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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부부사이 대화에 성공하려면 집을 나가라

by 산지니북 2010. 2. 27.

 

여성학자 오한숙희가 늘 강조하는 말이 있다. 부부 사이에 닫힌 대화의 문을 열려면 우선 대화의 현장부터 바꾸라고. 늘 쓰던 가구, 늘 쓰던 이불, 늘 산더미 같은 일들이 기다리는 집안에서 “우리 이야기 좀 하지”하고 대화를 시작하면 백발백중 대화가 어긋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환경이 의식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강력히 권고한다. 하다못해 뒷산에라도 오르면서 말문을 트라고.

하지만 환경만 바꾼다고 부부간의 대화가 성공하는 건 아니다. 이제는 상대방 눈치 볼 일도, 배려할 마음도 생기지 않는 권태기. 오랫동안 대화다운 대화를 못 나눴던 터라 되려 두터워진 벽만 실감하는 경우가 많다. 여행길이나 식당에서 의견이 갈리면 지난 일까지 이자를 붙여서 외려 골이 깊어지고 만다.

내가 아는 전업주부 H는 냉소하면서 말했다.

“식구끼리 콘도 가서 사나흘 머무는 건 여자에겐 여행이 아니라 가사일의 연속일 뿐이에요. 집안 구조도 아파트랑 똑같고, 부엌에서 요리하고 치우는 것도 다 내차지지. 공간만 달라졌지 내용은 똑같은데 그게 무슨 여행이에요?”

- 318~319쪽, <제주 걷기 여행>




꺼내기 어려운 얘기가 있거나 무언가 남편을 설득해야할 땐 슬쩍 걷기 여행을 권한다. 한두시간 거리의 뒷산 소나무 숲도 좋고, 하루 길인 경주 양동마을도 좋다. 운동에 약간 강박증을 보이는 남편은, 몸살이 나서 운신을 못할 때 외엔 걷자고 하면 무조건 OK. 낙엽 오솔오솔 떨어져 있는 숲길을 걸으며 얘기를 슬금슬금 꺼낸다. 남편은 우선 일상을 탈출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느긋해진데다 한없이 여유로운 사람으로 변해 고개를 주억거리며 “음, 그러지 뭐. 당신 생각대로 하자”라고 대답한다. “야호! 작전 성공이다”

경주 양동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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