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한국중국현대문학학회에서 발간하는 학술지 <중국현대문학>의 제67호(2013. 12.)에 수록된 글입니다.

 

중국몽에 이르는 길: 이종민, <<흩어진 모래>>(산지니,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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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기를 발견한다. 동아시아는 서구와의 교섭과 충돌을 거치며 그 나름의 모더니티를 모색하고 형성해나갔다. 그것은 이른바 외재적인 이식근대화론이나 내재적인 자생근대화론의 이념적 서술들로 단순화될 수 없는 복잡한 계기들의 난조건 속에서 전개되었다. 그러니까 동아시아의 근대화는 중세에서 근대로의 순조로운 이행이나, 서세가 동점하는 매끄러운 동일화의 과정이 아니라 전통의 계승과 단절, 서구문물의 이입과 퇴거가 교착하는 가운데 이루어진 혼란스런 이질화의 과정이었다. 자기 안에 들어온 낯선 타자는 굴절된 형상으로 주체의 내면에 맺힌다. 특히 그 타자가 자기의 이윤축적에 혈안이 된 폭력적인 존재라면 그 굴절은 한층 심해진다. 그러므로 동아시아의 근대성은 분열된 주체의 뒤틀린 내면성으로 현상할 수밖에 없었다.

흑선의 기괴함으로 출현했던 서양에 대해 일본은 탈아입구로 응대했다. 그러나 탈아를 통해 도달한 것은 전통과의 우악스런 단절과 함께 아시아의 패권을 거머쥔 맹주가 되는 것이었고, 입구로 실현된 것은 서구적 근대성의 일본 잠식이었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전통과의 심각한 교착을 거치지 않고 들어온 서구의 사상이 일본 사상의 잡거성을 만들어냈으며, 결과적으로 그것이 그 잡거의 무질서를 통어하는 국체로서의 천황제를 불러왔음을 예리하게 논증하였다.잡거는 이질성들의 창조적인 절합인 잡종과 구분되는 것으로, 이질성을 배격하는 부정적인 동일화의 기제로 작동한다. 동서의 융합이나 변증법적 통일이라는 유기적인 총체화를 지향하는 잡거는, 그 내부의 이질적 사상들이 서로 교통하지 못한 채로 그저 뒤섞여 있을 뿐인 상태를 지칭한다. 문제는 일본 사상의 그런 잡거성이 이질성들의 창조적 혼란을 동질화, 추상화, 단순화시키는 천박한 주체성의 주조로 귀결되었다는 데 있다. 그리하여 마루야마가 도달한 결론은 새로운 주체성의 확립이다. “잡거를 잡종으로까지 끌어올리는 에너지는 인식으로서도 역시 강인한 자기제어력을 갖춘 주체 없이는 생겨나지 않는다. 그 주체를 우리가 산출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혁명의 과제이다.”

이양선의 격퇴와 더불어 쇄국의 길로 나아간 조선은 위정척사의 사조가 개화파의 사상을 압도했다. 그럼에도 거세게 불어닥친 만국공법의 명분 앞에서 위정(衛正)은 척사(斥邪)에 이를 수 없었다. 열강의 침탈 야욕에 조선의 지식인들은 자강과 독립 그리고 애국의 계몽으로 대응했으나 대세는 이미 망국과 식민화로 기울었다. 일제의 식민지배가 관철되는 가운데, 처절한 저항과 적극적인 순응 사이를 요동치며 조선은 그렇게 근대의 심연으로 빠져들었다. 가혹한 식민지 수탈에 광범위한 항거로 궐기했던 1919년의 소위 만세사건 이후 최남선, 김성수, 이광수를 비롯한 지식인들은 서구의 자유주의적 개인의 개념에 입각한 민족개조론을 제기했다. 민족성의 개조를 통해 문명의 선진화를 꾀하는 발상은, 약소민족으로서의 한계를 자각하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일종의 실력양성론이다. 민족의 개조로써 도달하려는 목표형의 인간은 서구에서 발아한 자유주의적 개인이었으며, 실력의 양성은 그것을 실현하는 유력한 방법으로 제기되었다. 그러나 민족주의 지식인들의 그런 바람은 그 의도와는 다르게, 조선의 인민을 제국의 충실한 신민으로 주조하려했던 식민통치의 역학 안에 흡수되고 말았다.

