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류닝입니다! 인턴으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마지막 글이네요. 참 아쉽습니다. 얼마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영국드라마 <셜록>의 세 번째 시즌이 공개되었습니다. 드라마 <셜록>은 익히 알려진 고전,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를 21세기에 접목시킨 현대판 셜록 홈즈입니다. 영국을 넘어 세계적인 드라마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셜록>은 외국 드라마 검색어 1위를 할 만큼 우리나라 팬들의 규모 또한 어마어마해 얼마 전 KBS에서 더빙으로 방영해주기도 했는데요. (물론 저도 열렬한 팬입니다♥) 이렇게 <셜록>이 인기를 끄는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요? 잘 쓰인 대본, 훌륭한 연기, 예술적인 장면 연출 등 여러 가지 비결이 있겠지만, 제 생각에 가장 강력한 비결은 바로 원작 『셜록 홈즈』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아서 코난 도일이 1887년부터 1927년까지 발표한 단편들을 묶어 만든 『셜록 홈즈』 시리즈는 당시부터 지금까지 엄청난 인기를 끌어왔으며 영화, 뮤지컬, 연극, 드라마 등 여러 가지 모습으로 재탄생되어왔습니다. 그래서 ‘『셜록 홈즈』가 원작이다’라고 하면 시작도 전에 엄청난 관심이 쏟아지고는 하죠. 이것이 바로 고전문학이 가진 힘이 아닐까요? 그래서 이번에 블로그에 올릴 주제는 바로바로 달맞이길에 위치한 추리문학관입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유명한 추리문학관은 현재 ‘한국추리작가협회’의 회장으로 계신 저명한 추리소설가 김성종 선생님이 1992년 사재로 지으신 추리문학 전문도서관입니다. 이렇게 말로만 들으면 무언가 딱딱하고 지루할 것 같지만, 실제로 가보면 굉장히 포근하고 안락한 분위기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저와 함께 추리문학관을 탐방하러 가보실까요?^ㅇ^

 

 

추리문학관은 달맞이길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2호선 장산역에서 2번, 7번, 10번 마을버스를 타거나 해운대역에서 2번, 10번 마을버스를 타고 추리문학관 정류장에 내리면 바로 보이는 건물이 추리문학관입니다. 외부인에게 공개가 허락된 것은 1, 2, 3층까지고 4층은 김성종 선생님의 집필실, 5층은 현재 살고 계신 집이라고 하네요.

 

 

 

 

처음 들어서자마자 시선을 끄는 것은 벽에 걸려있는 저명한 작가들의 사진입니다. 구경을 하다보면 곳곳에 사진이 많이 걸려있어요. 1층 입구에 문학관 안내판이 보입니다. 1층에서 입관료 5000원을 선불로 내면 커피, 차 등을 마실 수 있으며 2, 3층 관람까지 할 수 있습니다. 1층, 2층, 3층 모두 책이 비치되어있고, 추리문학 뿐만 아니라 일반 문학서, 아동도서 등 총 47,600권에 달하는 책이 구비되어있습니다.

 

 

 

굉장히 아늑하지요? 1층은 카페의 모습을 하고 있어 커피, 차를 마실 수 있는 것은 물론 자유로운 대화도 가능합니다. 조용한 분위기라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차를 마실 수 있는 1층에서는 처음 온 사람에게 추리문학관 이용방법을 친절히 설명해 주십니다. 사진은 마음껏 찍어도 된다고 하셔서 정말 마음껏 찍고 왔습니다. (웃음) 차를 마시기 전에 구경부터 하고 싶어 서둘러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뱅글뱅글 나선형 계단을 딛고 올라가 들어선 2층의 입구에는 조그마한 전시장이 있습니다. 쌓여 있는 수많은 책이 인상적입니다. 셜록 홈즈의 얼굴 모형과 그의 상징인 사냥모자와 담뱃대가 보입니다.

