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웃음 1―어이없음: 요즈음 웃는 횟수가 많아졌다. 뉴스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길을 걷다가도 문득문득 웃는다. 문제는 기분 좋은 일이 있어서 웃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너무나 비상식적이고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태연하게 일어나고, 그걸 또 밑밥 삼아 별의별 ‘썰’들을 만들어 내어 보도하고 소비하는 걸 보고 있자니 ‘失笑’를 금할 길이 없다. 특히 악의적으로 생산되는 가짜 뉴스들과 그것을 철썩 같이 믿는 주변의 어르신들을 보면서, 미디어 과잉시대의 ‘여론’이라는 것의 허망성을 목도하면서는 더욱 그렇다.

 

(중략)

 

이때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라는 새로운 개념을 이끌어냈다. 악이란 뿔 달린 악마처럼 별스럽고 괴이한 존재가 아니며, 사랑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우리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다 이러는데” “나 하나만 반대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나는 명령받은 대로 하기만 하면 돼”라고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스스로 사유하기를 그만둔다면, 파시즘의 광기로든 뭐든 우리에게 악을 행하도록 계기가 주어졌을 때, 평범하고 선량한 우리는 언제든 악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

 

마리 루이제 크노트는 『탈학습, 한나 아렌트의 사유방식』(배기정·김송인 옮김, 산지니, 2016)이라는 책에서 웃음, 번역, 용서, 표현이라는 네 가지 주제로 범주화해 한나 아렌트만의 독특한 사유방식을 파헤치고 있다. 크노트는 ‘악의 평범성’을 설명하면서 아렌트가 이 유례가 없는 통찰에 다다른 건 ‘웃음’의 힘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아렌트가 예루살렘에서 아이히만의 재판이 시작되기 전 그에 대한 자료를 읽으면서 보인 가장 첫 반응은 ‘웃음’이었다고 한다. 아렌트에게 웃음은 ‘암울한 시대의 경직된 사고에 새로운 전환을 가져오게 하고, 이것은 곧 해방과 자유의 영토에’ 이르게 하는 것이었다. 아렌트에게 아이러니가 섞인 유머란 실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바라보는 데 방해가 되는 자신의 습관이나 편견과 거리를 두기 위해 선택한 하나의 방법이었다.

 

두 번째 장에서는 독일어와 영어, 두 언어로 집필했던 아렌트에게 ‘번역’이란 무엇이었을지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세 번째 장에서는 아렌트가 정치이론에서 시도한 탈학습의 중심 개념 중 하나인 ‘용서’에 대해 논의하며, ‘용서는 죄악을 잊지 않되 저지른 죄악으로부터 미래에 끼치는 영향력을 없애기 위한 것’이라는 개념까지 확장해 나가는 사유의 과정을 보여 준다.

 

마지막 장은 ‘표현’에 대해 다룬다. 아렌트는 과장을 좋아했다. 이미 알려진 것을 뛰어넘는 언어의 과도함은 극적인 표현을 통해 익숙한 궤도를 따르는 사유방식을 새로운 모험 속에 빠뜨리도록 한다. 아렌트에게 생각하고 쓰는 일은 낯선 세계를 만나고 완전히 새로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웃음 4―다시 봄이다: 아무 생각 없이, 스스로 사유해 보겠다는 의지조차 없이 상사의 지시사항만을 수첩에 빼곡하게 받아 적는 아이히만 같은 사람들은 떨쳐 버리자. 그 대신 자기의 역할을 기꺼이 감당하고 있는, 풀숲에서 환한 웃음으로 봄을 열고 있는 조그마한 ‘노루귀꽃’을 만나러 가보자. 광기와 폭력의 시대였음에도 ‘공공성’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핍박받고 추방되고 오해받는 삶을 살면서도 사람과 공동체에 대한 사랑을 놓지 않았던 그 한나 아렌트를 생각하면서.

 

 

2017-03-24 | 교수신문 | 김정규 한국방송통신대 출판문화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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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학습, 한나 아렌트의 사유방식 - 10점
마리 루이제 크노트 지음, 배기정.김송인 옮김/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탈학습, 한나 아렌트의 사유방식
마리 루이제 크노트 지음, 배기정·김송인 옮김/산지니·1만4800원


 

시간이 갈수록 빛난다는 건 얼마나 난망한가? 100원 동전도, 수백만원짜리 골드바도 못해내는 일이다. 그런데, 한나 아렌트(1906~75)가 이 어려운 일을 해낸다. 20세기 대표 지성으로 이미 자리잡았지만, 21세기가 한 해 한 해 더할수록 그를 향한 관심 또한 커져만 간다. 그의 사유의 새로움, 독창성 때문일 거다.

<탈학습, 한나 아렌트의 사유방식>은 아렌트 사상이 생겨나는 과정에 주목한다. 핵심 개념들을 요약하면서, 이를 도출하기까지 어떤 사유 방식을 거쳤는지를 드러낸다. 알튀세르가 마르크스의 사유를 되짚었듯 말이다. 다만 그보다는 덜 사회과학적이고 더 인상비평적인데, 묘한 설득력이 있다.

아렌트가 20세기를 닫고 21세기를 선취할 수 있었던 까닭을, 책은 웃음, 번역, 용서, 표현의 방법론으로 범주화한다. 예컨대, 아렌트의 가장 유명한 개념 ‘악의 평범성’을 보자. 그가 이 유례없는 통찰에 다다른 건 ‘웃음’의 힘이라는 게 이 책의 분석이다. 아렌트는 유대인 학살 책임자 루돌프 아이히만의 신문조서를 읽으며 “몇 번이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그것도 아주 크게 말입니다”라고 썼다. 아이히만이 읊어대는 진술의 상투성, 엉뚱한 의미부여에서 ‘어릿광대’를 포착해낸 것이다. 악이 거대한 실체를 가졌으리라는 ‘학습된’ 관념에서 탈출해, ‘생각없음’ ‘상투성의 추종’이야말로 현대적 악의 진면목임을 간파한 것이다. ‘웃음’이 사고의 반전을 일으켰다. 여기까지 읽으면, 번역·용서·표현으로 드러나는 아렌트 사유의 특징은 뭘까, 궁금증에 책을 덮기 어려워질 것이다.




2017-01-26 | 한겨레 | 손원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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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학습, 한나 아렌트의 사유방식 - 10점
마리 루이제 크노트 지음, 배기정.김송인 옮김/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국정감사 4차원 답변으로 이름을 떨친 장시호. 모든 것은 이모인 최순실이 시켰고, 거역할 수 없었다며 자신이 지은 죄를 순진한 얼굴로 모면하려 하는 모습입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익숙한 장면이 겹쳐지는데요. 


영화 <한나 아렌트>입니다. 여기서 한나 아렌트(1906~1975)는 나치에 부역한 평범한 이의  생각 없음’에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한 생각 없음’. 비판적 사고 없이 명에 따르고, 시류에 편승하는 행위가 가져올 죄악에 대한 인식 없음.

 

이재용, 최태원, 정몽구, 김승연 등 재벌회장들과 증인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동문서답, 면피, 뻔뻔한 발언에 국민적 공분이 쌓여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악의 축에 가려져 놓쳐선 안 될 지점이 있습니다


기억이 안 난다.’, ‘모르겠다.’, ‘만난 적 없고, 알지도 못한다.’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그들 뒤에서 조력하는 수많은 부역자들. 그들을 변론하고 그들을 도와 진실을 은폐하는 충직한 신하들이 건재하고 있음입니다. 생각 없이 모든 것을 안이하게 수용하고 행동한 죄. 그것까지 물어야 한국사회는 제대로 바뀌지 않을까요.

 

한나 아렌트의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으신 분은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 (엘즈비에타 에팅거 지음, 황은덕 옮김)를 봐주세요. 아렌트와 하이데거가 주고받은 서신으로 두 사람의 삶을 조명한 내용입니다.

 


1924년 독일 마부르크 대학의 강의실. 18살의 유대인 여대생과 35살의 전도유망한 철학 교수가 얼굴을 마주한다. 여대생은 한나 아렌트(19061975),철학 교수는 마틴 하이데거(18891976)였다.

스승과 제자로서 첫 만남을 가진 둘은 곧 연인 관계로 발전했고 그들의 관계는 아렌트가 죽음을 맞이하는 1975년까지 반세기에 걸쳐 계속됐다. 저자는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인 아렌트와 하이데거가 주고받은 서신 속 대화와 주위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두 철학가의 삶을 구체화하며 한 편의 서사를 구성한다.

 

그리고 기존에 한나 아렌트의 정치사상과 이론을 풀어쓴 책이 많았다면 곧 출간할 한나 아렌트의 탈학습-한나 아렌트의 사유방식』(마리 루이제 크노트 지음, 배기정, 김송인 옮김)은 아렌트의 정치이론의 내용도 물론 담고 있지만, ‘아렌트처럼 생각하기’, 즉 사유의 방법과 과정을 웃음, 번역, 용서, 표현 네 가지 주제로 흥미롭게 탐구했습니다.


『한나 아렌트의 탈학습-한나아렌트 사유방식

 



20세기 초 유럽사회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되었고, 히틀러의 유대인민족 말살 정책은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아렌트 역시 자기의 민족에게 일어난 끔찍한 학살에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유대인 학살을 지휘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이 이스라엘에서 전범 재판을 받게 되었을 때, 아렌트는 <뉴요커>지의 취재 의뢰를 받고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기사로 작성하기로 합니다. 


취재를 가기 전 아렌트 역시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유대인민족 말살 정책에 앞섰던 아이히만을 악마나 괴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치 전범 아이히만을 마주한 아렌트는 혼란에 빠집니다. 아이히만은 지극히 평범하고 오히려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아이히만을 악마로 묘사했을 때 아렌트는 이제까지 학습해온 사고의 틀을 벗어나 아이히만에게서 “악의 평범성”을 발견합니다.


아렌트가 기존의 사고와 관념에서 어떻게 자유로워졌을까? 자신에게 일어난 혼란을 어떻게 허용했을까? 익숙했던 사고방식에서 새롭게 탈학습하는 그녀의 사유방식은, 생각하기를 포기했던 아이히만과는 정반대에 있었습니다다. 


이 책에서 묘사된 네 가지 사유 방식은 편견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아렌트의 사유 방식을 파헤치며 새로운 아렌트를 만나볼 수 있게 합니다.


[출간일기] 한나 아렌트의 탄생일, 새로운 사유 방식


평소 저는 한나 아렌트가 독일인으로서 미국에 살면서 영어로 책을 집필한 과정이 궁금했었는데요, 이 책 2장 번역에서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미국으로 망명한 아렌트는 처음부터 영어에 능통했던 건 아니었어요. 그런 아렌트가 영어로 책을 집필한다는 건 자신의 모어를 한 번 더 번역해서 쓰는 것과 비슷했지요. 이후에 영어로 번역한 책을 독일어로 다시 출간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독어와 영어, 두 언어로 책을 집필하면서 언어란, 번역이란 아렌트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신선한 의문과 함께 아렌트가 쓴 독어와 영어로 쓴 집필서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당시 아렌트의 상황과 사유 과정을 잘 설명해줍니다.

