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를 만나세요, 당신이 세상의 乙(을)이라면


- 기존에 출간된 책보다 매끄럽고 쉬운 번역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 한비자는 처세술이 아닌 경영학+정치학의 통치술
- 특히 사회에 나가기 전인 청년에 일독을 권합니다

고전학자 정천구(49) 박사를 부산 금정구 남산동 연구실 겸 자택에서 지난 19일 만나자마자 평소의 의문부터 털어놓았다.

   


'한비자' 번역본을 펴낸 고전학자 정천구 박사가 한비자의 사상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본지에 연재한 기획시리즈에 바탕을 둔 단행본 '한비자, 제국을 말하다'도 함께 냈다. 서정빈 기자 photobin@kookje.co.kr

"재작년 이른바 대한항공의 '땅콩회항' 사건으로 우리 사회가 들썩인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 일이 떠오를 때마다 저는 사건의 장본인 조현아 당시 대한항공 부사장이 일찌감치 '한비자'를 공부했다면 어땠을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생각하곤 했는데요."

커피콩을 가는 수동 커피그라인더를 돌리던 정 박사가 대답 대신 요즘 우스개를 하나 들려준다. "어떤 청년에게 꿈이 뭐고, 그 꿈을 이루는 데 어려운 점이 뭐냐고 물었더니 '재벌 2세가 되는 게 꿈인데 아빠가 노력을 안 해요'라고 답하더랍니다." 참 절묘한 농담이다.

곱게 간 커피가루에 물을 부어주면서 정 박사가 덧붙인다. "한비는 전혀 다르게 말하죠. 아버지의 자리를 이어받을 수는 있어도 능력은 물려받을 수 없다. 필요한 덕목을 터득해서 네가 1세가 되라, 네 삶의 군주가 되라 하는 메시지와 내용이 '한비자'에는 있지요."

요약하면, '한비자'를 쓴 중국 전국시대(거의 2500년 전이다) 법가 사상가 한비가 땅콩회항의 현장을 봤다면, "그렇게 공부하라고 했건만…"하고 혀를 찼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 물론, '한비자'에서 배울 것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한비자'는 훨씬 풍부하고 깊고,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현실감이 높다. '한비자'는 2500년 세월을 거치며 강철처럼 단련되고 엄정하게 검증받은 책이다.

■거칠지 않게 어렵지 않게 번역

정천구 박사는 최근 산지니출판사에서 '한비자' 완역본을 펴냈다. 한비자를 전면에 내세워 현대 한국사회의 현실과 문제점을 날카롭게 비판한 '한비자, 제국을 말하다'도 같은 출판사에서 함께 냈다. '한비자,제국을 말하다'는 지난해 3월~8월 국제신문에 연재한 글을 다듬어 엮은 책이다.

그는 비중이 크고 중요한 책을 꾸준히 번역하거나 저술했다. 저서로 '삼국유사, 바다를 만나다' '맹자독설', 번역서로 '차의 책' '동양의 이상' '원형석서' '일본영이기' '밝은 마음을 비추는 보배로운 거울-명심보감' '삼교지귀' '모래와 돌' '베트남 선사들의 이야기' 등이 있다.

그의 저서 가운데 '논어, 그 일상의 정치' '맹자, 시대를 찌르다' '중용, 어울림의 길'은 고전 주해서로 하나의 흐름을 이룬다. 동양 고전을 깊이 읽고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하기 때문이다. '한비자'가 그 흐름을 이었다.

"다른 연구자의 번역서가 나와 있는데, 정천구 번역본 한비자를 다시 내신 뜻이 있습니까?" 이 질문에 그는 답했다. "한비자 전체를 번역한 책은 현재 시중에 4종 정도 있는 것으로 알아요. 그런데 대체로 번역이 거칠고 상그러워요. 대학생 이상이면 읽는 데 어려움이 없는 번역서가 필요하다고 봤지요." 정 박사는 "그리고 번역은 단순히 언어를 옮기는 게 아니라 옮기는 이의 해석과 시각과 역량이 담기게 마련"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내내 한비자 주석서가 안 나온다. 비교적 근래까지 한비자에 관한 관심이 없었다. 일본만 해도 에도시대에 한비자 주석서가 쏟아져 나왔고 권위 있는 책도 많다. 이런 사정으로 우리나라에서 유명세에 비해 한비자 번역은 상대적으로 활발하지 않았다.

■제자백가 책은 고루 읽어야

   

그가 한비자를 새로이 공들여 번역한 뜻은 또 있다.

"기존 한비자 번역서에는 한비자로 대표되는 법가사상이 유가사상과 단순하게 대립하고 배척만 한 것으로 이해하는 면이 있죠. 유교에 대한 이해의 폭이 좁고, 그러다 보니 유가와 법가의 관계를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정 박사가 볼 때 둘 사이의 관계는 훨씬 긴밀하다.

법가의 거물로, 진시황이 완성한 천하통일의 바탕을 마련한 상앙은 당시 유가를 비판하면서 법가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상군서'라는 책으로 남겼다. 유가의 거목 맹자는 이런 '상군서'를 끊임없이 의식하고 비판하면서 자기 사상을 펼친다. "불교사상이 없었다면, 성리학이 성립할 수 없었던 것과 비슷하게 법가와 유가의 관계는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데가 있었죠."

이는 정천구 박사가 강조하는 고전 공부법의 요체로 이어진다. "함께 읽어야 해요." 한비자를 비롯한 제자백가는 '나는 논어가 좋아' '그럼 나는 맹자' 하는 식으로 접근하면, 제대로 배울 수 없고 고전공부에서 아주 중요한 균형감각까지 못 갖추기 십상이라고 그는 지적한다.