아편전쟁의 패배로부터 이월된 20세기 초의 중국도 역시 망국의 위기 앞에서 변법과 자강의 모색으로 분분했다. 쇄신의 기운은 위기의 근원을 고루한 사상에서 찾았고, 유학이 그 고루함의 중심으로 지목되었다. 유교는 전통이데올로기의 모체였으며, 그 경전은 모든 가치 기준의 원리로서 막강한 권위를 발휘했다. 송명이학과 경서는 합리성의 근거이자 규범이었고, 그것을 향한 시비와 논란은 바로 그 격렬한 반전통주의의 한 표정이었다. 예컨대 금문경학파의 캉유웨이는 경서 해석의 기투를 통해 전통을 재구성하려 했다. 그는 경학의 경세 전통을 근간으로 불학과 서학을 융합함으로써 난세를 대동세로 역전시킬 원대한 기획을 도모했다. 그리하여 변법으로 자강을 실현하려고 했으나 대동세계의 유토피아는 끝내 실패한 기획이 되고 말았다. 캉유웨이의 금문경학과 대립했던 고문경학은 유학의 전통을 사수함으로써 위기를 돌파하려 했던 보수적 학풍이다. 캉유웨이가 대동의 정신으로 난세를 헤쳐 나가려 했다면, 고문경학파의 장타이옌은 반청을 내세운 민족의식으로 난세의 풍조와 맞섰다. 그러나 천하를 다스리는 정명의 존엄은 이미 그 기세를 탈진해버렸고, 이런 국수적 사상으로 버티기엔 역부족이었다. 고사변운동에 이르러 경학은 일종의 역사학이 되었고, 향촌건설의 실험을 도모했던 량수밍과, 유학을 일종의 인생철학으로 전유했던 슝스리의 신유학을 마지막으로 마침내 유학은 그 현실적 실효성을 다했다. 유학의 권위가 해체된 이후의 다원화된 사상계에서, 심학과 결합한 불학의 정주학 비판과 더불어 신문화운동 세대의 공격적인 반전통주의가 그것을 분명한 사실로 확인시켜 주었다. 이제 난세의 극복은 경서의 해석을 둘러싼 논쟁에서 벗어나 주체의 문제로 옮겨간다. 중국의 근대 사상사에서 사회의 변혁은 무엇보다 주체의 거듭남이라는 문제로 사유되었다. 근대의 불학은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난 주체, 그러니까 “‘무아로써 혁명 도덕을 건립하는 것은 불학입세가 가능한 방식이라는 명제를 제출했고, 옌푸와 후스를 비롯한 서학파 지식인들은 서구의 과학적 방법론과 더불어 전제적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운 천부인권의 개인을 근대적 국민국가의 주체로 입론했다. 중국의 근대 사상사는 봉건주의적 타락과 서양열강의 침탈 야욕 앞에서 도도했던 계몽적 지식인들의 사상적인 고투로 치열했다. 그러나 중국의 근대화는 이런 고투를 뒤로하고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인간학으로 귀결되어 중화인민공화국의 건설로 마감되었다.

20세기 동아시아의 역사는 패권을 거머쥔 일본에 의해 유린되었다. 일본은 탈아입구에서 대동아공영권의 구상으로 전향해 서구적 근대의 초극으로 내달리며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을 비탄으로 내몰았다. 그리고 이제 21세기의 초입에 들어선 지금, G2로 부상한 중국은 대국굴기의 기세로 세계사의 중심으로 우뚝 올라섰다. 시진핑은 국가주석으로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통해 국가부강과 민족진흥, 인민행복을 실현하는 이른바 중국몽(中國夢)을 중화민족의 미래비전으로 제시했다. 그런데 중국 인민의 행복이라는 추상적인 목표가 국가의 부강과 민족의 진흥이라는 자칫 도발적인 전략과 함께 거론되고 있는 것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와 민족의 부강과 진흥이라는, 낡았지만 여전히 위험한 그 발상은, 그것이 다만 선동적인 수사가 아닌 한 주변의 국가들에게는 불안과 의혹의 시선으로 읽혀질 수밖에 없다.

일제의 식민지배를 경험했고, 그 이후 열전과 냉전의 교차 속에서 분단체제로 고착된 한국은 삼대세습의 전제정치와 호전적인 핵실험으로 한반도의 불안을 조장하는 북한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대면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저 중국몽의 정체를 고뇌하는 일은 단순한 지적 사역 이상의 긴요한 과업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종민(경성대학교 중국학 교수)의 근작 <<흩어진 모래>>(산지니, 2013)는 그 긴요한 과업의 중요한 사례로 거론될 만한 저작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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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중국인의 고뇌와 꿈을 부제로 하고 있는 이 책은, ‘중국몽이 지향해야 할 옳은 방향을 모색하는 한 중국학 연구자의 고뇌어린 작업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에게 중국몽의 실현이란 타국들 위에 군림하는 패권국가로의 도약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동참할 수 있는 덕성을 지닌 인민들이 주체가 되어 만들어나가는 보편적 복지사회이다. 중국의 경제성장 모델이 신자유주의의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있기 위해서는, 성숙한 공공의식을 갖춘 인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사회분배와 공동체사회를 실현하는 보편적 복지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것. 보편적 복지의 실현을 위해서는 적정 수준의 생산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겠지만, 이와 더불어 인민들이 공동체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정치의 역할이 우선되어야 한다. 따라서 저자는 보편적 복지사회의 구축을 통한 중국몽의 실현을 위해서, 사회통합의 정치를 실행할 인민들의 주체성에 대해 천착한다.

책의 표제이기도 한 흩어진 모래(散砂)’는 저자가 중국 특유의 민족성 내지 국민성을 탐구하는 사유의 밑절미다. 원래 흩어진 모래는 공동체 의식을 결여한 채 단결하지 못하는 중국인들의 결함을 야유하는 서양인들의 표현에서 유래했다. 순원은 <<삼민주의>>에서 그것을 전유해 중국인들의 자유개념을 비판적으로 논술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서양인들의 오해와는 달리 중국인들 각자는 서로 자유롭지만, 하나의 단체를 구성해 그 안에서 더불어 함께하는 자유의 의식이 결핍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흩어진 모래는 공공의식이 부재한 중국인들의 국민적 품성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저자는 이 비하와 멸시의 표현을 역전시켜, 그 의미를 긍정적인 것으로 다시 정의하려고 한다. 한 권의 시집(<<눈사람의 품>>, 오늘의문학사, 2006)을 갖고 있는 저자는 이 책에서 수행할 그 작업의 대강을 자작시에 담아 머리말에 수록했다. “나는 한 알 한 알 작지만 단단하고/ 우리들이 모이면/ 흩어진 듯 넉넉합니다”(13) 흩어진 것이 넉넉할 수 있는 역설은 모이면이라는 연합(association)의 단서를 통해서만 비약할 수 있는 경지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보다, 작지만 단단한 모래알 하나하나의 품성 안에 이미 그 연합의 계기가 잠재해 있기에 가능한 경지다. 고난의 역사를 살아온 중국인을 향한 저자의 이런 선량한 믿음은, 이제 근현대사상사의 눈 밝은 탐색에 담겨 중국몽에 이르는 구체적 실상을 드러낼 것이다.