 

 

본격적으로 들어선 2층은 작가들의 사진으로 가득합니다. 다양한 작가들의 사진이 벽마다 전시되어 있습니다. 유명한 작가들의 사진을 한눈에 볼 수 있어서 정말 신기했어요. 2층은 강연, 세미나 등을 위한 임대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또한 2층에서는 추리문학관 정기행사인 겨울추리여행 중 헤르만 헤세 문학관의 방문기와 함께 사진전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데미안』으로 유명한 헤르만 헤세.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유명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다시 나선형 계단을 밟고 올라간 3층의 모습입니다. 1, 2층의 안락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도서관 같은 분위기로 조용합니다. 방해 받지 않고 책을 읽기에 좋은 분위기였어요.

 

 

3층에는 일반 문학서나 아동도서 등 1, 2층에 비해 더 다양한 종류의 책이 있습니다. 3층의 책을 1, 2층에서 읽고 싶다면 도서대여목록에 이름과 연락처를 적은 후 들고 내려가고, 반납은 직원에게 하면 됩니다. 외부로의 대출은 회원만 가능한데, 회원제에 대해서는 1층에 문의하면 됩니다. (회원카드 12매-50,000원, 월회원-100,000원) 3층은 유리창너머로 보이는 광경이 특히 아름다운데, 창가 쪽에서 책을 읽는 분이 계셔서 사진은 못 찍었어요. (ㅠㅠ) 바다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보고 있노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2, 3층의 관람을 끝내고 다시 1층으로 돌아와 커피를 주문하고 앉았습니다. 의자가 굉장히 폭신폭신한 것이 책 읽기에 딱 좋았어요. 1층 내부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으니 커피가 금방 나왔습니다. 귀여운 나뭇잎과 함께 주시는 센스!^ㅇ^

 

 

1층을 둘러보다 발견한 안내서와 스탬프!! 책갈피를 만들 수 있는 종이가 옆에 준비되어있어 냉큼 찍어왔습니다. 관광의 목적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추리문학관에 왔는데 추리문학을 읽고 싶어 골라온 책은 추리소설의 여왕으로 불리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ABC 살인사건』입니다. 중학교 때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읽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 아마 그 책이 제가 처음으로 접해본 추리소설이 아닌가 싶은데, 그녀가 왜 추리소설의 대가인지 알 수 있었어요. 오래되어 누렇게 변색된 책을 잡고 열심히 읽었습니다. 단숨에 이야기에 빠져들었어요. 추리소설의 매력의 끝은 어디인지! 추리문학관에는 새 책도 많지만 오래된 책도 많은데, 오래된 책을 읽을 때는 한 편의 잘 쓰인 고전을 읽는 기분이라 참 좋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추리문학관 곳곳에는 추리소설 작가뿐만 아니라 저명한 작가들의 사진이 걸려있습니다. 추리문학관이라고 해서 추리문학만 다루지는 않는 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여러 가지로 문학관에 쏟은 정성이 많다는 것을 느꼈어요.

 

 

처음에 설명을 해주실 때, 한 가지 단점이 난방이 안 되는 거라고 농담처럼 말씀하셨는데요. 이날따라 유독 날이 좋아서 그런지 안이 춥지는 않았습니다. 처음 들어설 때 시골에서 맡아보던 장작 타는 냄새가 나서 의아했었는데 알고 보니 진짜 나무를 때서 불을 피우는 난로가 있었어요. 연기를 바깥으로 나가게 연결시켜 놓았더군요. 추리문학관의 포근한 분위기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시키는 난로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 나가려는데 김성종 선생님의 신작을 홍보하는 글이 보였습니다. 김성종 선생님이 쓰신 청소년 소설이라, 정말 읽어보고 싶어요. 신작을 포함해서 그동안 써오신 책들을 판매하고 있는데 드라마로 유명한 『여명의 눈동자』도 볼 수 있었어요.

