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단치 저|임명주 역|이루|2013.04.03|288쪽


저자는 "왜 책을 읽는가?"라는 물음을 던지고는 책과 독자에게 씌워진 환상을 철저히 걷어낸다. 그것은 독자들의 지적 허영심이나 책으로부터 위안을 받으려는 나약함을 공격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책은 위대한 것이며, 그 책을 읽는 더 위대한 독자들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었다. 과연 자신과 함께 "책의 시대"를 열어갈 용기 있는 독자인지 조심히 떠보는 것이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과감하고도 흥미로운 비평책이었다.

저자는 이 책을 쓰는 내내 냉철한 지성과 차가운 절제로 자신의 연약함을 감추지만, 마지막에 이르러 본심을 드러낸다.



1. 낯선 사유로 단조로운 세상을 읽는다


저자는 왜 책을 읽는지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자신만의 답과 생각들을 말해나간다.

폴 발레리가 말하고자 한 "책이 독자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면, 독자들마다 특별한 감흥을 느끼게 될 것."이라는 말을 언급한다. 

책을 읽는 진짜 이유는 책 자체가 아닌 자기자신을 위해서라고 말하며 책 읽는 것 만큼 이기적인 행위는 없을것이다고 말하고 있다. 또, 책은 독자들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좋은책의 판단 근거는 책속에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었는지 여부가 아닌 작가 재능에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닮고 싶은 것은 등장인물이나 사상이 아닌 재능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왜 독자는 책과 싸우는가? 라는 물음을 던지는데, 독서하는 동안엔 오직 책과 독자 단 둘뿐인데 때때로 독서는 이 둘의 고독한 전쟁이기도 하다는 거다. 독자는 자신을 성가시게 하는 개념을 정복하기 위해 대항하고, 무지를 넘어서기 위해 자신과의 싸움에 몰입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2. 독자는 벌거벗은 채 거리를 활보하는 작가들의 공모자다


2장에서 단치는 문학의 형태를 읽다라는 이야기를 한다. 픽션을 포함한 모든 문학은 형태를 찾아 나선다는 점에서 하나의 실험이라고 말하는데, 정형화 되지 않은 인간의 삶에서 문학은 형태를 건져내거나 도로 집어던지거나 분류하며, 이런 형식화를 통해 의미를 가져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독자들의 생각이 제한적이라고 해서 책이 그들 생각으로 제한되는 것은 아니다." 라는 월든의 인용문이 인상깊게 남기도 했다.

무언가를 가르치려는 책은 혐오감을 준다는 부분에서는 칸트의 말을 인용하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단치의 지독히 편파적인 문학에 대한 애정때문인지 무언가를 가르치려는 책들에 대해서는 본능적으로 혐오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책에서 배우기보다는 사람들에게서 배우는 것을 더 선호한다고 한다.



3. 책에 조언을 구하지 말고 책속의 보물을 훔치라


단치는 독서는 뇌리에 새기는 문신이라고 했다. 독자의 기억을 파고든 문장은 다른 내용까지 모두 떠올리게 하고, 그 책에 대한 관심과 감동을 지속시켜 줄 뿐만 아니라, 다시 읽고 싶은 욕망까지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란다.

잠언에 대해서 언급을 했는데, 잠언은 인용문이 아니며, 저자에게 가장 근접한 글이라고 설명했다. 매게물이 없이 저자의 생각과 감정을 고스란히 토해낸 글이기에, 잠언은 발췌가 아니라 핵심을 담은 글이라는 것이다. 잠언집은 독자가 시시때때로 대꾸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고 말했는데, 이 말에 상당히 동감되었다.

3장에서 특히 눈에 들어왔던 부분은, '반딧불처럼 꺼져가는 서점에서 읽다.'라는 부분이었다.

서점은 그나라의 지성, 감성을 알 수 있는 지표고, 즉 미학이 응집되어 있는 곳이라고 한다. 프랑스법인 도서정가제에 대해 언급을 했는데, 이미 다른나라에서도 시행되고 있으며 서점이 문학을 상업화 한다는 것은 문학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라는 물음을 던져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


4. 독서는 죽음과 벌이는 결연한 전투다


4부에서 대담집은 말의 경솔함에 빠지기 쉽다라고 했다. 대담에 임하는 사람은 박식하되 현학적이어서는 안되고, 정중하되 비굴해서는 안되며, 호기심은  가지되 상스러워서는 안된다고 덧붙인다.

인상깊었던 읽었던 부분은 저널리즘문학의 비교였다.

저널리즘의 본질은 대부분 지면 밖에 있어서 독자가 끄집어내야 한다. 문학이 창작이라면, 저널리즘은 해석이라고 할 수 있으며, 저널리즘은 신문 지면에 집착하나 언론은 대중과의 타협이라 말한다. 그래서 언론이 독자를 찾아다니는 것이고, 저널리즘은 폭력을 순화시키기 위한 이미지들의 반복인 반면 문학은 대중에 대한 의무감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것들까지 다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문학과 저널리즘, 이 두가지 글의 핵심적인 차이는 죽음과의 관계라고 할 수 있는데, 문학은 죽음에 대해 말하지만 저널은 죽은사람들에 대해 말한다. 예를 들면, 문학은 유쾌하지 않은 것에 대해 말할 수 있지만 저널은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4장의 끝에서 단치는 본심을 드러내며 책을 마무리한다.

"그러나 독자들이여! 나의 애처로운 전투에, 그리고 책을 읽는 연약한 무리들에 부디 합류하길 바란다!" 라고 말하며. 



어찌보면 약간 과하다 싶을정도로 독서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나간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가르침을 주려는 책에대해 단치는 혐오감을 느낀다 했으나 보통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책을 읽는 경우도 많지 않은가? 적어도 나는 마냥 즐겁고 재미있는 책보단 지식이 쌓이는 느낌이 드는 책을 선호하는 편이라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도 몇몇구절 보였던 것 같다. 

평소에 들어보지 못했던 수많은 책의 이름이 거론되 있었던 책인데, 그만큼 얼마나 단치가 애독가인지 가늠이 조금은 가기도 했다. 독서를 하다가 문득 왜 책을 읽는지. 또는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의문이 드는 사람들은 한번쯤 읽어보면 재미있을법한 책인듯하다.





왜 책을 읽는가 - 10점
샤를 단치 지음, 임명주 옮김/이루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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