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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만남 | 이벤트

민주를 향한 움직임 :: 『중국 민족주의와 홍콩 본토주의』의 저자 류영하 교수님과의 만남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12. 24.


지난 12일, 『중국 민족주의와 홍콩 본토주의』의 저자 류영하 교수님을 모시고, 홍콩 민주화와 본토주의에 대해 들어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출판사 편집자인 저의 미숙한 질문에 깊고 귀한 이야기를 풀어주신 저자님께 감사드리며, 그날의 기록을 옮겨 포스팅해보겠습니다. 




아시아의 현재이자 미래로서의 홍콩

양아름             반갑습니다. 산지니 출판사 양아름 편집자입니다.

이번 63회 저자와의 만남은 아시아총서 중 한 권으로 출간된 『중국 민족주의와 홍콩 본토주의』의 저자 류영하 교수님이십니다. 홍콩역사박물관 사례를 통해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 중원 중심주의 입장에서 중국이 홍콩인들에게 계몽하고자 하는 이데올로기를 살피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특히나 류영하 선생님은 전작 『홍콩이라는 문화 공간』과 『홍콩-천 가지 표정의 도시』로 국내에 거의 유일한 홍콩 전문가로 인정받고 계십니다. 홍콩은 국가가 아닙니다. 일국양제라는 한 국가의 두 가지 체제라는 제도 속에 중국이라는 사회주의 국가 속에서 고도로 발달된 자본주의 체제가 공존해 있는 특수한 자치행정구역을 의미하는데요. 교수님께서 중어중문학을 전공하면서도 개중에 특히 홍콩을 주목하면서 집중 연구한 이유가 있으실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홍콩 하면 우선 영화를 비롯한 홍콩 문화가 매력적인 것이었는데요. 선생님의 홍콩에 대한 애착에는 어떤 이유가 있으신지, 그리고 그 연구의 일환으로 이 책을 집필하신 계기를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류영하 교수

류영하            불타는 금요일에 약속도 많으실 텐데, 이곳을 방문해주신 분들께 우선 감사드립니다. 홍콩 연구자가 사실 제가 유일한 것은 아니고, 국내에서도 다각도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만, 영화나 문학과 경제 등의 분야로 저와 같이 인문학적으로 연구하시는 분은 드문 편입니다. 국내에서 중국학 연구가 사실 길지 않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개혁 개방 이후로 연구가 급속도로 진행되었다고 본다면 국내의 중국학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중국 본토 연구에 치중하고 있는 현실이라, 홍콩에서 공부한 저로서는 홍콩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는 게 늘 아쉬웠습니다. 외국에서도 홍콩학에 대해 굉장히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오고 성립된 지가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사람들에게 홍콩에 대한 인식은 그저 쇼핑하러 가는 곳, 맛있는 것 먹으러 가는 곳으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저에게는 홍콩이 주는 의미가 굉장히 많습니다. 홍콩은 아시아의 현재이자 미래라는 의미가 있고요. 한국에게 한발 앞서 닥쳐올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홍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유학을 하면서 귀국할 때마다 느끼는 점이 홍콩이 뭔가 빠르구나 하는 것입니다. 홍콩에 6개월 전에 유행하는 게 다시 우리나라에 유행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홍콩은 도시의 문제점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홍콩은 야경이 멋있습니다. 홍콩 사이드 쪽을 바라보면 빌딩숲을 이루고 있어 굉장히 멋있는 곳이기도 하죠. 여덟 시가 되면 음악과 함께 레이저쇼가 20분가량 상영되고요. 관광객들이 바라보며 황홀해합니다. 관광객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굉장히 멋있지만 조금 더 자세하게 보면 비극의 현장입니다. 사실, 홍콩인들은 빛의 오염을 겪고 있습니다. 어떤 집은 잠을 자지 못할 정도이기도 하고요. 커튼을 아무리 두껍게 해도 너무 밝은 곳이 많아 살기가 힘들 정도라고 호소합니다. 왜냐하면 홍콩 당국에 빛의 오염에 대한 규제가 없기 때문이죠. 한동안 시민단체에서 이 문제에 관한 논의가 많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총독이 결론 내리기를 이는 홍콩의 상징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올 정도였지요. 이처럼 홍콩은 도시가 보여줄 수 있는 문제점을 고스란히 홍콩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아파트와 쇼핑센터의 밀집과 같은 인구집중현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우리에게도 반면교사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홍콩은 동서양의 화합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공간이기도 합니다. 서양에 대한 제도가 동양에 잘 정착한 사례로서, 동쪽의 특징들과 서구적 제도가 안착된 모습이 조화롭게 융합된 공간입니다.


