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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만남 | 이벤트

원북(One Book)으로 시를 줍다 - 최영철 시인 초청 강연회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5. 9. 11.

부산 시립중앙도서관 저자 초청 강연회 

 

원북(One Book)으로 시를 줍다

'최영철, 신정민의 시로 나누는 이야기'

 

 

 

안녕하세요. 단디SJ 편집자입니다.

요즘 하늘만 봐도 가을의 모습이 묻어 있는데요.  

가을이 성큼 다가와서 그런지 

책과 관련된 크고 작은 문화행사들이 많이 눈에 띄네요!

 

 

어제였죠?

9월 10일(목) 부산 시립중앙도서관에서

2015 원북원 도서『금정산을 보냈다』의 최영철 시인의 강연회가 있었습니다.

 

 

1. 시는 무엇인가?

 

최영철 선생님께서는 시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

 이우걸 시인의 「첫사랑」을 읽어주셨습니다. 

 

첫사랑

이우걸

 

배경은 노을이었다

머릿단을 감싸 안으며

고요히 떴다 감기는 호수같은 눈을 보았다

 

내게도 그녀에게도

준비해둔 말이 없었다

 

 최영철(이하 '최') 

 

사랑인 것 같지만 사랑이라 하기엔 어리숙한 '첫사랑'의 묘미를 잘 살린 시조입니다. 이 시조를 통해서 '시'가 무엇인지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생각하는 첫사랑의 속성들을 쭉 나열하는 것, 그것은 시가 될까요? 혹은 그 속성을 나타내는 단어들을 고르고, 행간을 나누면 시가 될까요?

 

아닙니다.

자신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곧이 곧대로 이야기하는 것은 시가 아니라 산문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다 말하지 않고 더 말하는 것"입니다. 시의 말하기 방법은 일상적 말하기 방법을 극복하고 탈피하는 것에 있습니다. 자, 그럼 시 「첫사랑」으로 다시 이야기 해보죠.

 

첫사랑의 상대인 소녀에 대한 아름다움을 '그녀는 무엇무엇이 예쁘다, 아름답다'고 표현했다면 시가 되지 않았겠죠. 하지만 이 시에서는 그녀의 특징(아름다움)을 '눈'으로 잡고 '호수'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투적인 느낌을 피하기 위해 '고요히 떴다 감기는' 호수라는 표현을 사용해 작가가 기억하는 소녀의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기서 시의 특징을 하나 더 발견할 수 있습니다. 네, 바로 '에둘러 말하기'입니다.

 

'묘사'라고 이야기 하면 더 이해하기 쉽겠죠? '기쁘다', '슬프다', '좋다', '싫다' 등 감정을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이 시의 묘미입니다. 이 시에서는 종장 부분이 관건인데, 첫사랑에 대한 작가의 감정을 에둘러 표현함으로써 첫사랑의 서툼, 어리숙함, 풋풋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시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요, 여기 앉아 계시는 여러분들이 직접 쓴 시 중에서 몇 작품만 골라서 낭송해보고 앞서 제가 말한 시의 특징들을 대입해 부족한 점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2. 시로 나누는 이야기

 

 

소녀가

서명숙

 

꿈많던 소녀가 있었네

그 소녀 20대엔

가족을 위해 살았네

30대엔 누군가의 아내로 살았네

40대엔 한 아이의

어미로 살았네

하지만 이젠

그 누구를 위해서도

아닌 꿑많은

소녀 '나'로 살아야 할때네

 

 

서명숙 님 : 지금 저의 삶을 생각하면서 쓴 시입니다. 한때는 꿈이 많던 소녀였는데, 생각해보니 '나'로 살았던 시간이 없었던 것 같아서 그것에 대해 쓰게 되었습니다.

 

 

: 참 공감이 많이 가는 시지요? 아마 여기 계시는 분들 모두 공감하시는 내용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생각해 볼 것은, 이 시가 시의 조건(미덕)을 갖추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까 제가 시의 말하기는 일상적 말하기와는 다른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서명숙 님의 「소녀가」라는 작품은 일상적인 말에 조금 더 가깝습니다. 시는 공감과 이해를 너머 '감동'의 경지까지 이르게 하지요. 그런 면에서 생각할 때는 시의 말하기 방식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길냥이

박보배

 

도드라진 광대뼈가 더 슬프게

애절한 눈빛으로 냐아옹

그렁그렁 젖은 눈망울

긴꼬리 바짝 세우고 슬금슬금

밥 좀 주이소

문턱 안으로 들여 놓을듯 말듯 치든 앞발

빼꼼히 열린 문사이로 마주친 시선

저리갓, 주방 아줌마의 된소리에 놀라

휘리릭 불티나게 한구석으로 도망칩니다

임자 없는 길냥이는 앳띠도 벗기 전

비정한 존재 편은 이미 다 뗐습니다.