저는 아렌트가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정치는 인간을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구절을 읽고 마음에 깊게 와 닿았어요.

지금 시대에 정치란, 권력자의 소유물처럼 느껴질 때가 많은데, 정치야말로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는 그 말이, 지금껏 제가 생각했던 통념을 뒤집었어요.

한나 아렌트가 어떻게 사유했는지, 그 과정을 따라가 보면서 익숙했던 생각과 관습에서 벗어나 새롭게 사유해보는 건 어떨까요.

 

새로운 세대를 포함하여 모든 인간은, 자신이 끝없는 과거와 끝없는 미래 사이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아는 한, 사유의 길을 새로 발견하고, 또 힘써 새 길을 개척해나가야 한다.”-한나 아렌트



 

사유하는 시민, 그것이 정치를 바꿀 수 있는 또다른 해법 아닐까요.

한나 아렌트의 말로, 다시 한 번 지금의 정국을 생각해봅니다.



+ 한나 아렌트의 탈학습-한나 아렌트의 사유방식 곧 출간합니다.



Posted by 산지니북

독일어로 출간된 원서를 번역하면서 애매한 단어는 영어로 출간된 책을 보고 단어의 의미를 파악하고 계시다는 역자 선생님! 그래서 항상 짐이 한가득^^;; 이십니다



선생님이 몇 차례 사무실을 방문했는데 사진을 찍은 건 지난 미팅이 처음이었습니다.

역자 선생님과 교정 미팅을 하고 있는데 불현듯 이 순간을 찍어야지 하며 서둘러 사진을 찍었습니다. 늘 책 만드는 과정에 대한 기록은 없는 것 같아 이거라도 하는 심정으로요. 선생님은 자신이 나오는 게 아니냐며 몸을 숨겼고 대신 책이 잘 보이도록 정리해주셨습니다.


이번에 준비하고 있는 책은 <탈학습, 한나 아렌트가 걸어간 사유의 길(가제)>로 "한나 아렌트" 삶의 중요한 기점들에 대해 짚어낸 책입니다. 저희 출판사에서는 이미『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를 출간하면서 소소한 사랑을 받았지요. 이 책이 아렌트와 하이데거에 관한 책이라면, 이번 책은 오로지 아렌트에 집중한 책입니다.


역자 선생님과 교정한 원고를 보면서 제가 선생님께 의심스러운 단어가 있으면 물어보고 그럼 선생님은 친절하게 단어가 가지는 의미를 설명해주시고 다시 문맥에 맞춰보고, 선생님이 교정하면서 궁금했던 게 있으면 저에게 물어보고 설명하고 그러다보니 미팅 시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책 만드는 과정은 참 길고 복잡하지만 결과는 명확합니다. 책이 무리없이 잘 나온다면 과정은 힘들어도 그런대로 괜찮지만, 책에 실수가 있으면 그동안 노력한 시간들이 무색해집니다. 신입 편집자 시절에는 종종 악몽을 꾸었지요. 책이 나왔는데 거꾸로 인쇄가 되었다거나 하얀 백지로 출간이 된다거나. 


독일어로 출간된 책을 한국어로 옮기는 일, 만만치 않은 작업이지만 더운 여름날 책 다듬는 시간과 과정이 무색하지 않게 반짝반짝 빛나는 결과로 나타났으면 합니다.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요.


제목부터 정해야겠네요. 하하.


(책 나오면 많이 사주세요)



Posted by 동글동글봄

혼탁한 한국사회 에두르며 자본주의 현실 겨냥한 책들 쏟아진다


지난호에서 갈무리-사이언스북스의 출판 예정 목록을 소개한 데 이어 

이번호에서는 산지니-휴머니스트의 목록을 알아본다.




부산을 배경으로 인문사회 분야 저력 있는 책들을 출판하고 있는 산지니는 하반기에 공들인 책들을 내놓을 예정이다. 『한나 아렌트와 탈학습』(마리 루이즈 크노트)과 계급론의 대가인 사회학자 에릭 올린 라이트의 『계급 이해하기』, 그리고 그리스 문학을 통해 살펴본 향수와 방향제의 역사를 담은 『사포의 정원』(주세페 스퀼라체), 건축사학 분야에서 눈길을 끄는 『동중국해 문화권의 민가』(윤일이) 등이 목록에 올라 있다. 특히 『한나 아렌트와 탈학습』은, 전범 아이히만을 마주하고 혼란에 빠진 한나 아렌트가 이제까지 학습해온 사고의 틀을 벗어남으로써 ‘악의 평범성’을 발견한 바로 그 점에 착안한 책이다. ‘탈학습(unlearning)’의 가능성을 엿본 저자는 웃음, 번역, 용서, 극화라는 네 개의 테마를 통해 아렌트의 사유 방법과 과정을 다룬다.


『중국인쇄사(전5권)』(장수민), 『조선왕실의 책봉의례』(신명호) 등을 준비하고 있는 세창출판사는 이외에도 『중국고대 도성제도사 연구』(양관), 『프로이트 연구: 정신분석의 성립과 발전, 수용과 영향』(한스-마틴 로흐만 외), 『한국의 교양인을 위한 새 독문학사』(안삼환)도 작업 중에 있다. 『중국인쇄사』는 인쇄물의 발명으로부터 1천년간의 모든 판각과 도서간행의 역사를 말하애 상세하게 각 시대의 도서간행 장소·도서 내용·판본의 특색·각자공과 인쇄공의 생활과 그들의 역정 및 각종 도서간행의 방법을 서술했다. 기타 서적 이외에 각종 인쇄품들, 예컨대 판화·세화·신문·지폐 및 인쇄소에서 사용하는 각종 물건들, 종이와 먹 등 문방용품들에 대해서도 새로운 자료와 독특한 견해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역동적인 인문출판의 명가인 소명출판의 예정 목록은 빽빽하다. 그만큼 다양한 책들을 선보이고 있다는 뜻인데, 젊은 연구자들과 중진 학자들의 책, 연구회 단위의 기획 도서가 주를 이루고 있다. 『문화적 근대의 자의식: 식민지 문학, 문학사, 그리고 동아시아』(김명인), 『근대세계의 형성: 19세기 세계 1』(허보윤), 『근대지식과 저널리즘』(정선경), 『일제하 한국아나키즘 소사전』(오장환), 오무라 마스오의 『윤동주와 한국문학』, 『사랑하는 대륙이여: 시인 김용제 연구』, 『식민주의와 문학』, 『조선의 혼을 찾아서』 등이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민족시인 윤동주의 사적을 조사 발굴한 지구상 최초의 연구자인 오무라 마스오의 책이 여러 권 소개되는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일본과 한국의 프롤레타리아문학 운동 퇴조기 최후의 기수이자 최후미 주자였던 김용제의 삶과 문학을 소개한 책, 국제심포지엄 ‘식민주의와 문학’에서 저자가 10여년 동안 발표했던 글을 묶은 책 등이 한국 독자를 만나게 된다.


굵직한 명저 번역서 중심으로 신간을 제출해왔던 아카넷은 『탈서구중심주의는 가능한가: 비서구적 성찰과 대응』(강정인 외), 『근대성과 자아의식』(차인석), 『후설전집』(후설전집번역위원회), 『일상사 연구』(알프 뤼크게), 『실패한 제국: 스탈린으로부터 고르바초프에 이르는 냉전시대의 소련』(블라디슬라프), 『이주 노동자의 기원을 찾아서: 일제하 화교노동자의 삶과 한국인』(김태웅) 등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탈서구중심주의 가능한가』는 서구문명의 전 세계적 군림에 대한 세계 여러 지역들의 다양한 성찰과 대응을 정치·경제·군사적 면보다는 사상·문화적 면에서 다루고 있는 책이다. ‘전집’이라고 했지만 분명 『후설전집』은 ‘주요 저작’에 한정한 번역이 될 것으로 보인다. 8월에 첫 책으로 『내적 시간의식의 현상학』과 『현상학의 근본문제』가 나올 예정이다. 『실패한 제국』은 미국과 그 동맹국들과의 소련이 전지구적 대결을 전개할 수 있었던 동기를 탐구한 책으로, 일련의 비판적 구술사 프로젝트들의 성과에 힘입어 서술된, 냉전사의 한 획을 긋는 연구서로 평가되고 있다.
 

『아이작 뉴턴』(리처드 S. 웨스트풀), 『역사의 도둑』(잭 구디), 『자연의 해석자』(도날드 맥크로리), 『신과 문화의 죽음』(테리 이글턴) 등을 준비하고 있는 알마는 이외에도 종이의 역사를 거시적으로 조망한 『백색 마법』(로타르 뮐러),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덩샤오핑의 일생을 건드린 『덩샤오핑』을 출간한다. 역사학자 잭 구디의 책은 유라시아 역사를 비판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 책으로, 특히 아시아 역사에 대한 연구 부족을 지적하면서 세계사 전반에 관한 논의를 재정립하고자 한다. 『자연의 해석자』는 과학자이자 지리학자, 탐험가인 훔볼트의 일대기를 종합적으로 저술한 훔볼트 평전이다.


스무살의 젊디 젊은 저자를 발굴, 과감하게 단행본을 내놓았던 에코리브르는 『장소의 운명』(에드워드 S. 케세이), 『국경 없는 세계에서 지역의 힘』(헬무트 버킹), 『영화로 보는 이주민과 다문화 사회』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장소의 운명』은 서양 현대 사상에 깊이 잠들어 있는 ‘장소’를 다시 한 번 철학적 논의의 대상으로 삼아 재조명하는 책이다. 『국경 없는 세계에서 지역의 힘』은 세계화와 로컬 문화에 대한 진단으로, 글로벌 논의가 어떻게 로컬 문화로 극단적인 이동을 보이고 있는지를 추적한다.


열린책들은 『일본의 대외 전쟁』(김시덕), 『성장을 넘어서』(허먼 데일리), 『전문가의 독재』(윌리엄 R. 이스털리), 『대분열』(조지프 스티글리츠), 『세계는 왜 존재하지 않는가』(가브리엘 마르쿠스) 등을 준비하고 있다. 세계은행 개발 원조 파트에서 16년간 일한 저명한 개발 경제학자 윌리엄 R. 이스털리는 서구의 메시아적 대외 원조가 과거의 식민주의적 오만의 재탕이라고 비판하며서, 하향식 거대 원조보다는 상향식 경제 개발이 훨씬 효과적으로 빈곤을 퇴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최연소 철학 교수 타이틀을 거머쥔 독일 철학계의 신성 가브리엘 마르쿠스의 책은, 독일에서 16주간 베스트셀러에 있었던 책이다. 슬라보예 지젝은 ‘대가의 솜씨를 자랑하는 사유 실험’이라고 이 책을 평했다.
 