국민국가의 박물관, 홍콩 스토리 전(展)

양아름             네. 홍콩이 가지는 의미에 대한 말씀 잘 들어보았고요. 책을 읽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 이 자리가 책을 소개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교수님이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서 무려 7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서문에서도 밝히셨듯 홍콩과 한국을 오가며 수많은 취재와 녹취와 자료 수집 끝에 얻어낸 성과가 아닐까 합니다. 홍콩 스토리 전시에 어떻게 해서 가게 되었는지 그 일화와 이 책의 주요한 테마인 홍콩역사박물관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책의 2부 홍콩의 박물관 부분을 살펴보시면 조지 엘리스 버코의 책을 인용하며 박물관이 ‘국민 국가의 박물관’, 즉 국가 이데올로기를 계몽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박물관임을 말씀하셨는데요. 실제로 박물관에서는 어떤 식으로 전시가 되어 있었는지, 역사 이 부분에 관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부탁드립니다. 더불어 홍콩 역사박물관에 대한 이야기도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류영하            출판까지의 시간을 따져보면 거의 8년이 흐른 것 같네요. 홍콩역사박물관은 2006년도쯤엔가 처음 방문을 했습니다. 저는 홍콩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홍콩에 대한 어떤 중독 현상이 있었어요. 홍콩의 모든 게 편했기도 하고, 홍콩인들의 자랑이 홍콩이 ‘자유’스럽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교통 법규가 자동차에게는 정확하게 적용이 되요. 택시가 안 서는 곳은 하루 종일 서 있어도 절대 택시가 서지 않는 곳입니다.

             홍콩 차들은 빨간불을 정확하게 지켜야 하지만, 사람들은 빨간불이더라도 차가 오지 않으면 지나가면 되듯이 사람에게는 효율적이고 자유로운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공간입니다. 저에게는 홍콩에 갔다 오는 게 마치 휴가처럼 일상이 되어 시간 날 때마다 홍콩의 서점에 방문하고 박물관에 왔다갔다는 편입니다. 홍콩 방문시마다 친구들을 만나 홍콩의 동향이나 이슈를 듣고 오기도 하고요.

             홍콩역사박물관을 방문했던 그날은 ‘아 이게 내가 아는 홍콩일까.’ 하는 충격이 들었던 날이었습니다. 그 나라를 알고 싶다면 박물관을 가야 한다. 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뉴욕에 가면 메트로폴리탄을 방문하라는 듯이 말입니다.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을 홍콩역사박물관 건립에 들였고, 최고의 업체한테 돈을 붙여서 디자인했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의외로 1전시실과 2전시실은 고생물이나 바윗덩어리와 원시인 나오는 것을 만들어 놓고는 백사장을 전시해 놨다는 말입니다. 이 엄청난 공간에 홍콩 스토리를 정리하려면 바쁠 텐데 왜 이렇게 낭비하고 있을까, 과연 홍콩역사박물관에서 홍콩의 모든 것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 이를 찬찬히 분석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저는 역사박물관은 가짜라는 것을 보여줘야겠다, 이것은 허구라는 가정으로 그때부터 작심하고 준비해서 연구재단에 신청했습니다. 지원받은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고요.