세상 살기 어렵다고 노자와 장자에만 빠져들면 도피로 흐르고, 법가만 파고들면 각박해질 수 있겠다. 실제로 에도시대부터 한비자에 열광한 일본은 국가 발전을 앞당기는 데 성공하지만, 그 뒤 침략적 제국주의로 흘렀다. 조선은 법가와 유가가 균형을 이룬 전기에는 융성했으나, 성리학과 관념론에 빠져버린 조선 후기에는 참혹했다. 정 박사는 '한비자' 또한 '논어' '맹자'를 비롯한 여러 제자백가의 책과 함께 볼 것을 권했다.


■당신이 을이라면 한비자를 읽자

'한비자'의 문장은 간결한 아름다움이 있다. 상당 부분이 치밀하고 논리적이다. 권력과 정치의 속성과 본질을 지적하는 대목에서는 2000년이 지난 지금과 하나 다를 게 없어 간담이 서늘하고 모골이 송연해질 지경이다. 각 장의 제목만 봐도,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한국 정치 현장 이야기처럼 생생하고 현실감이 강하다.

망징(나라가 망할 징조) 팔간(신하의 여덟 가지 간사한 짓) 십과(군주의 열가지 허물) 세난(유세의 어려움) 간겁시신(간사하고 겁주고 시해하는 신하)…. '한비자' 자체가 강한 책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한비자'는 인간사회의 관계를 힘(권력)의 관계로 보고 이를 활용하고, 여기서 살아남고, 번성하고, 안정되는 법을 논한다.

"그러므로 단순한 처세술이 아니라 경영학과 정치학을 아우른 통치술이지요. 조직 위계에서 아래 쪽에 있는 분들, 갑을관계에서 을인 분들은 반드시 읽어야죠. 그래야 안 당하죠. 20대 청년들도 사회에 나가기 전에 꼭 읽기를 권합니다. '한비자' 속에는 일화가 많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논어 맹자 등 다른 책과 함께 읽을 때, 당신을 강하게 만들어 줄 책이다. 


# 고전학자 정천구와 그가 말하는 인문학

정천구 박사는 부산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매주 수요일 오후 7시 부산 동구 민주시민교육원 나락한알에서 도덕경을, 매주 목요일 오후 7시 사상구 사상평생학습관에서 맹자를 강의한다. 이 두 군데에서 강의하면서 공부하고, 연구하고, 책 쓰고, 노니는 삶을 산다.

그는 인문학을 제대로 공부하거나 가르치려면 "장기 강의는 필수"라고 잘라 말한다. 그 자신이 강사로서 한비자 84주, 맹자 60주, 중용 36주, 순자 32주를 강의했다. 현재 하고 있는 맹자는 96주 진행했다. 드문 장기 강의이다.

좋은 인문학 강의는 진지하게 이뤄지며, 수강생에게 배우는 재미와 삶의 변화를 체험하게 해준다. 정 박사는 이렇게 의견을 밝혔다."적어도 인문학 공부라면 1회성 강의나 특강은 보람과 효과를 느낄 수 없다. 80주에 걸쳐 해야 할 공부를 단 두 시간에 듣는 것은 '나도 안다'는 착각만 조장한다. 공부의 효과는 단숨에 얻을 수 없다. 꾸준히 해야 한다. 그것 말고는 길이 없다. 그 과정을 통과해야 인문학의 참맛을 느낀다."


조봉권 | 국제신문 | 2016-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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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 - 10점
한비 지음, 정천구 옮김/산지니


 

한비자, 제국을 말하다 - 10점
정천구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정천구, 맹자 주석서 출간
사서(四書) 시리즈 세 번째
논어·중용 이어 ‘대학’ 준비


고전학자 정천구의 저서 『맹자, 시대를 찌르다』(산지니)가 지난봄 출간했다. 현대사회에서 고전의 역할과 가치를 발견하는 작업을 지속해온 저자가 맹자를 통해 오늘의 한국사회를 찌르는 주석서이다. 유교의 기본 경전인 사서(四書) 시리즈 중 세 번째 저서로서 2009년 출간한 『논어, 그 일상의 정치』를 시작으로 『중용, 어울림의 길』을 잇고 있으며, 다음 해 마지막 편인 ‘대학’ 출간을 앞두고 있다.

저자는 자칫 고리타분해지기 쉬운 사서 시리즈에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는다. 고전을 번역하고 뜻을 제대로 풀이하는 주석(註釋)에 그치지 않고, 전후 맥락을 살펴서 주관적 해석을 담은 사족(蛇足)을 덧붙인다. 공자와 맹자의 무게에 주눅이 들지 않고 자신의 해석을 이야기한다.

『논어, 그 일상의 정치』에서 공자의 사유를 한 마디로 이렇게 밝힌다. ‘그것은 바로 ‘일상의 정치’이다. 밥 먹고 잠 자는 일상이 바로 정치의 시작이고, 잘 먹고 잘 자는 것이 정치의 끝이다.…모든 사람이 잘 먹고 잘 살도록 이끄는 것이 선비의 일이다. 그 일을 하는 것이 바로 어짊의 실천이다.’ 그의 고민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고민은 『맹자, 시대를 찌르다』에서도 드러난다. ‘맹자가 말했듯 이 『맹자』를 곧이곧대로 믿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지금 독자는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한 구절 한 단락을 꼭꼭 씹으며 그 맛을 음미해야만 그 속에 담긴 뜻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제 것으로 삼아 지금 여기서 쓸 수가 있다.’고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다.