열화당은 프랑스 미술사학자 르네 위그의 『보이는 것과의 대화』 , 고고학자 지건길의 역작 『한국 고고학 100년사: 1880-1980』, 건축학자 손세관의 『20세기 집합주택을 말하다』 등을 목록에 올렸다. 르네 위그의 책은 미술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우리의 삶에 어떤 본질적 중요성을 가지는지를 역사·문학·철학 등 광범위한 탐구에 토대를 두고 밝혀낸다. 지건길의 책은 19세기 말 일본인들에 의해 근대 학문의 한 분야로 자리매김하게 된 고고학의 100년 역사를 명쾌하게 정리한 책이다. 한국 고고학의 발자취와 성과를 주요 발굴작업의 도면·사진과 함께 정리했다.


이학사는 루크거 뤼트케하우스의 『탄생 철학』, 존 롤즈의 『공정의로서의 정의』, 안토니오 네그리의 『제헌 권력』을 내놓는다. 『탄생 철학』은 플라톤 이래로 2천500년 동안 이어져온 죽음 중심의 철학에서 벗어나 탄생을 가장 중요한 질문으로 삼는 탄생 철학의 기초적인 윤곽을 그린 책이다. 특히 이 책은 탄생에 대한 물음이 우리 존재의 핵심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생명과학과 의료 기술이 권력을 장악해가는 오늘날 사멸성에서 탄생성으로 나아가는 철학적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한나 아렌트의 ‘탄생성’ 개념이 책의 중심에 놓여 있다. 네그리의 책은, 그가 『제국』의 출간에 앞서 정치에 대한 자신의 사유의 정수를 갈무리해 내놓은 책이다.


지리학 분야에서 굵직한 책들을 출판해왔던 (주)푸른길은 『개도국의 지리학』(글린 윌리엄스 외), 『1950년대, 현 지리교육의 역사적 기원을 읽다』(안종욱), 『이주 주요 개념』(데이비드 바트람 외), 『사회정책의 혼종성과 다양성』(김의영 외), 『분쟁의 세계지도』(이정록 외) 등을 챙기고 있다. 안종욱의 흥미로운 책은 현 지리교육과정, 고등학교 지리교과의 내용체계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변화를 겪으면서 현재에 이르렀는지, 그리고 그 변화의 이유는 무엇인지 고찰하기 위해 지리교육과정의 내용과 체계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시기를 찾아 교육과정의 변화와 사회의 관련성을 분석한다.


역사 대중화의 선두 주자인 푸른역사는 『한국대중예술사, 신파성으로 읽다』(이영미), 『신여성, 개념의 역사』(김경일), 『한국고대사-한국역사연구회 시대사총서 01·02』를 준비하고 있다. 이영미의 책은 식민지시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한국대중예술사를 ‘신파성’이라는 관점으로 고찰한다. 소설, 대중가요, 영화, 만화, 방송드라마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신파성’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주됐는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를 살핀다. 사회학자 김경일의 책은 신여성의 개념과 실체에 관해 지금까지 제기돼온 질문과 문제들에 답하고 있다. 신여성 개념의 역사를 재구성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세대에 따라 근대 여성을 세 가지 범주로 구분하고 여기에 이념의 차이를 고려한 유형화를 시도한다.


교육학과 심리학 분야 터주대감인 (주)학지사는 『한국 전통 상·장의례의 상징성』(이부영 외), 『의식과 변용』(켄 윌버 외), 『영재상담: 이론과 적용』(이신동 외) 등을 내놓을 계획이다. 『한국 정통 상·장의례의 상징성』은 전통적인 유교적 상·장례와 전통 상·장례에 수반돼 연출되는 우리나라 진도 특유의 민가 연희 ‘다시래기’에 관한 분석심리학적 연구를 다룬 책으로, 죽은 자들의 넋을 보내는 제의의 심리학적 의미를 융의 상징 이해의 방법에 따라 충실히 전달하고자 한다. 『의식의 변용』은 통합의식 연구와 통합사상 분야의 최고 석학인 켄 윌버와 하버드대 의대의 잭 앵글러 등이 집필한 정신의학적 접근과 명상정관적 접근에 의한 심리치료와 의식의 성장 변화와 변용에 관한 책이다.


저력 있는 사회과학 출판사 한울엠플러스(구 도서출판 한울)는 『엔트로피 법칙과 경제 과정』(니콜라스 조지스쿠로젠), 『저항은 예술이다』(제임스 제스퍼),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과 사회적 국가』(홍준기), 『한국 사회적 경제의 역사와 전망』(신명호 외), 『역사 선언』(조 굴디 외), 『사회적 경제의 사회학』(이재열 외), 『한국의 사회과학 개념사』(김상배 외) 등을 선보인다. ‘사회적 경제’, ‘사회적 국가’와 관련한 지적 탐색이 눈에 들어온다. 『엔트로피 법칙과 경제 과정』은 열역학의 엔트로피 법칙을 경제 과정에 적용한 책으로, 매우 중요한 주제이긴 하지만 그만큼 난해하다는 평이다. 특히 『한국의 사회과학 개념사』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한데, 한국 사회과학의 주요 개념들에 대한 수용과 변용의 과정을 분석하는 것으로 보인다.


진보적 인문·사회과학 출판을 표방하고 있는 창비는 역사, 영화비평, 문학, 지리, 인류학 등에서 신간을 준비하고 있다. 『자본주의 길들이기』(장문석), 『조선영화란 하오』(백문임 외), 『중국의 초상』(쑨거), 『세계는 어떻게 움직이는가』(데이디브 하비), 그리고 『자살폭탄테러에 대하여』(타랄 아사드) 등이 목록에 올라 있다. 역사학자인 장문석의 책은, ‘자본주의는 이윤추구와 경쟁만을 덕목으로 삼는다’라는 통념에 반하는 역사적 사실을 20세기 초 이탈리아사를 통해 드러내는 역사서다. 저자는 자본주의가 17세기 태동할 때부터 지금까지 가족, 국가, 종교 등 ‘비자본주의적 요소’를 보호하며 자신의 효율성과 정당성을 갖춰왔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가 비록 현대에 이르러 탐욕스러운 신자유주의로 변모해가지만, 그 본연의 ‘공정함’과 ‘도덕성’은 복원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책세상은 『역사전쟁, 과거를 해석하는 싸움』(김정인), 『도서관과 작업장: 지식자본주의 시대, 사회민주주의는 가능한가』(옌뉘 안데르손), 『텔레마코스 콤플렉스: 버려진 아들의 심리학』(마시오 레칼카티), 『비스켄슈타인의 철학』(이영철) 등을 내놓는다. 김정인의 책은 20여년에 걸친 역사전쟁의 궤적을 정리한다. 각 국면의 논점과 역사 인식의 실체가 무엇인지 등 역사전쟁의 현장, 전선, 이데올로기를 분석하면서 보수와 진보의 진영 논리를 넘어 우리 사회의 성찰적 역사인식과 ‘역사 대화’를 촉구한다. 『도서관과 작업장』은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10여년 동안 지식경제 시대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라 풍미했지만 2008년 세계금융위기와 함께 위상이 곤두박질친 ‘제3의 길’ 프로젝트가 역사에 남긴 흔적을 짚는다.


현실문화연구가 선보일 책은 『해방된 관객』(자크 랑시에르), 『소리의 정치: 조선의 극장과 제국의 관객을 상상하기』(이화진), 『애드호키즘』(찰스 젠크스·네이선 실버), 『양식의 문제: 장식사를 위한 정초』(알로이스 리글), 『페미니즘의 검은 오해들』(김미덕), 『공간 침입자』(너멀 퓨워) 등이다. 『페미니즘의 검은 오해들』은 한국 페미니즘에 붙은 다섯 가지 오해에 대한 페미니스트 정치학자의 해명이다. 여성주의가 젠더정치학으로 거듭나기 위한 제언들도 담고 있다. 『공간의 침입자』의 저자는 그동안 소수자들이 배제돼왔던 학계, 공직, 예술계에 소수자들이 진입했을 때 벌어지는 문제를 ‘특권의 프리즘’을 통해 살펴본다. 소수자의 진입에 존재론적 ‘공모’가 있었으며, 그래서 조직의 전복이 일어나기보다는 동화의 압력에 놓이게 된다는 시각이 비판적 시사점을 제공한다.


휴머니스트는 인문, 역사 외에도 과학 쪽에 공을 들이고 있는데, 올해 내놓을 예정 목록에는 『협상』(김연철), 『면화의 제국』(스벤 베커트), 『한국 역사학의 기원』(신주백), 『대학의 역사』(김정인), 『지식 정치와 지민의 탄생』(김종영), 『상상력과 과학기술』(이상욱), 『신의 입자』(레온 레더먼 외) 등이 올라 있다. 『디지털 사회론』(백욱인) 연작도 기대된다. 신주백의 책은, 한국 역사학계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는 식민사관 논쟁은 물론이고, 현재 유행하는 다양한 역사학의 흐름이 본질적으로 어디에서 비롯했는지, 그 뿌리를 캐는 책이다. 일제강점기부터 1950년대까지 한국 역사학이 형성되는 과정을 분석함으로써, 오늘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역사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시사점을 제공한다. 김종영의 책은 삼성반도체의 백혈병, 황우석 사태, 4대강 문제, 광우병 촛불집회 등 지식과 한국 민주주의의 상관관계를 다룬 것으로, 시민 지성이 한국 사회의 각종 이슈에 접근하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최익현 | 교수신문 | 2016-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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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3월이 휘리릭 지나가면서

교보문고에서 진행했던 인문출판사 응원 캠페인! 산지니 편이 마감되었습니다.



산지니 편집자들이 직접 책을 소개하고,

독자분들께서 댓글을 달아 주시면 

추첨을 통해 열 분에게 책 선물을 보내드리는 이벤트였습니다.

댓글이 하나하나 달릴 때마다 "새 댓글 보셨어요?!" 하며 호들갑 떨기도 하고

읽고 싶으신 책들이 이렇게 다양할 수가! 놀라기도 했어요.  


그리고 며칠 전에 드디어(!) 책을 발송해드렸는데요.

독자분들의 선택을 받은 10권의 책을

저, 잠홍 편집자 마음대로 분류해 공개합니다.


※ 주의: 

아래 사진에 등장하는 책들은 실제로 보내드린 책이 아니라 

출판사 식구들끼리 필요할 때 꺼내 읽는 '샘플 책' 입니다. 

독자분들께 1분 1초라도 빨리 책을 보내드리고 싶어서

책을 부리나케 포장하는 바람에 이렇게 '대타'를 쓰게 되었네요. 양해해주세요ㅜㅜ 

보내드린 책들은 아래 보이는 것보다 훨~씬 컨디션이 좋은 새 책이랍니다.


