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이주민과 함께>에서 주최하는 '아시아문화 한마당'을 다녀왔습니다. 며칠 너무 쌀쌀했는데 지난 주말만 신기하게 따뜻했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하늘만 보기 좋은 날이었습니다. 한마당은 민주공원에서 11시에 시작해 5시에 끝나지만 야외부스는 3시에 철거되고 극장 안에서 이주민들의 공동체 공연을 볼 수 있습니다. 매 해 하는 공연이지만 연극이 가장 인기 있는 공연입니다.


이미 제가 도착했을 때는 안에서 연극이 한창이었습니다. 저는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며 가을을 즐겼습니다. 너무 좋으면 사진 찍는 것도 잊는다고 했던가. 갈 때는 사진 많이 찍고 와야지 해놓고 막상 멍하게 앉아서 찍은 하늘 사진 밖에 없네요.(변명 중;;)

대부분 아시아는 비가 많이 오는 우기와 오지 않는 건기로 나눠지는데 우리나라의 4계절과 비교하면 전혀 다른 계절이지요. 건기는 우리 가을과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계절이지요. 가을이 없는 나라에 온 친구들이 고국에 돌아가 한국의 가을을 어떻게 설명할까요.




바다가 없는 나라에서 온 남녀들은

출렁출렁 튜브를 타고

들이 너른 나라에서 온 남녀들은

이글이글 모래사장에서 일광욕을 하고

산이 높은 나라에서 온 남녀들은

어슬렁어슬렁 물가를 걸어다니고

강이 긴 나라에서 온 남녀들은

첨벙첨벙 수영을 했다.

「축제」일부,『입국자들』, 하종오




산지니에도 이주민과 관련된 책을 몇 권 냈습니다. 그 중에서 제가 좋아하는 건 이주민들의 개개인의 삶을 다양하게 오린 하종오 시인의『입국자들』 

행사에서 만난 미얀마 친구는 고국에 돌아가 사진스튜디오를 한다고 했어요. 그러나 처음부터 스튜디오를 운영하게 되면 자신의 자유를 뺏긴다고 말했던. 자신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진지함에 저 역시 조용히 경청하게 되었습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한 인간이 태어나서 자신이 꿈꾸는 세계에서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다는 것은 얼마나 억울한 악몽인가? 남들의 일생에 얽히고설켜서 제 평생을 마쳐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생애인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돈을 벌러 온 이주민을 우리 너무 배타심과 이기심으로 대하지 않았는지, 이제 돈만 벌기 위해 한국에 온다는 이주민의 다른 꿈도 상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며 가을날의 노을로 행사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버스를 기다리면서 바라본 가을 노을. 가을은 역시 노을




Posted by 동글동글봄


며칠 전 창비 저작권팀에서 한 통의 메일이 왔는데요.

“중, 고등 국어교과서가 국정이 아닌 검정 교과서로 바뀌면서 여러 종의 국어 교과서가 발행되어 있습니다. 창비는 검정 국어교과서에 수록된 문학작품 중에서 좋은 작품을 선택하여 학생들이 다양한 문학작품을 접할 수 있도록 <문학 교과서 작품 읽기> 시리즈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편에 귀사의 저작물 「밴드와 막춤」(출전:입국자들)을 사용하고자 아래와 같이 문의를 드리오니 검토하시고 허락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략)”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는 「밴드와 막춤」이라는 시를 다른 작품들과 같이 묶어 책을 발행하고 싶다는 내용이었어요. 「밴드와 막춤」은 저희 출판사에서 출간한 하종오 시인의 『입국자들』에 실려 있는 시인데요.

『입국자들』 소개글 보기

작년에도 『입국자들』에 실려 있는 시 「사전」을 싣고 싶다는 이런 메일을 창비에서 받은 기억이 나네요. 「사전」은 중학교 생활 국어 2-2에 실려 있답니다.
그때 허락 메일을 보내드렸더니 책이 나오고 나서 저희 출판사에 2권을 보내왔더군요.
한 권은 저희 아들놈 읽으라고 집으로 싹~. 마침 제 아들도 중2이거든요.