 

추리문학관 탐방, 재미있으셨나요? 저는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어요. 전자책의 흥행으로 여러 서점이 문을 닫고 요즘, 이런 문학관이 가지는 의미와 가치는 엄청나다고 생각해요. 추리문학관이 오래오래 이 자리에서 우리를 맞아주면 좋겠습니다. 분위기 좋은 곳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싶을 때, 다양한 추리소설을 만나보고 싶을 때 이곳에 들러보시겠어요?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달맞이길의 추리세계 속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아니카 2014.02.08 22: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 너무 멋있어요. 추리문학관의 매력이 한껏 느껴지는데요?

 

 

안녕하세요, 편집자 전복라면입니다.

2월 7일, 지난 주 목요일에는 사장님과 함께 추리문학관에 다녀왔습니다. 추리문학관 방화(放話) 사건의 목격자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지요. 추리창작교실 학생분들과 조갑상 선생님이 공모자입니다. 장소의 특성상 끔찍한 살인 사건, 적어도 도난 사건이 일어나야 할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제가 명탐정 전복라면이 될 기회는 없었습니다.

 

추리문학관 입구. 해운대 달맞이고개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노란 기둥 옆에 서 계신 분이 김성종 관장님.

 

 

 

 

 

 

 

강의가 열리는 1층은 북카페로 운영되고 있어 분위기가 한층 더 아늑합니다. 추리창작교실 회원분들의 모습이 보이네요. 나이와 성별이 걸림돌이 되지 않는 화기애애한 모습에서 내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강의는 조갑상 소설가의 신작 장편소설 『밤의 눈』을 주 제재로 하여, 소설에서 얼마만큼의 시간을 어떻게 배치하여 표현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누었습니다.

『밤의 눈』은 한국전쟁과 보도연맹을 비롯한 민간인 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소설입니다. 전쟁이 일어난 1950년대와 5․16쿠데타의 1960년대, 그리고 부마항쟁이 일어난 1970년대까지 다양한 시간과 그 속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보여줍니다. 개인의 선택과 노력보다는 사회의 상황에 따라 더욱 모질게 혹은 그나마 무사하게 바뀌는 등장인물의 삶은 지금 독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리라 생각합니다.

학생분들 역시 강의가  끝난 후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시간의 길이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졌는데, 선생님은 "옥구열이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장면을 넣을까 고민해 봤다" 며 집필 당시의 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신 한편 인물들에게 가치 있는 시간에 대해 생각해 보셨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하셨습니다.

 

"들어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단편 소설이든 장편 소설이든 안에는 시한 폭탄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쓰는 소설 속에도 시한 폭탄이 들어 있는지 잘 살펴보십시오. 시한 폭탄이 뭡니까? 째깍째깍, 언제까지, 해결이 되어야 하잖아요, 아니, 터트리면 안 되지(웃음). 해결이 되어야지. 심리적으로만 자족하든, 갈등을 능동적으로 해소하든, 시간 안에 무엇을 해결해야 한다는 그 긴장감 말입니다."

"묘사를 하지 않으면 절대 좋은 소설이 될 수 없습니다. 이야기만 있는 소설은 뽑히기가 힘들어요. 심사위원들은 이야기의 능력도 보지만, 저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라 하더라도 그걸 쓰는 건 소설, 허구니까요. 그런데 묘사에는 필연적으로 시간이 소모됩니다."

 

"독자들은 소설 속 인물의 말과 행동을 믿을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작가는 그런 것을 계산해야 해요. "

 

"성을 다룬 소설, 소위 외설적 소설 중 사건을 일으켰다 할 만한 두 가지 작품이 『채털리 부인의 연인』과 『보바리 부인』인데요. 둘 다 재판까지 갔었지요. 그런데 『보바리 부인』을 쓴 플로베르는 '(외설적이라 할 만한 부분은)작가인 내 의사가 아니라 전부 소설 속 엠마의 말과 행동이다'라고 변호했지만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쓴 로렌스는 그러지 못해서 판금이 되었지요. 그래서 시점의 설정이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

 

 

강의가 끝나고, 선생님께 질문을 던지고 있는 부산국제고등학교 동아리 학생들. 강의를 아주 집중해서 듣고, 질문도 열심히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밤의 눈 북 트레일러 감상평 이벤트 상품을 위해 책에 사인을 해주시고 계십니다.