1. 응답하라! 대화를 담은 책


논어, 그 일상의 정치』,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 『불가능한 대화들 2』




독자 댓글:

[논어, 그 일상의 정치 ]를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시대를 뛰어넘어 삶의 지혜가 담겨 있는 '논어'  순우리말 번역, 정확한 주석, 새로운 해석으로 참된 인간을 위한 정치, 공자의 실천사상을 이책을 통해 논어의  한자 하나하나의 속뜻과 말맛까지 알아가는 재미를 느끼고 싶습니다.


잠홍 편집자 답글:

고전을 주석 없이 이해할 수 있는 번역으로 만나는 건 참 드문 일인 것 같습니다. 

논어, 그 일상의 정치』에 이런 구절이 있는데요,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제 몸이 바르면 시키지 않아도 사람들은 하고, 제 몸이 바르지 않으면 시켜도 사람들은 따르지 않는다.”

(…)

바르게 한다는 게 어디서 시작되겠는가? 바로 나에게서 시작된다. 내 몸을 바르게 하는 것과 집안을 바르게 하는 것, 나라를 바르게 하는 것, 그것들이 뭐가 다른가? 겉은 달라 보여도 속은 같다. 


논어, 그 일상의 정치』가 독자님의 하루하루에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이 책은 대활자본도 나와 있어서 눈이 좋지 않으신 분들도 편하게 보실 수 있어요!)

논어, 그 일상의 정치 - 10점
정천구 지음/산지니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 , <정신 분석적 발달이론의 통합> 두권의 책이 흥미로워 보입니다. 부산에서 꾸준히 인문도서들을 출판하고 있는 것은 멋지고 의미있는 일 인것 같아요. 앞으로도 좋은책 많이 발굴해주시길!!


위대한 사상가들의 내밀한 삶을 조명한 책과 정신분석학계의 고전을 골라 주셨네요. 

소풍의 계절 봄인 만큼, 들고 다니며 읽기 좋은 작은 판형의 책을 드리고 싶어서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를 보내드렸습니다. 이 책은 아렌트와 하이데거의 편지를 토대로 한 최초의 책입니다. 읽으시면서 그동안 연락이 뜸했던 친구에게 손 편지를 쓰고 싶어지지 않을까요? ㅎㅎ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 - 10점
엘즈비에타 에팅거 지음, 황은덕 옮김/산지니



[불가능한 대화들2]를 읽고 싶습니다. [불가능한 대화들]을 무척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하여 두번째 이야기도 만나고 싶어요. 소설, 평론, 시인들의 이야기. 문학 안에서 처절하게 고민하고 공존하려는 작가의 모습을 기대합니다.


와! 5년 전 출간된 불가능한 대화들도 읽어보고 신청하신다니, 너무 반갑습니다. 불가능한 대화들 2』는 제가 편집한 첫 인터뷰집이어서 기억에 많이 남는 책이기도 해요. 좋은 구절이 많아 메모하느라 교정교열이 늦어졌어요^^ 삶의 새로운 질문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덧붙이고 있는 작가들, 그리고 비평가들의 뜨거운 말들. 그 초대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불가능한 대화들 2 - 10점
정유정 외 지음, 오늘의문예비평 엮음/산지니


2. 이야기의 힘! 소설


『물의 시간』,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마르타』




정영선 작가님의 [물의 시간]이 읽고 싶습니다, 조선의 마지막 국모인 명성황후에 대한 시해사건을 시간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정영선 작가님이 재해석 하셨다하니 어떤 구도로 이루어져 있는지 한번 읽고 싶은 욕구가 생기네요. 정영선 작가님은 역사학을 전공하신 독특한 이력의 창작 소설 작가님이시죠, 본래 작가라 하면 문학과 관련된 분야에서 공부하신 분들이 대개는 작가의 길로 들어서는데 정 작가님은 역사학을 전공하셨는데도 소설작가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자기만의 길을 가신 분이죠, 그래서 역사학을 기반으로 새롭게 명성황후라는 조선의 마지막 왕비를 새로운 각도로 만들어 내는 창작의 소설이 어떤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을지 무척이나 궁금하기만 합니다, 기존 명성황후를 그려낸 작품들과는 차별화된 조금은 색다른 작품으로 만들어진 내용이라 알고 있습니다.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작가라는 점에서 정영선 작가님의 물의 시간을 꼭 한번 읽고 싶어 신청하게 되네요, 혹여라도 당첨이 안될지언정 조만간 구입해서 읽어볼 생각입니다.


정영선 작가님께서 역사학을 전공하셨다는 점까지 꿰고 계셨군요! 『물의 시간』은 말씀하신 대로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시간'이라는 주제로 색다르게 조명하고 있습니다. 

정영선 작가님께서는 “그동안의 픽션이 명성황후를 야심찬 정치가, 지엄한 국모, 남편의 사랑을 바라는 여자로 그렸다면 이 소설에선 폐경으로 자신의 시간을 잃은 여자이자 조선의 시간을 잃어 가는 황후로서의 모습을 복합적으로 담으려 했다." 고 말씀하셨어요.

즐거운 독서 되시길 바랍니다!

물의 시간 - 10점
정영선 지음/산지니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제목부터 확 끌리네요~ 닫힌 문 출구가 없는데 어떻게 해쳐 나갈지 한 번 읽어보고 싶습니다. 기대되는 책이네요 ㅎㅎ

감사드립니다. 항상 수고하시고 화이팅하세요. 화이팅!


제목의 의도를 간파하셨습니다 :) 제목이 설명하고 있는 독특한 공간, 출구가 없는 비상계단을 주인공들은 어떻게 오르내리고 빠져나갈까요? 서스펜스와 반전이 있는 소설이지만, 힌트를 하나 드리자면... 표지에 답이 있습니다ㅎ 독자님도 화이팅 하세요!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 10점
김비 지음/산지니




[마르타] 를 읽고싶어요. 지금은 많이 변화되어 여성이 주도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여자가 홀로 살아간다는것이 얼마나 힘들고 편견들과 싸워야하는지 느끼고 있기에  남편 없이 삶을 살기위해 사회에 나와 겪는 여인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흥미롭습니다. 특히  근대 유럽의 산업화를 배경으로 했다니 얼마나 많은것들을 생각하고 고민해봐야할지 문제를 던져줄것같아 기대도 됩니다.  작가의 의도대로 현재에 여성으로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사실적 문제들을 공감하고  여성이 교육과 노동에서 소외된 사회 시스템에 적극 의사표현을 하는 의지도 가져보고 싶습니다.


많이 변화된 한국 사회라고 하지만, 역자 장정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이 1800년대 폴란드와 2000년대 한국은 닮은 점도 있는 것 같아요. 여성의 노동이나 교육, 가정 안팎에서의 역할에 대한 제한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니까요. 『마르타』와 함께 이런 문제에 대해 적극 의사표현 해주신다면,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좋은 일이지 않을까요. 미리 감사드립니다! 

마르타 - 10점
엘리자 오제슈코바 지음, 장정렬 옮김/산지니



3. 변화하는 중국, 온전히 이해하기


『중국 영화의 오늘』, 『방법으로서의 중국』



해양풍경, 은유를 넘어서,  발트3국에 숨겨진 아름다움과 슬픔, 나는 나, 중국 민족주의와 홍콩 본토주의, 흩어진 모래 등 제 책꽂이에 꽂힌 산지니의 책만 다섯 권이 훌쩍 넘네요. 강내영 선생님의 <중국영화의 오늘>을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100년후에는 모두 아시아의 고전이 될 훌륭한 책들 앞으로도 계속해서 많이 만들어 주세요~^^


와-- 이제 산지니 책을 여섯 권 갖게 되셨네요^^ 꾸준히 산지니 책에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중국영화의 오늘』은 동시대의 중국영화를 담고 있다는 면에서 기존의 중국영화 관련 서적들과 차별화되는 책입니다. 기존의 서적들은 기념비적인 과거 작품이나 저명한 감독들에 집중하고 있거든요. 책 읽으시면서 영화도 함께 보시면 재밌겠죠?ㅎㅎ 

앞으로도 매의 눈으로 좋은 책을 찾아주시는 독자 여러분, 그리고 아시아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자들과 함께하는 산지니가 되겠습니다. 

중국영화의 오늘 - 10점
강내영 지음/산지니


늘 아시아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책을 출간하는 출판사라 무척 고마웠습니다. 미조구치 유조가 지은 <방법으로서의 중국>은 이에 걸맞은 책이라 생각합니다. 꼭 읽고 싶습니다.


따뜻한 응원 감사합니다^^ 중국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저자 미조구치 유조는 오래 전부터 동아시아적 탈근대론에 천착해온 학자이지요. 그의  첫 저서이자 중국학에 대한 그의 신념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책이 『방법으로서의 중국』입니다. '중국을 온전히 바라봄으로써 우리와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는 미조구치의 시각이 독자님께도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방법으로서의 중국 - 10점
미조구치 유조 지음, 서광덕.최정섭 옮김/산지니


4. 산지니의 고향, 부산에 대한 책



부산을 맛보다』, 『금정산을 보냈다



 


<부산을 맛보다>가 눈길이 가네요. 부산에서 시작해 올해도 10년이 된 출판사라는 소개를 읽으니, 부산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 같아 믿음이 갑니다. 부산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데, 부산 출판사가 말하는 부산이야기. 돼지국밥 같은 진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아요. ^^


산지니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부산을 맛보다』를 골라주셨네요~ 이 책은 일본으로도 수출된 (산지니의 첫 수출도서(!)여서 산지니 식구들에게 더욱 특별한 책이기도 합니다. 돼지국밥과 해산물뿐만 아니라 멋진 까페와 퓨전요리까지, 지역별 맛집을 소개하는 책이니 부산을 맛보다』 들고 조만간 부산 한 번 들러주세요! 

부산을 맛보다 - 10점
박종호 지음/산지니


[금정산을 보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제 곁엔 늘 당연히 금정산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계절 내내  저와 가족들을 말없이 품어준 금정산에 대한 시인의 생각 또한 엿보고 싶어요!^^


이 시집이 출간되고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했을 때 "금정산은 어떤 산인가"하는 질문을 받고 최영철 선생님께서 "금정산은 서울의 남산 같은 산"이라고 하셨다는 이야기가 생각납니다ㅎ 독자분께서는 이런 설명이 전혀 필요하지 않으시겠지만요. 올해도 넉넉한 품을 가진 금정산과 아름다운 사계절 보내시길 바랍니다 ^^

(참고: 이 책도 큰 글씨 책으로 읽으실 수 있어요!)

금정산을 보냈다 (양장) - 10점
최영철 지음/산지니



전국 곳곳에 계신 독자분들로부터 이렇게 응원을 받으니

산지니 식구들, 힘을 내지 않을 수 없네요 :)

댓글 달아주신 모든 분들께 답변 드리고 책을 보내드릴 수 없어 아쉽습니다.


올해도 좋은 책들로 인사드릴게요.

감사합니다!