이 책은 그 자체로 한 권의 근현대사상사 저작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전부 11편의 독립된 아티클을 묶었음에도, 책의 전체는 통시적 흐름에 의한 순차적인 구성과 더불어 연속적이고 일관된 문제의식에 따라 유기적으로 조직되어 있다. 이 책은 량치차오에서부터 왕후이에 이르기까지 중국 근현대의 사상적 자원에서 이른바 주체성의 문제를 탐색한다. 특히 국민성 담론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면서, 그것의 부상하고 소멸하는 부침의 역사적 맥락을 알뜰하게 드러내 보인다. “본래 중국 국민성 담론은 외국인 선교사인 아더 스미스에 의해 제기되어 중국 지식인들이 이를 자각의 근거로 삼은 것이고, 또 역사적으로 볼 때 정치개혁이 실패한 후 그 원인을 낙후한 국민성에서 찾으려는 시도들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어 왔다”(218). 다시 말해 중국인의 국민성에 대한 사상사의 비판적 논구들은, 사회변혁의 동력을 주체성의 재건을 통해 얻고자 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아더 스미스와 같은 서양인을 비롯해 일본에서의 중국인론은 물론, 변법유신파의 그것에서부터 신문화운동 세대를 거쳐 1980년대의 신계몽주의 지식인들의 논의에 이르기까지, 국민성 담론은 사상의 역사에서 단속적인 형태로 면면히 이어져왔다. 물론 저자는 사회의 변혁이 국민성 개조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라 생존환경의 변혁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142)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첨언해 두었다. 변혁은 주체의 자각만으로 완수되지 않는다. 사회구조의 모순을 자각한 주체의 투쟁 역량과 함께, 혁신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의 성숙 또한 변혁의 중요한 기반이다. 달리 말하자면, 주체의 역량은 구조 속에서 발생하고 구조를 통해 발현된다,

주권의 지배에 저항하는 피지배 주체의 역량에 대한 논의들은 마르크스주의를 비롯한 진보사상의 주요 의제였다. 예컨대 은폐된 자본주의의 착취구조에 대한 <<자본>>의 치밀한 폭로와, 그 착취구조의 간교함에 대한 주체의 인식을 방해하는 오류인식(false-understanding)으로서의 이데올로기 비판이, 이른바 사회구조의 분석이다. 이에 대해, 마르크스의 유적 존재(The spcies being)의 개념이 환기하는 공동체의 결사에 대한 정치적 의욕과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는 <<공산당 선언>>의 선명한 구호에는 혁명 주체로서의 인간에 대한 신뢰가 담여 있다. 특히 주체의 혁명에 대한 전략과 전술의 방침에 대해서는, 주지하다시피 레닌의 전위적 발상이 한때 맹위를 떨쳤다. 그런데 객관적인 구조의 분석이 논증적인 치밀함을 보인다면, 주체의 역량에 대한 논의들은 대체로 논증보다는 역사적 신념과 혁명적 열정의 정념으로 들떠 있다. 예컨대 안토니오 네그리의 <<제국>>이 제국주의에서 제국으로의 전환이라는 자본주의의 형질변화를 거시적인 차원에서 엄격하게 분석하고 있다면, 혁명의 새로운 주체 개념으로서 대중과 구분되는 환원 불가능한 특이성의 존재로 다중(multitude)’을 제시하고 있는 <<다중>>은 시적인 문장과 미래에 대한 낙관의 파토스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은 국민성 담론을 비롯한 주체성의 통찰이 내포하고 있는 어떤 내밀한 주관적 성격을 예시한다. 다시 말해 주체에 대한 논의는 합리성의 차원으로 다 설명되지 않는 공백을 남긴다. 그러므로 주체성의 탐구는 정합적인 이론의 과제가 아니라 성찰적인 사상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책은 1중국인은 무엇이 문제인가2중국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가 주로 중국인의 국민성을 논한 주체성의 사상적 탐색이라고 한다면, 2부는 대체로 중국의 사회구조적 실상을 진단하고 분석한 논증적인 성격의 글들이다. 이 책의 이런 구도는, 중국몽을 중화민족주의를 넘어 인류애의 실천에 가 닿는 미래의 전망으로 정립하려는 저자의 사유를 반영한다. 다시 말해, 공동체의식의 실천으로 공공성의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주체의 구성은 물론, 개혁개방 이후 저임금 산업노동자들의 희생 위에서 이룩한 고도성장의 비루한 구조를 극복함으로써 중국몽의 이상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중국몽은 주체와 구조의 비유기적인 변증법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잠재적인 미래의 희망이다.