『입국자들』에 실려 있는 시 중에서 이 외에도 몇 편이 더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는데요.  이 시집 만들 때 저희 출판사에서는 처음 출간하는 시집이라 꽤 많이 공력을 들였는데 교과서에도 실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게 되어 좋네요.

창비의 <문학 교과서 작품 읽기> 시리즈에서 작품을 선정할 때도 재미와 감동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작품을 고르는 것이 첫 번째 기준이라고 하더군요. 이런 좋은 시를 많이 접해서 우리 주위의 사람, 사물, 세계에 대한 인식이 훌쩍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이주민에 대한 인식도 좀 더 따뜻해졌으면 좋겠고요.^^


 

사전

시어머니 손에 잡혀 나오면서도
영문을 몰랐던 며느리는
서점에 도착하고 나서야 알아차렸다 

시집온 지 겨우 한 달
한국어는 말하지 못하고 알아듣지 못해도
베트남어는 읽을 수 있고 쓸 수 있는
며느리가 시어머니 손을 잡고 앞장섰다

각종 외국어 사전이 꽂힌 서가 앞에서
베트남어 한국어 사전을 뽑아 든
며느리는 빠르게 책갈피를 넘기고
한국어 베트남어 사전을 뽑아 든
시어머니는 천천히 책갈피를 넘겼다

사전 한 권씩 들고 집에 돌아온 고부는
그때부터 편해지고 마음 놓이는지 
굳이 사전을 뒤적여 찾지 않아도 
한국말과 베트남말로
제각각 한마디씩 해도 살림할 수 있었다


입국자들 - 10점
하종오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하종오 시인의 새 시집 '남북상징어사전'이 나왔네요.
서울 변두리에 사는 하종오 시인은 시집에서도 이주민, 탈북자 등
자본주의 주변부 존재들의 이야기를 시의 소재로 삼아왔습니다.

저희 출판사와는 2009년 <입국자들>이라는 시집을 내면서
처음 인연을 맺었습니다.

산지니에서 나온 첫시집이며 출간후 청소년 권장도서(대한출판문화협회)로도 선정되었답니다.



<입국자들>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 <국경 너머>는 탈북과 그 이후의 고난ㆍ가난ㆍ그리움 등
탈북자 문제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2부 <사막대륙>은 몽고ㆍ중국에서 한국으로 이주해온 이들과
현지 가족들의 삶을 다루고 있으며,
3부 <이주민들>은 동남아시아에서 이주해온 이들의
한국생활을 이야기하며,
4부 <귀환자들>에서는 한국에서 고국으로 귀환한 자들과
한국에 간 이들을 기다리는 현지 가족의 생활을 다룹니다.

이번에 나온 시집 '남북상징어사전'은
통일 이후를 상상하는 시들로 채워져 있다고 합니다.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통일 이후'라는 상상만으로도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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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by 산지니북

    누군가 사랑과 책은 나누면 나눌수록 좋다고 하던데요. 특히나 좋은 책일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으면 좋겠죠. 이런 책의 행복한 순환을 이끌어내는 북리펀드 사업.
    북리펀드는 한국출판인회의와 네이버가 함께 하는 독서 캠페인인데요.

    매달 40권의 도서를 선정하여 홍보하고, 책 구매 독자들이 책을 읽은 후 반납하면 책 가격의 50%를 돌려주는 사업이랍니다. 반납된 도서는 전국의 마을도서관에 기증하고요. 아직까지 북리펀드가 뭔지 생소하신 분은 네이버에서 ‘북리펀드’를 검색하시면 바로 나옵니다.

    책을 사시는 분은 나중에 반납하고 책값의 반을 돌려받으니 부담이 적고 반납된 도서는 따뜻한 마음을 담아 산 넘고 바다 건너 책을 구하기 힘든 분들에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니 좋은 일도 되구요.

