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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전성욱 평론가의 문화 읽기

모더니즘이라는 파르마콘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8. 26.

 

 

늦둥이로 태어나 생각이 또렷해질 무렵 내 부모는 마치 조부모처럼 느껴졌다. 나고 자란 곳마저 워낙 벽촌이었던 터라 어린 시절 나는 내 또래의 감수성과는 좀 다른 느낌으로 이 세계를 살고 있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흔히들 근대라고 부르는 그런 세계 이전의 시간적 감각 속에서 나는 홀로 외로웠다. 그래서일까? 나는 방학이 되면 한 번쯤 방문하게 되는 인근 도시의 그 화려함에 매혹되어 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저주의 마음을 품기까지 하였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그 매혹이란 문명의 감각이라고 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었을까. 더 노골적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분명 근대를 향한 동경이었으리라.

 

나를 낳고 자라게 한 그 세계는 자연에 가까웠고 인정의 세태 또한 지금과는 많이 다른 원시성의 연대로 교감하는 그런 시공이었다. 기억을 떠올리면 그리운 그때 그 자리가 왜 그 당시엔 때때로 저주의 염을 불러일으켰던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교과서와 텔레비전 그리고 이따금의 도시 방문으로 발심하게 된 문명에의 매혹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나는 비교함으로써 분별할 수 있었고, 그 분별 속에서 저주하거나 동경하면서 성장했던 것이다.

 

지금 나는 이 완악한 세계를 살아가면서 가끔 그때가 가슴 시리도록 그립다. 그 누추함의 아늑함은 물론 현재로 소환되어 재구성된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꼭 그 재귀적인 회상의 낭만성이 내 추억의 전부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나에게 이제 그 추억은 지금의 이 세계를 인식하는 일종의 분별지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그 때 그 시절의 감각들을 여기로 현상함으로써 세계를 인식하고 판단한다. 내가 나고 자란 삶의 감각을 되돌려 사유함으로써 현재를 보는 해석의 지평을 넓혀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기 체험과 경험에서 비롯된 삶의 감각을 애써 외면하면서, 비교하고 분별하지 못하고 매혹된 세계를 모방하기에 바쁜 사람들을 보면 화가 치민다. 이런 분노는 역시 내 우울한 성장기의 상흔이리라. 자라지 못한 어른을 보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이른바 모더니즘과 리얼리즘, 이런 분별이 가짜라고 할지라도 그 분별이 초래하는 분쟁이란 여전히 만만치 않은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근대에 매혹되었던 나는 드디어 도시로 와서 유년의 시절을 통과했고, 마침내는 그 매혹의 정체가 의심스러워졌고 끝내 그 매혹을 저주하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마음 한 곳엔 또 여전히 내 누추한 삶의 구원을 열망했던 모던에의 그 치명적 매혹이 깊은 상흔처럼 남아있다. 이런 착종과 분열 속에서 지금도 나는 불안하다. 그러나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기 전에 나는 그 불안을 착실하게 감내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나에게 공부란 불안을 견딤으로써 영혼을 보호하는 숭고한 사역인지도 모르겠다.

 

엉뚱한 말을 길게 하고 말았지만, 지금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어떤 만남에 관한 것이다. 서울대 김민수 교수와의 만남은 다시 내 어린 시절의 시간들을 되돌아보아야 할 만큼 그렇게 비범한 것이었다. 그는 디자인을 연구하고 글을 쓰는 학자이고 비평가였지만, 김민수라는 인물은 무엇보다도 내가 그토록 동경했던 모던의 정체에 대해 깊이 몰두하여 탐구한 연구자였고 동시에 겉치레로 변질된 모던의 속물성을 그 누구보다도 신랄하게 비판한 평론가였다.