 

박보배 님 : 제가 사는 동네에 마른 길고양이를 보면서 쓴 시입니다. 광대뼈가 도드라질 정도로 마른 고양이들을 안타까운 모습을  시로 나타내고 싶었습니다.

 

: 시는 과정이 아니라 삶의 정지된 한 부분(정점)입니다. 그래서 하나의 시를 다 쓰고도 계속해서 버리는 작업을 해야하죠. 정말 공들여 쓴 구절 하나를 버려야 하는 심정은 제 살을 자르는 것처럼 힘들고, 고통이 수반되기도 합니다. 박보배 님의 시를 보면서 퇴고의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밥 좀 주이소'라는 구절은 왜 넣게 되셨나요?

 

박보배 님 : 안쓰러울 정도로 마른 길고양이들이 냐옹하고 우는 소리가 '밥 좀 주세요'라고 하는 것 처럼 느껴졌습니다.

 

: 네~ 처음 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다 말하지 않고 더 말하는 것'이 시라고 했습니다. 만약 '밥 좀 주이소' 저 부분을 과감히 버린다면, 이 시를 읽는 독자들은 '냐아옹'라고 우는 길냥이들에게서 배고픔, 그리움, 슬픔 등 더 많은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작가가 어떠한 감정을 느끼라고 말하지 않는 시가 오히려 독자들에게는 더 많은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합니다. 그런 퇴고의 작업을 거치면 좋을 것 같습니다.   

 

P.S 이 외에도 「찔레꽃」, 「혹시 너니?」,「안개꽃 같은 선풍기 사랑」에 대해서도 낭송하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3. Q&A

 

시에 대해 관심이 많은 분들이 모인 자리,

시인 최영철 선생님께 많은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Q1. 30여년간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시는 선생님께 시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 정말 많이 듣는 질문인데요, 여전히 어려운 질문 중 하나 입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저는 내성적인 아이였습니다. 생각은 많은데 말을 많이 하지 않는 편이니 어딘가 배출해야 할 곳이 필요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어릴적 큰 사고가 난 적이 있는데 몇 달을 병원에 가만히 누워있어야만 했죠. 안 그래도 내성적인 아인데 병원에만 있으니 더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 부탁해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때는 굉장히 힘들고 불행한 시간이었지만 지금은 이 시간이 저를 시인으로 만드는 운명적인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수행하게 했고, 작은 끼적임들과 그때 읽은 책들로 시를 쓰게 되었으니까요. 제게 시는 제 속에 쌓이고 짓누르는 견딜 수 없는 것들을 발산하게 했던 도구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Q2. 시집 『금정산을 보냈다』 중에서 가장 애정하는 시 한 편을 뽑아본다면 어떤 작품입니까?

 

: 없습니다. 저는 제가 쓴 시를 모두 기억하지 않습니다. 제 다음 작품에 혹여나 영향을 미칠까 염려가 되기도 하고 망각이 주는 힘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시집 역시도 가장 좋아하는 시가 없는데요, 많은 분들이 표제작인 「금정산을 보냈다」를 이야기 하시더라고요. 이 시에는 해외로 보내는 아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원북원 도서에도 선택이 되서 참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Q3. 시의 생명은 무엇입니까?

 

: 잘 모르겠습니다. (웃음) 시는 만물에 생명력을 부여합니다. 모든 것이 서열화 되어가는 현실에서 시만은 서열화하지 않으며 만물의 존재 무게를 모두 똑같이 생각합니다. 시야 말로 생태적 상상력이 발현되는 분야고, 그래서 시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유럽에서는 시 교육을 많이 합니다. 아이들이 언어를 접하고 배울 때 시로 공부를 한다고 해요. 시는 자신의 삶의 배경들에 다양한 생각의 가지를 뻗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시가 계속해서 사랑받고 성장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Q4. 좋은 시를 쓰기 위한 준비는 어떻게 해야하나요?

 

: 준비랄 것까지는 없지만, 좋은 시를 많이 접하세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권해주세요. 좋은 시를 알아보고 읽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며 생각을 나누는 것이 좋은 시를 쓰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미 시를 좋아하고, 직접 써 보기도 하지 않습니까? 이미 여러분들은 시를 쓰기 위한 준비를 모두 갖춘 시인이라 생각합니다.

 

 

 

 

+ 덧붙이는 사진

 

강연회가 끝나고, 소녀 팬들에게 둘러싸인 최영철 선생님의 모습입니다 ^__^

 

 

 

 

금정산을 보냈다 (반양장) - 10점
최영철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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