Posted by 비회원



지난 10월에는 MIT교수였던 엘즈비에타 에팅거의 저서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라는 논픽션 서적을 두고 역자와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와 20세기를 대표하는 독일의 철학자 마틴 하이데거의 연인관계를 기초로 하여 저술된 책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 이 책을 두고, 소설가이자 번역자인 황은덕 선생님과, 계간 「오늘의 문예비평」 편집주간이신 김경연 부산대 교수와의 질의응답과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갔습니다. 그럼, 그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 인간을 이해해야 한다



김경연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라는 이 책은 두 철학자의 다른 면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 책에 대해 소개하면 서두가 길어질텐데요. 우선 번역자에게 이 책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 책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가 필요할 것입니다. 이 책이 어떤 책인지, 그리고 마틴 하이데거와 한나 아렌트에 관한 소박한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황은덕 소설가·번역가.

황은덕            처음에 산지니 출판사에서 전화가 와서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라는 책에 대한 번역의뢰와 함께, 번역할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인지 검토의뢰 요청이 왔습니다. 우선, 책부터 읽어봤습니다. 읽어보니, 저는 굉장히 재밌었어요. 한나 아렌트의 경우는 아렌트 폭력론에 대해서 인상 깊게 읽었던 기억이 있거든요. 저한테는 굉장히 강건하고 의지가 충만한 여성철학자로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보는 순간 저의 기존의 아렌트의 이미지와 다른 이 책 원서를 통해 굉장히 놀랐습니다.  이 책을 읽어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논리적으로 사유, 자유, 의지에 대해 인간의 정치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힘을 행위라고 분석한 아렌트가 책에서는 너무나 섬세하고 사랑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여성으로 그려져 있거든요. 하이데거 같은 경우도 굉장히 충격이었습니다. 독특한 언어관을 가지고 있는 형이상학자인 하이데거를, 저는 그동안 존재의 철학자로서 추상적으로 이해해왔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살펴보니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온갖 술수를 다 부리면서 거짓말과 기만을 보여주는 하이데거의 모습에 우선 놀랐고, 어렴풋이 알고 있는 하이데거의 나치즘 연루도 비교적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었습니다. 이 책은 최대한 팩트에 의존해서 편지와 다양한 자료들로 크로스로 조합해나가면서 서술되었습니다. 하이데거의 사유와 의지와 그의 그런 면모를 강조했던 아렌트의 숨겨진 뒷모습을 알 수 있어서 저로서는 쾌감을 느낄 수 있었고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이 책에 대해 갖고 있는 첫 번째 반응은 불쾌함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하이데거와 아렌트의 전공자들을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의 출간에 대해서 이야기드렸더니 모두 불쾌해하시더라고요. 철학에 집중하지 않고 왜 이런 것에 집중하느냐고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글쎄요.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94년에 출간한 책인데 이 책은 지금도 굉장히 논쟁적인 책입니다. 이유는 두 철학자들의 불륜에 너무 초점을 맞추지 않았나, 그리고 엘즈비에타 에팅거의 태도가 굉장히 아렌트를 위주로 편애하면서 기술되었다는 점이겠지요. 제가 읽을 때도 아렌트와 하이데거를 이렇게 해석하기도 하는구나 할 정도로 굉장히 편향적인 태도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아마 저자도 아렌트와 마찬가지로, 나치즘을 피해서 망명생활을 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저자인 엘즈비에타 에팅거도 소설을 2권 발표했습니다. 아렌트의 전기 집필 중에 사망하였는데, 이런 점들을 총합해 봤을 때 자연히 아렌트를 편애하는 쪽으로 글을 쓰지 않았나 생각되네요. 이 책이 그 전에 둘의 관계를 다뤘던 소설이나 이야기들보다 굉장히 드라마틱하게 다가왔던 것은 피상적으로나마 기존의 하이데거나 아렌트의 고정관념에 대해 깨뜨린 책이었고, 그럼으로써 어쩌면 이 두 사람을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점이었습니다. 불쾌해하시던 전공자를 두고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금방 이해하시면서 제 번역 작업에 대해 이해하시더군요. 그런 계기로 번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김경연 「오늘의문예비평」 편집주간.

김경연        는 하이데거를 학부과정에서 시론을 통해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텍스트를 가지고, 한용운의 「당신을 보았습니다」라는 시를 ‘존재’와 ‘존재자’로 해석하는 것을 보고 어렴풋이 하이데거라는 철학자에 대한 생각이 고정관념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앞에서 설명을 하셨지만, 하이데거의 철학이 너무도 어렵고 철학계 내에서도 하이데거의 ‘존재’와 ‘존재자’의 개념이 어려운 개념으로 통상 여기고 있는데요.

저에게 있어서도 하이데거라는 철학자가 이렇게 어려운 사람이었는데, 선생님께서는 책을 통해 그들의 다른 면모를 발견하여서 흥미로웠다는 이야기를 하셨던 것 같습니다. 책 끝에 달린 역자후기를 읽었습니다. 의미심장하게 쓰고 계신 부분이 있는데 저는 선생님의 후기를 읽으면서 그러한 두 철학가의 이야기에 대한 불편함과 낯섦을 극복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이 책 표지에는 ‘행간에 놓인 사랑과 철학, 위대한 대화들’이라고 쓰여있지만, 제 솔직한 생각으로는 두 철학가의 거의 모든 작업을 삭제하고 두 사람간의 관계를 굉장히 선정적으로 풀어놓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불편했던 점이 있었습니다. 번역자로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가치에 대해 얘기해 주실 부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황은덕            번역하면서 아렌트 전공자와 먼저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그분께서는 이 책을 보고 싶지 않다고 하시더군요. 많은 학계에 계신 분들이 이 책을 선정적인 방식으로 보고 있다는 것에 저는 조금 생각을 달리했습니다. 한나 아렌트에 대한 모든 책이 다 번역되었고 하이데거에 대한 거의 모든 책이 번역이 다 나와있는데 유독 이 책만 번역이 되지 않았는지 그 의문에 대해서 말입니다. 심지어 둘의 대화록에 관한 번역조차 나와 있는데, 미국에서 주목받았던 이 책은 한국 학계에서는 마치 금기사항으로 취급당하고 있었죠. 사람들이 철학에 대한 아우라를 마주하기를 굉장히 두려워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은 사실,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철저히 사실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오히려 저는 아무도 안하려고 하기 때문에 제가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소설가인 제가 학계에서 다루지 않는 둘의 사랑이야기를 다룬다는 것에서 이 책의 존재 의미는 충분하지 않을까. 오히려 아렌트와 하이데거를 좋아할수록 둘의 이런 면모를 알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제 역자 후기는 모두 이러한 변명들을 죽 나열한 것에 불과합니다.



엘프리데 하이데거와 마틴 하이데거.


이율배반과 자기모순, 지적 영감의 교류자로서의

다양한 사랑의 측면을 보다


김경연        이 책을 읽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하이데거의 아내인 엘프리데와 하이데거의 관계가 부수적으로 나오고, 아렌트의 남편 블뤼허의 관계 또한 굵직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어느 블로그에 한 독자의 서평을 보니 ‘마치 순진한 한나 아렌트가 못된 하이데거의 꼬임에 빠진 것처럼 스토리를 만들어나간다’는 글을 써놓았던데요. 저도 이 책에서의 저자의 편향된 시각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저자가 ‘하이데거는 아렌트를 통해 끊임없이 자기 환상을 만들어낸다. 한데 그를 타락하게 만든 것은 그의 아내 엘프리데다.’ 하는 식으로 끊임없이 저자가 아렌트를 옹호하려는 식으로 그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역자로서 엘프리데와 하이데거의 부부관계와 블뤼허와 아렌트의 부부관계, 그리고 하이데거와 아렌트의 만남을 계속 용인하는 블뤼허의 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황은덕            아렌트의 사랑은 굉장히 자기기만적인 영역이었습니다. 처음 시작은, 열여덟 살에 아렌트가 서른다섯의 철학교수인 하이데거를 만난 거죠. 당시 독일에서는 교수와 학생관계는 엄격한 도제관계이자 절대복종의 관계였습니다. 1924년도 가을에 마부르크 대학에 입학한 아렌트에 있어 하이데거 교수는 가장 인기 있는 교수였고요. 대학에서 만난 둘은, 5년 동안 연인으로 지내다가 다시 또 만나면서 재회를 반복하고요. 재회 당시, 하이데거는 많이 나이도 들었고 나치즘 오명을 벗기 위한 굉장한 노력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하이데거는 아렌트가 필요했고 아렌트 입장에서 볼 때는 과거의 연인이자 스승이자 철학과 동격인 신적인 존재인데 두 사람의 관계가 늘 그랬어요. 하이데거에 있어서도 아렌트가 사랑의 대상이었고요. 끊임없이 영감을 주고, 자신을 숭배하고 영감을 주고, 나만이 그의 유일한 여성이다. 나만의 그를 정신적으로 구원해줄 수 있다고 아렌트는 그렇게 믿은 거죠. 그런데 그런 점이야말로 환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자도 아렌트와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고 저술하고 있지만, 사실 하이데거에 가장 어울리는 짝은 엘프리데였거든요. 오히려 아렌트는 처음에 하이데거의 나치즘 부역을 비난하고 장문의 편지를 쓰기도 했는데, 엘프리데는 끊임없이 하이데거를 지원하고 하이데거의 현실적인 지원을 돕습니다. 어쩌면 아렌트는 하이데거를 통해 어떤 철학적인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거죠. 엘프리데 같은 경우는 하이데거가 마부르크 부교수 임용이 되고 첫 해에 시간강사였던 하이데거가 계속 내조를 하고, 부교수 임용이 되자 투트나우베르크의 오두막 산장에서 그가 집필에 전념할 수 있도록 모든 육아와 집안 살림을 떠맡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엘프리데도 정치철학을 전공했던 상당한 인텔리였어요. 아렌트와 다른 방식의 사랑이었던 거죠.

한나 아렌트와 하인리히 블뤼허

아렌트의 남편, 블뤼허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독일 노동당을 창당했던 스파르타쿠스당, 바로 이 하인리히 블뤼허가 이곳의 당원이었습니다. 굉장히 선동적인 노동자 혁명당원이었던 그와 아렌트는 사상적으로 연결이 되었고요. 블뤼허는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강남좌파라고나 할까요? 굉장히 교육을 잘 받은 사람이었고, 아렌트는 플로레타리아 계급에 그와 사상적인 동지였고 서로를 많이 지지하는 관계였습니다. 어떻게보면 블뤼허가 많이 단순했던 거죠. 아렌트가 계속 인정을 갈구하고 하는 불안요소나, 아렌트가 갖고 있는 하이데거에 대한 사랑을 남편이 이해를 못했습니다. 자기와의 휴가를 그만두고서라도 하이데거를 격려해주고 위로해주라고 아렌트에게 충고할 만큼, 블뤼허 또한 하이데거 철학의 팬이었죠. 아렌트는 결국 예전에 하이데거와 연인관계였다고 블뤼허에게 고백했는데도 아렌트에게 계속 철학사를 위해 하이데거를 도우라는 조언을 했습니다. 편지에 나타난 바에 의하면 블뤼허는 아렌트를 굉장히 사랑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사랑의 오묘한 부분을 이해하지 못한 그런 사람이었죠.