 조갑상 선생님의 강의도 좋았고 수업을 경청하고 질문을 던지는 추리창작교실 학생분들의 모습 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즐거운 게임』의 박향 선생님을 비롯해 많은 선생님들이 번갈아가며 이 젊은 창작자들에게 빈 노트와 맞설 힘과 용기를 주고 계시다고 하니, 혹시 홀로 명작을 준비하는 분이 계시다면 추리문학관의 문을 두드려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탈고하시면 출간 문의는 산지니로^^!

 

김성종 추리문학관: http://www.007spyhouse.com/indexFrame.html

 “호롱불 킬 시간도 없이 일어난 일이라.”-『밤의 눈』

 『밤의 눈』북 트레일러를 공개합니다.


 

밤의 눈 - 10점
조갑상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해찬솔 2013.02.20 01: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큰애가 추리문학관에 가면 더욱 좋아하겠네요. 머릿 속에 기억해두었다가 가족나들이 가봐야겠네요...





종군위안부와 문학 -양석일


제목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바로 이 강연을 듣기 위해, 저는 처음 추리문학관에 간 것이었습니다. 이 강연을 통해, 최근 한국에 번역된 『다시 오는 봄』에 대한 작가의 말을 직접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양석일 선생님께서 말씀을 하시면 김응교(문학평론가, 『다시 오는 봄』역자) 선생님께서 동시통역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질의응답시간은 없었습니다. 선생님 강연만으로도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1. 종군위안부는 어떤 존재인가?

양석일 작가는 강연의 시작에서, 종군위안부란 어떤 존재인지 설명했습니다. 그것은 곧 이 책의 주인공인 '순화'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미 종군위안부가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었지만, 느릿느릿 설명을 이어나가는 양석일 작가의 말 속에서 잊고 있었던 참혹한 역사의 모습이 점점 드러났습니다. 그 내용은 이 소설 속에 모두 들어있습니다.

2002년 도쿄에서 전세계적으로 이 문제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일본의 정치가가 종군위안부 할머니에게 "너 거기 돈벌러 가지 않았느냐", "돈 받았지?"라고 계속 추궁했다고 합니다. 이에 양석일 작가는 매우 분노했다고 합니다. 일본인들의 종군위안부에 대한 인식은 매매춘 정도에 그친다고 합니다.

"가해자의 나라는 이 문제를 결코 인정하지 않습니다. 나라에서 안하니까 일본 사회단체에서 한 명당 3천만 원씩 주는 보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돈을 받은 사람도 있지만, 반 이상은 받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 사이에 대립이 생겼습니다. 결국, 종국위안부 문제는 해결된 것이 없습니다. 단 하나도. 이것은 전쟁범죄입니다. 전쟁 후에는 재판이 열리는데, 이 문제는 한번도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2. 한국 젊은이들에게 묻고 싶다

일본 젊은이들 중에는 태평양 전쟁을 모르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양석일 작가는 한국 젊은이들에게 묻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이 소설의 마지막 적전지가 '라멍'이라는 곳인데, 작가는 취재하기 위해 그곳에 갔으나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종군위안부가 살던 일본식 집이 하나 남아 있어, 그것을 바탕으로 상상력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합니다. 쓰는 와중에 인물들이 꿈에서까지 나와 함께 힘들어했다고 하니, 얼마나 고된 작업이었는지 짐작케 합니다. 읽는 것도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이 문제를 소설로 남기지 않는다면 역사 속으로 잊히게 되지 않을까라는 작가의 말에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정작 한국에서 이 문제는 점점 잊혀지고 관심이 멀어지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에게 정말 봄이 왔던 것인지, 이 작가는 묻고 있습니다.