 

처음 읽은 그의 책은 <<21세기 디자인 문화 탐사>>(1987)였다. 나는 이 책을 학부 시절에 읽었는데 내용뿐 아니라 책이라는 물리적 실체에서도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디자인 문화 상징의 변증법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이 책은 디자인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의 틀을 제공해 주었다. 그는 지금까지 디자인이 산업의 효율적 수단으로만 취급되어온 한국 디자인계의 현실을 비판하면서 문화로서의 디자인이라는 개념을 내세운다. 문화로서의 디자인은 통계적인 수치로 계량화될 수 없는 복잡한 일상생활에 밀착된 개념이다. 그는 기존의 한국 디자인이 복잡한 소비의 양상을 단순화 시키고 소비자의 주관을 무시한 객관적 계량주의에 기울어 있었음을 대단히 공격적인 어투로 비판했다. 디자인이라는 모던한 모드는 일상의 혁신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며 그 기원에 대한 망각이 오늘날 디자인의, 더 나아가 모더니즘의 천박한 퇴폐주의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의 비평과 글쓰기에 있어 모더니즘의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젊은 비평가 포럼의 세 번째 게스트로 그를 초대했다.

 

무더위에다 박한 초청료에도 불구하고, 그는 서울에서 부산으로 그 먼 거리를 흔쾌히 달려와 주었다. 오래전 책으로 만났던 저자를, 게다가 많은 일깨움으로 가슴 벅찬 시간을 주었던 저자를 한참 만에 시간이 흘러 직접 대면하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를 나는 부산역에서 그를 기다리며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프로필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그의 얼굴은 역 앞의 약속 장소에 서 있던 그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긴 머리에 단단한 인상의 얼굴과 함께 세련된 차림으로 서 있던 그의 모습은 머릿속으로 그려온 그대로였다. 간단한 인사로 그를 맞았고 차를 준비해간 일행과 함께 대화의 장소로 이동했다. 갑자기 좁은 차 안에 같이하면서 약간의 어색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차창 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조경을 바라보며 우리는 부산의 도시개발을 화제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날 우리가 나눈 대화는 22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디자인 철학을 풀어낸 <<필로디자인>>(2007)이라는 책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내가 그 책을 읽고 준비해간 이야깃거리는 대강 이런 것이었다. 출력해간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 이런 것이다.

 

1. 시인 김수영은 신동엽의 시를 고평하는 자리에서 “50년대에 모더니즘의 해독을 너무 안 받은 사람 중의 한 사람이라고 그 한계를 꼬집기도 했는데, 여기서 김수영이 모더니즘을 해독이라고 한 것은 무척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전통의 고답을 부정하는 모더니즘의 정신을 긍정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에 이 있다는 인식은 대단히 예리한 것입니다. 저는 선생님의 글에서 김수영이 말했던 바의 바로 그 모더니즘의 해독에 대한 치열한 성찰을 읽었습니다. 모더니즘이 보여준 창신의 정신을 긍정하면서도 일상의 생활 감각과 동떨어져 기교에 치우치는 치명적인 결점을 대단히 치밀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컨대 선생님에게 에토레 소트사스는 무엇보다 디자인을 비인간적인 중립적 대상이 아니라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긴 일상적 의식(RITUAL)’으로 복원하는 길을 모색”(189)한 디자이너입니다. 이처럼 굳이 리얼리즘이란 말을 쓰고 있진 않지만 디자인에 대한 선생님의 사유 기저엔 실사구시의 마음이 깊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2.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적 긍정과 더불어 전통의 계승이라는 문제에 대해서도 선생님은 나름의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조성룡과 안상수는 물론이고 스기우라 고헤이와 뤼징런에게서 전통과 혁신의 복잡 미묘한 관계를 살피고 있는데, 특히 뤼징런을 언급하면서 그의 삶과 작품세계가 역사와 전통을 빛바랜 민족주의 내지는 극복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국적 불명의 이상한 한국인들과 북 디자이너들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442)고 꼬집고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피닌파리나의 성공의 요인 역시 전통과 혁신의 상보적 힘으로부터 나오는 것”(235)으로 평가하시고 있습니다. 역사와 전통에 대한 사유의 부족이 옛 것을 일방적으로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문화적 천박성을 노출한다는 비판은, 새 것 콤플렉스에서 비롯되는 트렌드 추수적인 모더니즘 추종을 우려하는 마음이 이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3. 22명의 디자이너들을 소개하는 첫 자리에 밀턴 글레이저를 앞세운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디자이너의 사회적 발언이 갖고 있는 함의, 즉 디자인의 공공성에 대한 선생님의 입장을 드러내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다시 말해, 디자인에 필요한 철학으로서의 필로디자인이란 바로 그 공공성의 가치에 대한 깊은 탐문이라는 것이지요. 저는 이 책 전반을 가로지르는 주제가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 민주화를 위한 이념만큼은 사회적 선을 실천하는 공리적 가치에 두었”(59)던 윌리엄 모리스나 새로운 예술만이 사회를 구원하고 새로운 질서를 구축할 수 있을 거라 믿었”(73)던 발터 그로피우스가 모두 그 사례들이라 할 만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프롤로그의 이 마지막 대목은 그 비판의 서늘한 기율이 깊은 울림을 줍니다. “부조리와 폭력에 대해 한국의 대부분 디자이너들은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인 비즈니스로 돈을 벌어 성공할 순 있었어도 사회적 발언권을 갖고 불의에 저항할 줄도 아는 존경의 대상은 되지 못했다.”(39) 디자인의 공공성은 물론이고 예술가의 사회적 행동에 대한 선생님의 입장은 무척 단호해 보입니다.