 

3

 

이제는 좀 더 본격적으로 본문의 내용들을 검토해보기로 하자. 먼저 흩어진 모래라는 개념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는 서양인에 의한 중국인의 국민성 담론을 들여다본다. 루쉰은 서양인들의 중국 담론에 내재하는 서구 중심적 편견에도 불구하고 아더 스미스의 <<중국인의 성격>>을 번역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미국인 선교사 아더 스미스가 20여년의 중국 체류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 책에는, 서양의 근대를 보편으로 인식하는 편파적인 시각이 관류하고 있다. 그럼에도 루쉰은 이 책의 무엇에서 유언으로 남길 만큼 긴급한 번역의 가치를 발견한 것일까. “선구자의 적막과 대중의 우매는 루쉰이 평생에 걸쳐 천착한 주제였으며, “루쉰이 다른 계몽운동가들과 진정으로 구별되는 지점은 국민성 발굴과 인성 탐색이었다.” 그런 그가 이 책에 주목한 것은 타인의 시선에 대한 비평만을 가지고 해결할 수 없는, 타인의 비하를 받을 만한 중국인 내부의 결함에 대해 성찰”(27)할 필요성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인종차별적인 우월감으로 중국인을 비하하는 아더 스미스의 노골적인 서술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적 텍스트에는 이런 비하의 시선과는 구별되는 또 다른 시선이 교차하고 있다. 루쉰은 바로 이 양면적 시각의 엇갈림 속에서 중국의 자기 분석을 수행할 수 있는 해석학의 통로를 발견했던 것이다. 아더 스미스가 기술한 중국인론의 요지는 대체로 열악한 자연경제하에서 형성된 생존능력과 이기적이고 폐쇄된 성격, 고대문명국의 습속에 의해 형성된 보수적이고 자기만족적인 성격 그리고 국가의식의 부재와 관련된 공공정신 결핍”(51)으로 정리할 수 있다. 소농경제적 생산조건에서 유래하는 이기적이고 폐쇄적인 기질, 전근대적 전제정치 아래에서의 체제순응적인 자족과 낙관의 정서가 공공성의 결핍을 가져왔고, 그것이 근대 국민국가의 건설을 어렵게 하는 이유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농촌과 농민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적 견해를 가져와, 아더 스미스의 이런 분석이 세계사의 일반적 현상을 중국인의 특수한 자질로 한정해 자의적으로 서술한 것임을 꼬집는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아더 스미스의 분석이 갖는 논리적 정합성이 아니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아더 스미스라는 타자의 시각을 전유해 중국의 자기 분석을 수행하는 루쉰의 해석학적 태도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이 점을 예리하게 짚어내고 있다. “루쉰은 아더 스미스라는 타자의 거울을 통해 중국인의 결함을 비춰보며, 그것을 관찰대상이나 선교의 대상이 아닌 국민성 비판의 차원에서 주체적으로 사유하고 있었던 것이다.”(52)

루쉰은 소위 환등기 사건을 통한 회심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굴욕을 통해 자각하는 비범한 정신의 인간이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루쉰의 그런 풍모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문학가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어떤 자각인 듯하다. 종교인을 가능케 하는 것이 죄의 자각인 것처럼 어떤 자각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 자각으로 종교인이 신을 보는 것처럼 그는 말을 마음대로 한다. 말에 지배되지 않고, 반대로 말을 지배하는 위치에 선다. 이른바 그 자신의 신을 창조한다.” 루쉰은 타자의 굴욕적 시선에 자기를 맡김으로써 성찰의 주체도 거듭나는 것에 대해 사유했다. 쩡자(掙扎)란 바로 그 굴욕을 견디며 버팅겨 내는 것이다. 쩡자로 인해 자아는 드디어 반성적인 주체로 거듭날 수 있다. 루쉰은 아더 스미스라는 타자의 거울에 비췬 굴욕적인 중국인의 상을 통해 자기 분석으로서의 중국인 비판을 수행했다. 그러니까 대중의 우매에 대한 루쉰의 장구한 비판이란 동족에 대한 감정적 혐오의 발로가 아니라, 굴욕 속에서 거듭나기 위한 고통스런 회심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주체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자기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타자의 불편한 시선을 회피하는 주체는 새로이 거듭날 수가 없다. 사상사의 악전고투란 이처럼 타자의 거울에 비친 자기의 불편한 모습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런 사상사의 악전고투는 중단 없이 이어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거울 속의 미혹과 유혹의 소환을 부단히 의식하고 각성했다. 하지만 여전히 거울 속에 있는 듯하다. 폭력을 거부하고 거기에 저항하는 것은 아직 선명한 핏자국으로 이미 거무튀튀해져 버린 옛 흔적을 용서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입장과 선택의 차이, 대립의 해소와 화해는 또 다른 거울성으로의 심취를 뜻할 뿐이다.” 거울 앞의 어떤 각성 속에서 용서와 화해를 거절하는 다이진화의 이 결기는, 자기에게로 육박해 오는 타자성을 감당해내겠노라는 쩡자의 다짐이다.