 

김경연        블뤼허의 사랑의 방식이나, 아렌트의 이율배반 또한 듣고 보니 이해가 됩니다. 하이데거가 아렌트를 두고 삶의 활력소라고 이야기 했듯이, 서로가 이 두 사람과의 관계에 지적영감을 자극해주고 지적영감을 받고 있습니다. 질문을 저만 할 수 없으니까 다른 분들께서도 질문을 해주시면 좋을 듯합니다. 저자는 이미 돌아가신 분이라서 없으니 번역자에게 궁금한 점이 있으시다면 마음껏 해주시면 좋을 듯합니다.







독자1        두 사람 간의 관계를 책을 통해 잘 읽었고, 또 그 관계의 소상에 대해 잘 들어보았습니다. 번역자 선생님께서는 하이데거처럼 존경의 관계를 이루는 이런 분을 만나신 적이 있으신지요?


황은덕            그럼요. 있죠. 철학적인 관계라기보다도 저는 예전부터 문학에 많은 가치를 두었으니 문학이라고 하는 게 옳을까요. 비록 많은 소설을 쓰지 않았지만, 문학계 내에서 존경하고 흠모하는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의 이면을 보게 되면서 실망하게 되더라고요. 오히려 나중에는 편안해지더군요. 환상이 깨지는 건데, 그것도 소중하게 받아들이고 그 선생님을 지금도 존경하고 있습니다.




독자2        아까 이야기가 나온 부분들은 계속 선정적인 부분만 편집해서 출판한 게 아닌가 하는게 주된 내용인 것 같은데, 저는 다른 생각이 듭니다. 로뎅이나 까미유 끌로델이라던가, 다른 세기의 사랑들에 비해 이 둘의 관계는 외려 가장 차분한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랄까, 사실에 근거해서 쓰다보니까 그렇게 된 걸까요? 개인적으로 오히려 이 두 사람이 왕래한 편지를 그대로 놔두고 저자의 감정이 덜 개입되었더라면 책의 내용을 두고 비난을 받던 이 둘의 더 사랑이 더 깊게 다가왔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해석도 독자의 몫일테고요. 하이데거에 있어서 인간성에 대해서 실망도 많이 했고요. 편향된 시각으로 저술한 저자의 관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아니면 편지를 편집하지 않고 그대로 인용했으면 어땠을지, 번역자의 관점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황은덕            이미 번역서는 안 나와있지만 서신 전편이 모두 미국에서는 책으로도 나와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정말 조금씩 발췌한 거고요. 그래서 해석이 분분한 책이죠. 그렇긴 하지만 이런 시도도 예전에는 없었던 시도고, 그야말로 첫 시도였습니다. 그 이후에 서신이 그대로 공개된 책이 재출간되기도 합니다. 아마 서신은 독일어로 주고 받았을텐데, 책은 영문판으로 나와 있습니다.



한나 아렌트의 삶을 다룬 영화, 마가레테 폰 트로타 감독의 「hannah arendt」가 영화로도 나와 있다.


독자3        질문이라기보다는 이건 제 사견입니다만, 저자가 이 글을 쓸 때 아렌트의 입장에서 썼다고 얘기하셨는데 동의합니다. 하이데거의 치졸함이 곳곳에서 느껴졌거든요. 요즘 세상의 시각에서 보면 정말 완벽한 나쁜 남자라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하이데거에 못지않게 아렌트 또한 전혀 매력적인 여자라고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이렇게 똑똑한 여자가 한 남자에 의해 이렇게 자존심 없고 수동적이고 주체성도 없는데다, 스스로 숨겨지려고 하는 둥 전혀 매력적이지 않아 보였고요. 정말 작가가 아렌트에게 애정이 있었는가, 하는 의문마저 들더군요. 그래서 저자의 의도가 궁금합니다. 이렇게 파헤칠 필요가 있었을까요?


황은덕            처음에 말씀드렸지만, 아렌트의 저서를 먼저 읽고 이 책을 읽다보면 정말 그렇게 똑똑하고 지적인 여성과 이 책에 등장하는 수동적이고 주체성 없는 이 여자가 같은 여자란 말인가 하는 생각에 쇼킹 그 자체일 겁니다. 하지만, 오히려 저는 그래서 더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아렌트의 사상과 정 반대되는 지점에 하이데거가 놓여 있거든요. 이를테면, 반유대주의, 제국주의, 인종주의, 나치즘과 파시즘으로 귀결되는 이 하이데거라는 인물을 아렌트가 돕는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이데거가 미국에서 유명해지게 된 계기가 미국에서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과 같은 저서들이 번역되었기 때문인데, 영역(英譯)을 할 만한 출판사와 번역자를 아렌트가 알아보았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게 굉장한 의문점입니다. 나의 사상과 정반대되는 상대를 끝까지 보호하고 자신을 속이고 기만하면서 사랑할 수 있었을까? 저는 그럴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고요. 아렌트에 있어서 하이데거는 단순한 연인이 아니었다는 거죠. 열여덟 살의 아렌트는 하이데거를 통해서 모든 것을 흡수한 거죠. 그의 존재는 단순한 불륜 대상이 아니라 철학, 문학, 시, 그 자체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글쎄요. 아렌트의 그 수동성은 저도 참 깜짝 놀랐습니다. 하이데거가 모두 모놀로그처럼 독백하고 아렌트는 그저 듣기만 하는 관계 말이죠. 그것도 독일 대학사회의 도제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봅니다. 50년대 초 미국에서는 오히려 아렌트가 더 유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관계가 유지될 수밖에 없었던 거죠. 저는 번역자의 운명인지 몰라도, 아렌트의 수동성 때문에 그녀의 매력이 반감되지는 않았어요.



독자4        저도, 질문이라기보다는... 책에 관해 간단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솔직히 저는 하이데거나 아렌트의 이야기를 다룬 이 책을 추천받고 이 책의 철학적인 내용에 관한 지식 자체를 몰랐던 그저 상과대학 학생일 뿐이었습니다. 오히려 이 책을 추천받고 읽으면서 혹자는 가벼운 이야기라고 치부할지 모르겠지만, 제 입장에서는 무거운 서양철학이라는 학문의 빛을 보여주는 책이었습니다. 방금 말씀하셨던, 절대적으로 동경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나 평생토록 연락을 취하면서 실망할 때도 있고 흠모할 때도 있고, 당황해하면서도 항상 서로를 염모하는 모습을 보며 굉장히 놀랍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네요.


황은덕            이 친구는, 무역학과 학생이었고 영시수업 시간에 시를 즐겨 쓴다고 자기소개를 해서, 독특한 인상을 받아 좋은 책이라고 읽어보라고 추천했습니다. 재밌게 읽었다고 하니 저도 기쁩니다.




김경연        번역자로서 이 책에 대한 이 책에 대해 방어도 하시고, 하이데거와 아렌트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총체적으로 많이 나누었습니다. 소설가들이 최근 번역을 많이 하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데 소설가로서 선생님께서 앞으로 쓰실 소설에 하이데거와 아렌트의 사랑이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를 이야기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황은덕            이 책을 번역하면서, 사실 제 작품 창작에도 굉장히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번역하면서 남자주인공은 교수님, 여주인공은 학생 작품의 무대는 자연과학대학이 어떨까 실험실이 좋겠다 하는 식으로 구체적인 상상력을 통해 굉장히 자극을 많이 받았고요. 제가 아마 소설을 쓰기 때문에 번역작업이 훨씬 더 흥미로웠던 것 같습니다. 제가 만약 순수 연구자였더라면 이런저런 염려와 조심스러움 때문에 번역할 생각을 못했을 것 같네요. 아무래도 제가 소설가이다보니, 인물에 대한 해석이 좀 더 감성에 기초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학술서, 인문과학서에 관한 학자들의 번역작업도 필요하지만 소설이나 이런 류의 책은 문인이 번역하는 것도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경연        번역자와 마찬가지로, 세상에 대한 번역을 하고 있는 게 소설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이 책에 대한 번역자로 이번 저자와의 만남을 시작했지만, 다음번에는 소설가의 자리로 또 한번 만나뵙길 바라면서 이만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저자와의 만남은 이규정 소설가의 치우입니다.

11월 14일 저녁 7시 부산 지하철 서면역 '러닝스퀘어'에서 있을 예정이니

많은 참석 부탁드립니다^^

자세한 정보는 아래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http://sanzinibook.tistory.com/996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 - 10점
엘즈비에타 에팅거 지음, 황은덕 옮김/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안녕하세요! 용달달입니다*_* 오랜만에 글을 올리네요. 이번엔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를 읽고 쓰는 글이랍니다. 사실 책은 일찍 받았었어요... 과제와 시험에 치이다보니 이제야 글을 쓰게 되네요. 미흡한 글이지만 열심히 써봅니다!!

 

철학을 조금이라도 공부했다면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의 이름은 한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나는 철학을 공부하진 않았지만 알랭 바디우 콜로키엄에서도 하이데거의 이름을 들을 수 있었고, 비평론 강의를 들을 때면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의 이름은 지나가듯 이라도 간간히 들을 수 있었다. 이렇듯 그들은 나에게 그리 낯선 사람이 아니었지만, 이 책이 말하는 그들의 사랑은 조금 낯설게 다가왔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와 “20세기를 대표하는 독일 철학자” 마틴 하이데거의 만남이라니, 사실 책 제목부터 마음을 사로잡았었다. 전공이 아니다보니 깊게 알지는 못한 까닭에 두 사람이 살아 생전 만났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는데, 두 사람이 연인이었다니. 아주 놀라웠다. 그런데 이들이 공유했던 것이 ‘내가 아는 사랑이 맞나?’하는 의문이 들만큼 이들의 사랑은 평범하지 않았다. 제목에 ‘사랑의 종류’를 적어 두었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건 이 둘만이 알고 있는 것인지도.

 

이 둘이 연인이 되는 과정은 아주 자연스러웠고 헤어지는 과정마저도 자연스러웠지만 헤어진 이후는 -설령 그들은 자연스러웠을지언정-그렇지 않았다. 독자로서 바라본 그들의 관계는 굉장히 불안해 보였다. 책을 읽는 내내 ‘착하고 헌신적인 아렌트와 그런 아렌트를 이용하려는 나쁜 남자 하이데거’로 자꾸 느껴졌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그들의 관계는 불안해 보였다. 아주 얇은 끈으로 불안하게 이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책을 읽으면 작가의 아렌트에 대한 깊은 애정과 존경이 느껴진다. 그에 반해 작가는 하이데거를 나쁜 남자로 그려 놓았다. 그렇다고 하이데거를 비난한 것은 아니다. ‘못된 남자’가 아닌 ‘나쁜 남자’로 그렸다. 나쁜 남자는 필히 매력이 넘치는 법. 작가는 하이데거의 매력 또한 잘 적어 놓았다. 작가의 아렌트에 대한 애정이 깊어서 하이데거를 조금 소홀히 한 것 같아 아쉽지만, 하이데거 또한 꾸준히 챙겨주고 있는 느낌이라 너무 아렌트 위주의 책은 아니다.