#3. 아시아적 신체

작가는 종군위안부 문제를 단지 한국과 일본 간의 문제로 보지 않습니다. 작가는 이 문제를 '아시아적 시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아시아적 신체'라는, 양석일 작가의 작품을 관통하는 사상이 나오게 됩니다.

일본이 서양화되기 위해, 그리하여 아시아 최고의 국가가 되기 위해, 사람의 신체를 어떻게 했는가. 남자는 황군폐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자는 몸을 바쳤습니다. 특히 일본은 자신의 서양화·근대화를 위해, 식민지와 식민지의 신체를 파괴했습니다. 이것이 양석일 작가의 작품을 관통하는 '아시아적 신체'입니다.

신체에 대해서는 학술적으로도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구체적인 논의'는 너무도 부족합니다. 양석일 작가의 작품은 훼손되는 아시아의 신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4. 허구의 진실

양석일 작가의 전작『어둠의 아이들』은 태국에서 일어나는 아동매매춘을 다룬 소설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문학동네에서 번열되어 출간되었는데, '19금'이라고 합니다. 일본에선 전체구독가능입니다. 이에 대해 양석일 작가는, 19세 미만도 이 세계의 비참을 봐야한다고 말했습니다. 

대부분의 소설과 드라마는 매춘을 호텔방 앞까지만 묘사합니다. 하지만 양석일는 그 방 안에서 일어나는 고통까지도 씁니다. 폭력이 행해지는 깊은 곳, 그 바닥까지 써야만 독자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진실을 방 안에서 일어난다. 방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쓰지 않으면 고통의 아픔을 알 수 없다."

때문에 작가에게 상상력은 너무도 중요한 능력입니다. 작가는 어둠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동자, 20개의 층의 눈동자를 가진 존재여야 한다고, 양석일 작가는 말했습니다. "작가는 상상력으로 진실을 만들어내야 한다. 상상력이 없으면 아무리 취재를 해도 좋은 소설을 쓸 수 없다. 작가는 영혼에 대한 증언자다." 


#5. 무엇이 세계문학인가

마지막은 『다시 오는 봄』뒷커버에 있는 다카하시 도시오(문학평론가, 와세다대학 문학부 교수)의 글을 인용해볼까 합니다.

양석일의 소설을 '세계문학'이라고 한다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세계문학'이라고 할 수 없다는 건 매우 자명하다. 언뜻 '세계문학'으로 오인하기 쉬운 하루키의 '보편성'은 고도자본주의가 양산해낸 도시문화의 '보편성'이며, 이는 극히 한정적인 의미의 '보편성'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차별이나 빈곤 문제 등은 노정한 근대가 해소되기를 지향하는 '큰 이야기'가 무효화된 포스트모던한 도시문화의 '보평성'일 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한국의 소설도 하루키화되어가는 상황에서 양석일 작가의 작품은 정말 큰 의미를 가지는 것 같습니다. 『다시 오는 봄』을 읽고 밤잠을 이루기 힘들었지만, 이런 소설을 꽤 오랜만에 읽었다는 생각입니다.


▷ 관련 글: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떻게 한국에 안착했나"(조영일 문학평론가) 





양석일 선생님 강연이 끝난 후, 마지막 프로그램!! 추리문학관 개관 20주년 연극!!