             그 와중에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이 생겼습니다. 이게 대한민국의 역사인가 하는 불만이 많이 들었고, MB정부 때도 졸속행정으로 말이 많은 사건이었습니다. 역사박물관에 전시된 역사가 과연 우리의 정체성인가, 그렇게 본다면 홍콩의 역사박물관은 홍콩을 대표할 수 없다, 그리고 홍콩역사박물관의 건립이 추진된 그 과정을 훑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직 공무원들로부터 인터뷰도 다 거절받았고, 제가 만났던 사람은 은퇴한 총관장이거든요. 홍콩역사박물관을 처음부터 만들고 기획하고 완성하고 난 다음까지 근무한 사람입니다. 그곳에는 큐레이터를 관장이라고 합니다. 이 사람도 홍콩의 유명인인데 굉장히 말조심을 하면서 이야기를 풀어줬습니다. 너무너무 조심해서 도저히 끌어내기 힘들기까지 했고요. 사실 홍콩사람들은 술도 잘 안 마시고 해서... 하하. 겨우 이야기를 풀어내고 홍콩 친구들을 동원해서 역사박물관 건립에 관계되는 자료를 구했습니다.

             자료 내용을 살펴보니 홍콩인들도 건립을 합의함에 있어 기본적으로 싸울 것은 싸웠더라고요. 친중파에서는 국가와 민족이 강조되었고요, 홍콩 민족파에서는 우리의 민주화를 위한 과정들을 가르쳐줘야지 그게 바로 홍콩의 정신인데 그게 누락되지 않았나 하며 논쟁이 있었습니다. 친중파 신문은 친중파 신문대로, ≪명보≫나 ≪신보≫와 같은 지식인들의 신문은 홍콩 자체의 역사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도 했고요.

             결론은 저는 굉장히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제 책 제목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를 두고 우선 고민했습니다. 중국 민족주의와 홍콩 본토주의가 투쟁한 결과가 홍콩 역사박물관에 드러나고 있다, 중국 민족주의에 장악된 홍콩의 본토주의가 말이죠. 당연히 치열하게 전시되어야 할 부분이 한두 줄로 처리된 거죠. 우리를 예로 들자면 광주사태가 한두 줄로 처리되는 것이라 생각해보십시오. 홍콩인들에게는 그래서 억울한 공간이기도 하고요.

             홍콩 학계에서는 ‘본토’는 잘 쓰는 용어인데, 국내학계에는 ‘본토’라는 말이 다르게 쓰이고 있습니다. 중국 본토주의라는 식으로 통용되고 있기에 일부러 ‘홍콩 본토주의’를 강조해서 썼습니다. 저는 자신이 로컬을 가지고 있으면 모두 로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홍콩 본토주의’입니다.


임칙서, 중국 민족주의와 애국주의의 상징

양아름 편집자

양아름             책에서도 보시면 알 수 있듯 홍콩역사박물관에 전시된 임칙서 동상과 이순신 동상은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마약단속의 선구자로서, 아편전쟁에 대한 좋지 못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중국에게 중요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임칙서에 관한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류영하             제 5전시실에서 아편전쟁에 관한 전시가 나오더군요. 들어가면 위압감을 주는 임칙서 동상이 커다랗게 전시되어 있습니다. 아편전쟁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중국 본토에서 배우거나 한국에서 중국을 통해 배우는 아편전쟁의 개념은 중국이 피해자라는 거예요. 중국가 왜 피해자냐면, 영국이 일본을 식민지화하면서 그 큰 땅덩어리를 이용해야 하니까 아편을 심었다는 논리입니다. 중국이 아무래도 땅도 크고 노동력도 풍부하니까 말입니다. 아편을 소비해야 하고 영국이 보기에 중국이 적당했다는 거죠.