고전 중에서도 맹자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는 저자는 대표적 저서 『맹자독설』(산지니, 2012)에서 ‘사랑하되 조장하지 마라’, ‘강호동에게서 여민락을 보다’, ‘철밥통 품고 바싹 엎드린 공무원’ 등 시사적이며 재미있는 글들을 모아 한국사회를 맹자의 시각에서 해석하며 고전과 현대의 만남을 시도했다. 이러한 맹자 사랑에 대해 지금 동아시아에서 한국에 요구되는 것이 맹자의 정치사회 철학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재 한국사회에 일컬어 “60년대 이후 산업화, 경제발전을 향해 달리던 천리마가 벽을 만나 우뚝 서버린 형국이다. 우리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아야 할 때다. 이 때 필요한 것이 맹자의 ‘왕가정치’다.”라고 했다. 홀아비·홀어미, 고아, 독거노인을 돌봐야 한다는 뜻을 내포한 ‘환과고독’(鰥寡孤獨)에서 동아시아 사상가 중 가장 먼저 ‘복지’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점을 주목했다. “맹자가 가장 적극적으로 주장한 유가사상(儒家思想)의 핵심은 ‘다 같이 잘살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부분이다.”라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낸다. 그는 왕 앞에서도 호기롭게 백성을 위한 정치를 요구한 맹자사상이 한국에 요구되는 정치사회 철학이라고 주장한다.

재야학계의 고수로 일컬어지는 정천구는 부산 출신으로 고전학자이자 국문학박사이다. 그는 고전을 연구하며 “고전은 지금 쓸모 있기 때문에 고전이다. 시대를 뛰어 넘어 유용하지 않은 것은 고물이다”라며 고전의 가치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드는 것으로 다분히 실용적인 학문이라고 주장한다.

지난 2011년부터 대학 밖에서 ‘바까데미아’(바깥 + 아카데미아) 강좌를 하고 있다. 중앙동의 ‘백년어서원’과 ‘사상 평생학습관’에서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고전을 가르친다. 그의 강좌는 원칙이 있다. 각 강좌 당 30회 이상의 긴 호흡으로 하며 무료강의를 하지 않는다. 수강생들이 적은 돈이라도 내고 열심히 듣고 생활 속에서 쓰임새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제 또한 평소 접하기 힘든 것들이 많다. ‘논어’를 시작으로 ‘중용’, ‘맹자’는 물론이고 ‘이규보’, ‘순자’, ‘한비자’ 등에 이어 ‘대학’ 강좌를 앞두고 있다.

여러해 전부터 곳곳에서 인문학 강좌가 열리며 불고 있는 인문학열풍에 대해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진단을 내놓았다. “현재 대부분의 강좌들이 관념론적으로 치우쳐있다.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학문으로 실용적이어야 한다.”라며 “배우면 써먹어야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누구나 알기 쉽게 책을 쓰고, 재미있는 강연을 통해 사람들이 고전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본인의 역할이라고 했다.

부산대 이진오 교수는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 원칙에 충실하게 학문에 매진하는 학자다. 제도권에 연연하지 않고 일반대중과 학문적 가치를 공유하는 대안적 학문 방식을 제시하는 모범사례다.”라고 저자를 평했다.

학창시절부터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매일 정한 분량을 공부한다는 저자는 고전학자라 고리타분하지 않을까하는 우려와 달리 누구보다 열심히 맛집을 찾아다니고 멋스러움을 추구하며 예술을 사랑하는 학자였다. 무섭게 공부하고 치열하게 현실을 고민하며 풍류(風流)를 즐기는 학자 정천구의 다음 과제 ‘대학’이 기다려진다.

 




리더스경제│김현정 기자│2014-07-16

원문읽기
http://www.leaders.kr/news/articleView.html?idxno=4949

 

 

고전오디세이 05

『맹자, 시대를 찌르다

정천구 지음 | 인문 | 신국판 양장 | 608쪽 | 30,000원
2014년 4월 01일 출간 | ISBN :
978-89-6545-244-7 04150

고전학자 정천구의 새롭고도 깔밋한 『맹자』 주석서. 간결하고도 아름다운 우리말로 원문을 해석하고 주를 덧붙여, 바까데미아(바깥+아카데미아)에서 온 진짜 맹자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사람을 상과 벌로 다스리는 법가 사상의 대표자인 상앙과의 비교분석을 통해 사람의 본성에 대한 맹자의 믿음을 이해하게 한다.

  

 

맹자, 시대를 찌르다 - 10점
정천구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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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전등을
끄고
달을 좇아

산지니 51회 저자와의 만남
9월의 저자 정천구

 

안녕하세요, 전복라면 편집자입니다. 9월 25일에 열린 산지니 51회 저자와의 만남은 특별히 부산외국어대학교 도서관과 함께했습니다. 이날의 초대 저자는 『중용, 어울림의 길』의 저자 정천구 선생님입니다.  대담에는 계간 오늘의 문예비평 편집위원이자 문학평론가인 손남훈 선생님이 함께해주셨습니다.

 

중용불가능-『중용, 어울림의 길』(책소개)

 

 

반갑습니다, 정천구 선생님의 『중용, 어울림의 길』이라는 책을 가지고 선생님과 직접 대담할 수 있어서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중용, 어울림의 길』 이전에도 『논어, 그 일상의 정치』라든지 『맹자독설』 같은 책들을 통해 유가의 필독서들을 번역하고 재해석해서 다시 현실에 적용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해오셨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중용, 어울림의 길』이란 책도 단순히 중국어를 번역했다, 지금 우리말에 맞게 맛깔스럽게 바꿨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을 내셨을 때 야심이라고 해야 할까요, 의도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것들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마도 모든 저자들이 똑같은 생각일 것인데, 일단은 가장 남다른 책을 쓰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사실은 제 전공이 중국 고전이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굳이 이걸 할 이유가 없었는데 작은 계기로 논어부터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원래 국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일단 우리말 번역을 잘하는 걸 우선으로 삼았습니다.
 