아더 스미스에 의해 제기된 중국의 국민성 담론은 20세기 초의 일본에 전해져 그곳에 체류하던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당시 일본에 망명해 있거나 유학하던 만청 지식인들은 <<중국인의 성격>>을 일본어 번역본을 통해 읽으며 중국 국민성에 관해 사유할 수 있는 타자의 거울을 얻을 수 있었다. 가장 먼저 그 거울을 통해 중국 국민성을 비춰보던 이가 바로 량치차오였다.”(52) 서구열강으로부터의 국권침탈과 청일전쟁의 굴욕적 패배를 경험한 만청 지식인들은 근대적 국민국가의 건설을 통한 변법자강의 길을 모색했다. 그러나 수구파의 거센 반발로 그런 모색은 좌절되었고, 변법자강파의 캉유웨이를 비롯해 그 충실한 제자였던 량치차오는 망명객의 신세로 전락했다. 굴욕과 고난을 자각의 계기로 역전시킴으로써 경험은 사상으로 올라선다. 량치차오는 그 고단한 망명을 통해 일본이라는 거울앞에서 중국을 응시하게 된다. 그 거울에 굴절된 중국의 현재를 바라보면서 그는 다시 조국의 미래를 내다본다. 망명기의 두 저작은 그렇게 망명의 고뇌를 미래의 모색으로 역전시킨 사상의 산물이다. “하나는 입헌국가가 된 중국의 미래를 상상하는 정치소설 <<신중국미래기>>이고, 다른 하나는 입헌국가 건설의 주체로서 신민(新民)이 구비해야 할 자격을 논한 <<신민설>>이다.”(55)

입헌국가의 구상이 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는 것은, 아마도 당시 봉건적인 중국 현실과의 간극을 상상의 비약을 통해 넘어서기 위한 서술전략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허구의 이야기임에도 그 구상은 대단히 치밀하다. 량치차오는 신중국 건설의 과정을 여섯 시기의 발전단계로 체계화하면서 지방자치를 근간으로 하는 중앙집권체제로서의 입헌군주국을 상상한다. 이처럼 <<신중국미래기>>가 이상적인 국가 건설을 구상한 일종의 사회 구조론이라면, <<신민설>>은 그 이상적 국가의 바람직한 주체로서 신민을 제시한다. 주권재민의 나라에서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 그 국가를 구성하는 국민이라는 생각은, 새로운 정치적 주체로서의 신민을 사유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지금까지 중국인들은 국가를 사유화하는 전제정치로 인해, 천하개념에 가로막혀 근대적인 국가개념을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배만(排滿)의 배타주의를 넘어 종족의 차별 없는 신민으로서의 국민을 배양해 제국주의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를 왕조의 소유물로 오해하는 노예근성은 자치능력과 독립심의 결여와 결부되어 있다. 따라서 국가흥망과 개혁의 성패 여부는 공덕을 갖춘 신민을 육성하는 것으로 판가름 나게 된다. 이때 공덕이란 신민이 지녀야 할 가장 핵심적인 덕목으로서 개인 수양의 측면에 치중하는 사덕과는 달리 사람들이 서로 합심해 사회를 이롭게 하는 일종의 사회윤리다. 그러니까 저자는 량치차오의 공덕 개념을 국민성 담론의 차원으로 가져와, 그것을 공동체정신 내지는 공공의식과 결부시키고 있는 것이다.

공덕의 주체로서 신민은 법률로 명시된 그들의 권리와 의무에 입각해,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공공성에 근거를 둔 자유를 구가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까 전제정치의 산물인 사인과 부민을 민주적인 권리와 책임의식을 지닌 공인과 국민으로 양성하기 위해서는, 공동체 윤리로서의 공덕을 배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신민의 배양을 통한 이상국가의 건설이라는 개혁 구상에서, 량치차오는 특별히 지식인의 계몽적 역할에 주목한다. 중국인의 고질적 결함으로 지적되어온 공공성의 결여를 극복하고 근대국가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국민성을 개조할 계몽 주체로서의 지식인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개입한다. “하지만 이것은 장기간 중국인의 결함을 형성시켜온 정치경제적 조건을 변혁하는 일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그러한 삶의 조건에 대한 변혁 없이 지식인의 계몽운동만을 통해 단기간에 새로운 국민성을 배양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90) 이것은 역시 사회 변혁에 있어 주체와 구조의 비유기적 변증법과 관련이 있는 문제다. 이 책의 저자는 신민(주체)의 양성을 통한 입헌국가의 수립이라는 량치차오의 정치적 개혁구상이 경제적 토대(구조)의 개혁과 병진되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다시 말해 지식인의 계몽과제는 정치경제적 조건의 점진적 개선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토대로서의 경제적 성장(생산력의 발전)의 바탕 위에서 상부구조로서의 정치적 성숙(민주주의의 확립)을 재생산하기 위해서는, 그 실행 주체로서의 인민(프롤레타리아)의 역능이 결정적이라는 마르크스주의적 사고를 읽을 수 있다. 덧붙여 인민을 선도할 전위로서의 지식인의 역할에 대한 강조 역시 마찬가지다. 뒤에서 더 자세히 논의하겠지만, 이 대목에서 우리는 중국 근현대사상사의 지층을 굴착하는 저자의 입론이 어떤 기반 위에 있는가를 엿보게 된다. 다시 말해, 생산력의 사회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치적 민주주의가 선결되어야 한다는 사회민주주의의 시각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보편적 사회복지에 합의하는 국민성의 문제를 계몽(교육)의 차원에서 강조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량치차오의 신민설 이후 오랜 동안 국민성 담론은 그 자취를 감췄다가, 그것이 다시 출현하게 된 것은 신해혁명 이후 수구적 퇴행으로 인해 중국 정치운동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회의가 일어나기 시작한 신문화운동 시기였다. 그러나 신문화운동 세대가 담론의 출발점으로 착안한 것은 만청 국민성 담론의 신민이 아니라 외부의 모든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로서 개인의 개념이었다.”(92) 양무운동, 무술변법운동, 신해혁명의 잇따른 좌절을 경험하면서, 당대의 지식인들은 기존의 제도개혁과 부국강병책과는 다른 근본적인 변혁의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서구적 개인주의의 영향 아래서 새로운 국민성 개조운동을 이끌었던 것은 이른바 5·4 이후의 신문화운동 세대였다. 그 중에서도 천두슈는 기존 변법파의 정치혁명이 특정 정파의 이해관계에 매몰된 당파운동이었음을 비판하면서,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는 입헌정치를 제안했다. 천두슈의 개인은 전통의 예속에서 자유롭고, 민족이나 국가와 같은 권위적인 결사에 선행하며, 모든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다. “신문화운동 세대의 담론 속에는 개인, 인간, 자아, 개성, 내심요구, 주관, 정감과 같은 유사계열의 말들이 충만한데, 이것은 세계의 중심이자 진리의 담지체, 실천의 주체로서 개인의 탄생을 선언”(99)하는 차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천두슈가 새로운 시대의 주체로 제시한 신청년은 자주, 진보, 실리, 과학의 정신으로 무장해 역사의 진보를 가로막는 낡은 전통과 맞서 싸워야할 시대의 사명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서구적 자유주의에 입각한 신문화운동 세대의 개인은 실재하는 존재가 아니라 일종의 이상적 개념이었다. 그러므로 난세의 현실에서 그 개인은, 변혁의 주체로 자리 잡기엔 당연히 역부족이었다.