    평소 읽고 싶었는데 책값이 부담되었다면 이런 기회를 활용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선정될 수 있도록 투표하는 수고는 당연히 해야겠죠.


    저희 출판사도 당근 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데요. 매달 2권의 도서를 신청하는데 이번에는 『입국자들』과 『극동 러시아 리포트』를 신청했답니다. 오늘 투표상황을 보니 『입국자들』이 1위를 달리고 있더군요. 1등이나 40등이나 선정되는 것은 똑같지만 어쨌든 기분은 좋습니다.^^

    그럼 열화(ㅎㅎ)와 같은 성원을 받고 있는 『입국자들』은 어떤 책인지 궁금하시죠.^^
    『입국자들』은 이주민 문제를 화두로 삼고 그 문제에 지속적으로 천착하고 있는 하종오 시인의 이주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담고 있는 시집인데요.

    이제껏 많은 매체들이 이주민의 삶에 주목해왔지만 실상과는 괴리가 있는 다소 일방적인 시각이 많았죠. 이주민들이 직면한 비참한 현실만을 주목하여 그들을 시혜의 대상으로 보거나, 또는 그들을 정적인 인물로 고립시키거나, 선한 인물로 신비화하기도 하고요. 반면, 한국인들은 주로 악한 인물로 그리고 있죠.^^ 이러한 점들은 대체로 한국인의 시선에서 그들을 일방적으로 대상화할 때 나타나는 문제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하종오 시인은 이러한 일방적인 시선을 넘어서 한국인과 이주민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다양한 시선들을 맞대면시키며 섬세한 시선으로 이주민들의 일상생활을 포착해내고 있습니다.

    자기들끼리 사기를 치기도 하고(「눈비음」), 한국 체류기간 동안 고용주에게 배운 나쁜 버릇을 자국에서 되풀이하며 자신의 배를 불리기도 하고(「소자본가」), 솟구치는 욕정 때문에 자국 언어로 한국여성들에게 진한 농을 던지기도 하고(「공단 밤거리」), 합법 체류자가 되기 위해 결혼할 한국여성을 찾아 밤거리를 어슬렁거리기도 하고(「이유 있는 방황」), 열악한 환경의 공장에서는 일하기를 꺼려하고(「작은 공장」), 돈에 대한 강한 집착을 드러내기도 하는 등 이주민들이라고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 시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빠른 속도로 다민족, 다문화 사회로 변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이주민에 대한 왜곡된 인식은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주민 문제에 오랫동안 천착해온 시인의 연륜이 담긴 시들을 통해 이주민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입국자들』이 북리펀드 도서로 선정되면 책의 선순환에 같이 동참해도 좋을 것 같네요.

    입국자들 - 10점
    하종오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월요일 아침마다 전 직원이 모여 회의를 한다.
    출판사의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 전 직원이 같이 공유를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으면 같이 나누기 위해서 오전 약 2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눈다.

    이번 주도 어김없이 각 편집자마다 편집하고 있는 원고의 진척 정도, 출간의뢰 들어온 원고 검토(출간할 건지 말 건지,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 등)에 대한 의견, 서점 출고사항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 따라 유난히 전화가 자주 와 흐름이 자주 끊겼는데(혹시 주문 전화일지 몰라 안 받는 것은 생각할 수 없음) 백 번 끊겨도 좋은 전화 한 통.

    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에서 2/4분기 올해의 청소년도서에 하종오 선생님의 『입국자들』이 선정되었다는 전화였다. 회의는 필요하기는 하지만 지겨운 것 또한 사실. 모두들 뻑뻑한 얼굴로 회의하고 있다가 돌연 모두들 화색이 가득.^^

    뭐든지 상을 받는다는 것은 좋은 것. 더구나 보너스로 연결되면 더더욱 좋은 것. 우리 출판사는 따로 보너스가 없는 대신 도서 선정시 구입금액의 1%를 보너스로 받는다. 비록 금액은 얼마 안 되지만 갑자기 생긴 공돈이니 기분은 짱이다. 오늘은 우리 사장님 기분 좋다고 점심도 탕수육으로 한턱 쐈다.