우리가 흔히 고전에 대해 정의를 내리라고 한다면, 조금 우스갯소리 같지만 “누구나 말하지만 아무도 안 읽는 책.”입니다. 그 이유가 뭐냐, 사실 재미없습니다. 첫 번째는 지금 현재 한문을 모르는 사람들이 읽기에 적절한 서적이 아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그에 대한 해설이 적절하지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좀 고리타분하게 생각하다가 읽어보면 여전히 고리타분한 걸 보여줍니다. 그래서 고전이 현대적 가치를 얼마든지 가지고 있다는 것, 그래서 논어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또 사고하는 것들이 1500년 전과 꾸준히 서로 통하고, 또 거기에 가치 있는 것들이 많다는 걸 보여주려 했습니다. 그건 현대적 관점에서 또 현재 일어나는 사건과 관련해서 풀어내는 것이 가장 적절하리라 생각했고요.

이미 관련 저술들이 많이 있지만 제가 그것과 확실히 다르게 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이 『중용, 어울림의 길』을 썼습니다. 실제로 『중용』은 아주 양이 적습니다. 그래서 책 한권으로 다뤄내기가 굉장히 애매합니다. 『대학』과 함께 묶어서 내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도 저는 『중용』이 정말로 가치 있는 책이라면 원문이 적더라도 거기서 오늘날 우리가 새겨볼만한 것들을 풀어내면 양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쓸 때 40여일에 걸쳐서 아주 빨리 썼는데, 그래야 제 색깔이 나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오래 걸리면 남의 글을 흉내 내거나 참고해서 온전히 제 것이 아니게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논어, 그 일상의 정치』를 내고 난 뒤에도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오늘 질문하신 것처럼 어떤 야심이 있었느냐. 사실 숨은 야심은 이 책이 대박 나는 겁니다. 제 책을 읽고 감동을 받는 게 역시 가장 큰 야심이죠. 그리고 저는 제 책을 읽어주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사주시길 바랍니다. (일동 폭소) 그리고 독서보다는, 지금이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는데 저는 독서를 중시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장서를 중시합니다. 독서로는 그 사람을 잘 알 수 없지만 장서를 보면 단박에 그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장서가 곧 그 사람의 인격과 삶을 보여준다는 게 제 지론입니다. 여기 오신 분들이 『중용, 어울림의 길』을 읽고 장서로 마련하고 싶다는 꿈을 꾸셨으면 좋겠습니다.

 

 

네, 말씀 감사드립니다. 중간에 제가 끼어들어서 같이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 참 많았습니다. 저도 남의 집에 가면 맨 먼저 그 집에 책이 뭐가 꽂혀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보면 “아, 이 사람 관심사가 이쪽이구나, 저쪽이구나.” 파악이 되고 그에 맞춰서 화제를 꺼내 이야기할 수 있거든요. 공감되는 부분이 있어 이야기해봤습니다. 앞과 비슷한 맥락에서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드리자면, 왜 『중용』입니까?

 

사실 참 단순합니다. 『논어, 그 일상의 정치』를 썼기 때문이죠. 그다음 자연스럽게 “일단 사서(四書) 주석서를 써야 되겠다”라는, 어떻게 보면 기존의 통념 때문에 작업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가장 비중을 둔 것 중에 하나가 책 앞부분의 이 해제입니다. 대체로 『중용』을 자사(子思)의 작품이라 합니다. 공자의 손자인. 성리학 학자들, 특히 주희가 주장하면서부터 그 뿌리가 확고해졌는데 실제로 그 근거가 거의 없습니다. 사마천의 『사기』에 자사가 『중용』을 썼다는 언급이 아주 간략하게 나옵니다. 그런데 자사가 죽고 사마천이 『사기』를 쓴 기간이 거의 300여 년 차이가 납니다.

자사라는 인물도 불명확하고, 그가 쓴 책이 지금 현재 전하는 『중용』인지도 불분명한데 우리는 이미 자사의 작품이라고 받아들입니다. 우리 사회가 이미 성리학적 사고에 익숙하다는 거죠. 성리학자들이 묶은 사서(四書)가 유가를 대표할 수 있는 고전이 될 수 있느냐? 이 사서를 중시했던 성리학자들의 해석이 과연 절대적일 수 있느냐? 800여 년 전 해석도 수없이 많은 해설서 중 하난데 우리는 아무 이견도 없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지 않는가? 제가 『맹자』와 『대학』 작업도 하고 있는데, 이렇듯 사서를 다루는 이유는 주희와는 다른 해석을 할 필요가 있고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도 있다는 인식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것이 우리 동아시아의 고전을 되살리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해서입니다.

 

 

말씀하신 내용이 다음에 드릴 질문의 답과 상당히 겹쳐서 당황스럽습니다. (웃음) 고전이라는 텍스트를 과거의 것으로 가만히 내버려두어서는 안 되는 거고, 계속해서 재발견하고 재해석해서 현실에 맞도록 의미를 찾아가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죠?