저자는 루쉰의 <광인일기>를 신문화운동 세대의 그 좌절 위에서 새로운 도전을 모색하는 일종의 알레고리로 독해한다. “광기는 사물의 은폐된 부분을 꿰뚫어보는 통찰의 눈이다.”(108) 광인은 그 광기의 통찰로 가족제도를 근간으로 하는 식인예교의 전통을 해체하려고 한다. 그러나 광인이 시도했던 계몽의 기획은 소박한 도덕론으로 봉합되어 도피적인 내성화로 귀결되었고, 광인은 광기를 상실하고 체제 순응적인 관리로 주저앉는다. “그 누구도 식인의 역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현실 인식과 식인하지 않은 진정한 인간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이상 사이에서 빚어지는 모순과 혼란”(117)은 그 계몽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제시되지만, 이상과 현실의 괴리 이상으로 내면으로의 도피와 침잠이른바 계몽의 내성화이야말로 좌절의 진짜 이유다. 그것이 중국 대중과 계몽주체로서 신문화운동 세대 사이의 소통의 위기”(124)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쉰은 그 좌절과 실패의 자리에 그냥 주저앉지 않고 새로운 전투의 길을 탐색한다. 이 책의 저자는 그것을<노라는 가출한 후 어떻게 되었나>의 어떤 구절에서 적극적으로 읽어낸다. “일시적으로 짧게 놀라게 하는 희생은 아무런 소용이 없으며 묵묵(深沈的)하고 끈기 있는(韌性的) 전투를 하는 쪽이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125쪽에서 재인용) 이 책의 저자는 내성화된 계몽에서 묵묵하고 끈기 있는 전투로의 그 창조적 방향전환에서 루쉰의 현실적 고뇌를 보고 있는 것이다. 루쉰의 그 고뇌를 일러 계몽의 아포리아라고 한다면 어떨까.

국민성 비판을 영구혁명의 과제로 인식했던 루쉰에게 계몽의 아포리아는 더 철저한 사상적 고투를 요구한다. 그는 먼저 만청 지식인들의 국민성 담론을 그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국민을 이용한 사이비 담론으로 격하하고, 주체적인 성찰 없이 서구문명의 표피를 숭상하는 신문화운동 세대의 경박함을 비판했다. 그리고 중국 국민성의 병근을 구경꾼 의식이라는 개념으로 집약한다. 저자는 여기서 다시 구경꾼 의식의 극복이 국민성 개조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라 생존환경의 변혁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142)을 지적한다. 주체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가능한 존재이므로, 주체와 타자가 더불어 사는 그 생존환경은 주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따라서 경제적 토대의 다른 표현인 생존환경은 생산력의 진보와 함께 더 높은 단계로 진화해야만 한다. 생산력이 일정 정도의 규모로 성숙되면, 이제는 생산력의 사회화를 통해 생산의 과잉을 통제하고 자기의 노동을 타인에게 착취당하지 않는 자유의 나라’(마르크스)로 이행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된다. 그 이행은 물론 사람의 몫이다. 역사를 추진하는 것은 역시 구조 속의 주체인 것이다. “여기서 루쉰은 흩어진 모래의 비유를 전복시켜, 통치자들이 바로 사리사욕으로 인해 단결할 줄 모르는 모래이며 민중들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알기만 하면 단결할 수 있는 존재로 반전시키고 있다.”(150) 이처럼 이 책의 저자가 국민성에 대한 루쉰의 인식론적 전환에 주목하는 것은, 이제 인민을 혁명의 주체로 인정함으로써 공산국가로 귀결된 중국의 현대사로 논의의 방향을 돌리기 위해서다.