    이런 기쁨을 우리에게 선사한 『입국자들』이란 어떤 책인가?
    이주민의 문제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형상화해 온 하종오 시인의 새 시집으로 이주민들의 삶을 다양한 각도에서 들여다보고 있는 책이다.

    입국자들, 46판 양장, 값 12000원



    우리들은 흔히 이주민을 인간 개개인으로 보지 않고 인종이나 민족적 차원으로 환원하여 깜둥이, 필리핀인, 태국인 등으로 호명한다. 그러나 시인은 이주민을 집단으로 보지 않고 그들 개개인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한다. 서로의 인간적인 면모를 확인하고 교감할 수 있는 개인 대 개인으로서의 만남을 만들어가려는 의지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입국자들』에서 담아내고 있는 이주민들의 모습은 자기들끼리 사기를 치기도 하고, 한국 체류기간 동안 고용주에게 배운 나쁜 버릇을 자국에서 되풀이하며 자신의 배를 불리기도 한다. 솟구치는 욕정 때문에 자국 언어로 한국여성들에게 진한 농을 던지기도 하고, 합법 체류자가 되기 위해 결혼할 한국여성을 찾아 밤거리를 어슬렁거리기도 한다. 열악한 환경의 공장에서는 일하기를 꺼려하고, 돈에 대한 강한 집착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주민이라 해서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는 http://sanzinibook.tistory.com/63

     

    Posted by 비회원

    국내 거주 외국인이 100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우리는 이주민들을 얼마나 얼마나 정확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아시아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인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한국인들의 눈에 비친 아시아인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아시아인들의 눈에 비친 아시아인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자연의 재앙에 노출되어 있는 아시아인들의 인생은 어떠한가.
    정치 경제적으로 각각 다른 체제 속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아시아인들의 인생은 어떠한가.  - '시인의 말'에서


    노파는 웃는다

    한국 공장에 취직하러 간다는
    손자 덩군터숭는을 볼 때마다

    한국말을 모르는 척
    한국을 모르는 척
    노파는 병상에 누워서
    손자 덩군터숭는과 잡담을 나눈다
    당연히 태국말로

    이젠 더욱 한국에 갈 수 없고
    이젠 더욱 한국어를 쓸 수 없겠지만
    노파는 망설인다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일제 때 처녀로 정신대에 끌려왔다가
    태국 여자 행세하며 할머니로 살아남은 신세를

    처자식까지 있는 손자 덩군터숭는이
    한국 공장에 가서 몇 년 열심히 일하고 돈 모아
    태국 집으로 돌아오면 부자 된다고 자랑할 때마다
    노파는 속마음으로 속마음으로 바란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제 얼굴과 할머니의 얼굴에서

    한국인의 이목구비를 느낄 수 있기를
                                                         -「귀국」, 184쪽



    지금 한국 사회에는

    수난당하는 이주민들을 도와주자
    그들을 한국인으로 인정하자
    한국의 배타적 민족주의를 비판하자

    라는 담론이 들끓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어려운 경제 사정과 한국인들의 실업난을 빌미삼아 이주노동자에 대한 질시와 추방의 분위기 또한 고조되고 있다.
    지젝(Slavoj
    Žižek)은 인종차별주의의 논리를
    우리의 향락을 타자가 박탈했다는 향락의 절도라는 관점에서
    분석한 바 있는데, 지금 한국사회에서도 그러한 심리적 박탈감이 이주민들을 향해 표출되고 있다.

    46판 양장, 정가 12,000원

    이제껏 많은 매체들이 이주민의 삶에 주목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다소 일방적이었다. 이주민들이 직면한 비참한 현실만을 주목하여 그들을 시혜의 대상으로 보거나, 또는 그들을 정적인 인물로 고립시키거나, 선한 인물로 신비화하기도 했다. 반면, 한국인들을 악한 인물로만 그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선은 그들의 실상과 거리가 멀다.