 

그렇죠. 고전이라는 것은 처음 형태대로만 남는 게 아닙니다. 시대마다 또 공간을 달리하면서 그것이 가치 있다고 했던 수많은 인식들이 모여서 고전으로 자리를 잡는 거죠. 그렇게 보면 고전이라는 것은 항상 어떤 시대든 그 시대 사람들이 가치를 발견할 때 고전이 됩니다. 고전이 가치 있으려면 현재의 내가 되살릴 수 있어야 하고 유용하게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쓸모없는 것은 고문이지 고전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걸 고전으로 만드는 것은 항상 그 시대 사람이지 과거의 사람이 아니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내용 측면에서 조금 더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아까도 잠깐 이야기했듯이, “『중용』이 자사의 작품이다.”라는 통념을 이 책에서 논리적으로 반박했습니다. 그리고 『순자』, 『맹자』와 『중용』의 관련성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셨습니다.

 

책 뒤표지에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논어』 『맹자』 『순자』 『예기』와 어우러진 새로운 『중용』을 읽다.” 출판사에서 저자보다 더 잘 붙여놨습니다. (웃음) 당연히 『중용』은 유가에서 가장 중시하는 텍스트이기 때문에 유가의 다른 고전들과 긴밀한 연관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사의 작품이라고 하면 대부분 전국시대 이전 작품이라 합니다. 그런데 시절이, 내용을 굉장히 자세히 읽고 꼼꼼하게 따져보면 오히려 전국시대의 텍스트, 『순자』에 아주 가깝습니다. 저는 『맹자』와 『순자』 사이에 나온 것이 『중용』이라고 봅니다.

 

 

선생님께서 ‘중용(中庸)’ 가운데 ‘중(中)’을 많이 강조하시고 ‘어울림’이라고 자주 환용하셨는데, 일어나는 감정을 알맞게 처리하는 것, 상황에 맞게 처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어울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중간에 ‘중용’이 사실 불가능한 것은 아니냐는 말도 있고요.
한편 든 생각이 이겁니다. 공자님도 불가능한 ‘중용’을 훨씬 후세대인, 그리고 그런 것과 상관없이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현대인들에게 전하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중(中)’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알맞다’라는 거죠. 일종의 상황에 알맞게 하는 것. 이것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긴 하지만 상황이 늘 다릅니다. 그게 또 확 다르지 않고 미묘하게 다르기 때문에 더 처신하기가 어렵습니다. 아주 다르면 참으로 편한데, 너무 미묘하게 달라지기 때문에 다른 상황 자체를 파악하기가 어렵고, 알맞게 하는 게 뭔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쨌든 상황에 알맞게 하는 것이 첫 번째 ‘중’이고 그다음엔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냐는 문제에 이 ‘중’이 어울려 있다, 이렇게 풀 수가 있습니다. 알맞게 할 수 있어야만 어울릴 수 있습니다.

‘중용불가능(中庸不可能)’을 제가 조금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중용은 불가능하다 즉, 할 수 없다는 게 아니고 제대로 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어쩌다 한 번 잘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계속 잘 하기는 어려운 거죠. 그래서 지혜도 필요하고, 지혜로워지려면 어질어야 합니다. 그래서 『중용』이 중요시하는 종목이 ‘지(智)’와 ‘인(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게 어려우면 공자도 불가능하다 했고, 저도 이렇게 주석을 달면서도 그런 느낌을 가졌지만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지향하는 게 인간적인 행위가 아닐까요. 그래서 유교 역사는 세상이 더 이상 나아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아지게 만들려고 했던 사람들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산업화가 이룩된 오늘날 욕구, 욕망은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그건 좋지만 문제는 그것을 무한히 긍정할 순 없다는 거죠. 왜냐하면 사람들이 바라는 대상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 피를 말리는―요즘 공무원 시험이 그렇듯이― 그런 고단한 삶밖에는 남지 않을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성장을 해왔기 때문에 그 폐단이 지극히 큽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벗어난 욕심을 갖게 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것처럼 되어 버렸는데 그때 우리가 중시해야 될 게 과유불급이라는 거죠. 지나치게 모자란 것도 똑같은 건데, 모자라서도 안 되지만 지나쳐서도 안 된다. 그것을 조율할 때 필요한 것이 『중용』이 아닐까요.

‘중용’ 할 때 ‘용(庸)’이 바로 그 일상의 의미입니다. 일상의 자그마한 일에서 내가 편안하고 또 주위 사람들을 편안하게 대해주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중용이 불가능하거나 어렵진 않을 것입니다. 이 시대의 『중용』이 그런 의미에서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중용』의 시대적 배경이 춘추전국시대입니다. 딱 20세기, 21세기 지금 우리 시대와 거의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급변하는 시대, 그리고 가장 혼란이 극심했지만 동시에 인간의 능력도 무한 긍정된, 그와 동시에 탐욕조차도, 욕심조차도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던 시대입니다. 그때 그런 과속을 늦추기 위해서 나온 게 유가의 사상이고, 그중에 『중용』은, 이 시대 『중용』은 어떻게 생각하면 개개인마다 달라질 수 있지만 가장 필요한 화두가 될 거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중용』을 비롯해서 고전 텍스트들이라 하면 먼 이야기, 초월적인 이야기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렇죠. 잘산다, 행복이라는 말을 흔히 쓰지만 이게 제일 불확실한 거고 불명확해요. 제가 아까 야간산행 이야기를 해드렸는데, 제가 야간산행을 할 때 당연히 손전등을 들고 갑니다. 제가 손전등을 들고 산꼭대기에 딱 왔을 때 나무가 듬성듬성 있고 등 뒤로 보름달이 비췄어요. 그래서 아 손전등이 필요가 없구나 해서 껐어요.