 

4

 

5·4운동의 민중 대연합을 경험한 이후, 변혁주체로서의 인민에 대한 지식계의 시각 전환 속에서 청년 마오쩌둥은 1927년의 후난농민운동을 시찰하고 나서 농민의 자발적 혁명 역량을 발견한다. 중국공산당은 국민당과의 내전과 항일투쟁을 거쳐 대장정에 이르는 일련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농민의 동원이 혁명의 성공에 중요한 전략적 요인이라는 것을 직접 확인했다. 마오쩌둥의 꿈은 흩어진 모래를 민족주의로 통합하여 거대한 사막으로 만들 줄 아는 탁월한 능력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건설한 중화인민공화국은 인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주의 국가의 형태를 띠었지만, 정작 인민공화국의 주체로서 사회주의 이상을 실현시켜나갈 수 있는 인민은 결핍되어 있었다.”(176)

중국 근대사상사의 여러 정치적 구상들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중국의 국가체제는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공산주의 체제로 성립되었다. 이제 건국 이후의 중국이 나아가야 할 길은 국가적 보호 장치를 확립한 조건 위에서 신중국이 농업국에서 공업국으로, 신민주주의사회에서 사회주의사회로 이행하여 궁극적으로 계급이 소멸된 대동 사회를 실현”(178)하는 것이다. 그러나 소련의 사례를 참조할 때 러시아 혁명 이후 볼셰비키의 강제적인 사회화 추진으로 생산력은 급격하게 추락했고, 레닌은 어쩔 수 없이 사회주의로의 직접적 이행을 잠시 유보하고 자본주의적 요소를 도입하는 이른바 신경제정책을(NEF) 채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전례를 알고 있었던 마오쩌둥은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준비하는 과도기적 단계로, 자본주의적 요소를 일부 수용하고 소자산계급까지를 아우르는 계급 협력적 노선을 인민민주주의 독재라는 개념으로 제기했다. 문제는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위한 조건으로 일정 정도의 자본주의적, 부르주아적 요소를 허용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역작용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사회주의로의 이행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적정 수준의 생산력의 성숙이 전제되어야 한다. 자본주의적 방식의 생산력 발전이 축적에 의해 이루어짐으로써 결국은 과잉 생산으로 공황을 불러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산권 국가들은 대체로 생산력의 증강을 위해 중공업정책으로 생산재에 집중 투자함으로써 소비재의 궁핍을 초래한다. 결과적으로 인위적인 생산력의 증강은 이처럼 경제적 파행의 원인이 된다. 그런데 마오쩌둥은 개체농민 소유제가 불러온 소유제의 모호성, 즉 토지소유자이면서 노동자인 농민의 부르주아적 요소가 가져온 폐해를 확인함으로써 소유제의 사회주의적 개조를 급진적으로 추진하게 된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개체농민 소유제를 농업합작화로 전환함으로써 집단소유제를 확립하는 수순으로 전개되었다. 생산력의 성숙 없이 갑작스럽게 생산수단을 사회화할 때, 부르주아적 폐해를 능가하는 경제적 피해가 속출할 수 있다. 실제로 레닌 사후의 소련에서 스탈린은 신경제정책을 폐기하고, 강력한 계획경제와 농업의 강제집단화를 밀어붙임으로써 결과적으로 경제를 황폐화시켰고 인민들의 삶을 빈궁으로 내몰았다. 저자는 그런 실상을 농촌의 합작화 사업을 다룬 저우리보의 <<산향거변>>을 통해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농촌의 강제적 합작화와 마찬가지로 도시에서는 단위라는 조직형태를 통해 국가의 노동력 통제가 이루어졌다. 이와 같은 급진적 집단화의 과정으로 인해 공공정신을 지닌 사회적 인간보다는 집단의 보호 속에 자족하는 인간을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200) 사회적 구조의 모순은 이처럼 주체의 구성에 불온한 결과를 가져온다.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이라는 좌경적 오류의 파고 속에서 중국의 인민이 겪은 고난의 체험이 그들의 주체성에 끼친 폐해에 대해서는, 개혁개방 이후의 계몽주의 지식인들로부터 비판적으로 논의되었다. 이들은 문혁을 비롯한 사회주의 자체를 집단주의와 봉건주의의 산물이라고 비판했다. 리저허우는 중국의 지난 역사에서 서구적 개인주의에 입각해 봉건잔재의 극복을 추진하는 계몽이 반제적 민족해방운동이나 마르크스주의에 따른 계급해방운동과 같은 구망에 압도되어왔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그는 국가, 인민, 계급과 같은 거대한 관념에 구속되어온 개인의 해방이 급선무라고 보았던 것이다. 진관타오 역시 서구적 근대에 미달하는 중국 사회주의의 봉건적 체질을 비판했다. 그들은 사회주의적 집단주의를 농민들의 봉건적 소농의식과 결부시킴으로써 사회주의의 오류를 중국의 국민성과 연계했다. 대륙에 출판된 보양의 <<추악한 중국인>>이 그 길을 텄고, 류자이푸의 <<전통과 중국인>>에서 중국의 국민성 문제를 학술적으로 보다 심화시켰다. 그러나 “80년대 국민성 담론은 현실 속의 중국인이 처한 구체적인 생존 조건 및 중국사회가 급변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존재로 성장·전화할 가능성에 대한 탐구를 소홀히 하여 80년대 말 이후 점차 담론의 중심에서 멀어지게 되었다.”(220) 저자는 80년대의 국민성 담론을 포함해 20세기 중국의 근대화 담론이, 국민성의 개조라는 문화적 차원의 개혁에 몰두함으로써, 경제의 문제와 같은 사회구조의 변혁을 등한시 결과로 새로운 주체 형성이나 국가 건설에 실패하고 말았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저자는 이하의 논의를 중국의 현실 경제를 비판적으로 논구하는데 할애하고, 그 논의의 기반 위에서 중국몽의 실현을 위한 제언을 제공하고 있다.