             그래서 영국이 아편을 중국에다가 밀수까지 하면서 중국의 인민들이 나날이 피폐해지고 국가의 부가 유출되면서 국가경제가 위험해지는 바람에, 중국 측에서 임칙서라는 똑똑한 총독을 보내서 줄곧 금연을 주장했거든요. 특별히 그를 흠차대신으로 임명해 광저우에 보낸 거죠. 하지만 임칙서가 아편을 금지한다고 주장했는데 영국민들에게 제대로 먹히지 않자, 결국 아편을 몰수해서 큰 웅덩이를 파고 아편을 자르고 석회가루를 넣어서 화학적으로 용해시킨 거죠. 이렇게 대량처분한 다음에야, 영국 상인들이 놀라게 되었죠. 간발의 차로 전쟁승인이 나고 그 피해를 입어서 중국이라는 잘 살던 나라가 영국 제국주의에 침탈되었다는 게 핵심이거든요. 이로써 결국 임칙서는 민족의 자존심을 살린 영웅이 되는 거죠. 임칙서는 그 뒤에도 영국의 항의에 대해 죽을 때까지 아편에 대해 금연의식과 국가와 민족의 체면을 살리는 것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학술적으로 아편전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과연 영국인들만이 나쁜 것일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이미 아편이라는 것은 중국의 상류층에게 약재로 보편화되었고요. 하층민들은 어차피 아예 아편에 접근을 못했습니다. 왜 중국 자체에서 문제점을 찾지 않고 영국에게 책임을 면피하느냐는 거죠. 중국사에 있어서 아주 작은 공간이었던 홍콩이 중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는 점을 홍콩스토리는 아마 강조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곳에 또 본토주의의 입장도 담겨 있기도 하고요. 작은 어촌이 세계적인 금융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는데 그 모티브는 영국이 제공했다는 논리입니다.

             또 중요한 한 인물이 바로 손문입니다. 공산당이나 국민당 의회 모두에게 존경받는 인물인데요. 공산당의 국부이자, 대만의 국민당의 국부이기도 한 인물입니다. 청나라를 만주족을 멸망시키고 한족의 나라를 찾아왔다는 점과 중화민족을 세웠다는 점 때문이죠. 손문은 사실 한족중심주의자죠. 말은 오족공화라고 하지만 항상 명나라가 정통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청나라는 정통성이 없다, 모든 문제가 이민족의 침입을 받기 때문에 우리 중화민족의 힘이 약해졌다는 논리를 펴고 있어요. 중국 민족주의의 상징이기 때문에 홍콩 스토리에서 강조되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홍콩 사이드에 손문 박물관도 생겼습니다. 손문의 사고 속에서는 다문화라는 게 존재하지 않아요. 청문화는 다문화 다인종를 주장했는데 말이죠. 이를 손문을 깡그리 부정해버렸습니다.



양아름             최근 홍콩의 우산혁명 사태가 불거지면서, 홍콩 민주화에 대한 관심이 국내외를 넘어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바로 어제였는데요. 몇 달에 걸친 우산혁명이 경찰과 시민의 대치 끝에 막을 내렸습니다. 책에서도 볼 수 있듯 제5부 탈식민을 위한 본토에서는 67폭동과 64사건 등 홍콩의 시위에 대해서 자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만일 한국에서 한국 스토리 전시 기획을 한다면, 419와 518이 빠진 전시가 가능하겠냐는 물음으로 홍콩역사박물관의 홍콩스토리 전시를 비판하시기도 하셨는데요. 홍콩의 민주화 운동 역사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과 함께 이러한 민주화 시위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짚어주십시오.


류영하            제가 유학을 처음 간 게 86~87년도쯤이었는데요. 가서 이상했던 점은 홍콩 사람들이 중국을 별로 안 좋아하는 분위기였다는 것이었습니다. 대체 왜, 이상하다? 홍콩은 원래 중국 것이었는데 홍콩 사람들도 중국 사람일텐데 당연히 영국을 미워하고 중국을 그리워하고 지하 운동이라도 벌어져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당시만 해도 저는 국가와 민족에 굉장히 충실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실, 누구나 당시엔 그런 이데올로기에 굉장히 지배를 받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홍콩 사람들이 굉장히 영국 편이었던 거죠. 영국이 홍콩을 아름답고 잘 살게 하고 합리적인 공간으로 만들었다는 그들의 주장에 매국노 같은 사람들, 하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영국과 중국은 80년대 초부터 주권 반환 협상이 진행됩니다. 84년도에 중국과 영국 간의 합의를 본 거죠. 그게 사실 몇 년 동안이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왜냐면 홍콩이 굳이 안 돌려줘도 되는 공간이었던 문제가 놓여 있습니다. 홍콩은 홍콩 섬, 구룡반도, 신계라는 곳으로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차 아편전쟁 때 홍콩 섬만 할양(영원히 주는 것), 2차 때는 구룡반도를 할양, 신계는 조차(빌려주는 것)한다는 조건이었기 때문에 따져보면 신계만 돌려주면 되는 거죠. 1997년 7월 1일, 중국은 홍콩을 한꺼번에 다 반환받으려고 합니다. 당연히 영국으로서는 반대를 합니다.