보름달을 받으면서 걷는데 문득 제 손에 들려있는 손전등과 달빛의 관계에 대한 생각이 들었어요. 손전등은 내가 필요한 부분을 명확하게 비춰주고 아주 밝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범위가 한정적이에요. 사방 3미터를 못 넘습니다. 그리고 건전지를 세 개 넣으면 열 시간 이상 쓸 수 있는 게 전부죠. 이게 지식이고 근대 과학기술의 한계일 것입니다.

반면에 달빛은 그 자체로 자유롭습니다. 달빛을 밝기로 따지면 굉장히 희미합니다. 그러나 온 세상을 비추죠. 잘산다고 하는 것, 행복이라고 하는 것, 지혜라고 하는 것, 그것은 달빛에 가깝지 않을까요. 명료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하고 대충 넘어가죠. 덜 중요하고 덜 가치 있는 걸 쫓다가 저 멀리 있지만 귀한 것들을 놓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원래는 제가 지식과 통찰의 관계 때문에 손전등과 달빛을 떠올렸는데, 질문을 하시니 (그렇게도 대답할 수가 있네요).

삶의 지혜라고 하는 걸 사실은 얻기 어렵습니다. 왜 수많은 고전들이 있느냐? 뭐라 딱 떨어지게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대로 이야기를 하는 거죠. 스스로 체득하고 그렇게 경험을 통해서 자기만 명확하게 인지하는 게 잘사는 길로 가는 게 아닌가.

잘사는 것이 공부의 핵심이라고 했는데, 저는 스무 살이 된 이후로 제 인생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돈을 벌려고 한 것도 아니고 오로지 공부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보겠다 해서 이렇게 왔는데 여러분 보시기에 제가 별로 잘사는 것 같지 않고 행복해보이지 않으면 (공부를 하겠다는 마음을) 바꾸셔도 됩니다.(웃음) 그렇지만 저만큼 즐겁고 신나게 사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 부분은 제가 자신합니다.(웃음)

 

부럽습니다. (웃음) 저도 좀 그렇게 살고 싶은데 갈림길 앞에서 갈팡질팡하면서 살고 있는 것 같거든요.

 


누구나 똑같은 조건이죠. 결국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하고, 결단을 내려야 하고, 그다음에 실행을 해야 합니다. 선택의 문제가 우리가 공부하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이왕이면 선택을 잘하는 것.

그런데 어떤 책을 읽어도 선택을 잘하는 법을 명확하게 가르쳐 줄 수 없어요. 내가 부딪치는 문제가 다 다르거든요. 백 퍼센트 다 알고 선택을 하는 건 어렵습니다. 불확실한 상태에서 저지르죠. 공자도 만 일흔이 되어서야 비로소 득도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지혜를 쌓고 그렇게 변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공부하다 보면 저지르는 과오가, 빨리 좋은 길을 찾아서 성과를 내고 싶어 하거든요. 바로 그런 면에서 고전이 중요하지 않을까. 천천히 가고, 더디게 가고, 게으르지 않은. 게으른 것과는 달라요.

요즘 왜 우리가 고전을 안 읽느냐. 고전을 안 읽는 것은 20세기 이후의 현상이라 생각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건 서둘러서 그렇습니다. 급하게 해서. 고전은 급하면 못 읽습니다. 우리가 라면을 잘 만들어서 팔긴 하지만, 서두름이 오히려 삶의 빈곤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요. 천천히 음미하면서 가는 삶, 그게 바로 고전의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중용』의 성(誠) 자를 선생님께서 ‘성스럽다’라고 하셨거든요. 보통 ‘성스럽다’ 하면 거룩할 성(聖) 자를 써서 표기를 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말씀 언 변(言)에 이룰 성(成) 자, 자기가 한 말을 이루다라는 이야기지 않습니까. 그런 면에서 시적이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의 글자이지만 그 속에서 다양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고.


 

그렇죠. 요즘 ‘번역’ 하면, 번역기도 나오고 있지만, 사실은 번역에 전제가 되는 게 있습니다. 해석입니다. 그러니까 이 텍스트를 나는 어떻게 해석하느냐, 그 해석하는 것을 옮겨 쓴 게 번역이죠. 말로 옮기니 번역이지 단순히 글자만 바꾸는 것은 진정한 번역이라고 할 수가 없다는 거죠. 제가 사서를 배울 때 그게 제일 답답하고 분통이 터지는 일이었어요.

여러분이 갖고 있는 노트는 공책입니다. 빌 공(空) 자에 책 책(冊) 자입니다. 그러면 그 공은 아무것도 없느냐, 아닙니다. 무(無)가 아니고 무한(無限)히 넣을 수 있죠. 하지만 그냥 공, 하면 그 차이가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전을 번역하는 사람들은 지금 사람들이 갖고 있는 언어와 관계에 맞게 텍스트를 풀어주는 것이 첫 번째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것을 심사숙고했고, 그 의미가 저에게 와닿지 않으면 번역을 할 수 없습니다.

 

 

성리학이 이 책에서는 많이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선생님 말씀처럼 우리사회의 의식구조를 지배하고 있는 하나의 사상,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는데요.


특히 병자호란, 임진왜란 이후를 기점으로 우리나라는 중국에서조차도 고집하지 않는 성리학을 말 그대로 신주 받들듯이 합니다. 그게 (주희)에 벗어나서 이야기하는 것을 어렵게 만듭니다. 그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데올로기, 관념화죠. 관념화의 제일 문제는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고 수용하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그것을 깨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책을 읽고 다른 책을 읽어보면 성격이 다르다는 걸 느끼실 겁니다. 기존에 나은 표방을 했든 안했든 (주희)를 바탕으로 번역을 하고 주희의 해석을 따릅니다. 저는 저의 해석을 사족(蛇足)이라고 달았지만, ‘주희도 한 학자고 나도 한 학자다. 그 사람이 주석을 달았다면 나도 해석을 달 수 있다. 왜 주희를 내가 따라야 하는가.’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만약에 주희를 따르려 한다면 제가 굳이 이 작업을 할 이유가 없지요.