 

4. 이 책의 곳곳에는 한국 디자인계의 부박함과 천박함에 대한 분노에 가까운 비판의 에토스가 깔려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철학이 부재한 디자인의 허영에 대한 분노라고 여겨집니다. 선생님은 전작인 <<김민수의 문화 디자인 탐사>>(2002)에서도 기술은 손색이 없는데 내공과 철학이 문제라고 꼬집었습니다. 철학 없이 기술과 스타일로 승부하려는 속물적 욕망이 문제라는 것이지요. 예컨대 선생님은 장 누벨을 일컬어 그의 스타일은 결과적 산물로서의 형태가 아니라 사고 과정에 있는 것”(309)이라고 하면서 그의 건축이 첨단 기술을 사용하면서도 기술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이야기와 시적 감동을 자아낸다고 평가했습니다. 한국의 디자인에 결여되어 있는 것과 한국의 디자인이 빠져있는 것이 무엇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많은 질문과 답변이 있었고 시종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대화들이 오갔다. 그도 그날의 대화가 나름 만족스럽고 즐거웠는지 뒤풀이자리가 있는지를 먼저 물었다. 뒤풀이는 더 유쾌했고 더 깊었고 더 뜨거웠다. 우리들은 이런 공개적인 글에 다 담을 수 없는 진솔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는 우리가 준비했던 민망할 정도의 초청료를 뒤풀이 비용으로 쓰고 자리를 떠났지만, 그가 진정으로 남기고 간 것은 여기 말로 풀어서 옮기기 힘든 어떤 것이었다. 공부와 글쓰기의 윤리에 대하여, 그리고 그것의 정치성에 대하여 우리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지만, 나는 그의 글과 행동의 연관에 대한 치밀함에 더 깊이 생각을 기울였다. 불안을 견딜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고 해여 하나, 나는 이번의 만남과 대화들을 통해 진정으로 치유된 기분이었고 위로받은 느낌이었다. 머리 숙여 존경할만한 학인을 만나기 힘든 시속의 세태를 감안할 때, 나는 감히 그 만남이 그 세태를 거스른 것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는 다음날 서울로 돌아가서 우리들 앞으로 같이 찍었던 사진 파일과 함께 한 통의 메일을 보내왔다.

 

어제 만나서 반갑고 즐거웠습니다. 함께 한 모임은 그동안 숨 가쁘게 달려온 세월과 작업들을 잠시나마 뒤돌아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좋은 자리에 초대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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