             처음에 영국은 홍콩을 50년 더 쓰자, 더 빌려달라, 아니면 주권을 돌려줄테니 사용만 하자는 식으로 사용권을 요구했습니다. 싱가폴처럼 홍콩을 독립시키는 게 어떠냐고 제안하기도 했고요. 이런 식으로 중국과 밀고 당기기 협상이 진행되었는데, 등소평이 그건 절대 안 된다 하며 대처 수상과 협상 중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식의 발언을 해 인민대회당에서 대처 수상이 쓰러지기도 했습니다. 대처의 그 사진이 중국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릴 정도였고요. 그러다가 제가 방문한 시점에서 큰 테두리에서 합의를 했는데 사소한 세칙에서 자꾸 엇나갔습니다. 근데 패튼 총독이 홍콩의 마지막 총독으로 부임하면서 조치를 취했는데, 그게 바로 홍콩의 민주화였습니다.

             홍콩인들을 위한 민주화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홍콩인들이 자기 스스로 정체성을 발견하는 과정이 되기도 합니다. 갑자기 어느날 주권 반환 협상이 진행되고 있으니까 홍콩인들은 자기들의 발언권이 전혀 없는 거죠. 두 거인이 자기의 운명을 다루고 있는 셈입니다. 이때 홍콩인들은 다시 태어납니다. 홍콩인들의 3자 테이블을 마련하라고 하자, 중국은 결사반대합니다.

             홍콩의 반환을 사실 중국은 바라지 않았습니다. 홍콩인들이 민주의식을 갖는 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최근 주권 반환 당시 문서가 영국에서 공개되었는데, 이는 영국하원이 시위를 도와주는 차원에서 공개된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 문서에는 중국이 홍콩의 민주화를 반대했다는 식으로 기술되어 있는데, 홍콩 사람들이 똑똑해지면 중국이 불리하기 때문이었겠죠. 주권 반환 당시 일 년에 50만 명이 이민갔을 정도로 홍콩인들은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었습니다. 홍콩민들은 공산당이 싫어서 나온 사람들이거든요. 중국을 못 믿는 거죠.

             그렇다면 홍콩의 역사 중에 아름다운 역사를 꼽자면 중국 대륙의 민주화를 지지한 운동인 64사태를 들 수 있겠습니다. 1992년 당시, 중국의 민주화와 홍콩의 민주화를 한꺼번에 표출한 사건으로서 중국의 학생들을 지지하는 시위를 홍콩인들도 연일 진행했는데, 왜 그 역사는 박물관에서 왜 한두 줄로 처리하고 있는가 하는 거죠. 홍콩이 자신의 민주의식을 발견한 시점으로 기록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요? 위대한 역사는 반드시 기록되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저는 역사박물관이 개념을 가지고 어떤 사건들을 정리하기보다는 그냥 모든 사건들을 전시해서 판단을 독자들에게 맡겼으면 좋겠어요. 이를테면 박정희 박물관도 마찬가지예요. 여기를 만드는 데는 동의하지만 팩트만 전시하는 거죠. 모든 역사를 가감 없이 고스란히 전시하자는 거죠. 그가 성취한 경제적 성과도 전시하고 민주화 당시 희생되었던 이들의 이야기도 함께 전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홍콩에 가서 이 책을 중국어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홍콩 학자들이 못하는 말을 제가 할 계획입니다. 최근 ≪명보≫의 편집장이 대낮에 칼을 맞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언론인들도 옛날의 기개를 기대할 수는 없는 거죠. 가끔씩 중국에서 기자들을 상대로 국가기밀누설죄로 잡아넣는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제가 이 사태를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단지 외국인 자격으로 세미나에 참석해 마음대로 이야기하는 것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독자질문             홍콩 공무원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상부의 눈치를 본다던지 하는 장면은 우리나라에도 암암리에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시길 홍콩을 보면 한국의 미래가 보인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홍콩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 바라는 홍콩의 미래상은 어떨지 말씀해주십시오.