성리학의 폐단은 말하기가 굉장히 복잡하고 많습니다. 그리고 제가 여기서 주희라든지 성리학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 그 폐단이 팽배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책을 쓸 때 꼭 그 말을 씁니다. 제가 쓴 책을 읽되 다른 책을 같이 읽으라고. 제 책 역시 저의 해석일 뿐입니다.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 어떤 요리사가 어떤 재료로 만들었는지 다 외우지 않죠. 맛있게 먹고 나옵니다. 모든 고전이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해석도 주석도 절대화해서는 안 됩니다. 『논어, 일상의 정치』도 그렇고 『중용, 어울림의 길』을 쓸 때도 그 의도를 담았습니다. 절대화를 되도록 배제하고 이 텍스트가 나왔을 때 그 시점에서 들여다보는 것이 일차적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팔백여 년 전 성리학자의 해석을 굳이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정천구

1967년생.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삼국유사를 연구의 축으로 삼아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문학과 사상을 비교 연구하고 있으며, 현재는 대학 밖에서 ‘바까데미아(바깥+아카데미아)’라는 이름으로 인문학 강좌를 열고 있다. 저서로는 『논어, 그 일상의 정치』, 『맹자독설』, 『삼국유사, 바다를 만나다』, 『중용, 어울림의 길』이 있고, 역서로는 오카쿠라 텐신의 『차의 책』과 『동양의 이상』, 명심보감 완본을 번역한 『밝은 마음을 비추는 보배로운 거울』, 『삼교지귀』 등이 있다.

 

 

 

자료 제공/ 부산외국어대학신문 김덕현 기자
정리 도움/ 용달달, 별난오리

*위 내용은 분량 조절과 입말의 특성을 고려한 편집을 거쳤습니다.

 

 

52회 10월 역자와의 만남 :: 서신으로 읽는 두 지성의 세기적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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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산지니 출판그룹입니다.

한가위가 지나면 보름달처럼 풍성했던 마음이 그믐달처럼 허전해질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51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에서는 천년 전 사람들이 달 아래 놓고 읽었을 고전을 준비했습니다. 고전학자 정천구의 두 번째 사서(四書), 『중용, 어울림의 길』입니다. 아름다운 우리말로 풀었으며 다른 제자백가와 두루 어울리는 중용의 참맛을 느껴보세요.

계간 『오늘의문예비평』 편집위원 손남훈 평론가와의 대담과 독자 질문으로 이루어지는 이번 저자와의 만남은 특별히 부산외국어대학교 도서관과 함께합니다. 독자님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달과 가을밤과 고전의 조화, 함께 즐겨요.

 

일시: 9월 25일 수요일 오후 7시
장소: 부산외국어대학교 국제회의실(부산외국어대학교 도서관 미네르바카페 1층)
문의: 051-504-7070/tosanzini@naver.com

 


 

중용불가능-『중용, 어울림의 길』(책소개)

 

Posted by 비회원

 

 

안녕하세요, 전복라면 편집자입니다. 요즘 산지니의 편집자들은 서로의 이름과 호칭을 줄여 부르는 데 합의했는데요. 제 애칭은 전복라면 편집자를 줄인 복편입니다. 더운 여름, 이름이라도 시원하라고 확 줄였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전복라면이라는 온전한 이름을 불러주세요.

 햇볕이 이렇게나 쨍쨍한데 왜 공기 중의 습기는 뽀송하게 마르지 않을까요? 더위보다 싫은 습기. 습기보다 싫은 블로그 오류.(이것은 1회, 잠시 후 다시 한 번 더 공중분해된 다음 다시 쓰는 포스팅입니다.)

 

 

  ▶『중용』, 고전(苦戰)에서 벗어나다

아무리 좋은 사전이 있어도 독자는 여전히 훌륭한 번역자를 찾습니다. 원서의 단순한 뜻풀이를 넘어서 그 참맛을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느끼고자 하는 갈망 때문이겠죠. 흔히 외국 소설에서 번역자를 중요시하지만, 고전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전 해석서가 늘어날수록 오히려 더 간절해지는 저 욕망을 기꺼이 저술의 이정표로 삼는 ‘바깥의 학자’ 정천구. 그가 『논어, 그 일상의 정치』에 이어 고전(苦戰)에서 벗어난 두 번째 사서(四書) 『중용, 어울림의 길』을 집필하였습니다.

 

▶공자의 손자가 썼다고? 당신은 『중용』을 모른다

『중용, 어울림의 길』은 중용 본연의 내용에 충실할 뿐만 아니라 『중용』이 어떤 과정을 거쳐 고전이 되었으며 저자는 누구인지 등 우선 그 근본부터 묻고 답함으로써, 처음 읽는 사람은 물론 이미 『중용』을 안다고 생각하는 독자들까지 불러 세웁니다.


『중용』은 어떻게 고전이 되었을까요? 인도에서 전파된 뒤 그 세를 확장해 나가던 불교는 급기야 국교였던 유교를 위협하기에 이르지만, ‘대장경’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수많은 경전이 존재하는 불교와 달리 유교는 상대적으로 내세울 것이 적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간결한 듯 심오하고 단순한 듯 복잡한 사유가 담긴『중용』의 중요성이 부각되었습니다. 불교가 한창 위세를 떨치던 당나라 시기, 한유(韓愈)와 함께 유교의 부흥을 위해 힘썼던 이고(李翶)는 그의 글 「복성서(復性書)」에서 『중용』을 중요하게 인용하였고, 공자와 맹자 사이에 자사(子思)를 넣어 높였습니다. 이러한 주장이 송대 신유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자사와 중용의 가치는 점점 중요해졌습니다.


