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가 남긴 갈등의 유산…청산은 우리 몫입니다”

장편소설 ‘유산’ 펴낸 박정선

 

 

- 일제강점기, 일본 편에 서서
- 부귀영화 쌓은 친일파 가문
- 그 후손의 사유와 반성 통해
- 독립운동 가치·기상 재조명

- “민족 위해 희생한 독립투사들
- 고마움과 빚진 마음 늘 상존
- 친일인명사전 등 자료 탐독
- 한국 이념갈등 뿌리 찾다 보니
- 꼭 써야겠단 강렬한 생각 들어”

 

 

▲ 박정선 작가가 최근 펴낸 장편소설 ‘유산’을 들고 부산 서구 동아대 석당박물관에 전시된 독립지사 안중근 선생의 ‘견리사의견위수명’ 유묵 앞에서 인사를 올렸다. ‘유산’은 일제강점기 친일파 문제를 새로운 각도에서 깊이 고민하는 소설이다. 김성효 전문기자

 

소설가 박정선이 최근 낸 장편소설 ‘유산’(산지니 펴냄)은 한국의 독립운동과 친일 청산을 주제로 다루는 문학 작품 창작 흐름에서 새로운 물꼬를 텄다.

 

 장편소설 ‘유산’은 일제강점기에 고초와 갈등을 이겨내고 민족 독립 투쟁에 헌신한 주역이나 그런 독립투사 편에 선 사람이 주인공이 아니다. 반대로, 제국주의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는 데 협력하거나 앞장서 반민족행위를 해 부귀와 영화를 일군 사람의 자손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친일 반민족 행위를 저질러 재산과 ‘명예’를 일군 집안에서 태어나 호의호식하며 좋은 학교에 다니고, 사회가 선망하는 직업을 갖게 된 주인공은 삶 속에서 만난 몇 번의 계기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진중하게 오래 돌아보고 반성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가문의 유산에 대해 ‘거사’를 실행하기로 마음먹는다.

 

소설은 그 과정을 진지하고 촘촘하게 보여주면서 묻는다. “‘우리’가 ‘우리’에게 먼저 사과하지 않으면서 일본이 진정하게 일제강점에 대해 사과하기를 바라기는 어렵다.”

여기서 앞의 ‘우리’는 친일 반민족 행위를 저지른 세력이고, 뒤의 ‘우리’는 한민족이다. 박정선 작가를 부산 서구 동아대 석당박물관 2층에 전시된, 독립투사 안중근 선생이 쓴 유묵(보물 제569-6호) ‘견리사의견위수명(見利思義見危授命)’ 앞에서 만났다. 이 유묵은 ‘이익을 보게 되면 그것이 의로운 것인지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친다’는 뜻이다. 의롭지 않은 이익이라면 취하지 말 것이며, 나라나 공동체가 위기에 처하면 목숨을 바친다는 이 유묵은 소설 ‘유산’에서도 중요한 계기가 된다.

 

 

▲ 유산ㅣ박정선ㅣ산지니ㅣ302쪽

 