류영하            엄청난 질문을 하셨네요. 한번은 페이스북에 역사박물관을 다녀왔던 이야기를 올린 적이 있는데, 제 페친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단 한 사람도 댓글을 달지 않더군요. 왜 제 페친 중에는 큐레이터도 많고, 박물관 관계자들도 많고 공무원들도 많으니까 그들이 현직에 근무하고 있는 문제도 있고, 본인이 근무하지 않더라도 친구가 근무하고 한다던가 하는 구조상 문제로 인해, 제 논조에 찬성하기도 뭐하고 반대하기도 뭣하고, 승진의 문제나 다른 세력들 눈치 등 다양한 입장을 고려하는 공무원의 특징이 고스란히 반영된 게 아닐까 했어요.

             홍콩인들의 방향을 질문하셨는데. 홍콩의 가치는 제도와 법치거든요. 그것을 영국인이라는 서구인이 만들어 놓은 거죠. 홍콩에서는 법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굉장히 강합니다. 택시가 서는 것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만, 누구나 법을 공평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은 모든 홍콩인들이 지니고 있는 가치입니다.

             그리고 자유라는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유 이전에 민주는 없었습니다. 홍콩민들이 직접선거는 못했지만 직접선거보다 더한 행정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굳이 민주의 필요성을 못 느꼈겠죠. 언론의 자유도 완벽했고요. 좌파, 우파, 중도파가 모두 의사표현을 할 수 있었던 곳이 홍콩입니다. 홍콩의 가장 큰 장점은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닌 제3의 공간이라는 점입니다. 좌편도 우편도 아무편도 아닌 홍콩 편이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아무 이념과 사상으로부터 강요받지 않는 공간. 그게 홍콩인데, 다수에 의해 국가와 민족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그것이 축소되고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슬프게 느껴집니다.

             이것은 다수와 소수의 문제로서 풀어야 할 것 같은데, 소수의 의견은 어디까지 인정받아야 하는 것일까 하는 논쟁이 뒤따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사실 소수가 옳을 때가 더 많았습니다. 중국은 현재 돈을 앞세워 동화정책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경제적 장악을 하기 위해서요. 중국과 홍콩이 세파라는 경제협력조약을 맺어 자유투자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홍콩의 집값이 5년 만에 3배 가까이 오르기도 했고요. 홍콩의 섬에서 홍콩민들이 살 수가 없게 되고 홍콩민들은 중국에서 철저하게 2등 국민으로 전락해버렸습니다. 홍콩기업의 취업에는 중국대학생을 우선 채용하는 게 빈번하고요.

             앞으로 홍콩의 미래를 물어보셨지요. 보통 홍콩에서는 이런 설문조사를 매번 실시하는데요. 본인이 중국인이냐, 홍콩인이냐, 중국-홍콩인이냐는 질문에 답변이 각각 30%로 균등하게 나타나다가 최근에는 자신이 홍콩인이라는 답변율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가 재밌죠. 앞으로는 어떻게 갈 것인가 하는 게 문제겠죠. 제가 앞으로 연구하는 게 홍콩의 정체성이나 가치가 유지되고 지속될 것인가 무너질 것인가 하는 식으로 진행될 것 같습니다. 제가 공부를 하는 목적은 과연 어떤 사회가 조화로운 사회인가를 연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에는 홍콩 내부의 문제도 있겠죠. 책에서도 홍콩 내부에 대한 비판도 많이 다뤘습니다. 홍콩의 민주에 대해 그동안 홍콩인 너희들은 얼마나 노력했는가를요.