문인들이 직접 배우로 나선 흥미로운 연극이었습니다. 어이없는 발연기를 보여줄 것이라 잔뜩 기대하고서 관람을 했는데요, 의외로 주연들의 연기를 훌륭했습니다. (톨스토이는 예외^^)



『죄와 벌』판권을 담보로 출판업자에게 도박빚을 지는 도스토예프스키


그래도 저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고, 몇몇 분들께서는 대놓고 대본을 보며 연기를 하셨습니다. 구수한 사투리는 귀를 즐겁게 해줬고요. 지하창고 같은 공간에서 막 하나만 쳐놓은 허름한 무대세팅은 마음을 매우 편안하게 해주었습니다. "아프단 말이요!"라는 명대사는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의 삶과 작품을 엿볼 수 있는 재밌는 연극이었습니다. 


추리문학관 개관 20주년 기념 강연과 연극, 모두 만족스러웠습니다. 앞으로 계속 그 자리에 머물면서 좋은 프로그램 많이 마련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전성욱 2012.04.05 13: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참석하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못 갔어요. 이렇게 글을 올려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글을 읽으니 참석하지 못한 것이 더 아쉬워지네요~




2012년 3월 31일 토요일, 해운대 달맞이고개에서 열린 <추리문학관 20주년 행사>. 화창한 날씨와 개관 행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저 음습한 톨스토이의 사진이 방문객들을 맞고 있었습니다. 왠만하면 마주보고 싶지 않은 얼굴 덕에,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 했습니다.


는 뻥이고 저 화환들 때문에 한눈에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포스터의 음습한 포스는 화환들을 완벽히 제압하고 있었습니다.


추리문학관,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나 직접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어찌나 완벽한 타이밍인지, 첫 방문에 20주년 개관행사가 겹치다니요. 무슨 중요한 복선이라도 되는 양, 완벽한 우연의 일치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런 행사가 없었다면 추리문학에 대한 선입관이 여전히 제 머릿속 어딘가에 박혀, 미궁속을 떠돌고 있었을 겁니다. 직접 탐정이 되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문제는 언제나 수수께끼로 남는 법이지요. 추리문학의 매력을 다시 알게 된 행사 속으로 들어가봅시다.




첫 번째 강연입니다. 이상우 작가의 <추리소설과 한국문학>. 추리소설의 계보를 한눈에 알 수 있는 매우 유용한 강연이었습니다. 특히 저처럼 추리소설에 완전히 문외한인 사람에게 안성맞춤이었지요.


재미있는 것은 최초 추리소설인 <정수경전>과 신소설의 최초 추리소설인 <구의산>에서 탐정이 모두 여자라는 점이었습니다. 이 여탐정들은 둘 다 신혼첫날밤에 이루어진 살인사건의 전말은 밝혀냅니다. 아마도 억압적인 사회적 위치에 놓인 탓으로, 직접 탐정이 되어 사건의 본말을 밝혀낼 수밖에 없었던 거겠죠. 그래선지 이 여탐정들의 총명함이 더 도드라져보이기도 합니다.


이후 '정탐소설'이라는 현대추리소설이 등장하지만, 본격장르문학으로 분류하기는 어렵고, 1930년대 방인근과 김내성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본격추리소설시대가 시작됩니다.  방인근은 백 여편의 추리소설을 써냈고 잡지 <조선문단>을 만들어 활동했지만, 이로 인해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쓸쓸한 노후를 보냈다고 합니다. 대표작으로는 『마도의 향불』이 있습니다. 김내성은 "30년대 식민지 대중적 감수성을 새로운 지평으로 열었다"는 평가를 받은 출중한 소설가였습니다. '쌍둥이가 나와서는 안 된다'는 금기를 깨고 『쌍무지개 뜨는 언덕』이라는 작품을 발표하기도 하고, 추리소설에 대한 이론강의를 열렬히 진행하기도 하는 등, 추리소설계보에서 한 획을 긋는 활동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순수문단 측에서는 끝까지 추리소설을 이단시하는 경향을 보여다고 합니다. 대표작으로는 『마인』과 『사상의 은혜』가 있습니다. 김내성 이후로는 이렇다할 작가가 등장하지 않아 공백기에 접어들게 됩니다.