“소설은…이걸 반드시 써야 한다는 강렬한 생각이 들 때는 써야 한다고 작가들은 믿죠. 그것을 작가의 소명이라 하고요. 누가 얼마나 읽어줄까 계산하는 건 작가답지 않다고 배웠어요.” 박 작가는 2011년 장편소설 ‘백 년 동안의 침묵’(푸른사상)을 냈다. 억만금 재산과 가문의 에너지를 모조리 독립운동을 위해 쏟아부은 ‘견리사의견위수명’의 대명사 우당 이회영(1867~1932) 집의 높은 기상과 가치를 조명한 역사소설이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고 민족공동체를 위해 싸운 분들에 대한 고마움과 빚진 마음이 늘 컸어요. 이 문제를 제대로 풀지 않으면 지금 한국 사회의 종잡기 힘든 좌우 갈등을 풀기 어렵겠다는 판단도 있었고요. ‘유산’에서 주인공 이함은 ‘친일파 가문’에서 자라 판사가 된 사람이죠. 어릴 때는 집안 사연을 몰랐다가 자라면서 깊이 사유하고 반성에 이르는 인물인데 저 또한 이함과 비슷한 점은 없을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는 “임종국 선생의 ‘친일문학론’, 반민특위의 역사,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을 탐독하면서 그리고 한국 이념 갈등의 뿌리를 더듬어가면서 ‘내가 이것을 알게 된 이상 꼭 써야 한다, 누가 읽든지 말든지’ 하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박 작가가 300쪽 분량의 ‘유산’을 쓰기 위해 독하게 준비했음을 책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이 편집돼 출간되기 전의 파일도 구해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읽었죠. 그 자료에는 더 많은 정보가 있었어요.” ‘유산’에는 반민특위의 슬프고 안타까운 약사부터 벤담과 밀의 공리주의 철학에 관한 검토, 전태일 열사가 산화한 지 6년이 흐른 뒤의 평화시장, 작고한 문인 전혜린 등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 사람, 친일파 후손들의 조상 재산 되찾기 준동, 친일반민족행위자와 후손의 논리, 일제에 의한 위안부 동원의 참상 등이 쉴새 없이 나온다. “판사 이함의 ‘함’은 모든 것을 고한다는 뜻입니다.”

 

엘리트 과정을 밟은 여성 판사 이함은 어릴 적 고향 친구 준호를 잊지 않는다. 지독하게 가난하고 불우했으나, 꼿꼿했던 준호 가족이 그런 가난과 고난을 안게 된 것이 독립운동을 했던 데서 출발했음도 알게 된다. 소설은 친일파 문제도 추상적으로 뭉뚱그려 다루지는 않는다. 예컨대 이함 판사에게 큰 영향을 주는 친할아버지는 친일을 했다. 그러나 적극적이고 악독한 친일분자는 아니었다. 반성할 줄도 안다. 작은할아버지는 일제 고위 경찰간부를 지냈고 그 뒤로도 한국 독재정권에 줄을 대 권력을 누린다. 이함 판사의 어머니는 친일파 후손의 이기주의와 정당화 논리를 대변한다. 이함 판사의 여동생은 친일로 일군 가문의 영화를 비판한다.

 

다양한 인물이 씨줄 날줄이 돼 끌고 가는 이야기는 진중하게 울린다. 이함은 ‘우리가 우리에게 먼저 사과하지 않는다면, 일본은 진정한 사과는커녕 한국 상황을 즐길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리고 친일 조상이 남긴 거대한 유산을 향한 거사에 나서면서 반성의 정점으로 나아간다. 반성을 펼쳐 보이면서 소설은 새 물꼬를 튼다.

 

 

국제신문 조봉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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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 - 10점
박정선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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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낸 발목에 제법 찬 바람이 부는 11월입니다. 그러나 어제 산지니X공간은 사람들이 뿜어낸 열기로 가득했는데요. 바로 박정선 작가님과의 만남이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참여했던 행사 중 가장 많은 사람이 모여, 작가님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1115산지니X공간에서 있었던 <유산>의 저자 박정선 작가님과의 만남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박정선 작가님을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자 수필가, 그리고 소설가인 작가님은 오늘 많은 청중 앞에 소설가 박정선으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이날 행사의 진행은 김대성 문학평론가가 맡아주셨습니다. 평론가다운 날카로운 질문들로 궁금증을 해소해주셨습니다.