개혁개방 이후 신자유주의적 경제발전을 추진해온 결과, 특혜와 비리는 물론 지역별·계층간의 불평등이 심화되었으며, 이로 인해 공동체의식의 침식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다시 말해 심각한 사회적 불평등이 사회적 연대를 방해하고 조화사회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저자는 위화의 소설 <<형제>>를 검토함으로써, 개혁개방 이후의 이 같은 문제들이 소설에서 어떻게 묘파되고 있는지를 비판적인 관점으로 분석해 보여준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적 경제체제가 야기하는 삶의 불안정성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사회보장체제의 수립이 긴요한 과제로 제기된다. 저자는 광둥이나 충칭과 같은 지역의 발전모델을 넘어, 중국사회 전체가 공동으로 추진해야 할 목표로서 중국식 사회주의 복지사회의 수립을 제안한다. 이것은 미비한 분배시스템의 혁신을 통해 자본의 민주적 통제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며, 따라서 성장전략의 극적인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다.

20세기 초의 망국의 위기에서부터 시작된 새로운 국가와 국민의 창안이라는 중국 사상사의 고투를 탐색해온 저자는,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는 그 기획을 이제는 21세기 중국몽의 화두 속에서 고뇌한다. 그 고뇌는 왕후이의 사유에 대한 비판을 매개로 드디어 저자의 중국몽에 대한 구상을 입안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왕후이에게 1990년대는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되면서 현사회체제의 모순을 배태한 근원지로 지목된다. 왕후이의 비판이론은 90년대 중국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성장이 가져온 갖가지 비리와 모순을 비판하면서, 개혁개방 이전의 중국 사회주의의 경험에서 그 해악들의 해법을 모색해 왔다. 그런데 그는 언젠가부터 “90년대에 대한 기존의 이해방식과 상이해 보이는 평가와 아울러 2008년 이후를 ‘90년대의 종언이라고 명명하는 모종의 시각 변화를 드러내고 있다.”(278) 왕후이는 사회주의 시기의 경험과 유산 그리고 국가의 능동적 역할이 중국 굴기의 성공요인이라고 하면서, 이른바 반현대성의 현대성이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그것의 요지는 마오쩌둥의 사회주의를 부강한 현대 민족국가 건립이라는 현대성의 목표를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방식인 사회주의 소유제를 통해 이루어 나가려한 운동”(282)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같은 입장에 반대하면서, 마오 시기의 사회주의가 갖는 불미함의 사례를 열거한다. 그러니까 중국의 사회주의는 생산수단의 국가 통제를 통해 부강한 민족국가 건설을 추구한 특수한 발전방식의 하나”(285-286)일 뿐이라는 것이다. 중국의 굴기는 오히려 사회주의의 유산이 아니라 덩샤오핑의 탈사회주의적 성장 방식을 통해 구현된 측면이 크다는 것이다. 마오가 구상했던 사회주의의 기획은 실제로 그것이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를 드러냈다. 왕후이에 대한 저자의 비판은, 사회주의의 기획과 현실화 사이의 간극에 대한 몰이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왕후이의 입장에 대해서도 저자는 국가가 자본의 효율적 관리능력은 탁월하게 발휘하지만 경제성장과 공정한 분배능력이 취약하다는 점”(290)을 들어 반대의견을 제시한다. 저자는 왕후이에 대한 이런 반대와 비판을 근거로, 보편적 복지사회에 이르기 위해서는, 생산력의 성숙이라는 기반 위에서 공공의식에 눈뜬 인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인민민주주의의 정치를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정치적 구상으로서의 기획을 실현하는 정치화의 과정에 대한 통합적 사유가 중국몽을 한갓 미몽이 아닌 현실로 실현하는 바탕이라는 것이다.

 

5

 

중국의 지난 세기는 난세를 극복하고 굴기를 이룩하여 중국몽에 이르는 힘겨운 도약의 과정이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그 과정을 중국 사상사의 고투에서 엿볼 수 있다. 물론 그 사상사의 고투는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었으나, 도전과 기투는 멈추지 않고 이어져 왔다. 이 책의 저자는 국가와 국민의 바람직한 모델을 모색해온 그 위대한 실패의 과정을 뒤따르다가 지금 중국이 당면한 중국몽의 전망 앞에서 발길을 멈춘다. 그리고 중국의 꿈이 다만 그들만의 국가, 민족, 인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 공통의 꿈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중국의 도전과 실험을 시기하는 마음이나 의혹의 시선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그들의 실험은 우리들의 미래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사상사의 거시적인 안목 속에서 중국의 미래를 예감한다. 그 예감 속에서 우리의 꿈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그 꿈을 당장에 실현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실용적인 공구서가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 책에서 부족한 것을 지적하기보다는 이 책 이후의 공부 속에서 저자가 고안해낼 실천의 방안들에 기대를 걸고 싶다.

 

 

 

 

 

참고문헌

 

이종민, <<흩어진 모래>>, 산지니, 2013

다이진화, 주재희·김순진·임대근·박정원 옮김, <<거울 속에 있는 듯>>, 그린비, 2009,

다케우치 요시미, 서광덕 옮김, <<루쉰>>, 문학과지성사, 2003

마루야마 마사오, 김석근 옮김, <<일본의 사상>>, 한길사, 1998

천샤오밍·단스롄·장융이, 김영진 옮김, <<근대 중국사상사 약론>>, 그린비, 2008

 

 

Posted by 전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