하이데거는 그 특유의 매력적인 강의로 많은 학생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은 교수이다. 아렌트 또한 하이데거에 대한 존경에서부터 그녀의 사랑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는 교권을 잡은 사람의 권위는 아주 높았다고 한다. 그러니 그녀는 하이데거에게 신비로움마저 느끼지 않았을까.

그들이 헤어진 후, 하이데거는 필요에 의해 아렌트를 다시 만났고 아렌트는 그저 반가워했다. 이때 그들의 대화를 보고 아렌트가 얼마나 이해심이 높은 여자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어렴풋이 그녀가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으로만 상대를 보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는 유대인 대량 학살로 유명한 아이히만과 만났을 때를 보고 확신으로 굳어졌다-비록 이 사건으로 인해 수많은 유대인들에게 비난을 받아야 했지만-.

아렌트는 후에 결혼을 했고-하이데거는 이미 결혼을 했었다-, 아렌트나 하이데거나 각자 배우자가 있었지만 그들은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을 듯 그 관계를 이어갔다. 하지만 이때 그들의 관계가 우리가 생각하는 연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책을 읽을수록 더욱 강해졌다. 아렌트는 하이데거를 존경하는 선생님으로, 하이데거는 아렌트를 자랑스러운 학생으로 바라보면서 서로 도움을 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 감정이 다른 사제지간보다 좀 더 애착이 깊었던 것 같지만 연인의 느낌은 들지 않았다. 당연하지만 헤어지기 전 연인 관계로 있었던 때에는 연인이라는 느낌이 들었었다.

이 둘의 관계는 애착이 있는 선생님을, 애착이 있는 학생을 돕는 관계로 느껴졌다. 하이데거가 의도했는지는 몰라도 그는 아렌트에게, 그녀의 철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만큼 하이데거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고, 앞서 말했듯이 많은 학생들의 존경을 받은 인물이었기에 아렌트의 남편인 블뤼허는 아렌트가 하이데거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하지만 하이데거의 아내는 아렌트에게 어느 정도 질투 느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불륜 이야기로 치부하진 말자. 이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정의내리기 어려운 그런 감정을 주제로 하고 있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사랑과 존경의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보이기도 한다. 어떨 땐 사랑의 감정을 이야기하고, 어떨 땐 존경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내가 이 둘의 관계-헤어짐 이후의 관계-를 사랑으로 보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아렌트는 하이데거를 없이 살아갈 수는 있었겠지만 블뤼허 없이는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아렌트는 블뤼허를 신뢰한 만큼 하이데거를 불신했고, 그녀에게 있어서 신뢰란, 진정한 결합의 토대였다.”, “블뤼허는 그런 아렌트의 유일한 안식처였다. … 하이데거가 겪는 시련 때문에 그녀의 괴로움이 깊어질수록 그녀는 남편이 제공하는 안정감을 더욱 그리워했다.” 등의 대목들은 그녀가 배우자로서 사랑한 사람은 하이데거가 아닌 블뤼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하이데거와 블뤼허 모두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했지만 그 종류와 느낌은 내게 매우 다르게 다가왔다. 블뤼허에게의 사랑의 말은 사랑의 설렘과 그 감정의 거절을 두려워하는 느낌이 든 반면, 하이데거에게의 사랑의 말은 자신의 독립성마저 포기하고 헌신하는, 자신보다 높은 사람에게의 사랑으로 느껴졌다. 이 글에서 하이데거와 아렌트의 연애가 끝나지 않았었다고 하지만 그 연애는 흔히 말하는 육체적, 정신적 연애와는 다른 것으로 보인다. 과연 그 것을 연애라고 말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 시기에 아렌트가 한 정말 연애다운 연애는 블뤼허와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아렌트가 블뤼허에게 1936년 11월 26일에 보낸 편지를 보고 그녀는 블뤼허를 정말 놓치고 싶지 않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블뤼허의 태도를 보고 그가 아렌트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아렌트가 블뤼허에게 배우자로서의 사랑을 느꼈다면 하이데거에게는 연애 감정과는 다른, 존경과 사랑이 뒤섞인 높은 누군가에 대한 경외심 같은 것이 느껴졌다.

이 책을 그저 연애이야기로 읽을 생각이라면 재미가 없을 것이다. 이 책은 그들이 느낀 새로운 어떤 감정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게 해 주고, 아렌트의 사고 성장과 그녀의 감정 노선에 따른 전기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나는 후자의 것이 책에 녹아 있다는 점을 아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앞서 적은 것은 지극히 내가 보고 느끼고 판단한 것이다. 책의 작가는 아렌트와 하이데거의 관계를 좀 더 연인적 사랑으로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감정들이 더욱 복잡 미묘하다. 이 이야기를 또 다른 누군가가 읽고는 불륜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플라토닉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둘의 관계는 복잡한 만큼 사람들마다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내 느낌과 생각, 해석을 보고 당신도 똑같이 볼 거라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들의 편지를 토대로 쓴 책이니 뒤쪽에 주(註)를 같이 봐 주면 좋을 것이다. 언제 누가 누구에게 보낸 편지였는지 상세히 적혀 있고, 그런 점 때문에 더욱 생생하게 느껴진다.

이들이 느낀 복잡 미묘한 감정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집어 들라. 하이데거가 주는 영향에 따른 아렌트의 사고 변화와 그녀의 일대기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잡지의 기분 좋은 사은품처럼 묶어있다.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 - 10점
엘즈비에타 에팅거 지음, 황은덕 옮김/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 역자와의 만남에 초대합니다.

안녕하세요. 산지니 출판사입니다.

어느덧 가을이네요. 달마다 잊지 않고 찾아오는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

이번에는 저자가 아닌, 역자와의 만남입니다. 번역은 제2의 저술이라 불릴만큼 그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는 요즈음입니다.

황은덕 번역자와 함께, 정치학자였던 한나 아렌트 그리고 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가 하이데거의 내밀한 삶을 묘파한 논픽션 서적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특히나 책을 번역하신 황은덕 번역자께서는 『한국어 수업』이라는 소설집을 쓰신 소설가이시도 한데요. 소설가가 바라보는 번역의 세계는 어떠한지 그 다양한 이야기들이 궁금하시다면 꼭 참석해주세요.


일시 : 10월 15일 화요일 늦은 7시

장소 : 러닝스퀘어 서면점(서면 동보프라자 맞은편 모닝글로리 3층)

사회자 : 김경연 (오늘의 문예비평 편집주간, 문학평론가)


번역을 하면서 느꼈던 감회, 책에는 다 쓰지 못한 아렌트와 하이데거에 관한 저자 엘리자베타 에팅거에 관한 소상한 이야기들을 번역자를 통해 직접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많은 참석 바랍니다.

참가비는 무료이며, 누구나 참석하실 수 있습니다 :-D





문의 : 산지니 출판사(051-504-7070)

블로그(http://sanzinibook.tistory.com)

페이스북(http://www.facebook.com/sanzinibook)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 - 10점
엘즈비에타 에팅거 지음, 황은덕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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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신으로 읽는 두 지성의 세기적 사랑



     독일 실존철학의 거장인 마틴 하이데거(1889~1976)와 그의 제자이자 20세기를 대표하는 정치철학자인 한나 아렌트(1906~1975) 사이의 사랑은 꽤나 유명하다.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 등 ‘세기적 연인’들 사이의 관계와 이래저래 비교되기도 하면서, 하이데거와 아렌트는 이른바 지적인 사랑의 대명사로 회자돼왔다.


     이들의 관계를 단순히 사랑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그동안 많았다. 육체적·정신적 사랑을 넘어 제3자가 쉽게 규정하기 힘든 묘한 관계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우정, 정신적 동반자, 사상을 교유하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몽땅 녹아들어 있다는 이유에서다.


     사실 하이데거와 아렌트 관계는 세간의 관심을 끌 만한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다. 둘 다 워낙 세계적으로 유명한 석학들인 데다, 열일곱 살의 나이 차이, 하이데거는 독일 민족을 강조했고 아렌트는 유대인이라는 차이도 있다. 더욱이 하이데거는 나치에 적극 협력했고, 아렌트는 전체주의 사상을 신랄하게 비판한 명저 <전체주의의 기원>을 썼다. 하이데거와 아렌트가 처음 만날 때 하이데거는 유부남이기도 했다.


     이들은 첫 만남 이래 아렌트가 세상을 떠나는 1975년까지 무려 50년간 관계를 유지했다. 십수년간 서로 만나지 못한 경우도 있고, 편지를 주고받은 것도 그렇게 자주라고 할 수 없지만 그들은 그야말로 세기적인 사랑을 이어간 것이다.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는 두 사람이 주고받은 서신 속 대화, 주위 사람들의 증언 등을 통해 위대한 이 두 철학자의 삶과 사랑, 사고의 전개과정, 인간적인 면 등을 분석한다. 저자는 2005년 타계한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으로 작가이자 미국 MIT 교수를 지낸 엘즈비에타 에팅거다.


     책은 1924년 늦가을, 열여덟 살의 아렌트가 마부르크대학 철학과 학생이 되면서 하이데거를 처음 만나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시간의 흐름 순으로 구성됐다. 첫 만남 당시 하이데거는 역저 <존재와 시간>의 집필을 막 끝낸 서른다섯 살의 대학 내에서 가장 인기있는 교수였다.


     저자는 1925년 2월10일 하이데거가 아렌트에게 첫 편지를 보내고, 나흘 만에 두 번째 편지, 2주 후엔 “두 사람이 육체적으로까지 가까워지기 시작했음”을 알 정도로 두 사람의 삶과 생각을 내밀하게 분석한다.


     하지만 아렌트 중심으로 글을 쓴 흔적이 곳곳에 드러난다. 실제 책이 처음 출간될 당시 아렌트에게는 호의적인 반면, 하이데거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어서 하이데거 측의 강한 반발을 부르기도 했다. 이 책은 두 사람의 편지를 소재로 한 첫 책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두 철학자의 내밀한 생각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경향신문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2013-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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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8162134375&code=900308




나치즘 비판했던 그녀가 나치 옹호 思想家와 불륜을


"아렌트는 '만약 당신이 날 원하신다면'이라며 조그맣게 속삭이곤 했다. 자신의 수줍음과 말 없는 숭배가 하이데거를 기쁘게 하고 흥분시킨다는 것을 그녀는 직관으로 알고 있었다."(39쪽)


     남자는 35세의 유부남 대학교수였고, 18세의 여자는 대학 신입생이었다. 1924년 독일 마부르크대학에서 시작된 이들의 '관계'는 이후 50년 동안 지속됐다. 현대 철학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두 사상가, 마르틴 하이데거와 한나 아렌트다. 1995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돼 '공상 아니냐'는 논란을 일으킨 이 책은 편지와 증언을 통해 두 사람의 관계에 피와 살을 붙인다.