    시집『입국자들』은 이주민들을 도움을 기다리는 고통받는 얼굴로만 고정시키지 않고 다양한 표정을 간직한 이들로,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으로 그리고 있다.

    이주민들은 자기들끼리 사기를 치기도 하고, 한국 체류기간 동안 고용주에게 배운 나쁜 버릇을 자국에서 되풀이하며 자신의 배를 불리기도 한다.

     


    한국에서 돌아온 쩐주이호안 씨는 / 베트남에서 오토바이 수리점 차렸다 // 합법체류 이 년 불법체류 팔 년 / 청년 때 가서 일해 돈을 모아 / 중년이 되어 돌아온 쩐주이호안 씨는 / 수리공들 일찍 출근시키고 늦게 퇴근시키고 / 봉급 적게 주며 미루었다가 / 제풀에 지쳐 떠나가게 만들었어도 / 오토바이는 제때 고치도록 했다 // 한국인들이 하던 그대로 / 베트남인들에게 똑같이 하니 / 저절로 손님들이 꼬여서 / 장사 잘 된다는 쩐주이호안 씨는 / 신형 오토바이 타고 다니며 거드름 피웠다 // 그러나 한국으로 취업하러 가려는 / 젊은이들이 찾아와 도움말 한마디 구하면 / 쩐주이호안 씨는 입 꽉 다물어버린다


    - 「소자본가」, 208쪽


    솟구치는 욕정 때문에 자국 언어로 한국여성들에게 진한 농을 던지기도 하고, 합법 체류자가 되기 위해 결혼할 한국여성을 찾아 밤거리를 어슬렁거리기도 한다. 열악한 환경의 공장에서는 일하기를 꺼려하고, 돈에 대한 강한 집착을 드러내기도 한다. 시인은 이주민 국가의 실상을 전폭적으로 드러내면서,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왜곡된 시선을 고쳐준다.

     

    책에는 이주민들과 맞대면하는 한국인들의 모습도 담겨 있다.
    그 안에 그려진 한국인들 역시 이주민들처럼 다양한 얼굴을 한 사람들이다. 시인은 한국인 비정규직 노동자와 외국인 불법체류 노동자의 신세가 다르지 않다고 꼬집기도 한다
    . (연합뉴스)


    한국인 노동자도 외국인 노동자도 / 봉급에 별 차이가 없으니 / 인도네시아인 하디링랏 씨는 / 한국인 철진 씨가 안쓰럽다 // 철진 씨는 한국 수준으로 쓰니 / 모자라서 빌리러 다니고 / 하디링랏 씨는 인도네시아 수준으로 쓰니 / 송금하고 나머지로 먹고 입는다 // 한국인 철진 씨도 /인도네시아인 하디링랏 씨도 / 언제 잘릴지 모르기는 마찬가지 // 노동자론 힘들기는 마찬가지여도 / 철진 씨는 한국에서 지내야 하므로 잘 살 수 없을 것이고 / 하디링랏 씨는 인도네시아로 돌아가면 잘 살 것이다 / 피차 그렇게 생각하며 /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 쉴 때는 옆에 주저앉고 / 일할 때는 물건을 맞잡고 옮긴다

    -「비정규직」, 162쪽



    『입국자들』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탈북과 그 이후의 고난ㆍ가난ㆍ그리움 등 탈북자 문제를 소재로 하고 있는 「국경 너머」(1부), 몽고ㆍ중국에서 한국으로 이주해온 이들과 현지 가족들의 삶을 다루고 있는 「사막 대륙」(2부), 동남아시아에서 이주해온 이들의 한국생활을 소재로 하고 있는「이주민들」(3부), 한국에서 고국으로 귀환한 자들과 한국에 간 이들을 기다리는 현지 가족의 생활을 다룬 「귀환자들」(4부)로 구성되어 있다.  

