춰 있었지만,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새롭게 진행되고 있다. 『국가폭력과 유해발굴의 사회문화사』는 과거사 청산 작업이 다시 활발히 이루어지는 지금 이 시점에 유해발굴의 필요성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저자는 유해발굴을 위한 법적 장치의 보완도 중요하지만 유해발굴이 사회적 기념으로서 전환되는 행위가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 유해발굴은 국가만의 획일적 작업이 되어서는 안 되며, 개인의 인식 변화가 중요하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현재까지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국가폭력과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생각해보고, 불과 100년도 되지 않은 대한민국의 어두운 역사와 그 회복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나아가 앞으로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걸어갈 길을 찾을 수 있다.



[책 속으로]


 

 

 

 

p.45 ) 학살과 희생은 크게 ‘우연성’과 ‘고의성’이라는 측면에서 구분할 수 있다. 즉 학살은 ‘의도된 정책 하에서 자신들의 사상 및 정책과 반대되는 이들에 대한 살해’를 말한다. 주로 이러한 학살은 규모면에서 대량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거의 ‘대량 학살(massacre)’의 개념과 일치하고, 국가와 같은 거대 권력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p.53 ) 1990년대 후반까지 한국사회의 학살에 대한 개념은 ‘양민’에 고정되어 있었다. 즉 ‘양민’과 ‘민간인’의 범주가 엄격히 구분되어 있었던 셈이다. 이때 ‘양민’이라 함은 ‘착한 백성’, 즉 좌익혐의가 전혀 없는 깨끗한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2000년대를 전후해 학계 및 시민사회단체에서는 학살의 범주를 ‘민간인’으로 재규정했으며, 이때 ‘민간인’은 ‘무장하지 않은 비전투요원’의 범위로서 좌익 혐의자라 할지라도 정당한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무참하게 학살된 사람들을 포함하고 있다. 


p.208 ) 2006년부터 진실화해위원회 유해발굴 이외 국가기관에 의해 수행된 다수의 유해발굴이 있었다. 이것은 노무현 정부가 과거사 청산을 주요 개혁과제로 공포하면서 각종 과거사 청산 관련 유해발굴이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발굴은 진실화해위원회의 과거사정리기본법 이외 독자적인 과거사 청산 법률을 가지고 있던 제주 4.3사건과 노근리 사건 등의 영역에서 실시되었다. 


p.220 ) 이와 같은 발굴 단계의 ‘과학화’ 및 ‘공식화’는 발굴된 유해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였다. 1960년도 유해발굴 당시 유족들은 발굴된 유해가 자신의 가족들이라 인식하였지만 사회적 ‘증거’나 ‘표상’으로 공감하지 않았다. 하지만 2000년 이후 유해발굴에서는 많은 발굴이 전문적 발굴팀의 주도하에 작업이 이루어짐으로써, 개인적인 연고를 주장하며 유해를 자의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개별적 지위에서 거리를 둔 ‘사회적 표상’으로서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p.252 ) 이렇듯 사회적 기념을 완성하기 위해서 국가의 참여는 반드시 필요하다. 많은 유족과 시민사회단체들도 과거사 청산의 마무리를 국가가 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국가주도 기념이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으며,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국가주도의 사회적 기념은 자칫 또 다른 방식으로 개별적 기억을 억누르면서 국가주의를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목차]







[저자소개]






노용석

  2005년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연구를 통해 박사학위(논문 제목「민간인학살을 통해 본 지역민의 국가인식과 국가권력의 형성」)를 취득하였다. 이후 2006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유해발굴 사업을 총괄하였다. 현재 부경대학교 국제지역학부 교수에 재직 중이다. 저서로 『라틴아메리카의 과거청산과 민주주의』『폭력과 소통』(공저)『트랜스내셔널 노동이주와 한국』(공저)이 있다.





 

 

 

국가폭력과 유해발굴의 사회문화사

노용석 지음 | 320쪽 | 25,000원 | 2018년 7월 31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연구와 유해발굴 사업을 주도해온 노용석 교수가 『국가폭력과 유해발굴의 사회문화사』를 출간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국전쟁 전후기 국가폭력 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의 전개과정을 밝히고, 더불어 피학살자들의 유해발굴 과정과 그 상징적 의미에 대해 고찰한다. 

 


 




국가폭력과 유해발굴의 사회문화사 - 10점
노용석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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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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