그렇다면 『중용』의 저자는 누구일까요? 많은 연구자들이 『중용』의 저자가 공자의 손자 자사(子思)라고 주장합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사료 중 하나는 사마천의 『사기』 중 <공자세가(孔子世家)>로, 거기에는 분명 “자사는 일찍이 송나라에서 고생을 하였고, 중용을 지었다(嘗困於宋, 子思作中庸).”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공자의 생몰연대로 추측한  자사의 활동 시기로 미루어보면 사마천의 글은 자사의 활동 시기와 삼백여 년이라는 시차가 있어 정확성이 떨어진다 할 수 있겠습니다.

 

▶제자백가와 두루 어울리는 『중용』

『중용』의 저자가 자사가 아니라는 다양한 근거 중 가장 강력한 것은 『중용』이 지닌 사상의 특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중용』에는 공자의 사상과 대치되는 부분이 있으며, 곳곳에 『맹자』 이후에나 나올 만한 사유가 포진했습니다. 법가나 도가의 사상을 비롯해 유가의 사상을 집대성하고 기타 당시 성행했던 학문을 두루 섭렵했다는 점에서 특히 『순자』와 이루는 교집합이 넓다 하겠습니다.

 

스승은 그 자신이 올바른 본보기가 되기 위해서 예를 바르게 하고 또 체득해야 하는데, 그렇게 예를 바르게 하고 체득하는 과정이 그대로 제자를 가르치는 일이 된다는 것이다. 순자가 말한 “예를 바르게 하는 일”과 “제 몸을 올바른 본보기로 만드는 일”이 그대로 『중용』에서 말하는 “길을 닦는 것”이다. 『중용』에서 “길을 닦는 일을 가르침이라 한다”는 의미가 여기서 뚜렷해진다. (1장 「어울림의 길」)

 

그렇기 때문에 『중용, 어울림의 길』에서는 『논어』『맹자』『순자』『예기』의 일부를 ‘사족’에 실어 ‘어울림의 길’이라는 제목처럼 제자백가와 두루 어우러지는 『중용』으로 꾸몄습니다. ‘사족(蛇足)’은 고전의 참뜻으로 향하는 저자의 생생한 발자취로서, 원문의 객관적이고 정확한 이해를 돕는 ‘주석(注釋)’과 함께 ‘정천구식 사서(四書)’의 양 날개를 이룹니다.


▶“참으로 지극한 경지로다!”

子曰: “天下國家可均也, 爵祿可辭也, 白刃可蹈也, 中庸不可能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천하와 나라와 집안은 고르게 다스릴 수 있다. 높은 벼슬과 녹봉은 사양할 수 있다. 시퍼런 칼날을 밟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일상에서 알맞게 하는 일은 잘 할 수 없다.” (6장 「지극히 어려운 중용」)

 

『중용』은 길지 않은 저서입니다. 그러나 “일상에서 무엇이든 알맞게(中庸)”하라는 뜻은 너무 넓고, 나아가 “중용불가능(中庸不可能)”이라는 구절을 접하면 아득하게만 느껴집니다. 『중용』의 핵심이 지극히 참된 ‘성(誠)’을 이루는 것이라는데, 읽다가 정말 성나게 된다면? 어울림의 길, 즐거운 마음으로 갑시다.

『중용, 어울림의 길』은 기존의 해석본을 이것저것 참고하지 않고 오직 원전이 되는 『중용』(예기주소 수록본) 하나에만 집중한 저서로서, 어려운 뜻일수록 쉽고 아름다운 우리말로 썼습니다. 쉬움과 얄팍함의 차이를 모르셨다면, 지금 보여드리겠습니다. 『중용』의 지극함을 깊이 맛보는 동시에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고전의 군더더기에서 고갱이를 골라내는 안목을 기를 수 있을 것입니다. 不可能에서 不자 하나를 빼듯이.

 

『중용, 어울림의 길


고전오디세이 04
정천구 
지음 
인문 | 신국판 | 340쪽 | 19,800원
2013년 7월 4일 출간 | ISBN :
978-89-6545-219-5 04150

고전학자 정천구의 명료하면서도 아름다운 두 번째 사서(四書) 해설. 『중용』 본문뿐만 아니라 『중용』이 어떤 과정을 거쳐 고전이 되었으며 저자는 누구인지 등 근본부터 묻고 답한다.『논어』『맹자』『순자』『예기』등 제자백가사상과 두루 어우러지는 진정한 어울림의 길을 맛볼 수 있다.

 

 

저자 : 정천구
1967년생.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삼국유사를 연구의 축으로 삼아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문학과 사상을 비교 연구하고 있으며, 현재는 대학 밖에서 ‘바까데미아(바깥+아카데미아)’라는 이름으로 인문학 강좌를 열고 있다. 저서로는 『논어, 그 일상의 정치』, 『맹자독설』, 『삼국유사, 바다를 만나다』 가 있고, 역서로는 오카쿠라 텐신의 『차의 책』과 『동양의 이상』, 명심보감 완본을 번역한 『밝은 마음을 비추는 보배로운 거울』, 『삼교지귀』, 일본의 고대 및 중세의 설화집인 『일본영이기』, 『모래와 돌』(상.하), 『원형석서』(상.하) 등이 있다.

 

 

중용, 어울림의 길 - 10점
정천구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