     

    시인은 무엇보다 이주민 개개인들과의 개별적인 만남을 중시한다. 우리들은 흔히 이주민을 개인 그 자체로 보기보다는 인종이나 민족적 차원으로 환원하여 대면하곤 한다. 예컨대, 이주민 개개인을 깜둥이, 필리핀인, 태국인 등으로 환원하여 호명한다. 그리고 민족이라는 집단에 스스럼없이 동화되어 그들을 대면하기도 한다. 그 결과 이주민들에게 배타적인 민족감정을 드러내고, 그러한 배타성을 집단 내부의 책임으로 전가하여 별다른 죄책감 없이 폭력적인 행위를 자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인은 이주민을 집단으로 보지 않고 그들 개개인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고 있다. 이것은 이주민들을 국적이나 인종과 같은 집단으로 보는 태도에 맞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작업이다. 또한 그것은 민족 감정이 발현되기 쉬운 집단 대 집단으로서의 만남이 아니라, 서로의 인간적인 면모를 확인하고 교감할 수 있는 개인 대 개인으로서의 만남을 만들어가려는 의지가 나타난 작업이기도 하다.


    하종오 시인

     

    1954년 경북 의성 출생으로 호는 河詩이다.  그동안 하종오 시인은 『반대편 천국』(문학동네, 2004)『국경 없는 공장』(삶이 보이는 창, 2007)『아시아계 한국인들』 (삶이 보이는 창, 2007) 등에서 이주민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뤄왔다. 이번 시집 『입국자들』도 그 연장선상에서 한국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이주민과 현지가족의  실제 삶에 바짝 다가가 들여다봄으로써 그들과의 진정한 만남을 추구하고 있다.

    "자본주의를 향해 질주하는 아시아 각 국가와 한국 사이에서 생존하려는 평범한 인간 개개인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그리고 서울의 변두리에서 사는 나는 부산을 중심으로 터잡아 출판 활동하는 ‘산지니’에서 시집을 출간하여서 특별히 기쁘다."  - '시인의 말'에서



    차례

    제1부 국경 너머

    재배하우스 / 목련 / 말투 / 초청 / 대면식 / 젊은 여자 / 구경 / 적금통장 / 부부 / 남자종업원 / 짓거리 / 출향 / 시급(時給) / 별미 / 강가에서 / 독상(獨床) / 화전(花煎) / 타국 / 봄꽃 / 국경 너머 / 월경(越境) / 비 내리는 날 / 과수 / 접경지대 / 이국

    제2부 사막 대륙
    푸른 하늘 / 장맛비 / 닮은꼴 / 신혼시절 / 변두리 동네 / 놀이터 / 전업 / 전 재산 / 후예 / 고물자전거 / 겸상 / 비행 / 아이 몇몇 / 속울음소리 / 방사림 / 직업 / 밑천 / 편서풍 / 방풍림 / 이주 / 페트병 / 귀가 / 모터펌프 / 호수 / 플라스틱 통 / 쌍봉낙타 / 두 눈 / 사유(私有)

    제3부 이주민들
    작은 공장 / 돌연사 / 밴드와 막춤 / 기후 난민·1 / 값 / 공중목욕탕에서 / 먼 메콩강 / 눈비음 / 열대야 / 신분 / 목적지 / 교제 / 첫눈 / 첫낯 / 여권 / 봉급 / 연인 / 속사정 / 공단 밤거리 / 비정규직 / 오해 / 장애 / 메콩강, 메콩강 / 휴일 / 외모 / 구직자들 / 시내버스정류장에서 / 사전 / 축제

    제4부 귀환자들
    귀국 / 메콩강 / 모델료 / 안나푸르나 / 불행한 휴식 / 뉴스 / 알 수 없는 일 / 한 가지 이유 / 전후(前後) / 우기 / 연(緣) / 악랄한 공장 / 소자본가 / 악수 / 세 번의 행운 / 가까운 메콩강 / 서글픈 귀환 / 금의환향 / 취업 / 관광객 / 귀국자 / 메콩강 가 / 소식 / 난민 / 기후 난민·2 / 생리휴가 / 신출(新出) / 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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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국자들 - 10점
    하종오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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