 

  

 

행사를 시작하기 전 작님께선 이날 참여한 청중 모두를 소개해주셨습니다. 산지니 강수걸 대표님부터, 교회 목사님까지. 산지니X공간 의자가 부족할 정도로 많은 분이 참석해주셨는데, 모두의 이름과 근황을 물어보시고 소개해주시는 작가님을 보며, 독자에 대한 애정을 느꼈습니다. 제게도 물어보셨는데, 제가 너무 당황해서 작가님 팬이에요라고 말하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이날 행사는 스포일러와의 전쟁이었습니다. <유산>10월 말에 나온 신작이다 보니 아직 책을 읽지 못한 청중이 많았습니다. 독서의 재미를 반감하는 게 아니냔 고민이 있었지만, 행사의 진행을 위해 과감히 간략한 줄거리를 공개했습니다.

 

줄거리 소개에 이어, 김대성 평론가의 질문과 박정선 작가님의 답으로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이날 있었던 답변 중 기억에 남는 몇 가지만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Q.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A. 반드시 써야겠다는 작가의 소명에서 시작됐다. 일제 강점기 당시 친일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면, 현대사회에 와서는 자신의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죄송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이 이야기를 꼭 전하고 싶었다. ‘누가 읽어줄까’ ‘대중적으로 반응이 좋을까라는 계산은 하지 않았다. 작가인생이 길어야 사오십 년이다. 이 '한정된 시간 동안 내가 하고 싶은 분야에 혼신을 쏟고 싶다.'는 생각에 이 책을 집필하게 됐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인간을 죄어오는 여러 속박들이 있다. 불편한 이데올로기, 흑백논리, 갈등 모두 여기에 속한다. ‘이런 속박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란 고민 없이 작가라 불릴 순 없는 것 같다.

 

Q. 작품 속에서 주제를 명백히 드러낸 데 이유가 있는가

A. 좋은 소설은 목적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고, 감추는 것이란 걸 안다. 그럼에도 소설 전면에 목적을 드러낸 것은 이 소설은 모든 걸 드러내기 위해 쓴 소설이기 때문이다. 독자층도 넓게 잡았다. 어쩌면 한계일 수도 있다. 이 책은 사실 몇 권 분량으로 늘여 쓸 수도 있는 내용이다. 한 권 내에 담기 위해 조금 단순화한 경향이 있다.

 

Q. 작품 전체에서 종교적 색채를 느낄 수 있었다

A. 크리스천이다. 그렇다고 다른 신도처럼 교회에 봉사를 자주 가거나 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작품에 기독교적 색채가 묻어난다면 내 한계거나(웃음) 배제할 수 없는 운명이라 생각한다. 이 작품에서 종교가 나온 이유는 따로 있다. 김준호는 무지 가난한 인물이다. 가난한 인물이 공동체적 만족감을 쉽게 얻는 방법은 당연히 종교라 생각했다.

 

 

 

박정선 선생님은 날아가는 새의 날개를 보면 참 많은 생각이 든다고 하십니다. 두 날개의 균형이 맞아야 하늘을 날 수 있는 새처럼 인간의 삶에도 균형이 필요합니다. '좌우논리'라는 맹목적 단어는 왜 우리 사회에 빼놓을 수 없게 된 것 일까요? 작가님께서는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하셨습니다.

 

▲ 의자가 모자랄 정도로 많이 찾아와주셨던 청중들

 

박정선 작가님은 화려한 공모전 수상경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미 안정적인 작가 궤도에 올랐지만, 여전히 공모전에 도전하는 이유는 '나를 확인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여전히 도전의 긴장감이 두렵고, 결과의 압박에 고통받는데, 그 속에서 자신을 확인한다는 작가님의 말에 놀라면서도, 본받아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유산>은 작가의 말의 다른 책에 비해 매우 긴 작품입니다. 작가님께서는 작가의 말은 '쓴 것'이 아니라 '써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의도한 바 없이 문장이 본인을 끌고 갔다고 합니다. 아마 이 소설로 전하고픈 말이 많았기 때문이겠죠. 일부러 Q&A도 스포일러가 없는 내용으로 골라 소개했습니다. <유산>을 읽으며, 직접 작가님이 전하고자 했던 마음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유산 - 10점
박정선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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