            사실 세계에서 가장 빈부격차가 큰 곳 중 하나가 홍콩이라는 공간입니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홍콩인들 스스로 한번이라도 노력해본 적이 있는가를 묻는다면 그들도 난처할 것입니다. 이른바 내부식민에 관한 것이기도 한데, 지금 현재는 홍콩의 기본적인 시민계급이 조금씩 형성되고 있다고 봐집니다. 앞으로는 시민계급이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질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되겠는데요. 홍콩에는 그동안 2008년도까지 최저임금제도도 없었고, 노동계약조차도 없는 곳이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민주를 요구하겠다는 것은 그동안 홍콩 내부에서 민주에 대한 노력을 게을리한 댓가를 지금 지불하고 있는 것이라고 봐야겠죠. 결국, 시민계급만이 시민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독자질문             저는 중국현대문학 연구자로서, 홍콩에 대한 제반적인 지식이 전무한 편입니다. 홍콩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셨는데, 홍콩 영화, 문학, 도시연구와 같은 추상적인 텍스트나 매체를 통한 연구가 주로 이루어진 것으로 압니다. 대륙 중심의 시각을 탈피해 홍콩이나 타이완으로 시각을 돌린 것은 새로운 시도라고 여겨지고요.

             이는 개인적 질문일 수도 있겠는데, 선생님께서 본토주의라는 말씀을 쓰셨는데 학계에서 로컬리티라는 말을 주로 쓰고 있습니다. 중국 현대문학에서 1930년대 중국 동북지역의 동북작가군을 만들듯이 지역성과 향토성이 가미된 용어라고 생각되고요. 타이완에서는 1960~70년대 문예사조를 향토문학이라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본토와 향토라는 말은 한자에 대해서는 다르지만 정체성과 향토성을 찾고자 하는 것에서 비슷비슷한 용어라고 생각드는데요.

             로컬리티/본토주의에 있어 통상적인 학계 용어를 따르는 게 옳은지 이처럼 각 연구자마다 전공과 정체성에 근거에서 적절히 선별해야 하는 것이 옳은지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류영하            저도 잘 답변하기 힘든 질문을 던져주셨네요. 사실 국내 학계에 중국 중심주의가 팽배해 있습니다. 모든 시각을 중국에 놓고 중국 대륙학자를 많이 인용하며 그들의 사상을 번역하고 그들을 초청하는 문화가 주류지요. 그런데 최근의 시각이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바람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대만 연구나 홍콩 연구가 각광받고 있는데요. 조금 시각을 넓혀보자는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겠네요. 저는 다양화라는 측면에서 당연히 반길만한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용어의 문제는 홍콩학 테두리에서는 본토주의라는 말을 쓰고 대륙에서는 지역주의라는 말을 쓰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책을 쓰기 전에 로컬리티 문제에 대해 본토주의라는 용어를 가져갈 것인가 지역주의라는 용어를 가져갈 것인가에 대해 사실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한국학계에서의 ‘본토주의’라는 의미를 깨줘야겠다는 의미에서 일부러 쓴 것도 있고요. 한국에서는 무조건 본토는 중국이다는 시각이 절대적이거든요.

             지역이라는 의미와 본토는 조금 다릅니다. 본토는 긍정적인 정체성을 가진 공간에서 쓰이는 용어입니다. 본토주의의 반대인 패쇄된 지역주의나 자가당착적인 지역주의가 있더라고요. 그것은 우리가 굉장히 거부해야 합니다. 내적 망명이 횡행해야 하는 점을 책에서 강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것을 저는 책에서 강조했습니다. 책을 많이 읽어봐주시길 당부드립니다.






참석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중국 민족주의와 홍콩 본토주의 - 10점
류영하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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