     그것은 숱한 철학서에서 두 사람이 보여줬던 관념의 언어가 '인간의 언어'로 바뀌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 '사랑'의 현장에서 사상과 실존은 모순을 일으킨다. 존재와 시간을 탐구했던 하이데거는 거짓말과 광적인 집착, 상투적인 편지 문장을 썼던 사람이었고, 전체주의를 비판한 아렌트는 나치즘을 찬동한 사상가를 사랑했다는 걸 독자는 알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아렌트에 대해 '인습에 얽매이지 않은 여성이었으나 사적인 삶에 있어서는 여전히 전통적이었다'고 평가한다.


조선일보 유석재 기자 | 2013.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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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8/16/2013081603345.html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 - 10점
엘즈비에타 에팅거 지음, 황은덕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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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철학가의 내밀한 삶을 그려내다

한나 아렌트

마틴 하이데거


 

     철학가들은 삶 속에서 어떠한 사랑을 나누었을까요? 폴란드 태생의 유태인 저자 엘즈비에타 에팅거는 저자 자신과 마찬가지로 유태인이었던 한나 아렌트의 삶에 주목하여 이러한 의문의 답을 풀고자 합니다. 스승이었던 마틴 하이데거와 연인관계였던 아렌트의 사상을 들여다보기에 앞서 그들의 삶을 재조명하고, 사상 이전에 존재하였던 두 철학가의 사고 전개과정 속 실마리를 찾고자 한 것이지요.

     저자는 아렌트와 하이데거가 주고받은 서신 속 대화와, 주위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두 철학가의 삶을 구체화하며 한 편의 서사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저자는 하이데거보다 아렌트의 삶에 방점을 두었는데, 서술 과정에서 은연중에 아렌트를 향한 자신의 애정을 드러냅니다. 1995년 이 책이 미국에서 처음 발표되자 “공상적인 이야기”라는 평가와 함께 다양한 논쟁이 촉발되었고요. 이때 이 책에 부정적으로 묘사된 하이데거의 모습을 두고 하이데거 측에서는 서둘러 두 철학자의 서신들을 전격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둘의 관계를 토대로 구성된 다양한 서적물이 출간되었는데, 이 책은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의 서신관계를 토대로 쓰인 최초의 책이라는 점에서 가치를 지닙니다.





1.


 스승과 제자로서의 첫 만남

“한나 아렌트는 자신의 첫사랑에 끝까지 충실했다.”

하이데거는 강의실에서 아렌트의 크고 검은 눈을 찾아냈고, 두 달여 동안 지켜본 후 자신의 연구실에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청했다. 이후 하이데거는 레인코트를 입고 얼굴 깊숙이 모자를 눌러쓴 채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네” 또는 “아니요”라고 답하던 아렌트의 이미지를 즐거운 마음으로 편지에서 회상하곤 했다. 그 만남 이후 정교하면서도 유려한 산문으로 이루어진 하이데거의 장문의 편지들이 이어졌다._본문 32~33쪽.

     1924년, 마부르크 대학에 입학한 열여덟 살의 아렌트와 서른다섯 살의 하이데거는 하이데거의 철학 수업에서 처음 만난다. 이미 엘프리데 페트리라는 여성과 결혼했던 하이데거였지만, 당시 유부남이라는 사실은 그에게 있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아렌트의 편지 속 문구처럼 “학문적 목표만을 헌신적으로 추구하는 한 남자의 무서운 외로움”이 하이데거의 고독을 짓누를 때마다 아렌트는 그의 말을 경청하고 친구 역할을 해줄 수 있었던 것이다. 자유롭고 관습을 무시하며 행복한 사랑을 꿈꿨던 아렌트의 열망은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된 지 약 일 년 후, 박사학위 논문을 마부르크 대학에서 연구할 수 없다는 스승 하이데거의 통보에서 불거진다. 하이데거는 아렌트에게 대학에서 떠나라고 종용하는데, 대학에서의 권위적 입지와는 반대로 점점 가까워지는 아렌트의 존재에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서술하고 있다.




2.

활발한 서신과 뒤이어진 침묵의 시간

     하이데거와의 짧은 연애를 마감하고 아렌트는 다른 연인들과 교류하며 또 다른 삶을 일군다. 그럼에도 하이데거를 향한 아렌트의 결속력이 줄어들거나 소실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아렌트에 있어 하이데거는 권위자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두 사람의 편지왕래와 만남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나, 과거의 추억을 되새기며 편지와 쪽지들을 꾸준히 주고받고 있음을 저자의 서술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이후 히틀러 집권 시기 하이데거는 나치에 협력하게 되는데, 전쟁이 끝난 후 나치 전력을 이유로 교수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이렇게 독일 민족성을 유독 강조했던 하이데거의 행동과는 별개로, 아렌트는 그를 지지하고 옹호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그를 향한 끊임없는 애정을 유지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3.

위대한 사랑과 나 자신의 정체성을 동시에 유지하는 방법


아렌트는 하이데거에게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말한 후 독립성을 포기해야 했다. “만약 내가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없다면, 만약 사랑의 대가로 내가 독립성을 포기해야 한다면”이라고 아렌트가 블뤼허에게 말했을 때, 블뤼허는 확실히 그녀의 과거 경험에 대해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_본문 72쪽.

     독립적이고 인습에 얽매이지 않은 여성이었던 아렌트였지만, 하이데거의 관계에서 유추하듯 여전히 전통적인 역할 속에서 남성을 파악하고 있다는 점은 아렌트의 주된 내적갈등 요인이었다. 독일 국가사회주의가 부흥하고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두 사람의 삶이 극적인 변화를 겪던 시점 이후, 유대인이었던 아렌트는 독일을 떠나면서 하이데거와의 관계를 정리하고자 한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이후 아렌트는 하이데거의 방문 요청에 따라 그와 재회하게 되고, 하이데거의 저서를 미국에서 번역하고 출판하는 공적인 일을 적극적으로 도움으로써 과거의 ‘연인’관계로 범주화할 수 없는 두 철학가의 독특한 관계가 형성된다. 훗날 아렌트는 전체주의 사상을 통렬하게 비판한 『전체주의의 기원』을 출간하는데 이 소식은 하이데거를 불편하게끔 만들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그들의 관계는 뿌리 깊은 결속력을 유지하는데 이 관계는 아렌트가 죽음을 맞이하는 1975년까지 반세기에 걸쳐 계속되었다.


마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


4.

소녀에서 여인으로, 여인에서 위대한 철학가로

추상적인 사상가에서, 한 여인을 사랑하는 남자로

     

하이데거와 한나 아렌트의 평생에 걸친 사랑은 ‘사랑’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하다. 하이데거에 있어서 아렌트는 사랑하는 연인의 의미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고, 아렌트에게 있어 하이데거는 철학과 동격의 의미를 지닌 신적인 존재였다. 당시 하이데거가 몰두하던 철학과 시, 문학, 음악은 아렌트의 사상에 고스란히 반영되었으므로 두 철학가가 서로에게 끼쳤던 중요성을 가늠하는 일은 그들의 생애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열쇠가 된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석학이자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격변을 통해 서로의 입장차를 드러냈던, 유태인으로서의 아렌트와 나치에 협력했던 독일인으로서의 하이데거. 독자들은 그들의 편지 속 행간을 통해 위대한 철학자들의 인간다움, 양면성에서 비춰지는 인간 존재의 철학적 시초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

20세기를 대표하는 정치 철학자. 독일 태생의 유대인으로 히틀러 집권 이후 독일을 떠나 파리 등에서 오랜 망명생활을 했다. 반유대주의와 제국주의라는 전체주의의 기원, 악, 폭력 등에 대해 깊이 연구했으며, 인간의 행위와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악의 평범성’ 개념 등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저작을 발표하기도 했다. 마부르크 대학 신입생 시절, 열일곱 살 연상이었던 스승 하이데거와 사랑에 빠졌고, 이후 50여 년 동안 ‘충실’한 관계를 유지했다. 주요 저서로『전체주의의 기원』, 『인간의 조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정신의 삶』 등이 있다.


마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

20세기를 대표하는 독일 철학자. 서양의 전통 형이상학이 자명하다고 여긴 존재개념을 철학의 근본주제로 삼았고, ‘현상학의 창시자’인 후설, 야스퍼스 등과 평생 교류하였다. 젊은 시절부터 사유와 저작의 대부분이 토트나우베르크의 ‘오두막’ 산장에서 이루어졌다. 히틀러 집권 시기인 1933년 4월에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에 취임했고, 이후 나치당에 입당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나치 협력 사실로 인해 교수직에서 물러났으며 1951년에 복권되었다. 주요 저서로『존재와 시간』,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 『니체』 등이 있다.




글쓴이 : 엘즈비에타 에팅거(Elzbieta Ettinger)

소설가이자 교수. 폴란드 바르샤바 출신의 유대인으로 홀로코스트를 피해 간신히 목숨을 구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폴란드 레지스탕스를 위해 일했고, 전쟁 이후 폴란드 정부의 전체주의를 비판하여 감시대상자가 되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이 시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 『유치원』(Kindergarten, 1968), 『퀵 샌드』(Quicksand, 1989)를 발간했다. 1966년 바르샤바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하버드대학 래드클리프 연구소를 거쳐 MIT 교수로 재직했다. 전기 『로사 룩셈부르크의 생애』(Rosa Luxemburg, A Life, 1987)를 출간했고, 한나 아렌트의 전기를 집필하던 중인 2005년에 심장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옮긴이 : 황은덕

십여 년 동안 미국에서 생활하며 공부했고 일했다. 귀국 후 부산에 정착하여 <부산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으로 등단했다. 소설집으로 『한국어 수업』이 있고, 마사 누스바움의 「민주 시민과 서사적 상상력」 등을 번역했다. 부산작가상, 부산소설문학상을 수상했고, 현재 부산대학교 전임대우강사로 일하고 있다.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

엘즈비에타 에팅거 지음 | 황은덕 옮김
인문 | 46판 | 212쪽 | 13,000원
2013년 8월 1일 출간 | ISBN :
978-89-6545-223-2 03990

철학가의 내밀한 삶을 그려낸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 스승이었던 마틴 하이데거와 연인관계였던 아렌트의 사상을 들여다보기에 앞서 그들의 삶을 재조명하고, 사상 이전에 존재하였던 두 철학가의 사고 전개과정 속 실마리를 찾고자 한 것이다. 저자는 아렌트와 하이데거가 주고받은 서신 속 대화와, 주위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두 철학가의 삶을 구체화하며 한 편의 서사를 구성한다.

 

 

차례

감사의 말

서문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

주(註)

역자후기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 - 10점
엘즈비에타 에팅거 지음, 황은덕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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