이후 70년대에 이르러서야 영문학자들이 "왜 우리나라에는 추리소설이 없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며 <미스터리 클럽>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때를 기점으로 한국문단에서 추리소설이 새롭게 부흥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1974년에 『최후의 증인』으로 데뷔한 김성종 작가의 등장은 '김내성 이후의 작가'로 두각을 나타내며, 노원(전직이 중앙정보부 고위관료였다고 합니다), 현재훈, 이상우 작가와 함께 '현대추리문학 1세대'를 이끌었다고 합니다. <추리문학>이라는 계간지 발간, <김내성 추리문학상> 제정 등 추리문학은 그 독자적 입지를 다지게 됩니다.


이후 1980년대 중반~1990년대가 되면 그야말로 현대적 추리소설이 붐을 이룹니다. 나오기만 하면 기본으로 몇십 만부가 팔렸다고 하니, 이 수치만으로도 당시 얼마나 많은 인기를 누렸는지 짐작이 갑니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1983년 <미스터리클럽>이 해체되고 <한국추리작가협회>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9년 뒤인 1992년, 추리문학관이 그 문을 열게 되지요. 


ppt로 설명해주신 덕에, 예전 자료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추리문학은 한국문학에서 '서자'의 위치로 낙인되어 있습니다. 분명한 장르적 경계 때문일까요? 추리소설적 요소를 다분히 가진 작가들도 스스로를 '추리소설가'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추리문학시장에서 국가별 점유율도, 한국작품은 3.3%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마이너적인 위치에도 불구하고, 추리소설은 점점 더 많은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점점 더 중요한 소설적 요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작년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던 정유정의 『7년의 밤』도 완벽한 추리소설의 형식을 갖추고 있었지요. 


『감자』로 잘 알려진 김동인은 추리소설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했다고 합니다. "해석키 어려운 수수께끼의 해결." 사실 문학이란 것이 삶의 수수께끼를 다루는 것입니다. 추리문학은 그러한 수수께끼를 '형식'으로 차용하여, 그 효과를 극대화한 장르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추리소설을 즐겨 읽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언제나 사건이 '해결'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삶의 수수께끼에는 답이 없는데, 추리소설의 수수께끼엔 언제나 답이 있어서, 그 모든 해결과정 자체가 속임수 같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답을 찾는 것이 꼭 필요할 때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삶은 그대로 내버려 두면 점점 미궁에 빠져들기 때문에, 적절한 때에 답을 찾아두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망각속으로 사라져버립니다. '추리'라는 말을 단지 특정한 장르와 포맷으로 이해하지 말고, 좀더 광범위하게 차용한다면 매우 매력적일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을 하게 됩니다. "추리문학에 대한 선입견을 깨려면 추리문학관으로 가라." 언제나 단서는 '현장'에 있는 법입니다.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ookid 2012.04.02 2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추리소설을 좋아하는데, 글쓰신 분과 정반대의, 혹은 역으로 동일한 이유 때문인 것 같아요. 삶의 수수께끼들은 해결되지 않고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을 때가 있지만, 추리소설은 가장 교묘한 방식으로 직조된 수수께끼조차 항상 답이 있다는 것이 조금은 위안이 된달까요. 결국 삶의 문제들에 답을 반드시 찾아야 할 때가 있다며 그 이유를 설명하신 부분에서 고개가 주억거려졌습니다. (말씀하신 톨스토이 사진은 과연 음습하네요. 사진 때문에 글을 그냥 지나칠 뻔 했다...는 건 농담입니다^^)

    • BlogIcon 박변덕 2012.04.03 10: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하핫. 그냥 지나칠뻔 했다니, 제가 쓴 수법에 제가 걸려들고 말았네요. ㅎㅎㅎ 추리소설을 읽지 않은 이유와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이유가 동일하다는 것이 재밌네요. 이제 조금씩 추리소설을 읽어보려고요. 어떻게 답을 찾아가는지 카타르시스를 느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